몇 년 만에 다시 읽어본 글은 역시나 새롭다. 문장을 여러 번 읽어보기도 하다가 알 수 없이 눈물이 솟았는데, 대체로 알지 못하는 마음의 어디에서인가 작고 단단한 매듭이 풀어져, 놓여나 홀가분해진 듯한 느낌이다. 어떻게 이런 글이 가능한지...
내가 엄청난 실수를 한 건 아닌가 하는 생각. 내가 시간을 그나마 잘 타고난 또 한 명의 ‘야만적인 정신과 의사‘에 지나지 않는 건 아닐까 하는 피해망상. 거기에 더해 오늘 걱정거리가 새로 하나 더 늘었다. 정신의학은 일상생활을 의학화하는 죄를 짓고 있지는 않은가? - P-1
철학적인 관점에서 볼 때 우리는 ‘정상‘이라고 부르는 것과 ‘장애‘라고 부르는 것을 가르는 선을 어디에 그어야 하는 걸까? 우리가 규정한 정상이라는 개념의 범주 밖으로 벗어나는 사람들을 어떻게 대하고 치료해야 할까? 누군가 자신이 예수라고 믿고 동네 수영장 물 위를 걸으려고 할 때 그런 문제에 대해 깊이 생각할 여유가 있을까? - P-1
... 가끔은 우리 마음에 존재하는 어두운 면모들도 인정할 줄 알아야 한다. 타이레놀을 100개 샀지만 그중 한 개를 바닥에 떨어뜨리고는 오염된 약을 먹고 배탈이 날까 봐 99개만 먹고 자살시도를 한 일화처럼 말이다. - P-1
하지만 현실에서 그토록 극적으로 반응할 이유는 전혀 없다. 어느새 나는 극도의 충격, 공포, 슬픔 같은 감정도 전문가답게 로봇처럼 흡수한다. 감정에 너무 많이 동요되지 않는 편이 더 견디기 쉬우니까. - P-1
나는 다른 사진들도 보았다. 비에 젖은 발굴팀원들이다. 백인도 있고 유피크인도 있는데, 모두가 웃는 얼굴로 흙 묻은 손으로 발굴품을 내밀고 있다. 모두 자원봉사자고 대부분 ‘베링 해변의 고고학 탐험‘을 위해 찾아온 학생이었다. 그들은 돈을 저축하고 열두 명에서 열다섯 명 정도로 한 팀을 만들어 그곳으로 갔다. 사진 뒤쪽에는 바다가 반짝이기도 하고 멀리, 아주 멀리 툰드라 지대가 보이기도한다.그날 밤 나는 다시 기차를 타고 집에 돌아왔다. 유피크 유물들이 머리에 가득 찼다. 발굴이 손상된 문화를 되살리고 있다고 릭이 말했다. 회복력과 자신감을 키워주고 있다고. - P-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