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은 수첩 박람강기 프로젝트 4
마쓰모토 세이초 지음, 남궁가윤 옮김 / 북스피어 / 2014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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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의 검은 안개>라는 책이 있다. 모비딕에서 출간한 책으로 마쓰모토 세이초가 일본에서 있었던 굵직한 사건을 조사하여 기록을 한 논픽션 형태의 에세이다. 이 책을 완독하진 않았지만 조금 읽었을 때에는 무척 흥미로웠다. 형사들의 기록과 함께 법의학적인 접근도 함께 수록되었고, 마지막으로 마쓰모토 세이초의 추론이 들어가 있었다. 탐정이 어떤 사건을 꿰뚫듯, 마쓰모토 세이초 나름대로 찾아낸 진실의 조각이 수록된 책이었다. <일본의 검은 안개>의 축소판이라고 해야 할지, 그의 작품론이라고 해야 할지, 여하튼 <검은 수첩>은 마쓰모초 세이초의 작품과 더불어 추리소설에 대한 이야기가 담겨 있는 논픽션의 에세이다. 

 

재미있는 구성이 있다. 추리소설이 대중화된 것에서부터 출발한 이 이야기 중간에는 마쓰모토 세이초의 메모가 수록되어 있다. 날짜와 연도별로 짤막하게 적혀 있지만 그의 메모습관을 확인할 수 있는 계기가 되어 좋았다. 그가 작품을 대하는 태도, 혹은 세상을 대하는 태도도 볼 수 있어서, 왜 일본에서 마쓰모초 세이초의 작품이 매년 드라마화되고 추리소설계로부터 우상화 되는지 알 수 있었다. 

 

나는 마쓰모토 세이초의 작품을 책보단 드라마로 먼저 접했다. 작년에 방영된 <얼굴>이란 드라마가 충격적이어서, 원작을 찾아 보게 되었는데 성별이 바뀌었다. 원작은 남자가 주인공이고 최근에 방영된 드라마는 여자가 주인공이다. 서로 뒤바뀐 성별이었지만 마지막에 보여지는 결말은 여전히 짜릿했다. 오히려 성별을 바꾸어 각본했기에 원작과 드라마 모두 충분히 매력적이었다. 그다지 기복이 크게 바뀌지 않는 잔잔한 배경의 드라마였지만 보는 내내 눈을 뗄 수 없었다. 주인공의 심리에 나도 모르게 빨려들어가버렸던 것이다. 마쓰모토 세이초가 보이는 범인은, 어떤 고뇌가 있었다. 그가 왜 사람을 죽여야만 했는지, 사람을 죽인 죗값을 왜 치러야 하는지에 대해서. 마쓰모토 세이초는 한 인간을 통해 어떤 세계를 보았던 것이 분명했다. 그런 그의 작품 세계는 <모래 그릇>과 <검은 복음>, <3억엔 사건>을 통해서도 충분히 알 수 있었다. 비록 나는 드라마로 그의 작품을 접했지만 <얼굴>이란 드라마를 통해서 알 수 있듯이 드라마가 원작을 크게 각본했을 것 같지는 않은 인상을 받았다. 특히 2013년도에는 일본에서 미해결사건으로 남은 '3억엔 사건'에 대해 재조명한 드라마가 유독 많았는데, 마쓰모토 세이초가 그나마 사실에 근접했고 가장 그럴싸한 추론을 보인 것만 같았다. 그가 대하는 작품의 방식은 사람을 대하듯 조심스러웠고 신중했다. 어느 것 하나도 그저 흘러보내지 않는 섬세함에 나는 충격을 받았고 이 작가의 작품이라면 믿고 봐도 되겠다 여겼다.

 

바로 그런 때에, 북스피어에서 마쓰모토 세이초의 작품세계를 담은 책을 출간한다는 소식을 들었다. 독자교정을 모집한다기에 잽싸게 신청을 했고, 운 좋게 출판사까지 찾아가 날것 그대로의 원고와 대면할 수 있게 되었다. 재미있는 것이 이 책에는 <일본의 검은 안개>에 수록된 사건이 수록되어 있었는데, 그런 기록을 보는 것이 흥미로웠다. 우리나라에서 범죄학의 대가인 표창원 교수님의 <한국의 연쇄살인>이 함께 떠올랐는데, 내 안에 숨어 있던 범죄에 대한 흥미를 일깨웠다. 마쓰모토 세이초가 형사의 자취를 쫓아가듯, 사건을 찾아내고 기록했던 글들은 그가 사회에 숨겨진 이면을 발견하기 위해 얼마나 노력했는지 알 수 있었다. 나는 그가 쓴 작품이 허구라고 생각했는데 <일본의 검은 안개>와 <검은 수첩>을 보니 실제 있었던 사건을 재조명한 것이었다. 그리고 그런 실제 있었던 사실을 적었기에 그는 사회파 미스터리의 대가가 될 수 있었다. 미야베 미유키의 <모방범>을 읽고 불쾌하게 느껴졌던 것도 그런 '현실감'이었다. 언제 현실에서 일어나도 이상하지 않을 범죄와 범죄를 바라보는 사람들. 그런 것은 지금 현실에서도 보여주고 있었기에 결코 사회에서 일어나는 일을 무시할 수 없었다. 작년에 있었던 용인살인사건도 <모방범>을 읽고난 후 접하게 된 사건이라 무시무시하다고 느꼈다.

 

미스터리가 단순히 시간을 때우기 위한 유희에 불과하다는 편견을 깨워준 건, 바로 이 사회파 미스터리다. 탐정이 등장하는 것도 아니고 트릭이 있는 것도 아니지만, 사회를 꼬집는단 사실 하나만으로도 미스터리가 될 수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내가 정말 봐야할 미스터리는 바로 사회를 고발하는 이야기인지도 모른다. 홈즈나 뒤팽과 같은 멋진 탐정이 있는 미스터리도 좋지만, 가끔은 경각심을 일깨워줄 사회파 미스터리도 찾아 읽어야하겠다. 그런 의미에서 <일본의 검은 안개>를 완독해야겠지. <검은 수첩>도 다시 재독해야겠다. 

 

한 번 더, 사회를 진득하게 바라볼 수 있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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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로운 삶 1
하 진 지음, 왕은철 옮김 / 시공사 / 2014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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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로운 사람이 되기 위해서는 자신의 길을 가야 했다. 외로움과 고독을 견뎌야 했다. 성공에 대한 환상을 포기하고 이민자이면서 남의 나라 알파벳을 배우는 자신의 왜소함을 받아들여야 했다. 아니, 그 이상이었다. 그는 아무것도 이루지 못하고 삶을 허비하고 다른 사람들의 눈에 조롱거리가 되는 위험을 감수해야 했다. 궁극적으로 돈을 버는 것이 아니라 실패할 각오를 하고 시를 쓰는 데 전념할 정도로 용감해져야 했다.(436페이지)

 

 

 

 자유로운 삶이란 무엇일까. 자유로운 사람이란 무엇일까.

<자유로운 삶>이란 글자를 치면서 내내 <자유로운 사람>이라고 오탈자를 냈다. 결국 자유로운 삶이란, 내가 잘못 적은 자유로운 사람처럼 삶과 사람이 같은 것임을 받아들일 수밖에 없었다. '잘못 적은' 글자인 사람이 주는 울림은 자유롭다. 자유롭다는 것은 잘못 간다는 것을 감안하는 것임이 분명하다는 걸 깨달았다. 결국 내가 잘못 적은 '사람'이란 글자가, 나를 자유로움으로 이끌었다. 

 

1989년에 일어난 텐안먼 사건이 무엇인지 몰라, 네이버 검색의 힘을 빌려야만 했다. 나는 중국이 우리나라처럼 민주주의를 위해 운동을 벌였으리라고는 생각도 못했다. 텐안먼 사건으로 인하여, 중국으로 돌아가기를 포기했다는 작가 하 진. 이 책은 그의 인생을 대변하는 책이 될지도 몰랐다. 난 우가 겪은 것이 작가 하 진이 겪은 것이라고는 할 수 없지만, 결국 난 우의 삶은 하 진의 삶과 귀결될 것이다. 안타까운 건, 텐안먼 사건은 민주화 운동으로 불리지 않는다는 것이다. 중국 민주화를 위해 울부짖던 소리는 그럼 어디로 갔단 말인가. 이 책에서 보여지는 망명자의 삶은, 조국과는 절대 떨어질 수 없으면서도 살기 위해서 타국으로 와야 하는 외로움과 고독을 절실하게 보여준다.

 

난 우는, 미국으로 건너 오면서 조국으로 돌아갈 생각을 했다. 하지만 텐안먼 사건이 그를 미국에 붙잡아두었고 아내가 오고 아들인 타오타오가 오면서 그는 미국에 뿌리를 내릴 생각을 한다. 이 책을 읽으면서 이민과 조국에 대해 많은 고민을 해보았다. 그들이 원한 것은, 자유로운 삶이었다. 중국 정부가 정해준 대로 사는 것이 아닌 자신의 의지로 두 다리로 굳게 이 땅에 서는 것이었다. 난이 그토록 열심히 영어 공부를 했던 것도 그런 삶을 위함이었다. 그는 시를 쓰고 싶어했지만 가족의 안정이 우선이었기에 대학원을 포기하고 경비 일을 전전하다가 애틀랜타에서 식당을 개업한다. 

 

그는 가족을 위해 일을 하면서도, 시를 머리에서 떠나 보내지 않았다. 어떻게 해서든 그는 시를 붙잡으려고 했다. 그러나 정작 그는 시를 쓰는 데에는 오랜 시간이 걸렸다. 식당을 마련하고 자신만의 집을 가졌건만 정작 시에서는 어떤 것도 이룰 수 없었다. 

 

첫사랑인 베이나에게 상처를 받은 그는 핑핑과 결혼을 하여 아들을 가졌지만 정작 그는 가정에 애착을 가지지 않는 것처럼 보였다. 아들인 타오타오가 미국에 왔을 때에 순수한 기쁨으로 차오르고 아들을 위해 자신을 희생할 각오가 되었지만, 자동자 운전면허를 취소할 위기에 처하자, 아들 앞에서 자기 자신을 쏴죽이란 말을 하는 것으로 보아, 그는 가족에게 그 전부를 줄 마음은 없었던 듯하다. 그러나 핑핑은 달랐다. 그녀는 난과 타오타오를 위해 전부를 희생할 준비가 되어 있었다. 첫사랑을 잊지 못하는 난을 보면서 상처를 받지만 그를 사랑한다. 그에게 헌신하는 강한 여성이다. 신기하게도 난과 핑핑의 관게는 공생적이라는 것이다. 난은 핑핑이 옆에 있으면 편안해지고 핑핑이 있기에 강해질 수 있다. 핑핑은 난을 사랑하지만, 난이 떠나리라는 두려움을 안고 있으면서도 그 없는 삶을 상상할 수 없다. 결국 난은 가족이 전부라는 것을 받아들이고, 중년이 되어서야 핑핑을 열렬히 사랑하고 있음을 깨닫게 된다. 그 깨달음을 얻기에 그는 너무 많은 길을 걸어왔다. 

 

주위에서 보는 난 우의 인생은 성공적이다. 그에게는 그를 위해 희생을 할 준비가 되어있는 아내와 아들이 있었고 그와 아내의 명의로 된 식당이 있었으며, 그들에게는 호수를 끼고 있는 아름다운 집도 있다. 주위에서는 그에게 아메리칸 드림을 실현했다고 말한다. 하지만 그는 아메리칸 드림은 실현하는 것이 아닌 추구해야 하는 것이며, 그가 지금까지 놓쳐왔던 것들을 다시 되돌아보게 하였다. 그는 핑핑을 다시 보았고 아들의 삶이 자유롭길 바랐으며 궁극적으로 그 자신이 시를 쓸 수 있기를 바랐다.

 

시를 쓰는 건 존재하는 것이다.(445페이지)

그의 삶은 시 위에 서 있길 바랐지만 결국 그는 나이가 들어서야 시를 온전히 바라볼 수 있었다. 중국인인 그가 영어로 글을 쓰는 어려움을 봉착했을 때의 절망은 쉬이 짐작이 되지 않는다. 글을 쓴다는 것의 어려움은 익히 알고 있지만 타국에 가서 타국의 언어로, 조국을 적어야 하는 고통은 짐작도 못하겠다. 그는 이민 1세대였다.  아들을 위해 희생해야 하는 삶이었다. 하지만 정말로 그래야만 했을까? 타오타오가 미국에서는 자신이 원하는 대로 살길 바라면서 그들은 타오타오의 인생에 간섭을 했다. 영어는 물론 중국어를 배우게 하였으며 핑핑은 타오타오가 의사가 되길 바랐다. 그들은 아들에게서 자신의 꿈을 실현시키고자 하는 게 아닐까. 

 

이루지 못하는 꿈. 이룰 없는 꿈. 꿈들은 그렇게 존재한다. 그 꿈을 움켜쥐고 앞으로 나아가는 다닝이나 바오 유안을 보면서 난 우는, 그들을 부러워하기도 하지만 그들을 가엾게 보기도 한다. 자신이 쓰고 싶은 것을 쓸 수 없다던 다닝은 오히려 더 불행하게 보이기도 했다. 돈을 많이 버는 화가가 되었지만 결국 바오 유안의 그림은 예전만도 못하게 되었다. 물질을 추구하며 살아왔던 그들 모두의 삶은 자유롭지 못했다. 자유로워지고자, 미국까지 왔건만 다닝과 바오 유안은 결국 조국으로 돌아가고 말았다. 

 

나도 오래전부터 간직한 꿈이 있다. 꿈을 이루기 위해 부던히도 노력하던 시절도 있었다. 하지만 창작의 괴로움을 겪고 보니, 꿈이란 아름다울 때까지만 간직해야 하지 않을까 싶었다. 떠나 보낸 사람도 많았다. 내가 괴로움을 토해낼 때마다 사람들은 떠나갔다. 나는 꿈 포기해야 할지도 모른다며, 중얼거리면 그들은 나를 외면했다. 결과적으로 나는 그들의 자유마저 앗아가려고 했던 것이다. 난 우의 걸음은 나와 크게 다르지 않을 것이다. 하나를 얻기 위해선 다른 하나를 포기해야 한다지만, 모든 것을 끌어안고 가려고 해서 빚어진 슬픔이었는지도 모른다. 꿈이란 것은 사람을 행복하게 하기도 하지만 사람을 절망에 빠트리기도 한다는 것을, 이 책을 통해 알게 되었다. 원하는 것을 위하여 살기 위해선, 그에 상응하는 것을 버려야 한다는 것도. 하지만 꿈을 오래 간직하면 꿈을 다시 꺼낼 시간이 올지도 모른다. 오랜 시간 시를 적지 못했던 난이 다시 시를 적게된 것도 그 꿈을 버리지 않고 간직했기 때문이다. 

 

자유로운 삶에 대해 오래 고민했다. 자유로운 사람에 대해 오래 고민했다. 쓴다는 것이 존재한다던 난의 삶은, 이제 자유로워졌을까? 

 

나는 그가 자유로워지길 바란다. 모든 것에서 해탈하여, 진정으로 원하는 것을 손에 넣었기를.

 

 

 

 

* 알라딘 공식 신간평가단의 투표를 통해 선정된 우수 도서를 출판사로부터 제공 받아 읽고 쓴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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느리게 배우는 사람 창비세계문학 30
토머스 핀천 지음, 박인찬 옮김 / 창비 / 2014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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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간평가단에서 토마스 핀천의 작품을 골랐을 때, 어떤 기대감이 있었다. 데뷔 전, 특히 대학 시절에 썼다는 초기의 단편을 수록했다는 면에서 독특한 기획이라고도 생각했다. 이 책을 막상 읽기 시작했을 때, 작가 서문을 제일 먼저 읽고 시작했는데, 다 읽고 난 후 서문을 읽지 않았더라면 이 작품의 반도 이해하지 못했으리라 생각이 들었다. 토마스 핀천이 지은 <느리게 배우는 사람>이란 의미는, 이 책의 작가 서문에도 적혀 있듯, "작가의 젊은 시절을 회상"하는 것에 있는 듯하다. 그의 초기 작품을 통해, 후학들이 그처럼 되지 않도록 진심 어린 조언도 잊지 않았다.

 

토머스 핀천은 문학과 과학의 경계에 서 있는 작가라고 책소개에서 보았다. 그를 찬사하는 말 중 하나가 "영어로 글을 쓰는 현존 작가들 가운데 최고"였는데, 막상 이 책을 다 읽고 난 후에는, 도저히 토머스 핀천이란 작가의 작품을 이해할 수 없었다. 1950년대의 무지에서 오는 시대적인 차이도 무시할 수 없었다. 그의 세계는 나와는 달라, 마치 내가 그보다 한참 아래 있는 어떤 땅에서 서식하는 것처럼 느껴졌다. 그는 너무 고차원적이고 도저히 따라갈 수 없는 곳에 서식해 있다. 그의 은둔생활은 그런 면에서 더욱 더 신비롭게 느껴진다.

 

전쟁과 전쟁 사이에서 태어난 작가라 그랬을까. 그의 작품에서는 유독 '허무함'이 많이 느껴졌다. 그것은 뭐라고 해야 할까. 어찌 보면 저항과도 같은 허무였고 또 어찌 보면 모든 것을 포기하는 허무처럼 느껴졌다. <이슬비>에서 러바인은 허리케인에 의해 죽은 시체를 수습하면서 죽음에 대한 어떤 저항을 했다고 느꼈다. 하지만 그는 그이상으로 적극적인 행동을 취하지 않는데, 죽음에 대한 무기력에서 오는 허무가 아니었나 싶다. 반면에, <로우랜드>에서 플랜지는 아내에게 대항 한 번 하지 못하고 집에서 쫓겨난다. 그리고 폐차장에 가서 만난 집시 소녀에게 이끌려간다. 그가 자율적으로 어떤 행동을 했는가, 생각하면 의문이 들 만큼 그가 수동적으로 느껴졌다. 젊음을 잃어가는 중년의 나이에서 그는 무기력을 느꼈던 것일까. 싱그러운 젊음을 잃어가면서, 아내에게 대들지 못하는 그런 나약함에 질려버린 것일까. 젊었을 때, 바다에 나아갔던 것을 회상하며 그는 바다를 바라본다. 바다는 그의 환상이며 그의 인생이다. 그리고 그가 만난 소녀는, 마치 바다에서 태어난 생명체처럼 느껴졌다. 어느 것이 환상이고 어느 것이 실재인지 모르는, 그 경계 사이에서 토머스 핀천이 말하고자 하는 것이 무엇이었는지 오래도록 고민했다. 삶과 죽음에서 떠도는 것이 인간의 생이라면 무엇을 가지고 살아야 할지 고민하게 해준 책이기도 했다. 비록 나는 토머스 핀천을 처음 접하긴 했지만 그의 초기 작품, 아니, 그의 작품 세계의 문을 열어준 이 책을 읽게 된 것이 무척 소중하게 느껴졌다. 어떤 작가의 작품을 접하는 것에 있어서 초기 작품은 때론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그가 무엇을 주로 읽고 무엇을 보고 들었는지 알게 해주니까 말이다. 이 책에서 토머스 핀천의 군대에 있던 시절을 엿볼 수 있어 좋았다. 마지막 해설에서 보니 은둔자처럼 살아왔다고 하는 기이한 행적이, 그의 존재를 마치 소설처럼 환상과 실재 사이에 끼어 있게 했으니 말이다. 그런 은둔 생활이 그의 작품에 환상과 현실을 섞이게 했던 것일까.

 

<엔트로피> 역시, 모호한 환상을 품고 있었다. 엔트로피가 무엇인지 몰라 사전의 힘을 빌렸다. 이 작품은 특이한 구성을 갖고 있다. 3층에서 시끄러운 음악과 술과 정신 없는 파티를 하고 있고 4층에서는 어떤 질서에 확립된, 어떤 완벽한 세계를 보여주는 것만 같았다. 혼돈과 질서는 딱 분리된 뉘앙스를 풍겼고 마지막에 창문이 깨졌을 때 두 세계는 어떤 균형적인 감각을 맞추려는 시도를 보인 것만 같았다. 뒤에 역자의 해설과 함께 작품을 곱씹으며 소설의 제목인 엔트로피와 함께 소설의 내용을 가늠하려고 했지만, 생각보다 많이 어려운 작품이었다. 분리된 두 세계가 있다는 것은 확실하겠는데, 그것이 서로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것이 엔트로피의 정의인지도 확실히 이해가 되지 않았다. 3층에서 일어나는 시끄럽고 무질서한 파티가 현실처럼 느껴진다면 4층에서 일어나는 새의 죽음을 막으려는 한 학자의 시도는, 환상처럼 느껴졌다. 이처럼 내가 본 토머스 핀천의 작품은, 환상과 실재로 번갈아가며 보여지고 있었다.

 

<언더 더 로즈>는, 시대적 배경에 대한 지식이 있어야 더 재미있게 읽힐 것만 같은 단편이었다. 어떤 세대의 전환이 느껴지는 작품이었다. 스파이, 음모, 나름의 위트가 있어서 흥미로운 작품이라 생각된다. 몰드웝이라는 독일인 첩자는 전설처럼 느껴져 이 작품은 신비롭게 느껴지기도 하였다. 그렇지만 토머스 핀천이 이 작품을 통해 무엇을 말하고자 했는지는 여전히 오리무중이다. 안개 속에 무언가 있지만 그것이 정확히 무엇인지 알 수 없어 조금 답답하다.

 

하지만 <은밀한 통합>은 무척 좋았다. 이 작품을 읽고 나서야 토머스 핀천의 작품관이 뚜렷해졌다고 느꼈다. 그는 무질서 속에서 어떤 조화를 찾으려고 했던 게 아닐까. 죽음과 삶의 혼돈에서 그 둘을 똑바로 바라보고 양립하려는 작가의 고심이 담겨 있지 않을까 싶었다. 인종차별이라는 거대한 혼돈 아래, 팀과 그 친구들이 칼이라는 상상의 흑인 소년을 만들어내 '통합'을 이끌어내려고 했던 것처럼 말이다. 어른들에 대항하는 철 없는 소년들의 모습은 흑인 칼 매카피를 만나면서 그 목적이 더욱 뚜렷해지지 않았나 싶다. 그들이 말하는 스파르타쿠스 작전이란, 결국 노예제도에 대항하여 전쟁을 벌인 스파르타쿠스처럼, 어른들에 대항하여 인종차별에 대한 비난을 하려고 했던 건지도 모른다. 하지만 결국 그들은 어른들에게 패배를 했던 것일까. 공장이 다시 원래대로 가동되고, 마지막에 집으로 돌아가 안전할 수 없는 꿈자리로 들어가게 되었단 구절은, 결국 그들은 어른들과 같은 길을 걷게 되리란 암시가 되지 않을까 싶었다.

 

토머스 핀천의 초기 작품 네 작품과, 마지막에 수록된 <은밀한 통합>을 보며 토머스 핀천이란 작가세계가 통합되고 있었다. 그가 말하는 죽음, 혼돈, 허무와 같은 감정들은 어느 순간 빛과 희망과 조화와 같은 감정에 뒤섞였다. 그렇지만 마지막에 남은 것은 결국 아무것도 하지 않는 무기력이다. 이 무기력 앞에서 다시 고민을 해야 할 것이다. 저항할 것인지, 순응할 것인지. 토머스 핀천이 내게 준 답을 이랬다.

 

 

 

바다는 물결치긴 하지만 어떤 견고함을 갖고 있어서, 수평선으로 쭉 펼쳐진 회색 혹은 연한 청록색 사막과 황무지가 되곤 한다. 그래서 구멍줄을 따라 포면 위로 걸어나갈 수 있을 것 같고, 텐트와 충분한 식량만 있다면 그 길을 따라 이 도시 저 도시를 여행할 수 있을 것 같다. 제로니모는 이것을 메시아 콤플렉스의 특이한 벼녕으로 간주해, 플랜지더러 그러한 시도를 하지 말라고 아버지처럼 충고했다. 하지만 플랜지에게 그 광활한 흐린 유리 같은 평원은 단 한명의 인물만이 완전성을 향해 성큼성큼 가로질러 가도록 되어 있는 일종의 로우랜드였다._90~91페이지

 

 

 

 

* 알라딘 공식 신간평가단의 투표를 통해 선정된 우수 도서를 출판사로부터 제공 받아 읽고 쓴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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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ndevous 2014-06-15 23:3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로우랜드 발췌문 보니 악명 높은 '핀처네스크' 문체가 눈에 들어옵니다. '하지만 플랜지에게 그 광활한 흐린 유리 같은 평원은 단 한명의 인물만이 완전성을 향해 성큼성큼 가로질러 가도록 되어 있는 일종의 로우랜드였다' 로우랜드가 어떤 곳인지 모르겠지만 가고 싶게 만드는 핀천 필력의 힘^^

뒤팽 2014-06-16 08:49   좋아요 0 | URL
저는 토머스 핀천이 어려웠어요ㅠㅠㅠ 근데 궁금해서 검색을 해보니까 핀천 작품이 대개 다 어렵다고 하더라고요 <은밀한 통합>은 반전이 있는지는 해설을 보고서야 아~~ 했구요. 그래도 <은밀한 통합>과 <로우랜드>는 제가 어떤 인상을 남겨줬어요. 제가 느끼기에 로우랜드는, 플랜지가 어딘가로 가고 싶어하는 이상향이 아니었나 싶어요^^ 방문해주셔서 감사하고 댓글 달아주셔서 감사합니다:)

rendevous 2014-07-14 20:55   좋아요 0 | URL
우수 리뷰 당선 축하드립니다 ^^

뒤팽 2014-07-14 21:31   좋아요 0 | URL
감사합니다:) 윤스리 님도 저번달에 우수리뷰 되신 거 축하드려요>_< 이렇게 자주 들러주셔서 감사합니다.
 
[비트겐슈타인의 조카]를 읽고 리뷰 작성 후 본 페이퍼에 먼 댓글(트랙백)을 보내주세요.
비트겐슈타인의 조카
토마스 베른하르트 지음, 배수아 옮김 / 필로소픽 / 2014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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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른하르트란 이름은 낯설다. 낯선 작가의 이름에서, 낯선 이국을 접했다. 대한민국에서 오스트리아까지 걸리는 시간은 비행기로 대략 13시간 정도 된다고 들었다. 비행기로 13시간 걸린다고 하니, 말로 내뱉을 때에는 가깝게 느껴지지만 기차로 3시간 가는 것도 지겨워하는 나로서는 비행기 안에서 열 시간 있을 자신은 없다. 그렇기에 베른하르트란 작가의 작품인 <비트겐슈타인의 조카>는 선뜻 다가오지 않았다.

 

작가의 자전적 이야기가 담겨 있는 이 작품은, 작가 그 자신과 파울 비트겐슈타인이라는 사람과의 우정을 다뤘다. 두 사람은 운명적으로 만났던 것처럼 설명되었고 두 사람이 보인 우정은 서로 마주보는 거울과도 같았다.

 

사람이 살면서 진정한 친구를 한 명 이상 사귀면 성공한 삶이라고 대학 시절 교양 수업 교수님께서 말씀하셨다. 그 진정한 친구란 자기 목숨을 바칠 수 있는 사람이라던데, 그런 사람과 친구가 된다면 기적과도 같을 것이다 하셨다. 그 말은 지금까지도 잊히지 않고 있다. 이 책을 읽었을 때 교수님이 말한 말과 오버랩되어, 베른하르트와 파울의 우정이 남들과 다르게만 보였다.

 

두 사람은 같은 병원, 다른 병동에 입원을 하면서 그 인연이 특별해진다. 오랜 지병이었던 폐병으로 병원에 입원을 했던 베른하르트, 정신병이 있어 정신병원에 주기적으로 입원을 했던 파울. 두 사람이 같은 병원에서 함께 만나게 된 것은 마치 신이 선사한 운명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두 사람은 음악, 철학 등 다양한 분야에서 토론을 하고 특히 두 사람이 즐겨가던 카페에 앉아 사람을 관찰하는 것을 즐겨했다. 베른하르트는 파울이 루트비히 비트겐슈타인의 조카라고 하면서 그 둘을 비교하기도 하는데 그 대목은 조금 흥미롭다. 비트겐슈타인의 이단아라고 할 수 있는 두 사람은 필연적으로 철학적이며 필연적으로 미치광이라고 했다.

 

때론 언어유희처럼, 때론 냉소적이고 비판적으로 오스트리아와 파울을 바라보는 베른하르트의 시선은 파울 못지 않게 광기적이라 할 수 있을 테지만, 나는 그가 한 인간을 뜨겁게 사랑하는 것을 보았다고 말하겠다. 그는 파울과의 우정을 신성시 여김과 동시에 그 신성시 여김을 파괴하고야 말았다. 파울이 죽어갈 때의 광경은 한 인간이 어떻게 하면 한 인간에게 멀어질 수 있는지를 똑똑히 보여주었고 그 혐오적인 모습과 가련한 모습은 상충하면서 존재한다. 그렇지만 그것이 인간의 본질의 모습이라면 숙연하게 바라봐야 하지 않을까. 친구가 서서히 몰락하는 가운데 내가 무엇을 할 수 있을까. 파울은 아내의 죽음을 극복하지 못했다. 그는 친구에게 기댈 수 있었지만 그러지 않았다. 베른하르트는 그런 파일을 무기력하게 바라볼 수밖에 없었다. 어느 누가 상실된 자를 위로할 수 있겠는가.

 

최근, 많은 사고로 뒤숭숭하다. 슬픔이 무엇인지 <비트겐슈타인의 조카>를 보며 생각을 해보았다. 그 어떤 위로도 건네지 못할 것이고 공감마저 할 수 없는 상실의 슬픔에서, 과연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있을지 가늠해보았다. 상실이야말로 무기력의 주범이었고 상실에서는 결코 무기력이 극복할 수 없으리라 여겼다. 지금도 바다 앞에서 사랑하는 이가 돌아오길 바라는 그들의 모습을 떠올려본다. 친구의 죽음을 그 어떤 행동도 하지 못한 채 지켜봐야만 했다 베른하르트를 떠올려본다. 무기력이란 아무것도 할 수 없을 때 찾아오는 것이다. 하고자 하는 의욕마저 모두 집어삼키는 무시무시한 괴물이다.

 

베른하르트의 심리를 따라 읽다 보니 나 또한 베른하르트와 똑같이 되어가는 것을 느꼈다. 비참함, 상실, 괴로움, 조소와 같은 감정이 솟구치다가 사라졌다. 처음 접한 낯선 작가이기에 더 몰입이 쉬웠던 것일까. 그러나 다시는 만나고 싶지 않은 이야기임은 분명하다. 이런 감각을 느끼는 것은 한 번이면 족할 테니까.

 

 

 

 

 

* 알라딘 공식 신간평가단의 투표를 통해 선정된 우수 도서를 출판사로부터 제공 받아 읽고 쓴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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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의 그림자는 월요일
김중혁 지음 / 문학과지성사 / 2014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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악어빌딩에 흐르는 공기는 듣던 것과는 달랐다. 고약하기도 하고 때로는 정겹기도 하다. 사람이 살고 있다는 흔적을 공기에 새겨놓기라도 하듯, 악어빌딩에는 특유의 퀴퀴한 냄새가 스며들었다. 1층에 철물점에서 중년의 남성이 꼼지락거린다. 그는 어떤 화면을 바라보고 있었는데 그 화면 안에는 내가 잡혀 있었다. 내가 떠오른 것을 확인하고는 그가 문밖으로 고개를 내민다. 시원시원하게 웃으며 그는 손짓을 한다. 어떻게 오셨대? 나는 검지로 위층을 가리켰다. 구동치 씨 뵈러 왔어요. 아하. 아저씨가 머리를 긁적이며 도로 안으로 들어간다. CCTV가 좋긴 좋은 거구먼. 대견하다는 듯 CCTV의 몸체를 가볍게 툭 치고는 도로 자리에 앉는다. 백기현이 CCTV를 설치했단 정보는 이미 알고 있었다. 나는 계단을 밟기 전에 지하로 내려가는 계단 앞에 서 있었다. 레스토랑은 조용했다. 음식을 만드는 냄새가 섞였다면 참기 힘들 것이었다.

 

2층으로 향하는 계단을 밟았다. 위층으로 갈수록 공기의 냄새는 희박해진다 했는데 땀냄새가 코에 끼얹어진다.

 

몇 안 되는 아이들을 대상으로 합기도를 가르치고 있는 남자는 근엄한 얼굴로 '인자무적'이라고 소리친다. 인자한 사람에게는 적이 없다! 쩌렁쩌렁하게 울리는 목소리는 합기도와 잘 어울린다. 아이들은 또박또박한 목소리로 그 말을 따라하지만 그 단어가 의미하는 바를 알아듣는 것 같지는 않다. 구령에 맞추어 하낫, 둘, 이렇게 소리치다가 차철호가 나를 발견했다. 악어빌딩은 낯선 사람을 빨리도 알아차린다. 그가 잰걸음으로 내가 있는 통로까지 오고는 무슨 일이십니까, 하고 정중히 물었다. 구동치 씨한테 볼 일이 있어서요. 안에 계실까요? 나는 보일 듯 말 듯한 미소를 지으며 위층에 시선을 주었다. 글쎄요. 워낙에 신출귀몰한 사람이라. 만약 있다면 볼 수 있을 거예요. 그는 꾸벅 고개를 숙이고는 아이들에게로 돌아갔다. 인자무적이야, 인자무적. 아는 단어가 그것뿐이라는 듯 차철호가 아이들 사이를 돌아다니며 목소리를 굵직하게 낸다. 낯선 사람을 의식하기라도 하듯 목소리가 뻣뻣했다.

 

낯선 사람이기에 악어빌딩의 냄새에 민감했을 것이다. 낯설다는 것은 때론 긴장을 주기도 한다. CCTV 화면에서 얼굴을 뗄 수 없던 백기현도, 긴장한 얼굴로 아이들에게 합기도를 가르쳐주는 차철호도, 그들 나름대로 낯선 공기에 민감했기 때문이리라. 그것은 간발의 차로 사람의 텐션을 끌어올려주기도 하는데, 낯선 곳에서 온 나도 악어빌딩에서 만난 낯선 나도 서로 긴장의 끈을 팽팽하게 유지시켜준다. 뒤도 돌아보지 않고 3층으로 향했다.

 

3층은 피씨방이었다. 여기서 아르바이트를 하고 있는 한 젊은 청년은 구동치의 소일거리를 도와준다고 들었다. 이빈일이라고 했던가. 악어빌딩에 대한 정보는 이미 머릿속에 숙지하고 있었다. 이빈일, 이라고 작게 중얼거리며 4층으로 향하는 계단을 올라서는데 누군가 내려오고 있었다. 그가 놀란 얼굴로 나를 보고는 의미심장한 웃음을 보였다. 엇, 구동치 아저씨 보러 오신 분인가요? 친근하게 말을 거는 그의 모습에 나 역시 조금 놀란다. 그렇지만 평정한 얼굴로 살짝 고개를 끄덕인다. 노크 잊지 마세요. 이빈일은 손을 흔들면서 3층으로 재빨리 내려간다. 기가 차서 웃음만 나온다. 계단 난간을 잡고는 심호흡을 한다. 4층에 올라오니 냄새가 많이 희박해졌다. 선선한 공기가 위에서부터 내려오는지, 아래와 다른 공기가 느껴졌다.

 

구동치의 사무실 문 앞에 섰다. 가볍게 노크를 했지만 안에서 기척이 없다. 다시 조심스레 문을 두드렸다. 구동치가 얼마나 보안에 철저한지 알고 있기에 문고리를 잡고 흔드는 행동은 하지 않는다. 문을 두드리며 그의 행동을 재촉할 뿐이다. 얼마 지나지 않아 문이 열리면서 구동치가 모습을 드러낸다.

 

당신은 그토록 무미건조한 월요일에 나를 찾아왔군요. 이 세상의 덧없음을 아는 사람이여, 나에게 비밀을 말해주세요. 비밀의 그림자는 국경을 넘고 바다를 건넙니다. 우리의 사랑만이 덧없는 세상을 이겨낼 수 있는 힘, 나에게 비밀을 말해주세요. 비밀의 그림자는 월요일처럼 길고 길어요.(11p)

오디오에서 흘러나오는 굵은 음성이 방에서 튀어나왔다. 그를 감싸고 나를 감싼 후 악어빌딩 아래로 사라진다.

 

훤칠한 키, 살짝 날카로운 눈매. 전직 형사였다는 것을 증명하듯 다부진 몸. 덩치는 크지만 기척마저 내지 않는 조심스러운 행동이 구동치가 하고 있는 일을 여실히 보여준다. 무슨 일이십니까. 그가 나를 샅샅히 훑어본다. 나는 대답 대신 안으로 들어선다. 당돌한 행동에 그가 기막혀 했지만 이내 문을 닫고는 작은 의자를 내게 건넸다. 그는 등받이가 있는 편안한 의자에 몸을 기대고 앉고는 오디오의 소리를 줄였다.

 

애꾸눈오디오, 맞죠?

 

언제나 선방이 중요하다고 배웠다. 상대의 기를 죽이는 것은 처음 공격을 어떻게 하냐에 결정이 된다고.

 

딜리팅하러 오셨나요?

 

그의 눈빛이 날카로워졌다. 내 안을 꿰뚫것만 같은 강렬한 눈빛에 머리를 귀 뒤로 넘기는 시늉을 했다. 구동치는 탐정이다. 그가 하는 일은 탐정의 영역에서 다양하지만 그만이 할 수 있는 일이 있다는 것을 익히 들어 알고 있었다. 그가 다짜고짜 '딜리팅'을 언급하는 것도, 내가 그 일을 의뢰하러 왔다고 여겼기 때문이다. 어떤 것이든 상대방의 비밀을 지켜주며 그것을 세상에서 없애는 것이 딜리팅의 일이라 들었다. 하지만 나는 그의 또 다른 비밀도 알고 있다.

 

딜리팅보다도 기록하러 왔어요. 당신이 보관하고 있는 기록들을.

내가 무엇을 보관하고 있다는 거죠?

사람들이 의뢰한 걸 지우지 않고 보관하고 있잖아요.

저에 대해 많이 조사하셨나 보군요.

 

그는 이제 편안하게 의자에 기대 앉아 있지 않다. 오히려 취조하는 형사처럼 나를 대하기 시작했다. 어디서 들으셨습니까. 그 목소리가 딱딱하게 변해서 나도 바짝 긴장하지 않을 수 없었다. 제가 그걸 어디서 들었는지는 중요하지 않죠. 알고 있다는 게 중요하죠. 나는 빙긋 웃어보였다.

 

저는 그저 기록하는 사람일뿐이에요. 그래서 당신을 찾아왔어요.

저는 기록과는 무관한데요.

저 파일함에 무엇인가 들어 있지 않나요?

 

독특한 자물쇠로 일일히 잠긴 파일함을 가리켰다. 나는 저 안에 무엇이 들어있는지 알고 있다, 란 시선으로 바라보는 게 중요했다. 저 안이 빈 파일함이라는 것을 알면서도 괜스레 찔러본다. 구동치는 길게 한숨을 내쉬었다.

 

탐정입니까?

아니요. 저는 탐정과 거리가 먼 사람이에요.

 

우리가 살고 있는 세계는 하나가 아니라 둘이다. 나를 둘러싼 세계와 내가 모르는 세계가 있다. 우리는 나를 둘러싼 세계를 확장해나가면서 내가 모르는 세계를 줄여나간다. 그러나 아무리 노력해도 내가 모르는 세계는 늘 어떤 방식으로든 존재하게 마련이다. 구동치는 굳이 물건을 없애는 것보다 물건의 위치를 바꾸는 게 낫겠다고 생각했다. 구동치는 두 개의 세계 모두에서 물건을 없애는 것을 풀 딜리팅이라 불렀고, 나를 둘러싼 세계에서 내가 모르는 세계로 물건을 옮기는 하프 딜리팅이라 불렀다. 물건을 그저 옮기는 것만으로 딜리팅이 가능한 것이다.(85p)

 

저에 대해 조사하셨다면 제가 딜리팅을 그만뒀다는 것도 아시겠네요.

알고 있어요. 하지만 딜리팅을 하지 않아도 당신이 많은 이야기를 끌어안고 있다는 사실은 변하지 않죠.

 

어느 드라마에서였던가. 진실은 잡히지 않는 먼 곳에 있다고 했다. 세상에 존재하는 것은 그저 단편적인 사실에 불과하다고, 그 사실 하나하나를 찾아나서야만이 진실을 손에 넣을 수 있을지도 모른다고. 그 진실 하나를 붙잡기 위해 사실을 모으는 어떤 남자에 대한 이야기를 예전에 본 적이 있었다. 구동치는 바로 그런 단편적인 사실을 모으는 사람이라고 여겼다. 구동치만이 진실에 도달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 그가 모아둔 비밀들, 내가 가리켰던 파일함엔 그가 지우지 않은 이야기들이 숨어 있었다. 나는 그 이야기가 듣고 싶어 구동치를 찾았다.

 

제가 왜 딜리팅을 관뒀는지도 그럼 알고 있겠죠?

 

구동치가 파일함으로 향한 내 시선을 거두어내듯 입을 열었다. 나는 그에게 도로 시선을 옮겼다.

 

네, 알고 있어요.

탐정도 아니라면서 참 많이도 알고 있네요.

 

그가 팔짱을 끼며 비꼰다. 탐정이 아니어도 알 수 있는 일들이 있어요. 나는 그에게 작은 목소리로 나지막이 말한다. 그는 눈썹을 위로 올리며 더 말해보란 표정을 짓는다. 그렇지만 내 말은 이제 침묵을 지킨다. 나는 그저 어떤 이야기를 찾아 흘러들어왔을 뿐이다. 길고 길게 뻗어나간 그림자 뒤편에 숨겨진 이야기에서 어떤 이들의 사연을 보았고 그 사연을 들추어내며 조심스레 좇아왔다. 헨젤이 집으로 돌아가기 위해 흘린 빵부스러기는, 구동치와의 세상으로 이어졌는지도 모른다.

 

"깊은 우물이 하나 있습니다. 너무나 깊어서 도무지 그 안을 제대로 들여다볼 수 없는 우물이 있습니다. 저는 무심코 그 안에다 돌멩이 하나를 던졌습니다. 아무 이유 없었죠. 그냥 던졌습니다. 한참을 기다려도 소리가 나지 않는 겁니다. 저는 흥미를 잃고 다른 곳으로 갔죠. 사람들이 지나가다가 또 돌멩이 하나씩을 던졌습니다. 그 사람들도 이유가 없었겠죠. 우물이 거기 있고, 우물은 깊으니까 돌멩이를 던지게 되는 겁니다. 그러던 어느 날, 우물 근처에 있다가 그 속에서 '퐁당' 하는 소리가 나는 걸 들었습니다. 지금 도착한 돌이 누구 건지 알 수 없습니다. 며칠 전 제가 던진 돌멩이가 지금 도착한 것일지도 모르고, 아침에 누가 던진 던일 수도 있죠. 그런데 그 소리가 어쩐지 제 돌멩이 소리 같은 겁니다. 저는 우물 속에다 돌멩이를 던졌기 때문에 '퐁당'이라는 소리에 어느 정도의 책임이 있다는 겁니다."(384p)

지우고 싶은 이야기들이란, 대체 무엇일까. 나는 그것을 지나치고 싶지 않았다. 남들에게 꺼내보이고 싶지 않은 비밀은 그 자신의 삶을 핵심지을 이야기임이 분명하다. 어쩌면 그는 자신만이 간직하고 싶은 이야기를 구동치에게 맡겼는지도 모른다. 구동치는 비밀스럽고 치밀하며, 부담스러울 만큼 입이 무거운 사람이다. 그의 절제된 행동은 딜리팅을 통해 익혔다기보단 형사 생활을 통해 익혔을지도 모르는 신중함이 배어 있다. 사람들이 그에게 찾아와 맡기는비밀이란, 그의 실력을 신뢰하기보단 그만이 자신의 이야기를 보관해줄 수 있는 유일한 이였기에 가능한 것인지도 모른다. 구동치의 삶 한 자락에 살짝 드리워진 어느 누군가의 비밀은 그림자처럼도 길게 뻗어나간다. 그 그림자를 알아차리는 사람도 있겠지만 대개는 모두 지나쳐버린다. 비밀은 그런 게 아닐까? 누군가에겐 목숨을 걸 만큼 중요하지만 누군가에게는 지나쳐도 상관 없는 그러한 것들.

 

내가 구동치에게서 듣고 싶은 이야기는 그런 것이었다. 누군가에게는 도저히 버릴 수 없는 소중한 이야기 한 자락을 내 손아귀에 쥐고 싶었다. 그 비밀 때문에 구동치가 어떤 꼴을 당했는지도 알면서도 비밀 앞에서 물러설 수가 없다. 타인의 비밀을 손에 쥐고 협박이나 조롱을 하고자 하는 것이 아닌, 그 사람의 은밀한 곳으로 숨어들어가 그 삶을 조금이라도 더 이해하고 싶다. 구동치는 사람들이 지우려고 의뢰한 것을 모아둠으로써 타인의 삶을 이해하고 있었던 게 아닐까.

 

사람은 타인을 완벽하게 이해할 수 없다고 하지만, 이해하려고 노력할 수는 있다고 어느 소설가가 말해주었다. 사랑한다면 이해하려고 노력해야 한다. 그 말은 어디쯤에 있을까 가늠을 해본 적이 있다. 내가 누군가를 이해하려면 어느 선까지 다가가야 할지, 상대방을 대하면서 어림짐작을 해보았다. 숨기고 싶은 비밀을 알게 된다면 나는 그 사람을 이해한다고 말할 수 있을까. 구동치는 그들을 모두 이해한다고 말할 수 있을까. 그저 노력하고 있을 뿐이다. 나도, 구동치도, 그 사람을 조금이라도 더 이해하기 위해 바동거리고 있을 뿐이다. 구동치는 말없이 앉아 있기만 한 나를 가만히 바라보고 있기만 한다.

 

한 소설가가 이런 말을 한 적이 있죠.

 

지우는 건 말입니다. 생각보다 대단한 일이 아니에요. 나는 하루에도 수십 수백 개의 문장을 지웁니다. 썼다가 지우고, 썼다가 또 지웁니다. 그걸 지워야 새로운 걸 또 쓸 수 있어요. 새로운 걸 쓰려면 계속 지워야 해요. 그렇게 지우고 지우다 마지막에 남는 것들, 그런 것들이 살아남을 가치가 있는 것들입니다. 누군가는 후배들과 후학들을 위해 모든 걸 지우지 말고 남겨두어야 한다고 말합니다. 하지만 제 생각은 다릅니다. 소설이란 건 말이죠, 길이 없는 겁니다. 길이 다 다른 겁니다. 제가 지운 글은, 그냥 제 길이고 제가 쳐낸 나뭇가지들일 뿐입니다. 그걸 보고 뭘 배울 수 있겠어요. 어설픈 길만 만들어줄 뿐입니다."(81p)

 

지우는 건 삶을 어루만지는 짓이다. 나는 그리 믿고 있다. 내가 그동안 살아왔던 흔적을 조심스레, 신중히 지운다는 행위는 내 삶을 돌아보는 신성한 행위다. 단지 내 삶을 내 스스로 지우기보단 타인의 손을 빌어 지울 뿐이다. 그리고 그 타인의 행위에서 내 삶은 그 타인에게 스며들어간다. 그런 행위에 있어, 내 비밀은 숨겨지기보단 공유되어진다. 나는 구동치가 했던 딜리팅을 상상을 하며 내 삶이 다른 누군가의 삶에 스며드는 것을 상상했다.

 

비록 각각의 삶은 구동치라는 한 인물에게 집중되어 있지만, 악어빌딩에 사는 사람들처럼 비밀의 아파트에서는 각각의 은밀한 삶이 같은 공기를 공유하면서 내통하고 있을지도 모른다. 그런 달콤쌉싸름한 상상을 하면서 구동치의 사무실로 찾아왔다.

 

구동치는 침묵을 가장하며 시위하고 있는 내 낌새를 알아차렸다. 내 고집이 그에게 통하리라는 것은 알고 있었다. 그에게서 이야기를 듣기 전에는 나는 일어설 생각은 하지 않았다. 두 다리를 굳건히 서고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주어진 의무가 있다면 어쩌면 타인의 삶을 훔쳐보는 것인지도 모른다. 그 비밀을 알게 되어서 겪게 될 일은 훗날의 일이다. 나는 고집스럽게 그에게 요구했다. 결국 내가 듣고 싶은 건, 파일함에 있었던 사람들의 삶이 아니라 사람들의 삶을 보았던 구동치의 내면이었다.

 

저는 잊고 싶지 않아요. 어떤 것이든.

 

나는 긴 침묵 후에 입을 열었다. 구동치는 두손두발 들었다는 듯 담배를 꺼내 물었다. 그리고 성량이 깊은 아리아처럼 이야기를 시작했다. 그가 어떻게 딜리팅을 시작하게 되었는지, 딜리팅 일이 얼마나 신중해야 하는지, 왜 그만 두어야 했는지. 다 알고 있는 이야기였지만 모르는 이야기이기도 했다. 그의 입에서 나오는 그의 이야기는 몇 사람의 이야기가 있는 한 사람의 이야기였다. 지워야 할 것을 남김으로써 그가 보았던 두 세계의 경계선은 아주 조금씩 허물어져 갔다. 의뢰한 일을 지우지 않고 남긴다는 것 역시, 구동치에겐 잊고 싶지 않은 삶이었던 것이다. 그렇기에 구동치는 나에게 그 이야기를 해줄 수 있었던 거겠지.

 

시간이 흐른다. 시간을 지운다. 조금씩, 느리게, 신중하고도 조심스럽게. 구동치 입에서 나오는 말들은 시간의 흔적을 지워냈다. 나에게 오는 시간의 흔적은 희미하지만 검은 그림자를 가졌다. 뚝뚝 떨어지는 이야기들은 어느 곳에 뿌리를 내려 자라게 될까. 이야기는 결국 끝이 나고야 만다. 구동치는 말을 마치고서는 한참이나 가만히 나를 바라보기만 했다. 내가 자리에서 일어나자 그가 입을 열었다.

 

당신이 죽게 되면 무엇을 지우시겠습니까.

나는 아무것도 지우지 않을 거예요.

 

아무것도 지우지 않는다란 말은 어떤 것이든 꼭 끌어안겠단 각오가 된다. 아무것도 지우지 않는다란 말이 월요일의 그림자를 가릴 것만 같았다. 나는 가벼운 웃음을 날린다. 어차피 당신은 딜리팅을 그만두었잖아요. 그제야 구동치도 어색하지만, 미소를 보였다.

 

 

Fin.

 

 

 

 

 

* 알라딘 공식 신간평가단의 투표를 통해 선정된 우수 도서를 출판사로부터 제공 받아 읽고 쓴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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