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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노 사피엔스 - 스마트폰이 낳은 신인류
최재붕 지음 / 쌤앤파커스 / 2019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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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omo religious," "Homo economist,"온갖 "사피엔스"와 "호모Homo" 아류는 배운자들의 과시용 언어유희일까요?  리스트에 자꾸 신조어가 추가되니 어느 시점에서인가 "~ Sapiens" "Homo~" 표현에 식상해졌습니다. 솔직히 『포노 사피엔스Phono Sapiens』도 저자 최재붕 교수(성균관대)가 새로 제시한 단어라고 속단했는데 2015년 "The Economist" 특집 기사에서 처음 등장했다고 합니다. 바로 IT기술이 바꾼 새로운 인간형을 칭하는 표현이지요. 




혼밥, 혼술 하더라도 페이스북 친구가 300명, 자연휴양림 찾는 일은 없어도 온라인 게임 속에서 정글과 숲을 누비며 환호하는 포노 사피엔스. 호오가 분명히 갈릴테니, 이를 21세기에 거부할 수 없는 생존환경변화와 함께 올 인류의 변화라고 천명하는 데에는용기가 필요할 것 같습니다. 그런데 최재붕 교수는 아주 명확한 입장에 서서 이야기를 전개합니다. 소위 "스마트폰과 뇌가 동기화 되고 폰 기기를 손으로 삼는 포노 사피엔스가 인류 문명을 새로 쓰고 있으니 대세를 거스르면 폭망한다. 개인 수준이 아니라, 대한민국이라는 국가 수준에서 폭망이 뻔하니 변화를 예의주시하고 그 물결을 같이 타자! (직접인용이 아니라 저자의 주장을 저는 그렇게 해석했습니다)"라고 깃발을 올려듭니다.

*

저자는 아마도 "X세대"에 속할 연배일듯 한데, "신세대는 이미 구세대"라며 눈개리개 칭칭 머리에 두른 꼰대 취급합니다. 물론 '포노 사피엔스'로의 전환을 거부하고 억합하는 일부 사람들에 대해서요. 저자는 디지털 게임은 사람을 좀비 만드는 정신마약이 아니라 '유희적 인간'에서 스릴과 재미를 주는 신인류의 필수품인데 이를 법규로 규제하려 하는 이들을 비판합니다. 



"롤드컵 결승전에 8000만 명이 모렸다는 데이터를 우리나라국회에 제시한다면 틀림없이 이렇게 얘기할 것 같습니다. '그것 봐라, 이렇게 중독된 사람들이 많다. 그러니 마약이 아니냐. 규제를 더욱 강화해야 한다." 이것이 대한민국 국민을 대표하는 사람들의 생각입니다. 가슴이 콱 막힙니다. (본문 153쪽)"







국내 최고 4차 산업혁명의 권위자이자, 2014년부터 기업, 정부기관, 교육기관 등에서 '포노 사피엔스' 관련 강연만 12,000여회 진행해왔고 현재는 Jtbc프로그램에도 출연한 화려한 약력에 걸맞게『포노 사피엔스』를 통해 저자가 소개하는 예시는 설득력있고도 방대합니다. 우리(대한민국 정부)가 어떻게 '포노 사피엔스 시대, 혁명의 시대'를 준비해야 하는지? 시장의 패러다임 변화와 그 속도를 어떻게 분석할 수 있으며 변화를 어떻게 주도할지? 갑질의 시대는 가고 소비자가 왕이자 권력인 온디맨드(on demand) 비즈니스가 왜 살길인지? 디지털 문명의 부작용은 무엇이고 어떻게 대응해야할지?


주장이 흔들림 없고, 제시하는 대안과 해법도 분명합니다. 

다만, 단순희 '디지털 문명'에도'인의예지'를 갖춘 사람됨됨이가 중요하다는 식의 가벼운 성찰을 더해서는 이 디지털 문명이 낳을(물론 줄인다고도 볼 수 있겠지만) 불평등의 격차, 왜 소비주의를 무비판적으로 촉진시켜야하는지에 대한 반성이 약해질 듯 합니다. "포노 사피엔스"라는 강요된 연결성에서 스스로 소외되고 싶은 자들을 어떻게 살아야하고 살게 될까요? 남의 이야기가 아니네요. 


"4차 산업혁명" 구구단외듯 단어로만 외웠던, 저같은 초보 독자에게 훌륭한 입문서로 『포노 사피엔스』를 추천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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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yrus 2019-03-04 14:1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기득권층과 마약업체와의 정경유착을 제대로 근절하지 못하면서 게임을 ‘마약’이라고 규정하는 정부의 태도가 우습네요... ^^;;

2019-03-06 10:03   URL
비밀 댓글입니다.
 
세계화의 풍경들 - 그림의 창으로 조망하는 세계 경제 2천 년 비주얼 경제사 2
송병건 지음 / 아트북스 / 2017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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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 새벽에 읽은 『세상의 모든 교양, 미술이 묻고 고전이 답하다』에는 총 54개의 명화가 등장합니다. 어제 오전, 우연히 제목에 끌려 집어 들었다가 두 시간 만에 읽어낸 『세계화의 풍경들』에도 많은 그림이 소개되지요. 차이가 있다면, 후자는 경제사와 연계해 시대상을 보여줄 수 있는 비주얼 자료라는 목적성이 강해서 굳이 명화가 아니더라도 만평, 캐리커처, 광고 포스터, 설계도면 등을 두루 등장시킨다는 점이지요. 두 책 모두 비주얼 자료들 덕분에 페이지 넘기는 속도를 높여준다는 점은 공통되지만요. 하루마에 700페이지 넘게 읽은 셈이라, 등에 통증이 스멀스멀 기어올라오는군요. 그래도 잊지 않게 정리를 해야겠죠?


 

'중앙일보'에 연재하던 글을 다듬어서 『세계화의 풍경들』를 펴낸 송병건 교수는 경제학과 학부 소속이었다지만 전공책보다 역사책을 더 즐겨 읽었다네요. 옥스퍼드 대학교에서 '산업혁명 시기 영국 경제'에 관한 연구로 박사학위를 받았습니다. 이후에도 케임브리지 대학에 적을 두고 생활하는 가운데 유럽의 박물관과 미술관을 많이 다녔나 봅니다. 독자 입장에서는 참으로 고맙게도, 송병건 교수가 미술관에서 느꼈던 지적 흥분감을 전문지식에 녹여내 말랑말랑하게 전해주니 '경제사'라지만 소화하기가 쉽습니다. 『비주얼 경제사』를 읽지 않은 독자일지라도 『비주얼 경제사2』를 '세계화'라는 키워드 아래 쉽게 이해할 수 있습니다. 무려 340여 페이지에 이르는 이 책은 연대기적 구성을 취합니다. 1부는 '고대에서 중세' 2부는 '대항해시대와 중상주의 시대' 3부는 '산업혁명의 시대' 4부는 '제국주의 시대' 5부' 세계대전과 자본주의의 황금기'라는 제목을 달고 있습니다.



5부는 다시 24개의 에세이 형식 경제사 쪽글로 이뤄지는데, "비주얼 자료 하나 + 자료에서 뽑아낸 흥미유발 질문들"로 첫 노크를 합니다. '역사적 상상력이 뭐이더냐, 비주얼 독해력은 더더욱 웬말이냐'하는 무심한 이라도 그림을 보면 흥미가 생기고, 저자가 던지는 질문에는 요런저런 답들을 상상하게 될 터입니다. 예를 들어 "노예제와 고대 로마의 몰락" 챕터에서 저자는 찰스 바틀릿(Charles Bartlett, 1860~1940)의 1888년 작품을 소개하며 "이 아이들은 누구일까? 왜 표정에 거부와 불신, 슬픔이 보일까?"를 묻습니다.



이 기골이 장대하지만 수수한 차림의 젊은이는 누구일까요? 놀랍게도 그 대단한(Great) 표트르 대제(Peter the Great)네요. 이처럼 떡밥이 맛있게 생겼으니, 경제사 문외한 독자 그 누구라도 중간에 책을 덮을 수 없습니다. 덕분에 얻어가는 게 참 많군요. 저는 이 책 덕분에 'Bull baiting'이라는 잔혹한 동물학대에서 'Bulldog'이 어떻게 쓰였는지, 나아가 산업혁명기 영국이 다양한 방식으로 동물자원을 활용하여 혁신을 이끌었음을 배웠네요.



송병건 교수는 서문에서 "'세계화'는 지구 곳곳이 인간의 교역과 교류를 통해 점차 가까게 연결되는 과정이다. 간단히 말해 세계가 좁아지는 움직임이다.(8쪽)"이라고 정의하는데요. '낭세녕'이라는 청나라식 이름도 가졌던 이태리 밀라노 출신 화가 주세페 카스틸리오네가 그린 '건륭제'를 보니 그 연결과 문화적 버무림의 양상을 직관적으로 상상하게 됩니다.



'조우'라 하든, '정복'이라 하든 서로 다른 이름으로 스스로 인지하던 집단끼리의 만남은 필연 배제, 차별, 구별짓기의 과정을 수반할 텐데요. 저자는 세계화 과정에 수반되었던 이 충돌과 갈등의 모습을 인상적인 비주얼 자료를 제시함으로써 강렬하게 기억시킵니다. 아래 일러스트레이션은 1904년 영국의 신문에 실렸다고 하는데, 자바 섬에서 실제 있었던 호랑이 사냥을 영국인들에게 전달하는 목적으로 그려졌겠지요? 다시 말해, 보다 자연 상태에 가까운 피지배자에 대비하여 강인한 제국, 지배자의 모습을 대비시켜 각인시키려는 목적일 것입니다.



작년에 읽은 역사책 중에는 『코르셋과 고래뼈』, 『소비의 역사』가 『비주얼 경제사』에는 못미치더라도 많은 비주얼 자료를 소개하고 있네요. 그 많은 논문들 섭렵하랴, 학술활동하랴, 그 와중에 미술관 및 박물관과 친해서 조금 더 참신하고도 흥미유발하는 방식으로 역사를 대중에게 전하는 이분 학자분들께 감사의 마음을 꼭 전하고 싶습니다. 플러스, 존경의 마음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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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의 모든 교양, 미술이 묻고 고전이 답하다 - 18권의 철학·문화·사회·경제 고전을 54점의 그림으로 읽는다
박홍순 지음 / 비아북 / 2015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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몇 년 만에 다시 꺼내 읽는데, 수십 페이지를 넘기도록 책 내용이 새록새록 살아난다. '초판인쇄일로 따져보니 40여개월 만에 펼쳐들었는데? 나, 설마 기억력 천재?!' 그럴리가! 실은 『세상의 모든 교양, 미술이 묻고 교양이 답하다』의 집필방식 덕분에 내용을 잘 기억하는 것일 것이다. 저자 박홍순은 '서가명당' 명강사도, 논문이 인용되는 학자가 아니다. 그렇지만 화가의 꿈을 키우며 미술을 공부했던 경험을 십분 살려서 고전을 '명화'와 엮어 해석하는 방식을 특화했다. 그의 표현을 빌자면 "고전이 갖는 한계를 미술 작품이 보완해준다. 대부분의 고전은 문학작품이 아닌 이상 다루는 내용과 논리적인 형식 덕에 지극히 이성적이다...(중략)...미술 작품을 고전 이해의 동반자로 삼음으로써 우리의 정신과 삶은 더욱 충만한 상태로 향한다." (10쪽) 즉 그림, 그것도 명화를 통해 독자는 활자로 곱씹어 이해해야할 내용을 직관적으로 궁금해하고, 강렬하게 기억하게 된다. 나 역시, 40여개월이 지나도 이 책에서 소개한 명화 50여점을 대부분 기억하는 것을 보면 저자의 주장에 동감한다.



그렇다면, 저자가 이해하는 "고전"은 무엇일까? "세상의 모든 교양"을 책제목에 내세우는 저자는 과연 어떤 고전을 선별해서 소개할까? 먼저, 저자는 아나톨 프랑스의 말을 빌어 "고전이란 누구나 가치를 인정하지만 누구도 읽지 않는 책"이 되기 쉽지만, 실은 향미가 뛰어난 맛있는 요리와 같다고 한다. 또한 고전의 요리법은 하나가 아니기에, 독자는 나름의 방식으로 고전을 조리해 먹을 수 있고 저자가 그 막막한 과제풀이를 도와주겠다고 한다. 앞서 말한대로, 미술 작품을 안내자 삼는 방식으로. 그렇게 저자는 고전을 "철학, 문화, 사회, 경제" 네 분야, 다시 18개로 압축 선별했다. 순서 없이 18개 고전풀이하는 데 무방한 줄 알았는데, 다시 한번 "책머리에"를 들춰보니 제시된 순서대로 읽을 필요가 있었다. 예를 들어 1부 "철학에 길을 묻다"에서는 서양철학에서 '이성'에 대한 관점을 4편의 고전을 내세워 시대별로 정리했다고 한다. 플라톤, 소크라테스, 니체, 화이트헤드의 저작이 등장한다. 물론 서양명화와 병렬배치하는 방식으로. 예를 들어, 소크라테스가 추구하는 정신적 열망을 설명하며 박홍순 저자는 "쾌락의 팔 안에서 알키바데스를 끌어내는 소크라테스"(르뇨, 18c)를 엮어 소개한다.


2부, "문화의 사려 깊은 매력"에서는 인류학자 말리놉스키, 푹스, 발터 벤야민, 보드리야르와 부르디에의 작품을 소개한다. 말리놉스키의 가족&친족 이론을 이해하는 데에는 루소의 가족그림을, 서구의 도덕성에 정면 도전한 푹스의 『풍속의 역사』를 소개하면서 부셰의 그림들을 배치했다. 저자는 중간중간 21세기 한국의 상황을 반영하는 에피소드나 저자의 여담을 곁들여, 서구 학자들만의 이론의 향연에 그치지 않도록 노력했다.
3부 "살맛 나는 사회를 위하여"에는 법, 제도, 관료제, 자유, 여가 등 오늘날 사회 이해에서 빼놓을 수 없는 키워드를 중심으로 고전을 소개한다. 고전읽기를 '지금- 여기' 일상과 연결지으려는 저자의 큰 그림이 행간에서 느껴진다. 경제 분야 고전을 다룬 4부, "경제를 생각한다"에서는 로크, 하이에크, 폴라니, 리프킨을 요약본으로나마 접할 수 있다. 중간중간 생소한 용어와 뜻풀이가 필요한 부분은 '비아북' 편집실에서 매끈한 방식으로 해결해주었다. 『세상의 모든 교양, 미술이 묻고 고전이 답하다』를 읽고 나면, 고전을 어떤 '나만의' 방식으로 해석하고 요리할지 감을 얻을지도 모르겠다. 사실 난 아직 못 찾았는데, 최근 읽은 『감염된 독서』의 최영화 저자가 '감염내과 전문의'로서의 렌즈를 특화시켜 문학작품을 해석하는 방식과 『맛, 그 지적 유혹』의 정소영 저자가 영문학과 미디어 전공을 살려서 음식을 문학작품 속에서 디코딩하는 방식에서 아이디어를 빌어와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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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yrus 2019-02-12 16:51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저자가 2차 문헌에 있는 문장을 직접 인용하고 번역하지 않는다면, 2차 문헌의 번역본에 있는 문장을 인용할 수 있어요. 그러면 당연히 인용문의 출처를 밝히는 게 맞습니다. 저도 몇 년 전에 출처를 밝히지 않고 문장을 인용해서 글을 쓴 적이 있었어요. 그땐 너무 가볍게 생각했는데, 표절로 오해 받아서 혼줄 났습니다. 그 날 이후로 출처 밝히기의 중요성을 뼈저리게 느꼈습니다.
 
내가 우울한 건 다 오스트랄로피테쿠스 때문이야 - 신경인류학으로 살펴본 불안하고 서투른 마음 이야기
박한선 지음 / 휴머니스트 / 2018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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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 이름만 보고 책 집어 드는 건 수험용 학습지 이후로 없었는데, 요새 내가 재밌다고 읽은 책들의 교집합이 뒤늦게 눈에 들어오니 그 이름, '휴머니스트.' 읽어 내려가다 보니, '휴머니스트' 출판사 책이 많네요. "팔리는, 팔릴 만한" 책 제목을 뽑아내는 편집자들의 능력이야 아서 클라크(였나요?)가 아부했다는 '신의 영역'에 속할 텐데요, 특히나 진화 생물학, 진화 심리학 분야의 책 제목은 혀를 내두르게 합니다. 좋은 뜻에서요. 제목만 봐도 읽고 싶어지게 만들거든요. 『우리 모두는 2% 네안데르탈인이다』라는 데, 『내가 우울한 건 다 오스트랄로피테쿠스 때문이야』라는 데 읽지 않고 배겨 낼 오스트랄로피테쿠스 후손이 있겠습니까? 동의하지 않으세요?



목차를 눈으로만 훑어도 이건, 안 읽고 못 배길 책이 맞습니다. 짝짓기(mating) 전략을, 인간의 자기 기만(self-deception) 본능을, 양가적 감정을 일으키는 여성의 유방을 이야기한다는데 읽고 싶어지지 않습니까? 그래서 어젯 밤 잠들기 전에 재미있게 읽었습니다. 정신과 전문의이자 신경인류학자라는 독특한 이력의 박한선 저자가, 마치 대학 교양강의를 전개하듯 쉽고 친절하게 신경인류학과 연관된 과거와 최신, 논문들을 정리하고 우리 삶과 연결지어 화두를 던져줍니다. 전중환 교수의 『오래된 연장통』과 함께 읽어 보기 추천합니다.




이 책에서 인용한 책들


"원더박스," "협력의 진화," "북아메리카 원주민 트릭스터 이야기," "비맨" "이타적 인간의 출현," "타고난 반항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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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선 2019-01-03 16:4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ㅅ쇼

밑줄긋는시간 2019-03-10 12:4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너무 티난다
 
코르셋과 고래뼈 - 이집트로부터 유럽을 거쳐 미국에서 끝나는 옷 이야기 푸른들녘 인문교양 21
이민정 지음 / 푸른들녘 / 2018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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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00번대, 그중에서도 590번대라면 도서관에서 좀체 기웃거리지 않는 서가 쪽 책일 텐데 제목에 혹해서 『고래뼈와 코르셋』을 뽑아들었습니다. '득템!'하며 재밌게 읽고, 기억이 가물거릴만해지자 6개월 만에 다시 읽었습니다. 저자 이민정은 독특하게도 "의류직물" 분야 박사 학위 소지자입니다. 2014년 한국출판문화산업진흥원 선정 청소년 권장도서인 『옷장에서 나온 인문학』의 저자이면서 고등 국어 교과서 집필에도 참여했다지요. 전문용어가 숨을 못 쉬게 하는 논문 스타일 글쓰기가 아니라, 초중고생뿐 아니라 어른들도 빠져들게 만드는 문체는 그가 패션잡지 에디터로 활약했다는 경력과 연결 짓게 합니다.

『고래뼈와 코르셋』은 여러 면에서 설혜심 교수의 『소비의 역사』를 연상시킵니다. 일상에서 무심코 지나쳤던 사물 혹은 소비 대상 이면의 역사를 흥미로운 에피소드로 양념 쳐서 쉽게 풀어냈다는 점에서 비슷하거든요. 설혜심 교수가 역사학 중에서도 비교적 최근에 뜨고 있는 소비史 분야의 전문지식을 강의 PPT 수준 비주얼 자료로 일반에 공개했다면, 이민정은 옷, 옷감과 얽힌 정복과 착취의 역사, 구별짓기와 개인 집단의 정체성 등을 풍부한 곁가지 에피소드로 프릴 달아 내어놓았습니다. 재밌고, 유익합니다. 역사 공부, 요렇게도 하는구나 싶어서 어린 학생들에게도 권하고 싶습니다.



옷에 관한 한 '멀티플레이어'를 자부한다는 저자 소개에 고개가 절로 끄덕여질 만큼, 이민정은 옷과 패션에 관한한 "박학다식" 그 자체인데요. 예를 들어, 유럽 정복과 함께 사라졌던 원주민들의 생활양식과 물질문명을 언급하면서 단순히 아메리카 원주민들의 브리치클로스뿐 아니라 버펄로 사냥으로 쌓아올린 뼈 무덤 사진을 소개합니다. 또한 옷감 중에 '목화'가 단연 최고라면서, 목화가 일상으로 들어오기까지 피와 땀을 착취당한 흑인 노예들의 삶을 소설 『뿌리』나, 영화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로 여우조연상을 받은 흑인 배우 헤티 맫내이얼의 슬픈 사연으로 살을 붙여 설명합니다. 재밌죠. 이렇게 자료를 모으고 다룰 수 있기까지 이민정 저자의 노고에 박수를 보내고 싶습니다.

아울러, 이민정 저자 덕분에 이렇게 뒤늦게야 '고래뼈 코르셋'이 뼈로 만든 것이 아님을 알았는데요. 저는 이제까지 뼈에 탄성이 있어서 코르셋 소재로 쓴 줄 알았더랬죠. 알고 보니 뼈가 아닌, 고래수염(baleen)으로 코르셋을 만들었는데 이를 착각한 이들이 whalebone으로 번역하면서 오해가 생겼다고 합니다.

어렸을 때, 세계명작 동화를 읽으면서 공주님 드레스의 소매가 왜 그리 쳐져 있을까 궁금했는데, 오호! 바로 블리오였군요. 에드먼드 레이튼이 그린 여성들이 입은 드레스가 그것이랍니다. 길게 설명하지 않아도 상상이 되네요. 번쩍이는 북두칠성 별 박아 네일아트한 여성에게 김장 배추 절이자고 할 수 없겠듯, 소매를 길게 늘인 드레스를 입은 여성에게 물 길어오라 못했겠네요. 이민정 저자가 소개한 "시도서" 속 농기구를 들은 여성의 치마 길이가 짧고 소매가 간소한 것과 대비됩니다.





『고래뼈와 코르셋』 본문 129쪽에 소개된 사진

마지막으로, 위 사진 속 빨간 양말은 얼마나 오래된 것일까요? 저는 어렸을 때 읽은 "일곱 마리 까마귀"란 동화 삽화에서 까마귀들이 신고 잤던 양말과 너무 똑같아서 유심히 보고 기억했는데요, 놀랍게도 이 양말은 4세기 경 제작되었답니다!!!!! 1700년 전 양말이란 말이지요.

6개월 시간 차를 두었더라도 그래도 두 번이나 읽은 책 제목을 『고래뼈와 코르셋』이라고 바꿔 기억하니 부끄럽지만, 『코르셋과 고래뼈』는 일상의 옷과 옷감, 나아가 역사에 천장 없는 호기심의 풍선을 올려보게 하는 좋은 책이라 강력 추천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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