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

 

"하얀 손수건"을 듣는 중이다.

들을 때마다 가슴이 촉촉하게 젖는다, 트윈폴리오가 부를 때도 스윗소로우가 부를 때도.

 

헤어지자 보내온 그녀의 편지 속엔
곱게 접어 함께 부친
하얀 손수건

고향을 떠나올 때 언덕에 홀로 서서
눈물로 흔들어 주던
하얀 손수건

그때의 눈물 자욱 사라져 버리고
흐르는 내 눈물이 그 위를 적시네

 

"두 장의 악보"를 의미하는 Twin Folio, "달콤한 슬픔"을 의미하는 Sweet Sorrow.

하얀 손수건은 그렇게 눈물처럼 노래처럼 팔락인다.

 

 

1.

 

새벽 네시다, 뒤척이는 새벽 네시 십분이다, 잠 못 이루는 새벽 네시 이십분이다.

가만히 시계가 똑딱이는 소리를 듣는다. 보름달처럼 희고도 고운 딸아이의 얼굴을 훔쳐보고 쌔근거리는 숨소리를 듣는다. 밤새도록 쿵쾅거리는 나의 심장 소리를 듣는다. 결국 잠을 포기하고 일어난다.

 

 

2.

 

딸아이를 지나치게 나와 "동일시"하고 있다는 사실을 깨닫는 나날이다.

 

나는 친정 엄마처럼,

딸에게 1등이 되라고 바라지 않았다. 일류 대학에 가라고 바라지 않았다. 좋은 기업에 들어가거나 학위를 따라고 바라지 않았으며 내세울만한 남편을 만나서 땅땅거리며 살기를 바라지 않았다.

 

그러나 나는,

친정엄마처럼 자신이 못했던 것을 딸이 이루기를 바랐다............ 똑같이.

 

나는 딸에게,

훨훨 날아가도록 바랐다. 자신의 적성을 찾아내어 재능을 꽃피우기를 바랐다. 세상의 모험에 돌진할 정도로 용감하기를 바랐다. 늘 행복해 하기를 바랐다. 지나치게 예민하지 않기를 바랐다. 그리고 나와 달리 인간 관계를 어려워하지 않고 융통성이 있으며 사교적이고 남의 시선을 의식하지 않으며 어릴 때부터 무리없이 친구들 속으로 스며들어가는 아이기를 간절하게 바랐다. 나처럼 초등학교 6학년 때 같은 반 친구에게 뺨을 맞고 왕따를 당한 트라우마를 평생 지니지 않기를 간절하게 바랐다.

 

아마도 나는, 딸아이가 나와 닮.지. 않.기.를. 바랬다.

 

 

3.

 

어제 딸아이는 같이 다니던 두 친구에게 절교를 당했다.

유치원 시절부터 워낙 소심하고 내성적이며 혼자 놀기 좋아하고 누군가와 친구가 되기를 간절하게 바라면서도 그 부분을 워낙 어려워 하다가, 초등학교 6학년인 올해 삼총사로서 명랑하게 지내기에 얼마나 기뻐했었는지 모르는데, 어찌어찌하여 일이 그렇게 되었다.

 

몇 주동안 이상 조짐으로 아이가 속을 태우길래 괜찮다고 괜찮다고 했건만, 당장 내일 아침부터 혼자 등교해야 하고 혼자 하교해야 하는 상황에 이르렀다는 문자를 받자마자, 내가 숨이 가쁘고 가슴이 쿵쾅거리기 시작한다. 자동적인 반응이다. 친구에게 한번 대들지도 못하고 "뚱뚱하면 다른 애들이 꺼려할지 모른다, 너 때문에 사소한 피해를 입은건 사실이야, 충고에 계속 소심하게 반응하면 너를 꺼려할거야, 너무 우리에게 의존하지 말고 다른 친구도 만나봐, 엄마에게 상의하지 말고 혼자서 해결해야지 어린애니" 등의 내가 봐도 꽤나 충격적인 문자를 그대로 삭히면서 내 품에서 며칠간 울더니, 오늘은 꽤나 의연하게 견디는 딸아이인데 내가 잠을 못 이루고 있다. 곁에서 굳건하게 버티는 일 외에는 해줄 것도 없는 엄마건만, 혼자 불안에 그마저도 못할까 조심스러워, 앞에서는 그냥 웃어주고 토닥이며,

 

"네가 잘못한 것은 없어, 1년 넘게 사귀고 배신한 친구들이 잘못한거야."

 

라고 말해주고, 한마디 친구 욕도 못하는 딸 대신 딸아이 친구 욕을 해준다.

못되먹었어, 비열하네, 끼리끼리 그러다니... 등등.

 

 

4.

 

나도 안다,

이것은 성장의 과정이며 딸아이가 겪어내야할 경험이라는 것을. 그럼에도

그 시절 내가 얼마나 외로왔는지 힘들었는지 오버랩되면서 이렇게 좌불안석이다.

 

자식이 사춘기에 들어서서

방황하고 부모에게 덤비고 분리되고 미래를 모색하면

부모는 자신을 비추어보게 된다고 한다, 내가 무엇을 잘못해서 저녀석이 저럴까 하면서.

 

오늘 밤 내내,

융통성 떨어지고 예민하고 소심하고 인간 관계에 어쩔 줄 몰라하는 나의 유전자를 물려주고 유사하게 불안에 취약한 엄마 밑에서 키운 죄가 아닐까, 내내 미안해하고 있는 중이다. 하지만 적어도 딸아이는 나에게 얘기를 하니까, 힘든 모든 것을 얘기하고 내 품에 안겨 우니까, 당연히 혼자 감내하고 우는 것은 창피한 일이라고 믿고 입을 다물었던 나보다 쉽지 않을까......... 그렇게 나를 위로한다. 내가 씩씩해야, 딸아이도 씩씩해질테니까. 세상이 모두 위협적인 것은 아니다, 적어도 곁에는 항상 네 부모와 같은 누군가가 있다 라는 것을 믿을 수 있을 테니까.

 

하늘에 별이 떨어진다,고

바다에 별이 떨어진다,고

울컥한 맘을 페이퍼에 쏟아내며 한갖 여유를 마음에 불어넣는다.

 

 

5.

 

힘내라, 딸,

엄마는 영원히 네 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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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10-10 05:5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코알라에게 힘든 시간이 왔군요.
어쩌지도 못하고 지켜만 봐야 하는 달여우님 심정은 또 어떨까요.

잘 이겨내라고 응원 보냅니다.
지금은 힘들겠지만, 돌아보면서 웃을 날이 오겠지요.

hnine 2012-10-10 07:0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다른 사람으로부터 입은 상처는 시간이 지나면서 서서히 회복되는 것 같아요. 그게 부모나 가족등으로부터의 상처가 아니라면요. 그건 참 오래 가더군요. 회복이 안되는 경우도 있고요.
그러니 코알라는 괜찮아 질거예요. 부모 중의 제일 가는 부모는 기다려주는 부모라더군요. 코알라가 저 예쁜 웃음을 되찾을 때까지 지켜봐주고 응원해주실거잖아요 ^^
그런데 사진 속의 저기는 어디일까요? 잉카, 마야 문명을 떠올리게 하는...

마립간 2012-10-10 07:5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 마립간도 그 시간을 잘? 지내왔듯이 코알라도 그 시간을 잘 보내니라 믿어 의심하지 않습니다. 그 과정을 겪은 사람이 혼자가 아니라는 것을 알려주세요.

비로그인 2012-10-10 10:5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 달여우님, 영원한 내 편이 있다는 걸 딸아이가 잘 느끼고 있을 거에요. 읽다가 마음이 북받쳤어요. 어쩌면 저도 비슷한 경험이 있었다고 말할 수 있을 것 같아서요. 부디 잘 견뎌냈으면 좋겠네요. 오랜만에 뵈니 반가운데 그저 댓글로 응원을 보내는 일 밖에 못하네요.

페크(pek0501) 2012-10-10 12:0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꼭 절교가 아니더라도 누구나 혼자가 되는 느낌이 있으리라 생각해요.
그것에 익숙해지는 연습이라 여기시면 어떨까요.
"적어도 딸아이는 나에게 얘기를 하니까, 힘든 모든 것을 얘기하고 내 품에 안겨 우니까,"
-그래서 안심해도 될 듯해요. 혼자 끙끙 앓는 게 진짜 문제잖아요.

곧 지나가리라 믿습니다. 힘내세요. 님은 이곳에서 좋은 인간관계 맺으며 잘 하고 계십니다. 그런 님을 따님도 닮을 거예요. ^^

하늘바람 2012-10-10 12:1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
코알라야
얼마나 마음이 아프니
저도 속상한데
님과 코알라는 얼마나 속상할까요
에잇 나쁜 것들
코알라 화이팅

북극곰 2012-10-10 15:5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 속상하네요.속이 타고 맘 아프실 달여우님과 우리 코알라에게 응원을 보태요.

책가방 2012-10-10 20:5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적어도 딸아이는 나에게 얘기를 하니까, 힘든 모든 것을 얘기하고 내 품에 안겨 우니까)..코알라와 제 아이는 많이 다를 수도 있지만... 100% 모두 얘기한다고 믿지는 마세요. 시간이 좀 흐른 후에 지난 시간 엄마에게도 못했던, 많이 아팠지만 혼자 아파했던 얘기들을 웃으면서 풀어놓을 때..아~~ 다시 생각해도 가슴이 아픕니다.
홀수는 외로운 숫자랍니다. 그걸 일찍 터득한 제 아이는 지금도 자신을 포함해서 짝수로만 친구를 사귀고, 적당히 거리를 두고, 상처받지 않을 만큼만 베풀더군요.
시간은 아무것도 해결해주지 않았습니다.
그저 아이 자신이 해결해 나가고 있을 뿐이지요.
그렇게 성숙해 가는 것이겠지만... 지켜보는 엄마의 눈에는 모든 것들의 그때 받은 상처의 부작용처럼 느껴져서 아직도 그때 그 아이들을 원망하고 있다는...ㅠㅠ

숲노래 2012-10-11 04:2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이들은 아주 자연스레 '부모와는 다르게' 살아요.
그러니, 굳이 걱정할 일이 없어요.
걱정하려 하니까 '걱정'이 참말 찾아올 뿐이에요.

아이들이 말하는 '절교'란 '어른 흉내'이니
그런 데에 마음 쓸 일은 없으리라 느껴요.
바보스러운 어른들 놀음놀이가 드러나는
텔레비전 연속극이나 연예방송을 보고
똑같이 따라하는 아이들인데
그런 것에 휘둘리지 않도록 잘 다스려 주면 되지요.

굳이 끼리끼리 학교를 다녀야 하지 않아요.
혼자서 조용히 걸어서 집과 학교를 다니다 보면
아이 스스로 새롭고 너른 세상을
잘 살펴보며 스스로 배우는 무엇인가 얻으리라 느껴요.

2012-10-11 10:52   URL
비밀 댓글입니다.

아무개 2012-10-11 15:5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흠...왠지 코알라보다 달여우님을 더 응원해야 할것 같은데요 ^^

책읽는나무 2012-10-11 17:0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사춘기!
아이들의 교우관계가 참 걱정스러운 시기입니다.에혀~
아들과 딸을 키워보니 확실히 남자아이보다도 딸아이들의 교우관계가 참 복잡하고,신경쓰인다는 것을 저도 요즘 새삼 깨닫고 있습니다.
글을 읽을적엔 코알라가 어찌 견뎌낼까? 걱정스러운데,막상 사진의 얼굴 모습을 대하니 해맑고 밝아보여서 그런지 꿋꿋하게 잘 이겨낼 수 있을 것같아 보이네요.친구들을 리드할 수 있을 것도 같은데...님의 말씀처럼 친구들이 비열해보여요.요즘 초등생들의 얼굴을 자주 대하다 보니 진실한 친구가 되어줄 것같은 얼굴 모습을 한 아이들이 몇 몇 눈에 들어오는 현상(?..점쟁이같이 말입니다.ㅋ)이 생겨 아이들의 얼굴을 관찰하는 버릇이 생겼어요.
코알라는 믿음이 가는 친구의 얼굴형인데 말입니다.분명 그 두 친구 중의 한 친구는 코알라양에게 돌아올 것같아요.누군가가 이간질을 하는 것같아 보여요.
아~ 나의 신기가 분명 맞을꺼에요.
암튼 님과 코알라가 함께 사춘기를 겪고 있는 듯해보여요.
힘내세요.^^

블루데이지 2012-10-16 00:0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코알라가 슬기롭게 잘 할거라고 믿어요..달여우님!
저도 코알라양의 응원자가 될래요!
토닥토닥^^

2012-10-19 15:03   URL
비밀 댓글입니다.

감은빛 2012-11-15 15:1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5번의 두 마디가 힘있게 와닿습니다!
코알라의 웃는 모습이 참 예뻐요!

날씨가 많이 추워졌네요.
잘 지내시죠? ^^

마녀고양이 2012-11-17 21:0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너무 많은 댓글들...
이미 읽었으나 이제사 감사 댓글을 달기도 그래서... 한번에 인사드립니다. 꾸벅~

모두들 편안한 날 되셔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