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확실한 스포 있습니다. 이 영화를 보지 않으신 분은 읽지 마셔요.)

 

영화를 봤을 때 느꼈던 전율을 코알라에게 알려주고 싶은 마음에 1999년 M. 나이트 샤말란 감독의 '식스 센스'를 케이블 방송에서 결재하여 함께 관람했다. 예전에 코알라에게 슬쩍 "브루스 윌리스가 유령이야" 라는 강력한 스포를 흘린 부분이 마음에 걸렸지만, 영화 관람 후의 반응을 보니 미리 흘리기를 잘 했다 싶을 정도로 코알라는 엄청 놀라기도 하고 슬프고 감동적이라고 펑펑 울었다. 다시 영화를 보면서 마지막의 호러 반전이 너무나 강력한 나머지 이 영화에 전반적으로 흐르는 휴머니즘과 성장 스토리, 가족애를 제대로 느끼지 못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고, 다시 보아도 참으로 좋은 영화였다. 

 

요즘 들어 옛날 영화 중에 좋았던 영화, 좋다고 하는데 놓쳤던 영화를 다시 찾아 보게 된다.

 

정신과 의사인 크로우 박사(브루스 윌리스)가 자신이 과거에 제대로 치료하지 못했던 빈센트라는 아동에 대한 자책으로 영화가 시작된다. (사족으로 영화나 책을 보면 외국은 우리나라와 달리 의사가 상담 치료를 병행하는 경우도 많은 것 같다. 우리나라의 정신과 병원은 대부분 약물치료와 짧은 면담으로 끝나는데.) 크로우 박사는 빈센트의 괴로움을 충분히 동참하지 못했고 그의 말을 있는 그대로 믿지 않았으나, 나중에 그와의 면담 녹음 테이프에서 귀신 소리를 접하게 된다. 눈에 보이고 실제로 접하는 것만 존재한다고 생각했던 자신의 편견을 알아차린 크로우 박사는 유령이 보인다는 8살 소년 콜의 말을 있는 그대로 믿어주고, 그의 입장에서 문제 해결책을 제시하고 곁에서 두려움을 이겨내도록 돕는다.

 

늘 이 부분이 어렵다.

그러니까 균형을 잡고 선택과 판단을 해야 하는 부분이 늘 어렵다. 늘 고민이다. 하지만 영화를 보면서 인간중심치료의 로저스가 주창했던 "공감적 이해", "무조건적인 긍정적 존중과 수용"이라는 개념을 떠올리게 된다. 인간은 객관적인 사실이 아닌 자신이 지각하는 경험적이고 주관적인 관점으로 세계를 인식하고 그 안에서 살아간다. 누구도 동일한 입장에 설 수 없기 때문에 우리는 타인의 마음을 헤아리려고 노력할 따름이다. 그러므로 나에게 있어서 인생의 '정답'이었던 부분을 타인에게 '정답'이라고 강요할 수 없다. 그렇다고 사회성이 주요 특징인 인간 종족으로 태어난 이상 상식이나 사회적 통념에서 지나치게 벗어난 행위들을 방치하는 것 역시 그 사람의 적응에 있어 도움이 되지 않는다. 이와 같은 고민 속에서

 

'식스 센스'를 보면서 그래도 가장 우선적으로 필요한 것은 그 사람이 인식하고 있는 현실에서 가지게 되는 고민, 정서, 생각들을 진지하게 이해하고 함께 나누는 것이겠구나 싶었다. 8살 소년 콜이 보는 유령이 실재하든 아니든 간에, 그 소년에게 "유령은 없다." 라는 사실을 무조건 받아들이라고 하는 강요는 크게 도움이 되지 않는다. 본인의 눈에 실제로 나타나는 것들을 가짜니까 무시하라고 하는 충고가 얼마나 유용하겠는가, 아마 무시할 수 있었다면 이미 무시하지 않았을까 라는 생각이 들고, 역시 아무리 상식 선에서 터무니 없더라도 그 마음을 진지하게 받아준다면 누군가에게 마음을 열고 신뢰하면서 변화를 도전할 수 있는 용기를 가질 수 있지 않겠나 싶다. 우리는 주관적인 존재인 동시에 함께 사는 존재니까.

 

크로우 박사의 신뢰 속에서 마음을 열었던 경험이 있는 콜은 가장 사랑하는 어머니에게 자신의 비밀을 고백하는 용기를 가진다. 친밀한 관계일수록 자신을 미워하지 않을까, 떠나가지 않을까, 이상하게 보지 않을까 하는 두려움으로 진짜 고민과 불안을 개방하기 어려울 때가 있다. 불안정한 상황에서 스스로를 홀로 지키고 힘든 마음을 혼자 처리했던 경험을 주로 가진 사람들은 더욱 그렇다. 그래서 두 번째 본 '식스 센스'는 초자연적인 현상이나 소름끼치게 생긴 유령이라는 소재에도 불구하고 따뜻하게 느껴졌고 감동이 있었다. 

 

콜의 성장은 크로우 박사의 성장과 스스로에 대한 용서 및 화해로 이어진다. 어찌 보면 이 이야기는 콜의 성장 스토리기도 하지만, 크로우 박사의 성장 스토리이기도 하다. 조부모에게 맡겨져 양육되면서 할머니나 할아버지에게 크게 애착을 지닌 아이들이 있다. 그런데 내가 만난 청소년들 중에 유치원이나 초등학교 정도의 나이에 조부모가 죽음에 이르는 과정을 곁에서 지켜보는 동안 부모는 너무나 바쁘고 정신 없는 나머지 자녀들에게 거의 신경 쓰지 못하고 방치되는 경우들이 있었다. 그 아이들은 유일한 애착의 대상이자 보호자인 할머니나 할아버지가 돌아가시는 (또는 병약해지고 사라지는) 두려움과 공포를 홀로 삭히고 알아서 처리해야만 했고, 이러한 심리적인 어려움은 일그러진 공포의 형태(환각, 환청, 가위 눌림, 악몽, 왜곡된 사고, 대인관계 단절 및 피해망상 등)로 나타나기도 했다.

 

콜의 상처를 크로우 박사가 어루만진 것처럼 충격적인 경험을 소화할 때 누군가의 애정과 신뢰, 지지는 크게 도움이 된다. 하지만 충격적인 경험을 하고 있는 사람은 매우 취약한 상태이므로 더욱 방어적인 자세를 취하기 싶다. 마치 고슴도치처럼 등에 곤두선 가시를 보면서 속살의 상처입기 쉬운 연약함을 떠올릴 수 있는 내가 되기를 바란다, 그런 따뜻함을 주고 받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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땡순사랑 2019-02-08 11:5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안녕하세요. 출판사에 재직중인 편집자인데 제가 만든 책에 서평을 남겨주셨고 관련 분야에서 종사하시는 분 같아서 호기심에 들어와 댓글을 남깁니다.

식스센스는 저도 아주 인상적이었던 영화인데 칼 로저스의 인간중심치료 이론의 관점에서 영화를 해석하신 글 내용이 정말 흥미롭네요. 한편으로는 소년 콜 역시 크로우 박사에게 ‘무조건적인 긍정적 존중과 수용‘의 태도로 대했다는 생각이 듭니다. 처음부터 크로우 박사가 유령이라는 걸 알면서도 그의 잘못된 인식을 직접적으로 바로잡으려 하지 않고 스스로 깨닫게 해 준 셈이니...

블로그에 올리신 글 하나하나가 정말 재미있고 새로운 책에 대해서도 알게 해주네요. 앞으로 종종 들르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