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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기적의 비밀 - 이스라엘은 어떻게 벤처 왕국이 됐을까?
이영선 지음 / 경향BP / 2012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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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작년 말에 치러진 대선에서의 화두는 단연 ‘경제민주화’였습니다. 두 정당 모두 경제민주화를 외쳤죠. 그리고 어제(2월 21일) 발표된 새 정부의 국정과제에서도 중소기업을 창조경제의 주역으로 키우고, 원칙에 따라 시장경제 질서를 확립하겠다는 내용이 담겨 있습니다. 즉 중소기업 및 중견기업을 통해 경제를 활성화 시켜 고용문제를 해결하고, 새로운 성장 동력을 확보하겠다는 것이죠. 또 대한상공회의소는 2015년까지 중견기업을 2배(약 3,000개)로 늘리겠다고 발표했습니다.

 

 저는 이에 대해 다소 회의적입니다. 새롭게 출범하는 정부를 믿지 못하는 것은 아닙니다. 다만, 위와 같은 목표들이 쉽게, 그리고 단기간 내에 실현되기가 쉽지 않아 보인다는 것이죠. 그 이유는 이렇습니다. 정부가 새로운 정책 등을 통해서 창업과 중소기업에게 ‘좋은’ 환경을 마련해줄 수는 있습니다. 그러나 창업이나 중소기업을 선호하는 사회적 분위기를 조성하는 것은 정부의 정책을 따라 쉽게 변하기 어렵다고 보기 때문입니다. 지난주 한 경제연구원과 취업포털 사이트에서 20~30대 700명에게 ‘가장 선호하는 직업’을 조사한 결과, 1위로 공무원(27.9%)이 꼽혔습니다. 공무원이 꼭 나쁘다는 것은 아닙니다만, 공무원을 택한 이유가 정말 ‘자신이 하고 싶은 일’이냐는 것이죠. 제 눈에는 사회가 불안정하고 노후에 대한 걱정 등을 이유로 선택한 것으로 보입니다. 마치 고슴도치가 궁지에 몰리면 살기 위해 몸을 움츠리고 가시를 세우는 것처럼 보입니다. 그리고 이런 사회적 현상과 분위기는 금세 바뀌기 어렵다는 것이 저의 생각입니다.

 

 위와 같은 이유에서 최근 이스라엘에 관련된 도서들이 심심찮게 출간되는 듯싶습니다. 양극화 문제와 고용문제 등이 사회의 중요한 문제로 인식되고, 혁신과 창의성이 화두가 되면서 ‘벤처왕국’이라는 이스라엘에도 관심이 높아진 듯 보입니다.

 

 <경제기적의 비밀>이라는 제목에서 알 수 있듯이, 이 책은 이스라엘이라는 나라가 어떻게 ‘벤처왕국’으로 성장할 수 있었는지에 대해 문화, 사회, 정치, 경제 등 다양한 측면에서 설명하고 있습니다. 저자의 설명을 저 나름대로 요약하자면 크게 두 가지를 꼽을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첫 번째사회·문화적인 요인입니다. 그리고 이는 역사적인 요인과도 관련이 있습니다. 유대인들은 역사적인 이유로 오랫동안 세계 곳곳에 흩어져 살았습니다. 그 후 1948년에 이스라엘이라는 나라가 건국되면서 세계 각지에 후손들이 모여들게 되었습니다. 이때 세계 곳곳에서 쌓인 경험과 ‘다양한’ 지식이 경제발전에 도움이 되었다는 것입니다.

 

 유대인들은 타의에 의해 전 세계에 흩어져 살게 되었지만 유대교라는 민족 통합의 종교적 사상 아래에서 현지에 동화되지 않았다. 전 세계에서의 다양한 경험은 그들이 다양성을 갖는 데 도움을 주었다. 전 세계 어느 곳에 가더라도 이방인일 수밖에 없었던 그들은 가는 곳마다 핍박을 받았다. 핍박은 그들이 어려운 외부 환경에도 버틸 수 있는 내성을 길러줬다. 그들은 살기 위해 그들만의 국경 없는 유대인 네트워크가 필요했다. -중략- 그리고 국가라는 보호막이 없는 상태에서 개인의 역량만으로 살아가야 했기 때문에 일찍이 교육에 눈을 떴다. (p.92)

 

 간단히 말씀드리면 세계 곳곳에서 쌓인 ‘다양한’ 경험과 지식이 유대교라는 ‘하나의’ 종교적 사상 아래 모여 경제발전을 이루어 냈다는 것이죠. 물론 교육적인 측면의 요인도 있고요. 그런데 여기서 한 가지 생각해 볼 것은 교육과 관련된 이야기입니다. 우리는 이스라엘이라는 나라에 대해서는 잘 모르지만, 유대인에 대해서는 꽤 관심을 갖고 있습니다. <탈무드>부터 시작해서 유대인의 교육과 관련된 책만 해도 상당하죠. 그리고 이와 함께 이야기하는 것이 교육적인 면에서는 우리나라도 결코 뒤지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IQ(intelligence quotient: 지능지수)로 보나, 각종 경시대회나 성취도 평가를 보더라도 그렇다는 것이죠. 이 책의 저자 역시 이와 비슷한 주장을 하고 있습니다.

 

<유대인은 전 세계 인구의 0.2%로 노벨상의 22%를 받았습니다. 사진은 1921년 노벨 물리학상을 수상한 알버트 아인슈타인(좌)과 1970년 노벨 경제학상을 수상한 폴 새뮤얼슨(우)>

 

 학업 성취도에서도 한국이 낫다. OECD는 2000년부터 3년마다 회원국을 포함한 여러 국가의 학생 학업 성취도를 평가하는 PISA(Program for International Student Assessment)보고서를 발표하는데 조사 대상은 만 15세 학생이며 읽기, 수학, 과학 등 세 분야에 대해 평가한다. 2009년에는 총 65개국의 약 47만 명을 대상으로 평가가 실시되었다. 조사 결과, 한국은 읽기 2위, 수학 4위, 과학은 6위를 기록하면서 최상위의 수준을 보였다. 반면 이스라엘은 읽기 37위, 수학 42위, 과학 42위를 기록하는 등 세 영역 모두 OECD 평균치에도 미치지 못하였다. (p.37)

 

 이외에도 지난 2012년 고교 수학올림피아드에서 종합우승을 차지하는 등 우리나라는 각종 경시대회에서 최상위의 성적을 거두었습니다. 그러나 이는 어디까지나 ‘학생’에 한해서입니다. 대학생 혹은 성인이 된 후에는 모르는 것이죠. 실제로 올 초에 중국의 상하이 교통대학이 발표한 ‘2013년 세계대학 랭킹’ 수학 부문에서 한국은 조사대상 200개 대학 중 서울대학만이 151~200위권에 올랐을 뿐 다른 대학들은 아예 이름조차 올리지 못했다는 기사가 보도되었습니다. 고등학생일 때에는 1·2위의 최상위권이었던 것이 고작 몇 년 만에 하위권으로 바뀐다는 것이죠. 각종 경시대회에서 좋은 성적을 거둔 것을 자랑스러워만 하지 말고, 왜 그 좋은 성적을 제대로 살리지 못하는지 묻는 자세가 더욱 필요할 듯싶습니다. 이런 문제만 잘 해결해도 유대인의 교육을 부러워할 일도 줄어들 것이며, (우리가 그토록 부러워하는)노벨상 수상자를 배출하는 데도 도움이 될 것으로 생각합니다.

 

 여담이 다소 길었습니다. 이스라엘이 벤처왕국으로 성장할 수 있었던 두 번째 요인은 정치·경제적 요인입니다. 주변국과의 끊임없는 마찰은 방산산업과 같은 특정 산업이 발달하는 계기가 되었으며, 부족한 자원은 일찍이 신재생에너지 산업이나 수출산업을 육성하는 계기가 되었다는 것이 저자의 설명입니다. 미국과의 관계도 큰 몫을 했고요.

 

 방산은 원래 나라를 지키기 위해 시작했으나 이제는 훌륭한 수출산업이 되었다. -중략- 그러나 가장 큰 수입원은 GDP의 6%를 벌어들이는 기술 수출 및 기술기업의 국외 매각이다. 특히 정보통신 분야에서 기술개발이 활발하다.

 둘째, 이스라엘은 석유가 나지 않아서 산유국인 중동국가와 경제구조가 다르다. 이스라엘은 건국 때부터 신재생에너지에 투자하여 탈석유 시대를 준비해왔다. 이스라엘에서는 태양열 발전과 에너지 절약 산업이 자생적으로 발전했다. 물이 부족해서 바닷물을 담수화하는 기술도 발달했다. (p.206)

 

<주변국과의 마찰은 방산산업의 발전하는 계기가, 부족한 자원은 일찍이 태양열 산업이 발전하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하지만 가장 큰 수입원은 기술 수출 및 기술기업의 국외 매각입니다. >

 

 이를 종합해보면 결국 이스라엘은 역사적 아픔이나 자원부족과 같은 약점(?)이 지식과 경험의 다양성 및 특정 산업의 발달이라는 이스라엘의 강점으로 이어졌다고 할 수 있습니다. 우리나라 역시 자원이 부족하고, 수출 의존도가 높기 때문에 이스라엘의 사례는 우리에게도 많은 도움이 될 것입니다. 다만, 우리에게 도움이 될 수 있는 부분은 정면교사로 삼고, 버려야 할 부분은 반면교사로 삼을 줄 아는 자세가 필요하겠죠. ‘取捨選擇(취사선택)’의 자세가 요구된다고 하겠네요. 예를 들어, 이스라엘은 (내수시장이 작고, 상용화 경험이 없어)벤처기업을 꾸준히 키워서 대기업으로 육성시키기보다는 기술개발이 어느 단계에 이르면 다국적기업에 매각(선공한 벤처기업의 80%)한다고 하는데(p.214), 이는 한 번 생각해볼 문제라고 생각합니다. 저는 이에 대해 부정적인 시각을 갖고 있고요. 그리고 유대인들이 과거에 홀로코스트라는 아픈 역사가 있으면서도, 이제는 반대로 그들이 종교와 인종을 이유로 차별하는 윤리적인 태도는 반면교사로 삼아야 할 것입니다. 이에 관해서는 이 책에서도 지적하고 있습니다.

 

 에티오피아 유대인들은 이스라엘에 와서 차별적인 대접을 많이 받았다. -중략- 학교에서 차별받던 한 어린이가 흰 피부를 만들기 위해 욕조에서 표백제로 목욕하는 것을 엄마가 발견하고는 아이를 부둥켜안고 울었다는 일화도 있다. 1996년에는 이스라엘 혈액은행이 에이즈 우려 때문에 에티오피아 유대인에게 받은 혈액을 몰래 폐기한 것이 언론에 보도되면서 엄청난 반발을 샀다. 대통령까지 나서서 사과를 하고서야 겨우 진화가 되었다. - 중략- 유럽과 중동에서 핍박받았던 유대인들이 늦게 온 에티오피아 유대인들을 차별하는 것은 아이러니다. (p.56)

 

 이 책은 비교적 우리가 잘 알지 못하는 이스라엘이라는 나라를 이해하는 데 상당한 도움이 됩니다. 게다가 저자가 KOTRA에서 근무 중인 우리나라 사람이기 때문에 더욱 도움이 되고요. 다만, <경제기적의 비밀>이라는 이 책의 제목에는 조금 부족하다는 생각이 듭니다. 전체 네 개의 장에서 경제를 중점적으로 이야기하는 장은 4장뿐이니까요. 아마도 역사, 문화, 정치, 경제적 특성들이 모두 경제 발전의 원동력이 되었고, 그 때문에 이를 모두 이야기하려다 보니 다소 깊이가 부족했던 것 같습니다. 이스라엘의 경제기적을 알고자 하는 분들은 조금 실망하실 수 있으나, 이스라엘이라는 나라를 이해하고자 하는 분들에게는 도움이 될 만한 책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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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02-24 11:24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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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낯선 사람 효과]를 읽고 리뷰 작성 후 본 페이퍼에 먼 댓글(트랙백)을 보내주세요.
낯선 사람 효과 - 《80/20 법칙》리처드 코치의 새로운 시대 통찰
리처드 코치 & 그렉 록우드 지음, 박세연 옮김 / 흐름출판 / 2012년 11월
평점 :
절판


 낯선 사람 효과. 솔직히 제목만 봐도 내용이 짐작이 가는 책입니다. 아마도 이제는 조금 널리 알려진 효과(?)이기도 하고, 일상생활에서 적어도 한두 번쯤은 겪어봤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예를 들어 오랜만에 우연히 만난 지인에게서 생각지 못한 정보나 아이디어를 듣거나, 도움을 받은 경우가 그렇습니다.

 

 저자는 이처럼 우리가 매일 같이 만나는 사람들과의 관계가 아닌 한두 달에 한 번, 혹은 일 년에 한두 번쯤 만나는 사람들과의 관계가 갖는 가치에 관해 이야기합니다. 책 이야기에 앞서 간략하게 이에 대한 개념부터 정리를 해보면, 먼저 강한 연결(strong link)이 있습니다. 이는 가족이나 친구, 또는 거의 매일 만나는 직장 동료 등 각별한 사람들과 맺는 친밀한 관계의 끈을 의미(p.33)합니다. 다음으로 약한 연결(weak link)은 아주 친밀한 관계는 아니지만 서로 얼굴 정도 알고 지내는 관계를 의미(p.33)합니다. 그리고 개인이 속한 조직이나 단체와 같은 그룹을 허브라 하고요. 마지막으로 개인과 개인, 혹은 허브와 허브 등의 무수히 많은 ‘약한’ 연결 속에서 중심이 되는 슈퍼커넥터가 있습니다. 즉, 슈퍼커넥터는 누구라도 쉽게 다른 사람과 연결될 수 있는 사회적 시스템을 기반으로 엄청나게 넓은 인맥과 정보로 사람과 사람을, 그리고 허브와 허브를 잇는 역할을 하는 사람입니다. 이는 우리에게 <아웃라이어>의 저자로 잘 알려진 말콤 글래드웰이 제시한 ‘커넥터’라는 개념과 매우 유사합니다. 말콤 글래드웰은 자신의 저서 <티핑포인트>에서 유행과 같은 어떠한 사회적 ‘전염’이 발생하게 되는 요인 중 하나로 ‘커넥터’라는 개념을 제시했습니다.

 

 이것은 불과 얼마 되지 않는 사람들이 몇 단계를 거쳐 그 밖의 모든 사람들과 연결되어 있고, 나머지 사람들은 이 ‘특별한 소수의 사람들’을 통해 세상과 연결되어 있다는 의미이다. (<티핑포인트> p.51)

 

<말콤 글래드웰은 『티핑포인트』에서 제시한 ‘커넥터’라는 개념은 이 책의 ‘슈퍼커넥터’와 같습니다.>

 

 어쨌든 저자가 이 책에서 주장하는 내용을 간략히 정리하자면 이렇습니다. 약한 연결을 통해서 개인은 더욱 성장할 기회를 찾을 수 있으며, 기업은 새로운 비즈니스 혁신의 기회를 찾을 수 있다는 것입니다. 또한, 사회적으로는 가난을 구제하는 데도 도움이 될 수 있고요. 그리고 이러한 네트워크의 중심에서 무수히 많은 사람과 기업들을 연결해주는 사람이 슈퍼커넥터이고요. 여기서 특별히 약한 연결이 새로운 기회를 제공하는 이유는 이렇습니다. ‘강한’ 연결로 구성된 허브(개인이 속한 그룹)에서는 서로 비슷한 생각과 지식을 갖고 있는 사람들로 구성되어 있기 때문에 새로운 정보나 아이디어를 접하기가 어렵습니다. 반면, ‘약한’ 연결로 구성된 허브 내에서는 우리에게 익숙지 않거나, 새로운 정보와 아이디어를 접할 기회가 많다는 것이죠.

 

 친한 사람들은 우리 자신과 비슷한 성향을 지니고 있으며, 주로 자신과 크게 다르지 않은 사회적 영역에서 움직인다. 그리고 서로를 아주 잘 알고 자유롭게 정보를 공유하는 ‘밀집된 덩어리와 같은 사회적 네트워크’ 속에서 활동한다. 그러나 그 네트워크에 포함된 구성원들은 모두 그다지 친하지 않은 많은 지인들을 알고 있다. 그리고 그 지인들은 다시 친밀함과 정보를 공유하는 저마다의 밀집된 덩어리가 있다. 이러한 관점에서 볼 때 여러분을 지인들과 이어주는 약한 연결은 “단지 피상적인 관계가 아니라, 각각의 밀집된 덩어리들을 연결시켜주는 중요한 다리로서 기능을 한다. 이러한 관점에서 약한 관계가 부족한 사람들은 자신과 멀리 떨어져 있는 그룹에서 정보를 거의 얻지 못하고, 오직 가족이나 친구들로부터 얻는 지엽적이고 개인적인 정보만을 가지고 살아가야 할 것이다.

 한 그룹에서 사회적·지리적으로 멀리 떨어진 다른 그룹으로 정보가 이동하려면 두 그룹을 잇는 다리가 있어야 하고, 여기서 그 다리는 강한 연결이 아닌 약한 연결이 맡고 있다. (p.64)

 

 예를 들어, 과거 유럽에서 메디치가문은 화가와 조각가, 그리고 건축가 등 수많은 작가를 피렌체로 모으고 지원했습니다. 그리고 그 안에서 수많은 문화적 교류가 일면서 르네상스로 이어졌죠. 이후에 프랑스의 파리가 문화의 중심지로 자리매김한 것 역시 비슷한 이유입니다. 그리고 현대에서는 미국의 실리콘밸리가 하나의 사례가 될 수 있고요. 실리콘밸리 역시 다양한 사람들이 모여 정보를 공유하고 소통하면서 IT 혁신을 가져왔습니다. 이외에도 수많은 사례가 있지만, 한 가지만 더 들어보겠습니다. 저자는 약한 연결이 인류역사에 끼친 가장 큰 영향 중 하나로 ‘도시’를 꼽습니다. 다양한 문화적·사회적 배경을 갖은 사람들이 도시에 모이면서 인류문명의 발전에 엄청난 역할을 했다는 것이죠. 하버드 대학 경제학과의 에드워드 글레이저 교수 역시 <도시의 승리>에서 이와 같은 주장을 했습니다. 수많은 사람이 모여드는 ‘인적자원’이 도시가 끊임없이 발전해 나갈 수밖에 없는 이유 중 하나라는 것이죠. 그리고 이러한 정보와 아이디어의 공유, 그리고 소통에는 약한 연결이 더욱 큰 힘을 발휘하고요.

 

 그러면 21세기에 가장 폭넓고 다양한 방식으로 약한 연결을 가능케 하는 인터넷에 대해서 저자는 어떤 생각을 갖고 있을까요? 인터넷은 다른 도시나 지역뿐만 아니라 다른 국가, 그리고 아무 관련이 없는 사람들과도 관계를 형성할 기회를 제공합니다. <위키노믹스>의 저자 돈 탭스코트 회장 역시 인터넷으로 인해 새로운 시대가 열렸다고 말했습니다. 컴퓨터와 인터넷을 통해 무엇이든 자유롭게 만들어내고 다양한 주체 간의 협업이 일상생활의 운영방식이 되는 세계, 협업과 참여를 특징으로 하는 협업 지성(집단지성, 대중의 지혜)의 시대, 이를 ‘위키노믹스’라 했지요.

 

<『위키노믹스』의 저자 돈 탭스코트 회장은 인터넷을 통해 새로운 시대가 열렸다고 주장한 반면, 이 책의 저자 리처드 코치는 인터넷의 영향력이 다소 과장되었다고 주장합니다.>

 

 그런데 이 책 <낯선 사람 효과>의 저자 리처드 코치는 조금 다른 주장을 펼칩니다. 인터넷의 영향력을 부정하는 것은 아니나, 인터넷의 영향력이 조금 과장됐다는 것입니다. 언어나 인쇄술은 과거와는 전혀 다른 새로운 시대를 열었으며, 수많은 것들이 창조되는 데 일조했으나, 인터넷은 기존의 것들을 속도와 범위에서 비약적인 발전을 가져온 데 그쳤다는 것입니다.

 

 오늘날 인터넷이 우리의 일상생활을 지배한다는 것은 엄연한 사실이다. 인터넷은 의사소통 방식, 업무 시스템, 정보를 얻고 가공하는 방식, 기존의 다른 매체들을 활용하는 방식에까지 큰 영향을 미친다. 이러한 변화는 탭스코트가 지적한 것처럼 교육, 정부, 비즈니스 등 다양한 분야에서 뚜렷하게 나타난다. 그렇다고 하더라도 언어와 인쇄기술의 등장이 인류의 생각과 태도에 미친 정도와 견주어 본다면, 인터넷은 적어도 지금까지는 아무것도 바꾸지 못했다는 주장이 더 설득력이 있게 들린다. (p.168)

 

 그러한 변화도 결국 친구나 지인에게 메시지를 전달하고, 소비하고, 업무나 여가활동을 위해 협력하는 것과 같이 지금까지 우리가 해왔던 것들을 조금 더 편리하고 효과적으로 만들어준 것에 불과한 것은 아닌가? 예외가 없는 것은 아니지만 새로운 온라인 기술이 등장했다고 해서 사람들이 옛날에 하지 않은 것, 또는 원하지 않았던 완전히 새로운 일을 시작하는 것 같지는 않다. 다만 지금까지 해온 일들을 더 쉽고, 빠르고, 즐겁고, 자유롭게 할 수 있는 더 나은 방법을 찾았을 뿐이다. (p.170)

 

 위와 같은 두 주장 가운데 무엇이 더 설득력 있는지 솔직히 저는 잘 모르겠습니다. 인터넷이 세상은 바꾼 것에는 동의합니다만, 인터넷이 인류의 역사에서 최고의 발명품 중 하나라는 식의 주장은 조금 과장됐다는 생각이 있습니다. 어쨌든 서로의 주장(돈 스탭코트 회장과 이 책의 저자 리처드 코치)에 다소 차이가 있지만, 같은 주장을 펼치기도 합니다. 결국, 우리 사회는 수직적 구조에서 네트워크 구조로 이동하고 있으며, 그에 따라 개인의 자율성이 확대되고 폭넓은 네트워크를 통해 다양한 협업이 가능해질 것이란 주장입니다.

 

 우리 사회는 수직구조에서 네트워크 구조로 이동하고 있으며, 동시에 최소한의 수직적·형식적 조직을 중심으로 다양한 약한 연결이 집중되는 다분히 개인적인 형태의 네트워크로 나아가고 있다. 다양하고 폭넓은 약한 연결의 네트워크를 갖춘 사람들이 사회적·개인적·협력적 차원에서 개인의 정보와 아이디어를 새로운 가치로 탈바꿈하는 것처럼, 폭넓은 지성을 기반으로 완전하고 자연스럽게 네트워크 효과를 활용할 것이다. (p.403)

 

 그리고 이러한 사회에서는 무엇보다 새로운 정보와 아이디어를 제공하는 약한 연결이 더욱 중요해질 것이고요. 다만, 여기에서 중요한 것은 ‘약한 연결’이 아니라 ‘새로운 정보와 아이디어를 제공하는’에 방점을 두어야 하겠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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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2014 세계경제의 미래]를 읽고 리뷰 작성 후 본 페이퍼에 먼 댓글(트랙백)을 보내주세요.
2013-2014 세계경제의 미래
해리 S. 덴트 & 로드니 존슨 지음, 권성희 옮김 / 청림출판 / 2012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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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3년에 접어드니 서점 가에는 미래를 전망하는 도서들이 눈에 띕니다. 그리고 신문과 뉴스에는 2013년의 경제를 예측하는 기사들이 보이고요. 어제도 세계은행(WB)이 올해(2103년) 세계경제가 2.4퍼센트 성장할 것이라는 보고서를 내놨습니다. 지난 11일에는 한국은행이 2013년 우리나라의 경제성장률 전망치를 3.2퍼센트에서 2.8퍼센트로 하향 조정했고요. 그러나 이러한 전망과 예측들이 정확히 맞아떨어지는 것을 ‘저는’ 보지 못했습니다. 각종 예측과 전망이 어김없이 빗나가는 것은 널리 알려진 사실이기도 하고요. 그만큼 미래를 내다보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 것인지 짐작할 수 있지 않나 싶습니다. 다만 정확하지는 못해도 전망치를 계속 수정하고 발표하는 과정에서 경제의 방향은 눈여겨볼 필요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전망치를 계속 낮춘다는 것은 그만큼 안 좋은 소식들이 들려온다는 것일 테니 말이에요.

 

 이렇게 미래를 ‘정확히’ 예측하는 것이 힘든 가운데, 비교적 정확하게 예측 가능한 것이 있습니다. 바로 ‘인구통계’입니다. 인구통계는 전쟁이나 중세 유럽의 흑사병처럼 대재앙이 일어나지 않는 한 어느 정도 정확히 예측하는 것이 가능합니다. 당장 수십만, 수백만의 20대, 30대가 생겨날 수도 없는 것이고요.

 

 이 책 <2013-2014 세계경제의 미래>의 저자 해리 덴트와 로드니 존슨은 인구통계와 사람들의 소비를 바탕으로 현재의 경제를 진단하고 미래를 예측합니다. 사람들은 모두 저마다 다릅니다. 그것은 분명하지요. 하지만 그만큼 보편성을 갖습니다. 예를 들어, A와 B라는 사람은 좋아하는 음식부터 음악까지 비슷한 점이 하나도 없다고 가정하겠습니다. 그러나 A와 B 두 사람 모두 교육을 받고, 직장에 다니며 일을 할 것입니다. 그리고 결혼을 할 것이고, 아이를 낳고 집을 마련할 것입니다. 이러한 생활주기와 그에 맞는 사람들의 소비를 통해 경제를 분석한다는 것이 저자의 주장입니다.

 

 상식만으로도 나이와 생애 단계별로 무엇이 필요하고 무엇을 구매할지 대략 짐작할 수 있다. 미니밴은 통상 23세 미혼 남자가 구매할 만한 자동차는 아니다. 대신 어린 아이가 있는 부부라면 미니밴을 구입할 가능성이 매우 높다. 10대용 브랜드 의류는 40대 부부가 자녀에게 사주는 것이지 이제 막 걸음마를 배우는 아기가 있는 20대나 30대 초반의 부부가 구입하지는 않는다. 아침식사용 시리얼을 가장 많이 사는 시기는 보통 가장의 나이가 30대 후반일 때다. 28~32세 때 아이가 태어났다고 가정한다면 이때 자녀의 나이는 시리얼을 가장 왕성하게 먹는 6~10세가 된다.

 자녀들이 집을 떠나면 가정의 목표가 바뀌게 된다. 더 이상 새로운 가전제품이나 가구, 큰 차, 브랜드 의류가 필요하지 않게 된다. 이때부터는 더 먼 미래를 바라보고 머지않아 퇴직해야 한다는 사실을 깨닫게 된다. (p.65)

 

 이 같은 저자의 주장은 과거 일본이나 현재 미국에서 천문학적인 돈을 시장에 쏟아 붓는 양적완화 정책에도 시장이 좀처럼 살아나지 않는 이유를 설명하는 데 상당한 설득력을 갖습니다. 그러면 저자는 과연 미래를 어떻게 전망하고 있을까요? 장기적(수십 년 후)으로는 긍정적으로 바라보고 있으나 단기적으로는 매우 어렵습니다. 적어도 2020년대 초중반까지는 세계경제가 불황에서 벗어날 수 없을 것으로 보고 있습니다. 신흥국들은 선진국들에 비해 다소 높은 성장률을 보일 수 있으나 선진국의 경제가 어려운 가운데 신흥국들만 고공 행진을 할 수는 없다는 것이죠. 이를 저자는 ‘경제의 겨울’이라고 합니다. 물론, 겨울 뒤에는 다시 봄이 찾아오고요.

 

<저자는 세계경제가 향후 수십 년 동안 어려울 수밖에 없는, 이른바 ‘경제의 겨울’에 접어들었다고 합니다. 물론, 겨울 뒤에는 다시 이 오고요.>

 

 그러면 저자가 위와 같이 경제를 예측하는 이유를 살펴보면 다음과 같습니다. 먼저, 미국은 베이비부머 세대의 은퇴가 가까워지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미 가장 많이 지출하는 시기는 지났고요. 즉, 미국 소비시장에서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하는 베이비부머 세대가 가장 지출이 많은 시기(40대 중후반)가 지나면서 소비를 줄이고 있으며, 은퇴를 대비해 저축을 늘리게 될 것이라는 겁니다. 게다가 베이비부머 세대의 뒤를 이을 세대는 베이비부머 세대를 대체할 구매력이 없고요.

 

 베이비부머가 지금 원하는 것과 앞으로 하려는 일은 과거와 다르다. 그들의 목표는 더 이상 소비를 늘리는 것이 아니다. 이런 종류의 경제활동에 의존해서는 결코 경기 부진에서 벗어날 수 없다. 베이비부머들은 탄생 이후 줄곧 ‘아니요’라는 말을 모르는 것처럼 적극적이고 활기차제 자신들의 욕구를 추구했다. 지나치게 자신들의 욕구 충족에 집중했기 때문에 ‘나 중심 세대(Me generation)’라는 별명까지 얻었지만 이제 그런 시대는 끝났다. (p.237)

 

 여기에 더해 우리가 알고 있듯이 2000년대에 급증한 미국의 거품과 부채문제도 있고요. 또한, 고용시장과 주택시장 역시 회복될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즉 이러한 문제를 모두 해결하고 경제가 다시 활력을 되찾으려면 최소 2020년 이후(베이비부머 세대의 다음 세대가 소비시장을 이끌 시기)에나 가능할 것으로 저자는 보고 있습니다.

 

 그러면 현재 세계경제에서 또 하나의 큰 축으로 자리하고 있는 중국은 어떨까요? 간단히 말해 저자는 중국을 ‘시한폭탄’으로 보고 있습니다. 공급과잉으로 인해 심각한 거품이 형성돼 있다는 것입니다. 생산설비에서부터 부동산, 인프라, 금융까지 모두 말이에요. 여기에 더해 인구구조가 빠르게 고령화하고 있다는 점을 지적합니다.

 

 중국의 인구구조적인 추세는 대략 2015년에 정점에 도달한 뒤 그 수준에서 정체된 채 유지되다 2025년부터 떨어지기 시작할 것으로 예상된다. 중국의 이 같은 인구구조적인 하강은 유럽과 비슷한 속도이며 미국보다는 확실히 더 빠른 것이다. (p.277)

 

 저자는 앞서 말한 중국의 공급과잉 문제를 해결하려면 최소 10년 이상이 필요할 것으로 보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러한 문제를 해결하고 나면 인구구조가 하강하는 시기에 접어들게 됩니다. 이러한 상황을 종합해보면 중국이 앞으로 향후 수십 년간 경제규모 면에서 세계 2위의 자리를 지킬 수는 있을지 몰라도, 세계경제 성장의 엔진 역할을 계속하지는 못할 것이라고 저자는 주장합니다.

 

<중국의 과잉 생산 능력은 전세계에 또 다른 형태의 ‘부채 시한폭탄’으로 디플레이션 위기를 재촉하고 있다. (p.275)>

 

 미국과 중국이 어려움을 겪는 상황이기 때문에 수출의 비중이 큰 신흥국들 역시 어려움을 겪을 수밖에 없고요. 여기까지가 저자가 바라본 세계경제의 미래입니다.

 

 솔직히 조금 아쉽습니다. 이는 미국경제의 미래지 세계경제의 미래는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물론, 미국이 세계경제에서 차지하는 비중과 영향력은 매우 큽니다. 하지만 이 책은 그를 넘어선다는 생각이 듭니다. 전체 11장 중에서 8장만이 중국을 비롯한 신흥국의 미래를 이야기하니 말이에요. 그래서 원제목을 찾아보니 <The Great Crash Ahead>이더군요. 직역하면 ‘앞으로(다가올)의 대충돌’쯤 되나요? 아무튼 ‘세계경제의 미래’와는 거리가 있어 보입니다.

 

 마지막으로 이 책에서 가장 아쉬운 점에 관해 이야기를 해볼까 합니다. 물론, 인구구조와 소비를 통해 경제를 분석하고 이해하고 예측하는 저자의 접근방식은 무척 흥미롭습니다. 하지만 그를 바라보는 저자의 시각은 다소 아쉽게 느껴졌습니다. 예를 들어 저자는 전 세계 경제가 어려운 시기에 이를 잘 견뎌내기 위해 개인에게 많은 조언을 합니다. 채권과 부동산, 주식시장에 어떻게 접근해야 하는지 말에요. 그런데 이렇게 추천하는 것 중의 하나가 ‘공매도’입니다(다소 ‘공격적인 투자가와 트레이더라면’이라고는 하나). 공매도(空賣渡,short stock selling)는 간단히 말해 해당 주식을 보유하지 않은 채 매도 주문을 내 (주로)초단기 매매차익을 올리는 기법입니다. 이러한 공매도는 투기성이 짙은데다 시장조작을 벌일 가능성이 높아 국가별로 엄격한 제한을 두는 경우가 많습니다. 또한, 2008년 금융위기 이후로는 공매도에 대한 규제의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고요. 그런데 공매도를 권하다니요.

 

 또한, 기업에는 사람을 최대한 기계로 대체해 인건비를 줄일 것을 권합니다. 경제의 겨울에는 기업이 구직자보다 훨씬 유리한 입장에 서기 때문에 고용을 최대한 늦추면 정부로부터 고용에 대한 각종 지원도 더 많이 받을 수 있으며, 파산하거나 위기에 처한 경쟁기업의 유능한 인재들도 쉽게 확보할 수 있을 거라고 조언합니다.

 

 물론 경제가 워낙 어려운 상황에서는 기업과 개인 모두 살아남기 위해 다소 이기적인 행동을 취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그렇다면 이 책의 마지막까지 이기적인 관점에서 조언을 했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개인에게 주식 시장에서 ‘공매도’를 추천하고, 기업에는 사람을 기계로 대체하고, 고용을 최대한 늦추라는 식의 조언을 하고서는 마지막에 상생과 화합, 그리고 ‘우리’를 이야기해서는 안 된다는 것입니다.

 

 이러한 인식을 통해 전지구적인 정치 지배구조를 확립하고 더 넓고 커진 글로벌 경제를 구축해 노후화하고 있는 선진국과 앞으로 더 많은 성장을 일궈낼 젊은 신흥국 모두가 상생 협력하는 미래를 만들어갈 수 있다. (p.405)

 

 이 버블과 위기에서 당신 자신의 역할이 무엇인지 돌아보라. “내가 남에게 대접받고 싶은 대로 남을 대접하고, 비판받지 않기 위해서는 비판하지 마라!” 이번 위기에서 자신의 생존과 번영에만 급급하지 말고 다른 사람들도 도와주라. 남을 돕는 것을 개인적인 사명으로 여기며 그를 회사 안에서든, 밖에서든 자발적으로 진행하고 있는 자기 사업이라 생각하라. (p.406)

 

 2013년 미국은 오바마 대통령이 다신 한 번 미국을 이끌게 되었고, 일본은 새로운 총리가 취임했으며, 중국도 새롭게 시진핑 체제가 들어섰습니다. 그리고 이제는 수출이 아닌 내수 중심의 경제성장을 일궈내겠다고 발표했고요. 우리나라 역시 새로운 대통령과 새 정부가 출범합니다. 과연 이 책 <2013-2014 세계경제의 미래>의 저자의 전망이 얼마나 들어맞을지, 그리고 저자의 주장대로 세계가 흘러갈지 잘(!) 지켜봐야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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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01-21 09:41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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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의 기원 이펙트 - 인류 탄생의 과학적 분석은 어떻게 시작되었는가 10 그레이트 이펙트 1
재닛 브라운 지음, 이한음 옮김 / 세종(세종서적) / 2012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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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99년 BBC에서는 ‘지난 천년 최고의 사상가는?’ 이라는 네티즌 설문조사를 진행했습니다. 이 조사에서 찰스 다윈은 카를 마르크스, 알베르트 아인슈타인, 아이작 뉴턴에 이어 4위에 올랐습니다.

 

- 미국의 네셔널지오그래픽이 2002년에 방영한 프로그램에서 1001년부터 2000년까지 1000년간 역사에 가장 큰 발자취를 남긴 100명을 조사했습니다. 이 조사는 각 분야의 전문가들과 석학들이 참여한 조사였는데, 여기서도 찰스 다윈은 구텐베르크, 아이작 뉴턴, 마틴 루터에 이어 4위에 올랐습니다.

 

- 1990년대 후반 미국에서 『1,000년, 1,000인(1,000 Years, 1,000 People)』이라는 책이 출간되었습니다. 지난 1000년 동안 인류에게 가장 큰 영향을 미친 인물이 누구인지 묻는 설문조사를 정리한 책인데, 여기서 다윈은 7위였습니다. (1위는 구텐베르크)

 

- 영국에서도 인류 역사상 가장 뛰어난 아이디어는 무엇인가 라는 조사를 토대로 『오! 이것이 아이디어다(The World's Greatest Idea)』라는 책을 출간했습니다. 여기서 다윈의 진화론은 7위였습니다. (1위는 인터넷)

 

 이러한 결과에서 알 수 있듯이 찰스 다윈의 <종의 기원>은 인류 역사에 가장 큰 변화를 가져온 책 중 하나입니다. 그런데 <과학자의 서재>, <다윈지능>, <통섭의 식탁> 등으로 잘 알려진 이화여대의 최재천 교수님은 이런 말씀을 하신 적이 있습니다.

 

 “우리나라에서 설문조사를 하면 다윈은 몇 등을 할까요? 장담하건대, 100위 안에도 못 듭니다. 한국은 다윈에 대해 아는 것도 없고, 알고 싶어 하지도 않고, 중요성을 몰라요.”

 

 100위 안에도 못 든다는 말씀이 조금은 지나칠 수도 있다고 생각되지만, 제 생각에도 우리나라에서 설문조사를 한다면 위의 결과처럼 상위권에 다윈의 이름이 오르지는 않을 것 같습니다. 저 역시도 다윈이 인류 역사에 엄청난 영향을 끼친 것은 알고 있었지만, 단지 그뿐이었죠. ‘진화론’을 주장한 사람.

 

<찰스 다윈(Charles Robert Darwin)과 『종의 기원(On the Origin of Species by Means of Natural Selection or the Preservation of Favoured Race in the Struggle for Life)』>

 

 이처럼 다윈에 대해 막연한 생각뿐이었던 저에게 이 책 <종의 기원 이펙트>는 상당한 도움이 되었습니다. 부담 없이 읽을 수 있는 분량에 다윈이 어떻게 <종의 기원>을 출간하게 되었는지, 다윈에게 영향을 끼친 것들은 무엇인지, 다윈이 주장한 것들은 무엇이며 무엇이 논란이 되었는지 등을 모두 담고 있기 때문입니다. 이 책을 읽으면서 한 가지 재미있었던 것은 ‘진화론’에 관한 주장을 처음으로 한 사람이 다윈이 아니라는 것이었습니다. 다른 형태이긴 하나 이미 당시 사람들에게 새로운 사상은 아니었다는 것이죠.

 

 다윈이 1859년에 제시한 개념과 주제 중 많은 것들은 그 당시에도 새로운 것이 아니었다. 또 그의 서술 방식은 극도로 온건했다. 그럼에도 『종의 기원』의 출간은 분명히 기원 문제에 관한 논의의 본질을 극적으로 바꾼 크나큰 사건이었다. (p.210)

 

 예를 들어 찰스 다윈의 할아버지인 이래즈머스 다윈과 라마르크의 변형주의(transformism)는 이미 1820년대의 급진적인 사상가들로부터 높은 평가를 받고 있었습니다. 또한, 당시 학생들의 소모임인 ‘플리니 협회’에서 찰스 다윈과 만난 로버트 그랜트는 라마르크의 변형주의 이론을 토대로 해면동물이 근원 생물이며, 그로부터 다른 모든 생물이 진화하여 ‘진화의 가지들(evolutionary tree)’을 이루었다고 주장했습니다. 1844년에는 스코틀랜드의 언론인이었던 로버트 체임버스가 익명으로 진화에 관한 책 『창조의 자연사의 흔적들(Vestiges of the Natural History of Creation)』을 출간했습니다. 이 책은 비록 과학적인 내용이 전반적으로 빈약하다는 평가를 받았지만, 진화에 관한 주장을 하고 있다는 것은 명확했습니다. 그리고 1858년에는 자연학자 앨프리드 러셀 월리스가 다윈의 주장과 똑같은 내용의 논문으로 다윈을 무척 놀라게 하였습니다. 그 논문에는 자연선택을 통한 진화론이 전개되어 있었던 것이죠. 그래서 다윈은 친구들의 조언에 따라 서둘러 자신의 논문과 월리스의 논문을 1858년 7월 1일, 영국의 자연사학회인 런던린네협회의 모임에서 함께 발표합니다.

 

 이처럼 다윈이 제시한 개념과 이론은 처음 제기된 것이 아니며, 어느 날 갑자기 세상을 뒤바꾼 것도 아니었습니다. 그런데도 다윈의 이론이 가장 큰 영향력을 갖고, 사람들 사이에서 논쟁의 중심에 서게 된 이유는 무엇일까요? 이 책의 내용으로 추측건대 두 가지를 꼽을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첫 번째는 시대적 흐름입니다. 다윈의 이론이 세상에 나올 당시의 시대적 상황이 중요했다는 것이지요. 종교의 권위는 예전만 못하고, 산업과 과학의 기술이 발전하면서 인간의 자신감이 충만했던 시기였던 것입니다. 조금씩 사상적인 변화의 조짐도 보였고요.

 

 이렇듯 활력 넘치던 근대 사상가들은 유서 깊은 대학교들에 뿌리 깊이 박혀 있던 설명 체계인 자연신학을 거부하고, 신은 교회의 자질구레한 교리를 필요로 하지 않으며, 나서지 않고 뒷전에서 다스린다는 더 유연하고 개인적인 견해를 채택했다.

 1850년경 변형 이론은 이렇듯 진취적인 사상가들에게 덜 위협적으로 비추어진 듯하다. 빅토리아 시대 중반 산업과 상업 분야에서 나온 자신감은 1830~1840년대의 폭발할 것 같은 위험한 사회 분위기를 날려버렸다. 번영과 진보가 이 시대의 주제가 된 듯했다. - 중략- 손꼽히는 지식인들 중에 신앙과 불신의 경계를 반드시 뛰어넘은 것은 아닐지라도 자기계발, 경제 발전, 그리고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문명의 추진력’이라는 원리를 받아들인 사람이 꽤 많았으며, 앨프리드 러셀 월리스처럼 덜 알려진 수많은 인물들이 세속적이면서 새로운 시선으로 세계를 살펴보고 있었다. (p.97~98)

 

 이렇듯 시대적인 상황과 시기적으로 맞아떨어지면서 다윈의 주장은 사람들에게 보다 쉽게 받아들여지게 되고, 논쟁의 대상이 된 듯싶습니다.

 

 두 번째 이유는 다윈의 지인들입니다. 다윈이 다운하우스라는 켄트 주(영국) 브럼리 인근의 시골 마을에서 편지로 세상과 소통한 대신, 찰스 라이엘을 비롯한 그의 친구들이 다윈의 주장을 지지하고, 논쟁을 더 확대하고 심화시켰기 때문입니다. 게다가 이들은 모두 자신들의 분야에서 인정받은 전문가였으니 영향력은 말할 필요도 없고요.

 

 이 네 사람은 다윈의 증거나 추론에 있는 결함을 지적하면서도 진심으로 다윈을 지지했다. 그들은 제자와 추종자들을 끌어모으고 다윈을 위해 각개전투를 벌이는 한편, 논쟁을 더 확대하고 심화시켰으며, 다른 사상가와 다른 주제와 다른 의미를 끌어들이면서 일심동체가 되었다. 그 점진적인 과정은 결국 문화적 태도와 과학 사유에 주요한 변화를 가져왔다. -중략- 이 다윈 동맹의 존재는 아마 그 논쟁의 가장 중요한 특징일 것이며, 궁극적으로 진화론이 승리하는 데 크게 기여했다. 그 핵심에는 찰스 라이엘, 조지프 후커, 아사 그레이, 토머스 헨리 헉슬리가 있었다. (p.129~130)

 

 이처럼 시대적 상황과 지인들의 힘, 저는 이 두 가지가 다윈의 이론이 그토록 큰 영향력을 갖게 한 원동력으로 보았습니다. 어쨌든 <종의 기원>은 1859년 11월에 출간되면서 논란의 대상이 됩니다. 그리고 우리가 익히 알고 있듯이 인류 역사에 엄청난 영향을 끼치고요. 자연과 우리 자신을 바라보는 관점을 변화시켰을 뿐만 아니라 진화생물학, 진화심리학 등 수많은 과학의 기초가 되었습니다.

 

 이 책을 읽으면서 또 한 가지 느낀 점은 다윈의 진화론이 인류역사에 미친 영향력을 생각할 때 반드시 시대의 흐름을 고려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전체적인 역사의 관점에서 바라볼 때 진화론의 영향력은 과학과 종교의 범주를 넘어서게 된다는 것이죠. 예를 들어 제레미 리프킨<엔트로피>에서 이런 말을 했습니다. 중세까지 사람들은 인류의 역사를 쇠락의 역사로 보았다는 것이죠. 고대 그리스 시절부터 말입니다.

 

 고대 그리스의 역사가 헤시오도스(Hesiodos)는 <신통계보학 (The Theogony)>에서 인류의 역사를 다섯 시기로 나누어 기술했습니다. 그 다섯 시기는 각각 황금시대, 은의 시대, 청동시대, 영웅의 시대, 철의 시대로 나뉘며, 각 시기는 이전보다 쇠퇴한다는 것입니다. 가장 풍요로운 시기였던 황금시대의 인류는 신들처럼 늙지도 않고 피곤이나 고통도 몰랐으며, 대지는 풍요로워 일하지 않아도 언제나 먹을 것이 넘쳐났던 시대입니다. 반면 가장 쇠락한 시기이자 헤시오도스 자신이 속한 시대인 철의 시대는 낮이고 밤이고 불안하고 피곤할 뿐이며, 인류는 서로를 위하지 못하고 제 앞가림하기에 바쁘다는 것입니다. 또한, 이 시대의 인류는 무법천지 속에서 불행과 고통을 견디며 살아가야 할 것이라고 했습니다.

 

 그리고 중세 시대의 기독교적 역사관(제레미 리프킨의 표현을 빌리자면)은 이 세상의 삶을 다음 생을 향해 가는 중간 과정으로 생각했다는 것입니다. 이때의 세계관은 그리스적 순환 개념은 버렸지만, 마찬가지로 역사를 쇠락의 과정으로 인식했습니다. 모든 일은 전적으로 신의 뜻이라 여겼으며, 역사 또한 신이 만드는 것이지 인간이 만들 수 있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따라서 개인적인 목적은 ‘성취’가 아니라 ‘구원’이었다는 것이죠.

 

 그런데 이것이 18세기 즈음부터 변하기 시작합니다. 인류의 역사는 직선적으로 발전하며, 역사의 각 단계는 그 이전에 비해 진보한다는 사상이 자리 잡기 시작하는 것입니다. 이러한 사상과 세계관이 다윈의 진화론에 의해 더욱 심화되고요. 여기까지가 제레미 리프킨의 주장입니다. 즉 쇠락의 과정이었던 인류의 역사가 진보의 역사로 바뀌었는데, 다윈의 <종의 기원>이 그에 당위성을 부여해 주었다는 것입니다. (물론, 제레미 리프킨은 이것이 다윈의 이론을 잘못 이해한 데서 비롯되었다고 합니다.) 이 책에서도 비슷한 주장을 접할 수 있습니다.

 

<제레미 리프킨은 『엔트로피』에서 쇠락의 과정이었던 인류의 역사가 진보의 역사로 바뀌는 것을 다윈의 진화론이 심화시켰다고 보고 있습니다.>  

 

 19세기 후반기에 선진국들의 지배적인 경제 전략은 『종의 기원』의 영향을 받아 다듬어졌다. 그 책을 자유 기업적인 빅토리아 시대 자본주의에서 번성했던, 경쟁을 정당화하는 데 이용하는 일도 흔했다. -중략- 다윈의 사상은 산업계의 부호들과 공장주들에게 환영을 받았다. 또한, 19세기 말 북아메리카의 산업 발전을 주도하던 기업가, 자선사업가, 악덕 자본가에게도 영향을 미쳤다. 특히 J. D. 록펠러와 철도 소유주 제임스 J. 힐은 ‘적자생존’을 자신의 좌우명으로 삼았다. (p.151)

 

 이처럼 다윈의 진화론은 과학과 종교뿐만 아니라 경제와 인류의 사상적인 측면에서도 엄청난 변혁을 일으켰습니다. 우리가 알고 있는 것 이상으로 말이죠. 그리고 진화론에 관련된 새로운 학문이 계속해서 생겨나고 있는 만큼 앞으로도 계속해서 영향을 미칠 것 같습니다. 최재천 교수님 역시 앞으로는 공감의 시대가 될 것이며, 그 안에서는 다윈의 사상을 이해하는 것이 반드시 필요할 것이라고도 하셨고요. 그러면 다윈과 진화론을 제대로 이해하기 위해서는 가장 먼저 무엇이 필요할까요? 저는 자연과학 기피 현상(대학에서), ‘진화론=다윈’이라는 암기 위주의 교육 방식부터 해결해야 한다는 생각이 드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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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산층이라는 착각 - 대한민국 양극화 쇼크에 관한 불편한 보고서
조준현 지음 / 위즈덤하우스 / 2012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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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최근, 아니 얼마 전부터 중산층을 살리자는 것이 사회적 과제가 되었습니다. 선거를 앞두고 각 후보는 경제민주화를 내걸고 있습니다. 또 한 후보는 대통령에 당선된다면 임기 내 중산층의 비중을 70퍼센트까지 끌어 올리겠다 합니다. 그러면 도대체 중산층이란 무엇일까요? 이 책 <중산층이라는 착각>의 저자 조준현 교수는 책에서 이렇게 말합니다.

 

 중산층의 사전적 의미는 소득 수준이 중간이라는 의미다. 그런 의미에서의 중산층이란 항상 존재한다. 하지만 우리가 생각하는 중산층이란 그럴 듯한 집에서 괜찮은 자가용을 굴리고 아이들 교육비에 대해 크게 걱정을 하지 않으며 풍요한 노년을 맞이할 수 있는 그런 계층이다. 당신은 과연 그런 중산층인가? (p.4)

 

 즉 사전적 정의는 수득 수준이 중간이라는 말이지만, 우리가 인식하고 느끼는 중산층의 의미는 적당한 내 집을 보유하고 중형급 혹은 중대형급 자동차를 굴리고, 자녀 교육에 대해 큰 부담을 갖지 않으며, 저축, 재테크 등을 통해 노후 준비를 착실히 해가며, 문화생활도 즐길 줄 아는 수준이라는 것입니다. 제가 생각하는 중산층 역시 그렇고요. 하지만 이는 불가능해 보이고, 앞으로도 힘들 것 같습니다. 희망이 보이질 않는다는 것이죠. 이 역시 이 책 전체에 걸쳐 저자가 주장하는 바입니다.

 

 어제 12월 10일 자 어느 신문에 이런 기사가 났습니다. 빚 때문에 집이 경매에 넘어가는 가구가 늘고 있다는 이야기 말입니다. 이런 기사는 최근 부쩍 늘어난 것 같습니다. 자주 보이죠. 부동산 시장이 침체되어 하우스푸어니, 깡통 아파트니 말이죠. 그리고 도산하는 건설사가 늘고 있다고도 하고요. 이렇게 건축시장이 어려움을 겪다 보니 이와 관련된 산업(예를 들어 가구시장)도 어려움을 겪게 되고, 이는 그대로 소비자 즉 우리에게로 돌아온다 하고요. 그래서 정부는 양도세 감면이니 DTI 규제 완화니 하며 부동산 시장을 살리려고 안간힘을 쓰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 책의 저자는 이에 대해 반대하는 입장을 보입니다. 집값이 떨어져 힘든 사람이 많은지 평생 내 집 하나 마련하지 못해 빚에 허덕이는 사람이 많은지를 생각해 보라는 것이죠.

 

 과연 아파트 값이 떨어져서 가난한 사람은 누구인가? 아파트 값이 떨어져 손해를 봤다는 사람들은 대부분 수억 원의 자산을 가진 사람들이다. 많든 적든 그중에는 아파트를 여러 채 가지고 있는 사람들도 있을 것이다. 그렇다면 누가 더 가난할까? 아파트를 가지고 있는데 값이 떨어져 슬픈 사람들인가, 그런 아파트조차 한 채도 갖지 못한 사람들인가? (p.111)

 

 집값이 떨어져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할 위기에 처한 분들에게는 죄송하지만, 저 역시 같은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이미 우리나라의 집값은 너무 높은 수준이라는 것이죠. 만약 투자가 투기가 아닌 ‘진정 자신이 살고자 하는 집’으로 주택을 구매했다면 값이 오르고 떨어지는 것이 그리 큰 문제일까요? 어차피 계속 살 집인데 말이에요. 이에 대해 반론을 제기하시는 분들 역시 많으리라 생각됩니다.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해 빚만 늘어나는 상황도 있다고요. 이에 대해 저자는 일침을 가합니다. 자신의 부담 수준을 고려치 않고 주택을 구매, 그것도 앞으로 주택가격이 오르면 모든 것이 해결될 것이라는 생각을 갖고 구매한 사람들은 이미 선량한 피해자가 될 수 없다고 말이에요.

 

 또한, 이러한 문제들은 대체로 그동안 부동산 가격이 하늘 높이 치솟았던 서울을 비롯한 수도권의 얘기라는 것입니다. 따라서 이 일을 마치 대한민국 국민 모두의 문제인 것 마냥 정부가 대책 마련이 시급하다 하는 것은 잘못되었다는 주장입니다.

 

 요즘 ‘집 가진 죄인’이니 ‘하우스푸어(house poor)’sl 하는 말이 유행이라고 한다. 아파트 가격은 하락하는데도 사겠다는 사람이 없어서 아파트를 팔려는 이들이 걱정이라는 이야기다. 그러나 이런 이야기를 듣고 있노라면 뭔가 잘못되었다는 생각이 든다. 서울 사람들의 착각 가운데 하나가 서울의 문제를 대한민국 전체의 문제로 생각하는 것이다. -중략-


 아무튼 말이 나온 김에 도대체 아파트 값이 얼마나 떨어졌는가 살펴보자. 서울의 대표적인 재개발 지역에 속하는 은마아파트의 경우 30평형 가격이 한때 10억 원을 넘었으나 지금은 9억에 불과하다고 한다. 불과 1년 만에 아파트 값이 1억 원이나 떨어진 것이다. 어마어마한 가격 폭락이 아닐 수 없다. 그런데 지난 2001년 이 아파트의 가격은 3억 원도 안 됐다. 그러니 정확하게 말하면 이 아파트의 가격은 불과 1년 만에 1억 원이나 떨어진 것이 아니라, 불과 10년도 안 돼 6억 원 너머 상승한 것이다. 과연 이것이 정상적일까? (p.110~111)

 

 저자는 이처럼 부동산 시장, 정확하게는 내 집 마련처럼 우리를 힘들게 하는 대한민국의 경제적 문제들을 하나하나 보여주고 있습니다. 일자리 문제, 소득불균형 문제, 사회복지 문제, 부동산 문제, 교육·양육 문제 등 다양한 분야의 문제들이 어떻게 우리를 힘들게 하고 있으며, 이러한 상황이 악화되어 가는 현실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빠져나오려 할수록 더욱 빠져드는 ‘개미지옥’에 비유하면서 말이에요.

 

<자꾸 무너져내리는 개미지옥처럼 대한민국의 현실 그들의 몸부림을 헛된 것으로 만들고 있다. (p.74)>

 

 이 책은 전체 348페이지에 크게 5장으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348페이지 중에서 306페이지가 앞서 말씀드린 대한민국의 현실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그것도 아주 구체적인 수치와 통계자료들을 바탕으로 말이에요.(이 책 자체가 하나의 통계집이라고 해도 될 만큼 말이죠.)

 

 그런데 저는 역설적이게도 이런 통계적인 수치보다는 전체적인 방향에 의미를 두고 읽는 것이 더욱 중요하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저자 역시 그렇게 말하고 있고요. 그 이유는 통계 수치라는 것이 정확하고 명료해 보이지만, 사실 그 수치를 어떻게 해석하느냐에 따라 의미가 크게 달라지기 때문입니다. 또한, 통계 수치에 영향을 준 무수히 많은 요소를 전부 고려하며 이해하는 것이 사실상 불가능하기 때문이죠. 예를 들어 책에는 이런 설명이 있습니다.

 

 2007년과 비교하면 우리나라의 금융부채 비율은 3년 만에 10%포인트나 늘어났는데, 같은 기간 미국은 13%포인트 감소했으며 영국과 일본, 독일 등도 3~12%포인트 감소했다. (p.101)

 

 이를 보면 마치 다른 국가들은 개선되어 가는데 우리나라만 악화됐다는 듯 보입니다. 하지만 여기서 금융위기의 진원지라 할 수 있는 미국의 가계부채가 13%포인트 감소한 것은 미국 국민의 저축을 늘리고 지출을 줄여 부채가 감소했다기보다는 민간부문의 부채 상당 부분을 미국 정부가 흡수했기 때문이죠. 따라서 구체적인 수치보다는 우리나라 가계 부채가 최근까지 빠르게 늘어났고, 현재 가장 큰 문제 중 하나라는 사실과 경제의 방향성을 이해하는 것이 더 중요하다는 것입니다.

 

 또한, 이러한 통계 수치들의 원인에 대해 스스로 생각해보는 것도 중요하다 생각합니다. 예를 들어 책에는

 

 빚을 갚기 위해서는 저축을 해야 할 텐데 우리나라 가계저축률은 3.9%로 OECD 회원국의 평균인 5% 수준에 한참 못 미친다. 경제개발이 한창이던 시절에는 30%가 넘는 저축률로 일본, 대만, 싱가포르 등과 함께 저축 모범국가로 불렸던 우리나라가 지금은 가계적자가 늘다 보니 저축은커녕 빚이 빚을 내는 악순환을 되풀이하고 있는 것이다. (p.102)

 

 라는 주장이 있습니다. 이는 엄연한 사실이고요. 그러나 저축률이 줄어든 원인에 대해서는 조금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소비문화가 바뀌고 저축에 대해 사람들의 생각이 바뀐 것도 사실이나, 저는 또 하나 중요한 요인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바로 저축방식의 변화 말이죠. 과거에는 금리(이자율)가 높아 적금만 열심히 부어도, 어느 정도 목돈을 마련할 수 있었습니다. 높은 금리 덕에 전세 물량 역시 안정돼 있었고요. 하지만 이제는 금리가 너무 낮아 적금 같은 저축 수단만으로는 큰돈은커녕 물가 상승을 만회하지도 못한다는 인식이 자리 잡으면서 부동산, 주식, 펀드, 연금저축보험 등 다른 수단으로 자금이 흘러들어 간 이유도 있다는 것이죠. 몇 년 전만 해도 각종 서점의 베스트셀러에는 재테크 관련 도서가 넘쳐났었잖아요. 이처럼 낮아진 저축률에는 여러 이유가 복합적일 수 있습니다. 따라서 여러 통계 수치를 그대로 받아들이기보다는 스스로 그 원인에 대해 생각해보는 자세 또한 중요하다 생각합니다.

 

 마지막으로 자칫 이 책의 단점 혹은 부족한 점으로 비칠 수 있는 부분에 관해 이야기해 보겠습니다. 앞서 말씀드린 대로 이 책은 348페이지 중에서 306페이지가 대한민국의 현실을 보여주는 내용입니다. 이러다 보니 결론 혹은 구체적인 방안에 대한 분량이 그만큼 적어 보일 수 있다는 것이죠. 내용마저 원론적인, 혹은 이미 잘 알려진 이야기니 말이에요. 저 역시 살짝 아쉽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이 책의 목적은 정치적인 해결방안과 구체적인 계획을 제시하는 것이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이 책의 전체에 걸쳐서 저자가 가장 하고 싶었던 이야기는 아마도, ‘복지와 정책에 대한 우리의 생각을 바꾸고(예를 들어 증세에 대한 생각, 보편적 복지에 대한 생각 등), 대한민국의 현실을 제대로 이해하는 것이 무엇보다 가장 필요하다.’라고 생각합니다. 그러지 않으면 우리는 떨어지는 바위를 끊임없이 산 정상으로 올려야 하는 형벌의 시시포스(Sisyphus)처럼, 시시포스의 노동에서 벗어날 수 없을지도 모른다고 말이죠.

 

 시시포스의 노동에서 가장 절망적인 것은 무엇일까? 힘들고 괴로운 노동의 가혹함보다 더 절망적인 것은 바로 이 노동이 언제 끝날 지 알 수 없다는 사실이다. 양극화 함정에 빠진 대한민국의 빈곤층에게는 삶 그 자체가 시시포스의 절망이다. 이런 삶에서 언젠가 벗어날 수 있으리라는 희망조차 가질 수 없기 때문이다. (p.229)

 

<끊임없이 바위를 올려야 하는 형벌을 받은 시시포스. 타치아노(1488~1576)작. 프라도 박물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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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12-11 10:22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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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12-11 18:41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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