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공부(학문) 하는가?,'

'많은 이가 제 곳간 채우기에 급급한데 왜 어떤 이는 곳간을 세상에 열어 주는가?



가끔 떠오르는 질문인데 의료인류학자 "김관욱"을 통해서 그 답을 엿보았다. 그는 [아프지 않았으면 좋겠습니다](2018)를 시작으로 [사람입니다, 고객님](2022)에 이어 2024년에는 [달라붙는 감정들] 외에도 무려 [몸: 살아내고 말하고 저항하는 몸들의 인류학]과 [지불되지 않는 사회]까지 단독 출간했다. 김관욱은 열정적 저술활동 만큼이나 대학강단과 현장에서도 뜨거운 심장과 행보로 깊은 영감을 주어왔다. 그의 활동을 관통하는 공통 화두라면 #건강, #몸, #인류학, #사람일텐데 그는 세상에 뜨거운 질문을 던지고 응답하느라 고군분투 중이다. [지불되지 않는 사회]의 부제 역시 [ 인류학자, 노동, 그리고 뜨거운 질문들]이다. 인류학자 김관욱은 타인의 고통에 무감각해져서라도 "각자도생(사)"하는 차가운 사회에서 "냉혹한 노동 현실에 대한 뜨거운 질문"을 던진다.



"[숨가쁨] 얼마나 아파야 노동자는 쉴 수 있을까?"

"[허무함] 나의 사유재인 노동은 왜 가치도 인정받지 못하고 착취 당하는 공공재가 되어 버렸을까?"

"[상처] 과로사, 절망사, 노동자살, 산재 등등...어쩌다가 생존을 위한 밥줄이 나의 목숨을 위태롭게 하는 세상이 되었을까?"

"[우울] 어쩌다 노동은 마음과 몸을 병들게 했을까?"

"과연 우리 사회는 '공정한, 좋은 노동'에 대한 사회적 고민을 하고 있는가?"



김관욱은 어려서부터 감각이 "과잉" 발달하여 타인의 고통에 눈과 귀가 열렸다. 경쟁사회 생활인에게 과잉감각은 약점이겠지만 실천하는 인류학자에게는 축복이다. 그는 "노동"에 대한 이미지를 축 삼아 [지불되지 않는 사회]를 구성하였다. 독자는 노동의 "숨가쁨"(청각), "허무감"(감각), "바쁨" (시각), "상처"(시각)에 공감각하며 김관욱의 뜨거운 질문을 공유하게 된다.


최초의 질문은 단순하지만 본질적이다. "왜 오늘날 대한민국에서 (어떤 이들의) 노동은 소모되면서도 그 가치를 인정받지 못하는가?" 김관욱은 치열하게 구축해온 학문세계의 언어와 풍부한 현장연구 데이터를 빌어 이 질문을 탐색한다. 그는 자본주의 기원과 야만적 축적(노동가치의 저평가) 현실을 소개하고, '과로-성과체제'가 초래한 '분열적 피로'와 '우울' 그리고 '절망사 death of despair'의 현실을 안타까워한다. 또한 우리사회가, '생존을 위한 밥줄이 오히려 목숨을 위협하는 가혹한 노동현실'에 희생된 이들에게 위로나 치유보다는 혐오를 쏟는 "탈脫도덕"의 사회로 가고 있지 않나 우려를 표한다.


김관욱은 타인의 고통에 귀를 닫고 심장이 차가워진 사회, 환대의 의례가 사라진 사회, 그리고 내편-네편을 경계짓는 "덩이 존재론"에 갇힌 사회의 암울함을 지적한다. 동시에 그는 인류학자 제이슨 히켈, 철학자 한병철, 인류학자 팀 잉골드, 사회학자 사라 아메드의 사상에서 혜안을 빌어와 대안을 제시한다.


일하다 다치거나 아프고 죽는 사회가 아니라 "능력만큼 일하고, 필요한 만큼 가져가는" 사회가 되기 위해 우리에게는 서로 매듭처럼 연결된 "선line의 존재론"과 "공감의 정동affect"이 필요하다. 의외로 작은 데서 시작할 수 있다. 타인의 고통에 귀를 열고, 서로 돌보면 된다. 의료인류학자 김관욱의 과잉감각과 뜨거운 질문이, 그래서 더 소중하다. 고맙습니다.





[해당 리뷰는 출판사에서 무상으로 제공받은 도서를 읽고 작성했습니다.]


댓글(2) 먼댓글(0) 좋아요(3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숲노래 2025-01-24 07:21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일하다가 다치기에 나쁘지 않습니다. 집안일을 하다가도 누구나 으레 다칩니다. 아이는 다치면서 어느새 낫고, 앓으면서 조금씩 삶과 몸을 알아가면서 천천히 철들어 어른으로 나아갑니다.

오늘날 숱한 ‘일자리’는 “일하는 자리”가 아니라, “돈을 벌어서 서울에 터를 잡고 버티는 자리”이기 일쑤입니다. “일을 하며 살림을 가꾸고 보금자리를 일구어서 스스로 즐겁고 한집안이 오붓한 길을 바라는 일자리”는 어떤 ‘틀(회사·공장·공무원)’로도 이루지 못 하거나 않습니다. 먼지 하나라도 들어왔다가는 공장 기계가 망가지니, 공장은 그토록 깐깐하고 모질며 차갑습니다. 누구한테나 고르게 맞추려는 틀을 잡으려고 하기에 ‘공직사회’도 똑같이 깐깐하고 모질며 차가울 뿐 아니라, 이러한 틀(회사·공장·공무원)에 스스로 맞추어서 “돈을 버는 자리”를 얻으려고 하니, 아주 마땅히 힘들고 지치게 마련입니다.

서울(도시)에 있는 일자리 가운데, 햇볕을 넉넉히 쬐면서, 풀꽃과 나무를 늘 마주하는 곳에 세운 일터가 있을까요? 아마 한두 군데 있을는지 모르나, 모든 공공건물과 회사건물과 공장에는 나무는커녕 들풀 한 포기조차 자랄 틈이 없고, 멧새나 풀벌레나 개구리는커녕 매미조차 깃들지 못 합니다.

그런데 시골에서조차 농약과 비료와 기계와 비닐로 덮어씌울 뿐 아니라, 이제는 ‘스마트팜’이라는 이름으로 멀쩡한 논밭에 시멘트로 터를 다져서 유리온실을 때려짓고는 와이파이로 다루는 ‘공장식 축산’과 똑같은 ‘공장식 농업’으로 간다면서, 몇 조 원도 아닌, 몇 백 조 원을 들이붓는 나라입니다.

‘일’이란 무엇인지부터 처음으로 돌아가서 들여다볼 적에 비로소 실마리를 푼다고 느낍니다. 왜 “지불되지 않는 사회”일까요? 삶자리·보금자리·살림자리·사랑자리가 아닌, 더구나 일자리조차 아닌 ‘돈벌자리’만 바라보기 때문입니다. 나라에서 사람들을 ‘돈벌자리’로 내모는 탓이 하나에, 나라가 사람들을 ‘돈벌자리’로 내모는 줄 알면서도 그냥그냥 ‘서울에 깃들어서 돈벌자리를 쥐는 우리 스스로’ 모든 수렁을 깊이 판다고 느낍니다.

아픈 이웃에 귀를 기울이려면, 서울부터 떠나면 된다고 느낍니다. 사람한테 시달리고 죽는 뭇소리부터 귀를 기울여야, 드디어 사람이 왜 아프고 죽는지 알아본다고 느낍니다. 가을겨울에 봄이면 우리나라는 모든 곳에서 가지치기를 끔찍하게 일삼는데, 길나무 가지를 마구마구 자를 적에 “내 팔이 잘리는구나” 하고 느끼는 분이 갈수록 줄어듭니다. 서울(도시)을 넓히면서 들숲메를 깎아내는 삽질이 날마다 불거지지만, 살갗으로 하나도 안 아픈 사람도 갈수록 늘어납니다. 나라에서 몇 백 조 원에 이르는 돈을 ‘해상 국립공원’ 바다에 쏟아부어서 태양광과 풍력시설을 박는데, 바다가 앓고 아픈 줄 느끼는 사람도 갈수록 사라집니다. “타인의 아픔에 공감하는 능력”을 키우려면, 먼저 들숲바다가 앓아눕고 죽어가는 소리를 들어야 하지 싶습니다.

얄라알라 2025-01-25 20:49   좋아요 0 | URL
숲노래님, 안녕하세요? 제가 24년에는 알라딘 서재를 자주 못들어 왔지만 간혹 숲노래님의 서재 글 읽고 공감하고 갔습니다. 귀한 말씀 들려주셔서 너무나 감사드립니다.

˝삶자리·보금자리·살림자리·사랑자리˝

˝일˝에 더해진 ˝자리˝의 느낌은 팍팍했는데, 말씀해 주신 ˝삶자리·보금자리·살림자리·사랑자리˝는 다 사람을 살리는 자리였네요. 거기에는 생각이 미치지 못했던 저도 돌아보게 됩니다.

아파트 1층 주민 분들 민원이나 여러 이유로 가로수 마구 가지치기하고 난 길을 걸으면 나무에서 이상한 냄새가 나더라고요. 그게 고통의 냄새였겠군요...숲나무님 덕분에 저도 인간에게만 열린 귀가 아닌 더 큰 귀를 갖도록 키워야겠습니다. 감사드립니다. 새해복 많이 받으세요
 


2020년 3월 마스크 수급이 불안정하던 때, 신분 증빙용으로 여권 들고 약국에 줄 서 있었던 기억을 꺼내니 친구가 "정말? 정말?"을 연발하며 놀라워하는 걸 보면서, 인간이 '망각의 동물'이라는 걸 새삼 확인합니다. 코로나가 확산 일로에 있던 때, 아파트 단지 내 엘리베이터 버튼에는 항균력 99.9% 시트지와 '턱스크 혹은 노마스크 주민은 엘리베이터 이용 마시라'는 경고문도 붙었던 기억이 납니다. 대구를 중심으로 코로나가 확산되던 때는 서울 소재 병원에 입원했다가 경상도 사투리 때문에 거주지역이 탄로(?)났다는 한 모녀가 전국구 뉴스거리가 되었더랬죠. 코로나 확진 사실을 숨기고 과외를 했던 인하대 대학원생은 실형까지 받았고요. QR 코드 확인 없이는 공공장소 출입이 어려워졌기에 홈리스 분들이 (도서관이나 백화점에 비치된) 정수기를 이용 못해 물조차 마시기 어려웠다는 인터뷰도 보았던 기억이 납니다. 코로나 터널을 지나는 와중에 너도나도 '포스트코로나'를 예측했지요. 드디어 그 터널을 지나온 2023년 시점에서는 코로나 팬데믹을 어떻게 이야기하고 있는지 궁금했습니다. 특히 저는 코로나가 개인 및 공동체적 차원에서 정신 건강에 미친 영향을 알고 싶었습니다. 그래서 아래 키워드로 검색해 보았습니다.


#코로나 #포스트코로나 #팬데믹 #마스크


위 키워드로 검색하면 아찔할 정도로 많은 신간이 쏟아집니다. 시류를 파악하는 데 부지런한 저자와 발 빠른 출판사들 덕분이지요. 책이 워낙 많아서, 고르는 데 조금 시간이 걸렸습니다. [팬데믹 브레인]으로 고른 이유는 지은이의 약력 때문이었습니다. 정수근 교수는 연세대, 하버드대, 프린스턴대, 존스홉킨스대학교를 거친 심리학 박사입니다. 네임벨류에 넙죽하는 사대주의적 사고법일지 모르겠지만, 저는 저자의 전문성이 '코로나 시대 정신건강'문제를 다른 차원에서 다뤄줄 것이라고 기대했습니다.



저자는 2020년 가을부터 2021년 봄, 즉 약 6개월 안팎의 기간 동안 [팬데믹 브레인]을 집필했다고 후기에서 밝힙니다. 또한 본인이 코로나바이러스 전문가가 아니므로 바이러스에 관해서는 언급하지 않겠다거나, 최신자료를 활용하다보니 정식으로 학술지로 출간되지 않은 연구들에도 기댔다는 점도 분명히 합니다. 편집을 야박하게 했다면 230쪽을 150쪽으로 충분히 줄일 수 있을 본문은, ""코로나는 우리의 뇌와 일상을 어떻게 변화시켰는가?"라는 부제를 Q&A 형식으로 풀어냅니다.

1, 2, 3부로 구성된 책의 얼개를 가볍게 소개해 보겠습니다.

1부 "코로나는 우리 뇌와 마음을 어떻게 위협하는가?

1부 "코로나는 우리 뇌와 마음을 어떻게 위협하는가?"에서는, 코로나 팬데믹 시기 인류는 '역사상 최대 규모 사회적 고립 실험' 중이라는 전제하에 팬데믹을 겪은 인간의 몸과 마음이 얼마나 피폐해지는지를 서술합니다. 저자는 감염 후유증으로 섬망, 브레인 포그, 그리고 인지저하증을 언급하고, 사회적 고립의 결과로 인지능력이 감소한다는 점을 강조합니다. 심리학자인 만큼 심리학 실험 결과들을 제시합니다. 예를 들어 사회적 관계의 단절이나 축소가 해마(인지능력과 관련)의 축소로 연결된다는 실험, 코로나로 인한 스킨십 부재 혹은 감소가 뇌의 체감각 기회를 감소시켜 인지능력 저하로 이어진다는 무서운 연구결과도 언급합니다. 특히, 소위 "코로나 베이비"의 인지능력 저하에 대한 실험 결과는 충격적이기 까지 합니다. 미국에서 진행된 한 연구에 따르면 2011~2019년 사이 태어난 아기들 IQ 98~107인데 반해서, 코로나 시기였던 2020년 태어난 아기들 IQ 평균은 86, 2021년생 아기들 아이큐 평균은 78.9 였다고 합니다. (뭣이 중한디? 심리학자는 역시 '인지능력'을 중요하게 여기는구나를 느끼게 했던 1부 였습니다)

2부 "전 지구적 방역 현장이 된 우리의 일상"


2부에서는 "전 지구적 방역 현장이 된 우리의 일상"이라는 타이틀로 일반 대중의 호기심을 끌 이야기들을 카드뉴스 수준으로 나열합니다. 예를 들어, 줌 피로(Zoom Fatigue)의 원인이나, "마기꾼"의 비밀(마스크의 인식방해 효과), 마스크와 언어습득 능력의 상관관계 등등 이제는 상식이 되어 버린 익숙한 화두들이 각각 소챕터를 이루는 구성입니다.

저는 2부를 읽다 여러 차례, 책을 덮었는데요. 동의하기 어려운 내용이 종종 등장했기 때문입니다. 예를 들어서, 백신접종 후유증의 개인편차에 대해 저자는 "어떻게 믿고 기대하느냐에 따라 후유증을 심하게 혹은 약하게 겪도록 만들 수 있다"(135)고 주장합니다. 출판사측에서는 친절하게도 저자의 이런 주장에 대해 "우리가 예측하고 기대하는 만큼 아프다"라는 소제목을 달아 주었지만 저는 고개 갸우뚱 했습니다.

또한, 사회적 거리두기에 협조적인 사람일수록 작업기억용량이 크다는 주장도이해하기 어려웠습니다. 해당 주장을 인용해보자면 다음과 같습니다.

심리학 문외한이라 "작업 기억 용량"이 무얼 뜻하는지 모르겠지만 저는, 중장기적 손익 계산을 더 잘하는 사람이 마스크 쓰고 사회적 거리두기에 더 협조적이라는 주장으로 윗 글을 파악했습니다. 하지만 개인 차원의 "작업 기억용량"만으로는 사회적 거리두기의 자발적 협조성을 설명하기는 부족한데요. 반례를 들자면, 외부로부터의 시선, 즉 문화적 압력이 강한 한국과 일본에서 유럽과 미국에 비해 마스크 쓰고 사회적 거리 지키는 데 철저했습니다. 

3부 "펜데믹에도 답을 찾을 것이다. 늘 그랬듯"

3부는 "팬데믹에도 답을 찾을 것이다. 늘 그랬듯이."라는 제목에 담긴 낙관적 뉘앙스 그대로 인간이 팬데믹을 잘 이겨내리라는 데 저자가 한 표를 던집니다. 마찬가지로 심리학자여서 그런지, 흥미롭게도 그 재난 극복의 힘을 "인간 뇌의 가소성"에서 찾습니다. 즉, 심리한 문외한이자 평범한 독자로서 제가 보기에 그 관점은 1부와 2부에서 내내 보이는 전지구적 차원의 재난에 대한 개인화된 해석과 해법을 담고 있는 것 같습니다. 저자 정수근은 팬데믹 이겨내는 해법으로, 종교 활동 등 사회적 교류와 지지 높이기, 감정 조절력 높이기, 공포 영화를 즐겨주지, 꿀잠 자기 등 지극히 개인화된 차원의 해법을 제시합니다. 그 점이 많이 아쉬웠습니다. 앞서 말했던 QR 코드가 없어 공공시설의 정수기 사용을 못했던 홈리스분에게 공포 영화를 즐겨서 회복 탄력을 높이거나 꿀잠 자라는 해법은 큰 도움이 되지 않을 테니까요?


저자 정수근 교수는 코로나 시기와 현재에도 활발하게 학술 활동을 이어가고 있습니다. 충북대학교 심리학과에서 저자의 최근 이력을 살펴보았는데, 아쉽게도 코로나 팬데믹과 관련한 심리 문제를 다룬 글은 없더라고요. 저는 저자가 2024년쯤에 [팬데믹 브레인] 후속판을 전문가의 관점에서 다시 내주시기를 기대해 봅니다. 오직 정수근 교수만 제시할 수 있는 화두와 날카로운 분석이 분명 있으리라 생각합니다. [팬데믹 브레인]이 코로나19의 한가운데서 잠정적인 썰 위주의 이야기를 담고 있다면, 한 걸음 멀어져서 차분하게 분석한 내용도 궁금합니다.

개인적으로 저는 [팬데믹 브레인]을 읽으며, 오늘날의 미디어가 전문가적 지식이라는 것을 얼마나 빠르고 널리 대중화시키는지, 전문가적 지식이 얼마나 평준화되고 있는지 느꼈습니다. [팬데믹 브레인]에서 제시된 많은 이야기들을 이미 SNS인풀루언서가 발행하는 가쉽거리 포스팅이나 뉴스에서 많이 읽어왔거든요. 이 점은 흥미롭기도 하고, 공포스럽기도 합니다....


지난 주, 충청북도의 한 사찰에서 찍어 온 사진입니다. 물이 깨끗하지 않았고, 음용 가능하다는 안내문이 없는데도 기꺼이 바가지를 들어 물을 드시는 분들이 계시더군요. 코로나 시절이었으면 상상도 못했을 광경입니다.


다시 한번, 인간의 놀라운 적응력과 망각의 힘을 생각하게 됩니다! 코로나와 정신건강에 관한 다른 글을 더 찾아봐야겠습니다! 좋은 자료 아시는 분들은 댓글 주시면 매우 감사하겠습니다!



댓글(2) 먼댓글(0) 좋아요(38)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2023-10-11 22:22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23-10-18 09:51   URL
비밀 댓글입니다.
 

카페 냅킨에 메모하며 책 읽는 습관을 후회한다. 분명 한 2~3년 전 [농경의 배신(Against the Grain)]을 냅킨을 알뜰하게 활용해 빼곡하게 요약하였건만 온라인과 오프라인 어디에서도 그 흔적을 찾을 수 없다.  책에 우선 순위를 두는 나로서는 당첨 번호 일치한 복권을 잃어버린 심정으로 아쉽다. 메모를 소홀히 다룬 내 자신에게 화가 난다. 그렇다고 [농경의 배신]을 다시 정리하기에는 꾀가 나는지라 기억에 남는 부분만 기록해놓기로 한다.





 "약자의 무기 Weapons of the Weak"로 널리 알려진 제임스 스캇은 국가와 국가권력을 집중적으로 연구해온 정치인류학자이다. 그는 20년 이상 대학원에서 농경사회, 특히 길들임(domestication)과 초기 국가의 농경구조를 가르쳐 왔다.  2011년, 계기가 생겨서 자신의 강의 노트를 뒤 엎을 수준으로 강의자료를 업데이트를 한다. 제임스 스캇은 세계적 대학자이면서 겸손하게도 고고학, 역학, 인구학, 환경역사학, 생물학 등 여러 분야의 최신논의를 학생의 자세로 공부하여 그 결과를 독자에게 압축해준다. 이를 거칠게 요약하자면 '정착과 농경'에 관한 표준서사를 폐기, 수정할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거의 전 세계 학생들이 학교에서 배워온 바로 서사, 이동하는 수렵채집민에 비해 정착생활을 했던 농경민이 더 진보했으며, 농경이 우월하다는 주장은 신화에 불과하다는 것. 이 주장은 농업혁명이야 말로 인류 역사상 최대의 사기(sham)라고 했던 제러드 다이아몬드를 떠올리게 한다. 



[농경의 배신]을 본격 읽기 전, 예비독자로서 아래 진술 중 어떤 생각에 동의하는지 자가체크해 보아도 재미있겠다 


1-1. 수렵채집, 목축, 화전, 농경 생계양식은 진화적 발달 순서에 따른다. 

1-2. 그렇지 않다. 인간은 중첩된 복수적 생계양식을 구사하는 억척 재주꾼이다. "필요할 경우를 대비해 언제나 활에는 시위를 두 줄 걸어두는 법이다."라는 속담을 떠올려보라! 


2-1. 이동하며(떠돌며) 사는 노마드는 정착하여 발전을 이루는 정주민에 비해 야만적이다. 정주 욕구는 인간의 보편 욕구이다. 

2-2. 뻔한 진보 서사에 동의하지 않는다. 우리 조상들은 어쩔 수 없이 내몰리다 보니, 정주하고 농경을 시작하게 되었다고 볼 수 있다. 


3-1. 만물의 영장, 인간은 농업혁명과 함께 동물과 곡물을 길들였다. 

3-2. 일방향의 표현이라 동의하지 않는다. 보다 정확히 표현하자면 인간은 대상을 길들였고 길들임을 당했다. 또한 단지 동물과 곡물뿐 아니라 사람을 길들였다. 노예, 특히 재생산 능력이 있는 가임기 여성 노예를 생각해보라.


4-1. 인간은 국가체계 안에서 더 안전할 수 있다. 소속을 원한다. 

4-2. 과연 모든 인간이 그럴까? 그래왔을까? 도무스 domus에 묶이는 것을 거부하는 존재들은 항상 있게 마련이다. '국가 없는 사람들'의 실례를 찾아보아라. 

 




댓글(2) 먼댓글(0) 좋아요(34)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초란공 2023-08-04 20:33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얄라님이 이렇게 아날로그 매니아(?)셨는지 몰랐네요! ㅋ 왠지 철저하게 파일작업하고 분류해서 백업도 하실 것 같은데 말이죠!! 저는 예전에 파일 다 날아가고 나서는 한동인 머리뜯다가 어느 순간 차라리 시원하다는 깨달음(?)을 얻었습니다 ㅋㅋ 계속 고민하고 스트레스 받느니 차라리 다시 새롭게 시작하자... 이렇게 되었습니다^^;;

얄라알라 2023-08-04 21:30   좋아요 2 | URL
^^ 네네, 초란공님 ˝아날로그 마니아‘라고 하셔도 어울릴지도 모르겠어요. 예전에 [이퀼리브리엄]이란 영화를 봤는데, 저 같은 사람들이 핍박을 받으면서도 아날로그로 살고 있더라고요 ㅎㅎ

이 책은 너무 재밌고 참신해서 엄청 열심히 메모했는데 속상했어요 ㅎㅎㅎ
초란공님처럼 ‘시원하다는 꺠달음‘에는 아직 도달하지 못했지만, 찾는 건 꺠끗하게 포기했습니다

어딘가 비슷한 류의 책, 고고학이나 고생물학 책에 끼어 있을 것도 같은데 ㅎㅎ

공통점을 느끼니 좋네요 초란공님^^
 

몇 년 만에 다시 읽는 책인데, 마지막 페이지를 덮을 때, '헉!' 반응. 

이번에도 똑 같은 반응을 했던지라, 수 년 전 독서 경험이 생생하게 떠오른다....드라마로 치면, 순항 전개하다가, 막 내리지 않고 캐릭터들 저녁 식사 중 대화나누는 장면으로 작품 끝. 7장 "야만인들의 황금시대" 뒤에 제임스 스캇이 좀 더 정리한 마무리 글을 써줄 거라 생각했는데, 이 태도는 떡을 만들어주었더니 입에 넣어달라는 학생의 태도와 다르지 않기에, 내가 직접 정리하며 복습하기로! 


댓글(0) 먼댓글(0) 좋아요(5)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정보생산자가 돼라‘.
 고등교육 이상의 단계에서는 억지로 하는 공부가 아니라, 배우고 질문하는 학문이 필요하다. 정답이 있는 질문이 아니라 아직 답을 찾지 못한 질문을 만들어 스스로 그 질문에 답을 찾아야 한다는 말이다. 이것이 바로 질문을 추구하는 연구다. - P9


댓글(0) 먼댓글(0) 좋아요(4)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