엘랏소에
달시 리틀 배저 지음, 강동혁 옮김 / arte(아르테) / 2023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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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실의 지리멸렬한 삶을 살다 보면 집에 놓여 있는 평범한 옷장 속, 세상과 동떨어진 신비한 세계가 그려진 나니아 연대기와 같이 우리 주변 어딘가에 또 다른 세상에서 펼쳐져 있을 거라는 상상을 하게 된다.

이러한 소재들은 현실 세계에서도 그 어딘가에는 우리가 알지 못하는 세상이 존재하며 언젠가는 나 또한 그곳에 당도할 수 있으리라는 기대감을 갖게 만들어 피터팬 증후군마저 앓게 한다.

이와 같이 판타지 작품은 때때로 벗어나고 싶은 오늘의 현실에서 우리를 해방시켜주는 탈출구가 되어 준다.

판타지 작품인 엘랏소에 역시 평행 세계에서 죽은 동물의 영혼을 불러내고, 유령을 소환한다는 매혹적인 능력을 가진 주인공 엘리(엘랏소에)가 사촌 트레버가 세상을 떠났다는 소식을 듣게 되며 시작된다.

엘리는 안타까운 사고로 떠난 그를 애도하지만 사촌 트레버는 엘리의 꿈에 나타나 본인은 사고가 아닌 살인을 당했다고 고백하는데...

그러나 트레버가 지목한 범인은 누가 봐도 살인과는 전혀 동떨어진 삶을 사는 인물로 보여진다.

엘리와 친구 제이가 그에 대한 증거를 하나씩 찾아가며 수사망을 좁혀들어가 수상하기 짝이 없는 살인범을 추적해나가는 이야기는 판타지 요소에 미스터리 요소까지 완벽히 갖추어 독자를 점점 매료시킨다.

휴대폰, 네일아트, 컬러렌즈와 스트리밍 방송까지 타 판타지 작품에서는 쉬이 볼 수 없는 현대 문물의 소재들이 가미되어 판이한 매력을 보여주며 독자들이 다가가기 쉽게 전개되는 작품은 성인이 아닌 상상력이 풍부한 어린이가 화자로 이야기의 주추가 되어 전개되기에 독자는 더욱 순수한 설렘을 가지고 이야기에 몰입하며 평행우주로 떠나게 된다.

또한 어린 작중인물이 이끌어가는 비슷한 맥락의 작품인 기묘한 이야기나 웬즈데이가 다소 어두운 분위기를 가져갔다면 이와는 달리 엘랏소에에는 위트 있는 요소들이 곳곳에서 빛을 발해 밝은 분위기가 주를 이뤄 부담 없이 다가갈 수 있었다.

특히 번역에서 톡톡 튀는 센스가 돋보여 엘리와 제이의 우정의 티키타카가 너무나 귀엽게 느껴졌다.

가족과 친구의 신뢰를 바탕으로 따듯한 사랑을 느끼기도, 상실에 대한 깊은 슬픔까지 놓치지 않고 사실적으로 그린 다양한 매력의 향연은 엘랏소에가 판타지적 요소가 짙은 작품임에도 더욱 현실감 있게 다가오게 매력을 배가시킨다.

리판 아파치 부족 출신인 저자가 리판 아파치어를 활용해 독특한 매력을 더하며 원주민이 마주할 수 있는 차별마저도 가감 없이 드러내 다양성까지 갖춘 이야기는 판타지 작품임에도 크나큰 비밀과 놀랍고 충격적인 반전을 영리하게 해결해나가 기대 이상의 숨겨진 매력을 보여주는 다채로운 매력의 집합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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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센디어리스
권오경 지음, 김지현 옮김 / 문학과지성사 / 2023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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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1년 9월 티비에서 비행기 한 대가 처음 보는 건물로 돌진했다.

그리고 비행기가 건물에 맞닿은 그 즉시 화염과 함께 검은 연기가 피어올랐다.

당시 어렸던 나머지 나는 그것이 어떠한 결과를 초래했는지, 어떤 고통과 아픔을 동반하는 것인지 도무지 알 수 없었고, 그저 넋이 나간 듯 뉴스 속보 화면만을 응시하는 부모님을 바라볼 뿐이었다.

그 장면은 20년이 넘게 흐른 오늘날에도 전 세계인들의 뇌리에서 잊혀질 수 없을 끔찍한 최악의 자살 테러로 불리는 911테러였고, 그 이면에는 종교라는 이유로 목숨까지 내놓고 테러를 자행한 이들 또한 존재했다.

이와 같이 종교가 가진 힘은 인간의 정신을 지배하고 그 이상의 결과를 행동으로 가져와 목숨마저 바칠 수 있게 되는 두려운 존재다.

인센디어리스는 종교를 잃고 공허함과 자괴감에 휩싸인 한국인 이민자인 저자 권오경이 그린 작품으로 종교적 방향을 잃고 방황하는 두 주인공의 의식의 흐름과 혼돈스러움을 녹여내 초반 도입부, 낯설고 생경한 분위기와 알 수 없는 위화감으로 시작된다.

각기 다른 것을 피하려 에드워즈에 오게 되어 만난 피비와 윌.

그들은 첫 만남부터 본인의 배경과 속내를 드러내지 않기 위한 거짓으로 포장해가며 피폐한 가정이라고도 볼 수 있는 시각 속에서 자라 이를 감내하는 인물들로 그려졌다.

위태롭고 조금이라도 손대면 바스라져 버릴 것만 같은 분위기의 인물들, 그리고 그 사이에 숭고해 보이면서도 음산하며 거짓으로 둘러싸인듯한 교주 존 릴이 등장한다.

안정적이지 못하고 그저 나약한 존재인 피비에게 다가와 능수능란하게 영향력을 끼치는 존 릴과 극단주의 교단으로 드러나는 제자라는 모임은 피비뿐만 아닌 윌에게도 악영향을 미치는데.

작품은 가스라이팅이 종교적 신념과 융합해 시나브로 각인되어 정신 지배를 당한 사람이 어느정도까지 끌어내려 질 수 있는지를 극단적으로 그렸다.

섬뜩한 광기마저 느껴지는 그들의 신념은 나약한 이들을 자연스레 심연의 늪으로 손을 내밀어 절정으로 치닫게 했고, 이 위기가 강력한 추진력과 폭발력으로 스스로의 정신뿐만 아니라 신체마저도 피폐함으로 물들게 했다.

그러나 저자는 이 소름 끼치기도, 경악을 금치 못할 상황을 어둡게만 그리지 않았다.

때론 아름답고, 시적인 표현들을 유려하게 사용해 풍부한 감수성으로 하여금 그들의 감정을 더욱 치열하며 극적으로 그렸고 이민자 가정이나 차별, 가난과 같은 요소들이 사실적으로 그려져 잔인한 현실은 더욱 가슴 아프게 다가오도록 그렸다.

허나 자존감이 추락하고 상실의 절박함 속에서도 이를 시니컬하게 묘사한 세심함이 갖춰져 가슴 먹먹하도록 안타까운 현실이 돋보여 인물들에게 공감과 연민마저 불러일으켰다.

결말마저 시적으로 희미한 여운을 남기는 마무리는 독자를 다시 첫 페이지로 돌아가 자연스레 재독을 하게 만든다.

잔인하리만큼 아름답게도 표현된 그들의 이야기는 다시 한번 읽게 되는 순간 가슴 저릿한 아픔과 처절함이 배가 되어 이를 진정으로 느껴 곱씹게 만든다.

과연 인센디어리스는 위험천만한 매력을 갖춘 선악과와 같은 마성의 이야기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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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니시드
김도윤 지음 / 팩토리나인 / 2023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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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가정의 가장이 어느 날 피칠갑을 하고 귀가한 뒤 며칠 후 홀연히 사라졌다.

우리 주위에 있을법한 지극히 사실적인 인물들을 필두로 전개되는 배니시드는 이 평범한 주인공들을 소재로 현실에서는 만나기 힘든 너무나 기묘한 사건들을 그린다.

이 기괴한 이야기는 우리가 일상에서 겪고 있는 감정과 상황이 온전히 전부가 아니라는 것을 나타내며 그 이면에 감춰진 진실을 마주할 경우 이 또한 감내해야 한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겉으로 보이는 것이 다가 아닌 의뭉스러운 등장인물들과 사건들.

일반적으로 느끼는 감정이 아닌 예상치 못한 감정의 소용돌이에 사로잡힌 이들이 긴장의 끈을 놓칠 수 없도록 긴박하게 펼쳐내는 이야기는 작품의 몰입도를 더욱 배가시키며 독자를 이끈다.

도무지 알 수 없는 인간의 숨겨진 추악한 속내와 다양한 형태의 인간이 존재함을 다시금 깨닫게 하고 스스로 결정한 선택이 만들어낸 결과들이 나비효과가 되어 경악하리만큼 거대한 폭풍우로 돌변하기까지.

한 가정의 부모가 가족을 위한 헌신과 희생만이 정도가 아님을 이색적으로 그려낸 이야기는 작품 초반 이름도 없이 '자녀의 부모'로만 불리던 주인공이 이름을 찾고, 자아를 찾으며 자존감 역시 상대적인 것임을 깨닫기를 보여준다.

또한 치킨이나 빙수와 같은 사소한 매개물을 차용해 다양한 역할과 의미로 작품에 녹아들도록 유려하게 그려냈고, 독특하면서도 참신한 표현들로 하여금 폭발적인 시너지효과를 나타냈다.

영상으로도 만나고 싶은 이 소름 끼치면서도 매력적인 이야기는 주인공 정하의 이야기가 여기서 끝이 아니며, 다시 시작될 새로운 국면으로 느껴지기도 하기에 다음으로 전개될 이야기가 그려졌으면 하는 바람 또한 가지게 만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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러브 몬스터
이두온 지음 / 창비 / 2023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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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쳇말 가운데 내로남불이라는 줄임말은 참으로 다양한 상황과 감정을 지닌 것 같다.

누군가의 순애보적인 사랑을 짓밟는 기만행위일 수도 있고, 불륜이라 칭하지만 외려 속내를 모르고 악의 없이 한 사람만을 바라보는 해바라기와 같은 마음을 순정의 로맨스로 착각할 수도 있으며, 모든 것을 간파하며 줄다리기를 하는 악인이 짜릿한 쾌감을 느낄 수도 있지 않은가.

이와 같이 여기에도 사랑에 대해 다양한 각도와 입장, 캐릭터로 접근하는 이야기가 있다.

자녀에게 당신의 암 선고를 통보한 뒤 행방이 묘연해진 염보라를 필두로 그를 찾는 딸 지민, 결혼식 도우미임에도 결혼은 커녕 남편과 온전한 관계조차 유지하지 못한다는 아이러니한 설정의 허인회, 의뭉스럽기 짝이 없는 강사 조우경과 줏대 없이 모호함으로 둘러싸인 오진홍까지.

갑작스레 실종된 어머니를 찾아 수영장에 접근한 지민이 맞닥뜨린 수상하기 짝이 없고 기묘한 교회라는 소재와 개성 넘치는 주인공들, 흥미로운 설정이 자아낸 알 수 없는 긴장감들은 누가 피해자이며 누가 가해자인지, 무엇이 선이고 악인지 정확히 선을 그어 나눌 수 없게 만든다.

또한 뒤이어 선으로만 여기던 외롭고 사랑받지 못하는 비운의 캐릭터 역시 지킬박사 내부에 있는 하이드씨와 같이 예상치 못한 또 다른 일탈을 저질러 독자로 하여금 혼란이 가중된 상황을 마주하게 한다.

끔찍하게도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이어지는 최악의 상황 속 진심과 진실이 유리되고 사회적 체면과 윤리, 통념으로 하여금 우리가 감춰진 진실들에 다가가고는 있는 것인지조차 의문스러운 이야기는 사랑의 정의를 재고하며 선악의 구도 또한 나누기 어려운 상황에 치닫게 한다.

이 미스터리하고 기괴한 사실들이 하나 둘 베일이 걷혀짐에 따라 숨겨진 진실이 무엇인지, 그들의 종국은 어떠한 말로를 맞게 될지 본문의 내용이 너무나 읽고 싶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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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한강
권혁일 지음 / 오렌지디 / 2023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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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야기의 소재로 섣불리 담아내기 버거운 개념인 죽음과 그보다 몇 단계나 더 어둡고 숙연해 단어만으로도 가져오는 위압감이 상당해 한없이 침잠하게 만드는 자살.

이 가볍지 않은 소재들로 그려낸 제2한강은 이를 마냥 무겁게 다루기보다는 죽음과 자살만이 만들어 낼 수 있는 상황 설정으로 하여금 유머와 위트 활용해 주인공의 상황과 내면을 이해하고, 그에 응하는 위로와 격려의 손길을 건네며 작중인물들이 처한 위기를 포함한 각자의 이야기를 풀어나간다.

등장인물들은 오늘날 우리의 현실을 반영하며 구성하는 주변의 흔한 인물들로 설정되었으며 이는 곧 일상에 지쳐있는 독자를 반영한듯한 기시감을 주기도 한다.

현실의 고통 속 자살을 시도한 이후 다시금 살아가게 되는 곳에서 한 번 더 자살을 시도하면 비로소 무로 소멸한다는 신박한 줄거리와 추억의 물건을 소환해 내며, 푸른 세상을 바라본다는 흥미로운 이야기는 작품에 몰입도를 최대치로 끌어올리는 장치가 되어 독자를 이끌고, 등장인물들이 겪는 절박함과 절실함 등의 감정을 기발한 비유들을 활용해 더욱 극대화시킨다.

또한 뒤이어 등장하는 새로운 각도의 시선으로 바라보는 세상에 대한 관점들은 그들의 치부인 그늘에 서서히 접근하여 이를 해소하며 온기를 전해 종국에는 뜨거운 눈물을 자아낸다.

안타까운 고통의 하루가 억겁의 시간으로 변모해 한 시간 단위로 이를 버텨낸다는 처절함, 걱정과 고통의 절절한 사연이 자책이 섞인 독백들로 더욱 적나라하게 나타나 가슴이 아플 정도로 감정 이입을 하게 되고 일말의 이해와 공감, 위로만으로 달라질 사소한 것들이었음에도 그들을 자살로 몰고 간 상황과 세상이 너무나도 밉게 느껴져 다양한 감정을 느끼게 해주는 작품이었다.

하여 직접 보듬어주고 위로해 주고 싶은 마음이 절로 우러날 정도로 안쓰러운 존재가 제2한강에서 위안을 얻고 감사를 느낄 때는 나 또한 작중인물에게 감사함마저 느끼게 되는 격한 공감의 홍수에 취해있던 시간이었다.

본문의 자살한 이들은 대부분 사람들에게 받은 상처와 고통으로 인해 자살을 하게 된다.

하지만 오히려 이를 해소해 주는 이들 역시 사람으로 나타난다.

이를 통해 제2한강에서 위로를 받고 전하는 이들에게 인간미를 느끼게 되는 이유는 어쩌면 우리의 본성은 서로를 헐뜯고 해하는 것이 아닌, 헤아려 주고 위해주는 것이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이 들게 되는 이야기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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