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

 

크게 토정비결을 믿지는 않지만 몇 년째 년초에 꾸준히 뽑아보는 사이트가 한 군데 있는데, 올해 큰 운은 없으나 노력한 만큼의 결과는 받을 수 있는 운세라고 한다. 즉, 굴러떨어지는 복은 없고 열심히 달리면 그만큼 건질 수 있는 한 해라고 하는데 재작년이나 작년처럼 기반을 다지고 있어서 크게 돌아오는 것은 없으나 꾸준히 노력이 필요한 해라는 운세보다는 훨씬 좋은 편이다. 그래서인지 올해는 더더욱 바쁘다. 누군가의 얘기를 듣고 그 마음을 헤아리고 함께 해결하고자 고민하는 것까지는 기쁜 일이나 부부나 가족 간의 불화나 갈등을 중재해야 하는 일이 점점 많아지면서, 극심한 스트레스도 함께 하는지라, 누군가와의 소통보다는 홀로 있는 편을 더욱 선호하고 있다. 나와 단 둘이 있을 시간도 현저히 부족한 날들이니, 알라딘 서재 활동의 동기 부여도 적다.

 

올 봄부터 블러그에 개재하고 싶은 일들이 있었으나

매번 그냥 지나쳤다.

 

 

1.

 

올해 우리집 화단은 더욱 풍성했다. 초봄부터 내가 나름 신경을 썼고, 녀석들도 교감을 이루었다. 

 

 

10년이 넘어가는 선인장들, 제멋대로 자라기 때문에 어디로 뻗어나갈지 예측이 어려운 상태다. 겨울을 넘기고 봄이 되자 갑자기 죽죽 뻗어나간다. 특히 가운데 있는 녀석은 이 사진을 찍은 이후 10년 만에 꽃을 피웠다.

 

 

옮겨 심었는데 죽는 녀석도 있고 옮겨 심었는데 더욱 풍성하게 자라는 녀석도 있고.

15년 가까이 키웠던 야자 나무를 세 번째 화분갈이 했는데 어떤 점이 생육에 안 맞는지 노랗게 말라가고 있어 마음이 아프다. 올해 실내에 있던 벤자민을 화단으로 옮겼는데 이 녀석은 물을 마음껏 뒤집어 쓰면서 매우 신이 나서 병충해도 없다. 저 녀석은 나와 15년 넘게 함께 한 녀석이고 처음 30cm 정도 크기였는데 이제는 2미터 가까이 된다. 딸아이가 작년 어버이날에 사다준 제라늄도 화분을 옮겨주고 더욱 풍성하다. 거의 일 년 내내 꽃을 보여주는, 딸아이 닮은 효녀이다.

 

 

 

 

요즘 유행인 물없이 자라는 식물들을 나도 올해 구매했다.

가끔 물을 뿌려주거나 살짝 물에 담그는 정도로 잘 자라고 공기 정화에도 좋다고 들었다.

무엇보다 참 예쁘다! 실내가 화사해졌다!

 

 

작년에 수경재배를 시작한 녀석들인데, 앞에 보이는 페페가 이파리 서너 개에서 저렇게 풍성하게 자랐다.

너무 잘 자라서 떼어 다른 병으로 옮겨주는 중이다. 사랑스럽다.

 

 

짜잔! 오늘 블러그 글을 쓰도록 동기 부여를 한 녀석, 시계초이다.

5년 전인가 시계초 카페에서 어린 묘목을 분양받아서 제대로 돌보지 못하다가 올해 제대로 감아주고 영양제도 주었더니, 4월 경부터 봉오리를 여러 개 맺고 꽃을 피웠다. 시계초 꽃은 반나절 슬쩍 피웠다가 시들어버리고 있기 때문에 제대로 꽃을 발견하기 위해서는 아침 저녁으로 눈을 부릅뜨고 관찰해야 한다. 안 그러면 이미 진 봉오리 밖에 못 보고 발을 동동 구르게 되니까. 올해 여러 송이를 피웠고, 특히 사진 찍힌 이 녀석은 사진 찍기 아주 적합한 위치에서 활짝 자신을 내보인다.

 

시계가 보이시나요?

 

 

2.

 

올해 봄의 "언니네 텃밭" 농촌공동체 꾸러미에서 역시 봄나물을 가지가지 보내주셨다. 꾸러미를 받은지 6-7년이 넘어가니 제법 봄나물 종류도 구분하고 요리하거나 샐러드로 소화도 많이 하게 된다. 올해도 잊지 않고 진달래 꽃과 찹쌀 가루를 보내주셨는데, 찹쌀 가루를 익반죽하여 맛나게 구워 먹었다. 몇 년 전에 내가 만든 진달래 화전 사진에 세실 언니가 이렇게 밖에 못 만들어요, 라는 농담 섞인 댓글을 적으셨는데 이제는 훨씬 잘 만들지만, 사진 찍을 정신도 없이 먹기 바빴다. 쑥과 맵쌀 가루를 보내주셔서 쑥 버무리도 해먹었는데, ㅠㅠ, 소금을 많이 쳐서 또 망했다. 그래도 맛나게 밥이랑 먹었다, 덜 짜라고.

 

 

3.

 

여전히 책을 구매하고 여기저기 쌓여 있다.

지난 번에 올린 사진보다 쌓인 책들의 아슬아슬함은 더 심각하고, 시간이 부족하여 읽는 책의 양은 참으로 적다.

 

그래도 요즘 좋은 책을 발견해서 기쁘게 읽고 있다.

 

모든 순간의 물리학.

알라딘 서점처럼 인터넷 서점의 단점은 역시 실물을 보고 살 수 없다는 점이고, 최신작 위주로 노출이 된다는 점이다. 딸아이와 오프라인 서점을 들렸다가 이 책이 손애 들어왔는데, "우리는 누구인가" 라는 물음에 답하는 물리학의 대답이라는 표제 문구답게 물리학의 주요 주제를 가능하면 쉬운 언어로 옮겨 놓은 책이다. 물리학은 사람을 참으로 겸손하게 만든다. 또한 물리학의 주요 이론을 착안하고 검증한 천재들을 생각하면 더욱 옷깃을 여미게 되면서 너무 아둥바둥 살지 말자는 생각이 든다.

 

 

위험한 과학책.

이 책 역시 마음에 든다. 독특하다. 실은 펼치기만 하고 읽기 전이다. 곧 읽을 예정이다.

 

 

 

 

기억술사 1-3.

솔직하게 그냥 그런 라이트 노벨 정도로 생각했었다. 그런데 제목에 이끌렸다. 2권까지 읽은 상태인데, 1권보다 징검다리인 2권은 약간 가볍다. 그러나 3권을 기대할 만하다.  

 

사람들을 많이 만나다 보면, 특히 심리적으로 힘들고 하나의 생각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사람들인 경우, 최면술사를 만나서 특정 생각을 몰아내고 싶다는 말을 많이 한다. 또는 특정 기억을 지워버리고 싶다고도 한다. 기억술사는 원하는 사람의 기억을 지워줄 수 있는 능력을 가진다. 하지만 기억이 지워진 나는 원래 나와 동일한 존재인가 라는 문제와 잊혀진 상대방의 아픔이나 공허감은 어떻게 할 것인가 라는 문제가 제기될 수 있다.

 

"아픔은 그냥 신호일 뿐이야." - 138p, 기억술사 1권

 

모든 정서는 나에게 알려주는 무엇인가 있다고 믿는 사람이기에, 아픔은 신호라는 문구에 동의한다. 멈춰 서서 내 삶을 점검해보라고, 무엇인가 잘못되었다고, 대비하라고, 다시 생각해보라고, 너무나 소중한 것을 잃어버렸다고, 아픔은 다양한 메시지의 변형된 형태일 뿐이다. 그것을 무시한다는 것은 삶을 제대로 사는 것이 아닐 수 있다. "... 그러면 또, 지워버리면 되죠. (265p)" 라고 간단히 대답할 문제가 아니다. 도망다니며 살았던 삶의 너머에는 무엇이 남을까.

 

그래서 이 책이 마음에 든다.

 

 

4.

 

선거하러 가야겠다.

 

5월 초 잠시의 휴가동안 집안과 냉장고 청소를 이틀 하고, 다음 이틀 동안은 에버랜드 가서 죽도록 고생하고, 그 다음 하루는 보고서를 쓰고, 이후 이틀을 또 일하고, 오늘은 선거를 한다. 그리고, 내일부터 또 열심히 달려야 하는 나날이 당분간 계속될 것이다. 건강 관리에 유념해야겠다. 아침 저녁으로 체조를 한다. ㅎㅎ


댓글(4) 먼댓글(0) 좋아요(22)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마립간 2017-05-09 15:0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마녀고양이 님도 식물을 좋아하시는군요.

저도 식물을 꽤 좋아합니다. (알라딘에 반려식물이라는 제목으로 작년 가을에 글을 올렸습니다.) 공통점 또 하나를 찾았네요.^^

마녀고양이 2017-05-12 12:17   좋아요 0 | URL
네, 식물 좋아합니다.
마립간님도 식물 좋아하셨네요. 해당 글은 읽지 못해서 몰랐어요. ^^
반려식물이라는 말이 딱 맞는 것 같아요. 남편이 비염도 있고 해서 동물은 어려우니...

식물이 자라는 모습에 꽤 행복합니다.
그리고 우리의 공통점을 발견한 사실도 상당히 즐겁네요.

2017-05-09 22:12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7-05-12 12:18   URL
비밀 댓글입니다.
 

0.

 

페이퍼를 자주 쓰고 싶다는 마음이 늘 있다.

초등학교 6학년까지 배웠던 피아노를 다시 시작하고 싶다는 바람으로 "레이나의 피아노 노트"를 샀다.

퀼팅이나 천조각으로 소품을 만들고 싶어서 "알짱 햇님의 행운 가득 소품 만들기"를 거실 탁자 위에 올려놨다.

먼먼 여행을 틈이 날 때마다 가겠다는 마음으로 "위태로운 정신과 의사의 행복한 산티아고 피신기"라는 부제의 책을 읽는다.

"동전 하나로도 행복했던 구멍가게의 날들"이라는 책을 발견하고 지금부터라도 색채로 나를 표현하고 싶다는 열망에 몸이 붕 뜬다.

 

나는 늘,

하고 싶은 것이 많고,

욕심도 많고,

초조하다.

 

 

1.

 

페이퍼를 쓰려면 최소 두 시간, 길게는 서너 시간은 투자하게 되는데

내게는 써야 할 보고서가 늘 산더미인데다 최근 들어 왼쪽 어깨와 왼쪽 팔에 힘이 없다. 왼쪽 코도 막힌 느낌으로 바로 누우면 내 코고는 소리에 내가 놀란다. 몸은 나에게 신호를 보낸다, 운동을 하라, 체력 관리를 하라, 살을 빼라.

 

그러니 하고 싶다고 생각하는 것들이 우선 순위에서 밀린다. 어쩌면 생의 마지막까지 밀릴지도 모르겠다.

 

 

2.

 

몸의 신호를 믿는다.

 

기분이 가라앉고 우울하다면, 좌절했군요, 기대한 대로 잘 되지 않는군요 라고 내게 말하는 신호다. 이러한 무기력감과 우울감이 장기간 계속 된다면, 지금 살아가는 방향이 내가 원했던 것과 많이 다른가 보네요, 점검해 보세요 라는 신호다.

 

불안하다면, 미래에 어떤 일들이 걱정되는군요, 미리 예측하고 계획하고 준비하세요, 라는 신호다. 그러나 유의점은 불안의 신호가 너무 과도한 경우, 불안에 압도되어 아무 것도 하기 어려운, 도리어 시도하기 어려운 상태에 빠질 수 있다. 그러나,

 

공황 장애, 건강 염려증, 범불안 등으로 나타나는, 아무 것도 시도하기 어려운 증세들 역시 나에게 보내는 신호라고 생각한다. 그들은 빨간 불을 삑삑거리며 외친다, 경계하세요, 당신은 소진 상태예요, 당신을 아껴주세요. 열심히 달리던 사람들에게 자주 나타나는 증세이다. 또는 열심히 달려야 한다고 자신을 지나치게 압박하는 사람에게도 나타나고, 달려야만 한다고 믿는 사람이 자신의 기준만큼 제대로 하지 못한다고 생각하여 자신의 모습을 일체 회피하고 싶어하는 사람에게 나타나기도 한다. 이런 증세가 나타날 때 내면에서 진실로 원하는 것은 무엇이고, 진실로 두려워하는 것은 무엇인가에 집중해야 하는데 그보다는 증세 자체의 완화에 매달린다. 증세 자체에 집중하면, 정말 두려워하던 현실에서 벗어날 수 있는 이차적 이득이 있기 때문에 대부분은 상태 완화가 더디거나 좋아졌다가 다시 나빠지는 상황이 발생한다.

 

 

3.

 

내 눈 앞에 커다란 괴물 그림자가 나타난다.

너무 두려워서 차마 뒤돌아 볼 수 없다.

정말정말 두렵다.

 

그런데 그 괴물은 사실, 쥐 한마리일 가능성도 많다.

직시하지 않는 현실은 그렇게 모호하고 거대한 불안으로 우리를 덮친다. 하지만

 

무서워하는 당신은 참으로 한심하네요 라고 말할 수 없는 것은

어린 시절 힘 없고 누군가의 도움이 생존에 있어 절대적으로 필요한 시절부터 축적된 잠재 불안이나 강요되고 세뇌된 가치관으로부터 습득된 매우 자동적인 습관이므로 그 영향력이 어마어마 할 수 있다는 점 때문이다. 어떤 시절에는 그 두려움이 그 사람이 할 수 있는 최선의 선택이었을 것이다. 그때는 그럴만 했을 것이다. 그래서 지금 극복할 힘이 있다는 사실을, 더 나은 대안들이 있다는 사실을 모르고 이제까지 살아왔을 가능성이 농후하다.

 

내게 있어 그런 그림자는 어떤 형태일까,

생각한다.

 

 

4.

 

늘 달려야 할 것 같은 초조감,

하고 싶은 것이 많지만 미뤄놓으며 아쉬워하는 느낌,

현재에 머무르지 못하고 과거와 미래에 떠다니는 내 마음,

 

나의 그림자다.

 

 

5.

 

반가운 책들을 많이 발견했다. 지난 번 페이퍼의 사진에도 올렸지만 여전히 못 읽은 책 무더기다. 그래도 차곡차곡 장바구니에 책들을 넣는다. 오늘 이 중의 몇 권은 주문할 것 같다. 마음을 동동 뜨게 만드는 책들이 있으니, 아마 참지 못할 걸. 

 

"동전 하나로도 행복했던 구멍가게의 날들"의 알라딘 소개를 보고 심장이 이상할만큼 두근거린다.

섬세하고 다정한 파스텔톤의 색조가 훅 들어오는 느낌이다.

 

 

그리고 "스페이스 오딧세이 완전판"은 무리해서라도 일단 소장해야 한다는 마음이 들었다. 쉬운 책은 아니리라 예상되지만, SF의 팬으로서 해야 할 도리는 해야지 라는 마음, 그래야 완간한 출판사에 감사의 마음을 전할테니까.

 

 

 

 

 

 

 

다른 주문 도서는 확인한 후에 페이퍼에 올려야겠다. 열광하고 주문했다가 실망한 책도 꽤 된다.

그럴 때는 신용 없는 사람이 된 기분이다.

 

 

6.

 

얼마 전에 "미스터리 서점의 크리스마스 이야기"를 읽었다.

읽는 내내 나도 추리와 SF 서적만을 전문적으로 다루는 서점을 열고 싶다는 공상에 잠겼다. 참으로 멋질 것 같다. 일산에 있는 알라딘 중고 서점 크기의 공간에 1층과 2층 모두 추리와 SF 서적으로 가득 채우고, 작가 별로 어디 있어요, 아, 몇 년 전에 절판된 그 책 말이죠? 여기 있네요, 가격은 다소 비싸지만 그 책 구해드릴 수 있을 것 같아요, 라면서 서점 대표와 손님들이 절대적 흥미를 공유할 수 있는 공간이라면.

 

"미스터리 서점-"은 뉴욕에 미스터리 소설계의 명 편집자인 "오토 펜즐러"가 운영하는 실제하는 서점으로, 매년 크리스마스에 유명 미스터리 작가에서 의뢰한 단편 중 1993년부터 2009년까지의 작품을 수록한 책이다. 책 내용에는 반드시 미스터리 서점이 등장하고, 오토 펜즐러도 다양한 모습으로 등장한다. 미스터리 물이지만 다정한 책이었고, 편안했다.

 

(요즘 다정한 책들을 좋아하게 되었다, 심리적으로 지쳐 있는 듯하다.) 

 

 

7.

 

마지막으로 "오늘의 마인드풀니스" 라는 카드에서 명상 문구를 소개하면서 페이퍼를 끝내려고 한다.

 

음 소거

 

마음이 어수선한할 때면 걱정이 끊임없이 종알거리는 소리를 만들어냅니다.

구형 라디오가 주파수를 맞추면서 불안이라는 잡음을 없애는 것을 상상해보세요.

치~익칙거리고 삐~익거리는 잡음을 생각하면서

마음속 다이얼을 돌려 고요한 채널에 주파수를 맞춥니다.

이 상태로 몇 분을 보냅니다.

오늘 하루를 시작하기 전에 고요함을 즐겨보세요.

 

 

일어나서,

벽에 붙여놓은 15분 스트레칭을 하고 화장실 청소를 한 후에

보고서를 쓰고 다음 일정을 소화해야겠다. 종알거리는 걱정 대신 고요한 나 자신과 함께.

 

 

 


댓글(6) 먼댓글(0) 좋아요(27)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세실 2017-02-14 12:54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오늘 하루는 좀 쉬어도 좋을거 같은데......
힘들땐 잠시 쉬어가요.
많은 시간 투자보다는 몰입도가 중요하더라구요.
동전 하나.....그림이 참 예뻐요.

마녀고양이 2017-02-17 10:52   좋아요 0 | URL
하루 쉬어서 해결되는 상황이 아닌 것 같아요. ㅠㅠ
매일 스트레칭 하고 편안하게 해야 할 일들을 해야겠다고 맘 먹고 있어요.

그리고 언니 말씀대로 몰입도가 더 중요하지,,, 싶었어요.
작더라도 반짝 해보렵니다.

오늘 ˝동전-˝ 책 받았는데 정말 예뻐서 기분이 좋아요.
언니두 즐거운 주말되셔요.

cyrus 2017-02-14 13:20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저도 글 한 편 쓰려면 최소 두 시간 걸려요. 책 읽는 시간을 조금이라도 늘리기 위해서 글 쓰는 시간을 좀 더 줄여볼 생각입니다. 글 쓰는 방식을 바꿔보려고 해요. 읽을 책이 정말 많습니다.. ㅎㅎㅎ

마녀고양이 2017-02-17 10:53   좋아요 0 | URL
예전에는 글을 쓰면서 정말 시간이 많이 걸렸는데,
저는 요즘 설렁설렁 쓰기 시작했어요. 가끔 아쉽기도 해요. 저도 완성된 글을 써보고 싶은 바람이 있는데 능력이 부족하기도 하고... 읽을 책은 정말 많고... ^^ 그래도 우리는 열심히 하고 있으니까~!

헤르메스 2017-02-16 00:20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오, 추리와 SF 전문 서점 너무 좋아요. 여시게 되면 제가 가장 자주 찾는 단골이 되겠습니다^^
해외 미스터리계에서 저런 기획물 나올 때마다 얼마나 부러운지 모르겠어요. 얼마나 저변이 넓으면 기라성 같은 작가들이 기꺼이 의기투합해 작품집을 낼까 하고. 대학 다닐 때, 왜 우리나라엔 추리 동호회라는 것이 존재하지 않는 것일까 했던 안타까움이 이런 식으로 연장되어 여전히 나타나네요. 하하.

마녀고양이 2017-02-17 10:54   좋아요 0 | URL
하하하, 제가 여는 것보다 헤르메스님께서 여시는 편이 빠를 것 같습니다.
그러면 저는 완전 단골이 되겠습니다. ^^

우리도 저변이 확대되고 있으니, 가능할 것 같은 느낌도 드네요. 드라마 도깨비를 보면서, 이제는 신이라는 존재를 저렇게 방송에서 묘사해도 많은 사람들이 받아들이는구나 하는 생각을 했어요. ^^
 

0.

 

운빨로맨스라는 드라마의 류준열에게, 정확하게 말하자면 류준열이 연기하고 있는 제수호에게 필이 꽂혀 있다. 그는 현재 마음껏 사랑하고 있다. 심보늬에 대한 마음을 인정한 이후로 그는 직진을 거듭하고 있다. 사랑하는 사람 간에 흔히 볼 수 있는, 내가 받아들여질 수 있을까, 내 이런 모습을 싫어하지는 않을까, 저 사람은 나와 다른 마음을 가진 것 아닐까, 실은 다른 사람을 좋아하는 것은 아닐까 등의 불안이나 의심은 흔적도 찾아볼 수 없이, 정말 마음껏 사랑하고 있고,

 

나는 그 모습이 너무 예쁘다.

 

의심이나 두려움 없이 누군가를 신뢰하고 사랑하고 사랑을 요구하고 사랑을 받으며 함께 있을 수 있다는 것, 그 모습이 범상하게 느껴지지 않는다. 사람과의 진정으로 안정된 애착이 없다면 저런 모습을 보이기 어렵다. 당연히 작은 다툼이나 갈등은 있을 수 있으나 그로 인해 헤어짐이나 버려짐을 상상하지 않는, 그저 함께 있는 시간을 기뻐하고 소중히 여기는 그 모습으로 인해 미소가 저절로 떠오른다.

 

 

 

(운빨 로맨스의 황정음과 류준열) - 꽁냥꽁냥 10계명 : 출처 TV리포트 : 다음연예

 

 

내가 그런 열정을 공유하면서도 아무런 두려움 없이 그 만남을 행복과 기쁨으로만 받아들일 수 있는 시간들은 참으로 짧았다. 정말 아름다운 가을의 한나절이었지 파아란 하늘 아래 그냥 기뻤었어 라는 느낌, 또는 아무 할 일 없이 멍하니 둘이 앉아 먼지 날리는 운동장만 바라보기만 하는데도 풍족했던 서너 시간, 아니면 지하철 모퉁이 복도를 돌 때 갑작스러운 스킨쉽의 짜릿한 찰나. 그리고 반드시 찾아오던 불안과 의심. 저 사람은 나를 사랑하나, 나는 저 사람을 사랑하나 라는. 그 시절 내 간절한 소망은 영원히 사랑하게 해주세요 였던 것 같다. 그리고 제수호의 사랑법을 통해 그 아련함을 떠올린다. 저 사람은 사람에 대한 의심이 없구나, 저 사람은 정말 0 아니면 1이구나 싶어서 그 단순함과 확신이 부럽다는 마음.

 

(그의 성장이나 첫사랑과의 이별 과정을 고려한다면 현실적으로 어림도 없다 싶지만.

 - 역시 난 냉소적이고 염세적인 면이 있는 듯 하다.)

 

 

1.

 

애착,

정서적으로 접촉이 잘 안 되는, 특히 이성이 발달하고 성장만을 위해 달려가는 부모들의 눈에는 아이의 정서적 불안정성이 잘 보이지 않는 것 같다. 스스로의 공허감과 소외감을 애써 덮어버리고 달리기 때문에, 타인의 외로움이나 슬픔 역시 인지하기 어려운 것으로 추측하고 있다. 아무리 설명해도, 몸으로 체험되지 않는 것을 알기는 어려운 법이다. 그러니

 

왜 이겨내지 못하니 라고 닥달하고,

그럴수록 부모와 아이의 거리는 멀어지며 소외감은 깊어지고 일탈은 가속화된다.

 

애착은 세상을 신뢰하는 마음이라고도 할 수 있다. 세상은 안전한 곳이다, 나는 보호받을 수 있다, 내가 소중히 여기는 사람들은 내 곁에 있을 것이다, 나는 가치 있고 소중한 존재이다 라는 기본적인 신념을 가지도록 돕는다. 유기 불안- 즉 내 곁에는 아무도 없고 나는 버려질 것 같다는 두려움에 떠는 아이를 만나면 나는 마음이 흐트러진다. 균형을 잡지 못하고 아이를 나의 확장처럼 여기고 상대 부모를 공격하는 상황이 벌어지기도 한다. 내 미해결 과제라는 것을 나도 알고 있다. 그래도 이런 실수를 할 때

 

내 곁에 있는 사람은 내가 애쓰고 있음을 알아주고 내 슬픔을 이해해주고 이런 모습이 반복될 정도로 정서적 충격이 크다는 사실을 수용해주면 좋겠다. 콕 집어서 나도 알고 있는 잘못을 가르치듯 말해주지 말고. - 반대로, 나도 딸 코알라나 상대 부모들 모두 애를 쓰고 있으며 실은 자신의 잘못으로 괴로와하고 있으니 콕 집어서 말해주지 않아도 된다는 것을 인지할 정도로 따뜻하고 여유있고 풍요로운 사람이면 좋겠다는 바람도 든다.

 

 

2.

 

카린 지에벨이라는 작가의 작품을 다른 알라디너의 좋은 평가에 혹하여 네 권이나 한꺼번에 사놓고는 고민에 빠져 있다. (경고 : 너는 모른다 라는 소설의 완벽한 스포 있습니다.)

 

"너는 모른다" 라는 작품은 정말 스피디하고 흥미롭게 진행되었다. 새벽에 눈을 뜬 브누아 경감은 지하실 철창 안에 갇혔다는 사실을 깨닫고, 기억을 더듬어보니 어젯밤 만난 리디아의 집에서 함께 스카치를 나눠 마신 기억이 난다. 그러나 여러 날을 갇혀 있어도 감금당한 이유를 알지 못한다. 그 과정에서 리디아는 철창 안에 갇힌 브누아에게 고문을 가하며 지난날 저지른 자신의 쌍둥이 언니에 대한 살해 사건을 자백하라고 강요하지만 그런 사실이 없는 브누아는 초인적인 힘으로 버텨내며 탈옥을 꿈꾼다. 이 작가는 확실히 등장 인물의 심리 묘사에 탁월했다. 오랜 기간 동안 쌍둥이 언니의 죽음으로 괴로워 한 리디아가 브누아를 바라보는 마음과 결혼 외도 외의 잘못을 저지른 기억이 없는 브누아의 답답함과 불안이 섬세하게 전개된다. 소설에서 그런 섬세한 묘사를 읽다 보면 주인공들이 상당히 가까운 사람으로 느껴지면서 어떤 예상과 기대를 갖게 되는데

 

당연히 이 작품에서는 브누아의 결백이 밝혀지고 구출되는 과정이었다. 그런데

 

작가는 결백이 밝혀지는 순간, 우연을 가장하여 갑작스럽게 두 남녀를 죽여버린다. 툭! 하고 줄거리의 연결이 끊어지면서 실은 제 3자의 손에 의해 모든 상황이 조종된 사실을 밝힌다. 보통 다른 소설에서 조종자가 나오더라도, 주인공의 삶이 한 방에 소멸되지 않는다. 마음의 준비를 할 여운을 서서히 주면서, 이럴거야 라고 속삭여주는데, 이 소설은 마치 현실의 전혀 예측할 수 없는 거대 재난처럼 주인공과 나와의 관계가 한 순간에 단절된다. 나는

 

이런 관계가 가장 싫다.

 

 

 

 

 

 

 

 

3.

 

덕분에 읽지 않은 나머지 세 권을 그냥 팔아야 하나 고민 중이다. 어찌 보면

너무나 현실 같은, 전혀 소설 같지 않은 그 엔딩 때문에 나머지 책들도 읽어야 하는 것은 아닐까 싶기도 하고.

 

 

4.

 

계속 읽을까 말까 망설이는 또 한 권의 책은 "장진우 식당"이다.

 

비가 오면 비가 오는 대로, 눈이 오면 눈이 오는 대로 그 공기와 분위기가 저마다 의외의 인연들을 데려오는데 기쁜 우연을 그저 즐기면 된다. 일기예보는 언제나 맑음이다. - 17p

 

나는 일상이 마구 지루해지기 시작할 즈음 여행을 떠난다. 좋은 여행을 위해서는 지루해지는 게 좋다. 나 스스로 너무 지루해질 때, 그 때 떠나버리면 거기서 보는 것들 하나하나가 반짝거린다. - 24p

 

스시는 너무 '깨끗하다'. 뭘 가미할 수도 없이, 오래 숙달된 손놀림과 요리사의 혼만이 얇게 저민 생선살처럼 투명하게 드러나는 음식. 그래서 스시는 한없이 어렵고 매혹적이다. - 33p

 

차곡차곡 무언가를 쌓아 올리는 것이 마치 우리의 관계와 같은 라자냐. 한 번 뜨거워졌다가 식은 다음에 다시 데워야 안 무너진다. 인간의 우정과 같은 음식이다. 이상할 정도로 빠르게 끌렸다가, 격의 없이 어울리고, 그러나 어깨동무를 했던 시절이 거짓말 같을 정도로 사소한 오해 때문에 소원해질 때도 있다. 그 멀어졌던 거리가 있기에 이 친구를 다시 만났을 때의 편안함이나 같이 웃는 순간들이 기쁘다. 식혔다가 다시 뜨거워졌을 때 먹는 라자냐가 진짜 맛있는 것처럼. - 41p

 

의도한 게 아니었는데 더 괜찮은 것도 있다. - 48p

 

지금은 시간이 지나 그들도 각자 어딘가에서 잘 지내겠지만, 몇몇의 사람과는 연락을 하지 않는다. 왜인지는 서로 아무도 모른다. 식당에는 여전히 간판은 없다. - 65p

 

 

이 책에는 스치듯 지나가는, 그러나 아주 반짝이는 문구들이 있다.

그래서 매혹적이다. 하지만

 

질투하면 지는 거다 싶지만, 너무 멋지게 산다. 자기가 하고 싶은 것들을 이루면서. 나도 지루해질 때 여행을 가고 싶지만, 돈도 없고 시간도 없고 해야 할 일들도 많고 챙겨야 할 사람도 많다. 휙 떠날 수 없다. 저자 장진우님은 참으로 바람처럼 산다. 그래서 글을 읽는 내내 마음에 와닿기보다는 잘 닦인 고급 프랑스 접시를 보는 느낌이 든다. 대략 구십 페이지를 읽었는데, 더 읽어야 하나.

 

 

5.

 

비가 흠뻑 온 오늘, 내내 보고서를 썼다.

내일부터 나흘간 열심히 일해야 한다.

 

홀랑 누워서 교고쿠 나쓰히코의 "도불의 연회" 하권이나 읽고 자야겠다. 그런데 심적으로는 "가족 상담"과 관련된 책을 읽어야 할 것 같은 부담감이 들고, 이성적으로도 그래야 한다고 하는데. 에라, 모르겠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0.

 

I,m so busy busy busy....

 

라고 "오키나와에서 헌책방을 열었습니다"의 저자가 만난 중국인이 말했다는데,

한 달 동안의 내가 그랬다. 호떡집에 불 난 것처럼 바빴고, 이번 주도 그럴 것 같다. 같은 부모 아래에서 자랐는데도 나와 남동생은 대처 방식이 아주 달라서, 나는 무엇인가 시도할 때 겁도 없이 덤비고 저지른 이후에 감당하느라 허덕대는 스타일이라면, 남동생은 돌다리도 두드려 보는 스타일이다. 둘 다 자기 세상이 강한 스타일인데도 이렇게 처세술이 다른 것은 첫째 딸과 막내이자 유일한 아들라는 형제 서열이 작용했고, 부모님의 경제적 어려움과 함께 이어진 갈등이 나는 초등학교 1학년부터라면 남동생은 5살부터 겪었기 때문일 것이다. 나는 유치원까지만 해도 꽤나 풍족했고, 학예회에서 유일하게 소매 끝에 구슬 장식을 했던 아이였다. 그러나 남동생은 집안의 갑작스러운 풍파로 인해 1년 가까이 경상도 외가에 맡겨져 있었으니, 세상에 대한 경계심이 더 할 수 밖에 없었다.

 

여하튼 나는 상당히 호기심 많고 의기양양해서 자랐으며, 내 자신의 특별함에 도취되어 거대 자아가 발달하다가 중학교부터 더 이상 최고가 아니라는 사실에 위축되고, 운 좋게(?) 꽤 좋은 고등학교에 진학하면서 자유롭고 멋진 소녀들 사이에서 더욱 자아가 쪼그라들었으며, 대학의 영재 삘 있는 동기들로 인해 더욱 열등감에 시달리다가, 다시 사회에서 다양한 사람들을 접하고 적어도 내가 평균 능력 이상이 될 때도 많다는 사실을 발견하면서 자아를 회복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자아가 회복될수록 호기심과 겁없이 시도하는 기질이 다시 고개를 들며 이런 저런 일들을 벌인다.

 

그 결과, 나는 내가 벌인 일들로 인해 매우 바쁘다.

 

 

 

 

 

 

 

 

 

 

 

 

 

 

 

 

 

1.

 

올해 본격적으로 가족 상담 공부를 하고 있다.

"나"만을 중심으로 심리를 분석하고 자신과 타인, 세계에 대한 어떤 표상을 지니고 있으며 어떤 대처 방식을 구사하고 있는가를 중점적으로 바라보는 개인 상담과 달리, 가족 상담은 개인의 내면 뿐만 아니라 가족 가계도를 중심으로 어떤 상호작용이 오고 가며 이런 것들이 확대되어 세상에 대한 어떤 해석과 대처 방식, 또는 문제 해결 방식을 가지게 되는가를 다루어서 전체 관점에서 나라는 사람의 그림을 그려보기에 더 빠르고 효과적인 측면이 있다. 그러나 개인 상담보다 깊숙한 자아 성찰은 다소 적을 수 있으며, 자칫하면 일반론으로 흐를 수 있기 때문에 관점을 상황에 따라 적절하게 통합하는 것이 좋겠다는 생각을 한다.

 

이런 때에

정신분석가인 이승욱 쌤의 "소년 - 한 정신분석가의 성장기"가 눈에 들어온 것은 어찌 보면 당연한 일이다. 특히 공저인 "대한민국 부모"라는 책을 워낙 인상 깊게 읽었기 때문에 더욱 반가왔다.

 

222 페이지에 큰 글씨로 쓰여진 책으로 술술 읽히지만 가끔 멈칫하게 한다.

심리 상담 분야는 자신과 주위 사람들에 대한 끝없는 공부이기 때문에 더욱 그렇다. 우선 나 자신을 대상으로 심리학을 적용하게 되고, 이후 상담을 하면서 자신도 미처 모르는 측면을 계속 발견하고 이해하게 되기 때문에 스스로를 거울처럼 마주할 용기가 없다면, 단지 타인을 도와주고 싶다는 마음만 있다면, 또는 하나의 직업으로서 고려하는 사람이라면 이 분야의 진학을 말리고 싶은 맘이 든다. (공부하는데 아파트 한 채 가격이 든다는 농담 섞인 말은 결코 농담만은 아니다. 끝이 없다.)

 

부모를 개인으로 바라본다는 것은 무엇일까요? 자신에게 이런 질문을 던져 보세요. "아버지가 나의 아버지가 아니라 그냥 잘 알고 지내는 한 어른이어도 인간적으로 그 사람을 좋아할 수 있을까?" 물론 어머니에 대해서도 같은 질문을 스스로에게 해보는 겁니다. "엄마를 만약 옆집 아주머니라고 생각하고 본다면, 그래도 나는 내 엄마를 좋아할 수 있을까?"  - 18p, 소년 - 한 정신분석가의 성장기, by 이승욱

 

이런 질문에서 "네, 존경합니다." "네, 당장 친구로 삼고 싶을 정도로 좋아합니다." 라고 냉큼 대답할 수 있다면, 그런 행운이 있을까 싶다. 나는 잠시 머뭇거렸다. 그 분들 역시 처음 접했을 인생에 대한 허둥거림과 당혹스러움을 바라보며 느끼는 애닮픔, 무거운 기대와 부담감, 그러면서도 뿌리 깊게 지니고 계신 윤리와 가치관으로 인해 행하신 자식들을 위한 희생에 대한 고마움, 대략 이런 것들이 머리를 스치고 지나간다.

 

 

2.

 

최근 벌인 일 중에 하나는

몇 년간 방치해 두었던 앞 베란다 화단의 대대적인 청소와 분갈이, 정리였는데

어제 드디어 끝을 냈다. 다른 일들과 겹쳐서 내내 몸살을 달고 살았었다. 하지만 결과는 뿌듯하다. 

 

 

물을 좋아하는 식물들을 수경으로 키우기 시작했다. 생각보다 잘 적응한다.

겨울에 가습기 대용으로도 좋겠다.

 

 

오른쪽에 있는 녀석들도 수경 재배 중이다. 삼 주가 지났는데 아주 건강하다.

 

 

커다란 화병에 원래 있던 말린 꽃가지들이 먼지가 심하여 새로운 녀석들로 교체했다.

버들강아지 물들인 것과 커다란 목화솜 가지 두 개, 나머지 녀석들의 이름은 모르겠다.

꽃시장에서 사왔다.

 

 

분갈이 하느라고 아주 등꼴 빠지는 줄 알았다. 바로 앞의 야자수는 15년을 키우는 중인데, 처음 15cm의 키가 저만큼 자랐다. 저 너머 다섯손을 가진 녀석도 십 년째 키우는 중이다. 오랫동안 같이 있어주어서 고맙다. 사진에는 안 나왔지만 딸 코알라 나이와 동갑인 벤자민 고무나무도 있다.

 

 

이 녀석도 화분갈이. 가지가 얼마나 주렁주렁 늘어져 있는지 고생 좀 했다.

 

 

키운지 십 년 정도 되었나, 자유스럽게 때로는 방임해서 키우는 주인장으로 인해 선인장 한 녀석은 한 번 제 무게에 구부러지고 다시 위로 구부러져서 올라가는 중인데, 어디까지 가나 볼 참이다. 실은 어찌해야 할지도 모르겠기도 하고. 마음대로 새끼 치고, 나는 삼 년 만에 새끼 친 놈들을 떼서 다시 심어주고, 그래도 잘 자라니 고맙다.

 

 

3.

 

살아오면서 어떤 경험이 혼란스럽고 두려웠나요? 여러분이 마주친 최초의 두려움은 무엇이었습니까? 한번 생각해 보시면 좋겠습니다. - 67p, 소년 - 한 정신분석가의 성장기, by 이승욱

 

 

생애 첫 기억이 중요하다는 말을 흔히 한다. 언어로 유창하게 표현하기 이전의 경험인데도 기억한다는 사실은 그만큼 내게 큰 영향을 미쳤거나 인상 깊은 경험이었을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나는 5살 즈음 시장에서 부모님을 잃어버리고 경찰서에서 울었던, 한참 후에 엄마와 비슷한 사람이 파출소 문을 열고 들어오는데 "엄마인가? 아닌가?" 얼굴을 보면서 망설이던 또렷한 기억이 있다. 내 이름을 부르는 모습을 보면서 비로소 부모님이구나 마음을 놓고 달려갔었다. 아직도 이해가 되지 않는 부분은 왜 내가 엄마의 얼굴을 보면서 엄마가 맞는지 확신을 가지고 싶어했는가에 대한 부분이다. 잘못하면 혼날 지도 모른다는, 자기 확신의 부족이 내게는 있었고, 엄마가 사라지는 것에 대한 불안이 있었던 것 같다. 더 흥미로운 부분은 이후에도 나는 부모님과 외출할 때마다 다소 의식적으로 한 가지에 정신을 빼고 바라보다가 종종 부모님을 놓쳐서 찾게 만들었고, 그런 방식으로 나에게 관심을 가지도록 유도했다는 점이다. 그때의 그 마음을 또렷하게 기억한다.

 

지금도 여전히 상대가 나를 필요로 하지 않으면 어떻게 하지 라는 두려움이 가장 크다.

그리고 이런 두려움은 스트레스가 극심할 때나 자존감이 낮아질 때 여지없이 튀어 나온다. 

 

 

4.

 

일 벌이기,

"오키나와에서 헌책방을 열였습니다."의 나머지 반을 오늘 읽었는데,

책을 좋아하는 사람은 종종 그렇듯이 나 역시 헌 책방을 꿈꿨다. 그리고 대신 "다락방"이라는 이름의 책 대여점을 겁도 없이 열었다. 정말 우스운 사실은 대여점을 하는 동안 거의 책을 읽지 않았다는 거다. 책이 장사의 수단으로 되는 순간, 내 취향에 맞지 않는 책들을 가득 채우는 순간, 열정이 사라졌다. 그러나 다락방이라는 이름은 내게 꽤 소중한 존재이고, 다른 곳에서 쓰는 닉네임이기도 하다. (그래서 알라딘 사이트에서 동일 닉네임을 대한 순간 속으로 많이 놀랐었다.)

 

"새로운 주인을 찾고 있습니다."

이거였구나.

메일을 쓰다가 그만두고 아예 전화를 걸었다.

 

- 56p, 오키나와에서 헌책방을 열였습니다, by 우다 도모코

 

그런 면에서 헌 책방을 운영한지 상당한 시간이 흐른 지금도 "이거였구나" 라고 적을 수 있는 저자가 부러웠지만, 다시 돌이켜보면 나 역시 "이거였구나" 싶은 순간들이 여러 가지 있다. 산다는 것은 "이거였구나"를 찾는 순간들의 합집합이 아닐까 싶다. 아주 다양한 "이거였구나"가 존재한다. 심리 상담 분야의 사이버 대학 편입 문구를 봤을 때나 알라딘 서재 블러그를 찾았을 때, 빨강의 작은 독일 치약을 선물받아서 처음 접했을 때, 제트스트림의 0.7 mm 볼펜을 처음으로 그어봤을 때, 두 페이지를 일주일 스케줄로 구성한 가죽 표지의 일 년 수첩을 발견했을 때, 언니네텃밭이라는 농촌 공동체의 물품 서비스를 처음으로 이웃 블러그에서 봤을 때, 십 년도 넘게 살고 있는 아파트가 아직 지어지고 있는 상태에서 집을 구하기 위해 동네를 들어섰을 때, 이거였구나 싶은 수많은 순간들.

 

 

5.

 

한 아이가 자연 학습을 나갔다가 개구리를 보았습니다. 유치원으로 돌아와 선생님이 아이에게 자기가 본 것을 그림으로 그려 보라고 했습니다. 그러자 그 아이는 개구리에 날개를 달아 그림을 완성했습니다. 선생님이 왜 개구리에 날개를 달았냐고 물었습니다. 그러자 그 아이는 "개구리가 풀쩍 날았어요. 그러니 날개가 있어요." 라고 대답했습니다. 아이의 지식 세계에서 나는 것은 모두 날개가 있고, 그 개구리는 아이가 본 그 순간 허공을 가르며 날았기 때문에 개구리는 날개가 있다고 이해한 것입니다. 실제 상황을 자신의 이해 세계로 옮겨 오면서 자기가 알고 있는 지식 내에서 경험을 소화한 것입니다. - 171p, 소년 - 한 정신분석가의 성장기, by 이승욱

 

 

사실보다 지나친 감정이 올라올 때는 과거의 경험에 영향을 받으면서 왜곡시키는 것이 아닌지 찬찬히 살펴보는 것이 좋다. 나는 누군가의 이별 통보나 헤어짐에 알레르기 반응을 일으킬 정도로 예민하다. 누군가 나를 절실히 필요로 했으면 하는 바람이 온갖 곳에서 발목을 잡는다. 실은 어느 누구도 내가 필요없다고, 쓸모 없다고 하지 않았는데 나의 왜곡이다. 거기에 내 존재 가치를 거는 거다. 누군가 곁을 떠난다고 하면 어떤 사유가 있는지 전혀 고려하지 않고, 스스로 자신의 가치를 낮게 평가하는 태도가 무의식적으로 형성되어 불쑥 올라온다는 사실을 이제는 알고 있다.

 

저자인 이승욱 선생님은 학창 시절의 선생님과 학교 시스템에 대해 "나를 때리던 교사들처럼, 이유도 없이 분노하는 사람, 폭력을 쓰는 사람이 되어 버릴 것 같았습니다. 이대로 살다가는 폐인이 될 것 같았습니다. 학교와 교사와 병들어 가는 아이들을 보면서, 마음속으로 점점 좌절했고 그럴 때마다 무기력한 자신을 수없이 때리기도 했습니다. 나는 살아남기 위해 다시 학교를 떠났습니다. (191p)" 라고 회상한다. 어린 시절 범생이었던 나에게 있어 학교라는 공간은 선생님에게는 예쁨받는 장소였으나, 내향적인 성격으로 어려웠던 또래 관계가 상처가 되어 따돌림을 두려워하게 만들고 내가 중심이 아닌 왁자지껄한 모임을 싫어하게 만든 경험을 주었다. 아마 나라면 "나의 뺨을 때렸던 그 여자애, 이유도 모르게 뒤에서 따돌리던 그 사람들처럼 되어 버릴 것 같았습니다." 라고 기술할지도 모르겠다. 내가 알고 있는 지식 내에서 경험을 소화하고 세계관을 가진 결과이다.

 

 

6.

 

잘하고 싶었구나.

힘들어도 참으려고 했구나.

기쁘게 해주고 싶었구나.

잘되길 바랐구나.

도와주려고 그랬구나.

 

- 긍정적 의도를 알아주는 5가지 전문용어, 92p, 엄마의 말 공부, by 이임숙

 

칭찬과 격려의 차이점을 아는가?

다양한 매체에서 아이에게 칭찬을 많이 해주라고 했다가, 무조건 칭찬만 해주면 자기만 아이가 된다고 하기도 하고, 혼란스럽다. 칭찬은 결과와 관련되어 있고, 어떤 면에서는 조종의 의도가 있을 수 있다. 그러나 격려는 다르다. 상대의 의도 자체를 알아주고, 애쓰고 있음을 알아준다. 스트레스를 받거나 일이 잘 풀리지 않을 때 나는 좌절을 보상하고자 일을 벌인다. 그리고 허덕인다. 예전에는 완벽하게 해내지도 못할 거면서 일을 벌인 나약함에 화가 났지만, 이제는 잘하고 싶은 마음에서 나온 행동임을 안다. "성장의 욕구"가 너무 크기 때문이다. 물론 과할 때도 많고, 효과적이지 않을 때도 종종 있지만, 우리 집 화단의 나무들처럼 오랫동안 성장하고 싶다.

 

 

7.

 

어머니를 달랬습니다. 소녀를 달래는 아비의 언어로 그녀를 달랬습니다. 소년은 이제 경계를 넘어선 것입니다.  소년은 어머니의 울음을 통해서만 자랄 수 있는 것 같습니다. - 221p

 

오랫동안 내게는 모멸과 수치의 기억으로 남아 있던 그날 밤의 경험이 수십 년이 지나서 다른 의미로 다가왔습니다. 그날 밤에서야 나는 진정으로 술 취한 아버지까지도 받아들일 수 있게 되었던 것 같습니다. 늦가을 밤, 아버지를 업고 오던 10대 중반의 소년은 몇 십 년이 지나 그렇게 아버지를 받아들이고서야 또 한 번 성장할 수 있었습니다. - 130p

 

아버지를 극복하고 결국 아버지와 협력자가 되면, 여러분은 어머니와 건강하게 분리할 수 있습니다. 어머니의 품에서 벗어나야 비로소 진정한 어른이 될 수 있기 때문입니다. - 140p, 소년 - 한 정신분석가의 성장기, by 이승욱

 

 

혼자 볼 수 있는 자전적 일기를 써야겠다고 결심한다.

최초 기억부터, 인생의 꼭지 꼭지에 있던 기억에 생생한 에피소드들을 가감없이 펼쳐봐야겠다. 너무나 창피해서 꼭꼭 감추고 누구에게도 말하지 못한 무엇들을 이제는 스스로 들여다 봐야 겠다. 그 경험들에 또다른 이름을 붙일 때, 나는 아버지와 어머니의 그늘에서 벗어나 진정한 어른이 될 것이다.

 


댓글(8) 먼댓글(0) 좋아요(19)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hnine 2016-05-15 21:2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웬만큼 부지런한 근성이 아니고서는 식물들 저렇게 못키운다는거, 저도 제 친정 아버지 하시던 걸 봐서 잘 압니다. 대단하세요.
자전적 일기를 써보겠다는 생각, 저도 예전부터 하고 있는데, 그래서 알라딘 제 서재에 비밀 카테고리도 하나 만들어두었는데, 꾸준히 쓰지 못해서 회차 사이의 갭이 너무 벌어지니까 재미(^^)가 없더라고요. 오늘 마녀고양이님 덕분에 상기하였습니다. 생각이 글로 되는 과정에서 실로 많은 일들이 마음 속에서 일어날 것 같아요.

마녀고양이 2016-05-17 12:13   좋아요 0 | URL
살뜰하게 키우지 못하여 죽인 식물도 상당해요. ㅠㅠ.

언니도 저와 같은 생각을 하셨군요. 그런데 자전적 일기, 생각보다 쉽지 않네요. 저는 따로 파일을 만들어서 쓰려고 하는데, 시간도 안 나고, 그래도 천천히 해보려구요. 언니도 꼬옥 다시 하셔요~ 홧팅~

하이드 2016-05-16 04:0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오리목과 (오리목 향기 좋아해요) 곱슬버들이네요. ^^

이승욱님 책 담아갑니다.

마녀고양이 2016-05-17 12:14   좋아요 0 | URL
오, 그렇군요. 하이드님.
곱슬버들과 오리목.... 저도 이 녀석들의 이름을 담아두겠습니다.
마음 써서 알려주셔서 고맙습니다~ ^^

페크(pek0501) 2016-05-20 19:1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화초를 더 살까 말까 고민중이었는데...
사고 싶지만 더 사면 일이 많아질까 봐서요.

그런데 위의 사진을 보니 사는 쪽으로 흔들리는군요. 끄응...

마녀고양이 2016-05-24 13:41   좋아요 0 | URL
한동안 방치한 화초들에게 밀린 일들을 해주고 나니
기쁜 마음으로 매일 물 주고 말 걸고 즐기는 중입니다. 이러다가
또 바빠지거나 겨울이 오면 방치하게 되고 미안해지고.... 일이 확실히 늘어요.

저는 그래서 애완 동물은 포기했답니다. ^^

세실 2016-05-25 09:1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러고보니 분갈이한 기억이 없네용. ㅎ
작은 화분에 흐드러지게 핀 꽃을 보며 미안한 맘이 드는데....음!!!
오늘도 행복하기요^^

마녀고양이 2016-05-27 09:36   좋아요 0 | URL
언니도 오늘 행복하기요~
주말이라서 더욱 좋은 날 되시기 바래요, 큭큭, 저는 토욜 근무예요.
(직업상 토요일에 근무할 수 밖에 없더라구요.)

분갈이를 해주고 나니 식물 아이들을 제대로 쳐다볼 수 있더라구요.
얼마 전에 상담실에서 가족 조각 역할극을 시키는데, 당당하던 어머님이 역할극을 시작하자마자 갑자기 자녀의 눈을 못 마주치시더군요, 울면서 미안하다고. 그런 마음에 비할 수는 없지만, 약간 그런 느낌이예요.
 

0.

 

담이 걸렸다.

조금씩 움직일 때마다 등허리 어디 즈음에서 윽! 하는 소리가 절로 터져 나온다.

매주 월요일마다 10시부터 5시까지 수업을 듣는다. 그리고 6시부터 9시까지 다시 수업을 듣는다. 나만 부지런하다 독하다 싶었는데, 나와 함께 수업을 듣는 분들이 열한 분이나 더 있다. 더 놀라운 사실은 사십대 중후반에 속하는 내가 막내 뻘이다. 참으로 평생을 배우는 분들이다.

 

쉽지 않은 수업이다.

우리가 어딘가 잘못되었다고 생각하면서도 익숙한 현실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것은 새로운 어떤 것을 시도할 용기와 내 안의 솔직한 마음과 직면할 용기가 부족한 때문이다. 내가 바라보기를 거부했던 어떤 것들, 또는 모르고 살아왔던 어떤 것들을 계속 깨달아가 가는 과정은 늘 힘들고 에너지가 필요하다. 그러나 한편으로 내 자신과 화해하고 용서하고 수용하는 과정은 맑은 의식과 홀가분함, 따스함을 가져온다. 어제 내 어머니에 대해서 다시 마주했다.

 

 

1.

 

도전하는 용기,

사랑하는 용기,

포기하지 않는 용기,

뿐만 아니라

미움받는 용기도 필요하다.

어쩌면 인생에서 가장 필요한 용기가 아닐까 싶다.

 

타인에게 미움을 받을 용기가 없다면

스스로 힘들어지고 나약해져버린채

모든 것을 긍정적으로 바라볼 수 없으니까.

 

- 미움받을 용기, 중에서

 

 

2.

 

아직도 젊고 정정한 나의 어머니는

여전히 자신의 딸이 어머니의 굴레에 갇혀있다는 사실을 아시는지 모르시는지 자신의 인생을 찾아서 다양한 활동을 노년에야 즐기고 계시다. 아버지의 눈치를 보던 시절에서 벗어나 새로 사귄 친구분들과 여행도 자주 다니시고 노인들이 모여서 재봉 일을 하는 소모임에서도 용돈 벌이하면서 몇 년째 일하신다. 생의 오랜 기간 집과 가정이라는 틀에서 아내와 어머니라는 역할에만 매여 계시던 어머니는 훨씬 자유롭고 그런 어머니를 보는 나는 편안하다.

 

꽤 잘 사는 집에서 태어났음에도, 머리가 상당히 좋아서 공부를 잘 했음에도 불구하고, 여자가 남동생의 앞길을 막으면 안 된다는 고지식한 집안의 믿음으로 우리 어머니는 고등학교를 진학하지 못하셨다. 자라는 내내 자신보다 공부를 못했던 누구누가 대학을 갔고, 어떤 일을 하고, 결혼을 잘 했고, 그 자식들이 어떤 학교를 갔다는 얘기를 들어야만 했다. 그런만큼 어머니의 기대는 첫째인 나에게 기울어있었지만, 정작 본인은 그렇다고 생각하지 않는 것이 내 어려움이었다. 부모님의 기대에 짓눌린 나는, 그 인정욕과 성취욕과 초조감이 내 것으로 알고 살아왔다, 무너지기 전까지. 그리고 이후 부모님을 원망하기 바빴다, 특히 어머니를.

 

하지만 나의 어머니는 자신이 못다한 성취와 배움의 꿈이 너무나 한스러워서, 딸자식만큼은 날개를 활짝 펴고 날아가는 모습을 보고 싶으셨을 것이다. 손녀를 딸 대신 키워주는 고생을 당연시 여기면서 딸의 사회 생활을 후원하셨고, 딸의 사회적 성취를 자신의 성취처럼 자랑스러워하셨고, 딸의 좌절을 자신의 좌절처럼 실망하셨다. 자신이 못했던 것들을 이루게 해주고 싶으신 어머니는 자신의 한도에서 최선을 다하셨다. 다만, 내게 "너는 무엇을 하고 싶니" 라고 물어보시는 것을 깜박 잊으셨을 뿐이다. 정말 네가 원하는 거니, 너는 행복하니, 많이 힘들지는 않니, 라고 내 마음에 접촉하시는 것을 깜박 잊으셨을 뿐이다. 어머니의 인생에는 놓쳤던 다른 것이 더 소중했으니까.

 

어머니는 자신이 생각하는 최고의 것을 내게 주셨다.

 

아직도 어머니에게 마음을 털어놓는 것이 어색하다. 우습게도

나는 나의 딸을 통해서 친정 아버지, 어머니와 소통한다. 그분들의 팽팽했던 긴장이 사그라진 시절에 키운 나의 딸은 훨씬 건전하고 진정성 있는 유대 관계를 서로 맺고 있다. 그러나

곧 나도 애정을 전하려고 한다, 진심으로.

 

 

3.

 

할 일이 많으면 초조해진다.

집 안 곳곳에 읽다만 책들이 뒹굴고 있다. 최근에는 어느 한 책도 끝까지 읽지 못했다. 교고쿠 나쓰히코의 "서루조당"도, 김현철님의 "나는 늘 잘해야 한다고 생각한다"도, 옥타브 미르보의 "어느 하녀의 일기"도, 장진우님의 "장진우 식당"도 삼분의 일에서 절반 정도를 읽은 상태에서 머무르는 중이다. 네 권의 책 모두 매력이 있고 마음 가까이 다가오는지라 놓지도 못 하면서 끝까지 읽지도 못하는 모호한 상태이다.

 

 

 

 

 

 

 

 

초조할 때는 자꾸 새로운 무엇을 찾아 헤맨다.

무슨 맘인지 알 것 같다. 새로운 무엇이 짜잔~하고 나타나서 나의 혼란을 한 방에 해결해주기 원하는 것이다. 이런 시기에는 자꾸 자기계발서에 눈독이 드는 이유도 흡사하다. 그러나 그런 마법은 존재하지 않는다. 무엇이든 소화할 시간이 필요하다. 몸에 깊숙히 스며드는 기간이 필요하다.

 

나는 다리 건너는 것을 좋아해서, 그것만을 위해 돌아다닐 때가 있다.

맞은편 기슭에는 아무런 용무가 없는데도, 훌륭한 다리를 보면 나도 모르게 건너고 만다. 건너가 봐야 할 일도 없어서 결국 돌아온다. 별수 없이 갈 때는 왼쪽만 보고, 돌아올 때는 반대쪽을 보도록 하고 있다.  - 87p, 서루조당

 

목표를 갖지 않는, 현재 하고 있는 자체가 가장 소중한 삶을 살고 싶다. 그래서

아마도 이 글귀를 읽은 순간 마음이 뛰었던 것 같다.

 

 

4.

 

할 일이 많아도 잡다한 일을 처리하는 다소 텅 빈 시간을 현재 즐기는 중이다.

올해 1월 1일에 갔던 제주도 여행의 사진을 오늘에야 컴퓨터로 옮겼다.

 

작년에 이어 올해도 "어느 멋진 날" 이라는 게스트 하우스에서 2박을 했다. 서울의 호텔에서 주방장을 하셨던 분이 주인장으로 있는 게스트 하우스인데, 숙박과 함께 저녁을 예약하면 저렴한 금액에 코스 식의 근사한 요리를 맛볼 수 있다. 올해는 스테이크를 부탁드렸다.

 

 

 

 

 

  

기억에 남는 또 다른 장소는 절물자연휴양림의 삼나무 숲이다. 죽죽 뻗은 그 나무들 사이로 들어가면 신성한 어떤 장소에 가는 느낌이 든다. 맑고 싱그러운 공기가 폐 가득 찬다. 예민한 직감을 지닌 딸아이 코알라는 그 숲으로 들어가지 않으려고 했다. 두렵다나. 작지만 태고의 기운이 느껴지는 장소이다, 제주도라는 자체가 그렇기는 하지만. 산방산의 기운도 사납고 센 느낌으로, 몸이 안 좋았던 작년에는 그 아래 게스트 하우스에서 잠 든 내내 악몽에 시달렸던 기억도 있다.

 

 

 

 

 

 

 

세상에는,

사람 이외의 다른 기운이 있다는 것을 나이 들면서 인정하게 된다.

 

 

5,

 

엄청난 책을 쌓아놓은 주제에

오늘 또 책을 주문했다. 주문할 때의 책 목록을 보면 그 당시의 심리 상태가 느껴진다.

 

오늘은,

오키나와에서 헌 책방을 열었습니다

엄마를 요리하고 싶었던 남자

아이들은 어떻게 권력을 잡았나

마음 챙김 다이어리

월간 순정 노자키군 7

 

사람이 악마다

설레지 않으면 버려라

모두, 안녕히

피에로들의 집

너를 놓아줄게

 

를 주문했다. 아래에 다섯 권은 개인 중고 서적인데, 사고픈 책을 다소 저렴하게 내놓은 개인 중고 책에서 발견하면 기분이 좋아진다. 특히 두 권 이상의 책을 한 주인장에게서 구하면 더 신난다.

 

책 목록을 볼 때 오늘 나의 심리 상태는

안정을 찾고 싶은 모양이다. 하기사 초조함과 성취욕이 내사화된 현재, 나는 늘 안정을 갈구한다.

 

 

 

 

 

 

 

 

 

 

 

 

 

 

 

 

6.

 

Q&A의 4월 5일 자를 폈다.

 

"죽기 전에 꼭 하고 싶은 일이 있다면"

 

오늘에 맞는 절묘한 질문이다. 2016년 4월 5일의 나는, 죽기 전에 장가계, 보홀섬, 오사카를 여행하고 싶다. 꼭 여기 뿐만 아니라, 세계의 많은 곳을 여행하고 싶다. 그래서 나는 여행을 떠날 준비를 하려고 한다. 언제가 될지 모르나, 조금씩 떠나자, 돈을 절약하고 모으고, 과소비를 줄이고, 필요없는 물건을 사지 말며, 건강을 챙기고, 체력을 비축하며, 운동을 하고, 현재 일에 충실하며, 수영과 운전과 영어를 배우려고 한다. 그리고 차곡차곡 기록을 남겨야겠다. 앞으로 갈 길만을 보지 않고, 지나온 길을 정리하며, 현재 가는 길도 즐겨야겠다. 모든 것들이 여행이니까.

 

매일 접할 것 같은 일상도 지나가면 다시 오지 못할 여행이니까.

충실하자.


댓글(11) 먼댓글(0) 좋아요(16)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2016-04-05 14:09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6-04-05 19:12   URL
비밀 댓글입니다.

blanca 2016-04-05 14:5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 저 숲에 들어가고 싶어요. 저는 요새 파리에 가보고 싶다는 생각해요. 그리고 수영이랑 자전거 더 늦기 전에 꼭 배워보고 싶은데 너무 너무 무서워요--;; 아무래도 여행을 깊이 있게 즐기려면 수영과 자전거는 꼭 해야 할 것 같은데...이 페이퍼를 한 오년 뒤에 읽는 그 시점이 오면 마고님도 저도 다 이루었으면 좋겠습니다...

마녀고양이 2016-04-05 16:24   좋아요 0 | URL
블랑카님이랑 저랑 인연 맺은지가 한 칠년 되었겠죠? 근데 진짜 후딱 지나갔다니까요~ ^^

오년 뒤, 너무 짧아요
우리 평생 천천히 해요
계나 하나 만들까봐요, 여서 만난 맘 맞는 친구들과 한달 배낭여행 이런거 ㅋㅋ, 그날을 위해서 수영 , 자전거 배우세요. 난 수영이랑 운전 배울게~

2016-04-05 16:35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6-04-05 19:29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6-04-05 19:41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6-04-05 19:32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6-04-05 19:39   URL
비밀 댓글입니다.

북극곰 2016-04-05 20:5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다만, ... 물어보는 것을 깜빡하셨을 뿐이다.`에서 뭉클합니다.

마녀고양이 2016-04-05 21:37   좋아요 0 | URL
저는 우리 딸에게 무엇을 깜박했을까요?
딸에게 물어보지 않으면 모를 거라는 생각이 듭니다.

봄이예요, 너무 좋아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