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콰이어트 Quiet - 시끄러운 세상에서 조용히 세상을 움직이는 힘
수전 케인 지음, 김우열 옮김 / 알에이치코리아(RHK) / 2012년 6월
평점 :
구판절판
마크 트웨인은 세상에서 가장 위대한 장군을 찾아서 전 세계를 뒤지고 다닌 한 남자의 이야기를 한 적이 있다. 남자는 그가 찾던 사람이 이미 죽어서 천국에 갔다는 얘기를 듣고서, 그를 찾아 천국의 문으로 찾아간다. 성 베드로는 평범하게 생긴 남자를 가리킨다.
“저 사람은 역사상 최고의 장군이 아닙니다. 저 사람이 살아 있었을 때 저는 저 사람을 알고 있었어요. 저 사람은 그냥 구두수선공일 뿐이란 말입니다.”
“그건 나도 알고 있네. 하지만 저 친구가 장군이 되었더라면 역사상 최고의 장군이 되었을 걸세.”
우리 모두, 위대한 장군이 되었을지 모를 구두수선공들을 찾아봐야 한다. 내향적인 아이들, 집에서건 학교에서건 운동장에서건 재능을 억압당할 때가 너무도 많은 아이들에게 주의를 기울여야 한다는 뜻이다. (p.370)
우리는 주어진 재능과 가능성을 충분히 활용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그 때문에 각자의 개성을 존중하고 창의성을 끌어올릴 수 있는 문화를 조성하자는 것이 화두가 되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역설적이게도 이러한 문화가 또 다른 문제점을 가져왔습니다. 각자의 개성이 존중되어야 한다는 인식이 자리 잡으면서 자신의 개성을 들어낼 줄 아는, 적극적이고 능동적인, 그리고 사교적인 성격이 ‘좋은’성격으로 비추어지면서, 모든 사람이 ‘좋은’성격을 갖기 위해 힘쓰게 된 것이죠. 아마 수많은 자기계발서의 제목만 보더라도 알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사실 전 세계 70억 인구가 모두 창의적일 필요는 없을 텐데 말이죠.
이 책 의 저자 수전 케인은 이러한 사회적 현상에 문제를 제기합니다. 내향적인 사람들도 충분히 능력이 있을 뿐만 아니라 그 자체로도 충분히 가치가 있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성공한 사람 중 많은 사람이 내향적인 성격이었다는 것이죠. 즉, 무엇보다 외향적인 성격이 ‘좋은’성격으로 간주하는, 그러한 흐름을 만들어 내는 사회시스템이 문제라는 것입니다.
<저자 수전 케인의 2012년 TED 강연 (동영상을 시청하시고 싶으시면 http://youtu.be/xUATsuzWjec 을 클릭하세요.)>
이러한 현상에 대한 원인으로 저자는 사회구조적인 변화를 꼽고 있습니다. 농업 중심 사회에서는 ‘가족, 지인들’과 지속적인 관계를 맺고 생활하기 때문에 ‘인격’이 중시되었는데, 산업화 진행되면서 사람들이 도시로 모여들고, 그와 함께 ‘낯선’ 사람들과의 생활이 비중을 차지하게 되면서 ‘인격’이 아닌 ‘성격’의 문화로 바뀌었다는 것입니다.
‘인격의 문화’에서 ‘성격의 문화’로 전환했고, 결코 회복하지 못할 개인적 불안이라는 판도라의 상자를 열어버렸다. (워런 서스먼Warren Susman, p.46)
그러면서 ‘좋은’성격이란 사교적이고 적극적이며 활발한, 외향적 성격으로 정의가 되었고요. 거기에 데일 카네기의 자기계발서를 비롯한 수많은 책들과 강좌들이 부채질하면서 위와 같은 형상은 더욱 뿌리 깊게 내리게 됩니다.
위 내용(1부: 외향성이 롤모델인 세상)은 제가 이 책에서 가장 흥미롭게 읽은 부분이기도 한데요, 단순히 외향적 성격과 내향적 성격이 왜 좋은지, 그리고 어떻게 해야 하는지가 아니라 애초에 그런 문화가 어떻게 생겨나게 되었는지를 설명함으로써 좀 더 깊은 생각을 이끌어 낸다고 생각합니다.
또 한 가지 제가 흥미롭게 읽은 부분은 내향성과 외향성을 바라보는 동·서양의 시각차입니다. 물론 동양에서는 내향성을, 그리고 서양에서는 외향성을 중시한다는 이야기는 짐작되지만, 그럼에도 무척 흥미로웠습니다. <논어>의 <술이(述而篇)>에는 ‘三人行必有我師焉’ 이라는 구절이 있습니다. 세 사람이 길을 가면 그 중에 반드시 내 스승이 있다는 뜻이죠. 이는 동양에서는 겸손을 가까이하고, 자만을 멀리하라고 가르쳤기 때문입니다. 이처럼 동양에서는 다른 사람들 앞에 자신을 내보이는 것보다는 자신을 낮추는 내향적인 성격을 존중하는 문화가 자리 잡은 반면, 서양에서는 반대로 외향적인 성격을 지향하는 문화가 형성된 것이죠. 그렇다면 그 이유는 무엇일까요? 한 가지 예로 다음 그림에서 가운데 있는 그림은 A그룹과 B그룹 중 어느 곳에 속하는 것이 자연스러울까요?
<EBS 다큐프라임 ‘동과 서’ 중에서>
위의 물음에 동양권에서는 대다수가 A그룹을 답한 반면, 서양권에서는 B그룹을 답하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그 이유는, 동양권에서는 우주를 하나의 ‘장(場)’의 개념으로 인식하기 때문에 전체적인 조화를 이루는 동글동글한 꽃잎의 A그룹을 택한다고 합니다. 그러나 서양권에서는 우주와 개인을 각각 독립적이고 개별적인 존재로 인식하기 때문에 대상을 하나하나 분석하여 꽃의 줄기가(다른 것들은 다르더라도) 모두 일치될 수 있도록 B그룹을 택한다는 것입니다. 이처럼 동양권에서는 전체를 중심으로 사고하며, 서양권에서는 개인, 개별적으로 사고하기 때문에 앞서 말씀드린 성격에 대한 차이가 나타난다는 것입니다.
다른 설명은 집단 정체성에 있다. 아시아에서는 팀을 중심으로 움직이기는 하지만 서양인들이 생각하는 팀과는 방식이 다르다. 아시아에서 개인은, 자신을 자신보다 더 큰 전체의 일부로 인식한다. 가족이든, 기업이든, 공동체든. 그리고 집단 내에서 조화를 이루는 일에 어마어마한 가치를 부여한다. 그들은 계층 내에서 자신의 위치를 받아들이며, 집단의 이익을 위해 자신의 욕구를 무시하기도 한다.
반대로 서양 문화는 개인을 중심으로 조직되어 있다. 우리는 자신을 온전한 개체로 바라본다. 우리의 운명은 자신을 표현하고, 자신의 지복을 따라가고, 지나친 제약에서 벗어나고, 오직 우리만이 이 세상에서 해야 할 일을 하는 것이다. 우리는 사교적일 수는 있지만, 집단의 의지에 굴복하지도 않고, 아니면 적어도 그렇게 생각하고 싶어하지 않는다. 우리는 부모를 사랑하고 존경하지만, 복종이나 억제 등의 느낌을 주는 효심 같은 개념에는 분개한다. -중략- 그렇다면 서양인들이 대담함과 언어 기술이라는, 개성을 키워주는 특성을 중시하는 반면 아시아인이 조용함과 겸손함과 섬세함이라는, 집단결속을 굳게 하는 특성을 중시하는 것도 그럴 법하다. (p.288)
그렇다면 내향적이거나 외향적인 성격은 선천적일까요, 후천적일까요? 저자는 둘 다라고 합니다.
유전 가능성이 50퍼센트라는 말은 내 내향성의 50퍼센트가 부모에게서 물려받은 것이라거나, 나의 외향성 정도와 내 가장 정친한 친구의 외향성 정도의 차이 중 50퍼센트가 유전 때문이라는 얘기가 아닐 수 있다. 내 내향성의 100퍼센트가 모두 유전 때문일 수도 있고, 반대로 전혀 아닐 수도 있다. 아니면 헤아릴 수 없을 만큼 다양한 유전자와 경험의 조합 때문일 확률도 높다. (p.174)
그리고 유전적 차이는 시작점 자체가 눈에 띄게 확연히 다르기 보다는 어떤 특징을 물려받은 사람은 경험을 통해 그 특성을 강화해 나가는 경향이 있다고 합니다.
언젠가 심리학자 데이비드 리켄David Lykken이 <애틀랜틱>에 이렇게 썼다. “담장에 몇 번 올라간 다음에는 곧 둔감해져서 지붕으로 올라간다. 다른 아이들은 하지 않을 온갖 것을 경험하게 된다. 음속의 장벽을 처음으로 깨뜨린 파일럿인 척 예이거Chuck Yeager가 폭격기의 몸체에서 로켓추진 비행기로 옮겨 타 버튼을 누를 수 있었던 것도 그가 태어날 때부터 나와 그만큼 달랐기 때문이 아니라, 기질 때문에 나무 타기에서부터 시작해 차츰 위험하고 흥분되는 일에 지난 30년간 도전했기 때문이다.” (p.175)
여기서 중요한 것은 위와 같은 기질은 결코 바뀌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노력을 하더라도 어느 정도까지의 얘기이며, 이러한 성격의 흔적은 어른이 되어서도 결코 사라지지 않는다는 것이죠. 그래서 자신의 성격에 잘 맞는, 예를 들어 자극이 과하지도 않고 부족하지도 않고, 지루하거나 불안하지도 않은 환경, 이른바 ‘최적수준의 각성’이라는 ‘스위트 스폿sweet spot’ 이라는 환경을 조성하고 유지하는 노력이 필요합니다. 사람에 따라 음악이나 TV시청 시에 볼륨을 상대적으로 크게 또는 작게 듣는 것처럼 말이죠.
또한, 자신이 집중하고 즐길 수 있는 일을 찾을 것을 주장합니다. 이는 ‘자유특성이론Free Traits Theory’에 관련된 것인데요, 이에 따르면 우리는 특정한 성격 특성을 타고나거나 문화적으로 함양되지만 ‘개인에게 핵심이 되는 프로젝트’를 위해서는 거기에서 벗어난 행동을 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마치 내향적인 사람이 강연을 할 때에는 외향적인 사람의 모습을 보이는 것처럼 말이에요. 가면을 쓴다고 할까요?
저자는 사회 시스템 대부분이 외향적인 사람에게 맞추어져 있음을 지적합니다. 학교 시스템 역시 외향적인 아이에게 최적화되어 있죠. 우리나라에서도 수업시간에 질문하고, 발표하고, 적극적으로 참여하는 것을 장려하는 것을 보면 저자가 말하는 미국 학교나 한국의 학교나 크게 다르지 않아 보입니다. 이러한 것들을 변화시키기 위해서는 내향적인 사람, 외향적인 사람에게 각각 맞춘 환경이 필요하겠지만, 우선 ‘좋은’성격에 대한 선입견부터 바꾸어 나가는 것이 가장 먼저 필요하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성격은 그저 개인의 특성이지 목표(좋은 성격이라는)가 되어선 안 되잖아요?
새라는 눈물을 터뜨리고 말았다. 그녀도 어릴 때 수줍음이 많았고, 그런 끔찍한 짐을 자기 딸 에이바에게 물려주었다는 데 죄책감을 느낀 것이다. (p.378)
이런 고민, 이런 죄책감은 사실 누구도 갖지 않아도 될 것들인데 말이죠. 이젠 좀 그냥 ‘내버려두는 것’도 필요할 때라는 생각이 듭니다.
*사족을 달면, 수전 케인이라는 이 분 글을 재미있게 쓰시더군요. 간간히 크게 웃었습니다. 예를 들면,
그들에게 하이파이브를 하지 않고서는 안으로 들어갈 수 없다. 내가 해봐서 안다. (p.67)
이 책이 출간되기 전에 읽은 독자 중 몇몇은 이자벨의 인용문이 틀렸을 것이라고 이야기했다. “2학년짜리가 누가 그렇게 말을 해요!” 하지만 이것이 그 아이가 실제로 한 말이다. (p.375)
같은 것들이요. 혹시 저만 웃었나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