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폐전쟁 4 - 전국시대 화폐전쟁 4
쑹훙빙 지음, 홍순도 옮김 / 알에이치코리아(RHK) / 2012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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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판절판


 2008년에 출간된 화폐전쟁은 무척 화제였습니다. 무엇보다 재미가 있었기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솔직히 말해서 인기를 끌었던 것에 비하면 올해의 책과 같은 추천도서 목록에서는 다소 부진했다고 생각합니다. 실제로 한국경제 이외에서는 2008년 올해의 책 목록에 올라가지 못했습니다(올해의 책을 무조건 신뢰하진 않습니다만).

 

 그 이유는 <화폐전쟁>이 팩션(fact+fiction)이었기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따라서 사실과 저자의 추측을 구분할 필요가 있는 것이죠. 만약, 무작정 저자의 말을 믿을 경우 <화폐전쟁>은 매우 위험한(?) 책이 돼버립니다. 제2차 세계대전이나 미국 대통령의 암살, 그리고 1997년에 아시아에 불어 닥친 IMF 외환위기까지 이 모든 것들이 세계 금융재벌(로스차일드를 비롯한)의 의도에서 비롯된 것으로 되어버리기 때문이죠. 이러한 저자의 주장을 반박할 지식이나 증거는 없습니다만, 이를 무작정 믿을 수도 없다고 생각합니다. 때문에 사실과 추측 또는 허구를 구분할 재간이 없는 저는 <화폐전쟁> 1권 이후로는 읽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최근 출간된 <화폐전쟁 4: 전국시대>를 읽게 된 이유는 목차를 보고 흥미를 느꼈기 때문입니다. 목차를 살펴보니 파운드화를 밀치고 달러가 세계 기축통화로 자리 잡고 어떻게 그 자리를 지켜왔으며, 이 와중에 유로화는 어떻게 탄생하게 되었으며, 앞으로 기축통화를 둘러싼 각국의 경쟁구도가 어떻게 변할지를 저자의 시각에서 들어볼 수 있을 것이라는 기대가 들었습니다. 또한, 앞서 말씀드린 기축통화를 둘러싼 20세기의 경제사(史)를 정리하는 데도 도움이 될 것 같았습니다. 파운드와 달러의 대립, 프랑스와 독일을 중심으로 한 유로화의 탄생 등의 이야기는 이미 많이 알려진 사실이기 때문에 어느 정도 사실과 추측을 구분할 수 있지 않을까 싶은 생각도 들었고요.

 

 이 책 <화폐전쟁 4: 전국시대>의 전체적인 내용은 19세기 미국이 경제 대국으로 성장하면서 영국과 대립구도를 형성하고, 1930년대 경제 대공항과 제2차 세계대전을 거치면서 달러가 파운드화를 완전히 밀어내고 기축통화로 자리매김하게 되는 과정. 그리고 1970년대 브레튼 우즈 체제가 무너지면서 전 세계가 달러로 통하게 되고, 이 가운데 유럽이 유럽연합을 출범하고 유로화를 탄생시킨 내용이 주를 이루고 있습니다. 그리고 앞으로 달러와 유로화에 대응하기 위해 아시아에서도 단일통화(야위안) 체제를 구축할 필요가 있다는 주장이 덧붙여 있고요.

 

 4권 <화폐전쟁 4: 전국시대>의 내용이 위와 같다면, 기존의 1권에서 이야기하는 숨겨진 뒷이야기들과 추측 등을 무척 재미있게 읽으셨던 분들은 다소 흥미를 잃으실지도 모르겠습니다. 저 역시 재미 면에서는 단연 1권이 재미있었습니다. 그러나 경제사(史)를 바라보는, 그리고 현재의 경제위기 등에 대한 저자의 관점을 파악하고 이해하고, 배우기에는 이번의 4권이 더욱 좋았습니다. 즉, 4권이 더욱 알차다고 할까요?

 

 몇 가지 예를 들어보면 이렇습니다.

 먼저 경제성장에 관한 이야기입니다. 현재 주로 이야기되는 경제성장 모델의 핵심은 개방과 자유(규제철폐 등)입니다. 이에 대해 장하준 교수님은 말도 안 되는 소리라고 하셨고요. 이 책의 저자 쑹훙빙 역시 이와 같은 주장을 합니다. 19세기의 미국이나 20세기 중후반의 일본 모두 높은 관세 등의 보호무역과 전략적 산업육성 등을 통해 성장했다는 것이지요.

 

 미국이 강대국으로 부상한 19세기 전체를 통틀어 미국의 관세율은 평균 40퍼센트 이상을 유지했다. 가장 낮은 해에도 20퍼센트 이상을 굳건하게 지켰다. 그리고 1900년에 이르러 미국의 산업 경제는 드디어 세계 1위를 차지하게 되었다. 보호 관세 정책에 힘입어 일궈낸 경제 기적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p.135)

 

 한마디로 ‘높은 관세, 고임금, 막강한 제조업, 과학기술 중시, 시장 확장’ 전략이 미국 산업 경제의 부흥을 이끌었다고 단언해도 좋을 듯하다. (p.137) - 미국

 

 정확한 전략, 철저한 실행, 주도면밀한 지도, 전략 산업에 종사하는 토종 기업에 대한 전폭적인 지원과 절대적인 보호는 일본 전략 산업이 눈부신 성공을 이룩할 수 있었던 결정적인 요소였다. (p.351) - 일본

 

<저자는 미국과 일본 모두 과거 보호무역과 전략적 산업육성 등을 통해 경제성장을 이뤘다고 주장합니다.>

 

 좀 더 자세히 말하면 미국의 경우, 대공황 이후 미국 경제는 곤두박질칩니다. 당연한 소리죠. 실업률이 치솟는 것도 당연하고요. 그런데 이것이 제2차 세계대전이 발발하면서 해결됩니다(양적완화가 해결한 것이 아니라). 전쟁으로 물자가 부족한 해외 국가들에 물량을 퍼붓다 보니 미국 경제는 활기를 띠고, 실업률은 낮아집니다. 그런데 이 제2차 세계대전이 끝날 경우 문제가 생깁니다. 넘쳐나는 물자를 해결할 방법이 없어지는 것이죠. 따라서 이러한 공급과잉을 해결하지 못하면 다시 기업은 투자를 줄이고, 실업률은 치솟을 것이 뻔하므로 미국은 해외로 눈을 돌립니다. 그래서 이후 미국은 자유무역의 신봉자가 됩니다. 여기까지가 저자의 주장입니다. 결코 설득력이 부족해 보이진 않습니다. 이미 많은 학자들도 같은 주장을 하고 있고요.

 

 하나 더 예를 들어보겠습니다. 최근 시행되고 있는 양적완화 정책에 관한 이야기를 해볼까요? 이는 이른바 돈을 시장에 풀어서 소비를 끌어 올리고 투자를 활성화해 경제회복을 추구한다는 것인데, 저자는 이에 대해 회의적입니다.

 

 양적완화 정책은 달러화 채무 때문에 발생한 위기를 재정적자를 늘리는 방식으로 해결하려는 시도로, 이는 결코 근본적인 해결책이 될 수 없다는 것입니다. 미국은 이미 루스벨트 대통령 시절 경제 대공황을 극복하기 위해 세 차례에 걸쳐 양적완화 정책을 시행했지만, 잠깐의 호황기를 맞았을 뿐 재차 하락했다는 것이죠. 그뿐만 아니라 정부가 돈을 푼다고 해서 그것이 시민에게로 흘러들어 가는 것은 아니며, 결코 소비를 진작시킨다고 장담할 수도 없다는 것입니다.

 

 시중 은행에 의한 신용 창조는 대출을 통해 이루어진다. 즉 돈을 빌리는 사람이 있어야 신용 창조가 가능하다는 얘기다. 돈을 빌리는 사람이 없거나 은행이 돈을 빌려주려 하지 않을 경우, 중앙은행이 발행한 염가 화폐는 실물 경제로 흘러 들어갈 수 없다. (p.121)

 

 즉 소비 자극 정책이 경제성장에 큰 도움이 될 것이라는 생각이다. 이는 앞뒤가 뒤바뀐 논리다. 소비란 무엇일까? 예를 들어보자. 한 농민이 달걀 100개로 시장에서 옷 한 벌을 교환했다면, 이는 농민이 자신의 저축을 이용해 소비 행위를 한 것이다. 요컨대 소비는 일종의 교환 행위다. 소비는 생산을 전제로 한다. 생산이 없으면 소비도 없다. 소비량을 늘리려면 반드시 생산량을 먼저 늘려야 한다. (p.566)

 

 지난 9월 14일 미국은 제3차 양적완화를 발표했습니다. 이러한 가운데 위와 같은 저장의 주장은 눈여겨 볼 만하다고 생각합니다. 과연 양적완화 정책이 장기적으로 힘을 발휘할 수 있을까요? 아니면 저자의 말대로 한계에 부딪힐까요?

 

 <2012년 9월 14일 미국은 제3차 양적완화를 발표했습니다.>

 

 이와 같은 경제현안을 바라보는 저자의 시각이 저에게는 무엇보다 이 책을 재미(?)있게 읽을 수 있었던 부분이었습니다. 달러제국이니, 파운드 블록이니 하는 이야기보다 말이죠.

 

 마지막으로 우리나라와 관련지어 이야기를 해볼까 합니다. 결국 이런 이야기들이 우리나라에는 어떤 영향을 미치고 어떤 시사점을 주는지가 무엇보다 중요하니 말이에요.

 

 먼저, 미국의 경제위기입니다. 저자는 최소 10년 이상이 필요할 것으로 보더군요. (미국채권)채무를 담보로 신용을 창조하는 현재의 미국 경제시스템은 필연적으로 버블을 만들기 때문에 불안정성을 내포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따라서 이러한 문제들을 근본적으로 해결하기 위해서는 최소 10년 이상이 필요하다는 것이죠. 우리나라는 수출 의존도가 매우 높고, 수출에서 북미시장이 차지하는 비중을 생각하면 결코 좋은 소식은 아니네요.

 

 다음으로 농업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과거20세기 소련은 산업화를 위해 다소 농업을 희생했다고 할 수 있습니다. 결국 많은 식량을 수입에 의존하게 되었죠.

 

 소련 경제의 가장 취약한 부분인 농업에서 가장 먼저 문제가 발생했다. 소련은 지구 육지 면적의 6분의 1에 달하는 넓은 땅덩어리를 갖고 있었다. 그런데 인구는 고작 3억 명밖에 되지 않았다. 그런데도 식량을 자급자족하지 못하고 1960년대 이후부터 거의 수입에 의존했다. (p.203)

 

소련의 농업 경제는 이처럼 산업 발전에만 치중한 불균형 성장 정책 때문에 오랜 기간 침체기에 빠졌다. 소련의 실책은 식량의 자급자족을 불가능하게 만든 것뿐만이 아니었다. 중공업 발전만을 중시함으로써 경공업 부문에 대한 투자 감축을 간과한 거 역시 결정적 실책이라고 할 수 있다. 당연히 국제 경쟁력을 갖춘 각종 제품을 생산하는 것이 불가능했다. (p.208)

 

 이러한 소련의 정책이 결국 약점으로 작용하여 미국에 무너지게 하는 결과를 초래하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우리나라 역시 아직 농업 부문이 상당히 취약하죠(매우인가요?). 그래서 시행하는 FTA마다 농업무문에서 우리나라가 우위에 있는 경우는 눈을 씻고 찾아봐도 보이질 않고요. 소련의 사례를 보면 깊이 생각해 봐야 하지 않을까요?

 

<11월 27일 방송된 KBS 뉴스 중에서>

 

 마지막으로 우리도 익히 들은바 있는 부채 문제입니다. 저자는 과거 사례를 들어 GDP대비 부채비율이 299.8%가 한계라고 합니다. 이를 넘으면 국가경제가 제대로 작동할 수 없다는 것이죠. 1930년대 미국(299.8%)이 그랬고, 2008년의 미국(358.2%)이 그랬다고 합니다. 그런데 지난 11월 27일 금융감독원이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우리나라 정부, 기업, 가계의 총부채가 GDP의 2.3배(234%)에 이르렀다고 합니다. 즉 저자의 말대로라면 한계에 근접했다는 것이죠.

 

 그러면 이제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할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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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별의 왈츠 밀란 쿤데라 전집 4
밀란 쿤데라 지음, 권은미 옮김 / 민음사 / 2012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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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밀란 쿤데라’라는 작가는 제가 무척 좋아하지만, 좋아한다 말하기가 어려운 작가입니다. 이번에 읽게 된 <이별의 왈츠>를 포함해 기껏해야 세 작품을 읽었기 때문입니다. 총 열다섯 권으로 예정된 밀란 쿤데라 전집에서 세권이면 20%이니까요. 물론, 한 작품만으로도 얼마든지 좋아한다 할 수도 있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저의 경우엔 쿤데라의 작품을 하나라도 온전히 이해한 것도 아니며, 많은 작품을 읽은 것도 아니기 때문에 어렵다는 것이죠.

 

 그럼에도 밀란 쿤데라의 작품을 좋아한다 하는 것은 인간의 삶에 대한 그의 통찰력 때문입니다. 문장 하나하나가 우리네 인생을 참 절묘하게 표현한다고 할까요? 그래서 그의 작품은 읽는 내내 감탄을 연발하게 합니다. 이는 아마 많은 분이 동감하실 것 같습니다. 책에 줄을 그으며 읽으시는 분들은 책에 밑줄이 한 가득할 테고, 마음에 드는 문장을 노트에 옮겨 적으며 읽으시는 분들은 아마도 꽤 손목이 아프실 것 같습니다. 이번에 읽은 <이별의 왈츠> 역시 그랬습니다.

 

 유명하고 인기 있는 트럼펫 주자 클리마는 한적한 시골의 온천마을을 방문하고, 이 온천마을에서 간호사로 근무하는 루제나를 만나게 됩니다. 클리마는 아내가 있었고, 아내를 사랑하기에 루제나와의 관계는 그저 하룻밤의 만남이었죠. 그런데 어느 날 루제나가 임신을 한 것 같다며 클리마에게 연락을 해옵니다. 이것이 시작이죠. 이 소설은 이후 5일 동안의 이야기를 담고 있습니다. 그런데 재미있는 것은 시작은 클리마와 루제나의 관계였지만, 결코 이 둘의 이야기만이 이 소설의 중심이 아니란 것이죠.

 

 먼저, 클리마는 아내를 누구보다 사랑하고, 아내가 누구보다 아름답다고 생각합니다. 그럼에도 수많은 여자와 관계를 맺으며 살아가죠. 그 이유는 오히려 다른 여자를 만나고 관계를 맺을 때마다 아내를 더욱 사랑하게 된다는 것입니다.

 

 “아무도 이 사실을 이해 못해요. 그 누구보다 제 아내는 더욱 이해 못 하죠. 그녀는 위대한 사랑이 우리가 바람피우는 걸 포기하게 만든다고 생각해요. 하지만 잘못 생각하는 겁니다. 매순간 뭔가가 저를 다른 여자에게 접근하도록 만들어요. 그러나 그 여자를 소유하는 순간, 마치 다시 아내 카밀라 곁으로 저를 되던져 버리는 어떤 강력한 반동에 실린 것처럼 그 여자에게서 떨어져 나가게 되죠. 그래서 제가 다른 여자들을 찾는다면, 그건 단지 매번 새로 부정을 저지를 때마다 더욱더 사랑하게 되는 제 아내에게로 저를 이끌어 주는 이 반동과 약동, 그리고 (다정함과 욕망, 겸손에 가득 찬) 이 찬란한 비상 때문이라는 느낌을 종종 받아요.” (p.50)

 

 또 한명의 주인공(?)이라 할 수 있는 루제나는 작은 온천마을에서 태어나고 자라면서, 자신의 인생에 변화가 찾아오길, 즉 한편의 영화 같은 삶이 펼쳐지길 바라며 살고 있습니다. 하지만 그런 인생이 자신에게는 없을 것이라 생각하고 점차 포기해가던 도중, 클리마를 만나고 그의 아이를 갖게 되면서 자신이 인생이 변화할 것이라는 기대를 하게 되죠. 책의 표현을 빌리자면, 체스의 폰(Pawn: 졸)이 마침내 체스 판의 끝에 다다라 여왕으로 변한 것입니다. 그리고 루제나는 임신이 이 모든 것을 가능케 했다고 생각하고요. (실제로 체스에서는 폰이 체스 판의 끝에 도착하면 자신이 원하는 말로 바꿀 수 있죠.)

 

 이 외에도 과거에는 가수였고 현재는 클리마의 아내이자 남편의 부정을 끊임없이 의심하고 질투하는 카밀라, 미국 출신의 사업가이자 깊은 신앙심을 갖고 있는 부호 베르틀레프, 몽상가적 기질이 있는 의사 슈크레타, 과거의 경험으로 인해 인간을 혐오하고 자신의 조국을 떠나려는 야쿠프, 그리고 올가, 프란티셰크 같은 많은 인물이 등장합니다. 이야기에서 차지하는 비중 역시 작지 않고요.

 

 저에게는 이 많은 인물들의 관계가 서로 복잡하게 얽혀 있는 것이 이 책을 읽으면서 느낀 가장 큰 묘미였습니다. 클리마와 아내 카밀라는 서로를 무척 사랑합니다. 그리고 서로를 너무나 잘 알고 있습니다. 그런데 서로 신뢰하진 않죠. 상대를 위해 연기를 하고, 또 그것이 연기인 것을 알면서도 연기로 답하는, 그런 관계입니다.

 

 클리마는 그녀의 어조로, 자신이 방금 말한 강연에 대해 그녀가 한마디도 믿지 않는다는 걸 깨달았다. 물론 카밀라는 그의 말을 믿지 않았다는 걸 감히 드러내진 못했다. 그녀는 자신의 불신이 그를 화나게 한다는 걸 알고 있었다. 그러나 클리마는 오래전부터 아내가 자기 말을 곧이곧대로 믿는다고 생각하지 않았다. 그가 진실을 말하든 거짓말을 하든 그녀는 언제나 자기를 의심한다는 의심이 들었다. (p.37)

 

 루제나의 경우에는 양쪽에 클리마와 프란티셰크가 있습니다. 클리마는 루제나가 그동안 원했던 삶을 가져다 줄 사람이었으며, 반면 프란티셰크는 현재의 삶을 상징하는 사람입니다. 또한, 클리마는 자신이 원하는 상대이며 프란티셰크는 자신이 멀리하고 싶어하는 상대입니다. 이런 관계에 야쿠프가 들어오면 좀 더 복잡해지는데요, 야쿠프에게 있어서 루제나는 과거를 떠올리게 하는 상대입니다. 루제나가 자신에게서 개를 빼앗으려는 모습을 보고 과거에 처형장에서 구경하고 때에 따라 집행을 돕기도 하는 사람의 모습을 보죠. 그리고 이 모습은 자신이 혐오하는 인간의 모습이며 떠나고 싶어 하는 인간의 모습입니다. 반대로 야쿠프에게 카밀라는 아름다움 그 자체이자, 자신이 떠나고 싶어 하는 모든 것들의 정반대를 상징합니다. 자신이 카밀라의 아름다움을 일찍 알았다면, 자신이 삶이 이렇게 흐르지는 않았을 것이라고 상상하죠.

 

 많은 인물이 복잡한 관계 속에 얽혀있지만, 사실은 모두가 똑같습니다. 똑같이 저마다의 행복을 원하고 있다는 것이죠. 모든 사람이 그렇겠습니다만. 어쨌든 이들은 모두 저마다의 표적을 향해 시위를 당깁니다. 하지만 아주 작고 우연한(어쩌면 우연이라고 할 수 없는) 계기로 저마다의 화살은 조금씩 어긋나게 됩니다. 야쿠프가 자신의 죽음을 온전히 자신의 선택으로 결정하기 위해 갖고 있던 조그만 알약이 엉뚱한 곳으로 흘러가면서 말이에요. 이로 인해 처음에는 아주 조금씩 어긋났던 화살들이 점점 날아가면서 더 크게 어긋나게 되고, 결국 비극적인 결말로 이어지게 되죠.

 

 

<이별의 왈츠>는 비교적 밀란 쿤데라의 초기 작품에 속하는 것 같더군요. <농담>이 1967년이고 이 작품이 1972년이니까 말이에요. 그래서인지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에서 작가 자신이 토마시를 어떻게 생각해내게 되었는지 언급하는 것처럼)작가의 직접적인 개입도 거의 없고, 비교적 쉽게 읽을 수 있었습니다. 밀란 쿤데라의 작품을 처음으로 읽어보고 싶으신 분들에게는 <농담>과 <이별의 왈츠>가 좋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드네요. 물론 정말 많은 분들이 극찬하는 쿤데라의 매력은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이나 <불멸>에서 더욱 흠뻑 느낄 수 있겠지만요.

 

※ 개인적으로 <이별의 왈츠> 표지의 마그리트 그림(9월 16일.1957)이 지금까지 밀란 쿤데라 전집 시리즈의 표지들 중 가장 좋았습니다. 그래서 정말 조심히 읽었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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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빅데이터, 경영을 바꾸다]를 읽고 리뷰 작성 후 본 페이퍼에 먼 댓글(트랙백)을 보내주세요.
빅데이터, 경영을 바꾸다
함유근.채승병 지음 / 삼성경제연구소 / 2012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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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쇼핑의 과학>이라는 책이 있습니다. 이 책은 컨설팅 회사 인바이로셀의 CEO 파코 언더힐이 CCTV를 가지고 소비자의 구매행동을 분석한 책입니다. 사람들은 대부분 오른손잡이이기 때문에 매장을 둘러볼 때 주로 오른쪽으로 돌게 된다거나, 남성과 여성이 의류매장에서 액세서리를 구매할 때 다른 모습을 보인다는 내용 등을 담고 있습니다. 여성의 경우 의류매장에서 옷을 입어본 후에 거울을 보며 그 옷에 어울리는 액세서리를 같이 구매하는 반면, 남성들은 비교적 단순한 행동을 보입니다. 의류를 구매하고 계산하면서 눈에 보이는 액세서리를 같이 계산해 달라고 한다는 것이죠. “음, 이것도 같이 계산해주세요.”라고 말이죠. 저는 이 책의 내용이 얼마나 타당성이 있는지 여부를 떠나, CCTV로 소비자의 구매행동을 관찰해 이러한 결과를 얻어냈다는 것이 무척 놀라웠습니다.

 

 <머니볼>이라는 영화가 있습니다. 브래트 피트가 주연해 지난 2011년에 개봉되었던 영화죠. 이 영화의 줄거리는 메이저리그 만년 최하위 ‘오클랜드 애슬레틱스’의 감독 빌리 빈(브래드 피트)이 선수들의 나이, 사생활, 부상 등이 아닌, 오로지 데이터에만 의존해 팀을 4년 연속 포스트시즌에 진출시키는 ‘기적’을 다루고 있습니다.

 

 <파코 언더힐의 『쇼핑의 과학』, 브래드 피트 주연의 『머니볼』>

 

 위의 두 가지 사례는 어찌 보면 누구나 할 수 있는 일들을 다루고 있습니다. 최근에 대부분의 매장에는 CCTV가 있으며, 기업 역시 이와 같은 데이터를 언제든 얻을 수 있습니다. 또한, 메이저리그의 모든 팀과 감독들 역시 선수 관련 데이터는 충분히 갖고 있습니다. 다만 어떻게 활용하느냐에 따라 달라지는 것이죠.

 

 이처럼 데이터는 누가, 언제, 어떻게 사용하느냐에 따라 결과와 가치가 달라진다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지금은 활용할 수 있는 데이터가 너무나 많은 것이죠. 감당할 수 있는 범위와 양이 아닙니다. 이 책 <빅데이터, 경영을 바꾸다>에 따르면 하루에 쏟아지는 데이터의 양이 약 7.5엑사바이트라고 합니다. 이는 보통 1테라바이트의 용량을 가진 컴퓨터 하드디스크드라이브(HDD)가 750만 대가 필요한 양이며, 보통 인터넷에서 제공되는 2기가바이트 내외의 영화 37억 5천만 편에 해당하는 양입니다. 이만큼 어마어마한 양의 데이터가 매일같이 쏟아지는 상황에서 의미 있는 정보를 찾아내기란 쉽지 않습니다. 이 책 <빅데이터, 경영을 바꾸다>는 엄청나게 쏟아지는 데이터들을 관리하고, 의미 있는 정보를 찾아내고 새로운 기회를 포착하는 데에 초점을 두고 있습니다. 앞으로는 데이터를 어떻게 관리·활용하느냐에 따라 기업의 운명이 엇갈릴 것이라는 주장대로 이죠.

 

<인터넷 공간을 흐르는 다양한 데이터의 규모와 속도. 2011년 기준 (p.29)>

 

 먼저 약간은 생소한 개념인 빅데이터가 무엇인지 살펴보면 다음과 같습니다.

 

 (좁은 의미의) 빅데이터: 보통 수십에서 수천 테라바이트 정도의 거대한 크기를 갖고, 여러 가지 다양한 비정형 데이터를 포함하고 있으며, 생성-유통-소비(이용)가 몇 초에서 몇 시간 단위로 일어나 기존의 방식으로는 관리와 분석이 매우 어려운 데이터 집합을 의미한다. (p.36)

 

 (넓은 의미의) 빅데이터: 기존의 방식으로는 관리와 분석이 매우 어려운 데이터 집합, 그리고 이를 관리·분석하기 위해 필요한 인력과 조직 및 관련 기술까지 포괄하는 용어이다. (p.37)

 

 즉 결코 ‘양’만의 문제가 아니라는 것이죠. 책에 따르면 이러한 빅데이터는 크게 세 가지의 특성을 갖고 있습니다. 첫째, 규모(Volume)입니다. 엄밀한 정의는 없지만, 대략 적게는 수 테라바이트에서 많게는 수 페타바이트(=1,000테라바이트) 정도 크기의 데이터 집합을 지칭하는 것이 일반적이라고 합니다. 둘째, 다양성(Variety)입니다. 이제까지의 데이터는 비교적 형태가 잘 잡혀 있고 관리하기도 쉬웠지만, 이제는 동영상, 음악, 사진, 블로그, SNS, 일반문서 등 데이터 형식이 매우 다양해졌다는 것입니다. 마지막으로는 속도(Velocity)입니다. 정보통신기술의 발달로 정보의 생성-유통-소비(이용)의 주기가 빨라지면서 이에 대응할 수 있는 역량 또한 필수가 되고 있다는 것이죠.

 

 그러면 빅데이터가 주목받게 된 배경에는 어떠한 요인들이 있는지 살펴보면 다음과 같습니다. 우선 기술 환경의 변화입니다. 하드디스크드라이브(HDD)같은 저장 매체의 기술은 점차 발달되는 반면, 저장 비용은 하락하고 있습니다. 또한, 사람과 사람, 기계와 기계 간 ‘연결’이 증가되고, 데이터를 관리 및 분석하는 기술이 급격히 진보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기업 경쟁 환경의 변화도 있습니다. 최근 소프트웨어가 중요하다는 주장이 자주 들리는데요, 그 이유 중 하나는 하드웨어가 모방이 쉽다는 것입니다. 최근 판매되고 있는 스마트폰만 보아도 알 수 있죠. 물론 저마다의 특성이 있지만 크게 보면 사실 큰 차이를 보이지는 않습니다. 이처럼 하드웨어는 범용화 되기가 쉽기 때문에 경쟁우위의 요소로 기능하기가 어렵다는 것입니다. 머지않아 소프트웨어 역시 범용화가 용이해질 것이므로 결국, 데이터가 경쟁우위의 원천으로 자리매김할 것이라는 주장입니다.

 

 다음으로 빅데이터의 활용에 따라 기업이 얻게 되는 이점을 살펴보겠습니다. 책에서는 빅데이터는 크게 네 가지의 단계로 기업의 경영혁신을 가능케 한다고 합니다. 먼저 첫 번째 단계는 생산성 향상(3장 새로운 차원의 생산성 향상)입니다. 데이터를 활용하여 비용절감효과를 가져오고 나아가 생산성 향상으로 이끈다는 것이죠. 두 번째 단계는 발견에 의한 문제 해결(4장 ‘발견’에 의한 문제 해결)입니다. 기업 활동의 곳곳에 도사리고 있는 문제를 발견하여 해결하는 단계라고 합니다. 이어서 세 번째 단계는 의사결정 향상(5장 의사결정의 과학화와 자동화)입니다. 시장과 고객에 대한 더욱 정확한 정보를 추출해 의사결정자의 정확한 판단을 돕는다는 것입니다. 마지막으로 네 번째 단계는 새로운 가치와 비즈니스 창출(6장 새로운 고객 가치와 비즈니스의 창출)입니다. 데이터를 활용하여 새로운 사업이나 기업 경영의 새로운 패러다임을 창출하는 단계를 말합니다.

 

<빅데이터에 의한 경영 혁신 단계 (p.97)>

 

 앞서 말씀드린 대로 이 책은 빅데이터의 정의, 환경, 유용성 등을 모두 담고 있습니다. 제가 언급하지는 않았지만 아직 빅데이터 역량이 부족한 우리나라(한국) 기업에 대한 전략적 제안도 담고 있습니다. 그럼에도 제가 빅데이터 ‘입문서’라고 제목을 붙인 이유는 ‘사람’과 관련 있습니다. 이 책은 자칫 빅데이터를 관리하고 분석하는 체계를 갖출 경우 거의 자동적으로 타당하고, 합리적이고, 완벽한 의사결정이 이루어진다는 것처럼 보일 수 있습니다. 물론 이 책이 기술과 경영의 측면에서 빅데이터를 다루기 때문에 그렇겠습니다만, 그럼에도 (7장 ‘빅데이터 시대, 한국은 준비되어 있는가?’와 8장 ‘빅데이터 시대, 어떻게 맞이할 것인가?’에서 약간의 언급을 제외하면) ‘사람’에 대한 이야기가 빠져있다는 생각이 듭니다.

 

 예를 들어 앞서 말씀드린 <머니볼>의 사례를 살펴볼 경우, 오클랜드 애슬레틱스 팀에서 감독인 빌리 빈(브래드 피트)의 역할입니다. 빌리 빈 감독이 아닌 다른 사람이었더라도 그처럼 기적 같은 성적이 가능했을까요? 만약 제가 감독으로 부임되고 빌리 빈 감독처럼 철저하게 데이터 중심의 운영을 했다면 어떻게 되었을까요? 확신하건데, 한두 달 내에 퇴임됐을 겁니다. 이처럼 아무리 정확하고 가치 있는 데이터와 분석결과가 있다 하더라도, 결국 그에 따른 의사결정은 사람의 몫입니다. 이 책에서도 그와 관련해 이렇게 말하고 있죠.

 

 문제의 성격에 따라 동원되는 지식과 기술도 광범위하게 흩어져 있다. 대체로 전산학 외에 수학, 통계학, 물리학, 인지과학, 경영학 등의 지식과 기술이 많이 쓰이지만, 경우에 따라서는 더욱 광범위한 공학과 심리학, 언어학, 인류학 등 인문사회과학 지식도 요구된다. (p.72)

 

 앞으로 필요한 인력은 분석된 정보를 비즈니스적인 의미로 해석할 수 있는 사람들이다. 기술은 물론 비즈니스에 대해서도 깊이 이해하고 있어 기업에서 필요한 정보와 지식이 무엇이며, 이를 빅데이터로부터 어떻게 얻을 수 있을지 제시할 수 있어야 한다. (p.325)

 

 이 책의 294페이지에서 언급된 이야기 역시 비슷한 사례라 할 수 있습니다. 한국 경영자들은 인지 스타일 점수가 평균 45.5점으로 세계 평균 41.8점을 상회했다고 합니다. 이 점수가 높을수록 데이터에 근거한 분석적 의사결정 성향이 강한 것을 뜻합니다. 따라서 한국 경영자들의 인지 스타일 점수가 높은 편이라면, 즉 데이터에 근거한 의사결정 성향이 강하다면 편견과 같은 심리적 오류 역시 적어야 합니다. 그러나 한국 경영자 집단은 분석적 성향이 강할수록 심리적 오류를 더 자주 범했다고 합니다. 이 이야기 역시 제가 앞서 언급한 ‘사람’의 문제가 아닐까 합니다.

 

 통념과는 확연히 다른 이러한 결과는 무엇을 의미하는 것일까? 이는 의사결정 과정에서 데이터가 현실의 문제점을 편견 없이 판정하는데 이용되지 못했음을 보여준다. 미리 자신이 특정한 방향으로 편향된 결론을 내려놓고, 그저 이를 합리화하는 수단으로 데이터를 이용한다는 것이다. 그러면 데이터는 오류의 교정 역할을 전혀 하지 못하고, 오히려 오류를 증폭시키는 도구로 전락하게 된다. (p.295)

 

 이처럼 똑같은 데이터에서 의미와 가치를 찾아내는 데는 기술적인 요소뿐만 아니라 경영자 혹은 의사결정자의 역량도 필요합니다. 최근 비즈니스 관련 도서나 자기계발 도서에서 ‘인문학’의 중요성이 자주 언급되는 것도 이와 같은 맥락에서 이해할 수 있습니다. 같은 상황 속에서 같은 현상을 목격하더라도 누구는 ‘창의적인’ 아이디어를 창출하는 데에 반해, 누구는 그저 ‘개선된’ 아이디어를 창출하는 데에 그친다는 것이죠. 따라서 (“인터넷 이후 기업에 가장 큰 영향을 미칠 것으로 기대외는 것이 빅데이터(Big Data)이다.”라는 ≪네이처(Nature)≫의 글대로 라면) 앞으로 미래를 좌우할 빅데이터를 최대한 가치 있게 활용하기 위해서는 빅데이터를 활용할 수 있는 사회적 및 경영환경의 구축과 그를 판단할 수 있는 의사결정자의 안목과 통찰력이 함께 필요할 것으로 생각됩니다.

 

 ※ 사족을 달면 이 책의 22페이지에서는 구글의 전 CEO 에릭 슈미트(Eric Schmidt)가 “문명이 시작되면서부터 2003년까지 인류가 쌓아 올린 데이터가 5엑사바이트 수준”이라고 이야기했다고 합니다. 매일같이 7.5엑사바이트의 데이터가 쏟아진다는 것에 비하면 무척 적은 양이죠. 그러면 매일같이 쏟아지는 현재의 데이터가 과거의 데이터들보다 질적인 면에서도 월등히 가치 있는지는 한번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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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10-22 09:44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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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중요한 것은 무엇인가 - 게리 해멀이 던지는 비즈니스의 5가지 쟁점
게리 해멀 지음, 방영호 옮김, 강신장 감수 / 알키 / 2012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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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게리 해멀 교수의 책을 읽은 것은 <꿀벌과 게릴라>, <경영의 미래>에 이어 이 책이 세 번째입니다. 처음 게리 해멀 교수의 책을 읽게 된 계기는 아마도 많은 분들과 같은 이유에서 라고 생각합니다. 2008년 월스트리트 저널이 발표한 ‘세계적 경영대가(GURU)’의 순위에서 게리 해멀 교수가 1위에 선정되었기 때문이죠. 피터 드러커나 톰 피터스, 필립 코틀러, 빌 게이츠 등 그동안 제가 알고 있던 사람이 아닌 것이 조금 놀라웠습니다. 그때 당시 월스트리트 저널이 발표한 순위를 보면 다음과 같습니다.

 <월스트리트 저널이 발표한 세계적 경영대가(GURU). 2008년 5월 6일자.>

 

 순위에도 관심을 갖기는 했습니다만, 무엇보다 어떤 이유에서 1위에 선정되었는지가 무척 궁금했고 그 후에 게리 해멀 교수의 책들을 찾아 읽기 시작했지요. 그렇게 관심을 두고 있던 차에, 2012년에 출간된 신작이 우리나라에도 소개되어 읽게 되었습니다. 이 책은 크게 다섯 가지의 주제를 담고 있는데요, 그 다섯 가지는 가치, 혁신, 적응성, 열정, 이념입니다. 주제만 보면 특별할 것이 없어 보이기도 하는데요, 이 다섯 가지는 서로 연결되거나 순서가 정해진 것이 아닌 개별적인 이야기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1. 지금 중요한 것은 ‘가치’이다.

 미심쩍다면 한 번 더 실험을 해보자. 이렇게 해보자. 직원회의에 참석할 기회가 생겼을 때, 직원들이 프레젠테이션을 보느라 지쳐서 눈이 게슴츠레해질 때까지 기다렸다가 회사에 정말로 더 필요한 것은 ‘사랑’이라고 말해보자. 기업의 관리자층을 대상으로 강연할 때, 나는 종종 이런 식으로 사랑이 필요하다고 말해보라고 권유한다.

“회사로 돌아가자마자 회사에 ‘사랑’이 부족한 것 같다고 상사에게 말해보세요.”

이렇게 제안하면 역시 사람들이 피식 웃음을 짓는다. 나로서는 그런 반응이 늘 이해가 되지 않는다. (p.80)

 

 회사에 가장 필요한 것은 ‘사랑’이라고 누군가가 말했다면, 저 역시 웃었을 것입니다. 아무리 생각해도 사랑과 기업은 어울리지 않는 개념이라고 생각되기 때문입니다. 물론 기업이 ‘고객사랑’과 같이 종종 ‘사랑’을 외치기는 합니다만 그와는 조금 다른 문제라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게리 해멀 교수는 이것이 문제라고 합니다. 인간에게 있어, 그리고 삶에 있어 가장 가치 있고 소중히 여기는 것들을 기업과는 무관하게 생각하기 때문에 기업이 점차 사람에게서 멀어지고 도덕성을 잃어간다는 것이죠. 2008년 미국에서 시작된 금융위기 이후, 자본주의가 도덕성을 회복하고 사람의 얼굴을 한 자본주의로 변화되어야 된다는 주장에 힘이 실렸었습니다. 이러한 주장과 게리 해멀 교수의 주장은 무관해보이지 않습니다. 자본주의 시장의 중심에는 기업이 자리하고 있기 때문이죠. 그런데 자본주의 4.0이니, 따뜻한 자본주의니 하던 주장들이 최근에는 잘 들리지 않는 것이 조금 아쉽습니다.

 

 2. 지금 중요한 것은 ‘혁신’이다.

 혁신. 너무 많은 사람과 기업이 주장하는 혁신. 그래서 이제는 조금 진부하게 들리는 경향이 있습니다. 저 역시 ‘혁신’의 의미는 좋다고 생각하지만 ‘혁신’이라는 단어 자체는 그리 좋아하지 않습니다. 혁신처럼 어려운 것을 너무 쉽게 혁신, 혁신하며 외치기 때문에 오히려 ‘혁신’이라는 단어가 사람들에게 진부하게 다가가는 것은 아닌지 생각해봅니다. 그럼에도 이 책에서 게리 해멀 교수가 혁신을 강조하는 이유는 모든 것이 혁신에서 시작됐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다시 말하지만, 모든 게 혁신 덕분이다. 예컨대 1,000년 동안 사회적 혁신(social innovation)이 일어난 덕에 무수한 사람들이 자기 결정의 권리를 가지게 되었다. 지금 우리는 더 이상 영주에 귀속된 농노도, 징집된 병사도 아니다. 우리는 민주주의 사회에 살고 있으며, 생각과 행동의 자유를 누리고 있다.

<중략> 100여 년 동안 광적인 기술적 혁신(technological innovation)이 일어난 덕분에 지금 우리는 어디든 자유롭게 이동하고, 사람들과 실시간으로 의사소통을 하며, 컴퓨터와 스마트폰을 비롯한 각종 디지털 기기로 업무를 처리한다. 그뿐인가. 새로운 질병 치료제가 계속 개발되고 있어서 못 고치는 병이 없을 정도다. (p.89)

 

 책에서는 혁신을 키울 수 있는 몇 가지 방침을 제공하는데, 그 중 하나가 애플을 보고 배우라(2장 5.애플을 해부하고 분석하라)는 것입니다. 애플이 완벽한 기업은 아니지만 수많은 혁신을 보여준 기업이기에 배울 점이 많다는 것이죠. 그러면서 게리 해멀 교수는 자신에게 역사상 가장 주목할 만한 기업을 꼽으라면 주저 없이 대량생산 체제를 최초로 도입한 포드, 한 세기 이상 경영의 본보기로 자리매김한 GE, 그리고 애플을 택하겠다고 합니다.

 

 <게리 해멀 교수가 역사상 가장 주목할 기업으로 꼽은 포드, GE, 애플>

 

 하나의 기업이 어떻게 이 모든 일을 해냈을까? 단지 한 개 업종이 아니라 컴퓨터, 음악, 소매, 휴대전화, 소프트웨어, 미디어, 출판 등 예닐곱 개 업종을 재편성할 수 있는 조직을 도대체 어떻게 구축할 수 있었을까? 기업들은 대부분 한 개 업종도 재편성하지 못한다. 역사상 다수 업종을 재편성한 기업은 존재하지 않았다. (p.141)

 

 3. 지금 중요한 것은 ‘적응성’이다.

 게리 해멀 교수는 현재 우리가 살고 있는 시대에서 가장 주목할 점으로 ‘변화의 속도’를 꼽습니다. 변화에 가속도가 붙어 점점 더 빠르게 변화하고 있다는 것이죠. 이 역시 우리가 잘 알고 있는 내용입니다. 따라서 끊임없는 변화 속에서 살아남기 위한 방법은 기업의 유연성을 키우고 적응력을 키우는 것이라 주장합니다.

 

 사람들은 지나가는 두 번째 1,000년과 다가오는 세 번째 1,000년에 주목할 만한 것이 무엇이라고 생각할까? 인터넷의 발명일까? 인간의 유전자를 해석한 사실일까? 혹은 화성에 무인 탐사선을 보낸 사건일까? 기후변화의 재앙에 대응하는 방법 아니면 그에 대응하지 않는 방법일까? 이 모든 사항은 주목할 만하지만, 무엇보다도 우리 세대에는 변화의 속도가 굉장히 중요하다는 사실에 이끌릴 것이다.(p.155)

 

 사람들은 새로운 변화를 기대하고 좋아하지만, 막상 눈앞에 다가온 변화는 두려워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기업 역시 마찬가지죠. 변화는 예측 불가능한 영역이기에 기업은 변화를 외치면서도 변화를 두려워합니다. 그럼에도 변화해야 하는 이유는 대형 항공사들이 특화된 경쟁 기업들에게 입지를 빼앗기고, 이북(e-book)시장이 폭발적으로 성장하면서 전통 서점의 역할이 축소되는 등 많은 사례에서도 알 수 있듯이 변화는 거부할 수 있는 대상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기업은 자율성과 창의성을 키울 수 있는 유연한 조직, 적응력이 강한 조직이 돼야 한다는 것입니다.

 

 격변의 시대인 오늘날, 조직은 번영하기 위해 조직화와 관리의 끈을 약간은 헐겁게 풀어야 한다. 조직화가 덜 된, 계층화가 덜 된, 관습화가 덜 된 조직을 구축해야 한다. (p.176)

 

 4. 지금 중요한 것은 ‘열정’이다.

책에서 이야기하는 열정은 업무 몰입도와 연관이 있습니다. 업무 몰입도와 기업의 재정적 성공에는 긴밀한 관련성이 있다는 것이죠.

 

 타워스 왓슨(Towers Watson)이 실시한 조사, 또 벤틀리 대학의 라젠드라 시소디아(Raj Sisodia)교수가 실시한 연구에 따르면, 직원 몰입도가 높다고 평가받은 기업이 그렇지 못한 기업보다 더 높은 수익과 마진을 달성했다고 한다. (p.236)

 

 애플 또한 이와 관련된 좋은 사례라고 할 수 있고요. 게리 해멀 교수는 매슬로의 욕구 계층 이론(Maslow's Hierarchy)을 바탕으로 직장 내 인간 역량의 계층으로 정리하여 제시합니다. 정리된 직장 내 인간 역량 계층 이론은 총 여섯 단계로 이루어지는 데, 이는 다음과 같습니다.

 

 <직장 내 인간 역량 계층 이론(p.239)>

 

 여기서 문제는 각각 1단계, 2단계, 3단계에 해단되는 복종, 성실, 전문성이 점차 글로벌 상품화 되고 있다는 것이죠. 이런 역량은 이제 인도, 중국 등 어느 곳에서나 쉽게 얻을 수 있기 때문에 역량의 피라미드를 높이 쌓아야 한다고 주장합니다. 따라서 기업은 구성원들에게 (열정은 이성적 판단보다는 감성적 동기부여에서 자극되기 때문에)자신의 업무가 세상을 더 나은 곳으로 만든다는 사명, 즉 ‘열정’을 불러일으키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5. 지금 중요한 것은 ‘이념’이다.

 기업에서의 경영 이념은 마치 불변의 성질을 갖고 있는 것처럼 보입니다. 그러나 이러한 인식이 기업의 변화를 가로막는 장애요인이 되고 있다고 게리 해멀 교수는 주장합니다.

 

 여러분의 조직에서 아마도 충분한 시간을 두고 논의하지 못한 부분이 있을 것 같다. 바로 ‘경영 이념’이다. 사내 웹 페이지를 뒤져보라. 장담하는데 자사의 경영 이념을 언급한 간단한 말 한마디도 보이지 않을 것이다. 이 점이 문제다. 한편으로 경영자의 신조 때문에 조직이 혁신을 이룩하기는커녕 변화에 적응조차 못 하기도 한다. 그런 조직이 직원들에게 동기를 부여하고 숭고한 가치를 추구할 리 만무하다. 우리는 우리의 경영 이념으로 인해 제약을 받는다. 인간의 역사는 이념 갈등의 연대기이다. (p.297)

 

 이념과 이념은 서로 대립되는 것이 아니며, 상반되는 이념 간의 절충점을 찾아야 되는 것도 아닙니다. 그저 모든 상황에서, 순간순간 가중치를 두어야 할 부분을 찾는 것이 타협의 과정이라는 것입니다. 따라서 우리는 기존의 이념에 대한 물음을 가질 필요가 있다는 것이죠. 가장 대표적인 것이 기존의 통제이념을 바탕에 둔 ‘관료제’입니다. 그동안의 기업은 통제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정확성, 안정성, 규율의 엄격성, 신뢰성 등을 장점을 지닌 ‘관료제(bureaucracy)’ 유형으로 성장해 왔습니다. 그러나 지금은 통제의 문제가 아닌, 변화에 대한 적응성과 유연성, 창조성이 필요한 시대인 것이죠. 따라서 이러한 통제의 이념에서 자유의 이념으로 변화할 필요를 강조합니다. 고어사와 모닝 스타, 그리고 인도의 IT 기업인 HCLT의 사례는 이러한 변화가 얼마든지 가능하다는 것을 보여준다 하겠습니다.

 

 

<자율성을 강조하는 기업의 사례로 꼽힌 고어사와 모닝스타, 그리고 HCL>

 

 이상의 다섯 가지는 너무 뻔한 소리, 현실과 동떨어진 이야기라는 말을 들을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오히려 현실을 앞세운 실용주의에만 의존했기 때문에 오늘날의 여러 문제가 발생하고 기업은 어려움을 겪고 있는 것은 아닌지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실용적인 목표는 분명 현실적이기에 즉각적인 도움이 될 수는 있습니다. 하지만 이는 감성적 촉매제로서 전 직원의 에너지를 집결시키기에는 무리가 있다는 것이 게리 해멀 교수의 주장이죠.

 

 이 책은 제목처럼 중요한 문제들을 다루고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책에서 제공하는 조언들이 오히려 더욱 어려운 해결책처럼 보일 수도 있습니다. 그리고 경영학이라는 학문이 도구학문에 가까워 배운 지식도 시간이 지나면 금세 잊어버리기 쉽습니다. 이러한 이유에서 이 책의 내용을 온전히 이해하고 자기 것으로 만들고자 한다면, 일독에서 그칠 것이 아니라 시간을 두고 깊이 있게 틈틈이 읽어보는 것이 더욱 도움되리라 생각합니다.

 

※ 해당 서평은 출판사에서 제공받은 도서를 읽고 작성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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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통령과 루이비통 - 마케터도 모르는 한국인의 소비심리
황상민 지음 / 들녘 / 2012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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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다음 두 기사는 얼마 전 인터넷 뉴스를 통해 접한 기사의 내용입니다.

 

 <성공 위해 화장하는 남자들>

 취업과 승진, 사랑 등을 위한 경쟁에서 살아남기 위해 화장을 하는 한국 남자들이 많아졌다고 AP통신이 17일 보도했다.

 시장조사기관인 유로모니터 인터내셔널 추산에 따르면 지난해 한국 남성이 피부 관리에 지출한 돈이 4억 9천550만 달러(5천574억 원)로 세계 시장의 21%를 차지하고 있다. 한국의 남성 인구가 1천900만 명에 불과한데 화장품 시장 규모는 세계에서 가장 크다. -이하 생략-

연합뉴스.9월 17일.

 

 <한국 등 亞남성, 피부미용에 돈 많이 써>

 중국과 일본, 한국 남성들이 피부 관리 제품의 아시아 시장 성장세를 주도하고 있다.

소비자연구단체인 유로모니터 인터내셔널이 5일(현지시각) 언론에 보낸 그루밍(남성의 미용 패션 등 몸단장) 동향 보고서에 나온 내용이다. 보고서에 따르면 아시아 태평양 지역이 전 세계 남성 피부 관리 제품 매출의 60%를 차지한다. 피부미용은 세계시장 연 매출 330억 달러(약 36조 6천억 원)의 남성 그루밍 산업에서 고속 성장하는 분야다. -이하 생략-

연합뉴스.10월 6일.

 

 이처럼 소비문화가 나라별, 지역별로 큰 차이가 나타나는 경우를 자주 접하게 됩니다. 뿐만 아니라 다른 문화나 제품을 수용하는데도 차이를 보이고요. 이 책 <대통령과 루이비통>의 저자 황상민 교수는 “한국인은 새로운 것을 좋아하고, 새로운 것에 대한 기대는 무척 크나 그를 받아들이는 속도는 그리 빠르지 않다(p.251)”고 합니다. 그런데 제품이나 서비스를 일단 수용한 뒤에는 좀 달라지는 것 같아 보입니다. 우리나라는 인터넷을 개발하거나 컴퓨터를 개발하지는 않았습니다. 하지만 현재 세계에서 가장 활발한 인터넷 문화를 형성한 국가 중 하나가 되었습니다. 스마트폰 역시 마찬가지고요. 또 하나 예를 들자면 ‘테이크아웃 커피전문점’을 들 수 있습니다. 이 역시 우리나라에서 시작된 것은 아니나 지금은 거리마다 커피전문점이 넘쳐나고 있습니다. 통계에 따르면 S사 450여개, C사 810여개, A사 650여개 등 총 1만 2000여개에 이른다고 합니다(총계는 2011년 기준, 각 브랜드별 수는 2012년 기준입니다). 2006년 1254개에서 무려 10배나 증가한 것이죠. 그리고 한국만의 독특한 ‘커피믹스’ 시장도 존재하고요. 이러한 점들이 소비문화의 차이를 보여주는 사례가 아닐까 합니다.

 

 바로 이것이 이 책의 목적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각 문화마다 소비행동이 다르게 나타나기 때문에 한국 소비자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한국 문화를 제대로 이해하고 이에 맞는 분석이 필요하다는 것이지요. 한국 소비자들의 심리를 ‘제대로’ 이해하기 위한 것이 이 책의 목적이라면, 이 책의 주제는 ‘모든 소비자는 다르다’입니다.

 

 가장 민주적이고 변화무쌍한 취향을 가진 복잡한 존재, 그것이 바로 인간이다. 덕분에 심리학자들이 오랜 연구와 다양한 실험을 거쳐 얻어낸 인간에 대한 수많은 정보들은 종종 무용지물이 되곤 한다. 100퍼센트 정확하지 않을뿐더러 상황에 따라, 이슈에 따라, 심지어 같은 사람이라도 기분에 따라 ‘그때 그때 달라지는’ 탓이다. 심리학이라는 과학이 엄밀하지 못해서가 아니다. 모든 사람이 다르고, 같은 사람이라도 상황에 따라 다른 마음과 행동을 보이기 때문이다. (p.139)

 

 이는 대부분의 심리학자들의 말과 일치합니다. 런던대학교 유니버시티칼리지(UNIVERSITY COLLEGE LONDON)의 심리학과의 애드리언 펀햄(Adrian Furnham) 교수는 불안할 때, 우울할 때, 화났을 때 소비가 더욱 쉽게 일어난다고 했습니다. 이런데도 여전히 소비자를 성별, 연령, 소득수준 등과 같은 기준으로 구분 짓고, 존재하지도 않는 ‘모든 사람을 만족시키는 최고의 제품’을 찾아 봤자 소용없다는 것입니다. 요약하자면, ‘모든 소비자는 전부 다르다. 따라서 모든 소비자를 만족시킬 수는 없다.’는 것이죠.

 

 예를 들어 보겠습니다. 다음 그림에서 흰색원은 아이폰을 구매한, 파란색원은 갤럭시S를 구입한 사람을 나타냅니다.(※ 특정 브랜드명은 책에서 언급한 브랜드명입니다.)

 

 

 통계자료를 보고 아이폰은 주로 젊은 층이, 갤럭시S는 중·장년층이 선호한다고 판단할 수 있습니다(이는 예를 들어 가정한 것이지 실제와는 다릅니다). 그러나 같은 아이폰, 갤럭시S를 구매하더라도 동기는 다를 수 있습니다. 아이폰과 갤럭시S를 통해서 충족시키고자 하는 자신의 욕구가 다를 수도, 선택의 이유가 다를 수도 있습니다. 아래 그림처럼 말이죠.

 

 

 똑같이 아이패드를 쓰는 대학생이라고 해도 그들의 동기와 목적, 심리는 다르다. 아이패드를 노트로 사용하는 학생이 있는가 하면, 전자책을 읽으려고 구매한 학생도 있을 것이다. 과시용으로 들고 다니는 사람도 있을지 모른다. 동일한 대학생 집단이고 동일한 제품(아이패드)을 사용하지만 소비행동은 다르다. 소비행동만 놓고 본다면 이들은 서로 다른 집단에 속한다. (p.90)

 

 따라서 단순히 기존의 설문조사에 기대서 소비자를 구분하고 전략을 세울 것이 아니라 좀 더 소비자의 마음을 이해하려고 노력하라는 것이죠.

 

 한 가지 예를 더 들어보겠습니다. 작년에 삼성경제연구소가 발표한 ‘2011년 10대 히트 상품’에 선정된 꼬꼬면. 꼬꼬면이 등장하고 날개 돋친 듯이 팔려나가면서 ‘꼬꼬면 열풍’, ‘하얀 라면 열풍’, ‘빨간 라면 VS. 하얀 라면’ 등의 기사가 쏟아져 나왔습니다. 그러나 이 책에서는 조금 다르게 보고 있습니다. 빨간 라면에서 하얀 라면으로 소비자의 기호가 바뀐 것이 아니라 애초에 소비자는 그런 맛을 ‘무의식적’으로 원하고 있었고, 그 입맛에 맞는 꼬꼬면이 나왔다는 것이죠. 그리고 이에 마케팅 효과 등이 더해지면서 ‘10대 히트 상품’이 되었고요.

 

 

 올해 들어, 하얀 라면의 인기가 시들었다는 기사가 종종 보도되었습니다. 실제로 꼬꼬면의 경우 작년 12월을 기점으로 올 4월까지 약 75%의 매출이 감소되었다고 합니다(2011년 12월 122억 원, 2012년 1월 86억 원, 2월 58억 원, 3월 54억 원, 4월 30억 원 ). 만약 앞으로 꼬꼬면의 매출이 어느 정도를 기점으로 하락을 멈추고 꾸준한 판매량을 유지된다면, 그 숫자가 마케팅 효과 등이 빠진 후에 남은 ‘꼬꼬면이 입맛에 맞는 소비자’라고 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렇다면 저자의 주장이 설득력을 갖게 되고요.

 

 그러면 소비자의 진정한 속마음을 알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할까요? 책에서는 ‘마음 MRI 기법’을 제시합니다. 이는 ‘믿음이나 태도, 생각 같은 심리적인 부분이 유사한 성향의 사람들을 하나로 묶는 방법’입니다. 즉 제품이나 서비스 등에 대한 소비자의 반응을 살펴, 반응 패턴이 유사한 사람끼리 묶는다는 것이죠. 5장에서 이야기하는 ‘SK 와이번스 팬’들의 사례로 살펴보면 다음과 같습니다.

 

 인천SK팬

 SK 와이번스의 팬이며 인천에 사는 사람들. 하지만 아직은 SK가 잘하니까 인천의 연고팀으로 인정해주는 정도. 마케팅 및 프로모션에 영향을 받으며, 목적지향적이고 경제적인 소비를 하는 집단.

 

 야구 마니아

 ‘야구’를 정말로 좋아하는 사람들. 하지만 야구란 ‘경기를 기록하고 기록지를 보관하는’ 그런 활동이다. 야구장에는 가끔 가며, 실제로 경기를 관람하는 것보다 인터넷이나 컴퓨터에 담긴 다양한 경기 기록을 즐기기 좋아한다. 특정 팀을 응원하거나, 열정적으로 참여하지 않는다.

 

 우리 매형

 가족과 소풍을 가는 기분으로 야구장에 간다. 이들에게 야구장은 유원지나 가족 야유회 장소와 다름없다. 이들에게 야구의 승패는 중요치 않다. 가족과 함께 즐거운 시간을 보내는 것이 더욱 중요하다. 따라서 즐거움, 이벤트, 편의시설 등이 매우 중요하다.

 

 장외감독

 이들은 거의 대부분 본인이 감독이라는 마음가짐으로 야구장을 찾는다. 경기장에서는 물론, 시즌이 끝나도 인터넷이나 전화 등을 통해 구단에게 의견을 적극적으로 표현하는 진정한 야구 마니아들이다. 이들은 무엇보다 경기의 승패를 중요시 여기며, 선수관리 및 전략에도 많은 신경을 쓴다.

 

 옆집 아줌씨

 야구장에 가는 것을 콘서트에 가는 것 정도로 생각하는 사람들. 혼자야구장에 가지 않고 다른 사람들, 소위 계꾼이라고 할 만한 사람들과 같이 ‘구경 가는 기분’으로 야구장을 찾는다. 같이 응원하는 것을 즐기는 것처럼, 이들은 다른 사람들의 행동에 동조하는 성향이 높다. 야구를 공연, 예술 문화의 장소 중 하나로 생각하는 경향을 보인다.

 

 열 번째 선수

 말 그대로 ‘열 번째 선수’이다. 그들은 자신이 구단의 일원이 된 것처럼, 마치 선수의 한 사람인 것처럼, 야구장을 찾고 응원한다. 구단의 입장에서 보면 가장 적극적이고 영양가 있는 관객들이다. 지방도 따라 가고 회사·학교도 빠지는, 이른바 ‘야구에 살고 야구에 죽는’ 마인드다.

 

 위와 같이 여섯 집단으로 SK 와이번스의 팬을 구분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이렇게 나누었을 때 각각의 집단에 맞는 마케팅 전략이 가능해진다는 것이죠. 이외에도 통신요금(6장), 디지털 소비(7장), 럭셔리 상품(8장) 등에 대한 소비자들의 심리도 이야기하는데요, 결국 소비자는 저마다 모두 다르다는 것입니다.

 

 저는 이전의 서평에서 <소비 본능>의 개드 사드 교수가 주장하는 ‘보편성’의 중요성에 동의한다고 했습니다. 그렇다면 개별성, 상대성, 차별성을 이야기하는 황상민 교수의 주장에는 반대하냐하면, 그것은 아닙니다. 한쪽에서는 보편성을 이야기하고 다른 한쪽에서는 개별성, 상대성을 이야기한다고 해서 반드시 서로 대립되는 이야기가 아니라는 것이죠. 개별성과 상대성은 분명히 중요하지만 밑바탕에는 보편성이 있다는 것입니다. 이 책의 8장에서는 럭셔리 상품을 소비하는 사람들을 자급자족형, 격조형, 생활형, 자아표출형, 판타지형, 과시형, 무조건형, 아바타형으로 구분했습니다. 그러나 그 이전에 8가지 분류에 속한 사람 모두 자신이 더 아름답거나 멋지게 보이고 싶은 욕망이 있다는 것은 보편성이죠. 따라서 이 책의 주장에도 동의하고, 개드 사드 교수의 주장에도 동의한다고 해서 그것이 틀렸다고는 할 수 없다고 생각합니다. 아마도 이 책 <대통령과 루이비통>을 읽었거나 관심이 있으신 분들은 개드 사드 교수의 <소비 본능>을, <소비 본능>을 읽으신 분들은 이 책도 함께 읽으시면 도움될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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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10-22 09:51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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