솔직히 말해 어린 왕자는 읽기 어려운 텍스트다.
여기에는 두 가지 이유가 있다.

첫째, 지나치게 유명하다. 코끼리를 삼킨 보아뱀과 바오밥 나무를 모르는 사람을 찾는 게 정말 어려울 정도로. 그래서 거의 모두가 알지만 정작 읽지는 않는다. 이미 읽은 줄 알고 있거든. 아니면 내용 다 아니까 읽을 필요가 없다고 생각하거나.

둘째, `어른들을 위한 동화`, 어린 왕자를 수식하는 이 문구 한 줄의 중력이 너무 강력하다. 이 한 줄이 어린 왕자의 해석과 감상을 거의 무조건 (읽기도 전에) 결정해버린다.
`어른들을 위한 동화`라는 표현도 물론 부분적으로는 진실이다. 하지만 이 한 문구는 상징과 은유로 가득한 어린 왕자의 본질을 가리고 해석을 가로막는다.

내눈에 어린 왕자는 어른들을 위한 동화가 아니라 가슴 절절한 사랑의 고백이다. 세파에 찌든 일반적인 관점에서 볼 때 썩 어울린다는 소리를 듣기 어려운 상대였겠지. 그래서 중요한 건 눈에 보이지 않는다고 말하고 있는 것이고.
다른 수많은 장미들을 모조리 무의미하게 만들어 버리고, 수많은 별들이 떠있는 밤하늘을 아름답고 신비롭게 만드는 아가씨. 쿨하게 잘가라고 말하면서 눈물 흘리는 모습을 결코 보이지 않을만큼 자존심 세고 도도한 아가씨.
그 도도함과 자존심에 치여서 떠나왔지만 결국 `나만의 장미`에게 돌아간 어린 왕자를 동화라는 틀 속에 가둬두는 것은 세파에 찌든 어른이 아님을 강변하고픈 욕망의 발현이 아니라면 허세일 가능성이 높다.

마지막으로 번역에 대해 한 마디. 이번에 읽은 열린책들 판본은 영어판의 중역이 아닌 원어인 프랑스어를 번역한 판본인데도 문장이 엉성한 곳이 많다. 영어 번역본과의 차별보다는 자연스럽고 문학적인 표현에 더 집중했어야 되지 않을까?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eBook] 촘스키와 푸코, 인간의 본성을 말하다
아브람 노엄 촘스키.미셸 푸코 지음, 이종인 옮김 / 시대의창 / 2012년 9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1971년 네덜란드의 방송에서 촘스키와 푸코가 인간성과 정치에 관해 나눈 대담과 각각의 강연 몇 편을 엮은 책.

데카르트로부터 이어진 합리주의적 전통에 기반해서 사유를 펼치는 촘스키.
니체로부터 이어받은 경험주의적 사고를 기반으로 사유를 펼치는 푸코.
이 두 철학적 거장의 철학적 핵심을 개괄적으로 파악할 수 있어서 촘스키 내지는 푸코의 사상을 공부하는 데 친절한 입문서의 역할을 할 수 있다.

책 말미에 있는 역자 후기가 좋은 해설도 겸하고 있으니 역자 후기를 먼저 읽고서 본문을 읽는 것을 추천.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20년도 더 전에 나를 장르 문학의 세계, 즉 무협소설의 세계로 인도한 소설이다. 물론 그 시절에는 출판사도 다르고 제목도 달랐지만...

장르 문학에 대한 천시가 뿌리 깊은 한국에서 버텨내기 위한 방편이었을까? 책 소개문이나 작가 소개란은 으레 중국의 교과서에 실렸다는 얘기나 작가인 김용을 연구하는 대학의 분과가 개설되어 있다던지 하는 일화들, 즉 주류 사회에서 얼마나 인정 받은 작품인가를 드러내려 애쓰는 문구로 치장되어 있다.

그 문구들이야 물론 사실이기는 하지만 작품의 내용보다도 주류 사회의 평가를 전면에 내세우는 것이야말로 주류 사회에서 `무협`이라는 장르 문학이 어떤 대접을 받고 있는지가 역설적으로 드러나는 지점이기도 하다.

이제 와서 그 평가를 전면적으로 부정하거나 뒤집을 생각은 없다. 그럴만한 재주가 없다고 하는 게 정확한 표현이겠지만...

다만 어느 장르가 됐건 그 장르라는 계급장을 떼고 건져올릴만한 걸작은 분명 존재한다. 그리고 지금 리뷰하는 `사조영웅전`은 `무협`이라는 계급장을 떼고서 걸작의 반열에 올릴 수 있는 작품이다. 이미 세상에 나온지 반세기도 더 지난(사실이다) 작품을 새로 번역해서 출간한다는 게 무슨 뜻이겠는가?
(사실 저자인 김용의 작품은 한 편의 예외도 없이 걸작이다.)

무협이라는 장르를 변호하는 듯한 발언을 했음에도 불구하고 솔직히 고백해서 나는 김용의 작품을 제외하고는 무협 소설을 읽지 못한다.(아, 물론 몇몇 예외는 있다. 백발마녀전 같은...)
국산 무협 소설 특유의 후까시(?)가 잔뜩 들어간 문체에 내성이 없는 탓이다...

작품에 대해서는 이 한 마디로 평가를 대신해보련다.
이 작품에는 소설이 줄 수 있는 거의 모든 즐거움이 담겨 있다.

덧붙여서 진입 장벽을 조금 낮춰줄 몇 마디를 적는다.
- 무협이라는 장르적 관습에 신경 쓰지 말 것.
삼국지도 장르로 따지면 무협에 속한다.
무협의 장르적 관습을 따르고는 있으나 사조영웅전은 중국의 남송시대 말기를 배경으로한 대하역사소설이다.
오늘날에도 수많은 독자가 이 작품으로 무협이라는 장르에 입문한다. 읽다 보면 알아서 학습이 된다. 몇십 년쯤 뒤에도 그럴 거라 단언할 수 있다. 벌써 반세기도 넘는 세월 동안 그래왔으므로. 물론 무협 소설에 입문하자고 읽는 것은 아니다. 읽다 보니 무협이라는 장르는 즐기는 법을 터득하는 것 뿐이다.
- 중국어 번역투 내지 투박한 만연체에 속지 말 것.
첫권을 읽어내면 문체 따위는 신경도 안쓰인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4)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eBook] 나미야 잡화점의 기적
히가시노 게이고 지음, 양윤옥 옮김 / 현대문학 / 2020년 12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뭐라고 꼬투리를 잡거나 있어보이는 소리를 주워섬겨볼까 했는데... 그냥 항복.
하필 내 약점이 휴먼 드라마라서...
오랫만에 등을 기대고 편히 쉰 것 같은 느낌을 주는 소설이었다.
굳이 상상의 나래를 펼칠 키워드를 제시해본다면 이런 느낌?

기묘한 이야기 + 순정만화 시즌 1

댓글(1)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이수인 2017-08-11 12:5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한국에도 나미야 할아버지가 있었어요!
책을 읽는 내내, 나에게도 ‘나미야 할아버지‘와 같은 존재가 있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페이스북에 ‘나미야 잡화점을 현실로‘라고 검색하니 실제로 누군가가 익명 편지 상담을 운영하고 있더라구요.
namiya114@daum.net 여기로 편지를 받고 있고, 광주광역시 동구 궁동 52-2, 3층 나미야할아버지 로 손편지를 보내면 손편지 답장도 받을 수 있다고 하네요.
아마 이 책을 읽으신 분들이라면 대부분 저같은 생각을 한번쯤 해보셨을 거라 생각돼 이곳에 공유합니다.
 

이번이 아마도 4독일 것 같다.

영국의 역사가 에드워드 핼릿 카가 1961년에 강연한 것을 엮은 책.
감사하게도 다시 개정판이 나오면서 출판사에서 전자책으로도 작업을 해준 덕택에 이국땅에서도 다시 읽을 수 있었다.

역사에 대한 허무주의와 회의주의가 암처럼 번지던 시대에 역사의 진보를 믿어야함을 역설한 카의 이 저작은 출간된지 50년이 넘은 지금에도 여전히 독자들을 만나고 있다. 현재 시점에서도 이 책은 많은 판본이 판매중일 정도로 잘 나간다!
(아마도 베른협약의 불소급에 관한 조항 덕이 아닐까 싶다. 회원국간 출판물의 저작권을 인정하는 베른협약은 가입 전에 무판권으로 출간된 책에 대해서는 이후 동일한 출판사에서 다시 출간하는 것이 허용되어 있는 것으로 알고 있다. 물론 지금 리뷰하는 판본은 정식 라이센스를 획득한 책이다.)

영화 변호인에서 학생들을 국가보안법 위반 혐의로 기소한 검사가 피고 학생들이 소위 `빨갱이`라는 증거로 학생들이 이 역사란 무엇인가를 돌려봤음을 제시하고, 송강호가 분한 변호사 송우석이 저자 에드워드 카가 영국의 외교관이었음을 들어 이를 논박하는 장면이 등장해 많은 유명세를 타기도 했다.
물론 이 장면은 실제로 벌어졌던 인권 탄압 사건인 `부림사건`의 재판을 재현한 것이니 에드워드 카의 저작은 본의 아니게 대한민국의 역사에도 발자취를 남긴 셈이다.

군부독재에 숨죽이고 살던 당시의 선배들은 이 책에서 무엇을 읽었을까?
주지했다시피 카는 이 책에서 역사의 진보를 믿어야함을 역설했다.
진부한 표현이 되겠지만 아마도 선배들은 사뮈엘 베케트의 희곡 `고도를 기다리며`에서 오지 않는 `고도`를 기다리던 블라디미르와 에스트라공의 심정으로 역사의 진보(민주화)를 기다렸던 게 아니었을까?
과연 오는지조차도 알 수 없는 고도를 하염 없이 기다려야만했던 선배들에게 에드워드 카의 목소리는 그 기약 없는 기다림을 버티게 해주던 격려와 위로가 아니었을까?

과거뿐만이 아니라 2016년 현재의 대한민국에도 역사란 무엇인가는 여전히 유효해 보인다.
카는 회의주의와 허무주의가 득세하는 것을 쇠퇴해가는 사회가 보이는 병리적 증상으로 진단했다.
연애고 결혼이고 다 포기했다는 `삼포세대`, `오포세대`라는 자조적인 표현이야말로 쇠퇴를 시작한 대한민국의 회의주의와 허무주의를 함축한 표현이다.
반세기도 더 전인 1961년에 카가 맞서 싸우고자 했던 현실이 2016년의 내나라 대한민국에서 뒤늦게 재현되고 있다는 사실이 많이 아프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5)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