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숙주인간 - 우리의 생각을 조종하는 내 몸속 작은 생명체 이야기
캐슬린 매콜리프 지음, 김성훈 옮김 / 이와우 / 2017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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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군가에게 조종을 당해서 무언가를 했다는 것을 깨닫거나 내 의지와 상관없이 누군가의 뜻대로 어떤 것을 해야만 할 때 정말 불쾌하고 부당하다는 느낌을 갖게 된다. 어릴 때부터 비교적 독립심이 강한 나는 이런 상황을 매우 싫어하고, 어떤 상황에 있어 스스로 숙고하고 판단하여 선택하는 시간을 가지는 편을 선호한다. 예상한 대로 일이 흘러가지 않을 수 있다는 것과 나에게 한계가 있을 수 밖에 없다는 사실을 받아들이는데 상당히 오랜 나이의 소모가 필요했고, 그런 상황에 있어 예전보다 다소 유연해졌으나 아직도 뒤 끝에는 심란함과 불안이 남아있는 것도 사실이다. 그런데 

 

이 책은 내 몸 안과 밖에 살고 있는 기생생물까지도 나의 '자유의지'를 조종할 가능성이 있다고 제기한다.

 

기생생물로 산다는 것은 만만한 일이 아니다. 물론 밥은 거저먹는다. 하지만 기생생물은 하나나 둘, 흡충류의 경우라면 세 종류의 숙주 안에 들어가 각각의 환경에 적응할 수 있어야 한다. 서로 다른 서식처들은 지구와 달만큼 환경에 엄청난 차이가 있을 수 있다. 그뿐인가. 한 숙주에서 다음 숙주로 어떻게 이동할 것인가 하는 문제는 생각만 해도 악몽이다. (..) 이 개미는 순진한 양이 제 발로 찾아와 자신이 매달린 풀잎을 뜯어먹어 마침내 기생충이 양의 뱃속에 들어가게 되는 날까지, 밤마다 풀잎에 오르내리기를 반복하게 된다. - 21~23p

 

기침은 우리의 몸이 병원체를 몸 밖으로 몰아내려는 행동이면서 동시에 기생생물이 자신을 더 멀리 전파하기 위해 유도하는 행동일 수 있다. 적 사이에서도 서로의 목적이 맞아떨어질 수 있는 것이다. - 29p

 

생물학자 로버트 폴린은 많은 조작자들이 어쩌면 숙주의 정상적인 행동에 아주 미약한 변화만을 야기할지도 모른다고 지적했다. (..) 이를태면 기생생물은 숙주가 어떤 장소를 찾아가는 빈도에 살짝 변화를 주거나, 숙주가 가장 왕성하게 활동하는 시간대에 변화를 주거나, 정상적인 행동이지만 엉뚱한 상황에서 어떤 행동을 하게 만들 수 있을 것이다. 예를 들면 기생생물에 감염된 새는 동료들이 모두 날개를 펴고 날아갈 때 혼자만 땅바닥을 쪼는 행동을 보일 수 있다. 포식자들은 먹잇감이 조금이라도 두드러지는 행동을 보이면 거기에 예민하게 반응하도록 적응돼 있습니다. - 42p

 

이즈음 되니 책을 읽고 있던 손바닥과 발바닥이 슬슬 근질거리면서 내가 이제까지 인지하지 못하던 미생물이나 균류의 존재감이 생생하게 느껴지는 듯한 환촉이 시작된다. 우리가 이성적으로 설명하지 못하는 본능적인 공포 반응들, 즉 동그랗게 연결된 것들을 볼 때의 등허리에 느껴지는 섬뜩함이나 위에서 내려다보는 층계 세모꼴을 보면서 혀끝이 근질거리는 느낌들과 마찬가지로 진화하는 동안 인간은 본능적으로 곤충이나 미생물 류에 대한 경계심이 뇌 안쪽 어딘가 도사리고 있는 것을 재확인하는 마음이다.

 

제기랄,   

그러니까 안 그래도 나의 심리는 온갖 것(선택권이 전혀 없는 유전자, 기질, 병, 사고, 나이 듦, 허리 아포!, 사고 체계, 감정 체계, 대처 패턴, 부모, 배우자, 자식, 친구, 지랄맞거나 친근한 동료, 내 마음대로 통제되지 않는 사회적 환경, 늘 부족한 경제적 영향, 널뛰는 국제 정세 등등)에 영향을 받아서 형성되고 있어서 의지대로 통제되지 않을 때가 상당히 많은데, 거기에 기생생물까지 추가해야 한다는 사실이, 더우기 진화심리학적인 입장에서 기생생물이 다른 것들보다 더 큰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이론을 수용하기가 별로 편안하지 않다. 하지만

 

책 자체는 매우 흥미롭다. 미생물들의 숙주 행동 조작질이라는 신기하고 위험한 소재는 그 이론에 대한 찬성 여부를 떠나서 나의 뇌세포를 자극하고 정보를 취득하고자 하는 동기를 부여한다. (어찌 생각하면 이러한 태도 역시 위험에 대비하고자 하는 인간의 생존 전략일지도 모르겠다.) 기생생물이 숙주가 되는 동물들을 어떻게 조종하는지에 대한 최근의 증빙을 소개하던 책은 드디어 쳅터 4장이 되면 그 놈들이 인간을 어떻게 조종하고 있는지에 대한 최근 연구(가설, 실험 중인)들을 소개하기 시작한다.

 

기생충과 관련해서 자살과 조현병이 증가한다는 이 보고서들을 저는 진지하게 받아들이고 있습니다. 이 기생충은 밑바닥에 잠재돼 있던 정신질환을 악화시킵니다. 예를 들어, 우리는 모두 조현병의 스펙트럼 위에 존재하고 있는지도 몰라요. 기생충 비감염자가 이미 조현병의 미약한 증상들을 나타내고 있는 경우, 기생충에 감영되면 증상이 악화될 수 있죠. 감염된 사람들은 성격 변화를 경험하고, 충동적인 행동을 많이 하게 되고, 두려움은 줄어들고, 잠재적으로 위험한 상황에서도 판단력이 저하된다는 등등의 보고가 있는데, 이것 역시 사람마다 톡소플라스마 낭종의 분포가 모두 다르다는 것으로 설명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 - 119p

 

만일 이런 실험 연구가 진실로 밝혀진다면 우리는 우리 행동의 '책임'이라는 범위를 어디까지 짊어져야 할까?

책에서도 똑같은 질문을 던진다.

 

"대부분의 사람은 진통제나 마약이 우리의 행동에 변화를 일으킨다는 생각에는 별 거부감이 없습니다. 하지만 그것이 평생 자기 뇌에 들어와 있을 수백, 수천 마리의 작은 단세포 기생충이라면 이야기가 달라지죠. 이 기생충들은 없앨 수 없을뿐더러 그것이 거기에 존재한다는 사실조차 모른다면, 이 기생충이 미치는 영향력은 어디서부터 나의 본질로 자리 잡는 걸까요?" "당신은 우리가 자신의 행동에 대해 법척으로 책임이 있다고 생각하나요?" - 121p

 

실은 사회적으로 떠들썩한 범죄를 볼 때마다 이 문제를 고민하게 된다. 이미 사회적으로 함께 책임져야 할 부분도 지나치게 개인의 잘못과 통제의 문제로 책임을 떠넘기는 것이 아닌가 싶지만, 그렇다고 모든 잘못된 행동을 외부 탓으로 돌리는 것 역시 사회의 안전을 침해할 수 있다. 그런데 인간의 행동을 다른 누군가가 조종한다는 개념이 책의 말미에서 든 예처럼 "재판관님, 강간도 다 제 유전자가 시켜서 한 일이라고요! (322p)" 라는 변명거리를 제공할지 모른다는 사회 구성원들의 염려는 일리가 있기도 하고, 그렇다고 이런 사실을 점점 증명되고 있는 시점에서 완전히 무시하기도 어렵다는 심리적인 혼란이 든다.

 

책은 7장까지 숙주를 조종하는 기생생물에 대해 주로 다루지만, 이후 8장부터 11장까지는 '기생생물 스트레스'로 인해 인간이 어떤 방어 체계를 갖추고 사회에 적용하는지를 주로 다룬다. 이 역시 충분히 흥미롭고 읽어볼만 하지만, 서문에서 인간을 조종하는 기생생물를 주제로 저작했다는 저자의 말과 맥락이 다소 다르게 흐르면서 용두사미라는 기분을 지울 수 없게 한다. 아마 현재까지 진행된 기생생물과 관련된 실험이 미미한 수준이라서 그럴 수 있겠다. 책의 뒷부분을 읽을 때 다소 흥이 빠진 나는 기생생물이 인간 사회 흐름에 미친 영향을 좀 더 체계적으로 이해하기 위하여 차라리 제레미 다이아몬드의 저서 '총, 균, 쇠'를 읽어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책의 중반부까지 읽을 때 흥미 진진함으로 100자 평에는 별 다섯개를 주었으나, 끝까지 다 읽은 지금은 일관성이 부족하다는 느낌으로 별 하나를 뺀다.

 

무엇이 나를 움직이는가, 자유의지란 무엇일까, 인간의 영혼은 어떤 개념일까.

불가지론자(不可知論, agnosticism)인 나는 여전히 노력 중이다, 많은 이들이 그렇겠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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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로 2018-02-07 17:45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바이러스는 생물이 아니지만 우리에게 기생하니까 기생 생물에 저자가 바이러스를 포함했는지 궁금하네요. 암튼 저도 미생물 수업을 듣고 많은 생각을 했답니다. 여러가지 기사를 찾아보기도 하고. 혹 아직 읽지 않으셨다면 에드 용의 <내 안에 미생물이 너무도 많아>인가? 한글 제목이 정확히 기억나지 않지만 그 책을 추천해요. 함 읽어보세요. 이 책을 읽으셨으니 그 책은 훨씬 수월하실 거에요. 그리고 무지 재밌어요. ㅎㅎㅎㅎ

마녀고양이 2018-02-07 18:16   좋아요 0 | URL
네네, 언니, 지금 그 책을 찾아보러 갑니다.
미생물 수업을 들으시는군요? 진짜 생각 많으시겠다. 저는 문외한이다가 정말 생각이 많아졌어요. 바이러스를 크게 다루지는 않았지만, 포함되는 것으로 여겨져요. 참으로 배워야할 지식이 많네요. 그래서 세상이 흥미진진해요. 아하하.

언니가 말씀하신 그 제목으로 우리나라에 출간되었네요~

cyrus 2018-02-08 14:1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내 몸 속의 미생물이 제대로 움직이지 않으면 배탈나기 쉬워요. 이틀 전에 음식을 잘못 먹어서 그런지 뱃속 상태가 좋지 않았어요. 지금은 좀 나아졌는데 처음에는 식중독에 걸렸을까 봐 조마조마했습니다. ^^;;

마녀고양이 2018-02-21 12:40   좋아요 0 | URL
저는 실제로 작년에 한 번 식중독도 걸렸는데, 제 몸이 제 몸 안에서 나쁜 음식을 빼내기 위해 무지하게 애쓰는 과정을 목격했습니다. 구토, 설사. 면역기제가 참으로 놀랍다는 생각을 아픈 와중에 했어요. ㅋㅋ

프레이야freyja-고마워영화 2018-02-08 14:2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하루에도 여러 잔 마셔대는 커피는 내가 마시는 게 아니군요. 리뷰 좋아요 백 개 누르고 싶어요. 추운데 감기 조심하고요~^^

마녀고양이 2018-02-21 12:41   좋아요 0 | URL
언니, 제 답글이 너무 늦었네요.
설 잘 지내셨을까요? 리뷰 칭찬 감사드려요.
이제 봄이 올까 기대 중이예요, 올해 경기도는 너무 추웠어요.

프레이야freyja-고마워영화 2018-02-08 14:28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이 책 장바구니 직행이에요. 감사~
 
내 안에서 나를 만드는 것들 - 지금 가까워질 수 있다면 인생을 얻을 수 있다
러셀 로버츠 지음, 이현주 옮김, 애덤 스미스 원작 / 세계사 / 2015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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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적인 상황에서 사적인 마음을 기대하네."

 

라는 말을 들었을 때 부정하기 어려웠다. 나는 완벽하게 "공과 사"를 구분하기 힘들다. 공적인 업무에 사적인 마음이 끼어들어서 정과 배려를 주고 받고 싶어하고, 사적인 일에 공적인 마음이 끼어들어서 책임과 의무를 주고 받고 싶어한다. 탁 끊어치는 관계도 어렵고, 너무 다가오는 관계도 어렵다.

 

"내 안에서 나를 만드는 것들"은 저자 러셀 로버츠가 "애덤 스미스"의 "도덕감정론" 명문장을 발췌하고, 자신의 경험을 첨가하여 강의하듯이 펴낸 책이다. 전문화와 교환을 중심으로 정치경제학을 논의한 국부론과 달리 도덕감정론에서 애덤 스미스는 가까운 사람들과의 관계에서 우리가 가져야 할 도덕심과 감정적인 대응을 논의한다. 두 책은 삶에서 아주 다른 범위를 다루기 때문에, 나타나는 인간의 행동 방식도 아주 다르다고 러셀 로버츠는 책의 말미에 소개한다. 애덤 스미스는 공적인 마음과 사적인 마음을 철저하게 분리시키고 관찰하고 적절하게 대응할 수 있는 사람이었나 보다.

 

나는 이 책이 다소 힘들었는데,

아마도 애덤 스미스라는 대가가 전개한 정치경제학과 인간 관계의 원칙 사이에 존재하는 심연으로 인한 것이기도 했다. 군중과 개인, 공적 영역과 사적 영역, 그 불일치가 늘 쉽지 않다.

 

지난 번의 페이퍼에서도 인용했지만

 

우리가 신성한 미덕을 실행하는 것은 이웃과 인류를 사랑해서가 아니다. 이웃에 대한 사랑이나 인류애보다 더 큰 사랑, 더 강력한 애정 때문이다. 그것은 명예롭고 고상한 것에 대한 사랑, 존엄과 위엄에 대한 사랑, 그리고 탁월한 자신의 인격에 대한 사랑이다. - 47p

 

인간은 선천적으로 사랑받기를 원할 뿐 아니라 사랑스러운 사람이 되기를 원한다. - 66p

 

라는 문장은 도덕감정론의 핵심이라고 할 수 있다. 스미스는 사람들이 다른 사람들에게 사랑받는 사람이 되기를 원할 뿐 아니라, 자기 스스로도 다른 사람에게 사랑받을 가치가 있는 사람이라는 확신을 갖기를 원한다는 뜻으로 위의 표현들을 썼다고 나는 이해한다. 또 그는

 

내가 사랑받고 있고, 또한 사랑받을 자격이 있다는 사실을 알면 얼마나 행복할까? 반대로 내가 미움받고, 미움받아 마땅하다는 사실을 알면 얼마나 불행할까? - 68p

 

라고 언급한다. 그러게,

우리는 자신이 사랑받을 자격이 있다는 사실을 증명하기 위해, 미움받아 마땅하다는 사실을 확인하지 않기 위해 엄청난 노력을 하는 것 같다. 그리고 이런 마음으로 인해 바로 곁에 있는 행복을 무시하면서 무엇인가(부, 명예, 권력, 외모, 능력 등)를  더 갖추면 행복해질 거라고 생각하며, 초조해하고 끊임없이 발버둥 친다.

 

인간의 삶이 비참하고 혼란스러운 가장 큰 이유는 소유물이 곧 나 자신이라 착각하기 때문이다. - 140p

 

세인의 관심으로 행동에 제약을 받고 자유를 상실하는 일이 뒤따르더라도, 사람들은 관심을 받고 싶어 한다. 이를 통해 선망의 대상이 되는 과정에서 겪었던 고생과 근심, 굴욕을 충분히 보상 받는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아주 중요한 사실은, 이런 관심을 얻는 순간 모든 자유와 편안함, 근심 걱정 없는 안전함은 영원히 잃게 된다는 것이다. - 149p

 

아무런 준비나 재능없이 아이돌이 되고 싶어하는, 그것이 간절한 염원이라고 믿는 청소년 친구들을 자주 만난다. 일 중독 상태에서 무엇인가 더 해내야만 한다고 자신을 몰아치는 직장인들도 자주 만나게 된다. 자녀가 우수한 성적을 얻고 좋은 대학을 가야만 자신의 역할을 제대로 했다고 믿는 어머니도 자주 만난다. 그 끝에 파랑새가 있다고 믿는다.

 

시스템에 갇힌 몽상가에 대해서도 언급한다. 아마도 그런 사람들은 자신의 신념이 절대선이라고 믿으면서, 사회 전체를 자신의 소유물로 착각하기도 한다. 사회 전체가 자신의 기대대로 잘 흘러갈 때 자신의 가치를 확신할 수 있다고 생각하고, 그렇지 않을 때 사회와 자신에게 분노한다. 그러나,

 

시스템에 갇힌 사람은 이 거대한 사회의 구성원들을 자기 멋대로 쉽게 움직일 수 있다고 생각한다. 마치 체스판의 말들을 손으로 배열하는 것처럼 말이다. 체스판의 말들은 오직 사람의 손에 의해서만 움직인다. 그러나 인간 사회라는 거대한 체스판에서는 모든 말 하나하나가 자율성을 갖고 있다. 즉 입법 기관이라는 외부적 힘에 의해 움직이지 않는다는 뜻이다. 자율성과 외부적 힘, 그 두 가지가 서로 일치하고 같은 방향으로 작용한다면, 인간 사회라는 게임은 편안하고 조화롭게 진행될 것이다. 게임의 결과 또한 행복하고 성공적일 것이다. 그러나 만약 그 두 가지가 서로 반대되거나 다르다면, 인간 사회라는 게임은 순조롭지 않을 것이다. 그렇게 되면 인간 사회는 최악의 무질서 상태에 처할 것이다. - 266p

 

스미스는 사랑받기 원하는 우리 인간들이 서로의 행동에 동의하거나 반대하는 의견을 기초로 이 사회가 만들어진다고 생각했고, 사람들의 동의와 반대는 선한 행동을 자극하고 나쁜 행동을 저지하는 피드백 고리를 만들어서 끊임없이 세상에 영향을 미친다고 보았다. 물론 세상이 워낙 복잡하기 때문에, 눈에 보이는 긍정적인 효과를 볼 수 없으므로 도덕감정론을 통해 착한 행동을 장려하고 싶었던 것 같다.

 

솔직히,

250년 전에 지어진 저서의 선한 행동이 무엇인지에 대해 명확하게 다가오지 않지만

사람들의 사랑(인정, 관심)받고 싶은 욕구로 인해 많은 것들이 형성된다는 점을 동의한다. 또한

신중하고 정의롭고 선한 마음이 따뜻하고 공정한 사회를 만들거라는 점도 동의한다. 그러나

 

청교도처럼 너무나 원칙적이고 절제되며 이상적이어서 도리어 혼란스럽고 거리감이 느껴지는 책이었다. 또는 (현재 내 마음을 곰곰히 되집어 볼 때) 책에서 강조하는 미덕인 고상, 고결, 신중, 정의, 친절 등의 단어들이 가장 위선적이고 교활한 위정자들의 입에서 남발되기 때문에 느끼는 피로감일 수도 있겠다. 그렇다면 세상의 겉면과 속내가 다소 일치되는 시절에, 나는 이 책을 다시 읽어봐야 할지도 모르겠다.

 

※ 아니면 도덕감정론 원본이 아닌, 누군가의 해석서라는 한계 때문일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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헤르메스 2016-03-13 23:3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애덤 스미스의 정말 뛰어난 점은 국부론이 아니라 도덕감정론에 있다고 평가하는 학자들이 많더군요. 특히 `투게더`를 쓴 리처드 세넷이 그러한데 애덤 스미스는 같은 책에서 동병 상련과 상호 공감의 미덕을 중시했는데 그건 정말 시대를 앞서간 혜안이었다고 말이죠. 정말 도덕감정론을 읽어보면 국부론의 애덤 스미스와 같은 사람인지 의심이 갈 정도로 국부론에서의 자기 주장이 가진 문제점을 정확히 논파하고 있더군요. 특히 단순 분업이 노동자에게 가져올 보수화와 우매화의 우려는 지금에서도 새겨들을만하죠. 애덤 스미스는 인간성은 파국이나 위기에서 형성된다고 믿었어요. 진정한 인간성을 개발하고 싶다면 현재의 일상을 뛰쳐나가서야만 가능하다고 말이죠. 이런 면에서 애덤 스미스는 인간의 자발성을 굉장히 중시한 사상가였고 그 자율적 의지를 키울 수 있도록 하는데 애썼죠. 그런 면이 젊은 칼 마르크스의 마음을 울렸고 마르크스는 아주 열심히 도덕감정론을 애독했다고 합니다. 이렇게 도덕감정론은 중요한 책이니 직접 읽어보는 것도 좋을 듯 합니다. 저는 강추할게요^^

마녀고양이 2016-03-14 21:06   좋아요 0 | URL
그렇네요,
지금은 너무나 당연한 말들이지만, 그 시대에는 정말 앞선 이야기네요.
프로이트가 겨우 1890 ~ 1900 년대에 무의식을 얘기하고,
이후에야 공감 공감 하는 거니까요. 헤르메스님은 국부론과 도덕감정론 모두 읽으셨나봐요..... 저도 제대로 읽어보는 편이 좋겠군요. 언제가 될지 모르나... ㅠㅠ

넵, 강추 접수합니다.

cyrus 2016-03-14 09:1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는 이 책이 지적인 자기계발서 같은 느낌이 들었어요. 그런데 너무 뻔한 얘기들이 많고, 《도덕감정론》를 저자 관점대로 해석한 것 같아서 좋은 책으로 보기 어려웠어요.

마녀고양이 2016-03-14 21:08   좋아요 0 | URL
250년 전의 글이 지금 뻔하다면
그 세월을 살아남을만큼 훌륭한 이야기였다는 사실이 아닌가 하는 생각을 헤르메스님의 댓글을 읽으면서 했네요. 저자 관점대로 해석했는지 여부를 <도덕감정론>을 읽으면서 판단해보려구요. 당장 급한 것들 먼저 읽고, 언젠가는 읽어야 할텐데 ^^
 

 

오늘 글은 전부터 쓰고 싶은 주제이지만 막상 쓰려고 하니 상당히 망설여진다. 자신이 몸 담고 있는 분야를 까는 것은, 그다지 현명하지 않다. 하지만 자신이 처한 상황의 부조리를 인식하지 못하면서 타인의 심리적 불편감을 완화시키고 변화를 위해서 함께 노력하는 과정인 상담에 몸 담는 것은 분명히 어불성설이다. 오랜 기간 대기업 금융 시스템을 구축하는 분야에 종사하면서 말도 안 되는 억지 현실에 지긋지긋해하며 뒤늦게나마 인간다움을 찾아 상담을 배우기 시작했고, 현장에 뛰어들었다. 상담이라는 학문이나 타인을 돕고 함께 변화하는 과정은 나에게 큰 자긍심을 주고 있지만, 상담 업계라는 시스템은 뭐랄까, 우리 나라의 교육 현실과 같은 졸속 행정과 부조리의 연속이다.

 

 

1. 십 만원 상당의 금액을 지불하면서 일주일에 한 번씩 몇 개월 이상 상담받을 수 있는

금전적인 능력이 되는 사람은 우리 사회의 상위 몇 %나 될까?

 

마음의 상처를 돌보기 위한 상담은 보험이 적용되지 않는다. 그리고 회당 50분 정도로 이루어지는 상담은 보통 상담심리 석사 전공에 자격증을 지닌 한 사람의 전문가가 일대일로 꼬박 한 시간을 할애하여 상담하고, 시간을 별도로 할애하여 방향을 고민하면서 개념화를 하는 과정이 필요하다. 거기다 일회의 상담료에는 센터 유지비, 즉 건물 임대료, 각종 유지비, 시설비, 도구 비용이 추가로 포함된다. 이러니 상담 비용은 대략 회당 8~15만원 수준의 고가가 될 수 밖에 없다. 이러한 비용을 매주 지불하면서, 10회 이상, 정신분석 기반의 센터라면 최소 30회 이상을 받을 수 있는 사람은 상당한 금전적 능력이 있는 사람일 수 밖에 없다. 현재 상담 센터가 서울 강남 지역이나 목동 등의 부촌에 밀집되어 있는 이유도 동일한 맥락이다.

 

물론 부유한 사람들도 마음의 상처가 크고 스트레스가 심하다. 그러나 아무래도 심리적 취약성은 부모의 역할이 제대로 형성되지 않은 사회적 약자, 빈곤층에서 더 심할 수 밖에 없다. 나의 경험으로 봐서도, 아 어쩌지 하는 말이 절로 나올만한 사람들은 의식주를 위한 사회 복지가 우선일 수 밖에 없는 상황인데, 무모하리만큼 공격적이거나 분노 폭발하거나 현실적인 판단을 하지 못하거나 우울하고 무기력하거나 될대로 되라는 심정으로 일탈 행위를 하는 경우가 상당수 있다. 특히 이렇게 처한 환경 자체가 태어날 때부터 열악한 경우에는 근본적으로 지닐 수 있는 내적인 힘, 자긍심이나 자존심, 자존감 자체가 너무나 약해서 변화를 위해서 오랜 시간이 소요될 수 밖에 없다.

 

 

2. 물론 사회적 기관은 있다, 문제는...

 

그나마 반가운 것은, 청소년 상담복지 센터나 가정 지원센터와 같은 정부 기관이 전국적으로 활발한 활동을 하고 있다는 점이다. 지역마다 다르지만, 이런 센터에서는 대략 무료에서 만원 사이의 비용을 지불하면서 상담을 받을 수 있지만 대기 시간이 한 달 이상 소요되고, 10 ~ 15회 정도의 단기 상담만 가능하다. 그리고 무료이다보니, 대단히 열악한 환경에 처한 내담자가 많이 의뢰되는 것에 비해서 일류 전문가는 부족하다는 문제점과 상담보다는 사회 복지 전공의 기관장이 많다는 문제점을 지닌다. 그래서 전문적인 상담을 위한 끊임없는 훈련과 심리적 변화는 한 번에 이루어지지 않는다는 한계를 무시하는 센터가 많고, 센터마다 기관장의 마인드에 따라 운영 방식이 들쭉날쭉하다. 

 

하지만 현 상황에서 일류 전문가는 돈을 쫒아서 좋은 환경으로 가는구나 하고 비난만 할 수 없는 것이, 보통 상담을 하는 사람은 최소한 상담 심리 관련 대학원의 3학기 이상 재학 중인 고학력자이고, 전문 자격증을 따기 위해서는 수백만원을 소요하는 별도의 수련 과정이 필요하다. 또한 자기 자신을 우선적으로 분석하기 위한 오랜 기간의 상담(교육 분석)이 필수인데, 이를 위한 비용도 만만치 않다. 1급 자격증을 따기 위한 과정은 더욱 험난하다. 도제 형식으로 계속 배워야 하고, 수련 비용이 몇 년간 지속적으로 투입되어야 하며, 박사 과정도 많이 한다. 상담가들은 상담이라는 학문과 분야 자체에 애정이 강해서 이렇게 열정을 지니고 버티는 거라고 하소연 비슷한 푸념을 하곤 한다.

 

그런데 기관에서 상담가에게 주는 비용은

대략 시간당 만오천원에서 이만오천원 정도이고, 대부분 계약직이다. 자원 봉사를 찾는 기관도 상당히 많고, 초기 경험을 쌓아야 하는 신참자들은 자원 봉사를 할 수 밖에 없는 구조이기도 하다. 기관도 예산이 워낙 빠듯하여 어쩔 수 없는 상황이다. 이런 구조에서

 

당연히 상담가들은 경력과 전문성이 쌓이면 돈을 조금이라도 더 주면서 덜 고된 환경으로 이직할 수 밖에 없다. 나만 해도, 어찌해주기도 어려운 열악한 환경에 있는 청소년의 울음어린 호소를 들은 날은 마음이 아득하다. 이런 상태로 일 년을 버티기도 어려운데, 어찌 평생을 할까 싶어진다. 솔직하게 몇 번 만나고 도움을 주면 변화가 보이는 사람들을 만나고 싶은 마음이 들게 된다. 그런데 생활하기도 어려운 월급을 받으면서 이러한 기관에서 계속 있는다는게 쉬운 일은 아니다. 그러다보니 기관의 상담가는 이직이 많고, 다들 그러려니 하고 받아들이게 된다.

 

 

3. 최근 들어...

 

대기업에서는 EAP(직장인 지원 프로그램)이라는 복지의 일환으로 일 년에 상담 5~8회 정도를 회사 지원으로 받을 수 있게 하는 제도가 확산되고 있다. 기업 자체에 상담가를 고용하는 형태도 있지만, 일정 수준 이상의 상담 업체에 연계하여 직원 본인과 가족들의 상담을 의뢰한다.

 

아직은 주로 대기업에서만 시행하다보니, 사회에서 중산층 이상의 사람들만 혜택을 보는 상태이지만 그래도 예전보다 상담을 부담없이 혜택으로 받아들이는 사람들이 늘고 있다.

 

그런데 이 시스템의 문제도 들여다보면 웃지 못할 문제점이 있다. 대기업이 개인 상담 센터를 지역 별로 찾아서 일대일 협약을 맺는다는 것은 어려운 일이다 보니, 중간에 대행해주는 업체가 있고, 그 업체가 개인 상담 센터를 발굴하고 협약을 맺고 신청자를 보내준다. 그런데 중간 업체의 마진이 무려 상담비의 50% 수준이다. 그러면 상담 센터 입장에서는 원 상담비의 50%만을 챙기게 되기 때문에, 양질의 서비스를 제공하려면 힘이 든다. 그리고 이익도 나지 않는다. 그런데도 현재 하나의 업체가 거의 독과점으로 하고 있는지라, 울며 겨자먹기로 계약을 체결할 수 밖에 없다. 마치 농민들이 일 년 동안 피땀 흘려서 지은 농산물의 마진을 중간 유통 업체가 홀랑 먹는 것과 별로 다를게 없다.

 

 

4. 거기다 아쉬운 점은...

 

정신과 의사 집단은 상담가 집단을 파트너가 아닌 경쟁자로 보는 경향이 있다. 올해 통과된 정신건강증진법의 정신건강증진요원에 정신과의사, 간호사, 임상심리사, 사회복지사만 포함되고 상담심리사를 제외된 부분은 의사 집단의 로비 때문이라는 말이 떠돌고 있고, 상담학회에서 이 법안을 변경하기 위해서 조직적으로 방안을 모색 중이다. 의사는 신체적 증상에 더욱 잘 아는 부분이 있고, 약물 처방이 가능하다. 그러나 상담가는 심리에 대한 공부와 함께 이를 어떻게 언어나 행동, 도구들을 활용하여 변화시키는가에 대한 과정에 대해서 배운다. 분야가 다르다. 당신의 문제는 이거야 라고 알려주기만 해서, 아니면 당신의 심리적 불편감은 이런 수준이야 하고 통보한다고 해서 심리적 불편감이 덜어지거나 사라질 수 있었다면 벌써 모든 사람이 치유되었을 것이다. 사람의 마음이란 것이 그렇게 단순하지 않다. 안 그래도,

 

복잡하고 심란한 우리 사회에서 밥 그릇 싸움까지 자행되는 현실이 참으로 씁쓸하다.

 

 

5. 마치며...

 

서로 다름을 인정하고 돕는 사회,

누군가의 위에 올라서지 않아도 잘 살 수 있는 사회,

 

그것을 믿지 못하는 것이 사회의 온갖 형태로 나타나는 듯 하다.

그래도 하나의 작은 변화가 큰 변화의 한 조각이 될 수 있음을 믿으며 있는 자리에서 열심히 하는게 현재 내가 할 수 있는 유일한 일이라고 생각하고 다독이며 노력하려 한다. 우리의 청소년들에게서 흔히 나타나는 무기력은 자신이 할 수 있는 일이란 아무 것도 없다고 생각하게 만드는 현 사회의 구조가 큰 원인이기도 하다.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내가 변화시킬 수 있는 부분이, 작지만 하나라도 있다고 믿어야 무엇인가를 해낼 수 있는 힘을 가질 수 있다. 그렇게 믿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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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립간 2014-08-14 14:1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 어느 직종이라도 제가 초등학교 시절에 배웠던 정도의 정의와 도덕이 있는 분야가 있다면 저는 지금 당장 현재의 직업으로 버리고 그리로 가겠습니다만 ...

소송을 권해야 먹고 사는 변호사, 과잉 검진을 해야 먹고 사는 의사 ... 세상이 즐겁지 않군요.

마녀고양이 2014-08-14 14:22   좋아요 0 | URL
어떤 선생님께서 우리 사회가 자신의 문화에 자긍심을 느끼지 못하고 남의 것을 쫒아가려다보니, 뿌리는 없고 얼빠진 교육만 해서 그렇다고 하시더라구요. 그래서 위로 위로 올라가야 한다고 생각하고, 자신의 씨앗에 맞는 공부와 직업을 갖는 것을 부모들이 허용하기 어려워한다구요.

널리 이롭게 하라, 남을 도와라, 이런 것들이 사라진 현실에서
믿을 곳은 자신 밖에 없는 이 사회가 저도 요즘 즐겁지 않네요. 뉴스 보기 두렵습니다.

2014-08-14 21:16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4-08-15 09:14   URL
비밀 댓글입니다.

페크(pek0501) 2014-08-14 17:5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자신이 몸담고 있는 직업 세계를 자식에게도 거리낌 없이 권할 수 있는 세상이 오기를 바랍니다.

님... 오랜만입니다. 반가워요. ^^

마녀고양이 2014-08-15 09:15   좋아요 0 | URL
네, 언니, 와락~~~~~

언니 말씀이 핵심이네요.
나의 직업을 자식에게도 권할 수 있는 세상. 그렇다면 참으로 멋질 듯 하네요.

2014-08-14 19:50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4-08-15 09:19   URL
비밀 댓글입니다.

순오기 2014-08-15 03:2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봉사도 좋고 재능기부도 좋지만,
일단 자녀를 키우고 가르치며 생계를 꾸려갈 정도의 수입은 나와야지요.
상담은 내 기를 빨리는 일 같아요.
다들 자기 자리에서 세상을 바르게 바꿔나는 일에 힘을 써야지요.불끈!!

마녀고양이 2014-08-15 09:21   좋아요 0 | URL
그러게여... ^^
상담을 직업으로 한다고 얘기를 공공연하게 못 하겠는게,
상담가라면 기대하는 것들이 생기시더라구요. 다 받아주어야 한다, 나의 호소를 해도 괜찮다, 희생해야 한다... 머 이런 것들. 그런데 인성이 아닌 직업이거든요... ㅋㅋ

상담은 내 기를 불어넣어주기도 하고, 반대로 받아오는 일도 많아요.
그리고 함께 성장할 때도 많아서 보람이 있어요.
지금 있는 자리에서 열심히 하겠습니다!

노란가방 2014-08-15 09:1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좋은 글이네요. 잘 읽었습니다.
사람은 사명감만 가지고 살 수는 없는 존재니...
실력 있는 인재가 모이게 하려면 충분한 보상, 적어도 궁핍하지 않은 삶을 살 수 있도록은 해줘야 하는데 그러다보니 또 그 인재들은 부유하고 여력 있는 사람들을 위해서만 일하게 되는군요..
아.. 뭔가 좀 막막하네요.

마녀고양이 2014-08-15 09:23   좋아요 0 | URL
공감해주셔서 감사합니다. ^^

현 사회의 많은 부분에서 충분한 곳에 충분한 보상들이 이루어지지 않고
공평하게 분배되지 않는 현상들로 인해서 다들 자기 살 길을 찾아야 하니 점점 퍽퍽해지는 문제점들이 존재하네요. 첫 단계는 문제를 인식하고, 어디부터 잘못된 점인지 찾아서 해결 방법을 찾아가는게 아닐까 생각합니다. 그렇게라도 생각해야지, 안 그러면 정말 너무 막막해서.... 의욕이 사라질거 같아요.

노란가방님, 즐거운 일요일 되셔요.

노이에자이트 2014-08-15 17:1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번 세월호 사건 생존자나 유가족들에게도 심리상담치료를 하는데 정작 당사자들은 긍정적인 반응을 보이지 않더군요.이번에 인터넷에서 화제가 된 교황에게 보내는 단원고 학생의 편지에도 상담치료사들에 대한 불만이 드러나 있고요.붙잡고 쓸 데 없는 말만 시킨다고 여기는 것 같아요.

마녀고양이 2014-08-15 18:07   좋아요 0 | URL
글쎄요... 그 부분은 제가 뭐라고 언급하기 어려운 부분이네요.

심리 상담이 필요없다고 하시는 분도 계시고, 또는 절차적인 문제가 있을 수도 있고.... 그러나 심리 치료에 대한 불만이나 부정적인 반응이 있을 수 밖에 없는게, 세월호 사건은 가장 핵심적인 가해자의 사과나 정부의 입장 자체가 워낙 원망스럽게 흘러가니 몇 마디 말로 마음이 편해지기는 무리인 상황이기도 하고... 워낙 트라우마가 많은 사건일 수 밖에 없어요. 평생 두려운 기억이고, 현재 흘러가는 상황도 계속 상처를 주고 있고... 저는 그 말을 상담 치료사에 대한 불만이 아닌, 현 사회에 대한 불만으로 받아들였답니다. ㅠㅠ

그런데 노이에님, 아마 그런 의도는 아니실거라고 생각하는데
전체 흐름이 아닌 그렇게 토막으로 글을 잘라놓으니, 심리 상담은 필요없는 것이다 라는 논점으로 들려서, 제가 약간 당황했어요. ^^

노이에자이트 2014-08-15 19:26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하하하...저는 사회구조결정론자가 아니니 그런 염려는 안 해도 됩니다.세월호 사건 같은 대형참사는 법이나 제도의 정비 문제와는 별도로 심리상담이 필요하죠.그래서 사고 직후부터 심리치료하는 사람들이 현장으로 나갔고요.

그런데 심리치료에 대해 이야기하면 "사회구조적 접근을 회피하고 개인의 치유에 문제를 한정한다"면서 버럭하는 사람들이 제 주변에도 꽤 있어요.뭐랄까 심리치료에 대해서 사회문제를 개인화한다고 생각하더라고요.보수적인 기득권 온존에 도움을 준다 운운 하는 시각이죠.심리치료 배울 때 이런 고집불통들(대학물 먹었다고 다소 거들먹거리기도 하는 사람들)을 대처하는 요령을 배우지 않을까 생각하는데 어떻습니까?

마녀고양이 2014-08-17 10:15   좋아요 1 | URL
사회적 문제를 개인에게 떠넘긴다는 의견은 충분히 일리가 있다고 생각해요.. 하지만 심리상담가가 사회적 문제까지 들어가면 범위가 지나치게 넓어지고 개인의 치유보다 사회 개혁으로 가야하는데 역할이 다르지 않을까 싶어요. 각자의 역할에 충실할 필요도 있으니까요. 그리고 상담심리도 이론이 다양해서 사회나 여성문제에 초점을 맞추는 계파도 있답니다. 누구든 소신에 정당한 이유가 있다면 존중해주어야죠.. ^^

내담자 중에 저와 가치관이나 사회적 의견이 다른 경우가 종종 있는데, 제 목표는 타고난 씨앗을 최대한 발휘하도록 돕기 이기 때문에 다름을 특히 존중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노이에님 좋은 의견 감사드려요~^^

스마트폰으로 작성 중인데 잘 올라가는지 모르겠네요~

라로 2014-08-19 09:1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무튼 야무진 마녀고양이님~~~.
새로운 글이 많이 올라왔지만 이 글을 꼭 집어 댓글달기.ㅎㅎㅎ
저 미국에 와서 한동안 심리상담 받았잖아요!!
넘 좋았어요,,우리나라도 여기처럼 좋은 환경이 만들어질 거에요,,,시간이 걸리겠지만;;;
여기도 심리 상담비가 비쌌지만 돈은 없어도 나 살리자는 마음으로;;;쿨럭
하지만 정말 도움이 되었답니다. 그런 좋은 일을 하는 마고님 화이팅!!!!^^

마녀고양이 2014-08-21 20:04   좋아요 0 | URL
아우, 나비 언니, 잘 지내시지요?
미국 가셔서, 아무래도 다시 새로운 환경에 적응하시려니 쉽지 않으셨나봐요.
아니면 다른 힘든 일이 있으셨는지, 걱정이 되네요.

하지만 도움이 되셨다니, 그래서 맘이 편안해지셨다니 저도 맘이 놓여요.
그런데 의료 보험이 거기도 안 되나요? 저는 된다고 들었는데.. 거기도 비싸구나. ㅠ

언니, 이제 가을 와요.... 보고 싶어요. 더 멀리 계시니, 늘 건강 챙기셔요, 쪽~

등대지기 2017-12-20 19:4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안녕하세요 임상심리 현실이라고 구글검색으로 치다 우연히 들어왔습니다

저는 심리학에 관심이 많은 관련직종이 아닌 직장인인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상담심리 일을 계속 하시는중이신가요?

거의 모든 글들이 심리학자의 길에 부정적이라서요 교수되는건 하늘에 별따기이도 하고 예외인거같아서요

마녀고양이 2018-01-09 14:27   좋아요 0 | URL
답글이 매우 늦어서 이 글을 읽으실지 모르겠네요.

제가 질문의 요점을 정확하게 이해하지 못하여 다시 여쭤봅니다.
심리학에 관심이 많고 그 직종으로 가시고 싶은 마음도 있으시지만 진로 관련된 글을 보니 부정적인 글이 많았고, 그래서 고민스러우신 것 같은데... 제가 이해를 제대로 했을까요? 저는 현재 상담심리 관련 일에 종사하고 있습니다. 어려운 만큼 얻는 것도 많은 분야랍니다. ^^

등대지기 2018-02-08 18:5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거의 두달만에 들렸는데 답글이 있다니 신기하네요.

제가 말을 좀 헷갈리게했네요

고양이님이 이해하신 요점이 맞습니다

실례지만 어떤 상담심리 업종에 종사중이신가요?

지금 2018년 2월달인데 작년에 제가 치열하게 고민해본결과 얻은 결론은

현재 생계적인 일을하면서 칼퇴근하는 메리트를 살려 상담교육대학원에 진학하여

대학원을 졸업한다음 돈이 아닌 봉사개념으로 제가 관심있는 심리학업무를 하고 싶어서요

임상심리보단 상담심리가 제너럴적인 업무라서 (상담심리가 임상보다 밑이라는 뜻이 아닙니다)

상담심리쪽으로 가볼려고 해요 상담보단 임상심리에 관심이 많지만요...

원래 문과쪽성향인데 지금하는일은 제가 살면서 전혀 기대하지 않았던 공학쪽일을 해서 자괴감이 심하네요

일을 하시면서 보람을 느끼시나요? 하지만 돈과 부딪히면 아무리 보람있는 일이라도 상쇄되지 않을까 해서요

심리학쪽이 교수빼면 안정적인 곳이 없더라구요 공무원쪽도 전문심리학적인 일도 전무하구요

(교정,경찰도 심리학특채도 전문적으로 심리학만 한다곤 못들어봤습니다)

사실 이쪽일을 하고싶은것도 뭔가 의미있는 일을하고 싶지만 현실이 현실이라 여기저기 기웃거리고있네요

어떤 말씀이라도 조언좀해주시길 부탁드려요

마녀고양이 2018-02-21 12:51   좋아요 0 | URL
제 답글 역시 보름이 넘어서 달리니까, 이 답글을 확인하실지 저도 자신이 없네요. ^^

임상심리에 관심이 많으시다면 상담할 때도 검사를 정확하게 수행하고 해석하실 수 있으실테니 많은 도움이 되겠네요. 검사를 좋아하지 않는 상담사들도 많거든요. ^^ 심리상담사가 박봉에 자부심으로 일하는 분야이지만 엄연한 직업이라는 점을 생각하셔야 할 것 같아요. 정말 많은 노력이 들어갑니다. 즉, 대학원을 제외하고도 이후의 끊임없는 수련과정으로 인한 돈과 시간, 에너지가 들어가게 되고, 심리적 소진이 많기 때문에 처음에는 봉사 개념으로 시작하시는 분들은 오래 가기 힘들어요. 그래서 상담계의 대가들은 상담을 하면서 적정 수준의 돈(보상)을 받는게 맞다고 말씀하세요. 아니면 쉽게 변화하지 않는 내담자들에게 부정적인 감정을 느낄 수도 있고 치유가 아닌 상처를 줄 수도 있으니까요. 제 대학원 동기들 중에 대기업이나 공기업 근무하는 분들이 계셨는데, 유사한 동기로 시작하셨어요. 하지만 상담이라는 일이 다른 일과 병행할 정도로 쉬운 분야가 아니라는 것을 일할 수록 깨닫게 됩니다. 결국 대학원만 졸업하시고 생업으로 돌아가신 분들도 많답니다.

앞으로 상담 분야가 더욱 발전하리라고 기대하지만, 여전히 박봉일 가능성이 높습니다.
우선 사이버 대학에 편입하여 상담심리 공부를 하면서 천천히 결정하시는 편이 리스크가 적으리라고 생각해요.

제 답이 도움이 되면 좋겠네요. ^^

등대지기 2018-03-10 14:1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답변감사드립니다!!!
 
Sum 썸 - 내세에서 찾은 40가지 삶의 독한 비밀들
데이비드 이글먼 지음, 이진 옮김 / 문학동네 / 2011년 7월
평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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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소 블랙 유머와 같은, 다소 신선하기도 하고, 그런데 마음에 스미질 않네... ㅠ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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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01-31 21:2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부제가 엄청나군요. 마음에 스미다,라는 표현 좋아요. 그런 책 좋고.^^

마녀고양이 2013-03-06 19:05   좋아요 0 | URL
저도 마음에 스미는 책이 좋아요. ^^
 
통제하거나 통제되거나 - 소셜 시대를 살아가는 10가지 생존법칙
더글러스 러시코프 지음, 김상현 옮김 / 민음사 / 2011년 12월
평점 :
절판


0.

 

사이버 공간이란 일종의 도피처로 느껴지는 경향이 있기 때문에

현실 생활이 바빠지거나 사이버 공간 역시 현실과 다름없는 대인 갈등을 겪는다는 사실을 깨달으면 아무래도 멀어지게 되는 듯하다. 사이버 공간에서 자신이 생각하는 이상적인 모습으로 제2의 탄생을 할 수 있는 기회를 가졌다는 것을 깨닫는 순간, 환희가 가득한 시간을 일순 경험하지만 제 버릇을 개 줄 수 없다는 속담처럼 다시금 현실에서 하던 행동을 답습하고 반복하는 나 자신을 발견하며 현실 속의 갈등과 스트레스를 재경험하는 듯한 기시감을 느끼는 순간, 유토피아는 산산조각이 나고 헐벗은 나를 다시 보게 된다. 결국, 현실의 나를 제대로 정립할 수 없다면 어디서든 마찬가지라는 것을 다시금 깨닫게 되는 것이다.

 

 

1.

 

<통제하거나 통제되거나> 라는 다소 자극적인 제목으로 나를 유혹했던 이 책은,

"소셜 시대를 살아가는 10가지 생존법칙"이라는 더 매혹적인 제목을 달고 있다. 그러나 실은

사이버 공간을 구성하는 10가지 요소를 분리시켜서 다소 체계적으로 설명하고 있는 이론적인 책이다.

 

24시간 접속 상태를 거부하라, 네트워크가 아니라 현실 세계의 진짜 경험을 몰두하라, 선택을 강요하는 디지털 삶을 선택하지 않을 수도 있다, 단순화한 디지털 세계는 진짜 세계를 대체하지 못한다, 추상화된 디지털 세계에서 현실에 대한 통찰을 발견하라, 익명성으로 숨지 말고 자신의 참모습을 드러내라, 이득을 얻기 위해 가상 세계의 친구들을 이용하지 말라, 그럴듯한 거짓이 아니라 진실된 메시지일수록 더 넓리 퍼진다, 공유하라 하지만 훔쳐서는 안 된다, 프로그램하거나 프로그램되거나 라는 각 챕터의 소제목은 사이버 공간의 이슈를 핵심적으로 보여준다.

 

우리는 새로운 도구를 일상에 어떻게 통합할 것이가 생각하기보다 단순히 뒤처지지 않고 따라가는데 더 여념이 없다. 기업들이 소셜 네트워크에 돈을 쏟아붓는 이유는 그것이 디지털 시대의 마케팅 방식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신문사들은 스스로 원해서라기보다는 그럴 수 밖에 없다고 생각해 온라인에 진출했고, 대개는 재앙스러운 결과를 낳았다. 마찬가지로 초등학교 교육위원회는 컴퓨터 활용 교육 프로그램을 도입했지만 그것이 초등학생들을 더 잘 가르치는 방법이라고 믿어서라기보다는, 그러지 않으면 학생들이 무엇인가를 놓칠지 모른다는 두려움 때문이었다. - 18p

 

이는 다수의 사람들이 사이버 공간을 활용하는 방식에서도 볼 수 있다.

시스템에서 주어진 기능을 활용하기만도 바쁘고, 약간의 (기능) 개선책을 요구할 뿐이며, 실제로 이 기능들이 세상을 어떻게 바꾸고 있는 부품의 어느 나사인지 알지 못한다. 아니 알 생각을 하지 못하며, 큰 그림의 측면에서 모순을 지적하는 사람을 비난하는 일도 적지 않다. 아마도 본인이 선구적이라 생각하지만, 실은 길들여지고 있을 가능성에 대해 생각하지 않는다. 그것은 포탈 사이트든, 인터넷 신문이든, 인터넷 서점이든, 인터넷 거래든 마찬가지이다. 그저 주어진대로 받아먹고 열광하고 신기술을 약간 선점한 것에 대해 으쓱해하는 경향을 지닌다.

 

 

2.

 

하지만, 많은 부분에서 조종당하고 있는게 현실이다.

 

이들은 직접 비즈니스에 진출하는 대신 검색 엔진, 포털, 수집 사이트 등이 되어 그 모든 경쟁 부문보다 한 단계 위로 치고 올라가, 그 꼭대기에서 수익을 걷어 낸다. 모든 것이 똑같은 클라우드 속에 떠 있는 추상화된 세계에서는 목록 작성자가 맥락과 방향을 제시하는 법이다. - 99p

 

디지털 영역은 중앙 통제를 완전히 새로운 수준으로 강화한다. - 101p

 

인터넷 초기에 많은 사람들은 사이버 공간을 통해서 언론의 자유가 활성화될 것이라고 기대했고, 철저하게 그렇게 믿는 사람도 많이 있다. 자신의 속내를 솔직하게 드러내고 공유하고 토론하는 행위로써 사람들이 수평적인 관계가 될 수 있으리라 생각했다. 그러나 실은, 디지털화된 글은 자신에게 영원한 족쇄로 작용할 가능성을 지녔으며, 은연 중에 나의 생각은 누군가에게 조종당하고 있다는 점을 고려해야만 한다. 그래야 객관성을 지닐 수 있다.

 

예로써 A 블러그의 추천수를 들어보자.

(예를 드는 것일 뿐 결코 비난의 뜻이 아니며, 전적으로 시스템 운영팀의 필요성에 의해 시스템을 구현했으며 이런 필요성은 운영하는 사람들만이 더 정확하게 판단할 수 있을 뿐 아니라 당연히 운영하는 사람들에게 시스템 설계권이 있다고 생각하는 점을 미리 밝혀둔다.) 블러그 글을 접하는 사람은 아무래도 추천수가 높으면 그 글의 깊이나 영향력도 훌륭하다고 생각하게 될 것이다. 그렇게 생각하지 않더라도 추천수가 높으면 마음이 약간 흔들리는 사람이 많지 않을까 싶다. 그런데 A 블러그 추천수가 올라가는 방식은 다소 독특하다. 정확하게는 모르지만, 추천 10까지는 한사람당 하나씩 올라간다. 그런데 그 이후는 한번 누르면 두개, 또는 세개씩 추천수가 증가하는 방식으로 시스템이 구현되어 있다. 이유는 잘 모르겠지만, 일정한 추천 수가 넘어가면 추천 수치는 팍팍 올라갈 수 있다. 가령 나의 글 추천수가 38개라면, 실제 추천은 24명쯤 눌렀다고 생각하면 타당할 것이다. (실은 24명도 안 되는 것이, 내가 테스트를 위하여 비로그인 상태에서도 눌러보고 스마트폰으로 이동하면서도 눌러보면서 추천수 테스트를 해보았음을 솔직하게 고백한다. 이는 순전히 예전에 IT 엔지니어였던 내 호기심에 의한 것이었다.)

 

내가 이야기하고자 하는 요점은,

사이버 공간은 현실 공간보다 더욱 포괄적이고 조직적으로 조작하기 쉽다는 점이며

한두사람이 누군가에게 오프라인에서 전달하는 방식보다 훨씬 영향력이 크다는 점이다. 이런 점을 알고 있어야 하는 이유는, 맹목적으로 무엇을 믿기보다 현상을 제대로 파악하고 있어야 자신의 중심을 잡기 쉽기 때문이다. 그렇지 않다면, 우리는 어느 파도에 휩쓸려 떠내려갈지 알 수 없다. 정신차리고 보니, 어느 대양에서 허우적대고 있더라 이러면 안 되지 않겠는가?

 

 

3.

 

<통제하거나 통제되거나>는

작년에 나름 베스트셀러로 등극한 <생각하지 않는 사람들>에서 지적한 사항을 다시 말한다.

 

기계가 한때 인간 노동의 가치를 대체하고 빼앗았다면 컴퓨터와 네트워크는 인간 사고의 가치를 강탈하는 것 이상의 영향을 미친다. 그들은 우리의 지적 처리 과정(우리의 반복적인 프로그램)을 단순히 베끼기만 하는 게 아니라, 우리의 연산 능력을 실리콘칩들에 '아웃소싱'한 데 따른 보상이어야 마땅할 더 높은 단계의 인지, 사색, 혁신, 그리고 의미 형성 같은 더 복잡한 처리 과정을 또한 방해한다. - 21p

 

물론

나 역시 인터넷 지식몰이 너무나 편리하다. 고맙기도 하고 사라지기를 바라지도 않는다. 당장 학교 과제는 어찌하라고! 그러나, 그럴듯한 정보로 인해 고민하는 시간이 많이 사라진 것은 사실이다. 가장 우려스러운 것은, 피상적인 대화다. 결국 나 역시 스마트폰으로 변경하고 카카오톡을 활용하지만, 하루종일 카카오톡으로 주로 대화하는 청소년이 많이 걱정스럽다. 짧고 톡톡 튀는 대화는, 단말마적이고 허무하다. 거기엔 마음을 채워주는 온기가 없다. 최근 청소년을 접할 기회가 굉장히 많아졌는데, 친한 친구라면서 누구도 친구의 발표를 경청하지 않는다. 자신이 발표할 때는 다른 이들이 경청하지 않음을 서운해하면서, 다른 이가 발표하면 와글와글 떠드는 무리 속에 자신도 풍덩 들어간다. 아마........... 어디에서도 자신의 말을 들어주는 이가 없었기 때문일거야, 라고 혼자 중얼거렸다. 카톡의 대화가 진정 대화일까?

 

이렇게 채워지지 않는 마음은 '강박'으로 이어진다.

 

친구에게 받은 굉장한 이메일, 혹은 훌륭한 계약 조건을 담은 이메일이 저 아래, 아직 열어보지 않은 메시지 리스트 어딘가에 있을지 모른다는 가능성이 컴퓨터의 '받은 편지함'을, 아이폰이나 블랙베리를 계속해서 강박적으로 확인하게 만든다. 슬롯머신 앞에 앉은 노름꾼의 사고 방식이나 행태와 비슷하다. 그리고 일반적인 상식과는 반대로, '받은 편지함'을 더 빨리 비울수록 그곳이 차는 속도도 더 빨라진다. 답장을 보낸 모든 이메일은 더 많은 이메일을 낳는다. 이메일의 사슬은 실시간으로 벌어지는 대화처럼 변한다. - 39p

 

 

4.

 

인터넷 글쓰기나 정보 활용가 때론 위험할 수도 있다는 생각을 최근에 하게 되었다.

그것은 가끔 맥락이 없다. 일부를 전체처럼 호도할 수 있다. 의도는 쉽게 분해되고 왜곡된다.

 

직감하다시피 맥락이 없는 사실을 합리적으로 적용하기란 거의 불가능하다. 이것들은 사회적 혹은 정치적 스펙트럼의 어느 한쪽이나 다른 쪽에서 그릇되게 구축한 주장의 재료가 된다. 정치인의 단 한 번의 투표가 그의 전체 기록을 묘사하는데 이용되고, 카페인이나 담배의 단 한 가지 긍정적인 속성이 관련 기업들의 광고비 지원 덕에 세상 사람들의 눈길을 끌며, 부상당한 단 한 명의 어린이 사진 한 장이 여론을 전쟁 그 자체에 대한 반대보다는 서로 갈등 관계에 있는 양쪽 중 어느 한쪽에 대한 반대로 몰아간다.

토론을 벌이는 양측이 그들 입맛에 맞는 사실들만 골라낼 수 있고, 선거구민을 분노케하고 모든 사람을 양극화한다. 맥락보다 특정한 데이터를 더 중요시하는 디지털 문화에서 모든 사람은 자기네가 진짜 해답을 가지고 있고, 다른 쪽은 미쳤거나 사악하다고 믿게 된다. - 83p

 

아는 이들이 자주 호소하는 문제 중 하나는,

누가 나에게 "~~~ 라고 했어요, 나는 형편없는 사람이예요" 이다. 그때 나는,

"그것은 사실일 수도 아닐 수도 있지요. 그리고 그것이 설령 사실이라 하더라도, 그것은 당신의 작은 일부일뿐, 당신이 아니예요. 당신은 좋은 점을 많이 가지고 있지만, 누군가 지적한 부분에 있어서는 비효과적이거나 비효율적으로 행동하는게 아닐까요? 그 부분을 어떻게 해결할까요?" 라고 말한다. 그렇다, 조각으로 전체가 틀린 것처럼, 그렇게 흘러다니는 인터넷의 정보를 보면 나는 유사한 생각을 떠올린다. 거기가 비효율적이네, 문제를 명확하게 알고 인정하면 고칠 수 있지 라고.

 

 

5.

 

온라인에서 겪은 우리의 경험은 편견없는 지식인의 경험보다 아스퍼거 장애를 안고 살아가는 자폐증 환자의 경험에 더 가깝다. 많은 논쟁이 오고갔지만, 시각적인 것보다 언어적인 것에 더 의존하는 경향, 사회적 신호와 얼굴 표정을 제대로 못 읽는 특성, 공감의 부족, 눈을 제대로 맞추지 못하는 경향 등 직접적인 관찰만으로도 우리의 디지털 행태는 아스퍼거 장애 환자의 행태와 비슷하다. - 121p

 

 

사이버 공간에서 내가 했던 많은 실수 중 하나가 바로 이거였다.

나는 오만하게도 글로써 그 사람을 알 수 있다는 생각을 했었었다. 그래서 잘못 판단하고 잘못 행동하고 때론 그런 내 자신에 대한 자책감을 무마하기 위하여 수동적인 공격도 감행했었다. 인간은 누군가를 보고 듣고 만지고 느끼고, 거기다 직감으로 알 수 있도록 진화해왔다. 그런데 사이버 공간에서는 그 어느 것도 알기 어렵다. 그래서 더욱 조심스럽다. 현실로 마주하는 사람도 알기 어려운데, 내가 어찌 이 공간에서 누군가에 대해서 알 수 있으랴.

 

가끔은 매달릴 무엇인가가 간절해질 때가 있다.

아마 알라딘 서재를 시작한 시점이 바로 그때가 아니였을까 싶다. 그때 참으로 외로왔다. 그래서 하늘에서 내려온 튼튼한 동아줄처럼 덥석 잡았고 그로 인해 많은 즐거움과 많은 관계를 얻고 많은 실수를 했으며, 더불어 많은 경험으로 많은 것을 배웠다. 그때 현실적으로 나약했기 때문에 더욱 많은 온기가 필요했고 그렇기에 더욱 많은 섭섭함과 상처가 있었다. 결국, 현실에서 나를 제대로 세우고 보듬지 못한다면, 어디서도 마찬가지라는 것을 한번 더 확인한 셈이었다.

 

하루종일 인터넷, 게임, 스마트폰을 쥐고 있는 사람을 보면,

그때 외롭고 힘들었던 내가 생각난다. 사이버 공간은 따스한 에너지가 될 수도 있고, 모진 칼바람이 될 수도 있다. 미리 알고 있으면 된다, 그런 이중적인 모습을. 그러면 기대 수준을 낮출 수 있다. 아마 내가 길고 긴 리뷰를 오늘 쓰고 있는 것은, 이 한마디를 쓰기 위해서일지 모르겠다. 실은,

 

현실에서도 마찬가지다, 알면 된다, 이중적인 모습을, 그래서 기대 수준을 낮추고 기다리면 된다.

기다리고 부딪치고 살아가면 된다, 도망가는 행동을 지속하지만 않으면 된다. 그러면 괜찮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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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10-05 16:52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2-10-05 16:55   URL
비밀 댓글입니다.

비로그인 2012-10-05 17:4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얼굴로도 사람을 읽듯, 글로도 사람을 읽어요.
그런데, 읽는다고 할 때에는 '읽는다'뿐이지,
'안다'고 할 수 없어요.

사람을 서로 사귀어 만날 때에도 그래요.
'사귀'거나 '만난'다뿐이지,
'알아채'거나 '헤아리'거나 '사랑한'다고까지 나아가는 일은
아주 드물어요.

왜냐하면, 스스로 어떻게 생각하느냐에 따라 달라지거든요.
글을 읽으며 사람을 읽을 때에,
사람을 '읽는' 까닭을 생각하고,
사람을 읽으면서 어떤 길로 나아가고 싶은지도 생각해 보셔요.

그러면 돼요.

마녀고양이 2012-10-05 18:43   좋아요 0 | URL
읽는다와 안다...... 아 그렇네요.

누군가를 안다는 것, 그 말이 왜이리 친밀한거지요?
누군가를 읽으려는 까닭은 당신에게 관심이 있어요 라는 의미가 아닐까요?
설마 당신을 알아서, 내가 아는 척하고 이용해먹겠어요 하는건 아니겠지 하고
가슴 쿵 하면서 글귀를 들여다봤습니다, 제 마음두요... ^^

네, 그러면 돼요, 그치요?

2012-10-05 20:2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좋은 글이에요.
역시 달여우님답네요. 갑자기 나타나서, 괜찮은 글 하나 툭 떨어뜨려 놓는..
(물론 옛날엔, 상주하면서 괜찮은 글들을 쏟아내셨던 적도 있지요.^^)
자꾸 마음으로는 마고님이라 하게 되는 달여우님~.
빨리 이 이름이 익숙해져야겠어요.

(추천수 이야기는 충격적. 왜 그렇게 만들었을까요. 저도 예전 특정시점에, 어떤 글에 지나치게 높아지던 추천수가 이해가 안 갔었는데.. 그랬군요.)

2012-10-08 14:11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2-10-08 20:57   URL
비밀 댓글입니다.

프레이야freyja-고마워영화 2012-10-06 14:1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달여우님^^
가을도 멋지게 살아내요, 우리.

마녀고양이 2012-10-08 14:12   좋아요 0 | URL
프야 언니, 쪼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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