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나치게 산문적인 거리 - 용산 걸어본다 1
이광호 지음 / 난다 / 2014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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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도시에 대해 생각해보자. 나는 한때 살았던 충청북도 영동에 대해 말해보자면, 그곳은 난계 박연의 생가가 있는 곳이다. 중학교 다닐 때 난계국악박물관으로 소풍을 자주 갔다. 그리 크진 않지만 학교에서 가깝단 이유로 걸어다녔다. 매해 박연을 기리는 축제를 한다. 난계국악축제. 감이 유명한 곳으로 감아가씨를 선발하기도 했지만 <포도밭 그 사나이>란 드라마를 황간에서 촬영한 후로, 포도 축제로 바뀌었다. 영동은, 현대사적으로 볼 때 가슴 아픈 곳이기도 하다. 영동군 황간면 노근리에 일었던 사건은, 아직도 그 흔적이 있다. 황간면으로 봉사활동을 갈 때 그 다리를 보았다. 총알이 박힌 자국이 남아 있다고 황간면에 살던 친구가 일러준 적이 있다. 이현수 작가님의 <나흘>에서도 노근리 사건을 다루고 있다. 어떤 도시건 그 역사는 길고도 어떤 상흔을 간직하고 있을 것이다.

내가 아는 용산은 호남선이 출발하는 곳이다. 작년이었나, 재작년이었나 노트북이 고장나 AS를 받겠다고 용산을 간 적이 있다. 용산전자상가가 유명하다고도 하고 AS 센터가 용산전자상가에 있다고도 하여, 구경도 할겸 방문했다. 용산역이 종착역이라 기차를 타고 그곳까지 간 후, 내렸는데 생각보다 큰 역의 모습에 놀랐다. 아니, 왜 의외의 모습이었다고 놀란 건지 모르겠다. 용산이 주는 이미지는 그렇게 부정적이었나 싶기도 하고. 서울역보단 작을 것이라 생각했던 탓일까. 극장도 있고 백화점도 바로 옆에 있는 것을 보고 솔직히 놀랐다.

하지만 번쩍번쩍한 용산역의 모습과 달리 전자상가로 향했을 때의 모습은 그다지 아름답단 느낌은 없었다. 전자상가라는 이름에 걸맞게 건물과 건물을 잇는 통로는 참신했다. 햇빛이 강렬해 그늘로 다닐 수 있다는 이점이 있었다. '전자상가'라는 이름에 걸맞게 전자제품을 파는 곳이 많았다. 그러나 바로 거리 맞은편의 건물은 낡고 허름했다. 과거와 현재의 시간이 공존하는 곳처럼 느껴졌다, 용산이란 곳은. 어떤 건물은 화려하고 번쩍하지만 어떤 건물은 다 쓰러져갈 것만 같이 위태하다. 그런 이질감이 용산에 존재했다. 어찌저찌 AS센터까지 갔을 때도, 건물 근처에 롯데시네마의 건물이 있었다. 롯데시네마 바로 맞은편에는 글자의 페인트칠이 다 벗겨진 건물이 있었는데 그곳에만 몰락의 시간이 존재했다. 그런 이질감은 용산을 으스스하게 만들었다.

내가 아는 용산은 이게 전부다. 의외의 모습을 가지면서 어쩐지 모르게 으스스한 분위기를 가진, 그런 공간. 그렇기에 <지나치게 산문적인 거리>가 출간되었을 때, 이 책이 용산을 다룬다는 것을 알았을 때 호기심이 생긴 것은 당연했다. 용산은 내가 생각한 것보다 어마어마한 역사를 지녔고 다채롭고, 때론 어딘지 모르게 스산한 구석이 있었다. 책을 읽고 나서야 용산에 대해 이제 제대로 좀 알게 된 기분이었다. 어떤 곳은 낭만적이지만 어떤 곳은 낭만을 잃어갔다. 그런 정반대적인 성향을 지닌 곳이 용산이라고 생각했다. 한남동과 이태원의 분위기가 다른 것처럼.


용산.
모든 시간이 휘몰아치는 곳.
풍경이 지나가는 곳.
빛이 반짝이다 사라지는 곳.
그리움이 쌓여가는 곳.
낯선 시선이 느껴지는 곳.
역사와 역사가 만나는 곳.
서로 다른 세상이 맞물려 흘러가는 곳.
너와 나의 발걸음이 마주치다 스쳐가는 곳.
네가 사라지는 곳.
내가 사라지는 곳.

용산이란 이름의 시詩는 언제나 그곳에 존재했다. 어느 누군가가 적었기 때문에 시가 되었던 게 아니다. 용산은 처음부터 많은 시간과 그리움과 사람들의 발걸음이 스쳐지나갔다. 일제 감정기 때 일본군인이, 미군 부대가 있었을 때엔 미군이, 이태원의 외국인 골목에서 오고 간 수많은 이국적인 풍경들. 누군가 그 풍경을 오래도록 지켜볼 때 용산은 시로 태어나 시로 남았다.

이태원의 역사가 처음부터 이국적이었던 것은 아니었다. 이태원의 역사가 아직도 상흔처럼 남아있다. 비구니에게 잔인한 상처를 남겼던 곳이 외국인들이 오고 가는 장소가 되었다는 게 여전히 믿기지 않는다. 용산의 여러 장소는 근현대사의 상처가 산재해 있다. 그것을 아는 사람이 과연 몇이나 될까. 많은 사람들이 스쳐가는 곳이니 그 빠른 발걸음 속에서 용산의 깊은 상처를 찾아내기란 쉽지 않을 것이다. 그렇기에 <지나치게 산문적인 거리>는 용산이란 도시를 알기에 충분하다. 대한민국의 역사에 관심이 있는 사람이라면 이 책을 일독하길 권한다. 단순히 '도시'라는 테마를 뛰어넘어 오랜 시간의 흔적을 찾아가는 문장을 볼 수 있을 것이다. 당신의 가슴에 어떤 감정을 남길 수 있는 책일지도 모른다. 이 책을 읽고 나면 당신은 오래도록 용산을 잊지 못할 것이다. 용산에 들를 적에 책의 구절을 떠오를지도 모를 일이다.

파문을 일으키는 물은 시선에 오래 머문다. 용산이란 도시의 낯선 감각은 현재 존재하는 시간에 파문을 일으킨다. 그 파문은 고요하고 잔잔하지만 꽤 멀리 퍼졌다. 도시 아래 깊숙이 깔린 과거의 시간은 한번쯤은 뒤돌아보게 한다. 그게 역사의 현장이 될 때, 당신은 그 도시에 붙박힌 듯 존재하게 될 것이다. 실체가 존재하지 않아도, 당신의 마음은 용산에 머무르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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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즈의 의류 수거함 - 제3회 자음과모음 청소년문학상 수상작 자음과모음 청소년문학 40
유영민 지음 / 자음과모음 / 2014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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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로시가 회오리바람을 타고 마법의 나라로 간 게 아니라, 밤에 괴도로 변신하는 이야기는 꽤나 구미를 당겼다.
도로시가 터는 것은 의류수거함. 사람들이 의류수거함에 놓고 간 옷은 의외로 상태가 좋았고 꽤나 쏠쏠한 수입 원천이 되었다. 외고 입시에 실패하여 호주로 가는 것이 꿈인 그녀는 열심히 돈을 모으기로 한다. 그녀의 지인에는 중고 옷을 사고 파는 마녀 님이 있는데 그녀는 의류수거함에서 훔친 옷을 마녀에게 판다. 그다지 수긍이 가는 분배는 아니지만 그녀는 의류수거함을 털면서 호주로 가는 꿈을 부푼다.

한창 공부를 하고 있어야 할 고등학생 소녀가 밤마다 의류수거함을 터는 모습을 상상하기라 쉽지 않다. 입시에 대한 좌절을 도둑질로 풀려는 것은 아닌가 하는 우려도 있다. 하지만 그녀가 걸어가는 거리에서 만나는 사람들의 사연을 들쳐보면, 도로시가 '의적'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그녀는 의류수거함을 털면서 많은 사람들을 만났다. 노숙자, 북한에서 온 카스 삼촌, 마녀가 자주 가는 식당 주인 마마, 그리고, 그녀의 인생에서 어떤 확신을 안겨주었던 195. 거리에서 만난 인연은 이것으로 그치지 않고 폐지를 줍고 다니는 할머니에게 선의를 베풀게 한다.

상냥한 마음을 안겨주는 글이란 무엇일까. <충사>나, <나츠메 우인장>을 보면서 늘 그런 생각을 했다. 이 만화들은 상냥함을 기억하게 한다고. <오즈의 의류수거함>이 그러했다. 각각의 사연을 펼치면 그다지 행복하지도 않지만, 그런 기억을 토대로 모두 저마다의 삶을 꾸려가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된다. 숙자 씨는 알코올 중독자인데, 술을 그만 마시라는 도로시의 말에 그는 이렇게 말한다.

"이봐, 무언가에 중독되지 않고서 어떻게 이 누더기 같은 세상을 버티겠어. 때로는 중독도 살아가는 힘이 된다구."(58p)

교양과 지식을 겸비한 숙자 씨의 삶은, 어딘지 모르게 피곤함이 묻어 있다. 아내와 함께 수의사가 되어 좋아하는 동물과 함께 살아갈 삶을 꿈꾸지만, 구제역으로 인해 살처분을 해야 했던 과거는 바로 현재의 모습을 그리고 있었다. 최근에 조류독감으로 인해 살처분을 당한 오리와 닮을 떠올렸다. 이 글을 보면서, 내가 살처분을 해야만 했던 사람들의 심정을 인터뷰한 기사를 떠올렸다. 그것은 사랑하는 것들을 떠나보내야 하는 것이었다. 좋아하던 동물과 이별을 하는 것이었다. 동물에 대한 강한 애정이 있기에 숙자 씨의 아내는 그렇게 세상을 떠난 것이겠지. 이별을 감당할 수 없어 숙자 씨는 거리를 전전하며 살아가는 삶을 택하게 되었는지도 모른다.

"그거야말로 내가 바라는 바야. 아니, 이미 뇌가 없는지도 모르지. 하루하루 생각 없이 보내니까. 그런데 재밌는 건, 생각이 없기 때문에 살아갈 수 있다는 거야. 나란 인간은 생각이란 걸 하게 되면 추락하게 되거든."(62p)

도로시가 만난 사람들은 모두 상처를 지니고 있다. 주인공인 도로시조차 그렇다. 입시의 좌절로 인한 자살충동. 그러나 자살조차 뜻대로 되지 않았던 그녀. 그러나 같은 상처를 가져도 밝고 희망찬 얼굴로 살아가는 사람이 있었다. 카스 삼촌이 그러했다. <자유로운 삶>에서 공산주의의 삶을 살짝 엿보았지만 <오즈의 의류 수거함>에서 다시 접한 북한의 실상은 동정을 뛰어넘어 분노마저 일었다. 계급이 아직 존재하는 세상, 맛있는 것도 먹지 못하고 굶어야만 했던 삶. 부잣집 친구 집에서 배 부르게 먹고 와서 그걸 모두 토해내 가족을 먹였다던 카스 삼촌. 그러나 남한도 그다지 행복한 세상은 아니었다. 돈이 없으면 멸시를 받아야 하는 일종의 계급 사회였다. 그렇지만 카스 삼촌은 자신이 먹고 싶은 라면이나 맥주를 맘껏 먹을 수 있어서 행복하다고 말한다.

"내 자신을 시키는 대로 일만 하는 기계라고 생각하면 됩네다. 기계는 아무것ㄷ 느끼지 못하잖습네까? 분노도, 슬픔도, 고통도."(88p)

한국의 현실을 무서우리만치 꼬집는 글이었다. 어딜 가도 계급은 존재한다. 학교에 가도 마찬가지다. 우리는 이런 무서운 현실에서 뒤쳐지지 않으려고 바동거린다. 모든 것이 경쟁이고 약탈이다. 그런 세상에서 이 글은, 어찌 보면 작은 싹과 같은 글일지도 모르겠다. 상냥함을 틔우는 싹. 작지만 미미하지만 언제고 쑥쑥 자라 사람들의 마음에 스며들 그런 상냥함 같은 글. 그렇기에 상처를 가진 사람들이 서로를 보듬어주고, 서로의 말을 들어주는 모습은 어딘지 모르게 그리움마저 든다.

도로시가 의류수거함을 털다가 찾은 어느 자살예고자의 모습. 그것은 사람들을 하나로 만들었다. 누군가의 목숨을 중히 여기는 것은 중요한 일이다. 한 번도 만나지 않았다고 하더라도 누군가 죽겠다고 하는데, 그것을 모르는 척할 사람이 과연 있을까. 때에 따라 달라지겠고 상황에 따라 달라지겠지만, 도로시는 그를 찾아나섰다. 195를. 부족함 없이 자랐지만 마음에 자리잡은 공허함으로 약물중독이 되어버린 그는 죽음을 각오하고 있었다. 하지만 그는 도로시가 만나자고 하자 수수께끼를 냈다. 하얀 건물이 있고, 사람이 평생 두 번 드나드는 역. 그곳에서 만나자고 했다.

도로시는 195에게 3달만 함께 의류수거함을 털자고 제안한다. 그는 흔쾌히 수락하고, 그러면서 그는 자연스레 의류수거함 멤버로 합류하게 된다. 잘생기고 공부도 잘한 그가 무엇이 부족하여 자살을 하려고 했는지, 글을 보면 알 수 있다. 행복은 누군가 만들어주는 게 아니라는 것, 스스로 찾아나서야 한다는 것을 이 글을 통해 깨닫게 되었다. 어느 누구도 내 행복을 결정짓지 못한다. 의류수거함을 털면서 도로시는 스스로의 길을 만들어냈고 스스로 행복함을 만들어냈다. 그 반짝거리는 것은 밤하늘의 별처럼 또렷하여 어떤 어둠에도 물들여지지 않는 확신과도 같았다.

195의 이야기로 빠져들면서 마마의 사연도 알게 되었다. 그녀는 195가 살기를 바랐고 그 진심이 그에게 전해졌다. 195는, 자존심만 강했지 자존감이 부족했었다고 조심스레 고백을 했다.

"굳이 설명하자면 자존감은 포용이란 토양에서 자라나고 자존심은 경쟁이란 토양에서 자라나지. 자존감이 이타심이란 열매를 맺는 반면, 자존심은 이기심이란 열매를 맺어."

사람에게는 언젠가 견딜 수 없는 순간이 찾아온다. 그것을 버티고 나아가느냐, 아니면 주저앉아 모든 것을 포기하냐는 본인의 몫일 수도 있다. 하지만 어느 누군가가 내밀어준 손이 때로는 삶을 지탱해주는 힘이 되어주기도 한다. 195에겐 도로시가, 함께 의류수거함을 털면서 만난 사람들이 그래주지 않았을까. 혹은 도로시도, 마마도, 숙자 씨도, 마녀도, 카스 삼촌도 알게 모르게 지탱을 받지 않았을까. 그것을 생각하면 그들이 선한 마음으로 폐지 할머니의 집을 고쳐주고 보일러를 놓아준 것도 이해가 되었다. 도움을 받았기에 도움을 주는 것, 그들은 그렇게 정했다. 비록 그들이 고급 주택에 있는 의류 수거함을 턴 건 옳은 방법은 아니었지만.

이 글은 크게 보면, 도로시의 여행과도 같다. 의류수거함을 털면서 만난 사람들, 그들의 이야기, 그들이 갖고 있는 상처. 그러나 작게 보면 어느 한 목숨이 구원받은 이야기였다. '자살'이라는 무서운 유혹을 뿌리치고 자신만의 길을 가게 된 사람들의 이야기. 생명을 중히 여기고 그 생명을 위해 살아간다는 것은 쉽지 않다. 하지만 적어도 그런 마음을 가져야 하지 않을까. 상냥함이란, 어쩌면 아주 작고 미미하지만 타인에게 어떤 영향을 미칠지도 모른다. 요괴에게 상냥한 나츠메가 요괴의 사랑을 받듯, 벌레에게 배려를 한 깅코가 벌레들의 배려를 받듯. 그들이 한 행동은 어찌 보면 사소할 수도 있지만 사소한 것 하나로 인해 많은 것이 변하기도 한다. 기적이란 작은 사소한 행동들이 모여서 이루어지는 게 아닐는지.

도로시가 밤길을 나서면서 만난 사람들, 그간 놓쳤던 풍경들. 이 글을 읽으면서 나도 나를 되돌아보게 되었다. 나도 내가 놓친 건 없는지, 내가 다른 사람을 위해 상냥해질 수 있는지를 돌아보며 이 글을 쓴 작가에게 무한한 감사함을 느끼게 되었다.

청소년 문학이란, "전문 작가가 청소년을 독자대상으로 하여 청소년들의 삶의 문제를 직간접으로 다룬 문학작품"(315p)이라고 한다. 어찌 보면 이 글은, 사전적 의미 그대로 청소년을 대상으로 한 글일 수도 있다. 하지만 다르게 보면 청소년기를 거친 어른들도 읽어야 하는 글이 되지 않을까. 상냥함을 가진다는 것은 어른이 되어서도 필요하니까. 최근에 울산에서 일어난 살인사건을 보면서, 사람들이 점점 분노를 제어하지 못한단 느낌을 받았다. 누구든 삶에 극단적으로 몰려 극단적인 선택을 할 수 있는 세상이 되었다. 조금 상냥해지자, 조금 나를 배려하자. 조금 남을 사랑하자. 그런 마음을 가질 수 있다면 문학엔 청소년 대상이든 청소년 대상이든 그런 경계는 필요하지 않다.  그런 의미에서 <오즈의 의류 수거함>은 더할 나위 없이 좋은 글이라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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투명인간
성석제 지음 / 창비 / 2014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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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지 가족이라서가 아니라 정말 훌륭하고 고귀한 사람들이기 때문에 저절로 좋아하고 존경하게 된 거다. 태어나면서부터, 타고나기를 그랬던 것 같다. 그들은 나의 뿌리이고 울타리이고 자랑이다. 나는 그들이 정말 좋다. 지금도 그렇다. 눈을 감으면 언제든 복숭아꽃 살구꽃이 환하게 핀 고향의 집에서 어머니가 나 오기를 기다리며 마당에 서 있는 게 보인다. 형님은 하모니카로 <클레멘타인>을 불고 아버지는 가마니를 짜고 새끼를 꼬고 있다. 어서 와, 어서 와. 누나들은 산나물이 담긴 바구니를 옆에 끼고 나를 향해 손짓한다. 할아버지의 글 읽는 소리, 할머니의 다정한 말소리. 동생들이 달려나온다. 석수다. 옥희다. 나는 마주 달려간다. 부엌에서 달그락달그락 소리가 난다. 햇볕이 따뜻하다. 소가 운다. 밥 짓는 연기가 피어오른다. 내 아들 태석이가 까르르 웃는 소리가 들린다. 앞치마를 한 아내가 손을 닦으며 나를 바라다보고 있다. 보고 싶은 사람들이 모두 모였다. 사랑하는 사람들이 거기 다 있다. 보인다. 지금 같은 순간이 있어서 나는 행복하다. 내가 목숨을 다해 사랑하는 사람들이 나를 부르는 소리, 기쁨이 내 영혼을 가득 채우며 차오른다. 모든 것을 함께 나누는 느낌, 개인의 벽을 넘어 존재가 뒤섞이고 서로의 가장 깊은 곳까지 다다를 수 있을 것 같다. 이게 진짜 나다."(365p~366p)



삶은 때론 어떤 의미로 처절하다. 가볍다가도 천근만근 무거워진다. 상승과 하락이 반복된다. 살면서 그걸 깨닫기까지 참 오랜 시간이 걸렸다. 그 삶을 버티느냐, 무게에 깔려서 모든 것을 다 포기하느냐는 본인의 선택이다. <투명인간>은 한 인간의 역사가 고스란히 담겨 있다. 누군가에게는 평범해 보이고, 어느 누군가에게는 처절해 보이는 삶. 김만수의 삶은, 삶이란 것에 대해 다시 생각하도록 한다. 기억하게 만든다.

이 글은, '투명인간'에 대한 이야기다. 그들이 왜 투명인간이 되었는지에 대한 이야기다. 그것을 알기 위해선 투명인간이 된 사람을 알아야 한다. 그가 김만수다.

김만수의 역사는 실로 엄청나다. 만석꾼이었던 집안이 할아버지의 일로 가세가 기울어지면서 졸지에 고향을 떠나게 되었다. 개운리로 오면서 할아버지는 소를 사서 키우고 농사에 대하여 다양한 방법을 모색하는 등 개운리 사람들에게 존경을 받았다. 김만수의 아버지는 일자무식으로 농사만 아는 양반이었다. 할아버지와 뜻이 달랐다. 그래서 무조건 일만 했다. 그러나 술을 먹으면 성질이 사나워진다. 할아버지는 상냥하고 다정했으며 손주들에게 많은 지혜를 베풀었다.

김만수가 태어났을 때부터 머리는 크고 몸을 말라, 허약한 체질이었으니 부모의 걱정은 이만저만 아니었다. 발육도 느리고 말이 트는 것도 느려, '사람 노릇'을 할지 걱정이었다고 한다. 그렇지만 그는 할아버지의 말을 무조건 알아들으려고 노력하는 아이였고 식구들을 위해 제 한 몸 희생하는 아이였다. 말이 트고 학교를 다니게 되면서 그는 무모하기까지 하고 바지런한 모습을 보이기도 했다. 김만수는 노력하는 사람이었다. 학교에서건 집에서건, 누나들을 따라다니면서 열심히 노력했다. 석수가 자신을 무시하고 깔봐도 하하 웃으면서 동생에게 잘해주려고 했다.

그의 인생은 여러 사람의 입을 통해 증언되었다. 할아버지, 할머니, 어머니, 아버지, 형, 큰누나, 석수, 명희, 옥희, 친구들과 선생님, 어쩌면 김만수와 인연이 닿지 않았을 사람들까지. 태어나면서부터 자라고, 어른이 되어 투명인간이 되기까지 수많은 사람들이 김만수와 얽혔다. 그리고 그의 삶을 이야기했다. 김만수가 어떤 인간인지 철저하게 파헤쳤다.

정작 김만수 본인의 입으로 하는 이야기는 존재하지 않는다. 마지막 즈음에 그의 말이 독백처럼 존재하지만 그것만으로는 그의 이야기라고는 할 수 없다. 그 점이 또 특별하다. 김만수 본인의 입으로 말하는 김만수의 삶이 아니라 주위에서 말하는 김만수의 삶. 이를 통해 삶이란, 어느 한 사람만이 가지는 것이 아니라 다수의 사람들이 거미줄처럼 얽혀 살아가고 있다는 것을 반증하는 것 같다.

나는 이 작품을 읽고 나서, 삶의 파도를 느꼈다. 거세게 몰아치는 파도는 내 안을 휘저어, 삶을 다시 적었다. 김만수가 가족을 위해 치른 희생은 희생이었는가. 그의 행보는 전율케 했으며 때로는 복잡한 기분이 들게 했다. 자기만의 시간을 갖지 못하고 자기를 위한 생각을 하지 못한 것인가, 아니면 이기적으로 자기만을 위해 살아온 사람인가. 그가 동생들을 위해 제 한 몸을 깎아 만든 돈은, 분명 가족을 위한 것이었다. 그 한 몸 몸바쳐 일하고 일하고 일을 했다. 그렇지만 막상 또 돌아서서 생각하면 김만수가 원한 삶이 그러한 게 아닌가 싶었다. 부도가 난 공장을 지키겠다고 한 것이 불법이 되어버려 엄청난 빚이 떠안겨졌을 때, 그는 그것을 모두 갚겠다고 했다. 그때 식구들은 얼마나 힘들어했는가. 동생의 아이를 포기할 수도 있었을 텐데 자신의 아이처럼 돌보았다. 송진주는 어찌 되었는가. 그의 삶은 잘못되었다고 할 수는 없다. 그는 그 자신대로 열심히 살았다. 남들보다 배는 열심히 살았다. 그것은 위대하다고 할 만하다. 하지만 다시 생각해보면, 어딘지 모르게 가슴이 서늘해지는 부분이 있다.

<투명인간>이 전해주는 그 서늘한 감각은, 어찌 보면 이 글 전반에 깔려 있는 사회문제 때문일 것이다. 김만수가 살아오면서 거친 수많은 정치상황, 노동현실, 그리고 현재까지 이어져 온 상황들. 그것들이 맞물려 가난한 자들은 비참해지는 상황까지 가버리고 말았다. 성석제 작가가 말하는 <투명인간>이란, 자신의 권리를 쟁취하지 못한 채 바스러져 간 사람들의 모습이다. 김만수가 결국 투명인간이 된 것은, 지배층에 의한 피지배층의 희생이다. 그것을 놓고 보면 투명인간이 되는 삶은, 지금 현실에서도 벌어지고 있는 일이 아닌가 싶다. 태석이가 왜 투명인간이 되었을까. 그는 자신이 존재하고 있다고 열심히 피력했음에도 불구하고 수많은 사람들에게 무시를 받고 외면받았다. 태석이 바라는 건, 그저 자신이 존재하고 있음을 인정받는 것이었다. 하지만 사람들은 그의 그런 진심을 외면했다. 태석은 투명인간이 되어서야 그 존재를 인정받았다.

어떤 사람은 태어나면서부터 금수저를 물고 태어난다고 한다. 어떤 사람은 태어나자마자 엄청난 빚을 떠안기도 한다. 삶은 얼마나 불공평한가. 세상은 얼마나 불공평한가. 여전히 이 시대에선 투명인간이 넘쳐나고 있다. 다리에서 떨어져 투명인간이 되는 사람, 손목을 그어 투명인간이 되는 사람. 그들은 투명인간이 되어서야 행복해지는 것인가. 그것도 아니면 더 고통스러워지는가. 성석제 작가가 말하는 '투명인간'은 소외되어 가는 현실을 말하고자 함이 아니었나. 독거노인, 고아, 가난한 사람들, 노숙자들과 같은 그런 삶. 삶은 모두에게 평등하다. 평등하기에 모두 살아가고 있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삶은 불공평하다. 불공평하기에, 외면받는 현실이 벌어진다. <투명인간>이 말하고자 하는 것은 바로 그런 외면에 대한 것이다. 누군가 누군가의 삶을 외면하면 그는 바로 투명인간이 된다. 존재하지도 않는 이름을 붙잡으며 살아갈 이는 아무도 없다. 허상의 이름을 오래도록 생각할 사람은 없다. 투명인간이 되지 않으려면 내 존재를 증명해야만 한다.

그 존재를 증명하는 길은, 김만수의 말처럼, 살아야 할 것이다. "아픔도 슬픔도 없이 모두가 평등한(367p)" 삶이 투명인간의 삶이라면 "아픔도 슬픔도 존재하고 모두가 불평등한 삶"이 지금 존재하고 있는 사람들의 모습이다. 어찌할 수 없이 만들어지는 차등은 사람들을 비참하게 하고 비굴하게 하고 분노하게 하지만 이것을 이기는 방법은 살아가는 것이다. 살아남는 것이다.


"죽는 건 절대 쉽지 않아요. 사는 게 오히려 쉬워요. 나는 포기한 적이 없어요."(369p)


* 알라딘 공식 신간평가단의 투표를 통해 선정된 우수 도서를 출판사로부터 제공 받아 읽고 쓴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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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의 목가]를 읽고 리뷰 작성 후 본 페이퍼에 먼 댓글(트랙백)을 보내주세요.
미국의 목가 1 (양장) 문학동네 세계문학전집 117
필립 로스 지음, 정영목 옮김 / 문학동네 / 2014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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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질주하는 무질서의 삶 속으로

세대가 거듭하면서 빚어지는 인간의 역사.

 

 

스위드. 달콤하게 울리는 이 마법 같은 이름에는 어떤 역사가 있다. 찬란한 금발에 키가 190cm나 되는 잘생기고 멋진 청년은 어디에 가도 주목을 받았고 어디에 가도 사랑을 받았다. 그 완벽함 너머에 존재하는 어떤 파괴적인 것. 파괴로 빚어지고 파괴로 망가지는 어떤 작은 것이 그의 안에 숨겨진 것도 모른 채 그는 살아왔다. 세상에서 가장 예쁜 미인인 돈 드와이어와 결혼을 하고 아버지 사업을 물려받아 부유해졌으며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을 딸을 가졌다. 그들은 행복했고 행복해야만 했다.

 

행복해야만 했다.

 

 

그러나 레보브 가족에게 어떤 비극적인 일이 생긴다. 그 비극은 가히 그들에게는 이질적인 것이다. 어떤 파괴, 그간 숨겨져 있던, 존재하지도 몰랐던 어떤 파괴가 정면으로 그들에게 나타나기로 한 것이다. 메리는 말더듬이가 되었고 전쟁을 혐오했고 폭탄을 터트려 사람을 죽였다. 사람을 죽였다. 폭탄을 터트려서.

 

그의 인생은 가시밭길이 아닌 장밋빛이어야 했다. 그에게 가시밭길과 같은 황량하고 척박한 땅은 존재하지도 않았다. 향기로운 꽃에 둘러싸여 아름다운 부인과 토끼처럼 귀여운 자식과 함께 죽을 때까지 순탄하고 행복한 인생을 살리라 믿었다. 레보브 가문이 이룩한 것. 전쟁 전, 할어비지가 미국으로 이민을 와서 살기 시작하면서 레보브 가문의 역사가 시작되었다. 유대인으로서 미국에서 태어나, 그는 미국적인 삶을 영위하리라 굳게 믿었다.

 

주커먼은 소설가다. 이 소설의 화자는, 스위드를 매력적이고 완벽한 남자로 묘사한다. 그런 스위드가 그를 '스킵'이라고 불러준 것을 영광으로 알고, 그가 편지를 보내 만나자고 했을  때 '당연히' 만나야만 했다. 그러나 그 번듯하고 멋지고 예의 바르고, 성공적인 삶을 가진 스위드에게 어떤 이질적인 것이 있었다. 존재하지 말아야 할 어둠, 있어서는 안 되었던 감정들. 불안이라 불리고 절망이라 불리고 파괴적인 것이라 불리는 그 모든 감정들. 주커먼은 스위드의 삶을 고민하고 고민하여, 스위드의 인생으로 스며들어갔다.

 

반짝반짝 빛이 나던 빛들이 산산조각이 나버린 어떤 인생이 있다. 스위드의 삶이 그러했다. 그는 빛을 둘러싸고 태어나 빛에 둘러싸인 채 자랐고, 앞으로도 그럴 것이었다. 하지만 메리의 존재, 메리의 폭탄, 메리가 죽인 사람. 메리의 분노와 파괴적인 것. 그것이 스위드를 날려버렸다. 그때 터트린 폭탄은 미국을 떠들썩하게 했지만 스위드의 인생마저 떠들썩하게 해버렸다. 한 번의 폭발이 스위드의 인생을 뿌리채 흔들어댔다. 그는 생각한다. 어째서 메리는 전쟁을 혐오하게 되었으며 어째서 메리는 폭탄을 터트리게 되었는가. 왜 그래야만 했는가. 그 아이는 왜 그랬는가. 어째서 자신에게 그런 아이가 태어나게 되었는가.

 

메리와 스위드는 서로 반대의 길을 가는 존재다. 스위드가 언제나 활달하면서도 매너 있고 아름다운 존재로 남아있다면 메리는 음침하고 분노하고 추한 존재로 남아있다. 메리는 아버지만큼 큰 키에 뚱뚱한 존재로 자랐다. 그리고 폭탄을 터트려 사람을 죽였다. 스위드는 심지어 메리가 그리 된 것에 대해, 말더듬증을 비롯하여 어릴 때 키스를 해줘서 그렇다고 믿어버리게 되었다. 이 말도 안되는 사정이 사실은 말이 되는 사정이 되었으며 메리의 그런 정당화되지 않을 행동을 설명하게 했다.

 

이 이야기는 한 인간의 몰락을 다루고 있지만, 미국 폭동과 베트남 전쟁, 그 당시 일어났던 사회전반에 걸친 현상을 생각하면 미국의 어떤 현상을 몰락하고 있다고 봐도 무방하지 않을까 여겼다. 인종차별에 참을 수 없어서 일어난 폭동, 베트남과 전쟁을 하면서 일어나던 무력시위. 급변하는 시대에 휩쓸린 사람들의 그런 무질서함이 스위드는 참을 수 없었던 것이다. 한 번도 그런 무질서함을 느껴본 적이 없던 스위드였기에 메리의 행동은 그를 파괴시켰다. 메리가 결국 그렇게 행동했던 것은 스위드가 원인이었기에 결국 그는 고꾸라지고 말았던 것이다. 그가 꿈꾸었던 삶, 결코 존재하지 말아야 할 어둠 앞에서 그는 힘없이 무너지고 말았다. 그의 그 아름다운 모습들은 그가 사랑을 받으려고 쳐둔 방어벽에 지나지 않았고 메리의 행동이 그의 방어벽을 조금씩 무너뜨려 그의 진정한 자아를 찾아가게끔 하였다.

 

사람들은 결국 어떤 가면을 쓴 채 살아가고 있다. 스위드뿐 아니라 나도, 너도, 그리고 그들도. 그들이 갖고 있는 가면이란 상대방의 기분을 해치지 않으면서 좋은 관계를 유지하고 때론 무심하게 넘길 수 있도록 하는 것일 것이다. 스위드는 그저 타인에게 깊이 들어가지 않고 동시에 자기 자신에게도 깊이 들어가지 못했다. 그 자신을 제대로 짚어보지 않았기에 남들에게 언제나 만들어진 인물처럼 느껴지게끔 했다. 흠 하나 없는 완벽함을 연기함으로써 메리를 폭발하게 만들었고 메리가 떠나가게끔 했다. 리타 코언이 그를 괴롭혀 왔던 것은 단순히 그가 부르주아적인 사고방식을 가진 것이 아니라 그에게서 어떤 인간적인 냄새가 나지 않았던 탓이 아니었나 싶다. 그를 직접 찾아와 모욕감을 주고, 다리를 벌려 섹스를 하도록 강요한 것도 그 안에 숨겨진 어떤 충동적인 내면을 드러나게 하려고 했던 것 같다. 결국 그는 메리를 사흘 동안 숨겨주었던 실라에게 그 폭력적인 것을 드러냈고 동시에 무너져내렸다.

 

스위드는 오컷을 보면서 아무렇지 않아하려고 하지만, 돈의 그런 비웃음을 들으면서 그에게 편견을 가지려 하지 않았지만 결국 오컷을 의식하여 오컷에게서 혐오감을 느끼게 되었다. 돈과 오컷이 바람이 났다는 것을 떠나, 스위드도 결국은 혼돈 안에 살아가는 인간이라는 것을 극명하게 보여주었다. 질서에서 무질서로, 조화에서 혼돈으로, 결국 인생이란 그렇게 한치 앞도 볼 수 없는 안개와 같은 것이라는 걸 보여주었다. 스위드가 믿고 있던 그 모든 것은 환상에 지나지 않았으며 현실은 그가 생각하는 것만큼 녹록지 않다는 것을 드러냈다. 메리의 폭탄은, 미국을 날려버렸을 뿐 아니라 스위드란 사람도 폭발시켰다. 그가 쳐둔 바리케이드를 모두 벗겨 그를 무방비 상태의, 가장 순수하고 여린 존재로 탈바꿈시켰다. 아름다운 아버지, 강한 아버지, 모두가 좋아하는 그런 존재가 아니라 그도 미움을 받을 수 있고 그에게도 어둠이 존재한다는 것을 폭로했다.

 

이해할 수 없는 것은, 오히려 이 글이 신비롭다고 느끼게 된 것은 주커먼의 상상으로 시작한 이야기가 어떤 사실적인 것을 밝혀내지도 못한 채 끝을 맺었다는 것이다. 동창모임에서 주커먼은 스위드를 생각하다가, 스위드를 꿈꾸게 되었다. 그리고 그것은 스위드의 인생을 모두 재조명하게 되었다. 스위드가 직접 이야기를 들려준 것도 아니고, 제리가 말을 해준 것도 아닌데 어찌 그는 그것을 말할 수 있는가. 이 또한 어떤 환상을 설명하려고 한 게 아니었는지. 스위드가 꿈꾼 것이 모두 환상이었듯, 스위드의 이야기 또한 어떤 환상이 아니었는지.

 

처음에서부터 끝까지 가는 여정을 좇다 보면 이 글이 얼마나 놀라운지 알게 된다. 전체적인 그림을 완성하게 되었을 때 느껴지는 짜릿함, 심지어 소름마저 끼치는 결말에서 이 글이 보이려고 한 게 무엇이었는지 깨닫게 된다. 미국적인 것을 좇았다고 생각했지만 사실은 스위드와 다를 바 없는 사람의 인생을 다루었다는 것을 깨닫게 된다. 이 세상에 질서란 존재하지 않으며 모두, 무방비 상태로 무질서로 뛰어든다는 것을 알려준다. 그 무질서에서 살아남는 것은, 자기 자신을 잃지 않는 것. 메리야말로 그 혼돈의 세상에서 유일하게 살아남은 아이다.

 

 

 


* 알라딘 공식 신간평가단의 투표를 통해 선정된 우수 도서를 출판사로부터 제공 받아 읽고 쓴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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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년이 온다
한강 지음 / 창비 / 2014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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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니까 형, 영혼이란 건 아무것도 아닌 건가.

아니, 그건 무슨 유리 같은 건가.

유리는 투명하고 깨지기 쉽지. 그게 유리의 본성이지. 그러니까 유리로 만든 물건은 조심해서 다뤄야 하는 거지. 금이 가거나 부서지면 못쓰게 되니까, 버려야 하니까.

예전엔 우린 깨지지 않은 유리를 갖고 있었지. 그게 유린지 뭔지 확인도 안해본, 단단하고 투명한 진짜였지. 그러니까 우린 부서지면서 우리가 영혼을 갖고 있었단 걸 보여준 거지. 진짜 유리로 만들어진 인간이었단 걸 증명한 거야.(130페이지)

 그날이 오면, 나는 도망가지 않고 맞서 싸울 수 있는가. 언제나 이런 생각을 합니다. 1980년 5월을 떠올리면 두 다리가 후들후들 떨리고 강렬하게 쏟아져오는 햇살이 두려워 참을 수 없어집니다. 꿈속에서 저는 몇 번이나 도망을 칩니다. 도망치지 말자, 도망치지 말자 되뇌어도 제 두 다리는 피비린내 나는 현장을 도망치고 있는 것입니다. 그날이 오면, 나는 도망가지 않고 맞서 싸울 수 있는가. 아무리 생각해도 그날로 돌아가게 되면 맞서 싸운다는 것을 상상할 수 없습니다. 저는 도저히 상상할 수 없습니다. 

 
어느 작가가 그날의 현장을 담은 기록을 적었단 소식을 들었습니다. 저는 그날 바로 그 책을 구입했지만 막상 책을 펼칠 수는 없었습니다. 단편적으로 제가 알고 있는 그날의 일이 생생하게 펼쳐질까봐 도무지 읽을 수가 없었습니다. 대신 저는 그 작가에 대한 인터뷰나 기사를 찾아 읽었습니다. 

 
작가는 광주에서 태어났지만 열 살 즈음, 아버지를 따라 서울로 이사를 갔다고 합니다. 이사를 했을 때가 광주민주화운동 직전이었다고 했습니다. 그후에 외가친척은 물론 여러 친척들과, 주위 지인으로부터 그날의 참상을 들었다고 기사에서 읽었습니다. 그날부터 작가에게는 1980년의 5월을 잊을 수 없다고 했습니다. 작가의 뇌리엔 왜 자신의 주변인이 그런 일을 겪어야 했는지 의문이 떠올랐고, 피할 수 없던 것처럼 소설로 적어야만 했다고 합니다. 

 
그 기사를 읽으면서, 작가가 민주화운동이 일어나기 전에 이사를 했던 것이 참상을 피하게 한 운명이었는지 아니면 단순한 우연이었는지 고민을 했습니다. 세상에는 알 수 없는 일이 참 많이 일어나지요. 그때 태어나지 않았던 제가 1980년 5월에 일어났던 일을 이해한다는 것은 어불성설인지도 모릅니다. 저는 도저히 그때를 상상할 수 없겠지요. 그날의 기록을 읽는다고 해도, 혹여 영상이 남아 있어 그것을 본다고 해도 결코 저는 그때를 이해하지 못할 것입니다. 어째서 사람은 그리 잔인해질 수 있는가, 왜 그들은 싸워야만 했고 왜 그들은 그렇게 시들어가야만 했는가, 그런 질문들을 제가 던지는 것조차 감히 상상할 수 없는 것입니다. 제가 아무리 그날의 일을 본다고 해도 그날의 시간은 저를 비켜갈 것입니다. 제가 보는 것을 믿을 수 없단 얼굴로, 저는 한 걸음 멀어진 채 그날의 시간에서 도망치고 말 것입니다. 

 
결국 저는, 그 책을 펼쳤습니다. 작가가 "피할 수 없었던" 일을 적었듯, 저 역시 "피할 수 없었던" 그날의 기록을 읽었습니다. 단편적으로 알고 있던 사실에 하나씩 무언가 덧씌어졌습니다. 그것은 제가 한 상상이 현실로 빚어지는 순간이었습니다. 계엄령이 선포되고 시민들은 총을 들고 군인들은 시민들을 저지하기 위해 총을 쏘아댑니다. 그들에게 총을 쓰는 목적은 존재하지 않는 것만 같았습니다. 그날, 군인들이 총을 든 이유는 단순한 사냥처럼 보였습니다. 시민들은 왜 싸워야만 했을까요? 어째서 그들은 싸워야만 했을까요? 그 이유가 책에 적혀 있을 줄 알았습니다. 민주화운동이라고 역사에서는 말하지만, 그들이 무엇을 위해 싸워야만 했는지 어째서 그렇게 싸웠는데 그들은 포기해야만 했는지, 괴로운 과거에서 벗어나지 못한 채 현재를 이어나가야 했는지 알아야만 했습니다. 

 
그러나 이해할 수 없었습니다. 광주에서 그런 일이 일어났다는 것조차 믿을 수 없었습니다. 왜 사람이 자신의 권리를 주장하지 못해야 하는지, 권리를 주장하면 왜 무참히 총을 쏘아대는지, 그들이 바라는 것은 인간답게 사는 것 하나였을 텐데, 왜 군인들은 그것을 용납하지 못했는지 이해가 되지 않았습니다. 그들이 죽인 것은 사람만이 아니었을 겁니다. 그들은 그날, 무수히 많은 꿈을 쏘아버렸습니다. 

 
동호는, 제가 책에서 만난 동호는, 어떤 작은 꿈이 있었던 것 같습니다. 사람이 무수히 많이 죽어가면서 그 아이는 나라에 대해 고민을 했더군요. 왜 시신을 태극기에 싸서 묻느냐. 그는 은숙 누나에게 물었습니다. 그들에게 국가는 무엇이었는지, 그들은 평생 고민했을 것 같습니다. 시민들이 무수히 죽고 무수히 잡혀가고 잡혀간 사람들은 무수히 많은 고문을 받고서 살아남았습니다. 누군가를 견디지 못해 목숨을 끊었고 누군가는 살기 위해 과거로부터 도망을 쳤습니다. 누군가는 아들을 잊지 못해 늘 아들의 이름을 불렀습니다. 

 
만약 사람이 죽은 후에, 정말 그 사람의 혼이 그 주위에 있다면 육체가 타기 전까지 육체에 매달려 있다면 그들은 육체가 타기 전까지 살아있는 생명일 것입니다. 열십자로 포개어지는 단순한 시체가 아니라, 아직은 떠나지 못한 고결한 영혼이라고. 그것은 그들이 이루지 못한 꿈이었고, 결국엔 부서진 꿈이었습니다. 이 책을 읽으면서 저는, 그들의 꿈을 떠올렸습니다. 그날, 그들이 그렇게 일어선 것은 꿈을 이루기 위함이었다고. 어느 누구도 그들에게 꿈을 꾸지 말라는 의무를 부여할 수는 없었던 것입니다. 

 
동호는 살 수 있었을 겁니다. 정대가 바로 눈앞에 죽었단 이유로 죄책감이 시달릴 필요 없이, 살아갈 수 있었을 것입니다. 무엇이 그를 움직였던 것일까요? 왜 그는, 그날 총을 들어야만 했을까요? 그들은 그저 그렇게 해야만 했다고 말했습니다. 그것은 어떤 선택에 아니라, 반사적으로 해야만 했을 뿐이라고. 나는 동호를 떠올렸습니다. 수많은 중학생과 고등학생과 대학생을 떠올렸습니다. 그 젊은 피가 거리에 흩뿌려졌을 때, 국가는 무엇을 했나요? 

 
2014년 4월 16일, 수많은 영혼이 하늘로 떠나갔습니다. 1980년 5월처럼, 이해할 수 없는 일이 또 일어났습니다. 1980년 5월은 가만히 있지 못한 이유로 죽음을 당했지만 2014년 4월은 가만히 있었단 이유로 죽임을 당했습니다. 가만히 있으란 말이 어느 누구도 움직이지 못하게 했습니다. 배 안에 있던 수많은 영혼들도, 배 밖에 있던 수많은 사람들도. 결국 배는 가라앉았고 가라앉는 동안 찍힌 동영상이 유렁처럼 배회했습니다. 저도 그 영상을 보았습니다. 장난도 치고, 농담도 한 그 어린 목소리를 잊을 수 없습니다. "엄마, 사랑해요"라고 말하는 아이들의 환한 웃음은 그날의 사고가 장난처럼 보였습니다. 1980년 5월의 일은 아직 잊히지 않았습니다. 여전히 계속되고 있습니다. 우리는 여전히 국가에 대해 의문을 품고 있습니다. 국가가 무엇인지, 알기 위해 행동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그러나 침묵하는 자가 더 많습니다. 비겁한 자가 더 많습니다. 그리고 저도 비겁합니다.
 

잊지 않기 위해서 끝없이 그날의 일을 떠올려야 할 것입니다. 그러나 여전히 저는 그날의 일을 상상할 수 없습니다. 제게 그날은, 멀고 먼 날처럼 느껴집니다. 세상의 모든 파도가 제게 오는 게 아닌, 저를 피해 나아가는 것만 같습니다.
 

저는 심장이 깨지고 싶습니다. 영혼이 있다는 것을 증명하고 싶습니다.

 

 

 

 

* 알라딘 공식 신간평가단의 투표를 통해 선정된 우수 도서를 출판사로부터 제공 받아 읽고 쓴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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