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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나는 너를 사랑하는가 (양장)
알랭 드 보통 지음, 정영목 옮김 / 청미래 / 2007년 8월
평점 :
구판절판
지인과 책에 관해 이야기를 나누던 중에, 지인이 가장 좋아하는 책 중에 하나가 『왜 나는 너를 사랑하는가』라는 이야기를 듣고는 오랜만에 다시 이책을 집어 들게 되었습니다. 과거에 읽은 적이 있음에도, 읽는 내내 낯선 기분이 들었습니다. 물론, 저의 기억력이 그다지 좋지 못한 편이기 때문이겠지만, 『왜 나는 너를 사랑하는가』라는 소설 자체가 읽을 때마다 새로움을 느끼게 해주는 매력을 갖고 있기 때문이라고도 생각합니다. 마치 헨리 데이비드 소로우의 『월든』처럼, 책을 읽을 때는 읽는 내내 사유에 잠기게 하지만 정작 책을 다 읽고 난 뒤에는 머릿속에 그다지 많은 내용이 남아있지 않는 그런 책 말입니다.
『왜 나는 너를 사랑하는가』는 사실 소설임에도 줄거리로만 읽는다면 너무나 단순하다 못해 진부하기까지 합니다. 남녀가 만나서 첫눈에 반하게 되고, 고백하고, 싸우고, 헤어지고, 다시 첫눈에 반하면서 끝을 맺습니다. 그리고 소설의 대부분은 남자 주인공인 '나'의 독백이 차지하고 있습니다. 이쯤되면 도대체 이 소설이 가지고 있는 매력은 뭘까? 하는 궁금증을 갖게 합니다. 소설, 영화, 대중가요 등등 어디에서나 넘쳐나는 소재인 '사랑'을 가지고 단순하다 못해 진부한 줄거리를 바탕으로, 남자 주인공의 독백으로 가득채운 이책. 도대체 이책은 무슨 매력때문에 스테디셀러로 자리매김하게 되었을까? 싶습니다.
이 책의 매력은 앞에서 말씀드린 것처럼, 읽는 내내 독자를 사유하게 하는 데에 있습니다. 알랭 드 보통의 다른 소설이나 책들처럼 이 책『왜 나는 너를 사랑하는가』역시 작가가 하고 싶은 온갖 글과 말들을 소설의 형식을 빌려 쏟 아낸 작품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연애소설임에도 아리스토텔레스, 플라톤, 칸트, 니체, 벤담등 철학적인 내용이 적지않게 등장하기도 합니다. 하지만 이 소설이 진정 사유를 필요로하는 이유는 남녀관계에 행동 하나하나에 의미를 부여하고, 분석하고, 사유하면서 독자들에게 공감을 이끌어 내기 때문입니다. 예를 들어 남자 주인공은 여자 주인공인 '클로이'가 계산대에서 식료품을 비닐 봉투에 요령 있게 꾸려넣는 사소한 모습에 매력을 느끼고는 이렇게 생각합니다.
p.120 - 두 눈이나 모양이 제대로 갖추어진 입에서 매력을 찾는 것은 쉬운 일이다. 그러나 슈퍼마켓 계산대 위에서 움직이는 여자의 손에서 매력을 찾아내는 것은 얼마나 어려운가. 클로이의 몸짓들은 빙산의 일각처럼 그 밑에 놓인 것을 가리켰다. 그것의 진정한 가치, 호기심이 덜한 사람이나 사랑이 덜한 사람에게는 당연히 의미 없어 보일 가치를 발견하기 위해서 바로 연인이 필요한 것이 아닐까?
이처럼 이책은 남녀간의 사소한 행동과 말들 하나하나에 의미를 부여하고 분석하고 생각하는 글이 주를 이루기에 충분한 사유가 필요한 소설인 것입니다.
이 소설이 갖는 또 하나의 매력은, 연애를 관찰자의 입장에서 바라보는 기회를 제공하는 점입니다. 사랑은 하나의 감정이고, 감정은 언제나 이성보다 앞서 나가기 때문에 사 랑은 철저하게 주관적일 수 밖에 없습니다. 하지만 작가는 첫 만남에서부터 헤어지고, 새로운 사람을 만나는 순간까지 주관적인 감상과 함께 관찰자의 입장에서 객관적인 분석과 생각들을 함께 서술하여 독자들 스스로 본인들의 연애와 사랑에 대한 생각을 돌아볼 기회를 제공합니다.
개인적으로 기 억에 남는 부분 한 가지만 이야기해 보겠습니다. 남자가 우울한 표정으로 창밖을 물끄러미 바라보고 있자, 여자는 "너 또 길 잃은 고양이 같은 표정을 짓고 있네."라고 말하고, 남자는 그 말이 너무나 잘 들어맞는 다며 감탄하고는 이렇게 생각합니다.
p.143 - 인간이 "사회적 동물"이라는 말은 무슨 뜻일까? 오직 인간만이 연체동물이나 지렁이와는 달리 자신을 규정하고 자의식을 얻기 위해서 다른 사람을 필요로 한다는 뜻이다. 주위에 있는 다른 사람들이 우리가 어디에서 끝나고 다른 사람들이 어디에서부터 사작되는지 우리에게 보여주지 않는다면 우리는 우리 자신에 대한 제대로 된 느낌에 이를 수 없다. "혼자서는 절대로 성격이 형성되지 않는다." 스탕달의 말이다. 성격의 기원은 우리의 말과 행동에 대한 다른 사람들의 반응에 있다는 의미이다. 우리의 자아는 유동체이기 때문에 이웃들이 윤곽을 제공할 필요가 있다. 자신이 온전하다는 느낌을 얻으려면, 근처에 나 자신만큼 나를 잘 아는 사람, 때로는 나보다 더 잘 아는 사람이 필요하다.
즉 '나' 자신이 타인들에 의해 규정되고 의미가 부여 된다는 말입니다. 잠시 다른 소설의 이야기를 하겠습니다. 『눈먼 자들의 도시』의 작가 주제 사라마구는 소설 『도플갱어』에서 위와 비슷한 주장을 합니다. 만약 A라는 인물이 있고, 이 A라는 인물과 외모, 성격, 목소리 등등 모든 것이 똑같은 사람 B, 즉 도플갱어가 존재한다면 A라는 인물과 B라는 인물을 구분할 수 있게, A라는 인물과 B라는 인물이 전혀 다른 인물임을 내세울 수 있는 근거가 무엇일까요? 이 물음에 주제 사라마구는 A라는 인물과 B라는 인물을 구분하는 가장 큰 근거는 바로 사람들과의 관계라고 답합니다. 나의 부모님이 다르고, 연인이 다르고, 나를 A라고 불러주는 사람들이 다르기 때문에 B와는 구분이 된다는 것이죠. 이처럼 타인들과의 관계를 통해서 자신의 존재를 규정한다는 점에서는 소설 『도플갱어』와 비슷한 면이 있지 않나 생각해봅니다.
연애소설에 서 생각하는 재미와 곱씹어보는 맛을 이토록 풍성하게 제공하는 소설도 많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이게 바로 이 소설의 가장 큰 매력이 아닐까 합니다. 다만, 지금까지의 수 많은 소설과 영화, 대중가요들이 사랑을 이야기했음에도 확실한 해답을 내놓지 못한 것처럼 이 소설 역시 결국엔 명쾌한 해답을 내놓지는 못했다는 것이 저의 주관적인 생각입니다. 헤어짐에 대해서 슬퍼하고 힘들어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어느새 잠잠해지고 또 다른 사랑을 시작하게 된다는 점에선 여느 소설과 별반 다르지 않아 보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소설은 분명히 읽는 재미와 생각하는 재미가 풍성한(?) 소설입니다. 사랑과 연애에 대해서 원없이 사유를 해보고 싶은 분들이라면 읽어 볼 만한 소설이라고 생각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