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xml version="1.0" encoding="utf-8"?><?xml-stylesheet href="https://blog.aladin.co.kr/blog/rss/rssUserXSL.aspx" type="text/xsl" media="screen"?><rss version="2.0"><channel><title>안지님의 서재 (안지 서재)</title><link>https://blog.aladin.co.kr/757135169</link><language>ko-kr</language><description>So it goes.</description><copyright /><generator>Aladdin RSS(Alss) v0.9</generator><lastBuildDate>Fri, 18 Sep 2026 21:22:41 +0900</lastBuildDate><image><title>안지</title><url>https://image.aladin.co.kr/Community/myface/pt_7571351695138289.jpg</url><link>https://blog.aladin.co.kr/757135169</link><width>100</width><height>100</height><description>안지</description></image><item><author>안지</author><category>마이리뷰</category><title>아...힘들다.... - [새엄마 찬양]</title><link>https://blog.aladin.co.kr/757135169/17517291</link><pubDate>Tue, 15 Sep 2026 09:03: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s://blog.aladin.co.kr/757135169/17517291</guid><description><![CDATA[<table width="100%" height="30" border="0" align="center" cellpadding="0" cellspacing="0"><tr><td width="14"><img src="https://image.aladin.co.kr/img/blog/trans.gif" width="14"></td><td width="85"><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8954609376&TPaperId=17517291" target="_blank"><img src="https://image.aladin.co.kr/product/718/0/coveroff/8954609376_1.jpg" width="75" border="0" class="box1"></a></td><td valign="top"><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8954609376&TPaperId=17517291" target="_blank" style="color:#386DA1;font-weight:bold">새엄마 찬양</a><br/>마리오 바르가스 요사 지음, 송병선 옮김 / 문학동네 / 2010년 06월<br/></td></tr></table><br/>"우리는 악을 왕의 망토처럼 차분하게 두르고 다녀야 한다. 사람들이 알지 못하고, 감지하지 못하는 체하는 후광처럼. 대기의 투명한 진흙 속에서도 흐려지지 않는 윤곽은 타락한 사람만이 지닐 수 있는 것이다. 아름다움은 형식에 관한 최고의 악이다"&nbsp;세자르 모로, &lt;죽도록 사랑하기&gt;<br>마리오 바르가스 요사의 소설 &lt;새엄마 찬양&gt;의 초입에 등장하는 인용으로 이는 소설 전체가 지향하는 미학적·철학적 역설을 완벽하게 집약하고 있는 듯하다. 이 문장은 유약하고 성찰 없는 도덕성이 세속의 탁함 속에서 맥없이 형체를 잃어버리는 것과 대조적으로, 자신의 금기와 욕망을 직시하고 넘어선 타락과 완벽하게 다듬어진 예술적 형식이 얼마나 압도적이고 치명적인 존재감을 갖는가를 단적으로 보여준다. 요사는 이 작품에서 도덕적 선악의 기준을 철저히 탈색시킨 채, 관능의 세계를 서양 미술사의 명화들과 정교하게 엇물려놓으며 하나의 완벽한 미학적 성채를 구축해낸다. 브론치노의 &lt;비너스, 쿠피도, 어리석음과 시간의 알레고리&gt;나 프랑수아 부셰, 프랜시스 베이컨 등의 그림은 단순히 인물들이 감상하는 배경 장식에 그치지 않고 인물들의 욕망을 투영하고 행동을 유발하며, 도덕적으로 단죄받아야 할 금기된 행위들을 완벽한 artistic form으로 변주하는 핵심적인 텍스트로 기능한다. 의붓아들 알폰소와 새엄마 루크레시아 부인, 그리고 아버지 돈 리고베르토 사이에서 벌어지는 유혹과 파국은 표면적으로는 세속적인 불륜과 금기의 파기를 다루는 듯하지만, 서사를 이끄는 동력은 도덕적 죄의식이 아니라 미적 완전성에 대한 탐닉이다. 천사처럼 무구한 얼굴과 은밀한 악마성을 동시에 체현한 어린 알폰소는 브론치노의 그림 속 쿠피도처럼 어른들의 욕망과 관계를 조용히 조종하며, 정교하게 연출된 판 안에서 도덕적 우위를 점하던 성인 인물들은 유혹과 관능 앞에 맥없이 무너져 내린다. 그리하여 소설은 관능과 아름다움이야말로 세속의 단단하고 편협한 도덕적 질서를 비웃듯 집어삼키는 '최고의 악'이자 가장 강력한 권력임을 증명하는 탐미주의의 승리로 마침표를 찍는 것처럼 보인다.&nbsp;<br>그러나 바로 이 지점에서 소설의 화려한 미학적 성취 뒤에 숨은 서늘한 질문, 즉 탐미주의적 승리의 대가를 치르는 척결 대상이 왜 오직 여성인 루크레시아여야만 하는가라는 문제의식을 제기하지 않을 수 없다.&nbsp;알폰소는 도덕을 초월한 신화적·자연적 악으로서 미학적 완벽함을 얻고 어떠한 처벌도 받지 않으며, 돈 리고베르토 역시 밤마다 명화를 통해 관능적 환상을 구축하는 남성적 시선의 주체로서 자신의 지위를 유지하지만, 관능을 실현한 루크레시아는 가부장적 질서를 위협한 단 한 명의 죄인으로 낙인찍혀 집안으로부터 철저히 축출당한다. 이러한 결말은 남성의 관능과 에로틱한 상상력은 고결한 예술적 유희나 미학적 탐구로 포장되는 반면, 그 유혹의 프레임 안에서 반응한 여성의 관능은 가정을 파괴하고 윤리를 더럽힌 오물로 취급받아 모든 도덕적 부채와 사회적 형벌을 혼자 뒤집어쓰게 되는 지독한 성별 불균형과 가부장적 이중잣대를 적나라하게 폭로한다. 이러한 척결의 편향성은 비단 &lt;새엄마 찬양&gt; 한 작품에만 국한된 것이 아니라, 요사의 작품 세계 전반을 관통하는 여성관과 페미니즘적 비판 시각과 깊이 맞닿아 있는 듯하다. 그의 문학은 남미 사회의 폭력성과 독재, 마초주의의 야만성을 파헤친 뛰어난 서사적 기교로 찬사를 받아왔으나, 그 서사를 구성하는 여성 인물의 재현 방식에 있어서는 지속적으로 가부장적 남성 중심 시선의 한계를 드러낸다. 첫째로 요사의 작품에서 여성은 독립적인 내면과 주체성을 지닌 존재라기보다 남성 주인공의 성적 환상과 관능적 욕망을 투영하는 대상이나 미학적 관찰의 객체로 소비되는 경우가 많다. 여성의 육체는 아름답게 찬미되지만, 그 찬미의 주체는 어디까지나 프레임을 틀어쥐고 시선의 정치를 행하는 남성들이며, 여성은 그 남성적 환상이 작동하기 위해 배치된 미학적 도구에 가까운 위치를 점한다. 둘째로 요사가 정치적·사회적 폭력을 고발하는 정통 소설들에서도 여성 인물들은 가부장적 권력과 마초적 폭력의 최전선에 노출된 희생자로 그려진다. 이러한 묘사는 독재와 남성 권력의 야만성을 드러내는 강력한 장치로 작동함에도 불구하고, 여성을 늘 지배당하고 짓밟히며 수동적으로 수난을 겪는 무력한 피해자의 틀 안에 고착시킨다는 페미니즘적 비판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셋째로 요사의 서사는 여성을 조형할 때 가부장제가 오랜 세월 구축해온 이분법적 프레임을 유의미하게 해체하지 못한다. 결국 요사는 19세기 탐미주의 문학이 지녔던 여성을 팜프 파탈이자 관능의 객체로 위치시키던 고전적 한계를 20세기 남미라는 공간으로 가져와 재현하였으며, 미학이라는 이름으로 정당화되는 관능의 유희는 남성 인물들이 나누고 그로 인한 도덕적 단죄와 파국의 비극은 여성에게 떠넘기는 가부장적 서사 구조를 완성했다.&nbsp;<br>그럼에도 불구하고 &lt;새엄마 찬양&gt;이 선사하는 미학적 충격과 서사적 긴장감은 여전히 강력한데, 이는 역설적으로 요사가 구축한 이 화려하고 서늘한 탐미주의적 성채가 도덕의 무기력함을 증명함과 동시에, 그 성채의 가파른 계단이 어떤 여성의 희생과 축출을 딛고 세워졌는가를 눈부시게 비춰주기 때문이다. 도덕을 초월한 완벽한 미적 형태가 주는 매혹에 압도당하는 동시에, 그 완벽함의 뒤편에서 작동하는 가부장적 권력의 서늘한 계산법을 읽어냄으로써 비로소 텍스트의 미학적 성취와 정서적·사회적 한계를 입체적으로 마주하게 되는 것이다.&nbsp;<br>여튼 분량이 적어서 후루룩 넘어가면서도 이래 저래 좀 힘들었던, 이전에 웃겨서 웃느라 웃으며 읽었던 &lt;판탈레온과 특별봉사대&gt; 역시 다시금 되새기게 하는 소설이었다. 이 찝찝함을&nbsp;가부장적 역사 서사를 여성의 시선으로 재구성하는&nbsp;라틴아메리카 여성 작가들의 작품들로 좀 잠재워야겠...추천 받아오....]]></description><image><url>https://image.aladin.co.kr/product/718/0/cover150/8954609376_1.jpg</url><link>https://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temId=7180037</link></image></item><item><author>안지</author><category>마이리뷰</category><title>요사의 요사스러움 - [판탈레온과 특별봉사대 (무선)]</title><link>https://blog.aladin.co.kr/757135169/17507099</link><pubDate>Thu, 10 Sep 2026 13:03: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s://blog.aladin.co.kr/757135169/17507099</guid><description><![CDATA[<table width="100%" height="30" border="0" align="center" cellpadding="0" cellspacing="0"><tr><td width="14"><img src="https://image.aladin.co.kr/img/blog/trans.gif" width="14"></td><td width="85"><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8954609058&TPaperId=17507099" target="_blank"><img src="https://image.aladin.co.kr/product/596/65/coveroff/8954609058_1.jpg" width="75" border="0" class="box1"></a></td><td valign="top"><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8954609058&TPaperId=17507099" target="_blank" style="color:#386DA1;font-weight:bold">판탈레온과 특별봉사대 (무선)</a><br/>마리오 바르가스 요사 지음, 송병선 옮김 / 문학동네 / 2009년 12월<br/></td></tr></table><br/>마리오 바르가스 요사의 &lt;판탈레온과 특별봉사대&gt;는 라틴아메리카 현대문학이 다다를 수 있는 미학적 완성도, 거친 현실을 아름다움으로 변주하는 독보적인 문장의 힘, 그리고 관료주의를 통쾌하게 꼬집는 블랙코미디의 정수를 보여주는 소설이다. 표면적으로는 읽는 내내 배를 잡게 만드는 코믹함으로 가득 차 있지만, 그 웃음의 장막 아래에는 권력의 위선과 국가 시스템의 기형성을 정확히 겨냥한 예리한 정치적 함의가 촘촘히 엮여 있다. 서사는 아마존 오지 주둔 페루 군대 내의 통제 불가능한 성적 욕구와 민간인 마찰, 군기 확립 문제를 해결하려는 대환장 극비 프로젝트를 중심으로 전개된다. 지극히 금욕적이고 철저한 원칙주의자인 판탈레온 판토하 대위가 책임을 맡아 군인들을 위한 이동 창녀 조직, 일명 ‘수국초특(수비대와 국경 및 인근 초소를 위한 특별봉사대)’을 운용하게 된다. 판탈레온은 특유의 꽉 막힌 고지식함으로 여성 대원들의 봉사 횟수, 이용 시간, 수용 인원, 심지어 사정거리와 침대 간 거리까지 수학적·행정적으로 완벽히 데이터화하며 조직을 폭발적인 성공으로 이끈다. 이 ‘수국초특’의 가동 과정은 겉으로는 청교도적 엄숙주의를 부르짖으면서도 속으로는 부패해 가는 페루 군부와 정치 권력에 대한 통렬한 패러디로 완성된다. 이 기형적인 시스템 안에서 군부와 정치계는 거대한 매춘업소로 변모하고, 손 하나 묻히지 않는 장성급과 영관급은 그 업소의 관리인이며, 판탈레온 같은 하급 장교는 비윤리적 실무를 서류로 깔끔하게 세탁해 바치는 뚜쟁이나 기둥서방으로 전락한다. 그리고 사회 최하층으로 취급받던 창녀들이야말로 시스템을 가동하는 실질적 ‘엘리트 집단’이 되는 자극적인 역설을 통해, 소설은 묵직한 정치적 비판과 풍자를 신랄하게 전개한다. 소설 중간중간 삽입되는 군 공식 보고서의 영혼 없는 코믹함, 사적 편지, 라디오 방송 대본, 환각적 독백 등 다양한 텍스트를 촘촘히 직조해 낸 다성악적(Polyphonic) 구성은 가히 이 작품의 백미이자 독서의 재미를 200% 보장하는 요소다. 특히 5장,8장의 정신없이 이어지는 교차 대화가 아주 흥미로운데, 관료주의는 숫자를 위해 성(性)과 인간을 통제하고, 방주교는 구원을 위해 어린아이의 생명을 십자가에 매달아 제물로 바친다. 요사는 이 두 집단을 교차시키며, 국가 시스템의 차가운 관료주의 역시 사이비 종교의 광기와 다를 바 없이 기형적이고 위험하다는 점을 폭로한다. 권력의 민낯을 신랄하게 밝혀내는 고도의 정치적 풍자, 숭고한 블랙 유머, 그리고 경이로운 문장미가 완벽하게 맞물려 완성된 걸작, 이 책은 현재 내 책장 배 올해의 책 1위로 등극하엿다. 마리오 바르가스 요사, 진짜 미친 사람....도른자....]]></description><image><url>https://image.aladin.co.kr/product/596/65/cover150/8954609058_1.jpg</url><link>https://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temId=5966550</link></image></item><item><author>안지</author><category>마이리뷰</category><title>망할 놈의 예술을 한답시고 - [빵충 사육 준수 사항]</title><link>https://blog.aladin.co.kr/757135169/17502928</link><pubDate>Tue, 08 Sep 2026 15:40: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s://blog.aladin.co.kr/757135169/17502928</guid><description><![CDATA[<table width="100%" height="30" border="0" align="center" cellpadding="0" cellspacing="0"><tr><td width="14"><img src="https://image.aladin.co.kr/img/blog/trans.gif" width="14"></td><td width="85"><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K242130313&TPaperId=17502928" target="_blank"><img src="https://image.aladin.co.kr/product/39872/66/coveroff/k242130313_1.jpg" width="75" border="0" class="box1"></a></td><td valign="top"><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K242130313&TPaperId=17502928" target="_blank" style="color:#386DA1;font-weight:bold">빵충 사육 준수 사항</a><br/>김혜영 지음 / 안전가옥 / 2026년 07월<br/></td></tr></table><br/>김혜영 작가의 장편소설 &lt;빵충 사육 준수 사항&gt;은 갓 구운 소금빵의 겉바속촉한 비주얼과 짭조름한 풍미를 완벽하게 복제한 식용 애벌레 '빵충'이라는 미친 설정으로 시작해, 벼랑 끝 청년의 생존 투쟁과 인간의 터져 나가는 탐욕을 기쾌하고 뻔뻔하게 그려낸 신개념 코믹 크리처 서스펜스다. 한때 망할 놈의 음악을 한답시고 트럼펫을 불며 폼 잡다가 밑바닥을 치고 시골로 튕겨 나온 주인공 정한은, 인생 막판 뒤집기로 전 재산을 털어 정부 지원 신산업인 '빵충 사육'에 영끌 투자를 감행한다. 꿈틀거리는 빵충이 대중의 입맛을 사로잡으며 대박을 치고 통장에 찍히는 대기업급 숫자를 보며 정한은 마침내 흙수저 인생 역전에 성공했다고 착각하지만, 이 기묘하고 맛있는 애벌레를 안전하게 키우려면 목숨 걸고 지켜야 하는 까다로운 '사육 준수 사항'이라는 룰북이 존재한다. 문제는 조금이라도 더 살찌우고 크게 키워 거액을 벌어들이려는 사육자들의 눈먼 탐욕과 "설마 별일 생기겠어?"라는 안일함이었다. 경고를 씹고 하나씩 규칙을 어기기 시작하자, 소설은 씁쓸한 짠내 나는 청년 잔혹극에서 한순간에 약을 사정없이 판 듯한 엽기 크리처 난장판으로 대폭주한다. 귀여운 소금빵 코스프레를 벗어던진 빵충들은 식인 성향을 드러내며 통제 불능의 괴물로 변모하고, 사육장은 단숨에 코믹과 비명이 난무하는 헬게이트로 변한다. 이러한 설정과 서사 구조는 1904년 발표된 H. G. 웰스의 고전 SF 소설 &lt;신들의 양식은 어떻게 세상에 왔나&gt;를 소름 돋을 정도로 강렬하게 연상시킨다. 웰스의 소설에서 성장을 촉진하는 신물질 '허클라 물질'이 연구자들의 부주의와 관리 소홀로 유출되어 쥐와 닭, 곤충들을 공포의 거대 크리처로 탈바꿈시키고 끝내 기존 문명의 질서를 위협했던 것처럼, &lt;빵충 사육 준수 사항&gt; 역시 인간의 오만함과 방심이 초래한 생물학적 파국이라는 거대한 장르적 계보를 잇는다. 웰스가 20세기 초 과학기술의 폭주와 문명의 패러다임 전환이라는 문명론적 풍자를 보여주었다면, 김혜영 작가는 이 영리한 모티브를 가져와 현대 한국 사회의 청년 생존 투쟁, 자본주의의 날것 그대로인 욕망, 그리고 B급 매운맛 감성으로 완벽히 재해석해 냈다. 작가는 황당무계한 세계관을 쓸데없이 고퀄리티인 취재력과 디테일한 묘사로 밀어붙여 독자에게 웃기면서도 가슴 졸이는 고밀도의 도파민 폭탄을 안긴다. 그러고 보면 작품 속 '사육 준수 사항'은 단순한 벌레 키우기 매뉴얼이 아니라, 웰스의 소설 속 통제력을 잃은 인간 사회처럼 자본주의라는 미친 굴레 속에서 인간이 최소한 짐승이나 벌레가 되지 않기 위해 지켜야 할 마지막 양심의 마지노선이었을지도 모른다. 파국이 몰아쳐 사육장이 개판 오분전이 된 와중에도 도망치는 대신 자기가 싼 똥을 치우고 과오의 대가를 치르겠다고 나서는 정한의 무기는 다름 아닌 '음악'이다. 돈이 안 된다며 던져버렸던 그 망할 놈의 예술이, 역설적이게도 지옥 같은 파국 속에서 그를 괴물이 아닌 '사람'으로 살아남게 만드는 유일한 가오이자 영혼의 방파제가 되어준 셈. 소금빵 탈을 쓴 애벌레가 선사하는 골 때리는 웃음과 서늘한 스릴, 그리고 삭막한 자본의 세계에서 인간의 존엄을 건져 올린 것이 결국 예술이었다는 이 서늘하고도 아름다운 역설ㅋ 깊고 강렬한 여운을 남긴다.<br><br>]]></description><image><url>https://image.aladin.co.kr/product/39872/66/cover150/k242130313_1.jpg</url><link>https://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temId=398726639</link></image></item><item><author>안지</author><category>마이리뷰</category><title>완벽해서 더욱 완전한 해체 - [가벼운 나날]</title><link>https://blog.aladin.co.kr/757135169/17482640</link><pubDate>Mon, 31 Aug 2026 11:08: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s://blog.aladin.co.kr/757135169/17482640</guid><description><![CDATA[<table width="100%" height="30" border="0" align="center" cellpadding="0" cellspacing="0"><tr><td width="14"><img src="https://image.aladin.co.kr/img/blog/trans.gif" width="14"></td><td width="85"><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8960901628&TPaperId=17482640" target="_blank"><img src="https://image.aladin.co.kr/product/39876/10/coveroff/8960901628_3.jpg" width="75" border="0" class="box1"></a></td><td valign="top"><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8960901628&TPaperId=17482640" target="_blank" style="color:#386DA1;font-weight:bold">가벼운 나날</a><br/>제임스 설터 지음, 박상미 옮김 / 마음산책 / 2026년 08월<br/></td></tr></table><br/>제임스 설터의 &lt;가벼운 나날&gt;은 한마디로 인스타그램 감성 샷 100장 뒤에 숨겨진 씁쓸한 현실 부부의 종말을 극도로 고급스럽게 그려낸 소설이다. 1960년대 뉴욕 근교, 허드슨 강이 한눈에 보이는 대저택에서 완벽한 비주얼을 자랑하는 비리와 네드라 부부가 등장한다. 남편은 잘나가는 건축가에 아내는 지성과 미모를 겸비한 홈파티의 여왕, 여기에 토끼 같은 두 딸까지 있으니 그야말로 리얼리티 쇼 인생 성공 편 그 자체다. 이들은 매일 밤 분위기 있는 조명 아래 고급 와인을 기울이고 예술을 논하며 완벽한 갓생을 사는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필터 빼고 쌩얼로 마주한 이들의 속사정은 참으로 퀴퀴하다. 폭발적인 외도나 막장 드라마급 도자기 파괴 쇼가 터지는 건 아니다. 그저 월요일 아침 출근길처럼 조용하고 무기력하게 권태가 밀려올 뿐이다. "너를 미워하진 않지만, 너랑 있는 내가 너무 지루해"라는 심정으로 각자 몰래 딴짓을 좀 하다가, 결국 "우리 각자 길 가자"라며 아주 우아하고 젠틀하게 갈라선다. 극적인 싸움 하나 없이 물 흐르듯 가정이 파탄 나는 과정이 어찌나 자연스러운지, 읽다 보면 어? 이렇게 스무스하게 망한다고? 싶은 지경이다. 이혼 후 네드라와 비리는 각기 다른 길을 걸으며 늙어가고, 한때 그토록 눈부시게 빛나던 허드슨 강가의 집과 가족이라는 울타리는 오직 과거의 아련한 기억으로만 남게 된다. 제임스 설터의 문체는 매우 시각적이고 시적이어서, 허드슨 강의 빛깔, 계절의 변화, 식탁 위에 놓인 음식의 질감과 공기의 온도까지 손에 잡힐 듯 생생하게 묘사된다. 소설은 삶의 비극성을 과장하여 슬퍼하기보다는, 아무리 아름답고 완벽한 순간이라 할지라도 시간이라는 거대한 불가항력 앞에서는 결국 사라질 수밖에 없다는 인생의 무상함을 담담하고 우아한 어조로 말해준다. 삶을 너무 깊이 알고 있는 작가는 세월이 흘러 시들어버린 청춘과 해체된 가정의 쓸쓸함 속에서도, 한때 그들이 나누었던 찬란했던 시간과 빛나던 순간들 그 자체는 결코 부정될 수 없는 가치를 지닌다는 역설적인 아름다움을 전달한다. &lt;가벼운 나날&gt;은 스펙터클한 서사 대신 인간의 내면과 관계의 미세한 균열, 그리고 흘러가는 시간의 자취를 치밀하게 기록한 작품으로, 삶의 찬란함과 상실을 동시에 감상하게 만드는 깊은 울림의 소설이며, 한참을 숨 고르며 읽느라 페이지가 넘어가지 않는 소설. 그렇다. 이 책은 서사를 쫓아가기 위해 책장을 허겁지겁 넘기는 책이 아니라, 문장 하나가 주는 감각에 체해서 한참을 가만히 머물게 만드는 책이다. 빛의 각도나 공기의 결을 묘사한 문장에 턱 막혀서 숨을 고르고, 그 문장을 몇 번이고 다시 읽게 되는 바로 그 경험이야말로 설터가 주는 '읽는 기쁨'의 정수. 다 같이 느껴보쟈...]]></description><image><url>https://image.aladin.co.kr/product/39876/10/cover150/8960901628_3.jpg</url><link>https://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temId=398761023</link></image></item><item><author>안지</author><category>마이리뷰</category><title>내 언어의 한계가 곧 내 세계의 한계 - [기계가 언어를 사용한다는 것에 대한 인문학적 사유 - LLM 인공지능이 생성하는 글과 말을 어떻게 바라볼 것인가]</title><link>https://blog.aladin.co.kr/757135169/17466585</link><pubDate>Sun, 23 Aug 2026 10:08: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s://blog.aladin.co.kr/757135169/17466585</guid><description><![CDATA[<table width="100%" height="30" border="0" align="center" cellpadding="0" cellspacing="0"><tr><td width="14"><img src="https://image.aladin.co.kr/img/blog/trans.gif" width="14"></td><td width="85"><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K982138963&TPaperId=17466585" target="_blank"><img src="https://image.aladin.co.kr/product/39164/91/coveroff/k982138963_3.jpg" width="75" border="0" class="box1"></a></td><td valign="top"><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K982138963&TPaperId=17466585" target="_blank" style="color:#386DA1;font-weight:bold">기계가 언어를 사용한다는 것에 대한 인문학적 사유 - LLM 인공지능이 생성하는 글과 말을 어떻게 바라볼 것인가</a><br/>마크 코켈버그 외 지음, 신동숙 옮김, 손화철 감수 / 생각이음 / 2026년 04월<br/></td></tr></table><br/>이제 기계가 나보다 글을 더 잘 쓰는데 내 밥줄은 안전한가?라며 밤잠 설치는 이 시대 인간들에게 던지는 매우 지적이고 뼈 있는 럭비공 같은 책이다. 저자들은 AI를 그저 말 잘 듣는 똑똑한 계산기 정도로 폄하하는 쿨한 척하는 거대 언어 모델 통제자파와, 곧 챗GPT가 자의식을 갖고 인간을 지배할 것이라며 벌벌 떠는 터미네이터 유니버스 파를 동시에 반박한다. 저자들은 페르디낭 드 소쉬르와 자크 데리다, 롤랑 바르트 같은 프랑스 철학자들의 묵직한 이름표를 붙여 와서 AI의 실체를 턴다. AI는 영혼이나 의식이 있어서 감동적인 썰을 푸는 게 아니라, 그저 엄청난 양의 텍스트 데이터 속에서 기호와 기호를 확률적으로 연쇄하며 영혼 있는 척을 하고 있을 뿐이다. 즉, 데리다가 말한 의미의 지연과 차연을 0과 1의 숫자로 무한 굴리기 하는 환각 장인인 셈이다. 이로써 말을 하고 글을 쓰므로 나는 고귀한 인간이다라며 수천 년간 폼 잡던 서구의 로고스 중심주의는 챗GPT의 속사포 텍스트 연타를 맞고 KO 패를 당했다. 롤랑 바르트가 예언했던 저자의 죽음은 이제 출판사가 AI 작가에게 인쇄를 보내는 현실로 성큼 다가왔다. 그렇다고 저자들이 아아, 인간의 시대는 끝났다라며 통곡을 하는 건 아니다. 오히려 좋아, 인간 혼자 짱 먹던 오만한 언어관을 버리고 기계라는 엉뚱한 대화 상대와 섞여 사는 포스트휴먼 시대의 수다 방식을 만들자라고 윙크를 건넨다. 기계가 뱉어내는 언어는 단순한 구경거리가 아니라 가짜 뉴스나 데이터 편향을 일으키며 우리 현실을 진짜로 뒤흔드는 실전형 언어 행위이기 때문이다. 결국 이 책이 우리에게 날리는 메시지는 명확하다. AI가 문장을 기계처럼 퐁퐁 솟아내듯 자동 생산하는 시대일수록, 인간이 해야 할 일은 그 텍스트 뒤에 숨은 헛소리와 권력의 냄새를 귀신같이 맡아내는 비판적 리터러시와 인문학적 현타 감지기를 켜는 것이다. 기계가 언어를 쓰는 시대에 우리가 진짜 경계해야 할 건 AI의 자의식이 아니라, 기계가 짠 영혼 없는 텍스트를 영혼 없이 받아먹으며 스스로 뇌를 비워버리는 인간의 생각 자동화이니 말이다. 아무리 기계가 알잘딱깔센이라 한들, 내 언어의 한계가 곧 내 세계의 한계다.&nbsp;]]></description><image><url>https://image.aladin.co.kr/product/39164/91/cover150/k982138963_3.jpg</url><link>https://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temId=391649125</link></image></item><item><author>안지</author><category>마이리뷰</category><title>본전 생각... - [THE ODYSSEY 오뒷세이아 - 흔들리는 인간에 대하여]</title><link>https://blog.aladin.co.kr/757135169/17459217</link><pubDate>Wed, 19 Aug 2026 09:45: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s://blog.aladin.co.kr/757135169/17459217</guid><description><![CDATA[<table width="100%" height="30" border="0" align="center" cellpadding="0" cellspacing="0"><tr><td width="14"><img src="https://image.aladin.co.kr/img/blog/trans.gif" width="14"></td><td width="85"><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K822130810&TPaperId=17459217" target="_blank"><img src="https://image.aladin.co.kr/product/39832/27/coveroff/k822130810_1.jpg" width="75" border="0" class="box1"></a></td><td valign="top"><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K822130810&TPaperId=17459217" target="_blank" style="color:#386DA1;font-weight:bold">THE ODYSSEY 오뒷세이아 - 흔들리는 인간에 대하여</a><br/>조태경 지음 / 논픽션 / 2026년 07월<br/></td></tr></table><br/>호메로스의 &lt;오뒷세이아&gt;를 읽기 전 워밍업용으로 읽었다. 그렇다 조태경의 &lt;오뒷세이아: 흔들리는 인간에 대하여&gt;는 본격 호메로스 원전을 펼치기 전, 가이드북으로 집어 들기 그럭저럭 괜찮은 책이다. 인생이라는 파도에 멀미를 느낀다면 원래 인간은 좀 흔들려야 제맛이라는 신화 속 위로에 적잖이 마음도 편해질 것이다. 세이렌의 유혹 앞에서 스스로를 돛대에 묶었던 오뒷세우스처럼, 이 거친 세속의 바다에서 내 멘탈을 어떻게 단단히 묶어둘 것인가를 고민하게도 해준다. 다만, 진입장벽을 허물다 못해 문조차 없애버린 듯한 로우 레베루는 양날의 검이다. 아무리 쉽게 읽히는 게 좋다지만 (아마도) 그리스 로마 신화 덕후이자 주식하는 군필 한국 남자(아마도)의 지극히 개인적인 경험에 의한 1차원적인 비유가 잊을만 하면 툭 하고 튀어 나온다. 신의 분노와 거대한 운명 앞에 뼈저리게 느끼는 고독, 불멸의 삶을 차버리고 굳이 '죽음'이 기다리는 인간의 삶으로 걸어 들어가는 귀향의 숭고함이, '투자 리스크 관리'나 '군대 서열' 등으로 치환될 때의 짜침이란... 3,000년을 버텨온 신화의 아우라가 순식간에 '흔한 처세서 1'로 쪼그라드는 기분이다. 뭐랄지 책의 톤앤매너가 살짝 어정쩡하다. 성인 독자에게는 "어린이용인가?" 하는 아쉬움을 주고, 진짜 어린이 독자에게는 "군대…?" 하고 갸우뚱하게 만들 것같은. 여튼, &lt;오뒷세이아&gt;라는 거대한 산에 가볍게 발만 담그고 싶은 입문자에겐 아주 친절한 징검다리가 되어줄 책이다만, 문학 특유의 깊은 풍미와 묵직한 서사를 기대하는 고전 예민러들에겐 오링난 듯한 가벼운 텍스트 앞에 본전 생각이 들 수도 있겠다.<br><br>]]></description><image><url>https://image.aladin.co.kr/product/39832/27/cover150/k822130810_1.jpg</url><link>https://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temId=398322702</link></image></item><item><author>안지</author><category>마이리뷰</category><title>낭만도 교훈도 없는 잔혹한 계절의 기록 - [1차원이 되고 싶어]</title><link>https://blog.aladin.co.kr/757135169/17448083</link><pubDate>Thu, 13 Aug 2026 10:17: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s://blog.aladin.co.kr/757135169/17448083</guid><description><![CDATA[<table width="100%" height="30" border="0" align="center" cellpadding="0" cellspacing="0"><tr><td width="14"><img src="https://image.aladin.co.kr/img/blog/trans.gif" width="14"></td><td width="85"><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895468274X&TPaperId=17448083" target="_blank"><img src="https://image.aladin.co.kr/product/28031/82/coveroff/895468274x_1.jpg" width="75" border="0" class="box1"></a></td><td valign="top"><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895468274X&TPaperId=17448083" target="_blank" style="color:#386DA1;font-weight:bold">1차원이 되고 싶어</a><br/>박상영 지음 / 문학동네 / 2021년 10월<br/></td></tr></table><br/>박상영 작가의 &lt;1차원이 되고 싶어&gt;는 2000년대 초반, 여름의 열기와 습도가 지옥 모드로 폭발하던 D시(아마도 대구)를 배경으로 청소년기의 흑역사, 열병 같은 사랑, 그리고 십대들의 잔혹한 매운맛 인간관계를 제대로 구현해 낸 작품이다. 소설의 제목이자 핵심 모티프인 '1차원'은 복잡하게 얽히고설킨 3차원의 세상에서 탈출해 너와 나를 직선으로 싹 연결하는 단 하나의 관계에 대한 절박한 갈망을 뜻한다. 어차피 남의 속마음 읽기는 만렙이 될 수 없고 타인과의 관계는 오해와 헛발질의 연속인데, 주인공은 온갖 신호 오류가 난무하는 다차원적인 세상의 소음 속에서 제발 너와 나 사이에 와이파이 단단히 터지는 직선 하나만 그어달라는 심정으로 1차원적인 단순함과 명료함을 갈구한다.<br>이러한 주인공의 절박함은 2000년대 초반이라는 Y2K 특유의 밀레니엄 감성과 조합되어 한층 더 진해진다. 싸이월드 도토리와 일촌평으로 마음을 표현하던 그 시절, 심지어 배경은 보수적이고 답답한 분위기까지 감도는 도시다. 이 정교한 공간성 위에서 소설은 단순한 추억 팔이를 넘어, 벼랑 끝에 몰린 인물들의 고립감을 꽉 찬 밀도로 증폭시킨다. 성정체성에 대한 고민과 꼭 숨겨야 하는 비밀들, 입시 위주의 잔혹한 환경 속에서 작가는 겉으로는 피식 웃음이 나면서도 속으로는 뼈가 시려오는 특유의 서늘한 입담으로 십대들의 위태로운 일탈을 펼쳐 보인다. 인물들이 던지는 가벼운 대사 뒤에는 말로 다 못 한 쓸쓸함이 칼날처럼 날을 세우고 있다.<br>나는 청소년이 주인공으로 등장하는 이른바 '성장 소설'을 좀처럼 읽지 않는다. 교훈적인 깨달음이나 미숙함의 풋풋한 극복, 혹은 낭만적으로 포장된 청춘의 성장기를 마주하며 나의 청소년기를 떠올리는 일이 거북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 소설을 읽는 동안, 나는 이 이야기의 주인공들이 중·고등학생이라는 사실조차 잊고 있었다. 심지어 책장을 다 넘긴 후에도 이것을 감히 '성장 소설'이라는 무던한 단어로 분류할 수 있는지 의문이었다. 여타 성장 소설들이 '비 온 뒤에 땅이 굳고, 아이들은 성숙한 어른이 됩니다'라는 아름다운 교훈을 준다면, 이 책의 인물들은 성숙해지기는커녕 압도적인 폭력성 속에서 일단 오늘 하루만 살아남자는 모드로 몸부림을 친다. 성장이 아니라 인격의 유약한 부분들이 덜컹거리며 깎여나가는 마모의 기록에 가깝다. 비밀이 짓밟히고 관계가 비틀어지는 모습은 희망찬 성장기보다는 오히려 스릴러나 장르물 같은 서늘함을 자아낸다. 게다가 과거의 스토킹 및 살인 사건을 추적하는 미스터리 서사와 현재 시점이 번갈아 나오면서, 그 시절의 상처가 어른이 된다고 깔끔하게 자동 치유되는 게 아니라는 씁쓸한 현실까지. 세월이 지나도 여전히 영수증처럼 처박혀 있는 부채감이 현재의 삶을 짤짤 털어대는 것이다.<br>그렇게 참아왔던 감정의 폭주가 사이다 뚜껑 터지듯 한 번에 터져 나오는 클라이맥스가 바로 소설 후반부의 장례식장 옥상 씬인 듯한데... 삶과 죽음의 냄새가 짙게 베인 장례식장, 그것도 공중에 위태롭게 떠 있어 더 이상 뒤로 물러설 곳조차 없는 '옥상'이라는 공간은 두 사람이 처한 막장 같은 처지를 온몸으로 보여준다. 경계선에 간당간당하게 서서 나눈 이 이별이 가슴을 후벼파는 진짜 이유는 마음이 식어서가 아니라, 서로를 지키기 위해 혹은 더 이상 상처 주지 않으려고 억지로 손을 놓아야 했기 때문 아니었을까. 아직 어른들 밑에서 치킨이나 사 먹으며 보호받아야 할 나이에 세상의 추위와 폭력을 맨몸으로 맞서며 울컥 쏟아낸 눈물은, 나이와 퀴어라는 키워드를 완전히 뛰어넘어 누군가를 지독하게 사랑하고 처절하게 잃어본 사람이라면 누구나 가슴이 저릴 수밖에 없는 원초적인 슬픔을 자극한다.<br>




가볍게 슥 읽히는 유쾌한 문체 뒤에 묵직한 감정의 펀치를 숨겨둔 무서운 작품이다. 미숙했던 시절, 너와 나 사이에 1차원의 직선을 곧게 그어보려고 애썼지만 끝내 일그러진 도형처럼 상처만 남았던 그 시절의 방황. 비록 그것이 예쁜 포장지로 싸인 성장이라는 결말을 맺지는 못했을지라도, 그 지독하게 뜨거웠던 실패의 역사 자체가 역설적으로 지금의 나를 지탱하는 튼튼하고 아픈 뼈대가 되어주었다는 사실을 이 소설은 코믹함 섞인 서늘함과 애틋함으로 묵직하게 살리고 있다.]]></description><image><url>https://image.aladin.co.kr/product/28031/82/cover150/895468274x_1.jpg</url><link>https://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temId=280318207</link></image></item><item><author>안지</author><category>마이리뷰</category><title>자폭과 팩폭으로 완성한 현대사회 해부학 - [지도와 영토 - 2010 공쿠르 상 수상작]</title><link>https://blog.aladin.co.kr/757135169/17444626</link><pubDate>Tue, 11 Aug 2026 15:17: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s://blog.aladin.co.kr/757135169/17444626</guid><description><![CDATA[<table width="100%" height="30" border="0" align="center" cellpadding="0" cellspacing="0"><tr><td width="14"><img src="https://image.aladin.co.kr/img/blog/trans.gif" width="14"></td><td width="85"><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8954697631&TPaperId=17444626" target="_blank"><img src="https://image.aladin.co.kr/product/33107/70/coveroff/8954697631_1.jpg" width="75" border="0" class="box1"></a></td><td valign="top"><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8954697631&TPaperId=17444626" target="_blank" style="color:#386DA1;font-weight:bold">지도와 영토 - 2010 공쿠르 상 수상작</a><br/>미셸 우엘벡 지음, 장소미 옮김 / 문학동네 / 2024년 01월<br/></td></tr></table><br/>프랑스의 대표적 현대 작가 미셸 우엘벡의 &lt;지도와 영토&gt;는 현대 자본주의 사회, 예술 시장, 그리고 인간의 고독을 날카롭게 파헤친 작품이다. 주인공 예술가 제드 마르탱의 작품 세계와 우엘벡 자신을 소설 속 인물로 등장시켜 잔혹하게 끝장내는 파격적 서사를 중심으로 전개된다. 이 소설을 관통하는 명제는 바로 "지도가 영토보다 더 흥미롭다"는 것. 날것의 찌질하고 불완전한 현실(영토)보다는, 자본주의가 예쁘게 포장하고 보정한 브랜드와 기호(지도)에 사족을 못 쓰는 현대인의 허세를 정곡으로 찌른다. 주인공인 화가 제드 마르탱의 '노동 연작' 역시 자본주의 체제 아래서 예술도, 노동도, 인간관계도 결국 '얼마에 팔리냐'로 귀결되는 서늘한 현실을 보여준다. 심지어 우엘벡은 소설 속 자폐적이고 찌질한 작가 본인을 직접 등장시킨 뒤, 상상을 뛰어넘는 파격적인 '셀프 도륙'을 감행한다. 자학적 피학성애에 가까운 이 연출은 서구 문명의 종말을 온몸으로 웅변한다. 결국 인간이 만든 화려한 인스타그램용 '지도'는 다 사라지고, 잡초만 무성한 '영토'만 남을 것이라는 결말은 서늘한 블랙 코미디 그 자체다.<br>내가 우엘벡의 작품을 약 15년 전에 &lt;소립자&gt;를 시작으로 &lt;플랫폼&gt;,&lt;어느 섬의 가능성&gt;,&lt;세로토닌&gt;까지 읽고는 다시는 우엘뷁의 책은 읽지 않겠다 결심했는데, 이유는 이 책들이 현대 문명에 대한 날카로운 통찰을 담고 있음에도 동시에 백인 이성애자 남성의 사랑관계에 대한 절망을 묘사하면서 어김없이 수반하는 거침없는 여성 혐오, 여성 신체에 대한 집착적인 물화, 타문화에 대한 PC함을 정면으로 위반하는 편견과 도발적 발언 등이 참을 수 없게 역겨웠기 때문이다. 그 중 &lt;세로토닌&gt;을 보고 있자면 '늙음에 대한 병적 집착'으로 몸은 시드는데 욕망만 살아남은 자가 겪는 절망적인 형벌(이라고 스스로 생각하는 꼴보기 싫은 자기연민)을 보여준다. 우엘벡에게 노화는 단순히 나이가 드는 자연스러운 현상이 아니라, 자본주의 시장에서 육체적 상품 가치를 완전히 잃어버리는 비극이자 소외랄까. 항우울제 부작용으로 성기능을 잃어가면서도 머릿속엔 젊음에 대한 욕망이 그대로 남아있어, 지독한 수치심과 자기혐오에 시달리는 꼴값까지. 여기서 젊은 여성은 단순히 성적 대상을 넘어 잃어버린 생명력을 구원해 줄 마지막 환상이지만, 스스로 자격 미달임을 알기에 결국 찌질한 피해의식과 절망으로 귀결된다. 결국 그의 노화 집착은 불쾌감을 넘어 씁쓸함을 느끼게 만드는데, 이는 백인 이성애자 남성이 누려온 권력과 육체의 유통기한이 완전히 끝났음을 작가 스스로가 체감하며 지르는 처절한 비명인 셈... 하...뷁스럽냐 아니냐..ㅋ<br>그럼에도 애증의 우엘뷁... 왜그랬는지 나도 몰라 어쩌다 보니 손에 들고 있던 &lt;지도와 영토&gt;. 그의 기존 작품들과 비교했을 때 확연히 '순한 맛'이다. 기존 소설들에서 나타난 자극적인 성적 묘사나 노골적인 여성 신체 대상화가 확실히 줄었으며, 사회적 스캔들을 야기하는 정치·인종적 도발 대신 '예술과 자본', '노동과 고독'이라는 보다 보편적이고 건조한 주제에 집중한다. 나아가 타자를 향한 날 선 공격성을 자신을 파괴하고 희화화하는 자학적 유머로 선회함으로써 독성을 대폭 완화했다. 결과적으로 작가의 혐오적 도발에 방해받지 않고 현대 문명의 가공된 기호성과 자본주의적 고독을 파헤치는 그의 서늘하고 정교한 미학적 통찰에 온전히 집중할 수 있게 되었다. 늙음을 애써 관조하는 듯한 그가 어쩐지 짠해 보이기도 하지만... 여튼 &lt;지도와 영토&gt;는 냉소적이지만 지극히 현실적인 시선으로 현대 자본주의와 예술 시장, 인간의 고독을 딥하게 말하고 있다. 마지막 장에서 제드가 식물이 인공적인 미니어처와 문명의 흔적을 덮어버리는 영상 작업을 하며 여생을 보내는 장면은, 결국 인간이 만든 모든 '지도(기호)'가 사라지고 '영토(자연/시간)'만이 남게 될 것이라는 서늘한 무상함을 남긴다. 우리가 매일 쫓는 가치나 이미지, SNS 속 삶이 혹시 실재하는 영토를 잊게 만드는 '화려한 지도'에 불과한 것은 아닌지 되돌아보게 만드는 묵직한 작품이다.<br>“제드는 이제 자신이 진정으로 속했던 적이 단 한 번도 없는 이 세상을 떠나리라는 것을, 그나마 풍성하지도 않았던 인간관계가 하나하나 말라가다가 마침내 완전히 고갈되리라는 것을 예감했다. 그의 삶은 현재 안주하고 있는, 완벽하게 마감처리된 이 아우디 A6 올로드 안과 같으리라. 고요하고 기쁨이 없는 상태, 요컨대 무감각한 중립 상태 말이다.” P.273]]></description><image><url>https://image.aladin.co.kr/product/33107/70/cover150/8954697631_1.jpg</url><link>https://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temId=331077019</link></image></item><item><author>안지</author><category>마이리뷰</category><title>이 염천에 사람은 두 부류로 나뉜다. 이 책을 본 사람과 안 본 사람 - [기후변화 시대의 사랑]</title><link>https://blog.aladin.co.kr/757135169/17441047</link><pubDate>Sun, 09 Aug 2026 17:13: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s://blog.aladin.co.kr/757135169/17441047</guid><description><![CDATA[<table width="100%" height="30" border="0" align="center" cellpadding="0" cellspacing="0"><tr><td width="14"><img src="https://image.aladin.co.kr/img/blog/trans.gif" width="14"></td><td width="85"><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8937413817&TPaperId=17441047" target="_blank"><img src="https://image.aladin.co.kr/product/26869/5/coveroff/8937413817_1.jpg" width="75" border="0" class="box1"></a></td><td valign="top"><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8937413817&TPaperId=17441047" target="_blank" style="color:#386DA1;font-weight:bold">기후변화 시대의 사랑</a><br/>김기창 지음 / 민음사 / 2021년 04월<br/></td></tr></table><br/>김기창의 &lt;기후변화 시대의 사랑&gt;은 한마디로 “지구가 망해가는데 연애는 무슨 연애냐” 싶다가도 “아, 그래도 사람이 멸망 직전엔 손이라도 잡아야지” 하게 만드는 스펙터클 감성 디스토피아 소설집이다. 보통 영화에서 지구 종말이라고 하면 헐리우드 액션 배우가 망치를 들고 나타나 운석을 깨부수거나 Hero가 나타나 전 세계를 구하지만, 이 책은 그딴 영웅은 눈 씻고 찾아봐도 없다는 아주 잔인하고도 지극히 현실적인 팩트를 기반으로 시작한다. 대신 이상기후, 해수면 상승, 미세먼지 폭탄, 변종 바이러스 같은 온갖 지구의 억까 속에서 하루하루 꾸역꾸역 살아가는 아주 평범하고 불쌍한 인간 1,2,3,4...의 이야기가 10편의 단편으로 빽빽하게 담겨 있다. 책을 읽다 보면 이건 어디 멀리 있는 미래 이야기가 아니라, 당장 내일 출근길에 마스크 세 개 겹쳐 쓰고 보트를 타야 할 것 같은 실감 나는 서늘함이 등골을 스친다. 특히나 이 책에서 가장 골 때리면서도 울컥하게 만드는 지점은 바로 제목에 당당하게 들어가 있는 ‘사랑’이라는 단어다. 방독면을 써야 숨을 쉬고 깨끗한 물 한 컵 구하기 위해 몸싸움을 벌여야 하는 마당에 낭만적인 고백이나 염장 지르는 로맨스는 당연히 사치다. 여기 나오는 사랑은 지극히 찌질하고, 비참하며, 때로는 생존을 위한 처절한 발악에 가깝다. 부자들은 에어컨 빵빵하고 안전한 해발 고도로 이사 갈 때 약자들은 물에 잠겨가는 반지하에서 서로 체온을 나누며 “너라도 살아라” 하고 물병을 건네는 게 이 동네의 사랑 방식이다. 작가는 인간들이 지구를 막 써먹어서 벌받는 와중에도 끝까지 서로를 불쌍히 여기고 오염된 공기 속에서 손을 잡아주는 행위야말로 인간이 동물이나 기계와 다른 마지막 폼생폼사의 근거라고 말한다. 심지어 이 사랑은 남녀 간의 연애질에만 머물지 않고, 인간 때문에 고통받는 동물이나 파괴된 자연, 그리고 하필 이런 망해가는 세상에 태어나버린 불쌍한 2세들을 향한 짠한 연민으로 뻗어 나간다. 결국 이 소설집이 우리에게 던지는 메시지는 “지구를 구하자” 같은 거창하고 도덕책 같은 소리가 아니다. 어차피 인간이 저지른 업보로 세계가 멸망의 길을 향해 천천히 수몰되어 가더라도, 마지막 순간까지 옆 사람한테 짜증 내지 말고 사탕 하나라도 더 챙겨주는 다정함을 잃지 말자는 지극히 현실적인 위로다. 세상이 차갑게 식어가고 미세먼지가 앞을 가로막을지라도, 서로의 멍청함과 약함을 품어주는 그 오지랖과 온기야말로 디스토피아라는 거대한 똥밭에서 인간이 피워낼 수 있는 최고의 저항이자 마지막 유머라는 사실을 이 책은 아주 뼈아프고도 위트 있게 증명해 낸다. 올 여름 최고 기온을 찍을 때 이 책을 읽었다. 이 염천에 사람은 두 부류로 나뉜다. 이 책을 본 사람과 안 본 사람.&nbsp;]]></description><image><url>https://image.aladin.co.kr/product/26869/5/cover150/8937413817_1.jpg</url><link>https://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temId=268690540</link></image></item><item><author>안지</author><category>마이리뷰</category><title>망사의 천재 - [조금 망한 사랑]</title><link>https://blog.aladin.co.kr/757135169/17437116</link><pubDate>Fri, 07 Aug 2026 11:18: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s://blog.aladin.co.kr/757135169/17437116</guid><description><![CDATA[<table width="100%" height="30" border="0" align="center" cellpadding="0" cellspacing="0"><tr><td width="14"><img src="https://image.aladin.co.kr/img/blog/trans.gif" width="14"></td><td width="85"><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K462934890&TPaperId=17437116" target="_blank"><img src="https://image.aladin.co.kr/product/35052/51/coveroff/k462934890_1.jpg" width="75" border="0" class="box1"></a></td><td valign="top"><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K462934890&TPaperId=17437116" target="_blank" style="color:#386DA1;font-weight:bold">조금 망한 사랑</a><br/>김지연 지음 / 문학동네 / 2024년 10월<br/></td></tr></table><br/>김지연 작가의 소설집 &lt;조금 망한 사랑&gt;은 관계의 균열과 삶의 파탄 속에서도 무너지지 않고 살아가는 인물들의 서사를 담담하게 그려낸 현실 밀착형 작품이다. 망한 사랑. 와중에 붙은 ‘조금’ 이라는 수식어가 어쩐지 확실히 망했음을 확인시켜 주는 듯하다. 조금 망하든 완전 망하든 뭐래도 일단 망한 것은 망한 것이세요 같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어떻게든 다시 붙여보고 싶은 일말의 희망으로 보여 짠하기도 하고. 그렇게 생각하니 정말 확정적으로 망했네 싶고. 그러나 극적이거나 비극적인 파멸 대신 일상에서 슬그머니 어긋나거나 망가진 사랑을 다루면서, 건조함 속에 묘한 위트와 특유의 대화체 중심 서사로 묵직한 가라앉음 대신 이상한 안도감을 선사한다. 빚, 주거 문제, 연애와 우정의 균열 등 외부적 현실 조건이 개인을 흔드는 과정을 그리면서도, 인물 간의 건조한 대화를 통해 묵묵히 상황을 견뎌내는 과정을 포착한다. 원초적인 불평등과 결핍 속에 내던져진 소설 속 인물들은 자신이 처한 불행 앞에서도 ‘왜 나에게 이런 일이 일어났는가’라는 식의 자기연민이나 피해의식에 빠지지 않는다. 비극을 드라마틱하게 포장하거나 극복하려 애쓰지 않고, 이미 망해버린 현실을 삶의 기정사실로 받아들인 채 담담하게 다음 순간을 살아낸다. 작가의 퀴어 정체성과 맞물려 형성된 사회적 외곽 인물들의 감각은 삶의 비참함에 압도당하는 대신 ‘망함’을 초월해버린 단단하고 무심한 태도로 이어진다. 감정적 낭비나 자기 연민 없이 현실을 무덤덤하게 견디는 이 서늘함과 초월적 태도...가 너무 좋다.<br>]]></description><image><url>https://image.aladin.co.kr/product/35052/51/cover150/k462934890_1.jpg</url><link>https://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temId=350525168</link></image></item><item><author>안지</author><category>마이리뷰</category><title>어차피 망할 인생 - [인생의 허무를 어떻게 할 것인가]</title><link>https://blog.aladin.co.kr/757135169/17432750</link><pubDate>Tue, 04 Aug 2026 22:12: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s://blog.aladin.co.kr/757135169/17432750</guid><description><![CDATA[<table width="100%" height="30" border="0" align="center" cellpadding="0" cellspacing="0"><tr><td width="14"><img src="https://image.aladin.co.kr/img/blog/trans.gif" width="14"></td><td width="85"><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K272830862&TPaperId=17432750" target="_blank"><img src="https://image.aladin.co.kr/product/30382/55/coveroff/k272830862_1.jpg" width="75" border="0" class="box1"></a></td><td valign="top"><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K272830862&TPaperId=17432750" target="_blank" style="color:#386DA1;font-weight:bold">인생의 허무를 어떻게 할 것인가</a><br/>김영민 지음 / 사회평론아카데미 / 2022년 10월<br/></td></tr></table><br/>인생이라는 게 원래 태어나보니 빈손이고 죽을 때도 빈손이라 근본적으로 개털이자 무의미의 연속인데, 그렇다고 냅다 한강 물 온도 체크하러 가거나 방구석에서 징징대지 말고 어차피 허무한 인생, 비겁함 없이 우아하고 센스 있게 살다 가자 라고 김영민 교수가 고전(장자, 사기 등) 들먹이면서 죽비 때리는 책이다. 즉, "토닥토닥 다 잘 될 거야~" 같은 염가의 힐링에 속아 시간 버리지 말고, 어차피 다 망하고 죽을 목숨이라는 차가운 팩트를 기껍게 받아들인 다음, 그 허무함이라는 배경화면 위에서 차나 한 잔 정갈하게 우려 마시고 드립이나 치면서 오늘 하루를 미학적으로 폼나게 버텨내자는 철학적 츤데레의 유쾌한 생존 가이드북. 인생에 대단하고 거창한 우주적 의미 같은 건 원래 없다는 걸 인정하고 나면, 역설적으로 '잘해야 한다'는 거대한 압박감에서도 놓여나게 되는 것 같다. 그러나 삶이 진짜 팍팍하고 힘든 사람한테 "어차피 인생 무의미하니까 집착 버리고 우아하게 살아"라고 하는 건, '아프니까 청춘이다'류의 꼰대질과 방향만 다를 뿐 또 다른 형태의 '상팔자 소리'로 들릴 수도 있지. 본인은 서울대 교수라는 안정적인 지위에서 고전 읽으며 차 마실 여유가 있으니 할 수 있는 유희 아니냐는 비판도 충분히 가능하고. 결국 이 책이 '뼈 때리는 통찰'로 읽히느냐, 아니면 '선비질하는 꼰대의 가르침'으로 읽히느냐는 받아들이는 사람의 상태와 온도 차에 달려 있다. '꼰대의 가르침'처럼 느껴진다면 굳이 깊게 의미 부여하며 모실 필요도 없다. 그 마저도 "어라, 이 양반도 은근히 선비질하네?" 하고 쿡 찔러보며 가볍게 소비하는 게, 어쩌면 이 책을 가장 '김영민스럽게' 읽는 방법일지도 모른다. 그러나 삶의 목표를 잃어버렸거나, 번아웃&amp;허무감으로 마음이 빈곤해진 이들이라면... 헛헛함과 유쾌함 사이의 묘한 감정을 있는 그대로 즐기면서, 책 속의 건조한 드립들을 한 편씩 음미해 보쟈. 잠깐들 쉬어 가보쟈~&nbsp;
]]></description><image><url>https://image.aladin.co.kr/product/30382/55/cover150/k272830862_1.jpg</url><link>https://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temId=303825596</link></image></item><item><author>안지</author><category>마이리뷰</category><title>낭만적 환상이 안겨준 무기력한 환멸의 서사 - [감정 교육 2]</title><link>https://blog.aladin.co.kr/757135169/17428697</link><pubDate>Sun, 02 Aug 2026 19:26: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s://blog.aladin.co.kr/757135169/17428697</guid><description><![CDATA[<table width="100%" height="30" border="0" align="center" cellpadding="0" cellspacing="0"><tr><td width="14"><img src="https://image.aladin.co.kr/img/blog/trans.gif" width="14"></td><td width="85"><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E893746323&TPaperId=17428697" target="_blank"><img src="https://image.aladin.co.kr/product/4440/44/coveroff/e893746323_1.jpg" width="75" border="0" class="box1"></a></td><td valign="top"><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E893746323&TPaperId=17428697" target="_blank" style="color:#386DA1;font-weight:bold">감정 교육 2</a><br/>귀스타브 플로베르 지음, 지영화 옮김 / 민음사 / 2014년 08월<br/></td></tr></table><br/>귀스타브 플로베르의 &lt;감정교육&gt;은 '19세기 프랑스 사실주의 문학의 정점이자, 현대 모더니즘 소설의 문을 연 거대한 걸작'이라고 일컫지만 동시에 세상에서 가장 정교하게 제작된 고품격 고구마 서사시이기도 하다. 1840년부터 1867년까지의 파리를 배경으로 한 이 작품은 시골 출신 훈남 청년 프레데릭 모로가 파리로 상경해 야망, 연애, 정치적 혼란 속에서 훌륭하게 자빠지고 몰락하는 과정을 정교하게 그려낸다. 주인공 프레데릭은 연상의 유부녀 아르누 부인을 평생 최애로 모시며 짝사랑하는 와중에도, 돈 많은 미망인이나 화려한 기생 사이를 바쁘게 양다리 걸치며 꼴값을 떤다. 그리고 예술가, 혁명가, 투기꾼 등 파리의 각종 속물들과 어울리며 호기롭게 시도하는 사업마다 족족 말아먹고, 결국 그 어떤 사랑도, 야망도 결실을 보지 못한 채 늙어가며 "아 우리집에 금송아지 있었지" 같은 소리나 중얼거리는 결말을 맞이한다. &lt;감정교육&gt;의 가장 큰 문학사적 의의는 시련을 극복하고 어엿한 어른이 되는 기존 교양소설의 공식을 비웃기라도 하듯, 주인공이 완벽하게 '노답·노성장'으로 일관하는 '성장 없는 교양소설''을 완성했다는 점이라 하겠다ㅋ 제목인 '감정교육' 역시 "사랑을 통해 성숙해졌다"는 뜻이 아니라, "감정이 어떻게 무기력하게 마모되고 낭만적 환상이 현실이라는 팩트 폭격 앞에 박살 나는가"를 알려주는 역설적이고 서늘한 튜토리얼이랄까... 더욱이 플로베르는 프레데릭의 찌질한 낭만적 방황을 1848년 2월 혁명과 쿠데타라는 당대 프랑스의 대혼란과 완벽하게 병렬시킨다. 청년들이 외치던 거창한 혁명 공약이 결국 정치가들의 배신과 속물주의 속에서 헛소리로 끝났듯, 프레데릭의 사랑과 야망 역시 지저분한 타협 속에서 허무하게 스러져 가게 말이다. 즉, 거창한 꿈을 품었다가 허탈하게 무너지는 개인과 역사의 콜라보를 그려낸 씁쓸한 환멸의 파노라마인 셈이다. 여기서 플로베르의 또 다른 대작 &lt;보바리 부인&gt;을 떠올리지 않을 수 없다. 플로베르가 '환멸'을 다루는 재주란 정말....ㅋㅋ 두 소설의 공통점은 드라마나 소설을 너무 많이 봐서 눈만 높아진 주인공이 초라한 현실을 견디지 못하고 자멸한다는 점인데, 엠마 보바리가 삼류 연애소설에 빠져 시골 의사 남편을 무시하고 로맨스를 찾아 탈출을 시도하듯, 프레데릭 역시 낭만적 성공을 꿈꾸며 파리를 기웃거리지만 감정과 통장 잔고만 소모할 뿐이다. 둘 다 실행력은 없으면서 이상만 높은 인물들이라 잔인한 플로베르는 이들에게 어떠한 동정표나 도덕적 쉴드도 쳐주지 않고, 팝콘을 씹듯 냉정하고 객관적인 시선으로 이들의 허영심을 폭로한다. 차이라면 두 작품의 '환멸의 규모'랄까. &lt;보바리 부인&gt;이 좁혀진 시골 마을을 배경으로 엠마라는 개인이 사치와 불륜 끝에 사채 빚에 짓눌려 자살로 생을 마감하는 매운맛의 극적 비극이라면, &lt;감정교육&gt;은 대도시 파리 전체를 무대로 온갖 속물들이 얽히고 설키며 세월의 흐름 속에 주인공의 열정이 잔잔하게 마모되어 가는 순한맛의 미지근한 허무를 보여준다. (과연 이게 순한맛인지 뭔지 모르겠지만...) 비유하자면 &lt;보바리 부인&gt;은 한 개인의 망상과 파멸을 정교하게 해부한 '현미경'이고, &lt;감정교육&gt;은 한 세대 전체의 찌질함과 역사적 혼란을 널찍하게 담아낸 '망원경'이라 할 수 있을 듯. 출간 당시 &lt;감정교육&gt;은 "주인공이 너무 답답하다", "줄거리가 산만해서 답답해 죽겠다"는 독자들의 야유 속에 묻혔다고 하는데, 훗날 마르셀 프루스트, 제임스 조이스, 프란츠 카프카 같은 현대 문학의 거장들에게 "삶의 무의미함과 찌질함을 이토록 아름답게 그려내다니!"라는 찬사를 받으며 현대 모더니즘 문학의 기틀을 다진 위대한 걸작으로 남았다고 한다. (혹시 동족상잔일까....ㅋㅋ) 심지어 그 중 프루스트는 말했단다. "&lt;감정교육&gt;의 프레데릭은 바로 나" 라고ㅋ 여튼 거창한 야망과 낭만적 환상을 품고 파리에 상경한 청춘이 현실의 속물주의와 역사적 혼란 속에서 완벽하게 무기력해져 가는 과정을 서늘하고 아름답게 그려낸, 문학사상 가장 고품격인 '성장 없는' '환멸'의 서사시! 읽어보시라. 진짜 너무 재밌다. 소설의 묘미란 정말...ㅋ<br><br>]]></description><image><url>https://image.aladin.co.kr/product/4440/44/cover150/e893746323_1.jpg</url><link>https://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temId=44404406</link></image></item><item><author>안지</author><category>마이리뷰</category><title>진기명기 피땀눈물 자아 탐구 대서사시 - [비의 왕 헨더슨]</title><link>https://blog.aladin.co.kr/757135169/17416928</link><pubDate>Tue, 28 Jul 2026 14:12: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s://blog.aladin.co.kr/757135169/17416928</guid><description><![CDATA[<table width="100%" height="30" border="0" align="center" cellpadding="0" cellspacing="0"><tr><td width="14"><img src="https://image.aladin.co.kr/img/blog/trans.gif" width="14"></td><td width="85"><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8901131161&TPaperId=17416928" target="_blank"><img src="https://image.aladin.co.kr/product/1395/29/coveroff/8901131161_1.jpg" width="75" border="0" class="box1"></a></td><td valign="top"><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8901131161&TPaperId=17416928" target="_blank" style="color:#386DA1;font-weight:bold">비의 왕 헨더슨</a><br/>솔 벨로우 지음, 이화연 옮김 / 펭귄클래식 / 2011년 11월<br/></td></tr></table><br/>솔 벨로, &lt;비의 왕 헨더슨&gt;은 무료한 부자 백인이 아프리카에서 어쩌다 왕으로 데뷔하게 되는 진기명기 피땀눈물 대서사시로,&nbsp;물질적 풍요 속에서 깊은 허무와 실존적 위기를 겪는 50대 미국인 거부 유진 헨더슨이 내면의 갈증("I want, I want")을 해소하려 아프리카로 떠나면서 벌어지는 희극적 실존주의 소설이다. 1세계 백인이 찾아봤자 별 것도 없는ㅋ 자아 찾기를 위해 오지 탐험하는 스토리는 차고 넘치고 그게 그거다 싶고, 게다가 그런 서사는 자칫 시대착오적인 백인 우월주의나 시혜적 태도, 혹은 야만 대 문명의 진부한 이분법으로 빠지기 쉬워 사실 흐린눈으로 읽기 시작했다.&nbsp;하지만 솔 벨로는 헨더슨을 거창하고 완벽한 구원자로 두지 않는다. 그저 덩치만 거대할 뿐 속은 텅 비어 있는, 우스꽝스러운 문명병 환자로 그려낼 뿐이다. 오히려 아프리카 부족들과 그들의 왕 '다후'가 헨더슨보다 훨씬 더 깊은 철학적 통찰을 보여준다. 헨더슨은 그들의 지혜와 넘치는 생명력 앞에서 끊임없이 깨지고 깨달음을 얻는 존재일 뿐이다. 유색인종을 단순한 배경이나 계몽의 대상으로 소비하지 않고, 기묘할 정도로 대등하고 존중감 있게 다루는 이 시선이야말로 이 소설을 한 끗 다르게 만드는 지점이다.&nbsp;헨더슨이 와리리 부족에서 사자와 교감하며 죽음의 공포를 극복하고, 고정된 '존재(Being)'에서 끊임없이 변화하는 '생성(Becoming)'으로 나아가는 과정은 서사 자체로도 말도 안되게 재밌다.&nbsp;솔 벨로 소설의 단점을 감히 하나 꼽자면 다소 멋없어 뵈는 특유의 제목들 아닐까 싶다가도, 읽다 보면 깊은 철학적 성찰과 특유의 위트가 어우러진 매력적인 글맛에 빠져 "이거 말고는 답이 없었겠구나" 하고 고개를 끄덕이게 되는데 그의 작품에는 늘 명확히 이해되는 어떤 한계와 경계가 존재하고, 그것이 묘한 쓸쓸함과 뭉클함으로 이어지는 독특한 매력이 있다.&nbsp;여튼&nbsp;허무와 존재의 열망 사이에서 치열하게 몸부림치는 현대인에게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가를 묻고, 내면의 야성과 생명력을 되찾아주는 영혼의 구원기 &lt;비의 왕 헨더슨&gt; 적극적으로다가 영업을 해보며ㅋ 번외로 읽기 전부터 의미심장하더니 완독 후 전율을 느낀 한국어판 표지 디자인은 펭클 통틀어 가히 최고라고 생각할 정도로 멋지다. 내 책장 배 올해의 커버상 드림 (갑자기)<br>]]></description><image><url>https://image.aladin.co.kr/product/1395/29/cover150/8901131161_1.jpg</url><link>https://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temId=13952942</link></image></item><item><author>안지</author><category>마이리뷰</category><title>저 포도는 시다. - [여명]</title><link>https://blog.aladin.co.kr/757135169/17414383</link><pubDate>Mon, 27 Jul 2026 10:21: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s://blog.aladin.co.kr/757135169/17414383</guid><description><![CDATA[<table width="100%" height="30" border="0" align="center" cellpadding="0" cellspacing="0"><tr><td width="14"><img src="https://image.aladin.co.kr/img/blog/trans.gif" width="14"></td><td width="85"><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E895461027&TPaperId=17414383" target="_blank"><img src="https://image.aladin.co.kr/product/2113/78/coveroff/e895461027_1.jpg" width="75" border="0" class="box1"></a></td><td valign="top"><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E895461027&TPaperId=17414383" target="_blank" style="color:#386DA1;font-weight:bold">여명</a><br/>시도니가브리엘 콜레트 지음, 송기정 옮김 / 문학동네 / 2012년 11월<br/></td></tr></table><br/>시도니 가브리엘 콜레트의 &lt;여명&gt;은 남성 중심의 로맨스 공식 따위는 상큼하게 차버리고, 중년 여성이 자신의 몸과 욕망, 그리고 프로방스의 자연을 되찾으며 ‘완벽한 독립 주체’로 거듭나는 오토픽션 소설이다. 주인공 ‘콜레트’는 남프랑스 생트로페의 예쁜 집에서 댕댕이, 냥이들과 함께 평화로운 솔로 라이프를 즐기던 중, 굴러들어온 연하남 ‘비알’의 유혹과 달콤한 연애 제안을 받게 된다. 하지만 고뇌 끝에 "응, 내 평화가 더 중요해"라며 깔끔하게 차버리고 독자적인 자유를 선택한다. 이 엄청난 철벽의 뒤에는 작가의 영적 치트키이자 정신적 지주인 어머니 ‘시도’가 있다. 시도는 "남편 보러 오라"는 사교적 초대에 "미안, 내 마당에 핑크 선인장 꽃 피는 게 훨씬 중요함"이라며 거절할 만큼, 가부장제와 희생적 모성관을 비웃고 정원의 생명력을 찬미하던 독보적인 마이웨이 인물이다. 어머니의 이 레전드 편지들을 반추하며 콜레트는 남자에 목매는 연애가 삶의 전부가 아니며, 썸이 끝난 자리에도 삶은 얼마든지 스위트하고 눈부실 수 있음을 깨닫는다. 결국 시도는 딸에게 "남자 없어도 세상은 넓고 즐길 건 많단다"라는 삶의 지혜와 예술적 직관을 전수한 쿨함의 결정체인 셈이다. 프로방스의 햇살과 새벽 공기를 훔쳐 온 듯 감각적인 문체로 그려진 이 소설은, 연애라는 열병의 관성에 가볍게 마침표를 찍고 비로소 '참된 나'라는 태양을 맞이하는 매력적인 여명의 선언이다.<br>PS. 작가의 전작 &lt;셰리&gt;를 떠올리지 않을 수 없다. &lt;셰리&gt;(1920, 40대 콜레트)를 보자. 레아와 셰리는 서로를 깊이 사랑하지만 결국 나이라는 세월의 벽과 사회적 관습 앞에 갈라선다. 이별 후 레아는 늙어가는 자신을 받아들이고, 셰리는 레아 없는 삶을 견디지 못해 몰락한다. 아프지만 유혹적이었던 관계의 종말을 그린다. &lt;여명&gt;(1928, 50대 콜레트)는 어떨까. 연하남 '비알'이 찾아왔을 때 주인공 콜레트는 아예 시작조차 하지 않고 차버린다. "너와의 사랑이 달콤할 순 있겠지. 하지만 그 대가로 내 평화와 자유를 바꿀 순 없어"라며 거절한다. 사랑의 유혹을 넘어선 완전한 자아의 독립으로 진화한다. 콜레트에게 젊은 남성과의 사랑은 여성으로서의 내면적 성장과 독립을 증명하기 위한 아주 매혹적인 문학적 장치였던 셈이다. 근데 사실&nbsp;이 모든 것이 뭐랄지, 약간은, 신포도가 아닐까 싶기도 했다.&nbsp;사실&nbsp;중년으로서 현실적으로 뉴페이스와의 사랑...결코 쉽지 않으며ㅋ 찾아오지도 않는다는 게 팩트ㅋ 어린 남자가 와서 붙거든 잘 살피자 내 등에 빨대를 꽂나 안꽂나ㅋㅋ 그러나&nbsp;실제로 콜레트 여사는 40대에 의붓아들(두 번째 남편의 16세 아들)과 열애를 하기도 했던 파격적인 삶을 살았다고 한다. 나 같은 쪼렙과는 보법이 다르신 분...세간의 손가락질이나 도덕적 잣대에 굴하지 않고, 자신의 욕망과 삶을 온전히 글 속으로 가져와 승화시키셨도다. 남자의 그늘 아래 있던 여성이, 기꺼이 젊은 남자를 품어줄 만큼 커졌다가, 마침내 남자 따위는 없어도 온전히 빛나는 태양이 되는 이 찬란한 과정. 신포도면 어떠랴...시면 뱉고 달면 삼키면 그만이지. 여사님 여명의 레벨이 궁금하다면 책으로 확인하길ㅋ&nbsp;]]></description><image><url>https://image.aladin.co.kr/product/2113/78/cover150/e895461027_1.jpg</url><link>https://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temId=21137888</link></image></item><item><author>안지</author><category>마이리뷰</category><title>‘다 안다‘고 착각하는 세상과 타인에 대하여 - [그물을 헤치고]</title><link>https://blog.aladin.co.kr/757135169/17408794</link><pubDate>Fri, 24 Jul 2026 09:49: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s://blog.aladin.co.kr/757135169/17408794</guid><description><![CDATA[<table width="100%" height="30" border="0" align="center" cellpadding="0" cellspacing="0"><tr><td width="14"><img src="https://image.aladin.co.kr/img/blog/trans.gif" width="14"></td><td width="85"><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E893746178&TPaperId=17408794" target="_blank"><img src="https://image.aladin.co.kr/product/5241/81/coveroff/e893746178_1.jpg" width="75" border="0" class="box1"></a></td><td valign="top"><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E893746178&TPaperId=17408794" target="_blank" style="color:#386DA1;font-weight:bold">그물을 헤치고</a><br/>아이리스 머독 지음, 유종호 옮김 / 민음사 / 2015년 01월<br/></td></tr></table><br/>아이리스 머독의 &lt;그물을 헤치고&gt;는 관념의 오만에 빠진 지식인의 해체와 성찰을 다룬 철학적 코미디 소설이다. 삼류 번역가이자 작가, 동시에 건달이나 다름없는 주인공 제이크 도너휴는 스스로를 지적인 작가라 믿지만, 실상은 남의 집에 얹혀살며 관념적 유희로 삶을 연명하는 인물이다. 어느 날 머물던 거처에서 쫓겨난 그는 돈과 거처, 그리고 과거의 인연들을 찾아 런던과 파리의 거리를 방황하기 시작한다. 이 여정 속에서 명물 개 납치극, 영화 세트장 난동 등 피카레스크 소설 특유의 기상천외한 소동극들이 유쾌하게 펼쳐진다.<br>이 희극적 전개의 중심에는 비트겐슈타인적 언어회의론이 깊게 작동한다. 비트겐슈타인은 언어가 세상을 논리적으로 묘사할 수 있을지언정 윤리, 미학, 타인의 내면 같은 삶의 본질은 포착할 수 없으며, 따라서 "말할 수 없는 것에 대해서는 침묵해야 한다"고 말했다. 머독은 이 철학을 소설의 핵심 상징인 '그물'로 확장한다. 그물은 유동적이고 복잡한 실재를 정형화된 언어, 이론, 선입견이라는 틀에 가두려는 인간의 지적 기만과 오만을 의미한다.<br>제이크는 타인의 심리와 복잡한 인간관계를 자신이 만든 언어적 프레임으로 재단하고 완벽히 이해했다고 착각한다. 그러나 현실이 베일을 벗을 때마다 그의 고상한 '뇌피셜'은 완벽한 오해와 헛다리로 판명 난다. 언어로 세상을 모두 쥐어짤 수 있다는 관념적 자만은 실재의 예측 불가능한 역동성 앞에서 산산조각 난다. 결국 소설은 거창한 언어와 추상적 이론을 내려놓을 때 비로소 타인의 절대적 개별성과 세상을 있는 그대로 직시할 수 있음을 보여준다. 타인을 내 관념의 그물에 가두지 않고 순수하게 관조하는 법을 배운 제이크는 마침내 타성적인 번역가를 벗어나 진정한 창작자로서 자기 글을 쓰기 시작한다.<br>이 풍자적인 여정을 따라가다 보면 제임스 설터의 단편소설집 &lt;어젯밤&gt; 중 '혜성'에 등장하는 한 구절이 자연스레 떠오른다.<br>"누군가를 안다고 생각하겠지만, 저녁을 함께 먹고 카드를 몇 번 쳤다고 생각하겠지만 당신은 실제로 아무것도 모른다. 언제나 놀라게 된다. 당신은 아무것도 모른다."<br>머독이 비트겐슈타인적 철학을 바탕으로 펼쳐놓은 길고 정교한 서사가 설터의 문장 속에서는 서늘하리만큼 단호하고 깔끔하게 벼려진 절개선처럼 다가온다. 소설 속 제이크 역시 함께 시간을 보내고, 식사를 나누고, 수많은 담소를 나누었기에 타인과 세상을 완벽히 '안다'고 자만했다. 하지만 그의 정교한 뇌피셜과 언어의 그물은 현실이라는 타인의 진짜 실재 앞에서 맥없이 찢겨나간다.<br>관념으로 가두려 해도 결코 포섭되지 않는 타인의 절대적 개별성과 삶의 예측 불가능성을 이토록 담담하고 명징하게 꿰뚫는 문장이 또 있을까. 머독의 번잡하고 유쾌한 소동극이 다다른 마침표와 설터의 명료한 한 줄은 정확히 같은 지점에서 교차한다.<br>아이리스 머독의 &lt;그물을 헤치고&gt;는 피식 웃어버릴 수밖에 없는 어이없는 유머와 철학적 사유를 결합하여 독자에게 끊임없는 즐거움을 선사한다. 동시에 우리가 세상을 바라볼 때 스스로 덮어씌운 선입견과 언어라는 그물에 갇혀 있는 것은 아닌지, 그리고 그 그물을 찢어내고 마주하는 진짜 현실과 타인의 가치가 얼마나 숭고한지를 일깨워준다.<br>아이러니하게도 "당신은 실제로 아무것도 모른다"는 이 서늘한 선언은 오만했던 마음을 내려놓게 만들며 묘한 안도감을 안겨준다. 내 관념으로 세상을 통제하거나 완벽히 이해할 수 없다는 사실을 인정하는 순간, 복잡했던 마음은 비로소 진정되고 편안해진다. 모든 것을 움켜쥐려던 손을 풀고 '케세라세라'의 태도로 세상을 있는 그대로 수용할 때, 비로소 진짜 현실과의 솔직한 만남이 시작되는지도 모른다.]]></description><image><url>https://image.aladin.co.kr/product/5241/81/cover150/e893746178_1.jpg</url><link>https://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temId=52418189</link></image></item><item><author>안지</author><category>마이리뷰</category><title>마치 소설은 이런 것이라는 듯 2 - [[세트] 아메리카의 비극 상.하 세트 - 전2권]</title><link>https://blog.aladin.co.kr/757135169/17401757</link><pubDate>Mon, 20 Jul 2026 12:33: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s://blog.aladin.co.kr/757135169/17401757</guid><description><![CDATA[<table width="100%" height="30" border="0" align="center" cellpadding="0" cellspacing="0"><tr><td width="14"><img src="https://image.aladin.co.kr/img/blog/trans.gif" width="14"></td><td width="85"><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K662633409&TPaperId=17401757" target="_blank"><img src="https://image.aladin.co.kr/product/25311/46/coveroff/k662633409_2.jpg" width="75" border="0" class="box1"></a></td><td valign="top"><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K662633409&TPaperId=17401757" target="_blank" style="color:#386DA1;font-weight:bold">[세트] 아메리카의 비극 상.하 세트 - 전2권</a><br/>시어도어 드라이저 지음, 김욱동 옮김 / 을유문화사 / 2020년 10월<br/></td></tr></table><br/>"시어도어 드라이저는 1890년대에 찰스 다윈과 허버트 스펜서, 존 틴들과 토머스 헉슬리의 철학서를 읽기 시작했다. 드라이저는 인간의 행동을 화학이나 물리학의 관점에서 설명하는 이론을 믿고 그것을 '케미즘'이라고 불렀다. 작가의 이런 생각은 &lt;시스터 캐리&gt;(1900) 에서 이미 잘 드러난다."&lt;아메리카의 비극_상&gt; p.53 각주 중.<br>시어도어 드라이저의 문학 철학을 관통하는 ‘케미즘’은 인간의 모든 감정, 욕망, 행동, 윤리적 선택이 영혼이나 고결한 자유의지에 의한 것이 아니라 몸 내부에서 일어나는 생물학적·화학적 작용과 외부 환경의 자극에 의해 결정된다는 극단적인 결정론이자 자연주의적 시각이라고 한다. 뭔가 사이비 같지만... 여튼 드라이저는 인간을 정교한 생물학적 기계이자 유기체로 바라보았으며, 남녀 간의 강렬한 끌림, 부와 명예에 대한 지독한 갈망, 순간적인 범죄 충동 등 인간이 겪는 모든 심리적·사회적 현상을 도덕적 선택의 결과가 아닌 거부할 수 없는 화학적 끌림과 반응의 결과물로 해석했는데, 이에 따라 도덕, 종교, 윤리, 법률과 같은 사회적 규범은 인간의 원초적 본능과 화학 작용을 정당화하거나 포장하기 위한 허울 좋은 겉치레에 불과하다고 보았단다. 그런 시각으로 보게 되면 드라이저의 대표작인 &lt;시스터 캐리&gt;에서 시골 출신의 캐리가 대도시의 물질적 화려함에 매료되어 타락해가는 과정이나, &lt;아메리카의 비극&gt;에서 주인공 클라이드 그리피스가 신분 상승의 욕망과 성적 충동 사이에서 오락가락하다 비극적인 범죄를 저지르고 결국 파멸을 맞이하는 서사는, 인물들이 악해서라기보다 거대한 사회적 톱니바퀴와 내부의 화학적 충동이라는 본능에 밀려 자연스럽게 이끌려 간 비극적 결과라는 내로남불 같은 소리가 된다. 당연하게도 이러한 드라이저의 케미즘 사상은 당대는 물론 현대에 이르기까지 깊은 윤리적 반발과 비판을 불러일으켰는데, 인간의 모든 행동을 단순한 화학 반응으로 환원할 경우 살인이나 아동 학대 같은 극악무도한 범죄마저도 "뇌와 몸속의 화학 작용 때문일 뿐"이라며 책임을 회피하고 면죄부를 주는 지극히 무책임하고 위험한 사상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실제로 대다수의 평범한 사람들은 매일 밤낮으로 분노, 성욕, 탐욕, 이기심 같은 원초적 본능과 충동이 치밀어 오름에도 불구하고, 타인에게 피해를 주지 않고 질서를 유지하기 위해 스스로를 억제하고 참으며 살아가는데, 인간을 그저 자극에 반응하는 약한 유기체나 기계로 규정하는 것은 인간으로서 마땅히 가져야 할 인내와 도덕적 노력을 완전히 무시하는 처사라는 지적을 아니할 수 없다. 자극을 받았을 때 본능대로 지체없이 즉각 반응하는 것을 우리는 짐승이라 부르고 있으며ㅋ 자극과 행동 사이에 이성과 도덕이라는 브레이크를 작동시켜 멈춰 서고 참아내는 선택의 공간을 만들어내는 것이야말로 인간을 짐승과 구분 짓는 진정한 존엄성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러한 비판에 대해 드라이저의 시선은 인간의 책임 회피를 정당화하려 했다기보다는, '개인의 노력과 도덕적 의지만 있다면 얼마든지 성공할 수 있다'는 당시 미국 사회의 위선적인 아메리칸드림과 청교도적 유교주의를 폭로하는 데 목적이 있었더라는 속사정을 확인하고 가쟈..그러니까 사회적 시스템과 자본주의의 거대한 압박 앞에서 개인이 아무리 도덕적 의지를 다져봤자 물질적 자극과 본능 앞에서는 얼마나 맥없이 무너질 수 있는지를 보여줌으로써, 개인에게만 모조리 도덕적 십자가를 지우고 정작 그 인물을 비극으로 몰아넣은 거대한 환경과 본능의 힘을 모른 척하는 사회야말로 진정 무책임한 것 아니냐는 냉소적인 반문을 던진 것은 아닐까. 게다가 역설적이게도 드라이저의 이러한 건조한 인간관은 그의 소설을 그 어떤 문학보다 강력하고 압도적으로 몰입하게 만드는 마법 같은 원동력이 되기도 한다. 작가가 섣불리 도덕적 교훈을 주려 하거나 선악의 잣대로 인물들을 심판하지 않고, 대도시라는 거대한 무대 위에서 인간의 속물근성과 솔직한 욕망이 어떻게 타오르고 무너져 내리는지를 생태 다큐멘터리처럼 날것 그대로 세밀하게 스케치하기 때문에 내가 차마 밖으로 꺼내지 못했던 인간 본연의 약함과 욕망을 목격하며 깊은 몰입감을 느끼게 된다. 비록 드라이저는 인간을 본능과 환경에 휘둘리는 무력한 존재로 바라보았을지라도, 그 약한 존재들이 헛된 꿈을 꾸고, 갈망하고, 결국 거대한 현실의 벽에 부딪혀 비장하게 파멸해 가는 과정을 그 누구보다 뜨겁고 정교하게 그려냄으로써 문학이 도달할 수 있는 비극적 몰입감의 정점을 이 소설을 통해 맛봤다고 할 수 있겠다.&nbsp;소설은 마치 이래야 한다는 듯 그냥 재밌다. 그렇다. 마치 소설은 이런 것이라는 듯.]]></description><image><url>https://image.aladin.co.kr/product/25311/46/cover150/k662633409_2.jpg</url><link>https://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temId=253114626</link></image></item><item><author>안지</author><category>마이리뷰</category><title>대자연의 은밀한 뽕짝 파티 - [술 취한 파리와 맛이 간 돌고래 - ‘약 빤’ 동물 세상으로의 여행]</title><link>https://blog.aladin.co.kr/757135169/17394967</link><pubDate>Thu, 16 Jul 2026 12:12: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s://blog.aladin.co.kr/757135169/17394967</guid><description><![CDATA[<table width="100%" height="30" border="0" align="center" cellpadding="0" cellspacing="0"><tr><td width="14"><img src="https://image.aladin.co.kr/img/blog/trans.gif" width="14"></td><td width="85"><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K362935464&TPaperId=17394967" target="_blank"><img src="https://image.aladin.co.kr/product/32357/55/coveroff/k362935464_1.jpg" width="75" border="0" class="box1"></a></td><td valign="top"><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K362935464&TPaperId=17394967" target="_blank" style="color:#386DA1;font-weight:bold">술 취한 파리와 맛이 간 돌고래 - ‘약 빤’ 동물 세상으로의 여행</a><br/>오네 R. 파간 지음, 박초월 옮김 / Mid(엠아이디) / 2023년 08월<br/></td></tr></table><br/>불금에 만취해 가로등과 한 판 뜨는 주정뱅이를 한심하게 바라본 적 있나? 안타깝게도 우리 조상님들은 아주 오래전부터 그보다 더하면 더했지 덜하지 않았다. 오네 R. 파간의 &lt;술 취한 파리와 맛이 간 돌고래&gt;는 ‘취하는 것은 인간의 특권’이라는 건방진 착각을 단숨에 박살 내는 본격 ‘동물계 유흥 탐사기’라고 할 수 있겠다. 이 책에 등장하는 동물들의 라인업은 화려하기 그지없다. 썩은 과일 즙을 빨아먹고 인사불성이 되어 엉뚱한 암컷에게 치근덕거리는 ‘알코올 중독’ 초파리부터, 복어 한 마리를 가둬두고 꼬리로 툭툭 건드려 나오는 독소를 마약처럼 쪼아 먹으며 멍하게 물 위를 둥둥 떠다니는 ‘뽕 맞은’ 돌고래 무리, 환각 버섯을 씹어 먹고 눈밭을 날뛰는 순록까지 그야말로 대환장 파티가 펼쳐진다. 저자는 이 난장판을 진화생물학과 신경과학이라는 돋보기를 들이대며 짐짓 진지하게 분석한다. 알고 보니 이 녀석들이 목숨 걸고 ‘한 잔’ 하는 이유는 단순히 유흥 때문이 아니라, 식물의 독성을 역이용해 기생충을 박멸하거나 고칼로리 음식을 찾기 위한 치열한 생존 투쟁, 즉 ‘자가 치료’의 눈물겨운 역사였다. 게다가 미천한 초파리와 고고한 돌고래, 그리고 인간의 뇌 속 도파민 보상 회로가 놀라울 정도로 똑같이 작동한다는 사실은 우리가 불금에 맥주 캔을 따는 행위가 수억 년 전 공통 조상으로부터 고스란히 물려받은 유전적 본능임을 증명한다. 저자 특유의 약 빤 듯한 드립과 위트 넘치는 서술 덕분에 전문 과학 지식이 시트콤처럼 머리에 쏙쏙 박히며, 인간이 지닌 중독이라는 어두운 본질을 자연의 유쾌하고도 필연적인 섭리로 바라보게 만든다. 결국 이 책은 인간의 음주가무와 해장 문화는 대자연의 거대한 ‘알코올 클럽’에 비하면 그저 귀여운 막내의 재롱 잔치에 불과하다는 점을 뼈저리게 일깨워주는 최고의 ‘취중 과학 에세이’이라 하겠다.]]></description><image><url>https://image.aladin.co.kr/product/32357/55/cover150/k362935464_1.jpg</url><link>https://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temId=323575541</link></image></item><item><author>안지</author><category>마이리뷰</category><title>프랑켄슈타인의 절규를 유쾌한 웃음으로 뒤집는 영리한 답서 - [가여운 것들]</title><link>https://blog.aladin.co.kr/757135169/17392814</link><pubDate>Wed, 15 Jul 2026 11:20: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s://blog.aladin.co.kr/757135169/17392814</guid><description><![CDATA[<table width="100%" height="30" border="0" align="center" cellpadding="0" cellspacing="0"><tr><td width="14"><img src="https://image.aladin.co.kr/img/blog/trans.gif" width="14"></td><td width="85"><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K182832651&TPaperId=17392814" target="_blank"><img src="https://image.aladin.co.kr/product/31568/35/coveroff/s552931414_1.jpg" width="75" border="0" class="box1"></a></td><td valign="top"><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K182832651&TPaperId=17392814" target="_blank" style="color:#386DA1;font-weight:bold">가여운 것들</a><br/>앨러스데어 그레이 지음, 이운경 옮김 / 황금가지 / 2023년 04월<br/></td></tr></table><br/>앨러스데어 그레이의 &lt;가여운 것들&gt;은 메리 셰리의 &lt;프랑켄슈타인&gt;에 바치는 가장 발칙하고 현대적인 오마주이자, 이를 비틀어버린 해체적 답서이다. 두 작품은 조각난 시체에 생명을 불어넣어 피조물을 탄생시켰다는 설정과 신의 영역에 도전하는 천재 과학자의 존재라는 핵심 뼈대를 공유하지만, 탄생 이후 주인공이 나아가는 방향은 정반대를 가리킨다. 프랑켄슈타인의 괴물이 창조주와 사회로부터 외면받아 파멸로 치닫는 비극의 존재라면, &lt;가여운 것들&gt;의 주인공 '벨라'는 사회적 편견이나 가부장적 질서를 전혀 학습하지 않은 투명한 시선을 무기로 세상의 낡은 규범을 통쾌하게 무시하고 파괴하는 해방의 아이콘으로 우뚝 선다.&nbsp;소설은 한 여성의 자살과 태아의 뇌 이식이라는 음산하고도 충격적인 부활로 문을 열지만, 어둠은 이내 걷히고 주인공 ‘벨라’가 세상 밖으로 질주하며 서사는 완전히 다른 생기를 뿜어낸다. "여자는 이래야 한다"는 세상의 각본을 전혀 배우지 못한 벨라의 시선은 무해할 정도로 투명하다. 이 무결점의 파괴적인 존재가 19세기 영국 사회의 낡은 규범을 제멋대로 흩뜨려 놓을 때, 읽는 이는 묘한 해방감과 통쾌한 카타르시스를 맛보게 된다.&nbsp;작가의 유머는 벨라를 둘러싼 남성들을 다룰 때 더욱 빛이 난다. 그녀를 완벽한 피조물로 숭배하는 창조주, 성적 주도권을 쥐려다 도리어 압도당하는 바람둥이, 소유욕에 눈이 먼 전남편까지. 벨라를 제멋대로 규정하려던 남성들의 독점욕과 질투는 작가의 펜 끝에서 한없이 찌질하고 우스꽝스러운 희극으로 전락한다. 가부장제라는 견고한 벽에 유쾌한 어퍼컷을 날리는 셈이다.&nbsp;그러나 이 작품의 진짜 묘미는 후반부, 회고록과 반박 편지, 주석이 얽히는 다층적인 문서 배치에서 폭발한다. 마지막 장을 덮는 순간 독자는 "지금껏 숨 가쁘게 따라온 기이한 모험담이 진짜 사실일까, 아니면 누군가의 절묘한 망상일까?"라는 거대한 서사적 수수께끼 앞에 홀로 남겨진다. 동명의 영화 &lt;가여운 것들&gt;의 강렬한 미장센이 시각적 쾌감을 준다면, 남성들이 독점한 역사 뒤에 숨겨진 여성의 진짜 목소리를 추적하는 원작 소설은 비교할 수 없을 만큼 짜릿한 문학적 밀당을 선사한다.&nbsp;처음에는 남성들이 벨라를 향해 혀를 차며 "가여운 것"이라 불렀지만, 책장을 덮을 때쯤 우리는 벨라의 주체적이고 당당한 뒷모습을 보며 그녀를 가두려 안달이 났던 남성 사회를 향해 똑같이 한숨을 쉬며 읊조리게 된다.&nbsp;"참 가여운 인간들 같으니라고."<br>]]></description><image><url>https://image.aladin.co.kr/product/31568/35/cover150/s552931414_1.jpg</url><link>https://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temId=315683556</link></image></item><item><author>안지</author><category>마이리뷰</category><title>안락한 쓰레기통보단 고독한 마이웨이  - [호텔 뒤락 (무선)]</title><link>https://blog.aladin.co.kr/757135169/17389014</link><pubDate>Mon, 13 Jul 2026 10:27: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s://blog.aladin.co.kr/757135169/17389014</guid><description><![CDATA[<table width="100%" height="30" border="0" align="center" cellpadding="0" cellspacing="0"><tr><td width="14"><img src="https://image.aladin.co.kr/img/blog/trans.gif" width="14"></td><td width="85"><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8954613977&TPaperId=17389014" target="_blank"><img src="https://image.aladin.co.kr/product/898/94/coveroff/8954613977_1.jpg" width="75" border="0" class="box1"></a></td><td valign="top"><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8954613977&TPaperId=17389014" target="_blank" style="color:#386DA1;font-weight:bold">호텔 뒤락 (무선)</a><br/>애니타 브루크너 지음, 김정 옮김 / 문학동네 / 2011년 02월<br/></td></tr></table><br/>묵묵히 스며드는 고독과 우아한 각성의 드라마 애니타 브루크너의 &lt;호텔 뒤락&gt;은 극적인 사건이나 화려한 액션 대신, 주인공의 세밀한 내면 심리와 정적인 분위기로 독자를 압도하는 클래식하고 우아한 심리 소설이다. 미술사학자 출신이라는 작가의 이력답게, 소설 속 스위스 호숫가 호텔의 풍경과 인물들에 대한 묘사는 마치 한 폭의 정물화를 보는 듯 세밀하고 아름답다. 감정을 과장하지 않고 차분하고 건조하게 서술하는 문체는 오히려 주인공이 느끼는 외로움과 쓸쓸함을 더 깊게 전달하는 듯 하다. 소설은 통념적인 '해피엔딩'의 결혼 제도가 과연 여성에게 구원인가라는 묵직한 질문을 던지고 있다. 주인공은 호텔에 묵고 있는 다른 여자들을 보며 남성 중심 사회에서 여성이 겪는 한계와 기만을 느끼고 현타에 빠진다. 남편에게 버림받은 여자, 돈 지랄로 공허함을 채우는 모녀, 자식에게 재산 뺏긴 노부인까지, 하나같이 남자에 저당 잡힌 기구한 인생들이었기 때문이다. 이 과정에서 타협을 통한 안락함과, 고독을 동반한 주체성 사이에서 고민하는 주인공의 모습은 시대를 초월해 깊은 공감을 자아낸다. 이야기는 잔잔한 호수처럼 흘러가지만, 그 아래에서는 주인공의 격렬한 내적 갈등이 휘몰아치고 있다. 타인의 시선과 사회적 기준에 휘둘리던 한 여성이 온전히 자기 자신을 마주하고 스스로의 길을 선택해 나가는 과정은, 책을 덮은 후에도 긴 여운과 묵직한 위로를 남긴다.&nbsp;<br>PS.<br><br>결혼 안 한 여자....솔직히 지금 시선에서 1980년대라고 하면 컴퓨터도 쓰고 대중문화도 폭발하던 시절인데, 무슨 고조선 같은 소릴 하냐 싶었다. 하지만 "1980년대 영국 보수 사교계(상류층)"라는 배경을 떼어놓고 보면 얘기가 완전히 달라진다. 1980년대는 컴퓨터와 대중문화가 폭발하던 현대적인 시기처럼 보이지만 소설 호텔 뒤락의 배경인 영국 보수 상류층은 힙한 대중문화와 완전히 담을 쌓은 채 도가 지나치게 꼰대 같은 19세기적 사고방식에 갇혀 있던 폐쇄적인 동네였다. 단적으로 이 소설이 나오기 3년 전인 1981년 찰스 왕세자와 다이애나비의 결혼 당시 왕실이 원한 조건이 순결하고 말 잘 듣는 내조형 현모양처였다는 점만 봐도 당시 상류층이 여성을 가문의 장식품으로만 소비하던 인식을 고스란히 보여준다. 런던 거리에 펑크족이 넘쳐날 때도 이 레이디들의 리그에서는 서른 후반까지 결혼 안 한 여성을 결함품 취급하며 티타임의 뒷담화 소재로 삼았기에 소설은 이 숨 막히는 꼰대 사회의 민낯을 하이퍼리얼리즘으로 까발린 셈이다. 지금 시선에서 겨우 결혼 안 한 게 무슨 대수냐고 고루하게 느낄 수 있지만 당시의 결혼을 현대의 취업이나 부동산으로 치환하면 주인공의 선택이 얼마나 파격적인지 단번에 이해된다. 상류층 남자와의 결혼은 대기업 프리패스 합격증이나 강남 아파트 입주권을 쥐여준 것과 같았는데 주인공은 상사가 꼰대고 내 영혼이 안 잠긴다는 이유로 이를 쿨하게 찢어버리고 자발적 백수이자 월세방으로 돌아간 상황이기 때문이다. 즉 당시 주인공에게 남자의 청혼을 거절한 행위는 인생의 모든 치트키와 안전장치를 제 손으로 날려버린 미친 짓이자 파격적인 반항이었다. 결국 이야기 겉포장만 클래식하고 고루해 보일 뿐 본질은 남들이 다 맞다고 강요하는 거대한 사회적 가스라이팅과 치트키 같은 대세를 따를 것인가 아니면 굶어 죽더라도 내 꼴리는 대로 독고다이 마이웨이를 갈 것인가에 대한 시대를 관통하는 묵직한 질문이다. 그렇게 보면 이 작품은 단순한 연애 거부 스토리가 아니라 자신을 통제하려는 시스템의 안전망을 걷어차고 고독한 자유를 선택한 한 여자의 짜릿하고도 시크한 반항극이자 자아 찾기 드라마가 아닐까.]]></description><image><url>https://image.aladin.co.kr/product/898/94/cover150/8954613977_1.jpg</url><link>https://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temId=8989480</link></image></item><item><author>안지</author><category>마이리뷰</category><title>보지 말아야 할 것을 본 대가에 대하여 - [긴키 지방의 어느 장소에 대하여]</title><link>https://blog.aladin.co.kr/757135169/17383889</link><pubDate>Fri, 10 Jul 2026 09:23: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s://blog.aladin.co.kr/757135169/17383889</guid><description><![CDATA[<table width="100%" height="30" border="0" align="center" cellpadding="0" cellspacing="0"><tr><td width="14"><img src="https://image.aladin.co.kr/img/blog/trans.gif" width="14"></td><td width="85"><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K472038888&TPaperId=17383889" target="_blank"><img src="https://image.aladin.co.kr/product/36160/30/coveroff/k472038888_2.jpg" width="75" border="0" class="box1"></a></td><td valign="top"><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K472038888&TPaperId=17383889" target="_blank" style="color:#386DA1;font-weight:bold">긴키 지방의 어느 장소에 대하여</a><br/>세스지 지음, 전선영 옮김 / 반타 / 2025년 04월<br/></td></tr></table><br/>이 작품은 인터넷 커뮤니티의 '괴담' 감성과 정통 오컬트 미스터리를 정교하게 결합한 페이크 다큐멘터리 형식의 소설이다. 이 작품은 잡지 편집자인 주인공이 긴키 지방의 특정 장소와 관련된 괴담, 실종 사건, 인터뷰 기록, 인터넷 글들을 수집하며 그 뒤에 숨겨진 거대한 '저주'의 정체에 다가가는 과정을 그린다. 단편적인 기사, 인터넷 게시글, 독자 제보 등이 파편적으로 제시되며, 독자가 직접 단서들을 조합해 거대한 진실을 유추하도록 만든다. 그 과정에서 실제 존재하는 듯한 인터넷 은어, 잡지 투고 양식, 현실적인 구어체를 사용하여 "이게 정말 허구일까?" 하는 기괴한 몰입감을 선사한다. 점프 스케어(깜짝 놀라게 하는 연출) 없이, 텍스트와 분위기만으로 서서히 목을 조르는 듯한 심리적 공포를 유발한다. 독자가 글을 읽는 행위 자체가 저주에 가담하는 듯한 메타적 연출이 압권이며 단순한 귀신 이야기를 넘어, 각각의 괴담이 긴키 지방의 '어느 장소'라는 하나의 구심점으로 수렴하는 구조가 매우 치밀하다. 오컬트 마니아라면 환호할 만한 민속학적 요소도 잘 녹아있다. 아쉬운 점이라면 다소 허무할 수 있는 후반부라 할 수 있는데 파편화된 정보를 모으는 중반부까지의 긴장감은 압도적이지만, 진상이 서서히 드러나고 결말에 이르는 과정에서 전통적인 호러의 클리셰를 따르다 보니 초반의 신선함에 비해 김이 빠지는 느낌이 있다. 또 모든 의문을 명확하게 설명해 주지 않고 독자의 상상력에 맡기는 열린 부분이 많아, 깔끔하고 명확한 인과관계를 원하는 독자에게는 찝찝함을 남길 수도 있겠다. 여튼 요약하자면 인터넷 괴담 세대의 감성을 자극하는 영리하고 기괴한 아날로그 호러물&nbsp;&lt;긴키 지방의 어느 장소에 대한 이야기&gt;는 2000년대 초반의 특유의 날것 그대로인 인터넷 괴담 분위기 감성을 현대적인 세련미로 재포장한 뛰어난 장르 소설이라 하겠다. 책을 덮고 난 뒤에도 "진짜 그 장소가 어디지?"라며 검색창을 켜게 만드는 기분 나쁜 흡인력을 가지고 있다. 비가 오는 날이나 조용한 밤, 불을 끄고 스산한 분위기 속에서 읽어 보길 추천한다.&nbsp;&nbsp;<br>PS.&nbsp;내가 중반 이전까지 가졌던 도대체 어디서 무서워 해야 하는 거야...? 란 의문에 대해 조금 더 생각해 보쟈ㅋ 사실 이 소설을 ‘안 무섭다’고 느끼는 건 지극히 정상적인 반응같다. 이 작품은 귀신이 갑자기 튀어나와서 비명을 지르게 만드는 점프 스케어형 공포가 전혀 아니기 때문이다. 피가 낭자하거나 시각적으로 잔인한 장면도 거의 없다. 말초적 자극 대신 은근하게 압박하는 공포를 주는 방식을 선택하며, 초반의 덤덤함이 중반 이후 복선이 하나로 연결되는 과정에서 뇌가 상황을 인지하며 소름으로 바뀐다. 특히 단순한 방관자에 머물던 독자가 "글을 읽고 공유하는 행위 자체가 저주를 넓히는 것"이라는 메타 픽션적 장치를 마주하는 순간 현실과 픽션의 경계가 무너지며 공포가 극대화된다. 요약하자면 이 책은 "왁! 무섭지!" 하고 놀래키는 책이 아니라, 독자의 머릿속에 기분 나쁜 씨앗을 심어두고 독자 스스로 상상하며 셀프 공포를 느끼게 만드는 방식이다. 다 읽었는데도 전혀 안 무서웠다면, 공포 내성이 아주 높거나 이런 은근한 압박 면역이 강한 걸지도. 사실 홍보 멘트에서 호들갑 떠는 것 만큼 무섭진 않았다.....ㅋ]]></description><image><url>https://image.aladin.co.kr/product/36160/30/cover150/k472038888_2.jpg</url><link>https://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temId=361603044</link></image></item><item><author>안지</author><category>마이리뷰</category><title>낭만의 시대에 불시착한 어느 기묘한 삼각관계 - [순례자 매 - 어느 사랑 이야기]</title><link>https://blog.aladin.co.kr/757135169/17381151</link><pubDate>Wed, 08 Jul 2026 20:47: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s://blog.aladin.co.kr/757135169/17381151</guid><description><![CDATA[<table width="100%" height="30" border="0" align="center" cellpadding="0" cellspacing="0"><tr><td width="14"><img src="https://image.aladin.co.kr/img/blog/trans.gif" width="14"></td><td width="85"><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8937429470&TPaperId=17381151" target="_blank"><img src="https://image.aladin.co.kr/product/17758/46/coveroff/8937429470_1.jpg" width="75" border="0" class="box1"></a></td><td valign="top"><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8937429470&TPaperId=17381151" target="_blank" style="color:#386DA1;font-weight:bold">순례자 매 - 어느 사랑 이야기</a><br/>글렌웨이 웨스콧 지음, 정지현 옮김 / 민음사 / 2018년 12월<br/></td></tr></table><br/>글렌웨이 웨스콧의 소설 &lt;순례자 매&gt;는 1920년대 중반 프랑스 파리 근교의 정적이고 아름다운 시골 마을을 배경으로, 단 하루 동안 벌어지는 인물들의 팽팽한 심리전을 그린 숨은 걸작이다. 미국인 작가인 주인공 알윈은 친구의 저택에 머물던 중 예기치 못한 손님인 아일랜드 출신의 부유한 귀족 컬런 부부를 맞이하게 되는데, 이들의 방문은 부인이 손목에 얹고 나타난 스페인산 암매 '루시'로 인해 시작부터 기묘한 긴장감을 자아낸다. 소설은 이 매를 매개로 하여 인간 관계의 가장 깊은 바닥에 자리한 소유욕과 지배욕, 그리고 자유에 대한 갈망을 날카롭게 해부한다. 컬런 부인은 매를 지독하게 사랑하고 아끼는 것처럼 보이지만, 사실 그녀의 사랑은 매의 야생성을 거세하고 가죽 끈으로 묶어 자신의 통제 하에 두려는 이기적인 집착에 가깝다. 반면 남편인 컬런 씨는 아내의 관심과 애정을 독차지한 이 동물에게 깊은 혐오감과 질투를 느끼며, 동시에 매의 발목에 묶인 끈을 보며 아내에게 종속되어 자유를 잃어버린 자신의 처지를 투영하고 자괴감에 빠진다. 자유로운 독신 생활을 지향하는 관찰자 알윈은 오후부터 저녁까지 이어지는 짧은 시간 동안 이들 부부가 나누는 사소한 눈빛, 신경질적인 대화, 그리고 매를 둘러싸고 벌이는 양보 없는 심리적 대치 상태를 제3자의 눈으로 냉철하게 포착해 낸다. 겉으로는 우아하고 평온해 보이는 상류층 부부의 일상이지만, 그 밑바닥에서는 서로를 완전히 소유하고 길들이기 위해 보이지 않는 칼날을 겨누는 치열한 전쟁이 벌어지고 있는 것. 이 미소 지으며 생살 할퀴는 심리 묘사 기존쎄고, 매의 날카로운 발톱과 부리, 굶주린 눈빛을 감각적이고 밀도 높게 묘사함으로써 인간이 가진 맹목적인 구속의 본능을 시각적으로 강렬하게 구현하는 솜씨 아득하다..아.... 여튼 사랑이라는 낭만적인 이름 뒤에 숨겨진 잔인한 지배욕을 폭로하는 동시에, 타인에게 얽매인 삶 속에서 자유를 갈망하면서도 정작 온전한 자유가 주어졌을 때는 구속이 주는 안정감으로 되돌아오고 마는 인간의 모순적인 심리를 깊이 있게 탐구하는 이 숨 막히는 관찰기는, 읽는 이에게 사랑과 집착의 경계가 어디인지, 그리고 우리는 과연 누군가를 온전히 소유할 수 있는지에 대한 서늘하고도 묵직한 질문을 던지며 오래도록 지워지지 않는 강렬한 여운을 남긴다. 약 100 페이지 남짓으로 분량이 짧은데 그 안에서 이것도 저것도 그것도 요것도 다 하는 기막힌 필력이 가히 압권. 매..매 라니 우리집 베란다에 매형이 왔어요의 그 매를 데리고서 아니 이런 얘기를?!? 여튼 진짜 정말 여러가지로 굉장한 책이다.&nbsp;]]></description><image><url>https://image.aladin.co.kr/product/17758/46/cover150/8937429470_1.jpg</url><link>https://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temId=177584671</link></image></item><item><author>안지</author><category>마이리뷰</category><title>연약한 것들이 서로를 구원하는 방식 - [사랑할 때와 죽을 때]</title><link>https://blog.aladin.co.kr/757135169/17379969</link><pubDate>Wed, 08 Jul 2026 08:03: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s://blog.aladin.co.kr/757135169/17379969</guid><description><![CDATA[<table width="100%" height="30" border="0" align="center" cellpadding="0" cellspacing="0"><tr><td width="14"><img src="https://image.aladin.co.kr/img/blog/trans.gif" width="14"></td><td width="85"><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893746246X&TPaperId=17379969" target="_blank"><img src="https://image.aladin.co.kr/product/638/34/coveroff/893746246x_3.jpg" width="75" border="0" class="box1"></a></td><td valign="top"><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893746246X&TPaperId=17379969" target="_blank" style="color:#386DA1;font-weight:bold">사랑할 때와 죽을 때</a><br/>에리히 마리아 레마르크 지음, 장희창 옮김 / 민음사 / 2010년 04월<br/></td></tr></table><br/>지옥 같은 제2차 세계 대전 말기 러시아 전선, 독일군 병사 에른스트 그레버는 하루하루가 말년 병장보다 더 끔찍한 말기 군 생활을 버티고 있었다. 그런데 이게 웬 떡이야.. 기적적으로 3주간의 특별 휴가가 나온거다. "나 돌아간다!" 외치며 룰루랄라 고향에 도착했는데, 띠로리.. 고향 집은 연합군의 폭격으로 이미 흔적도 없이 사라진 상태였다. 부모님의 생사조차 알 길 없는 황망한 상황에서, 도시 전체는 나치즘의 광기와 "쟤가 간첩이냐, 얘가 밀고자냐"를 시전하는 불신으로 가득 찬 또 다른 지옥이 되어 있었던 것.&nbsp;"전쟁터나 고향이나 ㅅㅂ..." 멘붕에 빠진 그레버 앞에 구세주처럼 옛 동창 엘리자베스가 나타난다. 폐허 속에서 만난 두 사람은 급속도로 사랑에 빠지며 "어차피 내일 폭격 맞아 죽을지도 모르는데, 오늘 할 일을 하쟈"라며 초고속 결혼 도장을 찍어버린다. 식량 배급 줄에 서서 연애하고, 방공호에서 폭탄 터지는 소리를 배경 음악 삼아 로맨스를 찍는 이들의 모습은, 전쟁이라는 거대한 억까 시스템에 맞서 "우리는 부품이 아니라 인간이다!"라고 온몸으로 우기는 아름답고도 슬픈 저항 같다.&nbsp;하지만 행복은 언제나 순식간인 법.. 달콤했던 3주간의 휴가가 끝나고 그레버는 다시 지옥 같은 러시아 전선으로 복귀하라는 영장을 받게 된다. 고향에서 사랑을 배우고 인간성을 가득 리필해 간 그레버는 이제 전과는 완전히 다른 눈으로 전장을 바라보게 된다. 전쟁의 광기 속에서 "인간으로서 최소한의 도덕적 결단이란 무엇인가"를 치열하게 고민하던 그에게, 곧 군인으로서의 의무와 개인의 양심 사이에서 목숨을 걸어야 하는 절대적인 선택의 순간이 찾아오는데.... 과연 사랑을 알고 돌아온 병사는 이 미쳐버린 전쟁터에서 끝까지 인간다움을 지켜낼 수 있을까?&nbsp;&lt;사랑할 때와 죽을 때&gt;는 전쟁의 참상을 고발하는 데서 그치지 않고, '인간이 가장 인간답기 힘들 때 인간을 구원하는 것은 결국 무엇인가'를 묻는 작품 같다. 레마르크의 담담하면서도 날카로운 필체는 독자에게 묵직한 반전(反戰) 메시지와 함께, 지금 우리가 누리는 평범한 일상과 사랑이 얼마나 기적 같은 것인지를 다시금 깨닫게 한다.<br>PS. 인간이 가장 인간답기 힘들 때 인간을 구원하는 것은 결국 무엇일까? 조금 더 생각해 보쟈ㅋ 인간성이 말살된 극한의 상황에서 우리를 구원하는 것은 거대한 사상이 아니라 평범하고 '연약한 것들의 연결'이다. 첫째, 내가 기계의 부품이나 숫자로 전락할 때 나를 존엄한 존재로 바라봐 주는 '타인의 눈동자'가 있다면 인간은 버텨낼 힘을 얻는다. 둘째, 누군가를 지키고 돌아가야 한다는 '사랑과 온기'는 본능만 남은 동물로 추락하지 않도록 붙잡아주며 내일을 살아갈 강력한 동력이 되고. 셋째, 어떤 상황에서도 자신의 태도를 선택할 수 있는 자유를 바탕으로 한 '계산 없는 선의'는 시스템의 폭력에 굴복하지 않았다는 증거가 된다. 결국 구원이란 거대한 힘이 아니라, 그럼에도 불구하고 인간이기를 포기하지 않겠다는 아주 작고 개인적인 선택들의 연속이 아닐까. 곁에 있는 사람의 손을 잡고 내일을 꿈꾸는 연약한 마음들이 모여 끝내 인간을 구원해 내는 것 말이다.&nbsp;]]></description><image><url>https://image.aladin.co.kr/product/638/34/cover150/893746246x_3.jpg</url><link>https://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temId=6383454</link></image></item><item><author>안지</author><category>마이리뷰</category><title>지켜주든가 죽여주든가 하나만 해라 - [나를 지켜줘 아니면 나를 죽여줘]</title><link>https://blog.aladin.co.kr/757135169/17371196</link><pubDate>Fri, 03 Jul 2026 08:45: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s://blog.aladin.co.kr/757135169/17371196</guid><description><![CDATA[<table width="100%" height="30" border="0" align="center" cellpadding="0" cellspacing="0"><tr><td width="14"><img src="https://image.aladin.co.kr/img/blog/trans.gif" width="14"></td><td width="85"><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E482637810&TPaperId=17371196" target="_blank"><img src="https://image.aladin.co.kr/product/38384/22/coveroff/e482637810_1.jpg" width="75" border="0" class="box1"></a></td><td valign="top"><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E482637810&TPaperId=17371196" target="_blank" style="color:#386DA1;font-weight:bold">나를 지켜줘 아니면 나를 죽여줘</a><br/>에릭 포토리노 지음, 하진화 옮김 / 레모 / 2026년 01월<br/></td></tr></table><br/>에릭 포토리노의 &lt;나를 지켜줘 아니면 나를 죽여줘&gt;는 평생 규칙과 이성, 실용주의만을 신봉하며 살아온 외과의사 폴 가셰가 예술이라는 강렬한 세계를 만나 겪는 영혼의 해체와 재구성을 치밀하게 추적한 작품이다. 사람의 신체를 메스로 정밀하게 통제하며 살아온 폴은 어느 날 피렌체 여행 중 세계적인 행위예술가 마리나 아브라모비치의 전시를 마주하게 된다. 불과 얼음, 고독과 침묵, 그리고 관객의 폭력 앞에 자신의 맨몸을 그대로 노출하는 그녀의 극단적인 퍼포먼스는 폴의 견고했던 내면에 거대한 균열을 일으킨다. 이 충격은 곧이어 전 세계를 덮친 코로나19 팬데믹의 고립 및 불안과 맞물리며 그를 완전히 다른 인간으로 변화시킨다. 처음에는 ‘이성적인 의사’와 ‘감성적인 예술가’라는 흔한 이분법적 대립 구도가 너무 납작하지 않나 싶었지만, 이 소설은 두 영역이 지닌 뻔한 클리셰의 함정을 영리하게 피해 간다. 작가는 의사와 예술가를 단순히 반대 극점에 두지 않고, 두 직업이 가진 ‘신체를 극단적으로 다룬다’는 본질적인 공통점에 주목한다. 의사인 폴은 타인의 살점을 째고 피를 보며 생명의 본질을 통제하는 인물이며, 아브라모비치 역시 자신의 살을 베고 고통을 견디며 인간의 한계를 시험하는 예술가다. 즉, 폴이 그녀에게 매료된 것은 완전히 이질적인 존재에 대한 호기심이 아니라, 자신은 타인의 몸을 철저히 통제하는 반면 그녀는 왜 자신의 몸을 완벽하게 무방비 상태로 내맡기는가에 대한 기묘한 동질감과 부러움 때문이다. 이렇게 신체라는 날것의 매개체를 통해 두 세계의 닮은꼴을 파고듦으로써 평면적일 수 있는 구도에 깊은 입체감을 부여한다. 이러한 인물 간의 대립과 공조는 코로나19 팬데믹이라는 시대적 배경을 만나 더욱 정교해진다. 만약 평화로운 일상이었다면 폴은 예술을 한낱 기이한 구경거리로 치부했을지 모른다. 하지만 가장 이성적이고 통제되어야 할 공간인 병원이 바이러스라는 비이성적인 존재 앞에 무력하게 무너지는 것을 목격하면서 폴의 세계는 안드로메다로 날아가버리고, 통제 불능의 재난 속에서 역설적으로 스스로의 통제권을 완전히 내려놓았던 아브라모비치의 예술적 태도는 고독과 공포를 버텨낼 철학적 무기로 재탄생한다. 작가는 예술을 단순한 미적 감상의 대상이 아니라 한 인간의 감각과 윤리, 나아가 삶 전체를 뒤흔드는 실존적 사건으로 묘사하며, 예술이 낸 균열을 통해 고립된 시대를 살아가는 인간들이 어떻게 서로 연결되고 연대할 수 있는지 묵직하게 질문한다. 소설 속 폴의 변화 역시 결코 낭만적이거나 아름답게 포장되지 않는다. 예술을 조우한 그는 세련된 자아 성찰에 이르는 것이 아니라, 자신이 쌓아 올린 세계가 무너지며 극심한 불안과 고독을 느끼는 자아 붕괴의 고통을 겪는데 작가는 이를 미술 평론 같은 현학적인 해설 대신 인물의 심리와 신체적 반응을 밀도 높은 문체로 증언하듯 현실적이고 생생하게 그리고 있다. 합리와 효율의 감옥에 갇힌 현대인들에게 스스로를 온전히 내던지는 내맡김의 가치를 일깨우고 무너진 자아의 틈새로 사랑과 연대의 빛을 채워 넣는 강력하고도 매혹적인 문학적 경험을 선사하는 멋진 작품이다.]]></description><image><url>https://image.aladin.co.kr/product/38384/22/cover150/e482637810_1.jpg</url><link>https://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temId=383842282</link></image></item><item><author>안지</author><category>마이리뷰</category><title>권태의 늪 - [육체의 악마]</title><link>https://blog.aladin.co.kr/757135169/17369294</link><pubDate>Thu, 02 Jul 2026 07:28: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s://blog.aladin.co.kr/757135169/17369294</guid><description><![CDATA[<table width="100%" height="30" border="0" align="center" cellpadding="0" cellspacing="0"><tr><td width="14"><img src="https://image.aladin.co.kr/img/blog/trans.gif" width="14"></td><td width="85"><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8937463210&TPaperId=17369294" target="_blank"><img src="https://image.aladin.co.kr/product/4118/77/coveroff/8937463210_1.jpg" width="75" border="0" class="box1"></a></td><td valign="top"><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8937463210&TPaperId=17369294" target="_blank" style="color:#386DA1;font-weight:bold">육체의 악마</a><br/>레이몽 라디게 지음, 원윤수 옮김 / 민음사 / 2014년 05월<br/></td></tr></table><br/>레이몽 라디게의 소설 &lt;육체의 악마&gt;는 전쟁이라는 비극의 이면에서 피어난 미성숙한 청춘의 파멸적 사랑과 지독한 허무주의를 해부한 소설이다. 16세에 집필하여 20세에 요절한 이 발칙한 작가는 제1차 세계대전이라는 인류사적 대재앙을 그저 꼰대들의 감시가 사라진 개꿀 같은 '방학'으로 규정하며 포문을 연다. 사회적 규율이 셧다운 되자 소년 프랑수아에게 찾아온 것은 애국심이 아니라 목적지 없는 지독한 권태였고, 그는 이 무료함을 달래기 위해 전선으로 남편을 보낸 연상의 유부녀 마르트를 간택해 금지된 불장난을 시작한다. 라디게는 이 지저분한 설정을 순애보로 포장하지 않는다. 도리어 사랑이라는 고결한 가면 뒤에 숨은 인간의 치졸한 이기심과 찌질함을 현미경으로 관찰하듯 집요하게 까발린다. 프랑수아는 마르트와의 연애가 권태의 늪에 빠질 때마다 일부러 질투를 유발하고 의심을 투척하며 관계를 짓밟는다. 이는 사랑의 확인이라기보다 지루함을 이겨내기 위해 타인의 고통을 이용하는 미성숙한 자아의 비틀린 발악이다. 결국 제목이 가리키는 육체의 악마란 기성세대가 구축한 지루한 세상에 편입되기를 거부하며, 통제 불가능한 육체적 충동을 통해 권태라는 거대한 늪에서 빠져나가려 했던 청춘의 파괴적인 반항을 의미한다. 이 소설이 백 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세련되게 읽히는 비결은 고딩이 썼다고는 믿기지 않는 냉소적이고 시크한 필력에 있는 듯하다. 감정에 취해 울부짖는 대신, 마치 남의 연애 진흙탕 싸움을 구경하는 냉정한 관찰자처럼 차분하고 건조하게 팩트만을 나열한다. 이 고단수적인 절제미 덕분에 읽는 동안엔 불륜과 책임 회피라는 막되먹은 서사 속에서도 기묘한 문학적 카타르시스를 느끼게 된다. &lt;육체의 악마&gt;는 전쟁중이라는 완벽한 알리바이 속에서, 인간이 권태라는 괴물을 물리치기 위해 얼마나 잔인해질 수 있는지, 그리고 사랑이라는 환상 아래 감추어진 독점욕과 허무의 본질이 무엇인지를 투명하게 증명해 낸다.<br>]]></description><image><url>https://image.aladin.co.kr/product/4118/77/cover150/8937463210_1.jpg</url><link>https://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temId=41187711</link></image></item><item><author>안지</author><category>마이리뷰</category><title>방구석 초인의 오만한 셀프 구원기 - [죄와 벌 2]</title><link>https://blog.aladin.co.kr/757135169/17364340</link><pubDate>Tue, 30 Jun 2026 13:03: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s://blog.aladin.co.kr/757135169/17364340</guid><description><![CDATA[<table width="100%" height="30" border="0" align="center" cellpadding="0" cellspacing="0"><tr><td width="14"><img src="https://image.aladin.co.kr/img/blog/trans.gif" width="14"></td><td width="85"><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8937462850&TPaperId=17364340" target="_blank"><img src="https://image.aladin.co.kr/product/1621/20/coveroff/8937462850_3.jpg" width="75" border="0" class="box1"></a></td><td valign="top"><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8937462850&TPaperId=17364340" target="_blank" style="color:#386DA1;font-weight:bold">죄와 벌 2</a><br/>표도르 도스토예프스키 지음, 김연경 옮김 / 민음사 / 2012년 03월<br/></td></tr></table><br/>표도르 도스토옙스키의 &lt;죄와 벌&gt;은 강렬한 심리적 서스펜스를 선사하는 고전이다. 소설은 주인공 라스콜리니콜프가 자신만의 이성적 논리에 취해 극단적인 선택을 내린 후, 그 대가로 찾아오는 처절한 심리적 붕괴와 내면의 지옥을 현미경으로 들여다보듯 추적한다. 작가는 범죄의 물리적 과정보다, 인간이 스스로 판 함정에 빠져 어떻게 영혼이 파멸해 가는가에 초점을 맞춘다. 이 작품의 진정한 가치는 인물의 모순된 내면을 가차 없이 발가벗기는 데 있다. 주인공은 거창한 이념과 초인 사상을 부르짖으며 대단한 존재가 되고 싶어 하지만, 그는 그냥 말하자면 엄마 여동생 등에 빨대 꽂고 살다가 돈 떨어지니 돈 있고 약한 여자 노인 골라 죽인 살인자 그러니까 그냥 지질한 범죄자인데, 거기에 더해 자기 앞가림도 못하는 주제에 밖에선 인심 좋은 척 퍼주고 다니는 푼수 로쟈..힘쎈 남자 앞에선 혼미해지는 선택적 예민러 로지온..심신미약한 여자를 기가막히게 골라 감정 노예로 부리려는 것까지 비대한 자아만 가진 못난 남자의 현신 그 자체로 이런 라스콜리니콜프의 위선은 160여 년이 지난 지금의 관점으로 보아도 소름 끼칠 정도로 현실적이며 날카롭다. 또한 작품 속에 등장하는 수사관과의 숨 막히는 심리전은 단순한 범죄 추리극을 넘어서는데, 증거가 아닌 인간의 죄책감과 심리적 균열을 이용해 목을 조여오는 압박감은 읽는 이마저 주인공과 함께 땀을 쥐게 만든다. 여기에 주인공의 일그러진 자아를 투영하고 자극하는 개성 강한 주변 인물들이 얽히고 설키며 인간성의 다양한 스펙트럼을 보여주는 이 소설, "범죄자에게 서사를 부여하지 말라"라는 띵언의 조상격 사례가 아닌가 생각했었다. 그러나 읽을수록 본질은 정반대임을 느낀다. 작가는 아무리 그럴듯한 논리와 이념으로 포장할지라도, 인간을 수단으로 삼는 오만은 반드시 인간성 자체의 파멸을 부른다는 엄중한 경고를 던진다. 웅장한 사상으로 시작해 지질한 심리적 바닥까지 추락하는 과정을 통해, 도스토옙스키는 범죄의 매혹이 아닌 범죄자의 처절한 민낯을 고발하는 공공재판을 수행한다. 결국 &lt;죄와 벌&gt;은 인간이 지닌 지성의 오만이 얼마나 위험할 수 있는지, 그리고 인간을 진정으로 구원하고 치유하는 것은 냉철한 이성이 아니라 고통을 직시하는 용기와 진정한 연대라는 점을 묵직하게 역설하고 있다.<br>PS. 과연 사람을 죽이고 멋대로 종교에 귀의해 신한테 용서 받는게 진정 용서인가....에 대해 생각해 보쟈ㅋ 이것은 &lt;죄와 벌&gt;을 읽은 수많은 독자뿐만 아니라, 인류가 역사 내내 종교와 사법 체계, 그리고 도덕을 향해 던져온 가장 본질적이고 치명적인 의문일 것이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피해자가 배제된 채 "사람을 죽이고 신(종교)에게만 가서 죄 사함을 받는 것"은 진정한 용서가 아니라, 추악한 도피이자 또 다른 가해에 불과하다. 영화 &lt;밀양&gt;에서 아이를 유괴해 살해한 범인은 교도소에서 기독교를 믿고 '하나님에게 이미 죄를 용서받아 마음의 평화를 얻었다'며 유가족 앞에서 미소를 지어 보인다. 정작 용서해 준 적 없는 피해자는 지옥 속에 사는데, 가해자 혼자 신의 이름을 빌려 면죄부를 발행하고 발 뻗고 자는 모습은 종교가 저지를 수 있는 가장 기만적인 형태의 폭력이다. 재미있는 점은, 도스토옙스키 본인 역시 &lt;죄와 벌&gt;의 결말(로쟈가 성경을 마주하는 장면)에 스스로 백 퍼센트 만족하지 못했을 것이라는 점이다. 그래서 그는 만년에 쓴 대작 &lt;카라마조프 가의 형제들&gt;에서 이 질문을 둘째 아들 이반 카라마조프의 절규를 통해 다시 정면으로 다룬다. 도스토옙스키조차도 신이 인간의 모든 죄를 퉁쳐서 용서해 주는 시스템에 대한 도덕적 딜레마를 뼈저리게 느끼고 있었던 것 아닐까ㅋ 여튼 가해자가 신 뒤에 숨어 "나는 용서받았다"고 정신 승리하는 것은 종교를 이용한 뻔뻔한 위선이다. 진정한 용서와 구원은, 신에게 기도 몇 번 올리는 것으로 획득되는 영수증이 아니다. 피해자의 고통을 감히 헤아리며, 자신이 부순 인간성을 회복하기 위해 평생토록 현실의 죗값을 치르고 고뇌하는 처절한 과정만이 (비록 완벽할 순 없을지라도) 용서라는 문턱에 겨우 다가설 수 있는 유일한 길일 것이다.<br style="color: rgb(51, 51, 51); font-family: ">]]></description><image><url>https://image.aladin.co.kr/product/1621/20/cover150/8937462850_3.jpg</url><link>https://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temId=16212030</link></image></item><item><author>안지</author><category>마이리뷰</category><title>매운맛 영혼 갱생기 - [인생의 베일]</title><link>https://blog.aladin.co.kr/757135169/17355982</link><pubDate>Fri, 26 Jun 2026 08:54: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s://blog.aladin.co.kr/757135169/17355982</guid><description><![CDATA[<table width="100%" height="30" border="0" align="center" cellpadding="0" cellspacing="0"><tr><td width="14"><img src="https://image.aladin.co.kr/img/blog/trans.gif" width="14"></td><td width="85"><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8937461374&TPaperId=17355982" target="_blank"><img src="https://image.aladin.co.kr/product/88/15/coveroff/8937461374_3.jpg" width="75" border="0" class="box1"></a></td><td valign="top"><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8937461374&TPaperId=17355982" target="_blank" style="color:#386DA1;font-weight:bold">인생의 베일</a><br/>서머셋 모옴 지음, 황소연 옮김 / 민음사 / 2007년 02월<br/></td></tr></table><br/>홍콩 사교계를 은밀하게 그러나 화려하게 흔든 불륜극, 그리고 콜레라가 창궐하는 중국 오지로의 느닷없는 유배. 서머싯 몸의 &lt;인생의 베일&gt;은 한마디로 철부지 속물 여주인공의 매운맛 영혼 갱생기이자, 지독한 환멸 끝에 찾아오는 인간 성장 드라마이다. 소설은 시작부터 흡인력이 대단하다. 예쁘장한 외모와 사교계의 허영심이 전부였던 키티는 사랑 없는 결혼을 했다가, 매력적인 유부남 타운센드와 대책 없는 불륜에 빠진다. 하지만 세균학자인 남편 월터에게 이 현장을 딱 걸리고, 여기서 남편이 내린 처벌이 압권. 이혼 소송 대신, 분초 단위로 사람이 죽어 나가는 지옥 같은 콜레라 창궐지 '메이탄푸'로 함께 가자고 협박한 것이다. 배신당한 남편의 살벌한 동반 자살 특공대 작전에 강제로 합류하게 된 키티는 그렇게 인생 최대의 위기를 맞이한다. 서머싯 몸은 이 메이탄푸라는 극한의 공간을 통해 인간이 덮고 있는 가식과 허영의 베일을 인정사정없이 찢어버린다. 키티가 그동안 목숨 걸었던 사교계의 평판, 외모, 물질 같은 것들이 죽음이 만연한 곳에서는 얼마나 부질없는 '채색된 베일'이었는지가 처절하게 증명된다. 재미있는 건 이 소설이 단순한 치정극에 머물지 않는다는 점이다. 키티는 그곳에서 매일같이 죽음을 마주하고, 조건 없이 헌신하는 프랑스 수녀들을 보며 서서히 내면의 변화를 겪는다. 비극적인 사건들이 폭풍처럼 몰아치는 와중에도 철부지였던 키티가 점차 과거의 실수를 자양분 삼아 주체적인 인간으로 우뚝 서는 과정은 이 소설을 바람 피우다 망테크 탄 유부녀의 연애 잔혹사에서 위대한 인간 독립 선언서로 격상시키는 백미라고 할 수 있다.<br>PS. 하지만 이 강렬한 소설에도 현대적 관점에서 뒷목 잡게 만드는 치명적인 '그 시절' 한계가 도사리고 있다. 바로 '백인 구원자' 콤플렉스와 지독한 오리엔탈리즘이다. 소설 속 1920년대 중국은 고유한 역사와 문화를 가진 공간이 아니다. 백인 주인공들의 갈등을 극대화하고 정신적 각성을 유도하기 위해 세팅된 불결하고 미개한 재난 스튜디오에 불과하다. 현지 중국인들은 주체적인 인물로 단 한 명도 조명받지 못한 채, 그저 떼로 몰려와 무기력하게 죽어 나가거나 백인들이 베푸는 자비와 치료만을 기다리는 수동적인 존재로 타자화된다. 여기서 숭고함의 끝판왕으로 묘사되는 프랑스 수녀원 에피소드는 서구 제국주의의 시혜적 시선을 아주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미개한 유색인종을 우월한 백인 종교인들이 구원한다는 식의 식민주의적 정당성이 밑바탕에 깔려 있는 것. 게다가 가장 얄미운 부분은 이 수많은 현지인의 비극과 고통이, 고작 영국 온실 속 화초였던 키티라는 백인 여성이 "아, 인생이란 이런 거구나!"라며 철들고 자아를 실현하기 위한 서사적 소모품이자 무대로 철저히 이용되었다는 점이다. 여튼 &lt;인생의 베일&gt;은 인간의 위선과 모순을 칼날처럼 해부하고 영혼의 도약 과정을 입체적으로 그려낸 페이지 터너임엔 틀림없다. 서머싯 몸 특유의 찰진 문장과 인간 본성에 대한 날카로운 팩트 폭격 역시 짜릿하다. 다만, 백인의 우월감이라는 또 다른 거대한 '제국주의의 베일'은 끝내 벗겨내지 못한 채 그 속에 갇혀버렸다는 한계 또한 명확히 인지하고 읽어야 할, 매혹적이면서도 씁쓸한 고전이다.]]></description><image><url>https://image.aladin.co.kr/product/88/15/cover150/8937461374_3.jpg</url><link>https://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temId=881562</link></image></item><item><author>안지</author><category>마이리뷰</category><title>사이다는 없음, 고구마와 아찔함만 가득 - [뉴욕 3부작]</title><link>https://blog.aladin.co.kr/757135169/17348527</link><pubDate>Mon, 22 Jun 2026 10:35: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s://blog.aladin.co.kr/757135169/17348527</guid><description><![CDATA[<table width="100%" height="30" border="0" align="center" cellpadding="0" cellspacing="0"><tr><td width="14"><img src="https://image.aladin.co.kr/img/blog/trans.gif" width="14"></td><td width="85"><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8932904715&TPaperId=17348527" target="_blank"><img src="https://image.aladin.co.kr/product/40/77/coveroff/8932904715_1.gif" width="75" border="0" class="box1"></a></td><td valign="top"><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8932904715&TPaperId=17348527" target="_blank" style="color:#386DA1;font-weight:bold">뉴욕 3부작</a><br/>폴 오스터 지음, 황보석 옮김 / 열린책들 / 2003년 03월<br/></td></tr></table><br/>폴 오스터의 &lt;뉴욕 3부작&gt;은 [유령 소설], [유령], [잠겨 있는 방] 세 편의 독립적이면서도 유기적으로 연결된 중편을 통해 현대인의 실존적 위기를 다룬 독보적인 분위기의 현대 고전이다. 탐정 소설의 형식을 빌려 고독한 대도시 뉴욕을 배경으로 펼쳐지는 이 작품은, 사건의 명쾌한 해결 대신 ‘인간의 정체성 상실’과 ‘자아의 붕괴’라는 심오한 철학적 질문을 던진다. 이 소설의 가장 큰 재미는 장르의 법칙을 대놓고 배신하는 밀당에 있다. 보통의 추리 소설이라면 명탐정이 등장해 단서를 모으고 "범인은 바로 너!"를 외쳐야 하겠지만, 이 작품 속 탐정들은 어딘가 나사가 하나씩 빠져 있다. 타인의 뒤를 쫓고 감시하는 일에 지나치게 몰두한 나머지, 어느새 자신이 쫓던 대상을 닮아가거나 도리어 내가 감시당하는 기묘한 늪에 빠진다. 추적을 하면 할수록 사건이 해결되는 게 아니라, 탐정의 멘탈과 정체성이 먼저 산산조각 나버리는 주객전도의 코미디 같은 비극이 펼쳐진다. 작가는 여기에 ‘말장난과 기호’라는 지적인 퍼즐을 버무려 놓았다. 주인공들은 탐정 노트에 집요할 정도로 글을 쓰고 텍스트를 분석하지만, 그들이 적어 내려가는 문장들은 진실을 밝히기는커녕 상황을 더 꼬이게 만드는 부메랑이 되어 돌아온다. 내가 쓰는 글이 진짜 나인지, 아니면 글 속에 갇힌 가짜 나인지 헷갈리게 만드는 오스터 특유의 밀도 높은 두뇌 싸움은 독자에게 미로 속에 갇힌 듯한 아찔한 쾌감을 선사한다. 결론적으로 &lt;뉴욕 3부작&gt;은 범인을 잡는 서사의 쾌감을 넘어, 현대 사회를 살아가는 인간의 근원적인 고독과 분열을 탐구한 지적인 텍스트이다. 미스터리를 해결하는 주체가 아니라 미스터리 그 자체가 되어버린 인간의 삶을 비추며, 스스로에게 ‘나는 누구인가’라는 서늘한 질문을 남기는 작품.&nbsp;다만 대도시의 차가운 고독감과 미로 같은 텍스트의 유희를 좋아하는 사람들에게는 인생작이 될 수 있지만, 명확한 결말과 사이다 같은 사건 해결을 원하는 이에게는 불친절하고 모호하게 느껴질 수도 있겠다.&nbsp;<br>PS. '나는 누구인가'라는 질문에 대해 조금 더 생각해 보도록 하자ㅋ 수많은 '자아 찾기' 소설들이 방황 끝에 "이게 바로 나야!" 하고 진정한 자아를 발견하며 카타르시스를 준다면, &lt;뉴욕 3부작&gt;은 정반대의 궤적을 그린다. 멀쩡하게 잘 살고 있던 인물이 뉴욕이라는 거대한 미로와 미스터리 속으로 걸어 들어가 자신의 자아를 양파 껍질 벗기듯 하나씩 잃어버리는 '자아 상실의 기록'에 가깝다고나 할까.&nbsp;폴 오스터는 이 소설을 통해 "인간의 자아라는 것이 과연 고정되어 있는 단단한 것인가?"라는 의문을 던진다. 소설 속 인물들은 타인을 너무 깊게 들여다보거나, 텍스트 속으로 너무 깊이 빠져들다가 자기 자신이라는 존재의 끈을 놓쳐버린다.&nbsp;그래서 이 책을 읽고 나면 짜릿한 해방감이 아니라, "내가 믿고 있는 '나'라는 존재도 어쩌면 대도시의 소음과 타인의 시선 속에서 언제든 쉽게 지워질 수 있는 유약한 것이 아닐까?" 하는 서늘한 인간적 고독을 느끼게 된다. 그러니까 이 책은 완벽한 '자아 분실 미스터리'인 셈이다. 사이다 없음, 고구마와 아찔함만 가득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이 책을 연달에 세 번 빠져서 읽었다.&nbsp;폴 오스터가 구축한 특유의 몽환적이고 지적인 분위기를 느껴보고 싶다면 적극적인 추라이 추천~]]></description><image><url>https://image.aladin.co.kr/product/40/77/cover150/8932904715_1.gif</url><link>https://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temId=407760</link></image></item><item><author>안지</author><category>마이리뷰</category><title>미친 소설 - [우아하고 감상적인 일본 야구 (무선)]</title><link>https://blog.aladin.co.kr/757135169/17347270</link><pubDate>Sun, 21 Jun 2026 19:02: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s://blog.aladin.co.kr/757135169/17347270</guid><description><![CDATA[<table width="100%" height="30" border="0" align="center" cellpadding="0" cellspacing="0"><tr><td width="14"><img src="https://image.aladin.co.kr/img/blog/trans.gif" width="14"></td><td width="85"><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8901220350&TPaperId=17347270" target="_blank"><img src="https://image.aladin.co.kr/product/12373/99/coveroff/8901220350_2.jpg" width="75" border="0" class="box1"></a></td><td valign="top"><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8901220350&TPaperId=17347270" target="_blank" style="color:#386DA1;font-weight:bold">우아하고 감상적인 일본 야구 (무선)</a><br/>다카하시 겐이치로 지음, 박혜성 옮김 / 웅진지식하우스 / 2017년 11월<br/></td></tr></table><br/>다카하시 겐이치로의 소설 &lt;우아하고 감상적인 일본 야구&gt;는 '야구'라는 단어가 사전 속 박제된 사어로만 존재하는 가상의 미래 혹은 평행세계를 배경으로 문학의 전통적 문법을 해체하는 포스트모더니즘의 기념비적 띵작이다ㅋ 현실의 대중적인 스포츠로서의 야구는 완전히 상실되었지만, 세상의 변두리에는 야구가 무엇인지도 모른 채 오직 남아있는 기록의 파편만을 쫓으며 자신들만의 기괴하고 독창적인 방식으로 야구를 재정의하고 맹신하는 괴짜들이 존재한다. 작가는 이 황당한 설정을 발판 삼아 선형적인 기승전결이나 일관된 주인공을 과감히 거부하고, 인과관계가 없는 독립적인 단편과 기묘한 에피소드를 콜라주처럼 직조해 낸다. 작품 속에는 프란츠 카프카가 사실은 열정적인 포수 지망생이었을 거라 믿으며 평생 야구 기록을 수집해 온 노인, 야구 선수가 되기 위해 하루에 야구 시 900편 쓰기와 포르노 비디오 100편 보기라는 황당하고 무의미한 고행을 견뎌내는 소년, 공이 지나치게 완벽하게 잘 보여서 도저히 배트를 휘두를 수 없다는 타자나 라이프니츠의 철학에 매료되어 슬럼프에 빠진 투수 등 스포츠의 영역을 벗어나 철학적 고뇌에 빠진 인물들이 나온다. 작가는 이처럼 야구라는 프레임을 빌려 근대 소설의 고루한 문법과 의미를 찾아내야 한다는 독자의 강박을 사정 없이 깨부순다. 말장난과 저속한 포르노그래피, 지적인 철학적 인용을 무차별적으로 뒤섞으며 현대 문학은 결국 기존 정보의 패러디이자 재구성에 불과하다는 냉소를 던진다. 그러나 형식의 난해함 속에서도 작품 전체를 감싸는 정서는 제목 그대로 지독하게 우아하고 감상적이다. 무언가 소중한 가치가 상실된 세계를 살아가는 이들의 쓸쓸함과 무모한 집착을 독특한 시적 언어로 아름답게 그려낸다. 그리고 독특한 유머 코드. 이 책의 백미다. 이 소설은 개연성과 결말의 카타르시스를 중시하는 정통 소설파 독자에게는 스트라이크 존을 한참 벗어난 불친절한 공 같겠지만,  플롯의 결말보다는 읽는 과정의 파격을 즐기는 이들에게는 문학의 한계를 시험하는 문제작으로 기억될 것이다.<br>PS.&nbsp;약 nn여년 전, 이미 읽은 책인데, 요즘 문득 생각나 다시 사 봤다. 사실 그 때는 첫 장을 펼치고 "이게 대체 무슨 소리냐..." 대충 모자이크로 훑고 덮었던 것 같다. 플롯도 없고, 맥락도 없이 불친절함을 넘어 일종의 문화적 충격에 가까웠던 책. 그렇지만 이해한다고 퉁쳤던 책. 그런데 세월이 흘러 수많은 파격과 다양한 콘텐츠에 익숙해진 지금, 그리고 인생의 여러 상실과 쓸쓸함을 통과해 온 지금 다시 읽으니 감회가 완전히 새롭다ㅋ 예전엔 그저 난해한 말장난으로만 보였던 문장들이, 이제는 사라져 버린 것들을 향한 우아하고 애틋한 서정시로 읽힌다. 이 소설 속 괴짜들은 세상 모두가 "야구가 뭔데? 먹는 거야?" 하고 비웃고 무관심할 때, 사전 속 사어가 되어버린 '야구'라는 유령을 붙잡고 자기 인생을 통째로 바쳐 맹훈련을 한다. 남들이 보기엔 그냥 뻘짓이고 미친 짓인데, 그 바보 같을 정도로 순수한 몰두가 주는 어떤 뭉클함이 있다. 나이가 들고 세상의 풍파를 겪다 보면 효율성을 따지게 되고, 남들 눈치 보느라 가성비 없는 열정은 스스로 접어두게 되잖나. "내가 지금 이걸 해서 무슨 쓸모가 있나" 하면서. 그런데 이 소설은 머리가 희끗희끗해진 노인과 철학에 빠진 투수의 입을 빌려 툭 던진다. "쓸모가 없으면 좀 어때? 네 영혼을 불타게 했던 그 아름다운 야구(낭만, 꿈, 사랑, 혹은 청춘)를 벌써 잊어버린 거야?" 하고. nn년이라는 세월을 지나 이 책을 다시 펼친 내 마음 한구석에도, 세상은 잊었을지언정 나만은 결코 놓고 싶지 않은 '우아하고 감상적인 무언가'가 여전히 숨 쉬고 있었기 때문에 이 책이 문득 다시 생각난 게 아닐까.&nbsp;내가 마지막까지 쥐고 가고 싶은 나만의 '야구'는 무엇일까? 라는 질문과 함께.<br><br>]]></description><image><url>https://image.aladin.co.kr/product/12373/99/cover150/8901220350_2.jpg</url><link>https://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temId=123739963</link></image></item><item><author>안지</author><category>마이리뷰</category><title>모공까지 탈탈 터는 화가의 소름 돋는 얼굴 관찰기 - [얼굴을 그리다 - 초상화가 정중원 에세이]</title><link>https://blog.aladin.co.kr/757135169/17344886</link><pubDate>Sat, 20 Jun 2026 09:58: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s://blog.aladin.co.kr/757135169/17344886</guid><description><![CDATA[<table width="100%" height="30" border="0" align="center" cellpadding="0" cellspacing="0"><tr><td width="14"><img src="https://image.aladin.co.kr/img/blog/trans.gif" width="14"></td><td width="85"><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8937491273&TPaperId=17344886" target="_blank"><img src="https://image.aladin.co.kr/product/24293/33/coveroff/8937491273_1.jpg" width="75" border="0" class="box1"></a></td><td valign="top"><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8937491273&TPaperId=17344886" target="_blank" style="color:#386DA1;font-weight:bold">얼굴을 그리다 - 초상화가 정중원 에세이</a><br/>정중원 지음 / 민음사 / 2020년 06월<br/></td></tr></table><br/>솜털 하나, 모공 한 점까지 변태처럼 집요하게 파고드는 하이퍼리얼리즘 화가 정중원이 쓴 &lt;얼굴을 그리다&gt; 는 스마트폰과 카메라가 세상 모든 것을 완벽하게 기록하는 디지털 시대에 왜 우리는 여전히 시간과 노력을 들여 얼굴을 그리는가라는 본질적인 질문을 던지며 얼굴에 담긴 인간의 본질을 탐색하는 책이다. 저자는 시작부터 우리가 매일 남의 얼굴은 지겹게 보면서 정작 내 진짜 얼굴은 평생 단 한 번도 내 눈으로 직접 볼 수 없다는 태생적 킹받는 한계를 콕 집어낸다. 거울이나 폰 카메라는 결국 좌우가 바뀌거나 왜곡된 짭일 뿐이며, 인간이 왜 그렇게 자화상에 집착하고 현대인들이 왜 그렇게 보정 앱에 목숨을 거는지 그 이유가 바로 내 진짜 얼굴을 볼 수 없는 존재론적 불안감 때문이라고 진단한다. 또한 요즘처럼 아이폰 화질이 좋은 세상에 왜 굳이 돋보기 들고 밤새 가며 똑같이 그리냐는 시니컬한 질문에 대해서도 붓끝으로 카운터 펀치를 날린다. 사진은 기계가 천 분의 일 초 만에 찰칵하고 끝내지만 초상화는 화가가 대상과 눈을 맞추며 보낸 수백 시간의 피 땀 눈물이 압축된 노가다의 결과물이라는 것이다. 실제보다 더 실제 같은 그림을 마주했을 때 우리가 느끼는 기묘한 소름은 단순한 복사가 아니라 대상을 향한 화가의 지독한 짝사랑과 집착이 만들어낸 예술적 기시감이다. 게다가 낮에는 그림을 그리고 밤에는 연극 무대에 서는 프로 투잡러인 저자는 인간의 얼굴을 세상이라는 무대에서 갈아끼우는 가면, 즉 페르소나로 바라보며 썰을 풀어낸다. 고흐의 짠내 나는 서사부터 그리스 신화, 과학 이론까지 온갖 맛있는 양념을 버무려 우리가 어떻게 가면을 쓰고 타인과 밀당을 하며 살아가는지 흥미진진하게 털어놓는다. 결론적으로 저자의 정성 어린 붓질과 밀도 높은 문장은 독자에게 타인의 얼굴을 귀하게 여기는 마음을 심어주는 동시에 거울 속 나의 진짜 얼굴을 새로운 시선으로 바라보게 만드는 묵직한 울림과 깊은 사유를 선사한다. 품격 미술관이자 나를 찾아가는 꿀잼 인문학 가이드 다들 한번 추라이~]]></description><image><url>https://image.aladin.co.kr/product/24293/33/cover150/8937491273_1.jpg</url><link>https://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temId=242933395</link></image></item></channel></rs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