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
I,m so busy busy busy....
라고 "오키나와에서 헌책방을 열었습니다"의 저자가 만난 중국인이 말했다는데,
한 달 동안의 내가 그랬다. 호떡집에 불 난 것처럼 바빴고, 이번 주도 그럴 것 같다. 같은 부모 아래에서 자랐는데도 나와 남동생은 대처 방식이 아주 달라서, 나는 무엇인가 시도할 때 겁도 없이 덤비고 저지른 이후에 감당하느라 허덕대는 스타일이라면, 남동생은 돌다리도 두드려 보는 스타일이다. 둘 다 자기 세상이 강한 스타일인데도 이렇게 처세술이 다른 것은 첫째 딸과 막내이자 유일한 아들라는 형제 서열이 작용했고, 부모님의 경제적 어려움과 함께 이어진 갈등이 나는 초등학교 1학년부터라면 남동생은 5살부터 겪었기 때문일 것이다. 나는 유치원까지만 해도 꽤나 풍족했고, 학예회에서 유일하게 소매 끝에 구슬 장식을 했던 아이였다. 그러나 남동생은 집안의 갑작스러운 풍파로 인해 1년 가까이 경상도 외가에 맡겨져 있었으니, 세상에 대한 경계심이 더 할 수 밖에 없었다.
여하튼 나는 상당히 호기심 많고 의기양양해서 자랐으며, 내 자신의 특별함에 도취되어 거대 자아가 발달하다가 중학교부터 더 이상 최고가 아니라는 사실에 위축되고, 운 좋게(?) 꽤 좋은 고등학교에 진학하면서 자유롭고 멋진 소녀들 사이에서 더욱 자아가 쪼그라들었으며, 대학의 영재 삘 있는 동기들로 인해 더욱 열등감에 시달리다가, 다시 사회에서 다양한 사람들을 접하고 적어도 내가 평균 능력 이상이 될 때도 많다는 사실을 발견하면서 자아를 회복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자아가 회복될수록 호기심과 겁없이 시도하는 기질이 다시 고개를 들며 이런 저런 일들을 벌인다.
그 결과, 나는 내가 벌인 일들로 인해 매우 바쁘다.
1.
올해 본격적으로 가족 상담 공부를 하고 있다.
"나"만을 중심으로 심리를 분석하고 자신과 타인, 세계에 대한 어떤 표상을 지니고 있으며 어떤 대처 방식을 구사하고 있는가를 중점적으로 바라보는 개인 상담과 달리, 가족 상담은 개인의 내면 뿐만 아니라 가족 가계도를 중심으로 어떤 상호작용이 오고 가며 이런 것들이 확대되어 세상에 대한 어떤 해석과 대처 방식, 또는 문제 해결 방식을 가지게 되는가를 다루어서 전체 관점에서 나라는 사람의 그림을 그려보기에 더 빠르고 효과적인 측면이 있다. 그러나 개인 상담보다 깊숙한 자아 성찰은 다소 적을 수 있으며, 자칫하면 일반론으로 흐를 수 있기 때문에 관점을 상황에 따라 적절하게 통합하는 것이 좋겠다는 생각을 한다.
이런 때에
정신분석가인 이승욱 쌤의 "소년 - 한 정신분석가의 성장기"가 눈에 들어온 것은 어찌 보면 당연한 일이다. 특히 공저인 "대한민국 부모"라는 책을 워낙 인상 깊게 읽었기 때문에 더욱 반가왔다.
222 페이지에 큰 글씨로 쓰여진 책으로 술술 읽히지만 가끔 멈칫하게 한다.
심리 상담 분야는 자신과 주위 사람들에 대한 끝없는 공부이기 때문에 더욱 그렇다. 우선 나 자신을 대상으로 심리학을 적용하게 되고, 이후 상담을 하면서 자신도 미처 모르는 측면을 계속 발견하고 이해하게 되기 때문에 스스로를 거울처럼 마주할 용기가 없다면, 단지 타인을 도와주고 싶다는 마음만 있다면, 또는 하나의 직업으로서 고려하는 사람이라면 이 분야의 진학을 말리고 싶은 맘이 든다. (공부하는데 아파트 한 채 가격이 든다는 농담 섞인 말은 결코 농담만은 아니다. 끝이 없다.)
부모를 개인으로 바라본다는 것은 무엇일까요? 자신에게 이런 질문을 던져 보세요. "아버지가 나의 아버지가 아니라 그냥 잘 알고 지내는 한 어른이어도 인간적으로 그 사람을 좋아할 수 있을까?" 물론 어머니에 대해서도 같은 질문을 스스로에게 해보는 겁니다. "엄마를 만약 옆집 아주머니라고 생각하고 본다면, 그래도 나는 내 엄마를 좋아할 수 있을까?" - 18p, 소년 - 한 정신분석가의 성장기, by 이승욱
이런 질문에서 "네, 존경합니다." "네, 당장 친구로 삼고 싶을 정도로 좋아합니다." 라고 냉큼 대답할 수 있다면, 그런 행운이 있을까 싶다. 나는 잠시 머뭇거렸다. 그 분들 역시 처음 접했을 인생에 대한 허둥거림과 당혹스러움을 바라보며 느끼는 애닮픔, 무거운 기대와 부담감, 그러면서도 뿌리 깊게 지니고 계신 윤리와 가치관으로 인해 행하신 자식들을 위한 희생에 대한 고마움, 대략 이런 것들이 머리를 스치고 지나간다.
2.
최근 벌인 일 중에 하나는
몇 년간 방치해 두었던 앞 베란다 화단의 대대적인 청소와 분갈이, 정리였는데
어제 드디어 끝을 냈다. 다른 일들과 겹쳐서 내내 몸살을 달고 살았었다. 하지만 결과는 뿌듯하다.

물을 좋아하는 식물들을 수경으로 키우기 시작했다. 생각보다 잘 적응한다.
겨울에 가습기 대용으로도 좋겠다.

오른쪽에 있는 녀석들도 수경 재배 중이다. 삼 주가 지났는데 아주 건강하다.

커다란 화병에 원래 있던 말린 꽃가지들이 먼지가 심하여 새로운 녀석들로 교체했다.
버들강아지 물들인 것과 커다란 목화솜 가지 두 개, 나머지 녀석들의 이름은 모르겠다.
꽃시장에서 사왔다.

분갈이 하느라고 아주 등꼴 빠지는 줄 알았다. 바로 앞의 야자수는 15년을 키우는 중인데, 처음 15cm의 키가 저만큼 자랐다. 저 너머 다섯손을 가진 녀석도 십 년째 키우는 중이다. 오랫동안 같이 있어주어서 고맙다. 사진에는 안 나왔지만 딸 코알라 나이와 동갑인 벤자민 고무나무도 있다.

이 녀석도 화분갈이. 가지가 얼마나 주렁주렁 늘어져 있는지 고생 좀 했다.

키운지 십 년 정도 되었나, 자유스럽게 때로는 방임해서 키우는 주인장으로 인해 선인장 한 녀석은 한 번 제 무게에 구부러지고 다시 위로 구부러져서 올라가는 중인데, 어디까지 가나 볼 참이다. 실은 어찌해야 할지도 모르겠기도 하고. 마음대로 새끼 치고, 나는 삼 년 만에 새끼 친 놈들을 떼서 다시 심어주고, 그래도 잘 자라니 고맙다.
3.
살아오면서 어떤 경험이 혼란스럽고 두려웠나요? 여러분이 마주친 최초의 두려움은 무엇이었습니까? 한번 생각해 보시면 좋겠습니다. - 67p, 소년 - 한 정신분석가의 성장기, by 이승욱
생애 첫 기억이 중요하다는 말을 흔히 한다. 언어로 유창하게 표현하기 이전의 경험인데도 기억한다는 사실은 그만큼 내게 큰 영향을 미쳤거나 인상 깊은 경험이었을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나는 5살 즈음 시장에서 부모님을 잃어버리고 경찰서에서 울었던, 한참 후에 엄마와 비슷한 사람이 파출소 문을 열고 들어오는데 "엄마인가? 아닌가?" 얼굴을 보면서 망설이던 또렷한 기억이 있다. 내 이름을 부르는 모습을 보면서 비로소 부모님이구나 마음을 놓고 달려갔었다. 아직도 이해가 되지 않는 부분은 왜 내가 엄마의 얼굴을 보면서 엄마가 맞는지 확신을 가지고 싶어했는가에 대한 부분이다. 잘못하면 혼날 지도 모른다는, 자기 확신의 부족이 내게는 있었고, 엄마가 사라지는 것에 대한 불안이 있었던 것 같다. 더 흥미로운 부분은 이후에도 나는 부모님과 외출할 때마다 다소 의식적으로 한 가지에 정신을 빼고 바라보다가 종종 부모님을 놓쳐서 찾게 만들었고, 그런 방식으로 나에게 관심을 가지도록 유도했다는 점이다. 그때의 그 마음을 또렷하게 기억한다.
지금도 여전히 상대가 나를 필요로 하지 않으면 어떻게 하지 라는 두려움이 가장 크다.
그리고 이런 두려움은 스트레스가 극심할 때나 자존감이 낮아질 때 여지없이 튀어 나온다.
4.
일 벌이기,
"오키나와에서 헌책방을 열였습니다."의 나머지 반을 오늘 읽었는데,
책을 좋아하는 사람은 종종 그렇듯이 나 역시 헌 책방을 꿈꿨다. 그리고 대신 "다락방"이라는 이름의 책 대여점을 겁도 없이 열었다. 정말 우스운 사실은 대여점을 하는 동안 거의 책을 읽지 않았다는 거다. 책이 장사의 수단으로 되는 순간, 내 취향에 맞지 않는 책들을 가득 채우는 순간, 열정이 사라졌다. 그러나 다락방이라는 이름은 내게 꽤 소중한 존재이고, 다른 곳에서 쓰는 닉네임이기도 하다. (그래서 알라딘 사이트에서 동일 닉네임을 대한 순간 속으로 많이 놀랐었다.)
"새로운 주인을 찾고 있습니다."
이거였구나.
메일을 쓰다가 그만두고 아예 전화를 걸었다.
- 56p, 오키나와에서 헌책방을 열였습니다, by 우다 도모코
그런 면에서 헌 책방을 운영한지 상당한 시간이 흐른 지금도 "이거였구나" 라고 적을 수 있는 저자가 부러웠지만, 다시 돌이켜보면 나 역시 "이거였구나" 싶은 순간들이 여러 가지 있다. 산다는 것은 "이거였구나"를 찾는 순간들의 합집합이 아닐까 싶다. 아주 다양한 "이거였구나"가 존재한다. 심리 상담 분야의 사이버 대학 편입 문구를 봤을 때나 알라딘 서재 블러그를 찾았을 때, 빨강의 작은 독일 치약을 선물받아서 처음 접했을 때, 제트스트림의 0.7 mm 볼펜을 처음으로 그어봤을 때, 두 페이지를 일주일 스케줄로 구성한 가죽 표지의 일 년 수첩을 발견했을 때, 언니네텃밭이라는 농촌 공동체의 물품 서비스를 처음으로 이웃 블러그에서 봤을 때, 십 년도 넘게 살고 있는 아파트가 아직 지어지고 있는 상태에서 집을 구하기 위해 동네를 들어섰을 때, 이거였구나 싶은 수많은 순간들.
5.
한 아이가 자연 학습을 나갔다가 개구리를 보았습니다. 유치원으로 돌아와 선생님이 아이에게 자기가 본 것을 그림으로 그려 보라고 했습니다. 그러자 그 아이는 개구리에 날개를 달아 그림을 완성했습니다. 선생님이 왜 개구리에 날개를 달았냐고 물었습니다. 그러자 그 아이는 "개구리가 풀쩍 날았어요. 그러니 날개가 있어요." 라고 대답했습니다. 아이의 지식 세계에서 나는 것은 모두 날개가 있고, 그 개구리는 아이가 본 그 순간 허공을 가르며 날았기 때문에 개구리는 날개가 있다고 이해한 것입니다. 실제 상황을 자신의 이해 세계로 옮겨 오면서 자기가 알고 있는 지식 내에서 경험을 소화한 것입니다. - 171p, 소년 - 한 정신분석가의 성장기, by 이승욱
사실보다 지나친 감정이 올라올 때는 과거의 경험에 영향을 받으면서 왜곡시키는 것이 아닌지 찬찬히 살펴보는 것이 좋다. 나는 누군가의 이별 통보나 헤어짐에 알레르기 반응을 일으킬 정도로 예민하다. 누군가 나를 절실히 필요로 했으면 하는 바람이 온갖 곳에서 발목을 잡는다. 실은 어느 누구도 내가 필요없다고, 쓸모 없다고 하지 않았는데 나의 왜곡이다. 거기에 내 존재 가치를 거는 거다. 누군가 곁을 떠난다고 하면 어떤 사유가 있는지 전혀 고려하지 않고, 스스로 자신의 가치를 낮게 평가하는 태도가 무의식적으로 형성되어 불쑥 올라온다는 사실을 이제는 알고 있다.
저자인 이승욱 선생님은 학창 시절의 선생님과 학교 시스템에 대해 "나를 때리던 교사들처럼, 이유도 없이 분노하는 사람, 폭력을 쓰는 사람이 되어 버릴 것 같았습니다. 이대로 살다가는 폐인이 될 것 같았습니다. 학교와 교사와 병들어 가는 아이들을 보면서, 마음속으로 점점 좌절했고 그럴 때마다 무기력한 자신을 수없이 때리기도 했습니다. 나는 살아남기 위해 다시 학교를 떠났습니다. (191p)" 라고 회상한다. 어린 시절 범생이었던 나에게 있어 학교라는 공간은 선생님에게는 예쁨받는 장소였으나, 내향적인 성격으로 어려웠던 또래 관계가 상처가 되어 따돌림을 두려워하게 만들고 내가 중심이 아닌 왁자지껄한 모임을 싫어하게 만든 경험을 주었다. 아마 나라면 "나의 뺨을 때렸던 그 여자애, 이유도 모르게 뒤에서 따돌리던 그 사람들처럼 되어 버릴 것 같았습니다." 라고 기술할지도 모르겠다. 내가 알고 있는 지식 내에서 경험을 소화하고 세계관을 가진 결과이다.
6.
잘하고 싶었구나.
힘들어도 참으려고 했구나.
기쁘게 해주고 싶었구나.
잘되길 바랐구나.
도와주려고 그랬구나.
- 긍정적 의도를 알아주는 5가지 전문용어, 92p, 엄마의 말 공부, by 이임숙
칭찬과 격려의 차이점을 아는가?
다양한 매체에서 아이에게 칭찬을 많이 해주라고 했다가, 무조건 칭찬만 해주면 자기만 아이가 된다고 하기도 하고, 혼란스럽다. 칭찬은 결과와 관련되어 있고, 어떤 면에서는 조종의 의도가 있을 수 있다. 그러나 격려는 다르다. 상대의 의도 자체를 알아주고, 애쓰고 있음을 알아준다. 스트레스를 받거나 일이 잘 풀리지 않을 때 나는 좌절을 보상하고자 일을 벌인다. 그리고 허덕인다. 예전에는 완벽하게 해내지도 못할 거면서 일을 벌인 나약함에 화가 났지만, 이제는 잘하고 싶은 마음에서 나온 행동임을 안다. "성장의 욕구"가 너무 크기 때문이다. 물론 과할 때도 많고, 효과적이지 않을 때도 종종 있지만, 우리 집 화단의 나무들처럼 오랫동안 성장하고 싶다.
7.
어머니를 달랬습니다. 소녀를 달래는 아비의 언어로 그녀를 달랬습니다. 소년은 이제 경계를 넘어선 것입니다. 소년은 어머니의 울음을 통해서만 자랄 수 있는 것 같습니다. - 221p
오랫동안 내게는 모멸과 수치의 기억으로 남아 있던 그날 밤의 경험이 수십 년이 지나서 다른 의미로 다가왔습니다. 그날 밤에서야 나는 진정으로 술 취한 아버지까지도 받아들일 수 있게 되었던 것 같습니다. 늦가을 밤, 아버지를 업고 오던 10대 중반의 소년은 몇 십 년이 지나 그렇게 아버지를 받아들이고서야 또 한 번 성장할 수 있었습니다. - 130p
아버지를 극복하고 결국 아버지와 협력자가 되면, 여러분은 어머니와 건강하게 분리할 수 있습니다. 어머니의 품에서 벗어나야 비로소 진정한 어른이 될 수 있기 때문입니다. - 140p, 소년 - 한 정신분석가의 성장기, by 이승욱
혼자 볼 수 있는 자전적 일기를 써야겠다고 결심한다.
최초 기억부터, 인생의 꼭지 꼭지에 있던 기억에 생생한 에피소드들을 가감없이 펼쳐봐야겠다. 너무나 창피해서 꼭꼭 감추고 누구에게도 말하지 못한 무엇들을 이제는 스스로 들여다 봐야 겠다. 그 경험들에 또다른 이름을 붙일 때, 나는 아버지와 어머니의 그늘에서 벗어나 진정한 어른이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