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xml version="1.0" encoding="utf-8"?><?xml-stylesheet href="https://blog.aladin.co.kr/blog/rss/rssUserXSL.aspx" type="text/xsl" media="screen"?><rss version="2.0"><channel><title>안지님의 서재 (안지 서재)</title><link>https://blog.aladin.co.kr/757135169</link><language>ko-kr</language><description>So it goes.</description><copyright /><generator>Aladdin RSS(Alss) v0.9</generator><lastBuildDate>Fri, 03 Jul 2026 19:30:24 +0900</lastBuildDate><image><title>안지</title><url>https://image.aladin.co.kr/Community/myface/pt_7571351695138289.jpg</url><link>https://blog.aladin.co.kr/757135169</link><width>100</width><height>100</height><description>안지</description></image><item><author>안지</author><category>마이리뷰</category><title>지켜주든가 죽여주든가 하나만 해라 - [나를 지켜줘 아니면 나를 죽여줘]</title><link>https://blog.aladin.co.kr/757135169/17371196</link><pubDate>Fri, 03 Jul 2026 08:45: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s://blog.aladin.co.kr/757135169/17371196</guid><description><![CDATA[<table width="100%" height="30" border="0" align="center" cellpadding="0" cellspacing="0"><tr><td width="14"><img src="https://image.aladin.co.kr/img/blog/trans.gif" width="14"></td><td width="85"><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E482637810&TPaperId=17371196" target="_blank"><img src="https://image.aladin.co.kr/product/38384/22/coveroff/e482637810_1.jpg" width="75" border="0" class="box1"></a></td><td valign="top"><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E482637810&TPaperId=17371196" target="_blank" style="color:#386DA1;font-weight:bold">나를 지켜줘 아니면 나를 죽여줘</a><br/>에릭 포토리노 지음, 하진화 옮김 / 레모 / 2026년 01월<br/></td></tr></table><br/>에릭 포토리노의 &lt;나를 지켜줘 아니면 나를 죽여줘&gt;는 평생 규칙과 이성, 실용주의만을 신봉하며 살아온 외과의사 폴 가셰가 예술이라는 강렬한 세계를 만나 겪는 영혼의 해체와 재구성을 치밀하게 추적한 작품이다. 사람의 신체를 메스로 정밀하게 통제하며 살아온 폴은 어느 날 피렌체 여행 중 세계적인 행위예술가 마리나 아브라모비치의 전시를 마주하게 된다. 불과 얼음, 고독과 침묵, 그리고 관객의 폭력 앞에 자신의 맨몸을 그대로 노출하는 그녀의 극단적인 퍼포먼스는 폴의 견고했던 내면에 거대한 균열을 일으킨다. 이 충격은 곧이어 전 세계를 덮친 코로나19 팬데믹의 고립 및 불안과 맞물리며 그를 완전히 다른 인간으로 변화시킨다. 처음에는 ‘이성적인 의사’와 ‘감성적인 예술가’라는 흔한 이분법적 대립 구도가 너무 납작하지 않나 싶었지만, 이 소설은 두 영역이 지닌 뻔한 클리셰의 함정을 영리하게 피해 간다. 작가는 의사와 예술가를 단순히 반대 극점에 두지 않고, 두 직업이 가진 ‘신체를 극단적으로 다룬다’는 본질적인 공통점에 주목한다. 의사인 폴은 타인의 살점을 째고 피를 보며 생명의 본질을 통제하는 인물이며, 아브라모비치 역시 자신의 살을 베고 고통을 견디며 인간의 한계를 시험하는 예술가다. 즉, 폴이 그녀에게 매료된 것은 완전히 이질적인 존재에 대한 호기심이 아니라, 자신은 타인의 몸을 철저히 통제하는 반면 그녀는 왜 자신의 몸을 완벽하게 무방비 상태로 내맡기는가에 대한 기묘한 동질감과 부러움 때문이다. 이렇게 신체라는 날것의 매개체를 통해 두 세계의 닮은꼴을 파고듦으로써 평면적일 수 있는 구도에 깊은 입체감을 부여한다. 이러한 인물 간의 대립과 공조는 코로나19 팬데믹이라는 시대적 배경을 만나 더욱 정교해진다. 만약 평화로운 일상이었다면 폴은 예술을 한낱 기이한 구경거리로 치부했을지 모른다. 하지만 가장 이성적이고 통제되어야 할 공간인 병원이 바이러스라는 비이성적인 존재 앞에 무력하게 무너지는 것을 목격하면서 폴의 세계는 안드로메다로 날아가버리고, 통제 불능의 재난 속에서 역설적으로 스스로의 통제권을 완전히 내려놓았던 아브라모비치의 예술적 태도는 고독과 공포를 버텨낼 철학적 무기로 재탄생한다. 작가는 예술을 단순한 미적 감상의 대상이 아니라 한 인간의 감각과 윤리, 나아가 삶 전체를 뒤흔드는 실존적 사건으로 묘사하며, 예술이 낸 균열을 통해 고립된 시대를 살아가는 인간들이 어떻게 서로 연결되고 연대할 수 있는지 묵직하게 질문한다. 소설 속 폴의 변화 역시 결코 낭만적이거나 아름답게 포장되지 않는다. 예술을 조우한 그는 세련된 자아 성찰에 이르는 것이 아니라, 자신이 쌓아 올린 세계가 무너지며 극심한 불안과 고독을 느끼는 자아 붕괴의 고통을 겪는데 작가는 이를 미술 평론 같은 현학적인 해설 대신 인물의 심리와 신체적 반응을 밀도 높은 문체로 증언하듯 현실적이고 생생하게 그리고 있다. 합리와 효율의 감옥에 갇힌 현대인들에게 스스로를 온전히 내던지는 내맡김의 가치를 일깨우고 무너진 자아의 틈새로 사랑과 연대의 빛을 채워 넣는 강력하고도 매혹적인 문학적 경험을 선사하는 멋진 작품이다.]]></description><image><url>https://image.aladin.co.kr/product/38384/22/cover150/e482637810_1.jpg</url><link>https://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temId=383842282</link></image></item><item><author>안지</author><category>마이리뷰</category><title>권태의 늪 - [육체의 악마]</title><link>https://blog.aladin.co.kr/757135169/17369294</link><pubDate>Thu, 02 Jul 2026 07:28: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s://blog.aladin.co.kr/757135169/17369294</guid><description><![CDATA[<table width="100%" height="30" border="0" align="center" cellpadding="0" cellspacing="0"><tr><td width="14"><img src="https://image.aladin.co.kr/img/blog/trans.gif" width="14"></td><td width="85"><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8937463210&TPaperId=17369294" target="_blank"><img src="https://image.aladin.co.kr/product/4118/77/coveroff/8937463210_1.jpg" width="75" border="0" class="box1"></a></td><td valign="top"><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8937463210&TPaperId=17369294" target="_blank" style="color:#386DA1;font-weight:bold">육체의 악마</a><br/>레이몽 라디게 지음, 원윤수 옮김 / 민음사 / 2014년 05월<br/></td></tr></table><br/>레이몽 라디게의 소설 &lt;육체의 악마&gt;는 전쟁이라는 비극의 이면에서 피어난 미성숙한 청춘의 파멸적 사랑과 지독한 허무주의를 해부한 소설이다. 16세에 집필하여 20세에 요절한 이 발칙한 작가는 제1차 세계대전이라는 인류사적 대재앙을 그저 꼰대들의 감시가 사라진 개꿀 같은 '방학'으로 규정하며 포문을 연다. 사회적 규율이 셧다운 되자 소년 프랑수아에게 찾아온 것은 애국심이 아니라 목적지 없는 지독한 권태였고, 그는 이 무료함을 달래기 위해 전선으로 남편을 보낸 연상의 유부녀 마르트를 간택해 금지된 불장난을 시작한다. 라디게는 이 지저분한 설정을 순애보로 포장하지 않는다. 도리어 사랑이라는 고결한 가면 뒤에 숨은 인간의 치졸한 이기심과 찌질함을 현미경으로 관찰하듯 집요하게 까발린다. 프랑수아는 마르트와의 연애가 권태의 늪에 빠질 때마다 일부러 질투를 유발하고 의심을 투척하며 관계를 짓밟는다. 이는 사랑의 확인이라기보다 지루함을 이겨내기 위해 타인의 고통을 이용하는 미성숙한 자아의 비틀린 발악이다. 결국 제목이 가리키는 육체의 악마란 기성세대가 구축한 지루한 세상에 편입되기를 거부하며, 통제 불가능한 육체적 충동을 통해 권태라는 거대한 늪에서 빠져나가려 했던 청춘의 파괴적인 반항을 의미한다. 이 소설이 백 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세련되게 읽히는 비결은 고딩이 썼다고는 믿기지 않는 냉소적이고 시크한 필력에 있는 듯하다. 감정에 취해 울부짖는 대신, 마치 남의 연애 진흙탕 싸움을 구경하는 냉정한 관찰자처럼 차분하고 건조하게 팩트만을 나열한다. 이 고단수적인 절제미 덕분에 읽는 동안엔 불륜과 책임 회피라는 막되먹은 서사 속에서도 기묘한 문학적 카타르시스를 느끼게 된다. &lt;육체의 악마&gt;는 전쟁중이라는 완벽한 알리바이 속에서, 인간이 권태라는 괴물을 물리치기 위해 얼마나 잔인해질 수 있는지, 그리고 사랑이라는 환상 아래 감추어진 독점욕과 허무의 본질이 무엇인지를 투명하게 증명해 낸다.<br>PS. 고전 속 소재로 불륜이 심심찮게 보이는 이유는 뭘까 생각해 보쟈ㅋ 고전이 쓰인 옛날(특히 19세기 전후)의 결혼은 남녀가 눈이 맞아 하는 로맨스가 아니라, 가문과 재산, 신분을 결합하는 가장 강력한 사회적 제도였다. 즉, 결혼을 유지한다는 건 그 사회의 법과 도덕, 종교의 시스템을 잘 따르고 있다는 증명이고. 불륜이 발생하는 순간, 그 사회가 중요하게 여기는 정절, 명예, 종교적 계율, 가부장제 같은 모든 가치가 한꺼번에 도마 위에 오르고, 그 안에서 허우적대는 인간 군상의 속물근성과 위선이 적나라하게 드러나게 된다. 들킬까 봐 땀을 쥐는 공포, 금기를 깰 때의 짜릿함, 소유욕과 질투까지 인간이 느낄 수 있는 막장급 감정 소용돌이를 단 한 편의 소설로 뽑아내기에 이보다 완벽한 실험실이 또 있었을까ㅋ 평화롭고 안정적인 삶에서는 인간의 진짜 본성이 잘 드러나지 않는데, 작가들은 인간의 내면을 극한까지 몰아세우고 싶어 하고, 불륜은 그 자체로 '하이 리스크, 하이 리턴'의 극한 상황을 보장하니까. 평화로울 땐 세상 젠틀하던 인간도 이 불장난 속에 던져지면 찌질함과 잔인함의 바닥을 여실히 드러내니까. 결국 고전 속 불륜은 ‘안전하지만 지루한 현실(권태)’과 ‘위험하지만 짜릿한 환상(열정)’ 사이의 밀당을 보여주는 거대한 비유가 아니었을지. 지독한 일상의 지루함을 깨부수려 불 속으로 뛰어들지만, 대문호들은 냉정하게도 그 불타는 열정마저 결국 또 다른 권태나 파멸로 끝난다는 현생 팩폭을 또 날려주니까. 그러니까 고전 속 불륜은 자극적 찌라시가 아니라, 인간의 날것 그대로의 욕망과 나약함을 해부하기 위해 작가들이 날카롭게 벼린 문학적 메스였던 셈 아닐까. 라고 고전을 사랑하는 독자로서 아...애써본다ㅋ]]></description><image><url>https://image.aladin.co.kr/product/4118/77/cover150/8937463210_1.jpg</url><link>https://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temId=41187711</link></image></item><item><author>안지</author><category>마이리뷰</category><title>방구석 초인의 오만한 셀프 구원기 - [죄와 벌 2]</title><link>https://blog.aladin.co.kr/757135169/17364340</link><pubDate>Tue, 30 Jun 2026 13:03: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s://blog.aladin.co.kr/757135169/17364340</guid><description><![CDATA[<table width="100%" height="30" border="0" align="center" cellpadding="0" cellspacing="0"><tr><td width="14"><img src="https://image.aladin.co.kr/img/blog/trans.gif" width="14"></td><td width="85"><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8937462850&TPaperId=17364340" target="_blank"><img src="https://image.aladin.co.kr/product/1621/20/coveroff/8937462850_3.jpg" width="75" border="0" class="box1"></a></td><td valign="top"><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8937462850&TPaperId=17364340" target="_blank" style="color:#386DA1;font-weight:bold">죄와 벌 2</a><br/>표도르 도스토예프스키 지음, 김연경 옮김 / 민음사 / 2012년 03월<br/></td></tr></table><br/>표도르 도스토옙스키의 &lt;죄와 벌&gt;은 강렬한 심리적 서스펜스를 선사하는 고전이다. 소설은 주인공 라스콜리니콜프가 자신만의 이성적 논리에 취해 극단적인 선택을 내린 후, 그 대가로 찾아오는 처절한 심리적 붕괴와 내면의 지옥을 현미경으로 들여다보듯 추적한다. 작가는 범죄의 물리적 과정보다, 인간이 스스로 판 함정에 빠져 어떻게 영혼이 파멸해 가는가에 초점을 맞춘다. 이 작품의 진정한 가치는 인물의 모순된 내면을 가차 없이 발가벗기는 데 있다. 주인공은 거창한 이념과 초인 사상을 부르짖으며 대단한 존재가 되고 싶어 하지만, 그는 그냥 말하자면 엄마 여동생 등에 빨대 꽂고 살다가 돈 떨어지니 돈 있고 약한 여자 노인 골라 죽인 살인자 그러니까 그냥 지질한 범죄자인데, 거기에 더해 자기 앞가림도 못하는 주제에 밖에선 인심 좋은 척 퍼주고 다니는 푼수 로쟈..힘쎈 남자 앞에선 혼미해지는 선택적 예민러 로지온..심신미약한 여자를 기가막히게 골라 감정 노예로 부리려는 것까지 비대한 자아만 가진 못난 남자의 현신 그 자체로 이런 라스콜리니콜프의 위선은 160여 년이 지난 지금의 관점으로 보아도 소름 끼칠 정도로 현실적이며 날카롭다. 또한 작품 속에 등장하는 수사관과의 숨 막히는 심리전은 단순한 범죄 추리극을 넘어서는데, 증거가 아닌 인간의 죄책감과 심리적 균열을 이용해 목을 조여오는 압박감은 읽는 이마저 주인공과 함께 땀을 쥐게 만든다. 여기에 주인공의 일그러진 자아를 투영하고 자극하는 개성 강한 주변 인물들이 얽히고 설키며 인간성의 다양한 스펙트럼을 보여주는 이 소설, "범죄자에게 서사를 부여하지 말라"라는 띵언의 조상격 사례가 아닌가 생각했었다. 그러나 읽을수록 본질은 정반대임을 느낀다. 작가는 아무리 그럴듯한 논리와 이념으로 포장할지라도, 인간을 수단으로 삼는 오만은 반드시 인간성 자체의 파멸을 부른다는 엄중한 경고를 던진다. 웅장한 사상으로 시작해 지질한 심리적 바닥까지 추락하는 과정을 통해, 도스토옙스키는 범죄의 매혹이 아닌 범죄자의 처절한 민낯을 고발하는 공공재판을 수행한다. 결국 &lt;죄와 벌&gt;은 인간이 지닌 지성의 오만이 얼마나 위험할 수 있는지, 그리고 인간을 진정으로 구원하고 치유하는 것은 냉철한 이성이 아니라 고통을 직시하는 용기와 진정한 연대라는 점을 묵직하게 역설하고 있다.<br>PS. 과연 사람을 죽이고 멋대로 종교에 귀의해 신한테 용서 받는게 진정 용서인가....에 대해 생각해 보쟈ㅋ 이것은 &lt;죄와 벌&gt;을 읽은 수많은 독자뿐만 아니라, 인류가 역사 내내 종교와 사법 체계, 그리고 도덕을 향해 던져온 가장 본질적이고 치명적인 의문일 것이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피해자가 배제된 채 "사람을 죽이고 신(종교)에게만 가서 죄 사함을 받는 것"은 진정한 용서가 아니라, 추악한 도피이자 또 다른 가해에 불과하다. 영화 &lt;밀양&gt;에서 아이를 유괴해 살해한 범인은 교도소에서 기독교를 믿고 '하나님에게 이미 죄를 용서받아 마음의 평화를 얻었다'며 유가족 앞에서 미소를 지어 보인다. 정작 용서해 준 적 없는 피해자는 지옥 속에 사는데, 가해자 혼자 신의 이름을 빌려 면죄부를 발행하고 발 뻗고 자는 모습은 종교가 저지를 수 있는 가장 기만적인 형태의 폭력이다. 재미있는 점은, 도스토옙스키 본인 역시 &lt;죄와 벌&gt;의 결말(로쟈가 성경을 마주하는 장면)에 스스로 백 퍼센트 만족하지 못했을 것이라는 점이다. 그래서 그는 만년에 쓴 대작 &lt;카라마조프 가의 형제들&gt;에서 이 질문을 둘째 아들 이반 카라마조프의 절규를 통해 다시 정면으로 다룬다. 도스토옙스키조차도 신이 인간의 모든 죄를 퉁쳐서 용서해 주는 시스템에 대한 도덕적 딜레마를 뼈저리게 느끼고 있었던 것 아닐까ㅋ 여튼 가해자가 신 뒤에 숨어 "나는 용서받았다"고 정신 승리하는 것은 종교를 이용한 뻔뻔한 위선이다. 진정한 용서와 구원은, 신에게 기도 몇 번 올리는 것으로 획득되는 영수증이 아니다. 피해자의 고통을 감히 헤아리며, 자신이 부순 인간성을 회복하기 위해 평생토록 현실의 죗값을 치르고 고뇌하는 처절한 과정만이 (비록 완벽할 순 없을지라도) 용서라는 문턱에 겨우 다가설 수 있는 유일한 길일 것이다.<br style="color: rgb(51, 51, 51); font-family: ">]]></description><image><url>https://image.aladin.co.kr/product/1621/20/cover150/8937462850_3.jpg</url><link>https://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temId=16212030</link></image></item><item><author>안지</author><category>마이리뷰</category><title>매운맛 영혼 갱생기 - [인생의 베일]</title><link>https://blog.aladin.co.kr/757135169/17355982</link><pubDate>Fri, 26 Jun 2026 08:54: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s://blog.aladin.co.kr/757135169/17355982</guid><description><![CDATA[<table width="100%" height="30" border="0" align="center" cellpadding="0" cellspacing="0"><tr><td width="14"><img src="https://image.aladin.co.kr/img/blog/trans.gif" width="14"></td><td width="85"><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8937461374&TPaperId=17355982" target="_blank"><img src="https://image.aladin.co.kr/product/88/15/coveroff/8937461374_3.jpg" width="75" border="0" class="box1"></a></td><td valign="top"><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8937461374&TPaperId=17355982" target="_blank" style="color:#386DA1;font-weight:bold">인생의 베일</a><br/>서머셋 모옴 지음, 황소연 옮김 / 민음사 / 2007년 02월<br/></td></tr></table><br/>홍콩 사교계를 은밀하게 그러나 화려하게 흔든 불륜극, 그리고 콜레라가 창궐하는 중국 오지로의 느닷없는 유배. 서머싯 몸의 &lt;인생의 베일&gt;은 한마디로 철부지 속물 여주인공의 매운맛 영혼 갱생기이자, 지독한 환멸 끝에 찾아오는 인간 성장 드라마이다. 소설은 시작부터 흡인력이 대단하다. 예쁘장한 외모와 사교계의 허영심이 전부였던 키티는 사랑 없는 결혼을 했다가, 매력적인 유부남 타운센드와 대책 없는 불륜에 빠진다. 하지만 세균학자인 남편 월터에게 이 현장을 딱 걸리고, 여기서 남편이 내린 처벌이 압권. 이혼 소송 대신, 분초 단위로 사람이 죽어 나가는 지옥 같은 콜레라 창궐지 '메이탄푸'로 함께 가자고 협박한 것이다. 배신당한 남편의 살벌한 동반 자살 특공대 작전에 강제로 합류하게 된 키티는 그렇게 인생 최대의 위기를 맞이한다. 서머싯 몸은 이 메이탄푸라는 극한의 공간을 통해 인간이 덮고 있는 가식과 허영의 베일을 인정사정없이 찢어버린다. 키티가 그동안 목숨 걸었던 사교계의 평판, 외모, 물질 같은 것들이 죽음이 만연한 곳에서는 얼마나 부질없는 '채색된 베일'이었는지가 처절하게 증명된다. 재미있는 건 이 소설이 단순한 치정극에 머물지 않는다는 점이다. 키티는 그곳에서 매일같이 죽음을 마주하고, 조건 없이 헌신하는 프랑스 수녀들을 보며 서서히 내면의 변화를 겪는다. 비극적인 사건들이 폭풍처럼 몰아치는 와중에도 철부지였던 키티가 점차 과거의 실수를 자양분 삼아 주체적인 인간으로 우뚝 서는 과정은 이 소설을 바람 피우다 망테크 탄 유부녀의 연애 잔혹사에서 위대한 인간 독립 선언서로 격상시키는 백미라고 할 수 있다.<br>PS. 하지만 이 강렬한 소설에도 현대적 관점에서 뒷목 잡게 만드는 치명적인 '그 시절' 한계가 도사리고 있다. 바로 '백인 구원자' 콤플렉스와 지독한 오리엔탈리즘이다. 소설 속 1920년대 중국은 고유한 역사와 문화를 가진 공간이 아니다. 백인 주인공들의 갈등을 극대화하고 정신적 각성을 유도하기 위해 세팅된 불결하고 미개한 재난 스튜디오에 불과하다. 현지 중국인들은 주체적인 인물로 단 한 명도 조명받지 못한 채, 그저 떼로 몰려와 무기력하게 죽어 나가거나 백인들이 베푸는 자비와 치료만을 기다리는 수동적인 존재로 타자화된다. 여기서 숭고함의 끝판왕으로 묘사되는 프랑스 수녀원 에피소드는 서구 제국주의의 시혜적 시선을 아주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미개한 유색인종을 우월한 백인 종교인들이 구원한다는 식의 식민주의적 정당성이 밑바탕에 깔려 있는 것. 게다가 가장 얄미운 부분은 이 수많은 현지인의 비극과 고통이, 고작 영국 온실 속 화초였던 키티라는 백인 여성이 "아, 인생이란 이런 거구나!"라며 철들고 자아를 실현하기 위한 서사적 소모품이자 무대로 철저히 이용되었다는 점이다. 여튼 &lt;인생의 베일&gt;은 인간의 위선과 모순을 칼날처럼 해부하고 영혼의 도약 과정을 입체적으로 그려낸 페이지 터너임엔 틀림없다. 서머싯 몸 특유의 찰진 문장과 인간 본성에 대한 날카로운 팩트 폭격 역시 짜릿하다. 다만, 백인의 우월감이라는 또 다른 거대한 '제국주의의 베일'은 끝내 벗겨내지 못한 채 그 속에 갇혀버렸다는 한계 또한 명확히 인지하고 읽어야 할, 매혹적이면서도 씁쓸한 뭐랄지 좀 야비한(ㅋ) 고전이다.]]></description><image><url>https://image.aladin.co.kr/product/88/15/cover150/8937461374_3.jpg</url><link>https://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temId=881562</link></image></item><item><author>안지</author><category>마이리뷰</category><title>사이다는 없음, 고구마와 아찔함만 가득 - [뉴욕 3부작]</title><link>https://blog.aladin.co.kr/757135169/17348527</link><pubDate>Mon, 22 Jun 2026 10:35: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s://blog.aladin.co.kr/757135169/17348527</guid><description><![CDATA[<table width="100%" height="30" border="0" align="center" cellpadding="0" cellspacing="0"><tr><td width="14"><img src="https://image.aladin.co.kr/img/blog/trans.gif" width="14"></td><td width="85"><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8932904715&TPaperId=17348527" target="_blank"><img src="https://image.aladin.co.kr/product/40/77/coveroff/8932904715_1.gif" width="75" border="0" class="box1"></a></td><td valign="top"><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8932904715&TPaperId=17348527" target="_blank" style="color:#386DA1;font-weight:bold">뉴욕 3부작</a><br/>폴 오스터 지음, 황보석 옮김 / 열린책들 / 2003년 03월<br/></td></tr></table><br/>폴 오스터의 &lt;뉴욕 3부작&gt;은 [유령 소설], [유령], [잠겨 있는 방] 세 편의 독립적이면서도 유기적으로 연결된 중편을 통해 현대인의 실존적 위기를 다룬 독보적인 분위기의 현대 고전이다. 탐정 소설의 형식을 빌려 고독한 대도시 뉴욕을 배경으로 펼쳐지는 이 작품은, 사건의 명쾌한 해결 대신 ‘인간의 정체성 상실’과 ‘자아의 붕괴’라는 심오한 철학적 질문을 던진다. 이 소설의 가장 큰 재미는 장르의 법칙을 대놓고 배신하는 밀당에 있다. 보통의 추리 소설이라면 명탐정이 등장해 단서를 모으고 "범인은 바로 너!"를 외쳐야 하겠지만, 이 작품 속 탐정들은 어딘가 나사가 하나씩 빠져 있다. 타인의 뒤를 쫓고 감시하는 일에 지나치게 몰두한 나머지, 어느새 자신이 쫓던 대상을 닮아가거나 도리어 내가 감시당하는 기묘한 늪에 빠진다. 추적을 하면 할수록 사건이 해결되는 게 아니라, 탐정의 멘탈과 정체성이 먼저 산산조각 나버리는 주객전도의 코미디 같은 비극이 펼쳐진다. 작가는 여기에 ‘말장난과 기호’라는 지적인 퍼즐을 버무려 놓았다. 주인공들은 탐정 노트에 집요할 정도로 글을 쓰고 텍스트를 분석하지만, 그들이 적어 내려가는 문장들은 진실을 밝히기는커녕 상황을 더 꼬이게 만드는 부메랑이 되어 돌아온다. 내가 쓰는 글이 진짜 나인지, 아니면 글 속에 갇힌 가짜 나인지 헷갈리게 만드는 오스터 특유의 밀도 높은 두뇌 싸움은 독자에게 미로 속에 갇힌 듯한 아찔한 쾌감을 선사한다. 결론적으로 &lt;뉴욕 3부작&gt;은 범인을 잡는 서사의 쾌감을 넘어, 현대 사회를 살아가는 인간의 근원적인 고독과 분열을 탐구한 지적인 텍스트이다. 미스터리를 해결하는 주체가 아니라 미스터리 그 자체가 되어버린 인간의 삶을 비추며, 스스로에게 ‘나는 누구인가’라는 서늘한 질문을 남기는 작품.&nbsp;다만 대도시의 차가운 고독감과 미로 같은 텍스트의 유희를 좋아하는 사람들에게는 인생작이 될 수 있지만, 명확한 결말과 사이다 같은 사건 해결을 원하는 이에게는 불친절하고 모호하게 느껴질 수도 있겠다.&nbsp;<br>PS. '나는 누구인가'라는 질문에 대해 조금 더 생각해 보도록 하자ㅋ 수많은 '자아 찾기' 소설들이 방황 끝에 "이게 바로 나야!" 하고 진정한 자아를 발견하며 카타르시스를 준다면, &lt;뉴욕 3부작&gt;은 정반대의 궤적을 그린다. 멀쩡하게 잘 살고 있던 인물이 뉴욕이라는 거대한 미로와 미스터리 속으로 걸어 들어가 자신의 자아를 양파 껍질 벗기듯 하나씩 잃어버리는 '자아 상실의 기록'에 가깝다고나 할까.&nbsp;폴 오스터는 이 소설을 통해 "인간의 자아라는 것이 과연 고정되어 있는 단단한 것인가?"라는 의문을 던진다. 소설 속 인물들은 타인을 너무 깊게 들여다보거나, 텍스트 속으로 너무 깊이 빠져들다가 자기 자신이라는 존재의 끈을 놓쳐버린다.&nbsp;그래서 이 책을 읽고 나면 짜릿한 해방감이 아니라, "내가 믿고 있는 '나'라는 존재도 어쩌면 대도시의 소음과 타인의 시선 속에서 언제든 쉽게 지워질 수 있는 유약한 것이 아닐까?" 하는 서늘한 인간적 고독을 느끼게 된다. 그러니까 이 책은 완벽한 '자아 분실 미스터리'인 셈이다. 사이다 없음, 고구마와 아찔함만 가득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이 책을 연달에 세 번 빠져서 읽었다.&nbsp;폴 오스터가 구축한 특유의 몽환적이고 지적인 분위기를 느껴보고 싶다면 적극적인 추라이 추천~]]></description><image><url>https://image.aladin.co.kr/product/40/77/cover150/8932904715_1.gif</url><link>https://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temId=407760</link></image></item><item><author>안지</author><category>마이리뷰</category><title>미친 소설 - [우아하고 감상적인 일본 야구 (무선)]</title><link>https://blog.aladin.co.kr/757135169/17347270</link><pubDate>Sun, 21 Jun 2026 19:02: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s://blog.aladin.co.kr/757135169/17347270</guid><description><![CDATA[<table width="100%" height="30" border="0" align="center" cellpadding="0" cellspacing="0"><tr><td width="14"><img src="https://image.aladin.co.kr/img/blog/trans.gif" width="14"></td><td width="85"><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8901220350&TPaperId=17347270" target="_blank"><img src="https://image.aladin.co.kr/product/12373/99/coveroff/8901220350_2.jpg" width="75" border="0" class="box1"></a></td><td valign="top"><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8901220350&TPaperId=17347270" target="_blank" style="color:#386DA1;font-weight:bold">우아하고 감상적인 일본 야구 (무선)</a><br/>다카하시 겐이치로 지음, 박혜성 옮김 / 웅진지식하우스 / 2017년 11월<br/></td></tr></table><br/>다카하시 겐이치로의 소설 &lt;우아하고 감상적인 일본 야구&gt;는 '야구'라는 단어가 사전 속 박제된 사어로만 존재하는 가상의 미래 혹은 평행세계를 배경으로 문학의 전통적 문법을 해체하는 포스트모더니즘의 기념비적 띵작이다ㅋ 현실의 대중적인 스포츠로서의 야구는 완전히 상실되었지만, 세상의 변두리에는 야구가 무엇인지도 모른 채 오직 남아있는 기록의 파편만을 쫓으며 자신들만의 기괴하고 독창적인 방식으로 야구를 재정의하고 맹신하는 괴짜들이 존재한다. 작가는 이 황당한 설정을 발판 삼아 선형적인 기승전결이나 일관된 주인공을 과감히 거부하고, 인과관계가 없는 독립적인 단편과 기묘한 에피소드를 콜라주처럼 직조해 낸다. 작품 속에는 프란츠 카프카가 사실은 열정적인 포수 지망생이었을 거라 믿으며 평생 야구 기록을 수집해 온 노인, 야구 선수가 되기 위해 하루에 야구 시 900편 쓰기와 포르노 비디오 100편 보기라는 황당하고 무의미한 고행을 견뎌내는 소년, 공이 지나치게 완벽하게 잘 보여서 도저히 배트를 휘두를 수 없다는 타자나 라이프니츠의 철학에 매료되어 슬럼프에 빠진 투수 등 스포츠의 영역을 벗어나 철학적 고뇌에 빠진 인물들이 나온다. 작가는 이처럼 야구라는 프레임을 빌려 근대 소설의 고루한 문법과 의미를 찾아내야 한다는 독자의 강박을 사정 없이 깨부순다. 말장난과 저속한 포르노그래피, 지적인 철학적 인용을 무차별적으로 뒤섞으며 현대 문학은 결국 기존 정보의 패러디이자 재구성에 불과하다는 냉소를 던진다. 그러나 형식의 난해함 속에서도 작품 전체를 감싸는 정서는 제목 그대로 지독하게 우아하고 감상적이다. 무언가 소중한 가치가 상실된 세계를 살아가는 이들의 쓸쓸함과 무모한 집착을 독특한 시적 언어로 아름답게 그려낸다. 그리고 독특한 유머 코드. 이 책의 백미다. 이 소설은 개연성과 결말의 카타르시스를 중시하는 정통 소설파 독자에게는 스트라이크 존을 한참 벗어난 불친절한 공 같겠지만,  플롯의 결말보다는 읽는 과정의 파격을 즐기는 이들에게는 문학의 한계를 시험하는 문제작으로 기억될 것이다.<br>PS.&nbsp;약 nn여년 전, 이미 읽은 책인데, 요즘 문득 생각나 다시 사 봤다. 사실 그 때는 첫 장을 펼치고 "이게 대체 무슨 소리냐..." 대충 모자이크로 훑고 덮었던 것 같다. 플롯도 없고, 맥락도 없이 불친절함을 넘어 일종의 문화적 충격에 가까웠던 책. 그렇지만 이해한다고 퉁쳤던 책. 그런데 세월이 흘러 수많은 파격과 다양한 콘텐츠에 익숙해진 지금, 그리고 인생의 여러 상실과 쓸쓸함을 통과해 온 지금 다시 읽으니 감회가 완전히 새롭다ㅋ 예전엔 그저 난해한 말장난으로만 보였던 문장들이, 이제는 사라져 버린 것들을 향한 우아하고 애틋한 서정시로 읽힌다. 이 소설 속 괴짜들은 세상 모두가 "야구가 뭔데? 먹는 거야?" 하고 비웃고 무관심할 때, 사전 속 사어가 되어버린 '야구'라는 유령을 붙잡고 자기 인생을 통째로 바쳐 맹훈련을 한다. 남들이 보기엔 그냥 뻘짓이고 미친 짓인데, 그 바보 같을 정도로 순수한 몰두가 주는 어떤 뭉클함이 있다. 나이가 들고 세상의 풍파를 겪다 보면 효율성을 따지게 되고, 남들 눈치 보느라 가성비 없는 열정은 스스로 접어두게 되잖나. "내가 지금 이걸 해서 무슨 쓸모가 있나" 하면서. 그런데 이 소설은 머리가 희끗희끗해진 노인과 철학에 빠진 투수의 입을 빌려 툭 던진다. "쓸모가 없으면 좀 어때? 네 영혼을 불타게 했던 그 아름다운 야구(낭만, 꿈, 사랑, 혹은 청춘)를 벌써 잊어버린 거야?" 하고. nn년이라는 세월을 지나 이 책을 다시 펼친 내 마음 한구석에도, 세상은 잊었을지언정 나만은 결코 놓고 싶지 않은 '우아하고 감상적인 무언가'가 여전히 숨 쉬고 있었기 때문에 이 책이 문득 다시 생각난 게 아닐까.&nbsp;내가 마지막까지 쥐고 가고 싶은 나만의 '야구'는 무엇일까? 라는 질문과 함께.<br><br>]]></description><image><url>https://image.aladin.co.kr/product/12373/99/cover150/8901220350_2.jpg</url><link>https://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temId=123739963</link></image></item><item><author>안지</author><category>마이리뷰</category><title>모공까지 탈탈 터는 화가의 소름 돋는 얼굴 관찰기 - [얼굴을 그리다 - 초상화가 정중원 에세이]</title><link>https://blog.aladin.co.kr/757135169/17344886</link><pubDate>Sat, 20 Jun 2026 09:58: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s://blog.aladin.co.kr/757135169/17344886</guid><description><![CDATA[<table width="100%" height="30" border="0" align="center" cellpadding="0" cellspacing="0"><tr><td width="14"><img src="https://image.aladin.co.kr/img/blog/trans.gif" width="14"></td><td width="85"><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8937491273&TPaperId=17344886" target="_blank"><img src="https://image.aladin.co.kr/product/24293/33/coveroff/8937491273_1.jpg" width="75" border="0" class="box1"></a></td><td valign="top"><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8937491273&TPaperId=17344886" target="_blank" style="color:#386DA1;font-weight:bold">얼굴을 그리다 - 초상화가 정중원 에세이</a><br/>정중원 지음 / 민음사 / 2020년 06월<br/></td></tr></table><br/>솜털 하나, 모공 한 점까지 변태처럼 집요하게 파고드는 하이퍼리얼리즘 화가 정중원이 쓴 &lt;얼굴을 그리다&gt; 는 스마트폰과 카메라가 세상 모든 것을 완벽하게 기록하는 디지털 시대에 왜 우리는 여전히 시간과 노력을 들여 얼굴을 그리는가라는 본질적인 질문을 던지며 얼굴에 담긴 인간의 본질을 탐색하는 책이다. 저자는 시작부터 우리가 매일 남의 얼굴은 지겹게 보면서 정작 내 진짜 얼굴은 평생 단 한 번도 내 눈으로 직접 볼 수 없다는 태생적 킹받는 한계를 콕 집어낸다. 거울이나 폰 카메라는 결국 좌우가 바뀌거나 왜곡된 짭일 뿐이며, 인간이 왜 그렇게 자화상에 집착하고 현대인들이 왜 그렇게 보정 앱에 목숨을 거는지 그 이유가 바로 내 진짜 얼굴을 볼 수 없는 존재론적 불안감 때문이라고 진단한다. 또한 요즘처럼 아이폰 화질이 좋은 세상에 왜 굳이 돋보기 들고 밤새 가며 똑같이 그리냐는 시니컬한 질문에 대해서도 붓끝으로 카운터 펀치를 날린다. 사진은 기계가 천 분의 일 초 만에 찰칵하고 끝내지만 초상화는 화가가 대상과 눈을 맞추며 보낸 수백 시간의 피 땀 눈물이 압축된 노가다의 결과물이라는 것이다. 실제보다 더 실제 같은 그림을 마주했을 때 우리가 느끼는 기묘한 소름은 단순한 복사가 아니라 대상을 향한 화가의 지독한 짝사랑과 집착이 만들어낸 예술적 기시감이다. 게다가 낮에는 그림을 그리고 밤에는 연극 무대에 서는 프로 투잡러인 저자는 인간의 얼굴을 세상이라는 무대에서 갈아끼우는 가면, 즉 페르소나로 바라보며 썰을 풀어낸다. 고흐의 짠내 나는 서사부터 그리스 신화, 과학 이론까지 온갖 맛있는 양념을 버무려 우리가 어떻게 가면을 쓰고 타인과 밀당을 하며 살아가는지 흥미진진하게 털어놓는다. 결론적으로 저자의 정성 어린 붓질과 밀도 높은 문장은 독자에게 타인의 얼굴을 귀하게 여기는 마음을 심어주는 동시에 거울 속 나의 진짜 얼굴을 새로운 시선으로 바라보게 만드는 묵직한 울림과 깊은 사유를 선사한다. 품격 미술관이자 나를 찾아가는 꿀잼 인문학 가이드 다들 한번 추라이~]]></description><image><url>https://image.aladin.co.kr/product/24293/33/cover150/8937491273_1.jpg</url><link>https://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temId=242933395</link></image></item><item><author>안지</author><category>마이리뷰</category><title>츄르와 예술 사이 - [수고양이 무어의 인생관]</title><link>https://blog.aladin.co.kr/757135169/17338191</link><pubDate>Tue, 16 Jun 2026 15:32: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s://blog.aladin.co.kr/757135169/17338191</guid><description><![CDATA[<table width="100%" height="30" border="0" align="center" cellpadding="0" cellspacing="0"><tr><td width="14"><img src="https://image.aladin.co.kr/img/blog/trans.gif" width="14"></td><td width="85"><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8954634222&TPaperId=17338191" target="_blank"><img src="https://image.aladin.co.kr/product/5168/56/coveroff/8954634222_1.jpg" width="75" border="0" class="box1"></a></td><td valign="top"><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8954634222&TPaperId=17338191" target="_blank" style="color:#386DA1;font-weight:bold">수고양이 무어의 인생관</a><br/>에른스트 테오도르 아마데우스 호프만 지음, 박은경 옮김 / 문학동네 / 2014년 12월<br/></td></tr></table><br/>독일 낭만주의 문학의 거장 E.T.A. 호프만의 &lt;수고양이 무어의 인생관&gt;은 굉장히 독창적인 액자식 구조를 가진 풍자 소설이다. 인쇄소 직원의 실수로 천재 고양이 '무어'의 자서전과, 비운의 음악가 '요하네스 크라이슬러'의 평전 인쇄 원고가 뒤섞여 출간되었다는 기발한 설정을 바탕으로 한다. 이 기묘한 이중주는 인간 사회의 허위의식과 예술가의 고독한 운명을 날카롭게 해부한다. 첫 번째 주인공인 스트릿 출신 수고양이 무어는 스스로를 '묘(猫)계의 괴테'라 믿는 근자감의 소유자. 나름 책을 읽을 줄 알고 말도 할 줄 아는 보통이 아닌 이 고양이는 인간의 책을 몇 권 훔쳐 읽고는 온갖 고상한 척, 지적인 척은 다 하지만, 실상 그의 관심사는 오직 따뜻한 아랫목과 맛있는 츄르뿐이다. 겉으로는 고결한 영혼을 읊조리며 속으로는 안락함만 추구하는 무어의 뻔뻔함은, 당시 교양 있는 척 폼을 잡던 부르주아 지식인들의 속물근성을 때리는 고단수 풍자라고 볼 수 있다. 반면, 무어의 이면지를 차지한 악장 크라이슬러는 호프만의 영혼을 갈아 넣은 페르소나이다. 속물적인 귀족 사회와는 절대로 타협하지 않고 오직 순수 예술만 고집하다가 세상으로부터 또라이 취급을 받는다. 안락한 묘생을 즐기는 무어와 달리, 크라이슬러의 삶은 짠내 나는 비극과 예술적 고뇌로 가득 차 있다. 캣타워 위에서 세상을 논하는 고양이의 귀여운 헛소리에 낄낄거리다가도, 책장을 넘기면 크라이슬러의 처절한 심연이 고개를 내민다. 작가가 의도한 '편집 오류' 구조는 우리가 사는 세상 역시 고결한 이상과 세속적인 생존 본능이 뒤죽박죽 섞여 있는 혼돈의 공간임을 시각적으로 증명한다. 스마트폰으로 인문학 유튜브를 보며, 책 몇 권 읽고 지적 허세를 부리는 우리의 모습은 무어와 얼마나 다를까..ㅋ&nbsp;&lt;수고양이 무어의 인생관&gt;이 200년이 지난 지금도 여전히 유효한 이유다. 호프만이 던지는 날카로운 위트와 유머는, 타성에 젖어 살아가던 우리의 일상에 유쾌하면서도 묵직한 죽비가 되어 뼈를 때린다. 속물적인 세상에서 진정한 자신을 잃지 않고 살아간다는 것이 무엇인지 고민하는 모든 이들에게 이 책을 추천하고 싶다.&nbsp;** 근데 왜 하필 고양이였을까ㅋ 궁금해 잠깐 찾아봤는데&nbsp;가장 결정적인 이유는 호프만이 지독한 애묘인이었다고. 실제로 그가 키우던 고양이 이름이 '무어(Murr)'였는데 호프만의 기록에 따르면, 이 진짜 고양이 무어는 호프만이 글을 쓸 때 책상 위로 올라와 원고지를 밟고 지나가거나, 서랍을 열어 대본을 뒤적거리는 등 '고양이는 왜 그럴까' 행동을 자주 했고, 호프만은 반려묘의 그 영악하고 영리한 눈빛을 보며 "저 녀석, 속으로는 인간을 비웃으며 지 자서전을 구상하고 있는 게 아닐까?" 하는 상상을 현실로 옮겼다고 한다. 아..여튼 결론은 고양이 나만 없어..ㅠ<br>PS. 이쯤에서 생각나는 단편 하나, 미야자와 겐지의 &lt;고양이 사무소&gt;다.&nbsp;호프만의 &lt;수고양이 무어의 인생관&gt;과 미야자와 겐지의 &lt;고양이 사무소&gt;는 시공간을 초월해 ‘고양이를 통한 인간 사회의 지독한 풍자’라는 완벽한 교집합을 공유한다.&nbsp;첫째, ‘인간 사회의 축소판’을 그렸다. 무어는 인간의 관직 체계와 학벌을 부러워하며 지식인 행세를 하고, &lt;고양이 사무소&gt;의 고양이들은 정장을 입고 서류를 만지며 관료 사회를 형성한다. 두 작품 모두 인간의 계급제와 출세욕을 고양이 세계에 그대로 이식한 셈.&nbsp;둘째, 가차 없이 차별과 속물근성을 폭로한다. 안락함에 취해 길고양이 시절을 잊고 하층 고양이를 무시하는 무어의 모습과, 온몸이 까맣고 더럽다는 이유로 가장 일 잘하는 ‘화덕고양이’를 따돌리는 사무소 고양이들의 잔인함은 인간의 얄팍한 선민의식과 차별주의를 거울처럼 비춘다.&nbsp;셋째, ‘냉소적인 경고’로 끝을 맺는 결말까지. 무어의 뻔뻔한 자기합리화나, 고양이들의 싸움에 질려 사무소를 폐쇄해 버리는 사자의 모습은 "너희 인간이나 고양이나 다를 게 없다"는 작가들의 서늘한 메시지로 통한다.&nbsp;결국 호프만의 무어가 겉만 번지르르한 '개인'의 위선을 꼬집었다면, 겐지의 사무소는 그 위선이 뭉쳐 만든 '집단'의 잔인함을 고양이의 탈을 빌려 고발한 것. 여튼 &lt;고양이 사무소&gt;는 [미야자와 겐지 전집]에 실린 단편이다.&nbsp;작은 앞발로 꼬물대며 잉크를 묻혀 서류를 정리하고, 양복 깃을 매만지며 에헴- 하고 출근하는 고양이들이라니, 상상만 해도 심장이 아플 정도로 귀엽다ㅠ 하지만 겐지는 아주 좌니난ㅋ 작가라, 내가 그 귀여움에 정신 못 차리고 방심하고 있을 때 가차없이 죽비를 날리더라. "이렇게 귀여운 고양이들도 모여서 집단을 이루면 인간들처럼 치졸하게 편을 가르고, 왕따를 시키고, 계급을 따진단다." 라며. 비록 결말은 사자의 호통으로 씁쓸하게 끝나지만, 머릿속에 남은 '책상 앞에 쪼르르 앉아 돋보기를 쓰고 서류를 검토하는 고양이 공무원들'의 비주얼만큼은 지우기 힘들 정도로 사랑스러운 소설인 건 분명함. 어쩌면 그 귀여운 상상력 덕분에 100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기억되는 걸작이 된 게 아닐까.. 아, 여튼 결론은 또 고양이 나만 없어..ㅠㅠ<br><br>]]></description><image><url>https://image.aladin.co.kr/product/5168/56/cover150/8954634222_1.jpg</url><link>https://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temId=51685651</link></image></item><item><author>안지</author><category>마이리뷰</category><title>거대한 지적 퍼즐 - [겨울 여행]</title><link>https://blog.aladin.co.kr/757135169/17337924</link><pubDate>Tue, 16 Jun 2026 12:44: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s://blog.aladin.co.kr/757135169/17337924</guid><description><![CDATA[<table width="100%" height="30" border="0" align="center" cellpadding="0" cellspacing="0"><tr><td width="14"><img src="https://image.aladin.co.kr/img/blog/trans.gif" width="14"></td><td width="85"><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8937464543&TPaperId=17337924" target="_blank"><img src="https://image.aladin.co.kr/product/35808/73/coveroff/8937464543_1.jpg" width="75" border="0" class="box1"></a></td><td valign="top"><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8937464543&TPaperId=17337924" target="_blank" style="color:#386DA1;font-weight:bold">겨울 여행</a><br/>자우메 카브레 지음, 권가람 옮김 / 민음사 / 2025년 01월<br/></td></tr></table><br/>자우메 카브레의 소설집 &lt;겨울 여행&gt;은 카탈루냐 문학의 거장이 정교하게 조율한 14개의 단편이 모여 하나의 거대한 음악적 서사를 이루는 독창적인 작품이다. 슈베르트의 연가곡에서 제목을 빌려온 책은 표면적으로는 시공간이 다른 독립된 이야기들이지만, 내부적으로는 인물과 사물, 주제가 촘촘한 그물망처럼 연결된 하나의 완성된 세계를 보여준다. ‘작가가 던진 떡밥 회수’는 이 책의 백미. 바흐와 쇼팽의 선율이 흐르는 배경 속에서, 앞에서 스치듯 나온 바이올린이나 악보가 다음 장에서 슬그머니 재등장할 때의 소름은 웬만한 심리 스릴러 못지않다. 작가는 이 치밀한 설계를 통해 예술이 지닌 영원성과 인간 삶의 유한함을 극명하게 대조한다. 작품 속 인물들은 저마다 고독과 집착이라는 자신만의 '겨울 여행'을 보내는데, 예술적 완벽함에 중독된 음악가, 위작인 줄 알면서도 매료된 수집가, 역사의 광기 속에서 파멸해 가는 이들의 모습은 인간 내면의 어두운 심연과 그럼에도 불구하고 반짝이는 예술에 대한 열망을 동시에 보여준다. 카브레는 과거와 현재, 환상과 현실의 경계를 허무는 특유의 서사 기법으로 죄의식과 상실감, 그리고 구원의 문제를 깊이 있게 탐구한다.&nbsp;&lt;겨울 여행&gt;은 단순한 단편집을 넘어, 독자의 능동적인 개입을 요구하는 지적 퍼즐이다. 문장 사이의 공백을 채우며 마지막 장을 덮는 순간, 우리는 인간 존재의 서늘한 고독과 그럼에도 피어나는 예술의 가치를 마주하게 된다. 과거와 현재가 한 문장 안에서 뒤섞이고, 시점이 불쑥 전환되는 특유의 서사 기법은 처음에는 낯설지만, 익숙해지면 거대한 퍼즐을 맞춰 나가는 듯한 지적 쾌감을 얻을 수 있다. 마지막 장을 덮는 순간, 책의 첫 페이지로 다시 돌아가 숨은 그림 찾기를 하듯 재독하게 만드는 마력이 있다.<br>PS. &lt;겨울 여행&gt;은 인간의 죄의식, 예술의 구원 가능성, 그리고 지워지지 않는 역사의 상흔을 거장의 유려한 필치로 담아낸 띵작이다. 슈베르트의 〈겨울 나그네〉를 나지막이 틀어놓고, 문장 속에 숨겨진 비밀스러운 연결고리를 따라가며 읽을 때 이 책의 진가를 완벽하게 느낄 수 있을 것ㅋ 단단하고 서늘하지만, 가슴속에 깊은 울림을 남기는 문학적 겨울을 경험하고 싶다면 이열치한ㅋㅋ 추라이 추라이<br><br>]]></description><image><url>https://image.aladin.co.kr/product/35808/73/cover150/8937464543_1.jpg</url><link>https://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temId=358087395</link></image></item><item><author>안지</author><category>마이리뷰</category><title>황당한 낚시 바늘 - [미국의 송어낚시]</title><link>https://blog.aladin.co.kr/757135169/17335904</link><pubDate>Mon, 15 Jun 2026 11:31: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s://blog.aladin.co.kr/757135169/17335904</guid><description><![CDATA[<table width="100%" height="30" border="0" align="center" cellpadding="0" cellspacing="0"><tr><td width="14"><img src="https://image.aladin.co.kr/img/blog/trans.gif" width="14"></td><td width="85"><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8992036248&TPaperId=17335904" target="_blank"><img src="https://image.aladin.co.kr/product/85/67/coveroff/8992036248_3.jpg" width="75" border="0" class="box1"></a></td><td valign="top"><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8992036248&TPaperId=17335904" target="_blank" style="color:#386DA1;font-weight:bold">미국의 송어낚시</a><br/>리차드 브라우티건 지음, 김성곤 옮김 / 비채 / 2013년 10월<br/></td></tr></table><br/>리처드 브라우티건의 &lt;미국의 송어낚시&gt; "소설이란 모름지기 주인공이 고난을 겪고 교훈을 얻어야 한다"는 꼰대식 서사 문법에 시원하게 엿을 날린 포스트모더니즘의 마스터피스다. 이 책엔 줄거리랄 게 없다. 그냥 삼천포로 빠지는 걸 특기로 가진 47개의 엉뚱한 에피소드가 제멋대로 춤을 출 뿐이다. 작가는 1960년대 미국 사회의 풍경을 환상적이고도 기발한 언어로 그려내며, 기성 체제의 엄숙주의를 거부하고 히피 문화 특유의 자유로움을 문체 전반에 투영했다.&nbsp;이 작품을 관통하는 가장 핵심적인 장치는 제목이기도 한 ‘미국의 송어낚시’의 끊임없는 변주다. 소설 속에서 이 단어는 고정된 의미에 머물지 않는다. 그것은 실제 자연 속에서의 낚시 행위였다가, 어느 순간 인물의 이름이 되기도 하고, 호텔 이름이나 편지 하단의 서명, 혹은 미국이라는 국가의 정신적 상태를 대변하는 추상적 개념으로 시도 때도 없이 둔갑한다. 브라우티건은 하나의 언어가 맥락에 따라 형태를 바꾸는 언어 유희를 통해 독자의 고정관념을 흔들고, 텍스트를 읽는 행위 자체를 하나의 놀이로 만든다.&nbsp;또 다른 감상 포인트는 물질주의에 오염된 미국적 유토피아에 대한 날카로운 풍자다. 본래 맑은 시냇물과 송어낚시는 자연의 순수함과 미국 개척 시대의 이상향을 상징한다. 그러나 소설 속 미국은 이미 모든 것이 자본주의화된 공간이다. 특히 자연 그대로의 시냇물을 피트(feet) 단위로 잘라서 판매하는 봉이 김선달 같은 에피소드는 자연마저 상품으로 전락한 현대 사회의 기괴한 단면을 보여준다. 작가는 이 비극적인 현실을 냉소적으로 비판하는 대신, 특유의 천진난만하고 엉뚱한 유머로 비틀어 표현함으로써 맑은 눈의 광인처럼 허허실실 웃으며 팩트 폭행을 날린다.&nbsp;결론적으로 &lt;미국의 송어낚시&gt;는 스토리를 따라가는 일반적인 독서법으로는 온전히 이해하기 어렵다. 마치 한 편의 초현실주의 시집이나 팝아트 작품을 감상하듯, 엉뚱한 비유와 시적인 문장들이 주는 이미지를 그대로 받아들이는 '정신적인 낚시'다.&nbsp;브라우티건은 이 황당무계한 낚시 이야기를 통해 가슴속에 맑은 시냇물 한 줄기 심어두는 법을 유쾌하게 가르쳐주고 있다. 여튼&nbsp;제대로 된 기승전결을 기대했다간 '이게 대체 뭔 소린겨...' 싶겠지만, 꼰대 문학에 날리는 발칙한 조롱과 쪼개 파는 시냇물 소리에 낄낄대다 보면 어느새 나의 메마른 영혼도 파닥거리기 시작한다.&nbsp;<br>PS.&nbsp;리처드 브라우티건의 유머는 한마디로 ‘천진난만한 얼굴로 기성 사회의 뼈를 때리는 맑은 눈의 광인 개그’다. 그의 유머는 누군가를 악의적으로 비난하기보다, 상식의 틀을 깨는 엉뚱한 비유와 맥락 파괴를 통해 독자의 허를 찌르며 피식하는 웃음을 자아낸다. "그녀의 몸은 수표 같았다"거나 "양배추 같은 목소리"처럼 자본주의적 상징과 일상을 버무린 기묘한 문장들은 그 자체로 유쾌한 언어적 놀이다. 특히 그의 유머가 빛나는 지점은 가난, 고독, 자본주의의 폐해 같은 무거운 비극을 다룰 때다. 그는 정색하고 분노하는 대신 "울기엔 너무 황당해서 그냥 웃어버리는" 허허실실 전법을 쓴다. 시냇물을 토막 내 파는 엽기적인 현실 앞에서도 아이 같은 호기심으로 구경하며 비극을 코미디로 세탁한다. 이는 지적 엄숙주의에 빠진 기성 문단을 향해 "뭘 그렇게 심각해?"라며 날리는 통쾌한 메롱이기도 하다. 그의 유머는 자극적이지 않지만, 팍팍한 세상에서 씁쓸한 현실을 다정하게 위로하는 슴슴한 매력을 지녔다. 이 책의 백미다.&nbsp;]]></description><image><url>https://image.aladin.co.kr/product/85/67/cover150/8992036248_3.jpg</url><link>https://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temId=856716</link></image></item><item><author>안지</author><category>마이리뷰</category><title>어떻게 살 것인가 - [어떻게 죽을 것인가 - 현대 의학이 놓치고 있는 삶의 마지막 순간]</title><link>https://blog.aladin.co.kr/757135169/17330463</link><pubDate>Fri, 12 Jun 2026 11:36: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s://blog.aladin.co.kr/757135169/17330463</guid><description><![CDATA[<table width="100%" height="30" border="0" align="center" cellpadding="0" cellspacing="0"><tr><td width="14"><img src="https://image.aladin.co.kr/img/blog/trans.gif" width="14"></td><td width="85"><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896051909X&TPaperId=17330463" target="_blank"><img src="https://image.aladin.co.kr/product/28908/80/coveroff/896051909x_1.jpg" width="75" border="0" class="box1"></a></td><td valign="top"><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896051909X&TPaperId=17330463" target="_blank" style="color:#386DA1;font-weight:bold">어떻게 죽을 것인가 - 현대 의학이 놓치고 있는 삶의 마지막 순간</a><br/>아툴 가완디 지음, 김희정 옮김 / 부키 / 2022년 02월<br/></td></tr></table><br/>아툴 가완디의 &lt;어떻게 죽을 것인가&gt;는 한마디로 “현대 의학이 인공호흡기 달고 멱살 잡아서 억지로 살려놓은 수명, 과연 행복한가?”를 뼈 때리게 묻는 책이다. 저자는 의사 가운을 입고 나와서 “우리 의사들이 그동안 번지수를 잘못 짚었습니다”라며 의학계의 대반성문을 유쾌하고도 묵직하게 써 내려간다.&nbsp;현대 의학은 인류의 수명을 늘리는 데는 대성공을 거두었다. 문제는 죽음을 ‘자연스러운 섭리’가 아니라 ‘치료하면 완치되는 질병’으로 착각한다는 점이다. 그 결과, 우리는 인생의 마지막 페이지를 중환자실에서 온갖 콧줄과 호스에 묶인 채 ‘인간 사이보그’ 상태로 맞이하게 되었다. 성공 확률 1%의 독한 항암제를 권하며 “포기하지 마세요!”를 외치는 의사들 덕분에, 환자들은 가족들과 따뜻한 눈 맞춤 한 번 못 하고 픽셀 깨진 모니터 신호음 속에서 퇴장하는 비극이 발생한다. 의료 기술이 좋아질수록 죽어가는 과정은 오히려 잔인해지는 청개구리 같은 상황인 것이다.&nbsp;현대식 요양원 시스템을 향한 풍자도 매섭다. 요즘 요양원은 환자의 안전과 위생을 신주단지 모시듯 한다. 낙상 방지를 위해 침대에 묶어두고, 정해진 시간에 사료 주듯 밥을 먹인다. 군대보다 더 철저한 규칙 속에서 노인들은 안전하게, 하지만 지독하게 지루해서 말라 죽어간다. 가완디는 노인들에게 필요한 건 ‘멸균실 같은 안전’이 아니라, ‘오늘 간식으로 단팥빵을 먹을지 말지 결정하는 사소한 자율성’이라고 꼬집는다. 실제로 요양원에 식물과 개, 고양이를 풀어놓았더니 노인들이 약을 끊고 생기를 찾았다는 황당하고도 감동적인 일화는 인간이 단순한 생명 유지 장치가 아님을 증명한다.&nbsp;저자는 척수 종양에 걸린 제 아버지를 간호하며 직접 겪은 짠내 나는 에피소드로 해결책을 제시한다. 바로 “남이 똥 오줌을 닦아줘도, 내 손으로 초콜릿 아이스크림을 떠먹으며 축구 중계를 볼 수 있다면 그 삶도 오케이입니까?” 같은 얄짤없고 민망한 질문을 미리 나누라는 것이다. 이른바 ‘거시기한 대화’다. 이 불편한 수다 덕분에 저자의 아버지는 고통스러운 수술 대신 호스피스를 선택해 마지막 순간까지 와인을 마시며 존엄하게 커튼을 닫을 수 있었다고 한다.&nbsp;결국 이 책은 죽음에 대한 공포 극복기가 아니라, Well-being만큼이나 Well-dying이 중요하다는 ‘인생 마감 전략서’이다. 어차피 인간의 치사율은 100%. 이 절대적인 법칙을 당연하게 인정할 때, 비로소 “남은 시간 동안 어떤 초콜릿 아이스크림을 먹으며 살 것인가?”라는 진짜 중요한 인생의 가치가 보이기 시작한다. 병원 모니터의 그래프를 1분 더 늘리기보다, 내 삶의 마지막 페이지를 내 손으로 담담하게 덮고 싶게 만드는,&nbsp;이미 중년 독거인인 나 자신의 미래, 그리고 언젠가 맞이할 부모님의 마지막을 대하는 태도에 대해 깊이 생각할 거리를 던져주는 책. 이 땅의 늙어가는 모두가 읽어야 할 책으로 추천한다.<br>PS.&nbsp;가완디는 이 씁쓸한 현실을 증명하기 위해 19세기 고전인 톨스토이의 소설 &lt;이반 일리치의 죽음&gt;을 소환한다. 주인공 이반 일리치는 원인 모를 중병에 걸려 죽어가는데, 그를 진짜 미치게 만든 건 통증이 아니라 주변 사람들의 ‘지독한 연기’였다. 의사와 가족들은 그가 곧 죽을 것을 뻔히 알면서도 “약 잘 먹으면 나을 거다”, “기운 내라”라며 희망 고문을 이어간다. 가완디는 백 년 전 이 소설이 사실은 현대 병원의 완벽한 예언서라고 말한다. 오늘날의 의사들도 이반 일리치의 의사처럼 환자가 죽어간다는 진실을 마주하기 두려워, 온갖 검사와 치료법이라는 ‘의학적 핑계’ 뒤로 숨어버리기 때문이다. 결국 죽어가는 환자가 진정으로 원하는 건 “곧 나을 거다”라는 새빨간 거짓말이 아니라, 자신의 두려움을 함께 나누고 손을 잡아줄 진실한 사람인데 말이다. 참고로 나는 &lt;이반 일리치의 죽음&gt;을 읽었을 때 우리 나라도 존엄사를 허용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고, &lt;어떻게 죽을 것인가&gt;를 읽으면서도 비슷한 생각을 했다...ㅎ<br>]]></description><image><url>https://image.aladin.co.kr/product/28908/80/cover150/896051909x_1.jpg</url><link>https://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temId=289088021</link></image></item><item><author>안지</author><category>마이리뷰</category><title>폭풍 전의 고요, 사라질 것들의 지독한 아름다움 - [1913년 세기의 여름]</title><link>https://blog.aladin.co.kr/757135169/17325930</link><pubDate>Tue, 09 Jun 2026 21:43: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s://blog.aladin.co.kr/757135169/17325930</guid><description><![CDATA[<table width="100%" height="30" border="0" align="center" cellpadding="0" cellspacing="0"><tr><td width="14"><img src="https://image.aladin.co.kr/img/blog/trans.gif" width="14"></td><td width="85"><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8954622607&TPaperId=17325930" target="_blank"><img src="https://image.aladin.co.kr/product/3226/42/coveroff/8954622607_1.jpg" width="75" border="0" class="box1"></a></td><td valign="top"><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8954622607&TPaperId=17325930" target="_blank" style="color:#386DA1;font-weight:bold">1913년 세기의 여름</a><br/>플로리안 일리스 지음, 한경희 옮김 / 문학동네 / 2013년 10월<br/></td></tr></table><br/>플로리안 일리스의 &lt;1913년 세기의 여름&gt;은 거대한 파국(제1차 세계대전)이 닥치기 직전 유럽 거물들의 일기장과 영수증을 탈탈 털어 만든 고급 찌라시로ㅋ 찬란하게 번뜩이던 유럽의 문화적 절정을 1월부터 12월까지 월별로 기록한 독특한 역사 에세이다. 책의 가장 큰 매력은 교과서 속 거인들의 '인간적인 민낯'을 마주하는 즐거움에 있다. 순한맛 일례를 들어볼까. 프란츠 카프카는 연인에게 편지를 보낼지 말지 밤새 고뇌하는 소심한 고민러이자 어장관리 피해자로, 라이너 마리아 릴케는 엑스 여친 치맛폭 붙들고 나 여기 아퍼 저기 아퍼 징징대는 금쪽이로 그려진다. 정신분석학의 대가인 프로이트와 융은 학문적 주도권을 두고 유치한 기싸움을 벌이며, 아돌프 히틀러, 스탈린, 트로츠키, 티토가 같은 시기 오스트리아 빈의 쇤브룬 공원 근처에 머물며 서로 스쳐 지나갔을지도 모른다는 역사적 우연은 묘한 전율을 선사한다. 그 와중에 세상은 또 힙하게 돌아간다. 프라다 1호점이 문을 열었고, 루이 암스트롱이 처음으로 트럼펫을 잡았으며,〈봄의 제전&gt;이 파격적인 불협화음으로 초연되어 스트라빈스키는 관객들에게 멱살을 잡힌다. 기존의 모든 유행과 장벽이 무너지며 오늘날 우리가 아는 ‘Modernity’가 팝콘 터지듯 태어나는 순간이다. 결국 이 작품을 관통하는 정서는 '폭풍 전의 고요'와 '찬란한 데카당스'에 있다. 책 속 약 300 여명의 인물들은 눈앞에 닥쳐올 참혹한 전쟁을 알지 못한 채 각자의 예술과 사랑, 질투에 몰두한다. 이 책에서 플로리안 일리스는 역사가를 넘어, 과거의 파편들을 모아 완벽한 무대를 연출하는 극작가에 가깝다. 그는 독자에게 강요하지 않고, 그저 1913년의 단면들을 위트 있게 툭툭 던져줄 뿐이다. 하지만 독자는 이미 결말(1914년의 전쟁)을 알고 있기에, 그들의 사소한 행동 하나하나에 긴장하고 몰입하게 된다. 우리가 향유 하는 이 평화와 문화적 풍요도 어쩌면 내일 끝날지 모른다는 서늘한 경각심과 함께, 그럼에도 불구하고 인간이 남긴 예술과 사랑은 얼마나 지독하게 아름다운가를 그리고 인간이 얼마나 하찮을 수 있는가를 느끼게 해주는 띵작이다.&nbsp;<br>PS.&nbsp;플로리안 일리스가 책 전체를 1월부터 12월까지 구성했음에도 &lt;1913년 세기의 여름&gt;이라는 제목을 붙인 데에는, 문학적 비유와&nbsp;실제 역사적 사건이&nbsp;절묘하게 맞물린 이유가 있는 듯 하다.&nbsp;우선 이 책에서 '여름'은 계절을 넘어 '인류 문명이 가장 풍요롭고 뜨겁게 번영했던 전성기'를 상징하는 문학적 은유라고 본다.&nbsp;가을이 오면 낙엽이 지고 겨울이 오면 모든 것이 얼어붙듯, 1914년의 전쟁(겨울)이 오기 직전 인류가 누릴 수 있는 최고의 풍요와 자유가 절정에 달했던 순간이 바로 1913년의 '여름'이었던 것. 일리스는 이 찬란한 번영을 '세기의 여름'이라 부르며, 이는 곧 들이닥칠 빙하기(전쟁)와 극적인 대비를 이룬다. 또한&nbsp;책의 중반부인 5월에서 8월 사이(여름 시즌)가 되면, 전 유럽의 기라성 같은 인물들이 약속이나 한 듯 특정 휴양지로 몰려들며 이야기가 정점으로 치닫는데, 이때 흥미진진한 막장 드라마 같은 사건들이 대거 발생한다. 아니 이분이..? 헐 저분이..? 끝도 없이 나오니...이하 궁금하면 책으로 확인하길ㅋ<br><br>]]></description><image><url>https://image.aladin.co.kr/product/3226/42/cover150/8954622607_1.jpg</url><link>https://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temId=32264219</link></image></item><item><author>안지</author><category>마이리뷰</category><title>어차피 소멸할 육체라면, 차라리 영원할 환상으로 - [모렐의 발명]</title><link>https://blog.aladin.co.kr/757135169/17324714</link><pubDate>Tue, 09 Jun 2026 08:31: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s://blog.aladin.co.kr/757135169/17324714</guid><description><![CDATA[<table width="100%" height="30" border="0" align="center" cellpadding="0" cellspacing="0"><tr><td width="14"><img src="https://image.aladin.co.kr/img/blog/trans.gif" width="14"></td><td width="85"><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893746165X&TPaperId=17324714" target="_blank"><img src="https://image.aladin.co.kr/product/169/87/coveroff/893746165x_2.jpg" width="75" border="0" class="box1"></a></td><td valign="top"><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893746165X&TPaperId=17324714" target="_blank" style="color:#386DA1;font-weight:bold">모렐의 발명</a><br/>아돌포 비오이 카사레스 지음, 송병선 옮김 / 민음사 / 2008년 01월<br/></td></tr></table><br/>아돌포 비오이 카사레스의 &lt;모렐의 발명&gt;은 책을 덮은 후에도 서늘한 잔상이 오랫동안 남는 기묘하고도 아름다운 소설이다. 환상문학의 거장 호르헤 루이스 보르헤스가 이 소설을 두고 “완벽한 작품”이라 극찬한 이유를 페이지를 넘길 때마다 실감할 수 있다. 최대한 스포 없이 이 책이 주는 독특한 문학적 울림과 감상을 적어보려고 한다.&nbsp;이 소설은 고독의 극단에 몰린 한 인간의 내면을 현미경으로 들여다보듯 세밀하게 포착한다. 박해를 피해 외딴 무인도로 도망친 주인공은 생존의 위협보다 더 무서운 지독한 외로움과 마주한다. 그러던 중 섬에 나타난 수수께끼의 휴양객들과 그중 한 여인인 ‘포스틴’을 보며 주인공이 느끼는 감정은 무척 입체적이다. 신분이 탄로 날까 봐 두려워하면서도, 동시에 타인과 연결되고 싶어 하는 필사적인 갈망이 주인공의 일기 속에 고스란히 묻어난다. 눈앞에 사람이 존재하지만 그 누구와도 소통할 수 없는 주인공의 기괴한 상황은, 역설적으로 현대 사회를 살아가는 우리의 소외감과 지독히 닮아 있어 서글픈 공감을 자아낸다.&nbsp;무엇보다 놀라운 점은 이 작품이 집필된 시기가 1940년이라는 사실이다. 작가는 첨단 기술이라는 단어조차 생소했을 시대에, 오늘날의 가상현실(VR)이나 메타버스, AI가 만들어낸 홀로그램을 연상시키는 독창적인 상상력을 선보인다. 섬에서 벌어지는 기이하고 반복적인 현상들과 과학자 모렐의 등장은 단순한 미스터리를 넘어 타임루프물의 시초를 보는 듯한 서스펜스를 제공한다. 작가가 정교하게 설계한 미로 같은 플롯을 따라가다 보면, 어느 순간 이 섬 자체가 하나의 거대한 영적이고 철학적인 거울처럼 느껴진다.&nbsp;소설은 포스틴을 향한 주인공의 애절한 시선을 통해 ‘사랑의 본질’에 대한 묵직한 질문을 던지기도 한다. 주인공이 사랑하는 포스틴은 실제로 소통이 불가능한, 어쩌면 가닿을 수 없는 신기루 같은 존재다. 그럼에도 그녀를 향해 멈추지 않는 마음을 보며, 우리가 누군가를 사랑할 때 과연 그 사람의 ‘진짜 실체’를 사랑하는 것인지, 아니면 ‘내가 보고 싶어 하는 완벽한 이미지’를 사랑하는 것인지 되묻게 만든다.&nbsp;&lt;모렐의 발명&gt;은 가벼운 SF 소설이 아니다. 인간이 가진 영원에 대한 집착, 소멸에 대한 공포, 그리고 환상 속에서라도 구원받고 싶어 하는 나약함을 우아하고 차가운 필치로 그려낸 철학적 마스터피스다. 스포일러 없이 이 책을 펼친다면, 섬의 비밀이 풀리는 순간 짜릿한 지적 전율과 함께 인간 존재에 대한 깊은 슬픔을 동시에 경험하게 될 것이다.&nbsp;<br>PS. 이쯤에서 생각나는 소설 하나가 있는데, 허버트 조지 웰스의 &lt;모로 박사의 섬&gt;이다.&nbsp;두 작품은 모두 ‘외딴섬’ 이라는 격리된 공간에서 매드 사이언티스트의 기괴한 실험이 벌어지고, 그것을 관찰하는 이방인의 시선으로 전개된다는 점에서 매우 강력한 문학적 연결고리를 가진다. 가장 직접적인 연결고리는 두 매드 사이언티스트의 이름으로, 비오이 카사레스는 웰스의 ‘모로 박사(Dr. Moreau)’에 대한 존경과 오마주를 담아 자신의 주인공 과학자 이름을 ‘모렐(Morel)’로 지었다고 한다. 발음과 스펠링 모두 의도적으로 닮아 있다. 두 인물 모두 자신의 지적 도취를 위해 타인의 고통이나 생명을 수단으로 삼는 냉혹한 천재들이라는 점과&nbsp;모두 과학자의 이기적인 발명(실험) 때문에 피조물들이 비극을 맞이하며, 이를 통해 ‘인간이란 무엇인가’라는 철학적 질문을 던진다는 공통점이 있다.&nbsp;결정적인 차이점이라면, &lt;모로 박사의 섬&gt;(1896)이 19세기 말 생물학의 발전에 따른 육체적·생물학적 공포(축축한 동물성)를 다루었다면, &lt;모렐의 발명&gt;(1940)은 20세기 중반 기술 발전에 따른 건조한 정신적·존재론적 고독(건조한 가상현실과 환상)으로 한 단계 더 나아갔다는 것이라 하겠다. 비오이 카사레스는 웰스가 다진 SF적 토대 위에 '사랑'과 '인식론'이라는 문학적 아름다움을 더해 &lt;모렐의 발명&gt;이라는 독창적인 걸작을 완성해 낸 것이다.&nbsp;웰스의 거친 상상력이 카사레스에게 건너가 어떻게 이토록 우아하고 서글픈 로맨스로 재탄생 했는지 비교해 보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흥미롭다. 호불호가 갈릴 수 있겠으나 당긴다면 두 책 모두 추라이 해보시길~<br>]]></description><image><url>https://image.aladin.co.kr/product/169/87/cover150/893746165x_2.jpg</url><link>https://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temId=1698797</link></image></item><item><author>안지</author><category>마이리뷰</category><title>인생의 운전대 남한테 아웃소싱하지 않는 상녀자의 초상 - [여인의 초상 2]</title><link>https://blog.aladin.co.kr/757135169/17323327</link><pubDate>Mon, 08 Jun 2026 13:43: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s://blog.aladin.co.kr/757135169/17323327</guid><description><![CDATA[<table width="100%" height="30" border="0" align="center" cellpadding="0" cellspacing="0"><tr><td width="14"><img src="https://image.aladin.co.kr/img/blog/trans.gif" width="14"></td><td width="85"><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8937462982&TPaperId=17323327" target="_blank"><img src="https://image.aladin.co.kr/product/2076/85/coveroff/8937462982_2.jpg" width="75" border="0" class="box1"></a></td><td valign="top"><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8937462982&TPaperId=17323327" target="_blank" style="color:#386DA1;font-weight:bold">여인의 초상 2</a><br/>헨리 제임스 지음, 최경도 옮김 / 민음사 / 2012년 10월<br/></td></tr></table><br/>줄거리는 심플하다. 영혼까지 맑고 똑 부러지는 미국 소녀 이사벨이 유럽 상류사회에 진출하면서 벌어지는 이야기.&nbsp;여기에 막대한 유산까지 상속받으며 "아싸, 이제 내 인생 내 마음대로 플렉스하며 살아야지!"라고 외쳤으나, 세상은 그리 호락호락하지 않다. 돈 냄새를 맡고 꼬여드는 속물들의 화려한 가스라이팅 기술에 휘말리게 되면서 오스몬드라는 똥차, 그리고 이사벨 인생에 그 거대한 똥차를 밀어 넣은 취업 사기 기획사 대표 마담 멀, 앤드 혹 팬지...를 만나 꼬이게 되거든.&nbsp;흔한 옛날 소설이라면 "결국 백마 탄 왕자님이 나타나 불쌍한 여주인공을 구원해 주었습니다"로 끝났겠지만&nbsp;이사벨은 ‘남주 잘 만나 팔자 고치는 뻔한 로맨스’의 시나리오를 시작부터 찢어버린다. 이 소설의 백미다.&nbsp;질풍노도를 겪으며 멘탈 탈탈 털리지만 결국 자신이 내린 모든 선택의 무게를 피하지 않고 정면 돌파하는 이사벨, 그녀는 비록 주변 환경은 쇠창살 없는 감옥 같을지라도, 정신줄만큼은 단단히 붙잡고 인생의 운전대 남한테 아웃소싱하지 않는 상녀자적 모먼트를 보여준다. 주변에서 온갖 남자들이 "내가 널 구원하겠어!"라며 메시아 빙의를 시도하지만, 남성에게 종속되는 서사 자체를 초반부터 단호하게 거절하는 이사벨. 그리고 그 의지는 남편이 아닌 '나만의 관계망'을 지키기 위한 능동적 선택으로 이어진다.&nbsp;그 의미로 다들 의아해 하는 로마로의 귀환은 남편에게 복종하기 위함이 아니라, 자신이 진심으로 연결되어 있다고 느끼는 타인들과의 관계를 책임지기 위해서가 아니었을까 생각한다. 특히 팬지를 오스몬드의 가스라이팅과 통제로부터 보호하겠다는 약속은 핵심적인 계기였을 것이다. 이는 가부장제라는 폭력적 구조 속에서 더 약한 위치에 있는 여성을 외면하지 않고 그들과 연대하겠다는 '여성적 책임감'의 발로로 볼 수 있을 터. 비록 남편과의 심리적 관계는 완전히 끊어냈을지언정, 자신이 주체적으로 선택한 도덕적 의무는 끝까지 짊어지겠다는 의지랄지..&nbsp;여튼 21세기의 여성 독자가 보기에 결론이 다소 고구마일 수 있겠으나 19세기 통념상 불행한 여성이 선택할 수 있는 길은 대개 '진짜 좋은(?) 남자'를 만나 구원받는 낭만적 해피엔딩이었음을 생각하자면 100년 전 이사벨은 남성 중심의 서사로부터 충분히 영리하게 탈출했다고 생각한다.<br style="box-sizing: border-box; border: 0px solid rgb(231, 234, 240);"><br style="box-sizing: border-box; border: 0px solid rgb(231, 234, 240);">참 거시기한 번역이 거슬리지만 나 따위가 뭐라고 역자를 욕하랴 참고 참다 보면 어느새 익숙해지는 묘하게 말도 안되면서 되는 번역ㅋ<br style="box-sizing: border-box; border: 0px solid rgb(231, 234, 240);"><br style="box-sizing: border-box; border: 0px solid rgb(231, 234, 240);">여튼 한줄평: 내가 싼 똥 내가 치우지, 누가 치우나. 자력 인생 맵다, 매워.<br>]]></description><image><url>https://image.aladin.co.kr/product/2076/85/cover150/8937462982_2.jpg</url><link>https://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temId=20768557</link></image></item><item><author>안지</author><category>마이리뷰</category><title>여기만 조금 조지면 제 인생이 바뀔 것 같은데요. - [몸몸]</title><link>https://blog.aladin.co.kr/757135169/17317883</link><pubDate>Fri, 05 Jun 2026 09:12: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s://blog.aladin.co.kr/757135169/17317883</guid><description><![CDATA[<table width="100%" height="30" border="0" align="center" cellpadding="0" cellspacing="0"><tr><td width="14"><img src="https://image.aladin.co.kr/img/blog/trans.gif" width="14"></td><td width="85"><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K382934730&TPaperId=17317883" target="_blank"><img src="https://image.aladin.co.kr/product/35223/57/coveroff/k382934730_1.jpg" width="75" border="0" class="box1"></a></td><td valign="top"><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K382934730&TPaperId=17317883" target="_blank" style="color:#386DA1;font-weight:bold">몸몸</a><br/>박서련 지음 / 위즈덤하우스 / 2024년 11월<br/></td></tr></table><br/>&lt;몸몸&gt;은 자기 몸의 ‘특정 부위’와 평생 평화 협정을 맺지 못한 주인공의 피·땀·눈물 어린 사투를 다루고 있다.&nbsp;줄거리를 다 털면 안되니 핵심 구조만 말하자면, 이 소설은 [콤플렉스 발견] -&gt; [극단적 결단(의학의 힘)] -&gt; [뜻밖의 사회적 태클]이라는 간결하고도 강력한 3단 콤보로 이루어져 있는데,&nbsp;소설의 초반 뼈대를 지탱하는 건 하이퍼리얼리즘 가득한 성형외과 실장과의 '밀당'이다.나: "여기만 조금 조지면 제 인생이 바뀔 것 같은데요."상담실장님: "어머, 고객님! 정답을 아시네! 근데 거기보단 여기가 더 문제세요. 이쪽도 하시면 세일 들어가시구요~"작가는 이런 식의 대화와 심리를 아주 찰지게 묘사한다. 내 몸을 자꾸 '파츠' 단위로 나누어 평가하는 현대 사회의 씁쓸한 단면을, 주인공의 웃픈 독백을 통해 유쾌하게 꼬집어내고 있다.&nbsp;이 소설의 또 다른 관전 포인트는 '우정이라는 이름의 뼈 때리기'다.&nbsp;단순한 다이어트 성공기나 실패기였다면 지루했을 건데, 뼈대를 이루는 진짜 갈등은 '내 몸뚱이'가 아니라 '남의 눈', 특히 '가장 가까운 타인의 입방정'에 있다.&nbsp;현대인의 감옥인 단체 카톡방을 통해 주인공의 은밀한 비밀이 중계되는 순간, 소설은 스릴러 뺨치는 긴장감을 선사하는데, 대놓고 욕하진 않지만 은근히 걱정해 주는 척하면서 멕이는 위선의 현장을 지켜보는 재미가 또 아주 쏠쏠하다.&nbsp;그래서 이 책, 어떤 맛이냐 하면?&nbsp;0.1밀리미터도 도망칠 수 없는 '육체'라는 감옥을 인정하게 만드는 묵직한 팩트 폭행(매운맛). &amp; '나만 이러고 사는 게 아니구나' 하는 안도감과, 작가 특유의 찰진 입담이 주는 소소한 유머(단맛).&nbsp;결말이 어떻게 될지, 주인공의 거대 프로젝트가 성공할지 실패할지는 책을 통해 확인해 보도록~ 확실한 건, 이 책을 읽고 나면 거울 속에 비친 내 뱃살이나 콤플렉스를 보며 '에휴, 그래. 너도 나랑 사느라 고생이 많다' 하고 슬쩍 웃으며 토닥여줄 여유가 생길 것이다. 아마도?ㅎ&nbsp;재밌다. 짧다. 짧고 재밌다.&nbsp;]]></description><image><url>https://image.aladin.co.kr/product/35223/57/cover150/k382934730_1.jpg</url><link>https://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temId=352235781</link></image></item><item><author>안지</author><category>마이리뷰</category><title>여름에 여름책 읽고 싶어, 호기심에 펼쳤다간 큰 화를 입을 것이야 - [바덴바덴에서의 여름]</title><link>https://blog.aladin.co.kr/757135169/17316422</link><pubDate>Thu, 04 Jun 2026 12:33: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s://blog.aladin.co.kr/757135169/17316422</guid><description><![CDATA[<table width="100%" height="30" border="0" align="center" cellpadding="0" cellspacing="0"><tr><td width="14"><img src="https://image.aladin.co.kr/img/blog/trans.gif" width="14"></td><td width="85"><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8937461331&TPaperId=17316422" target="_blank"><img src="https://image.aladin.co.kr/product/64/49/coveroff/8937461331_2.jpg" width="75" border="0" class="box1"></a></td><td valign="top"><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8937461331&TPaperId=17316422" target="_blank" style="color:#386DA1;font-weight:bold">바덴바덴에서의 여름</a><br/>레오니드 치프킨 지음, 이장욱 옮김 / 민음사 / 2006년 04월<br/></td></tr></table><br/>소설은 1867년, 도스토예프키가 그의 두 번째 아내 안나 그리고리예브나와 함께 빚쟁이들을 피해 독일의 휴양 도시 바덴바덴으로 도피성 여행을 떠난 시기를 배경으로, 도스토예프스키의 실제 전기적 사실(일기, 편지)을 바탕으로 한 픽션과, 작가인 치프킨 자신이 1970년대 후반 소련 시절 레닌그라드를 여행하는 현재의 이야기가 교차하며 시작된다.&nbsp;제목은 &lt;바덴바덴에서의 여름&gt;이지만, 실상은 &lt;도스토예프스키의 탕진 앤 분노의 질주&gt;에 가까운데&nbsp;주요 등장 인물로는 먼저 표도르 도스토예프스키 (닉넴: 도스토예프고니, 인생뭐있어)로 세계적인 천재 문학가인 건 알겠는데, 현실에서는 그냥 이숙캠 속 ‘최악의 남편’을 모아놓은 화상이다.&nbsp;그리고 안나(닉넴: 보살, 생불)로 도스토예프스키의 아내. 이 소설의 실질적인 주인공이자 유럽 역사상 최고의 멘탈 갑으로&nbsp;남편이 자기 옷까지 저당 잡혀 도박하는 와중에도 '우쭈쭈, 우리 남편 그럴 수 있지..' 하며 다 받아준다. 안나의 이 눈물겨운 보살핌 덕분에 도스토예프스키가 굶어 죽지 않고 살아남아 나중에 &lt;카라마조프 가의 형제들&gt; 같은 대작을 쓰게 되니 인류 문학계는 안나에게 큰 빚을 졌다ㅋ&nbsp;마지막으로 이반 투르게네프 (닉넴: 금수저, 유럽인싸), 도스토예프스키가 돈 잃고 질질 짜고 있을 때 저 멀리서 하얗고 멋진 옷 입고 우아하게 사뿐 걸어와 도스토예프스키를 열폭하게 만드는 인물이다.&nbsp;귀족적이고 부유하며 서구화된 투르게네프와, 가난하고 병들었으며 슬라브주의를 부르짖던 도스토예프스키 사이의 미묘한 열등감과 자존심 싸움이 날카롭게 그려진다.&nbsp;이 유치찬란한 두 문호들의 기싸움을 구경하는 게 또 이 소설의 꿀잼 포인트.&nbsp;도스토예프스키라는 거장의 영혼을 해부한 문학적 오마주이자, 숨 막히는 소련의 감시 속에서 문학에 대한 순수한 열정 하나만으로 비밀리에 글을 썼던 치프킨 자신의 영혼의 기록인 이 책, 참고로&nbsp;마침표가 거의 없이 의식의 흐름 기법에 따라&nbsp;호흡이 가쁜 문장이 끝도 끝도 없이 이어진다.&nbsp;"도스토예프스키가 카지노로 뛰어가는데 아내는 울고 전당포 주인은 비웃고 날씨는 더워 죽겠는데 저기서 투르게네프가 걸어오고 아 참 나도 지금 레닌그라드 기차 안인데 내 옆자리 사람은 자고 있고..." 이런 식ㅋ&nbsp;읽다 보면 제발 마침표 하나만 찍어 달라고 빌고 싶을 정도니 발랄하고 상큼한 여름 휴양지를 상상하며 여름에 여름책 읽고 싶어, 호기심에 펼쳤다간 큰 화를 입을 것이야ㅋ<br><br>PS. 런던의 한 중고 서점에서 우연히 이 책을 읽은 수전 손택이 "현대 세계 문학의 꼭대기에 놓여야 할 아름다운 걸작"이라는 찬사와 함께 서문을 썼고, 이로 인해 세계적인 주목을 받게 되었다고 한다.&nbsp;뜨거운 태양 아래 숨 가쁘게 달리는 여름이 아니라, 울창하고 짙은 녹음 속에서 유유히 흘러가는 느린 시간의 미학을 느껴보고 싶다면 한 번 쯤 읽어보길~<br><br>]]></description><image><url>https://image.aladin.co.kr/product/64/49/cover150/8937461331_2.jpg</url><link>https://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temId=644996</link></image></item><item><author>안지</author><category>마이리뷰</category><title>˝대다수의 사람들이 돈을 지긋지긋해한다. 너무 좋아서, 그럼에도 없어서.˝ - [돈 안 쓰면 죽는 병]</title><link>https://blog.aladin.co.kr/757135169/17316031</link><pubDate>Thu, 04 Jun 2026 08:22: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s://blog.aladin.co.kr/757135169/17316031</guid><description><![CDATA[<table width="100%" height="30" border="0" align="center" cellpadding="0" cellspacing="0"><tr><td width="14"><img src="https://image.aladin.co.kr/img/blog/trans.gif" width="14"></td><td width="85"><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K542036864&TPaperId=17316031" target="_blank"><img src="https://image.aladin.co.kr/product/35521/50/coveroff/k542036864_1.jpg" width="75" border="0" class="box1"></a></td><td valign="top"><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K542036864&TPaperId=17316031" target="_blank" style="color:#386DA1;font-weight:bold">돈 안 쓰면 죽는 병</a><br/>이두온 지음 / 위즈덤하우스 / 2025년 01월<br/></td></tr></table><br/>우리가 흔히 쓰는 '시발비용'이, 소설 속에서는 죽기 싫어 발버둥 치는 진짜 '시발(survival)비용'이 되어버린 눈물겨운 블랙코미디다.&nbsp;그러니까 우리가 월급날도 아닌데 못참고 장바구니 털면서 “아 이건 사야 낫는 병이야” 하고 자위하던 걸, 작가가 옆에서 지켜보다가 “어? 그래? 그럼 진짜 안 사면 대가리 터지는 병을 만들어줄게.” 하고 급발진해 버린거지ㅋ&nbsp;맥락은 완벽하게 같은데, 스케일이 ‘통장 잔고 잔혹사’에서 ‘목숨 서바이벌’로 커졌다.&nbsp;우리가 텀블러가 없어서 또 사고, 신발이 없어서 또 사는 게 아니잖나? 그 ‘결제 완료’ 팝업창이 뜰 때 뇌에서 팡 터지는 짜릿한 중독성(a.k.a 도파민) 때문에 사는 건데, 소설 속 환자들은 그야말로 목숨 걸고 쇼핑하는 프로 억까 쇼핑러들이 된 거임.&nbsp;카드 명세서 보고 “나 미쳤나 봐, 돈 안 쓰면 죽는 병 걸렸나?” 하던 우리의 농담을 가장 맵고 살벌하게 구현한 자본주의 판 잔혹동화라고 보면 되려나.&nbsp;편하게 택배 상자 뜯다가 문득 뒤통수가 서늘해지는 듯한 매력이 있다. 짧아서 더 매력적.&nbsp;글맛이 쫄깃쫄깃하니 한번들 읽어보길 추천~]]></description><image><url>https://image.aladin.co.kr/product/35521/50/cover150/k542036864_1.jpg</url><link>https://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temId=355215034</link></image></item><item><author>안지</author><category>마이리뷰</category><title>당신은 어떤 사랑을 믿는가? - [이런 이야기]</title><link>https://blog.aladin.co.kr/757135169/17311081</link><pubDate>Mon, 01 Jun 2026 13:52: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s://blog.aladin.co.kr/757135169/17311081</guid><description><![CDATA[<table width="100%" height="30" border="0" align="center" cellpadding="0" cellspacing="0"><tr><td width="14"><img src="https://image.aladin.co.kr/img/blog/trans.gif" width="14"></td><td width="85"><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1185014500&TPaperId=17311081" target="_blank"><img src="https://image.aladin.co.kr/product/4030/67/coveroff/1185014500_1.jpg" width="75" border="0" class="box1"></a></td><td valign="top"><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1185014500&TPaperId=17311081" target="_blank" style="color:#386DA1;font-weight:bold">이런 이야기</a><br/>알레산드로 바리코 지음, 이세욱 옮김 / 비채 / 2014년 04월<br/></td></tr></table><br/>그의 문장은 음악 같고, 그가 창조한 세계는 현실과 환상의 경계에 서 있다. 한 번 읽어선 뭔 소린지 잘 모르겠단 말이다ㅋ 불친절한 서사 구조, 이미지나 독백, 추상적인 은유로만 상황을 묘사하다 보니 상상하며 읽기가 까다로워 스토리 보다는 잔상으로 기억해야 될 책에 가깝다.&nbsp;특히 일기 형식으로 진행되는 '엘리자베타' 파트는 정말 인내심을 요하는, 기묘하고도 한편으로는 가슴 아플 정도로 아름다운 부분이었는데 오늘은 이걸 중점적으로 감상문을 써 보겠다.&nbsp;이 파트는 일반적인 일기처럼 "오늘 무엇을 했다"가 아니라, 엘리자베타의 의식의 흐름과 파편화된 기억을 그대로 쏟아내듯 서술한다.&nbsp;주인공 울티모와 엘리자베타는 미국에서 피아노를 팔고 교습을 하며 함께 떠돌아다니는데, 작가는 두 사람의 대화나 서사를 친절하게 설명해 주지 않는다. 그저 엘리자베타의 복잡한 내면, 울티모를 향한 어긋나고 어설픈 감정, 흘러가는 풍경들을 음악의 선율처럼 모호하게 읊조린다. 엘리자베타와 울티모는 서로를 깊이 갈망하면서도, 늘 결정적인 순간에는 어긋나고 서툴다. 얼굴을 마주 보고는 도저히 꺼낼 수 없었던 두려움, 상처, 그리고 울티모를 향한 집착에 가까운 감정들을 엘리자베타는 일기라는 비밀 통로를 통해 고백한다. 직접 말하기엔 부끄럽거나 무겁지만, 일기장에 슬쩍 흘려두면 언젠가 울티모가 발견하고 자신을 온전히 이해해 줄지 모른다는 일종의 유서같은 기대감으로. 울티모는 평생 '세상에서 가장 완벽한 경주로(선)'라는 거대한 환상에 사로잡혀 사는 남자였다. 그의 시선은 늘 자신이 가야 할 먼 길을 향해 있었고, 엘리자베타는 그의 곁에 있으면서도 늘 지독한 외로움을 느꼈다. 그렇기에 자신의 일기를 울티모가 읽어주길 바라고 쓰는데, 왜 그런 거 있지 않나. 아무도 보지 않는 일기를 쓸 때조차 은연중에 '미래의 나' 혹은 '가상의 관객'을 상정하고 문장을 다듬고 그러는 거. 엘리자베타의 일기는 독자인 우리에게는 불친절한 수수께끼 같지만, 사실은 울티모라는 단 한 사람만을 향해 쓰인 아주 사적인 연서에 가깝다. 울티모가 그것을 읽고 미치도록 헤매기를, 혹은 자신을 영원히 기억하기를...반면, 울티모에게 있어 종이 위에 새기는 글자는 붙잡아두는 것이고, 멈춰 세우는 것이며, 박제하는 것. 그러므로 일기를 보기는 하지만 아무 대답도 남기지 않는다. 엘리자베타는 읽히기를 원하며 빽빽하게 썼고, 울티모는 전해지기를 원하며 철저하게 비워두었다. 만약 그가 "미안하다", "기다려달라", "사랑했다" 같은 한 줄을 남겼다면, 그 순간 두 사람의 관계는 현실의 그럭저럭한 이별로 지워져 버렸을지도 모른다. 울티모는 아무것도 남기지 않음으로써, 오히려 두 사람의 관계를 영원히 미완성의 아름다운 선으로 보존하고 싶었던 것일지도 모른다.&nbsp;여기까지, 벗, 그러나,&nbsp;'영원히 미완성의 아름다운 선으로 보존하'는게 진짜 사랑일까. 여기서 예술가들이 수세기 동안 논쟁해 온 ‘예술적 영원함’과 ‘현실의 비루한 행복’ 사이의 갈등을 떠올릴지 않을 수 없다. 울티모처럼 완벽한 순간만을 박제하기 위해 침묵으로 떠나버리는 것은, 상대방에게 평생 마르지 않는 갈증과 상처를 남기는 행위이다. 남겨진 이에게 그 '아름다운 미완성'은 그저 잔인한 저주일 뿐이니까. 그런 의미에서 울티모의 사랑은 지독하게 이기적이다. 결국 이 소설은 그 둘의 어긋남을 통해 "당신은 어떤 사랑을 믿는가?"라는 질문을 던지는 듯 하다. 울티모의 방식은 영원히 썩지 않는 '조각상' 같은 사랑을 만드는 것이었고, 엘리자베타가 원했던 건 언젠가 시들더라도 지금 살아 숨 쉬는 '꽃' 같은 사랑이었다. 울티모의 방식은 '진짜 사랑'이라기보다는, '사랑이라는 감정을 대하는 울티모만의 지독하고 외로운 종교'가 아니었을까. 그는 엘리자베타를 사랑했지만, 자신이 쫓는 완벽한 세계를 더 사랑했기에 그녀에게 상처를 줄 수밖에 없었던 게 아니었을까. 례술가들이 문학적인 수사나 화려한 은유로 입을 털 때 쯤 정신 차리고 본질을 뜯어보면 사랑이란 이렇게나 단순하고 냉정하다ㅋ 진짜로 상대방을 내 목숨만큼, 내 전부만큼 사랑했다면 그 사람이 알아듣지도 못할 ‘수수께끼 같은 그림’이나 ‘완벽한 선’ 뒤로 숨지 않았을 것이다. 내 옆에서 울고 있는 사람을 두고 아스팔트 바닥에 대고 연애편지를 쓰고 있진 않았을 것이다. 결국 울티모에게 가장 소중했던 건 엘리자베타라는 한 인간이 아니라, 그녀를 사랑하는 '자기 자신'과 '자신의 머릿속에 존재하는 완벽한 세계'가 아니었을지. 그는 자기가 다칠까 봐, 혹은 자기가 구축한 순수한 예술 세계가 현실의 구질구질함에 오염될까 봐 겁을 낸 비겁한 완벽주의자일지도 모른다. 엘리자베타를 사랑하긴 했지만, 그 사랑마저도 철저히 '내 안의 세계'를 완성하기 위한 재료로 써버린 셈이니까. 남겨진 엘리자베타의 그 외롭고 지지부진한 현실을 모른 척하면서...됐다 그만하자 남의 사랑에 내가 뭐라고 사실은 이제 그만 귀찮아져서ㅋ 여튼 &lt;이런 이야기&gt;는 세상의 소음과 전쟁의 상처 속에서, 평생 자기만의 완벽한 길(경주로)을 만들고 싶어 했던 한 찬란하게 외롭고 이기적인 남자의 이야기. 한 번은 부족하다. 두 번 세 번 읽어라~]]></description><image><url>https://image.aladin.co.kr/product/4030/67/cover150/1185014500_1.jpg</url><link>https://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temId=40306754</link></image></item><item><author>안지</author><category>마이리뷰</category><title>멈출 수 없는 변화에 대한 두려움과 경외 - [신들의 양식은 어떻게 세상에 왔나]</title><link>https://blog.aladin.co.kr/757135169/17304447</link><pubDate>Fri, 29 May 2026 19:30: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s://blog.aladin.co.kr/757135169/17304447</guid><description><![CDATA[<table width="100%" height="30" border="0" align="center" cellpadding="0" cellspacing="0"><tr><td width="14"><img src="https://image.aladin.co.kr/img/blog/trans.gif" width="14"></td><td width="85"><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K352937999&TPaperId=17304447" target="_blank"><img src="https://image.aladin.co.kr/product/32931/2/coveroff/k352937999_1.jpg" width="75" border="0" class="box1"></a></td><td valign="top"><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K352937999&TPaperId=17304447" target="_blank" style="color:#386DA1;font-weight:bold">신들의 양식은 어떻게 세상에 왔나</a><br/>허버트 조지 웰스 지음, 박아람 옮김 / 휴머니스트 / 2023년 12월<br/></td></tr></table><br/>이 소설은 단순히 '거대해진 생명체'에 대한 공포를 넘어, 성장이라는 불가역적인 진보와 그것을 수용하지 못하는 구시대적 가치관의 충돌을 다룬 날카로운 예언서다. 소설의 시작은 지극히 현대적인데, 베닝턴과 레드먼드라는 두 과학자가 생명체의 성장 과정을 연구하던 중 성장을 방해하는 요소를 제거하고 폭발적인 성장을 유도하는 물질 '헤라클레오포비아'를 발명한다. 문제는 이 '양식'이 세상에 나온 방식이 매우 부주의했다는 점으로 관리인들의 나태함으로 인해 이 물질은 환경으로 유출되고, 거대해진 쥐, 말벌, 닭들이 인간 사회를 위협하기 시작한다. 여기서 작가는 인간의 지적 능력(과학)은 비약적으로 발전하지만, 그것을 관리할 윤리적·사회적 책임감은 여전히 미성숙함을 꼬집는다. 또한 이 작품을 통해 우리에게 묻는다. 우리는 '양식'을 받아들여 거인이 될 준비가 되었는가, 아니면 그 양식을 독약이라 부르며 파괴하려 하는가? 오늘날 인공지능이나 유전자 편집처럼 인류의 존재 방식을 근본적으로 바꿀 '현대판 신들의 양식'을 마주한 우리에게, 100년도 더 된 이 소설이 여전히 유효한 이유다. 웅장한 스케일 속에서도 인간 심연의 옹졸함을 꿰뚫어 보는 작가의 통찰력이 돋보이는 수작. 주위의 기념일을 맞이한 지적인 아해들에게 선물도 많이 한 책이다. 봉투 끼워서ㅋ]]></description><image><url>https://image.aladin.co.kr/product/32931/2/cover150/k352937999_1.jpg</url><link>https://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temId=329310267</link></image></item><item><author>안지</author><category>마이리뷰</category><title>결혼하기에 너무 완벽한, 그래서 잔인한 날씨 - [결혼식을 위한 쾌적한 날씨]</title><link>https://blog.aladin.co.kr/757135169/17304431</link><pubDate>Fri, 29 May 2026 19:09: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s://blog.aladin.co.kr/757135169/17304431</guid><description><![CDATA[<table width="100%" height="30" border="0" align="center" cellpadding="0" cellspacing="0"><tr><td width="14"><img src="https://image.aladin.co.kr/img/blog/trans.gif" width="14"></td><td width="85"><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K232930475&TPaperId=17304431" target="_blank"><img src="https://image.aladin.co.kr/product/33786/57/coveroff/k232930475_1.jpg" width="75" border="0" class="box1"></a></td><td valign="top"><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K232930475&TPaperId=17304431" target="_blank" style="color:#386DA1;font-weight:bold">결혼식을 위한 쾌적한 날씨</a><br/>줄리아 스트레이치 지음, 공보경 옮김 / 휴머니스트 / 2024년 04월<br/></td></tr></table><br/>줄리아 스트레이치의 1932년작 소설 &lt;결혼식을 위한 쾌적한 날씨&gt;는 겉보기에 완벽한 결혼식 날, 그 이면에 일렁이는 인물들의 불안과 소외감을 날카롭게 포착한 모더니즘 소설의 숨겨진 명작이다. 작가는 인간의 위선과 사회적 관습을 풍자하면서도 인물의 미묘한 심리를 인상주의 회화처럼 섬세하게 그려낸다. 소설의 배경인 영국의 3월은 강한 바람이 우짖으며 휘몰아치는 잿빛 날씨. 하지만 신부의 어머니인 대첨 부인은 끊임없이 "날씨가 참 아름답구나!"라고 외친다. 이 대사는 작품 전체를 관통하는 핵심적인 위선이다. 인생의 중대한 결정을 앞둔 주인공, 확신 없는 미래에 대한 불안과 흘러간 과거에 대한 미련으로 가득 찬 돌리는 결혼식 당일 아침, 화사한 드레스를 입은 채 방 안에서 홀로 독주 병나발을 불며 심란한 마음을 달랜다. 결혼식장에 모인 가족과 하객들의 모습은 영국의 전형적인 사교 문화를 보여주며 씁쓸한 미소를 자아낸다. 식을 완벽하게 치러내야 한다는 강박에 사로잡힌 신부의 어머니, 그리고 진심 어린 축하보다는 의례적인 덕담만 주고받는 하객들의 대화는 겉치레로 가득 차 있다. 여기에 돌리의 엑스 남친 조셉이 하객으로 참석하면서, 전시장 같은 식장 내부에는 묘한 긴장감과 어색함이 감돈다. 인물들은 서로의 진짜 감정을 외면한 채, 사회적 역할극에 충실할 뿐이다. 작가는 자극적인 사건을 무대에 올리는 대신, 인물들의 미세한 몸짓, 시선 처리, 영혼 없는 대화의 틈새를 통해 인간의 위선과 찌질함을 조용히 폭로한다. 모두가 행복해야만 하는 '결혼식'이라는 프레임 속에서, 정작 주인공들은 소통하지 못한 채 각자의 섬에 갇혀 뚝딱거린다. 이 작품은 인생의 가장 화려한 순간에 찾아오는 개인의 고독과 혼란을 영국식의 절제된 유머로 그려낸다. 겉은 멀쩡해 보이지만 속은 삐걱거리는 인간의 내면을 날씨라는 거울을 통해 잔잔하면서도 선명하게 비추는 수작으로 소설을 덮고 나면, 맑은 하늘을 보면서도 "정말 오늘 날씨가 쾌적한가?"라고 자문하게 만드는 묘한 여운이 남는다.<br><br>PS.&nbsp;번외로 결혼식에 엑스 남친이 찾아오는 진상짓에 대해 아울러&nbsp;의사소통 능력 마이너스인 두 F가 만나 온 우주의 타이밍을 비껴가는 대환장 감정 낭비극에 대해&nbsp;쌉T의 시선으로 잠깐 생각해 봄ㅋ&nbsp;먼저 전 남친 조셉. 결혼을 엎을 대담함도 없으면서 굳이 남의 경사에 기어들어 와 구석에서 어두운 아우라로 낄끼빠빠를 모르고&nbsp;분위기 10창 내고 있음. 왜 왔냐고 묻거든 그냥 이라 답하지요 목적 의식 제로 뚝딱이. 신부 돌리도 만만찮다. 새 남편과 계약(합의)서 도장 찍기 직전인데, 전 남친 얼굴 봤다고 드레스 뻗쳐 입고 방구석에서 병나발을 불며 멘탈 털려서 울고 불고 난리 부르스. 진작 결단 내리지 못하고 왜 이제 와서 날 떠나지 마 날 보내지 마 서로 이러고 있는지 도저히 나는 이해 불가라 이 부분에서 밤고구마 오백개 처묵했셈ㅋㅋ 과거에 시원하게 웃짱 까고ㅋㅋㅋ 팩트로 대화했으면 끝날 일을, 끝까지 아련한 눈빛으로 ‘내 마음을 맞춰봐’ 텔레파시만 쏘다가 결정적인 순간에 이게 뭔 주접들이야... 여튼 그래서 제 총평은요, 아휴 저러니까 헤어졌지..오늘 뷔페니, 코스니, 밥이나 먹으러 가자~<br><br>]]></description><image><url>https://image.aladin.co.kr/product/33786/57/cover150/k232930475_1.jpg</url><link>https://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temId=337865727</link></image></item><item><author>안지</author><category>마이리뷰</category><title>‘위선‘이 필요한 사회, 그리고 공존 - [커뮤니티에 입장하셨습니다 - 각자의 현실 너머, 서로를 잇는 정치를 향하여]</title><link>https://blog.aladin.co.kr/757135169/17301859</link><pubDate>Thu, 28 May 2026 15:07: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s://blog.aladin.co.kr/757135169/17301859</guid><description><![CDATA[<table width="100%" height="30" border="0" align="center" cellpadding="0" cellspacing="0"><tr><td width="14"><img src="https://image.aladin.co.kr/img/blog/trans.gif" width="14"></td><td width="85"><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K922039245&TPaperId=17301859" target="_blank"><img src="https://image.aladin.co.kr/product/36568/16/coveroff/k922039245_2.jpg" width="75" border="0" class="box1"></a></td><td valign="top"><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K922039245&TPaperId=17301859" target="_blank" style="color:#386DA1;font-weight:bold">커뮤니티에 입장하셨습니다 - 각자의 현실 너머, 서로를 잇는 정치를 향하여</a><br/>권성민 지음 / 돌고래 / 2025년 06월<br/></td></tr></table><br/>무지의 장막 뒤에서 타인의 고통을 나의 문제로 받아들이는 태도, 그리고 정답이 없는 세상에서 최선이 아닌 '차선'을 찾아가는 과정이 정치의 본질임을 깨닫게 한다. '정치는 싸우는 것이 아니라, 서로 다른 입장을 가진 사람들이 함께 살아가기 위해 규칙을 만드는 과정'이라는 메시지가 강렬한데, 갈등을 제거하는 것이 아니라, 갈등을 안고도 어떻게 함께 밥을 먹고 잠을 잘 수 있을지를 고민하게 만드는 지점이 따뜻하면서도 날카롭다. 정치(좌파와 우파) 외에도 계급(부유와 서민),젠더(페미니즘과 반페미니즘),개방성(전통과 개방)의 주요 쟁점에 다가서며 갈등의 한복판에 놓인 사안들에 조금 더 폭넓은 각도의 해석을 시도하면서 그 복잡함 속에서 서로의 삶을 조금이라도 이해할 수 있는 틈을 마련하고자 하는 시도 또한 눈여겨 볼 포인트. 상대방의 입장은 물론, 자신의 정치적 입장이 형성된 배경과 맥락을 돌아보는 계기를 마련한다는 점에서도 충분히 흥미롭다. 위선도 없는 세상에서 그나마 위선을 떨어서라도 예의를 지키고 서로의 다름을 견뎌내며 차선을 찾아가는 것이 민주주임을 깨닫게 하는 통찰력 넘치는 안내서.]]></description><image><url>https://image.aladin.co.kr/product/36568/16/cover150/k922039245_2.jpg</url><link>https://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temId=365681601</link></image></item><item><author>안지</author><category>마이리뷰</category><title>나만 불편해? -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title><link>https://blog.aladin.co.kr/757135169/17299919</link><pubDate>Wed, 27 May 2026 15:06: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s://blog.aladin.co.kr/757135169/17299919</guid><description><![CDATA[<table width="100%" height="30" border="0" align="center" cellpadding="0" cellspacing="0"><tr><td width="14"><img src="https://image.aladin.co.kr/img/blog/trans.gif" width="14"></td><td width="85"><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8937462346&TPaperId=17299919" target="_blank"><img src="https://image.aladin.co.kr/product/610/30/coveroff/s772137205_1.jpg" width="75" border="0" class="box1"></a></td><td valign="top"><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8937462346&TPaperId=17299919" target="_blank" style="color:#386DA1;font-weight:bold">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a><br/>밀란 쿤데라 지음, 이재룡 옮김 / 민음사 / 2009년 12월<br/></td></tr></table><br/>뛰어난 철학적 통찰을 담고 있는 동시에, 매우 구시대적인 젠더 관념을 동시에 품고 있는 작품이라고 느꼈는데 아무리 철학적 비유라 할지라도, 여성 인물이 남성 주인공의 고뇌를 심화시키거나 변화시키기 위한 '매개체' 혹은 '영감의 원천'으로 주로 쓰인다는 점은 명백한 시대적 한계로 보인다. 여성의 고통(질투, 수치심)이 남성의 철학적 성찰을 위한 배경처럼 사용되는 부분은 21세기 (여)독자들에게 충분히 거부감을 줄 수 있는 요소라고 생각함. 특히 토마시는 여성과의 섹스를 '세계를 이해하는 방식'이라고 포장하는데 여성 개개인이 가진 100만분의 1의 다름을 확인하기 위해 수많은 여자와 잔다는 식의 논리는, 사실상 남성의 성적 욕망을 고결한 지적 탐험으로 미화하는 남성 중심적 개소리에 가깝다. 여튼 "인간은 누구나 위선(키치)을 떨며 산다"는 보편적인 진실을 말하는 듯 보이지만, 그 진실을 폭로하는 화자의 위치가 철저히 남성적 우월성 위에 놓여 있다는 점이 불편함의 핵심인 듯. 그러나 회의감이 드는 와중에도 그의 작품에서 '필터링'해서 취할 만한 실존적 가치는 분명 존재한다고도 생각한다. 그것이 고전의 힘이고.]]></description><image><url>https://image.aladin.co.kr/product/610/30/cover150/s772137205_1.jpg</url><link>https://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temId=6103061</link></image></item><item><author>안지</author><category>마이리뷰</category><title>장르의 배신이 주는 신선함 - [죽은 등산가의 호텔]</title><link>https://blog.aladin.co.kr/757135169/17299315</link><pubDate>Wed, 27 May 2026 08:55: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s://blog.aladin.co.kr/757135169/17299315</guid><description><![CDATA[<table width="100%" height="30" border="0" align="center" cellpadding="0" cellspacing="0"><tr><td width="14"><img src="https://image.aladin.co.kr/img/blog/trans.gif" width="14"></td><td width="85"><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K632734608&TPaperId=17299315" target="_blank"><img src="https://image.aladin.co.kr/product/27921/48/coveroff/k632734608_1.jpg" width="75" border="0" class="box1"></a></td><td valign="top"><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K632734608&TPaperId=17299315" target="_blank" style="color:#386DA1;font-weight:bold">죽은 등산가의 호텔</a><br/>아르카디 나타노비치 스트루가츠키 외 지음, 이경아 옮김 / 현대문학 / 2021년 09월<br/></td></tr></table><br/>마치 안개가 자욱한 설산 한가운데 서 있는 듯 시종일관 몽환적이고 기괴한 분위기가 압권이다.&nbsp;눈사태로 고립된 호텔, 기이한 투숙객들, 그리고 발생한 살인 사건...&nbsp;하지만 이야기가 전개될수록 범인을 찾는 논리적인 추리는 무너지고, 그 자리에 초현실적이고 SF적인 요소가 비집고 들어온다.&nbsp;단순한 범인 찾기가 아니라, 인간의 이성과 논리가 무너지는 곳에서 진짜 인간성이 무엇인지 묻는다는 점에서 철학적 사유를 느껴가는 재미도 있다. 와중에 냉소적인 유머 또한 백미.&nbsp;SF도 스미추도 좋아한다면 일타쌍피 할 수 있는 작품으로 추천한다.<br>]]></description><image><url>https://image.aladin.co.kr/product/27921/48/cover150/k632734608_1.jpg</url><link>https://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temId=279214899</link></image></item><item><author>안지</author><category>마이리뷰</category><title>고독이란 이름의 ‘가면무도회‘ - [고독한 밤에 호루라기를 불어라]</title><link>https://blog.aladin.co.kr/757135169/17294976</link><pubDate>Sun, 24 May 2026 21:09: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s://blog.aladin.co.kr/757135169/17294976</guid><description><![CDATA[<table width="100%" height="30" border="0" align="center" cellpadding="0" cellspacing="0"><tr><td width="14"><img src="https://image.aladin.co.kr/img/blog/trans.gif" width="14"></td><td width="85"><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8937426161&TPaperId=17294976" target="_blank"><img src="https://image.aladin.co.kr/product/32295/14/coveroff/8937426161_1.jpg" width="75" border="0" class="box1"></a></td><td valign="top"><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8937426161&TPaperId=17294976" target="_blank" style="color:#386DA1;font-weight:bold">고독한 밤에 호루라기를 불어라</a><br/>이응준 지음 / 민음사 / 2023년 08월<br/></td></tr></table><br/>기꺼이 아웃사이더가 되서 아니꼬운 세상을 향해 심드렁하게 뻐큐를 날리는 듯하지만 나는 '내가 이렇게 세상을 날카롭게 통찰하고 있고, 이토록 아름다운 문장을 쓰는 대단한 작가라는 걸 알아달라'는 강박처럼 읽히기도 한다.&nbsp;인간관계의 덧없음을 깨닫고 스스로 혼자가 되었다고 주장하며 시니컬한 실존주의자를 자처하면서도, 감정적으로는 여전히 누군가의 온기와 인정을 갈구하는 모순..행간을 읽어보면 결국 '왜 아무도 나를 이만큼 사랑해주지 않는가'에 대한 억울함이 뚝뚝 묻어나는 서글픈 자기연민의 초상이었음.&nbsp;호루라기를 불며 '나를 구하러 오지 마라'고 외치면서도, 속으로는 '내 호루라기 소리 들었지? 왜 안 와? 안 올 거면 이 소리가 얼마나 예술적인지나 감상해'라고 끊임없이 말하는 듯한...ㅠ&nbsp;나는 고독하다. 그걸 막 "우주적 고독"이나 "존재의 파멸"로 표현하면...단발마에 그치지 않고 주구장창 계속 그러면 에 어 음 그냥 좀 외로운, 사랑받고 싶어서 삐친 중년 인셀로 보일 뿐....너무 가혹한가ㅋ&nbsp;반면, 작가의&nbsp;화려하고 탐미적이고 과할 정도로 지적인 수사들이 동원된 문체가 취향이 되는 이유라면 그 과잉을 끝까지 밀어붙이는 이 집요함에 있겠지.&nbsp;어설프게 흉내 내는 게 아니라, 본인 스스로가 그 고독의 미학에 완전히 투신해 있는. 그야말로 철저한 자의식.&nbsp;이것이 나에게는 오글거림이지만, 인생의 어느 한 시기, 정말 바닥을 치는 우울을 겪는 사람에게는 그 과잉된 문장이 오히려 자신의 감정을 과장해서라도 인정받고 싶은 욕구를 채워주는 강력한 진통제가 되기도 할 테니까.&nbsp;여튼 &lt;고독한 밤에 호루라기를 불어라&gt;를 읽기 전, '고독'은 호루라기를 불며 전시하는 게 아니라 아무도 없는 방에서 혹은 수많은 사람 속에서 그냥 묵묵히 삼켜내야 하는 덩어리여야 할 것이며(기대1), 그럼에 있어 이 책은 결핍의 전시가 아닌 정말로 아무것도 바라지 않는 문장들이어야 함(기대2)을 기대했다면, 감성적이게 시니컬한(...) 작가 이응준의 문법은 확실히 '과하게' '전략적'인 면이 있어서 아 이 책 겨우 읽어냄.&nbsp;하.... 감정을 도구화하지 않고 그저 응시하는 건 정말 어려운 일 같아.&nbsp;결론은 (아저씨의) 고독함이 너무 비장해 (아줌마는) 너무 피곤했다...ㅋ<br><br>]]></description><image><url>https://image.aladin.co.kr/product/32295/14/cover150/8937426161_1.jpg</url><link>https://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temId=322951451</link></image></item></channel></rs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