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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스
어빈 웰시 지음, 김지선 옮김 / 단숨 / 2013년 12월
평점 :
품절


 

 

 

거리에서 온갖 쓰레기 봉투가 쌓인 더미를 본다. 그 안에는 누군가 먹다 버린 음료수도 있고 누가 씹다 뱉어버린 껌도 있고, 어느 누군가가 몰래 싸지르고 간 토사물도 있다. 꾸깃해진 과자 봉지 사이로 삐져 나온 잔해들. 그 쓰레기를 떠올리면서 나는 <필스>를 읽었다. 그 쓰레기처럼 브루스 로버트슨도 그것과 다를 바가 없는 인간이라고 생각했다.

 

그의 자기중심적이고 비열하고, 타인을 향한 배려심이 전혀 없는 안하무인과 후안무치인 모습을 보면서 통쾌하기보다는 불편함을 느꼈다. 거북함과 동시에 혐오감이 덕지덕지 새어나오고 있었다. 자신이 경위에 오르기 위해서 동료를 이용하고 동료를 모함하고, 심지어 친구마저 배신하는 그 모습에서, 얼마나 아연실색을 했는지. 그는 인간쓰레기였고 경찰이라기 보다는 범죄자에 가까운 인상이었다. 그가 여자와 하는 그 수많은 행위들, 남자를 조롱하고 친구를 비웃고, 여자들의 품격마저 떨어뜨리는 그 기가 막히는 말과 행동들. 도저히 받아들여지지 않는 그 모습에서 나는 실망과 더불어 경악마저 느끼게 되었다.

 

그렇지만, 내가 내내 불편했던 것은, 나 또한 그처럼 될 수 있다는 불안감이었다. 그가 보여주는 그 추악한 모습들. 누군가를 모함하고 누군가를 깔보고 누군가를 매도하는 그 모습들은 언제라도 내가 다른 사람에게 할 수도 있는 행동들이었다. 형법에서 '잠재적 범죄자'라는 용어를 본 적이 있다. 사람은 누구나 범죄자가 될 수 있고 사람의 행동은 예측할 수 없기 때문에, '잠재적 범죄자'라는 단어를 쓰는 것이다. 나 또한 그 잠재적 범죄자에 해당되는 것이리라. 비록 브루스의 모습을 보면서 치를 떨지만 한편으로는 그 행동에 공감을 하게 되는, 그런 모습들. 누군가를 헐뜯고 누군가를 비난하고, 어쩔 때에는 누군가를 나쁘게 몰아가는 나쁜 근성들. 나는 그것과 조우하기 싫었기 때문에 이 책을 읽는 것이 불편했던 것이다.

 

브루스는, 어떤 한 남자를 살리려고 했다. 심장질환으로 인하여 거리에 쓰러진 한 남자를 살리려고 노력했다. 하지만 그는 죽고 말았고, 그는 절망한다. 왜 그는 절망했는가? 왜 그는 그렇게 눈물을 흘렸는가? 왜 그는, 자기 자신을 그렇게 슬픔에 잠기게 두었는가?

 

그가 '인간적'이라는 것을 분명하게 보여주는 장면이었다. 그가 그 수많은 악행을 뒤로 하고 오직 하나의 점처럼 숭고하게 빛나는 착하고 선한 브루스의 모습이었다. 그 하나의 모습으로 인하여, 그의 매력이 반전되었다. 인간쓰레기가 아니라 불쌍히 봐야할 대상으로. 그리고 그것은 나도 마찬가지다. 인간이 사악한 면을 가졌다고 해서 그것을 혐오하거나 싫어할 필요는 없다. 그저 '나은 인간'이 되려고 노력하면 그만이다. 그리고 브루스가 해야 할 것은 바로 그 '나은 인간'이 되기 위한 행동들이었다. 그가 사람을 살리려고 한 것은 '나은 인간'이 되기 위한 발판이었을 것이다. 그렇지만 그 남자는 허무하게 목숨을 잃었고 그가 죽음으로 인하여 브루스는 '나은 인간'으로 갈 수 있는 길을 모두 잃고 말았다.

 

몰락할 수밖에 없는 인생. 뿌린 대로 거두리라.

왜 이 글의 제목을 마지막에 가서야 이해할 수 있게 되었는지 나는 뚜렷하게 알게 되었다. <필스>라는 단어 자체의 의미가 아니라, 브루스 로버트슨이라는 하나의 인물을 통해 보여주는, <필스>라는 단어. 브루스는 항상 자신이 다른 사람과 다르다고 생각했다. 자신은 강하고 절대 남의 말에 넘어가지 않고 오히려 남을 조죵할 수 있는 힘을 가졌다고 믿었다. 그렇지만 캐럴을 잃어버리면서 그는 모든 것을 잃었다. 사랑하는 사람을 잃었기 때문에 그는 그렇게 될 수밖에 없었다. 그 자신은 그것을 늦게 깨달았을 뿐이다. 아주 늦게. 자기 자신이 중독자가 되어 다른 사람의 동정을 사게 될 때까지 몰랐을 뿐이다. 어쩌면 그는 인정하고 싶지 않았는지도 모른다. 그는 자기중심적이고 자존심이 무척 강하고, 나르시즘에 심취한 사람이었으니까.

 

나약하기 때문에 망가질 수 있던 한 인간의 추락이 선명하게 떠오른다. 나약해지지 않으려고 그는 얼마나 버텼던가. 버티고 버텼지만, 그는 결국 고꾸라졌다.

 

그가 몰락하고 나서야, 비로서 웃을 수 있으리라. 그렇다면 그 다음엔 이런 질문을 받겠지.

 

'어떤 기분이 들었습니까?'

 

 

 

 

오물filth

다른 것은 짐승.

 

ㅡ누가 진짜 오물인가를 보여주었던 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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