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금 뙤약볕 아래 높이 자란 풀들 사이에 화분 하나가 보인다.

원주인은 여기에 놓아두면 살 거라고 생각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실내에서 자라던 난에게는 무리한 요구다.

화단 안쪽에 있으니 잘 눈에 띄지도 않는다.

얼마나 여기 있었던 걸까. 

 

 

안고 집으로 돌아온다. 모양을 잡아주기 위한 끈을 보니 돌봄도 받던 녀석 같은데. 살아남은 두 촉을 남겨두고 깨끗하게 잘라낸 후 완전히 말라버린 뿌리를 버리고 마석을 채웠다. 영양제를 뿌리고 물에 담근다. 살아나기를.

 

 

이 산세베리아는 지난 토요일에 재활용 쓰레기장에 버려진 아이다. 좋은 화분에 제법 싱싱하고 크게 자란 녀석들인지라 누군가 데려가겠지 생각했다. 우리집에는 더이상 자리도 없고. 그런데 하루 이틀이 지나도 새주인이 나타나지 않는다. 결국 수요일인 그제 밤에 데려와서 다듬고 분갈이 흙을 채우고 영양 알갱이도 올려주었다. 온통 먼지투성이라서 열심히 닦아내고. 친정에 사진을 찍어 보내어 가져가겠냐고 물으니, 이미 있는 하나로 충분하고 하신다. 결국 우리집의 산세베리아 화분은 세 개로 늘어났다. ㅎㅎ, 예쁘긴 하다.

 

 

이 주 전에는 다른 화단에서 정말 멋진 녹보수가 화분에 심긴 채 버려져서 시들어가는 것을 보았다. 한참 망설이다가 데려오기로 결정하고 바구니 모양의 카트를 끌고 가는 도중에 우연히 왼쪽 다른 화단에서 뿌리채 뽑혀 나뒹굴고 있는 사진 속의 고무나무를 보았다. 에공. 결국 이 녀석도 카트에 담고 녹보수 화분도 카트에 담고 돌아왔다. 부랴부랴 집의 빈 화분에 있는 흙은 다 모아서 녀석을 심는데, 원주인 집에서 햇볕이 드는 한쪽 방향만 따라서 한참을 성장한데다 가지치기를 한 번도 안 했는지 한쪽으로 지나치게 기운데다 너무 잎들이 무성하여 균형을 잡을 수 없다. 중간 이파리들을 솎아 주고 겨우겨우 지지대 세 개를 세우고 지탱하는데, 제법 매력이 있다. 이 주가 지난 지금 제일 윗 부분은 우리 집의 햇볕을 찾아서 반대쪽으로 방향을 틀면서 새 이파리를 펼칠 준비를 한다.

 

 

 

이 아이들도 하나하나 주어와서 주어 온 화분과 새 흙에 심어주었더니 너무 잘 자란다.

참으로 이상한 일은 내가 직접 화원에서 구매한 녀석들보다 이렇게 주어 온 녀석들, 시들고 죽어가고 가지가 말라가던 녀석들이 우리 집에서 더 열심히 살아간다. 새로운 이파리가 나오고 쑥쑥 자라거나 꽃이 피면 마음이 행복하다. 정이 간다.

 

며칠 전에 참 기쁜 일이 있었다.

15년을 넘게 키우던 킹 벤자민이 지난 겨울 베란다의 한파에 얼었다. 어느 날 잎이 우수수 떨어지는데 손 쓸 틈이 없었다. 그리고 봄이 되어도 이파리가 나지 않았고, 볼 때마다 슬프고 우울했다. 인터넷 정보를 찾아 보니 일 년 있다가 기적적으로 다시 살아난 녀석도 있다 하길래 버리지 않고 볼 때마다 쓰다듬어 주었다. 옆 화분에 심었던 시계초와 나팔꽃 덩굴이 메마른 벤자민 가지를 타고 올라가며 꽃을 피운다. 그래서 몰랐다. 월요일에 보니, 벤자민 큰 줄기의 옆구리에 새 이파리들이 터져 나와 있는 것을. 그동안 녀석은 살아나기 위해 노력하고 있었고, 얼어버린 가지 윗부분 대신 아직은 푸르른 빛이 남아있는 아랫 줄기 어딘가를 통해 나에게 오는 길을 열심히 찾고 있었다는 것을. 사랑스럽다. 정녕 사랑스럽다.

 

고맙다, 얘들아.

 

 

추신.

사람들도 그렇다고 믿는다. 모든 이들이 있는 그대로의 자신으로 성장하기 위하여 최선을 다하며 살고 있다고,

때로는 방향을 잘못 잡아서, 방법을 몰라서, 환경이 억울하여 방황하고 잘못도 저지르지만

그 연약해서 악한 면 안에는 강인하고 선한 면도 함께 가지고 있다고,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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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로 2018-08-10 14:5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산세베리아를 결국엔 데려오셨군요. 저렇게 멀쩡한 것을 버리는 사람에게도 이유가 있기를.. 어쨌든 우리 마고님은 진정 green thumb이시군요!! 언제 그 사랑의 비결을 알려주세요~~^^

마녀고양이 2018-08-11 15:21   좋아요 0 | URL
그렇죠, 버리는 분들은 또 나름의 사정이 있으리라고 생각해요. 오늘 도착한 선인장 때문에 작은 화분을 주으려고 재활용 쓰레기장을 몽땅 돌았는데, 이번에는 버린 게 하나도 없더라구요. 제 투덜거림을 들었을까요? ^^

cyrus 2018-08-10 17:3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식물들이 마고님의 애정을 듬뿍 받아서 잘 자랐네요. ^^

마녀고양이 2018-08-11 15:21   좋아요 0 | URL
오오......... 맞아요. 제 애정이 듬뿍 들어가요. 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