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구를 위하여 공부하는가 - 새로운 시대를 위한 교육 프로젝트
에르빈 바겐호퍼 외 지음, 유영미 옮김 / 생각의날개 / 2015년 1월
평점 :
절판


누구를 위하여 공부하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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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부가 대학진학을 위해, 자격증을 위해, 취업을 위해 울며 겨자 먹기로 "해야만 하는"것, 혹은 생존력을 높여줄 무기로 전락해 가는 현실. 공부와 참교육의 의미를 고민하는 이들에게 이런 제목이라면 그냥 지나치지 못할 것이다. 
<누구를 위하여 공부하는가?>, 다큐멘터리 감독 에드빈 바겐 호퍼와, 다큐멘터리 영화 <알파벳>의 자비네 크리하바움, "학습 생태 운동"을 이끌고 있는 안드레 슈테른이 함께 쓴 책이다. 왠지 제목만 봐서는 이 책을 다 읽고 나면, "공부 잘 해야지!"하는 의기가 불끈 올라올 것 같은가? 공부하기 싫어서 책상 앞에서 몸 배배 꼬는 아이에게 이 책 선물하면, 아이가 우등생으로 변모할 결심을 할까? 이 책의 변방을 돌아본 독자로서 섵부른 대답일지 모르지만, 나의 대답은 NO! 독자의 기대를 배반하며 이 책은 오히려 제도권 교육의 부조리함을 조용히 비판하고 있다. 즉, "나 공부잘해서 1등할래!"의 마음이 들게 하는 책이 아니라, 우리가 흔히 쓰는 '공부,'나 '교육'의 의미 그 자체를 뒤집어보는 시도를 하고 있다. 그 비판의 방식도 전투적이기보다는 에둘러 말하는 방식이다. 공저자 3인에 더하여, 이 책에는 저자 안드레 슈테른의 아내가 쓴 육아 일기에 그 아기의 이야기까지 다양한 목소리가 등장하는데, 이 책의 주장을 가장 부드럽게 그러나 강렬하게 독자에게 각인시켜주는 목소리는 바로 슈테른 부부의 아기 안토닌의 성장기가 아닌가 싶다.

 안토닌의 할아버지는 개인의 꿈과 재능을 살리는 것이 중요하다는 신념으로 안토닌의 아빠인 안드레 슈테른에게 정규교육을 시키지 않았다. 대신 소위 홈스쿨링으로 아들을 키웠는데, 아들 안드레 슈테른은 직업의 정의를 비웃기라도 하듯, 음악가, 작곡가, 기타 제작자, 저널리스트, 작가이자 사회운동가로서 종횡무진 활동하고 있다. 그는 자신의 부모님이 자신을 길러주었던 바로 그 방식으로 안토닌을 키우고 있는데, 그의 아내 역시 만만치 않은 자유인이다. 명문대에서 경제학을 전공했지만, 내면의 목소리를 따라 과감히 연극을 평생의 동반자로 선택했고 현재는 연극배우로 활발하게 활동하고 있으니 말이다.


부부는 아기 안토닌을 정형화된 틀에 가두어 놓지도, 소위 연령별 '정상 발달'과정을 강요하지도 기대하지도 않는다.  한국의 많은 부모들이 하듯 연령별 권장도서 필독서 리스트를 꿰찬 것도 아니고, 연령별 권장 만화를 보여주지도 장난감을 사주지도 않는다. 대신 조용히 기다려주고 아이의 마음을 읽어준다. 아가가 무엇에 관심이 있는지 어떤 것을 하고 싶어하는지. 그리고 천천히 아이와 함께 그 활동을 할 환경에 들어간다. 안토닌은 자신의 할아버지가 자신의 아빠에게 사주었던 아가 옷을 입고 크고, 할아버지가 아빠에게 사준 장난감을 가지고 놀고 엄마가 기타 연주하는 것을 구경한다. 자신만의 작은 기타를 선물받는다. 한국의 많은 꼬마들이 커다란 인형옷을 뒤집어 쓴 뽀로로들이 어색한 몸짓으로 무대에서 뒤뚱거리는 것을 구경할 때, 안토닌은 "마술피리"를 감상하고, 뮤지컬과 오페라를 구경하러 다닌다. 한국의 꼬마들이 한글 방문학습을 받고 소위 '모짜르트 이펙트'를 기대하며 머리 좋아진다는 클래식 CD에 사육당할 때, 안토닌은 자연스레 일상의 자동차 번호판으로 철자와 숫자를 배운다.

자유롭게 키운다고 해서 규율이 없거나 일상의 최소한의 질서를 무시한다는 의미가 아니다. 안토닌의 부모는 매일 일정한 시간에 아이에게 드보르작 교향곡을 들려준다. 안토닌은 내면이 이끄는 대로 호기심을 마음껏 풀어내고, 춤도 추고 움직이고 놀면서 내면의 리듬에 따라 성장하게 된다. 마치 봄여름가을겨울의 계절 변화가 자연스레 이뤄지듯이 안토닌의 성장도 물 흐르듯 자연스레 이뤄진다. 이것이 어쩌면 슈테른 부부가 주도하는 '학습 생태' 운동의 본질이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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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슈테른 부부는 지면을 통해서만 느껴기기에도 무척 차분하고 인내심이 강하고 내면의 힘이 강한 부모들이다. 삶에 쪼들리고 경쟁에의 압력을 받는 여느 부모들이 보이기 어려운 태도 - 인내심, 부드러움, 상호대등한 관계로서 아이를 존중하기 - 를 보이고 있어, <누구를 위하여 공부하는가?>를 읽는 많은 대한민국 부모들을 기죽게 한다. 슈테른 부부는 프랑스에서도 평범하지 않은 케이스일진데, 프랑스와 교육환경 사회문화적 풍토가 다른 한국에서는 어떠하겠는가? 슈테른 부부의 홈스쿨링 방식을 다 따라할 수도, 모방할 수도 없기는 하다. 하지만, 적어도 A-Z 계단식으로 진급해가는 정규교육시스템 밖에서 오히려 아이의 잠재력이 크게 발현될 수 있다는 케이스를 확보하였고, 변화해보고픈 동기를 얻었다.

한국 사회에서 대안교육을 꿈꾸는 이들, 혹은 현재 하고 있는 부모들에게 <누구를 위하여 공부하는가?>는 든든한 아군 노릇을 해 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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