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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대 ㅣ 한국문학대표작선집 2
염상섭 지음 / 문학사상사 / 1994년 5월
평점 :
요즘처럼 사회변화가 빠른 때도 없는 것 같다. 빛의 속도에 비유되는 엄청난 변화의 시대답게, 떠들썩하던 랩이나 힙합도 어느새 시들해 졌고 아직은 목숨을 부지하고 있는 테크노도 뒤를 이어 밀려올 다른 세력에 자리를 내 줄 것 같다.학교에서도 마찬가지다. '교실붕괴'란 말이 주변에서 들려오고 우리들의 관심사는 공부보단 다른 흥밋거리에 쏠려 있는 경우가 많다
변화의 모습과 내용이 다르기는 하지만 19세기 말, 20세기 초의 상황도 지금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엄청난 소용돌이가 사회 구석구석을 흔들었고 그 속에서 다양한 갈등이 있었다. 그 갈등을 포착해 할아버지에서 아버지,아들로 이어지는 삼대에 걸친 삶과 몰락, 세대간의 갈등과 차이점을 얘기한 게 바로 [삼대]이다.
서울에 사는 부자 조 의관은 집안 체면을 높이는 일을 최고로 생각한다.시대의 변화에 상관없이 가족의 테두리에서 탐욕스럽게 살아가는 모습이 어리석게 느껴진다.조의관의 아들 상훈은 미국에서 공부한 지식인으로서, 조 의관보다는 개방적이지만 인생의 뚜렷한 목표없이 붕 뜬 날들을 살아간다. 교회의 장로이면서도 나쁜 짓을 일삼고 아버지가 중요시하는 족보사업이나 가문에 관한 것들을 쓸데 없는 일이라며 반대한다.
사업을 한답시고 집안 재산을 마구 갖다 쓰는 방탕한 짓을 하는 이상도 꿈도 없는 메마른 인간이다.조상훈의 아들 덕기는 그의 할아버지나 아버지 보다 훨씬 희망있는 젊은이다.열심히 공부해서 법과를 마치고 판사나 변호사가 되겠다는 꿈을 가진 그는 착한 마음씨도 있지만, 결국은 할아버지와 아버지 사이에서 집안과 재산을 지키는 역할을 하게 될 뿐이다.친구 병화와는 달리 분명한 자기 의사와 적극성을 가지지 못한 채 우리 민족에 대한 특별한 애정 없이 일제의 탄압에도 어중간한 태도를 보인다.
결국 재물에 대한 불순한 욕심과 낡은 생각으로 가득 찬 조 의관은 시대의 변화를 따르지 못했다.덕기의 아버지도 비록 서구의 신문물을 배웠다고는 하지만 꿈도 목표도 없는 데다가 겉만 번지르르 치장하는 데 지나지 않았다. 3대 중 가장 선량하고, 나름대로의 목표도 있는 덕기. 그는 할아버지와 아버지의 비뚤어진 삶을 따르지 않고 사회주의자인 병화와 친구하며 계급 운동에 마음으로 공감한다. 그러나 실제적으로 일제의 탄압에 맞써 싸우려고 하지도 않았고 우리 민족에 대한 애정이나 자주성도 부족했다.이 세 사람의 갈등은 1930년의 일제의 탄압과 함께 맞물려 집안의 몰락을 불러왔다. 그것은 식민지 때의 현실에서 적극적으로 독립투쟁을 하지도 않고 특별히 친일을 택하지도 않았던 모든 조선인들의 운명이기도 했을 것이다.
그러나 힘써 현실의 잘못을 바로잡으려 한 사람들이 있었다. 필순의 아버지와 김병화가 바로 그런 인물들이다. 이들은 모두 사회주의를 어지러운 일제치하에서 벗어나는 탈출구로 생각하면서 그들의 이상을 이루기 위해 노력한다. 일본을 부정하고 , 거기에 끈질기게 저항하지 않으면 아무것도 얻을 수 없다고 생각하여 일제에 대항 . 필순의 아버지는 그런 꿋꿋한 의지를 지켜 나가다 결국 죽음을 맞이하게 된다. 병화도 끝내 일본 경찰에게 끌려가고 비밀조직 활동을 하던 장훈은 조직의 비밀을 지키고 동료들을 보호하기 위해 자살까지 한다. 술집에서 일하는 홍경애도 독립운동을 도우는 일에 나서 그녀 스스로 우리 민족을 위해 한 몫을 하는 작지만 자주적인 마음가짐을 보여준다.
비록 이 사람들이 풍요롭게 산 것은 아니지만, 적당히 대충대충 살며 시대착오적인 생각에 빠져있던 조 의관과 조상훈에 비길 것이 아니다. 정말 가치 있는 삶이란,스스로 가꾼 이상을 펼치며 끊임없이 노력하는 것이다. 그리고 이 책도 일제의 탄압을 받는 사람들의 다양한 삶의 자세를 영화필름처럼 보여주면서 이전의 세대를 잘못을 반성하고 앞으로의 목표를 세워 발전하는 삶을 살라고 얘기해 준다.물질적으로 부족함이 있어도 마음속에 가득 품은 꿈을 이루고자 하는 자세, 그런 미래에 대한 희망이야 말로 염상섭이 이 책으로 일깨우려 했던 것이 아닌가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