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다음 문단은 검열 때문에 온전히 책에 실리지 못했다. 그렇다면 우리에게 남는 질문은 이것이다. 인간은 무엇인가. 인간이 무엇이지 않기 위해 우리는 무엇을 해야 하는가. 이어서 먹선으로 지워진 너줄의 문장들을 그녀는 기억했다. 번역자의 살찐 턱과 허름한감색 점퍼, 핏기 없이 노릇노릇하던 낯빛을 기억했다. 물잔을 만지작거리던 길고 거무스름한 손톱들을 기억했다. 그러나 정확한 이목구비만은 끝내 떠오르지 않았다.95 - P-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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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다리고 있던 군인들 중 두사람이 걸어나가 석유통을 받아들었어. 침착하게 뚜껑을 열고 몸들의 탑 위에 기름을 붓기 시작했어.
우리들의 몸 모두에게 고르게, 공평하게. 통에 남은 마지막 한방울의 기름까지 털어 뿌린 다음 그들은 뒤로 물러섰어. 마른 덤불에불을 붙여 힘껏 던졌어.61 - P-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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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을 감을 수 있다면.
수십개의 다리가 달린 괴물의 사체처럼 한덩어리가 된 우리들의몸을 더이상 들여다보지 않을 수 있다면. 깜박 잠들 수 있다면, 캄캄한 의식의 밑바닥으로 지금 곤두박질칠 수 있다면.
꿈속으로 숨을 수 있다면.
55 - P-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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짐칸 가득 관을 실은 두번째 트럭이 상무관 앞에 정차한다. 햇빛때문에 더 가늘게 뜬 네 눈에, 운전석 옆 좌석에서 진수 형이 내려오는 모습이 보인다. 빠른 걸음을 네 앞에서 멈추며 그가 말한다.
여섯시에 여긴 문 닫는다. 넌 그때 집에 가라.
더듬더듬 너는 묻는다. - P-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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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과정에서 네가 이해할 수 없었던 한가지 일은, 입관을 마친뒤 약식으로 치르는 짧은 추도식에서 유족들이 애국가를 부른다는것이었다. 관 위에 태극기를 반듯이 펴고 친친 끈으로 묶어놓는 것도 이상했다. 군인들이 죽인 사람들에게 왜 애국가를 불러주는 걸까. 왜 태극기로 관을 감싸는 걸까. 마치 나라가 그들을 죽인 게 아니라는 듯이.17 - P-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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