폴링 인 폴
백수린 지음 / 문학동네 / 2014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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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바다 한가운데 있는 것을 상상한다. 바다 한가운데 떠 있는 섬처럼. 어디로 향하는지도, 어디로 가야할지도 모른 채 나는 그저 바다 한가운데에서 전부를 드러내고 있다. 내 발밑에는 까마득한 어둠을 벌리고 있는 바닷물만이 있고 내 머리 위로는 창창하게 별이 쏟아지는 하늘이 펼쳐져 있다. 세상의 끝에 서서 바라보았다면 아름다웠을 풍경은, 바다 한가운데라는 현실로 돌아와 춥고 시리고 외로움만을 부가시킨다.

 

백수린의 소설은 그 바다를 떠올리게 하였다. 깊고 푸른 바닷물 한가운데에 표류하고 있는 어떤 사람을 떠올리게 하는 것. 고독하고 슬프고 괴롭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어떤 구원과도 같은 것을 예감하게 한다. 잃어버린 것에 대해 이야기하지만 잃어버린 것을 찾을 수 있다고 예감한다. 누군가는 떠나가겠지만 다른 누군가가 함께 할 수 있다고 말해준다. 잃어버린 것들에 대하여 백수린은 진실된 목소리로 말한다. 엇나간 단어의 의미를 가진 여자에서부터, 동거인이든 동거인의 남자친구이든 갈망을 하는 여자에서부터, 교포를 사랑해야만 했던 여자에서부터, 베를린으로 훌쩍 떠나버린 여자에서부터, 착각이었는지 현실이었는지 모를 곳에서 아이를 잃어버린 여자에서부터, 이국의 여자를 통해 옛여인을 떠올리는 남자에서부터, 프랑스에서 홀로 유학을 떠난 여자에서부터, 유령이 출몰하는 곳에서 사는 어느 남녀에서부터, 말과 함께 하는 여인이 말을 잃어버린 남편과 함께 하면서부터 무언가 스러지고 무언가 생겨나는 것을 백수린은 나지막이 말해준다.

 

새벽이 오기까지는 참으로 멀다. 출렁이는 몸에는 절망만이 가득하다. 그렇지만 가라앉지 않기 위해서는 계속 허우적대야 한다. 삶이란, 그런 절망을 끌어안고 허우적대는 것이다. 절망이 바스러질 때까지 허우적대고 바동거리고, 저항을 하다가 어느 끝에 가서야 발견되는 희망을 찾는 것. 감자와 신념과 개를 잘못 알고 있는 그녀가 마지막에 그녀와 비슷한 경험을 가진 사람들을 발견했듯이 말이다.

 

바로 가까이에서 본 절망은 <자전거 도둑>의 그녀다. 안나, 아름답지 않았을 안나가 P를 만나고서 얼마나 아름다워졌는지. 모든 불행의 탓이 자전거 때문이라고 하지만 모든 불행은 P가 등장하고서부터다. 그녀는 안나를 질투하고 P를 질투하고 제이를 질투한다. 절망의 끈적끈적한 감정 안에서 안나의 가계부를 훔쳐보고 안나의 립스틱을 바르고 안나의 자전거를 훔치려고 했다. 하지만 어느 순간 안나의 자전거에 체인을 단 존재가 있다는 것을 알고 그녀는 질투하기를 그만둔다. 절망의 수렁에서 빠져나오는 것은 아주 간단하다. 자신과 같이 하는 존재만 있으면 그만이다.

 

하지만 그 존재를 간단히 찾을 수 있을까. 폴이 그런 존재라고 그녀는 생각했을지도 모른다. 한국어 강사로 폴과 늘 함께 시간을 보냈는데 폴은 너무나 간단하게 유리꼬에게 가버렸다. 아니, 간단한 건 아니었는지도 모른다. 폴에겐 아버지라는 산이 존재했고 유리꼬와 함께 하기엔 그 존재가 거대하기만 했다. 하지만 그들은 아버지의 허락을 받고 만다. 미국으로 이민을 가서 폴은 철저하게 미국인으로 살길 바라던 아버지는 폴이 한국인이란 사실을 발견했는지도 모른다. 대륙 너머까지 결혼을 하겠다는 아들의 모습을 보면서, 미국인이란 껍질이 얼마나 허무한지 알게 될 것일 거다. 폴은 폴답게 살아야 했으므로. <폴링 인 폴>을 읽으면서 나는 내내 하 진 작가의 <자유로운 삶>을 떠올렸다. 미국으로 이민을 간 주인공이 아들에게만큼은 중국의 처절한 역사를 보이지 않으리란 각오로, 시민권을 따기 위해 열심히 일을 한다. 시를 적고 싶었지만 미국에서 정착을 하기 전에는 그럴 수 없었던 주인공. 자유로운 삶이란 대체 무엇이었는지, 그것을 위해선 어떻게 해야 하는지 그들은 오랜 시간을 고민했다. 폴도 그러했을 것이다. 자신에게 있어서 자유로운 삶이란 무엇이었는지 고민을 하고서 한국으로 돌아왔을 것이다. 그렇기에 그녀도 폴도, 유리꼬도 방황을 했던 것이라고.

 

그렇다면 절망 속에서 견디는 것은 무엇일까. 삶은 견디는 것이다. 베를린까지 유학을 갔지만 그녀는 확신할 수 없었다. 하지만 그녀는 그래도 그를 따라잡고 싶었다. 역사와 같은 학문에 있어서 눈을 반짝이면서 대하는 그를 따라잡고 싶어서, 첼로를 그만두고 음악사를 공부하러 베를린까지 왔다. 그러나 결국 그녀가 마주한 것은 나이가 들어버린 그였다. 너무나 쉽게 지치고, 너무나 쉽게 피로해하는 남자. 그렇지만 그녀는 견뎌내야 함을 안다. 유태인 박물관에서 포로수용소 체험을 하는 동안 끈질기게 버텨냈던 그 어둠처럼. 언젠가 절망은 끝이 나리라는 것을 그녀는 알았던 것일까.

 

정말 끝이 날까. 어쩌면 그것은 누군가 만들어낸 환상일지도 모른다. 아니면 계속 존재했던 현실이었는지도 모른다. 수족관에 딸과 함께 들어갔지만 아이를 잃어버린 그녀는, 아이를 찾기 위해 여러 곳을 둘러보지만 정작 아이가 언제 자신과 함께 있었는지 기억하질 못한다. 유명한 스타라는 그녀의 남편. 결국 경찰서까지 가서 실종신고를 하려 하지만 경찰은 그녀에게 터무니없는 진실을 들려준다. 모든 것이 뒤죽박죽되는 것은 현실일까, 환상일까. 그녀가 환상에 빠지는 순간일까, 환상에서 벗어나 현실로 돌아오는 순간일까. 어떤 것이든 그녀는 절망할 것이다. 아이가 허구이든, 아이를 진실로 잃어버린 것이든. 절망은 되돌아오는 화살처럼 그녀의 심장을 관통한다.

 

하지만, 누군가와 함께 있다면 벗어날 수 있을 것만 같다. 어둠으로 가라앉는 나에게 손을 내뻗는 존재가 있다면 힘을 낼 수 있을 것 같다. 리는 킴이 그런 존재라고 생각했을 것이다. 보잘 것 없는 자신과 함께 한 것도 자신을 구하기 위해서였다고. 하지만 한국으로 귀국한 후에야 그것은 자신의 말도 안 되는 환상이었음을 깨닫는다. 그는 궁에서 다른 외국인을 찾아냈지만 그것도 허망하게 사라지고 말았다. 천 년을 버틴 은행나무 사이에 앉아 있는 까마귀들은 그의 허망한 꿈을 알아낸 존재였는지도 모른다. 푸른 창공에 펄럭이는 까만 날개는 얼룩처럼 남아, 리의 현실을 괴롭힌다.

 

그래도 결국, 누군가 함께 해줄 것이다. J선배를 찾아 유령이 출몰하는 곳으로 간 그처럼 말이다. 점점 작아진다는 것을 알면서도 그는 J선배를 떠날 수 없었다. 유령이 출몰한다는 것은 무엇인가. 그것은 실체화된 절망일 것이다. 모든 것을 불태운다는 것은, 그들의 삶이 재기할 수 없도록 모든 것을 없애버린다는 의미다. 그렇기에 그들은 서로를 떠날 수가 없다. 서로 함께 남아있을 수밖에 없다. 누군가가 함께 한다는 것은 깊은 어둠을 견디게 하는 힘이다.

 

잃어버린 것에 대해서도 마찬가지다. 말을 잃어버린 남편이지만 그녀는 남편의 옆에 남는다. 점점 사라져가는 남편의 얼굴은, 그녀가 가진 죄악감에서 비롯된 것인지도 모른다. 그가 이대로 사라지면 좋겠다는 그녀의 바람. 그렇지만 그녀는 남편의 곁을 떠나지 않는다. 오래도록 잃어버린 것은 비단 말뿐만은 아닐 것이다. 어떤 애정과도 같은 것일 수도 있고, 저 멀리 치워버린 희망일지도 모른다. 삶을 버틴다는 것은 어떤 절망을 끌어안고 사는 것이라고, 이 책은 말해주었다. 절망을 외면하기보단 절망을 사랑하라고, 프란시스의 잠의 시처럼 말이다.

 

결국 새벽은 온다. 통이 터오는 아침이 오면 바닷속에 있다 하더라도 덜 외로울 것이다. 그 한 줌의 햇살을 위해 우리는 살아가고 있노라, 그들은 말해주었다. 그렇기에 포기할 수 없는 삶이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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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고도를 사랑한다 - 경주 걸어본다 2
강석경 지음, 김성호 그림 / 난다 / 2014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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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년, 참 많은 일이 있었다. 바다 깊숙이 수많은 영혼이 가라앉았고 세계 곳곳에서 내전의 소식이 들렸다. 비참하고 슬픈 소식을 접하면서 나는 내 나라에 대해, 내 자신에 대해 생각을 해야만 했다. 내가 진정 돌아가야 할 곳은 어디인가. 나는 어디에서 나와 어디로 흘러가야 할 것인가. 도대체 어디로 회귀되어야만 하는 것인가.

 

그때 만난 책이 강석경 작가님의 <이 고도를 사랑한다>였다. 경주를 사랑하고, 자연을 사랑한 한 소설가는 이 책에서 이렇게 밝힌다.

 

 

자연인 듯 이지러져 천오백 년 전 고분이 도심에 솟아 있는 풍경은 근원적이었다. 김씨 왕들의 거대 능을 산책하며 내 속에 유목민의 피가 흐르고 있음을 알았고, 비로소 한국인으로서 자기 정체성을 가질 수 있었다._6p

 

어느 도시에서 자신의 근원을 밝힐 수 있다면, <이 고도를 사랑한다>의 저자인 강석경 선생님은 실로 행복한 사람이다. 나는 아직 인생이 짧아 근원이라는 것을 추구하기에는 부족함이 많지만 경주를 역사에서부터, 자연에서부터, 어떤 영혼에서부터 밝히는 글을 읽고 나니 내가 어디에서 나왔는지는 알 것 같았다. 나의 부모님을 넘어, 내 핏줄이 있게 해준 조상들을 넘어, 멀고 멀고, 길고 긴 어떤 시작점에서부터 시작되었음을. 그것은 내가 평생을 함께 한 자연이었음을.

 

어릴 때부터 내 옆에는 푸른 녹음과 활짝 핀 꽃과 잠자리와 매미와, 호박 덩굴이 함께 했다. 내가 사는 곳은 버스가 자주 다니지 않는 외지였고 산골이었고, 겨울이 되면 등교시간이 아닌데도 새벽 일찍 학교에 갈 때도 있었다. 그럴 때면 늘 조용한 자연을 마주했는데 그때 당시엔 그것이 나와 함께 하게 되리라고는 꿈에도 몰랐다. 어릴 때에는 늘 함께 있던 나무와 꽃과 새들이 당연하게 생각되었다. 학교를 다녀오면 아이들과 어떤 도구도 없이 그저 산을 누볐다. 길이 있으면 길을 따라 길이 없으면 나무와 나무 사이를 지나쳐, 모든 것을 눈에 담으려고 했다.

 

경주는 그 어린 시절을 떠올리게 했다. 나는 한때 경북 영덕에서 산 적이 있다. 그때 학교에서 소풍으로 경주를 찾은 적이 있다. 불국사, 석굴암, 그리고 천마총이 있는 거대한 고분. 산처럼 우뚝 솟은 능에 시선을 떼지 못했다. 도저히 있을 수 없는 세상이 펼쳐졌다고 여겼다. 그때의 기억을 떠올리려 애쓰며 책을 읽었다. 역사와 현재가 어우러져 살아 있으니 신화의 나라라고 해도 무방하겠다 싶었다. 박혁거세의 신화부터 시작하여 김유신과 삼국통일을 했던 문무왕까지. 오랜 신화가 곳곳에 도사리고 있는 곳이 바로 경주였다. 그 경주를 잊고 있었다는 게, 어릴 때 좀 더 유심히 살피지 못한 게 후회로 남았다.

 

도시에는 숱한 이야기가 숨어있다. 나의 이야기일 수도 있고 당신의 이야기일 수도 있다. 어쩌면 우리 모두의 이야기가 도시 곳곳에 공기처럼 흩어져 숨을 쉬고 있을지도 모르겠다. 고층 아파트가 지어질 것이라는 경주의 도시에서, 아주 오래된 것들이 사라지면 경주는 어찌 될 것인가. 경주 곳곳에 뿌리를 내린 자연의 모습이 사라지면 우리들의 회귀는 어찌 될 것인가. 신라인의 정기가 어려 있고, 자유로운 유목민의 영혼이 숨쉬는 경주에서 나도 몸을 누이고 싶다.

 

경주는 과거가 녹아들어 현재를 탄생시킨 곳. 아직도 그곳에는 신라인들의 향수가 젖어 있을지도 모른다. 거대한 능이 자연의 일부가 되어버린 그곳에서라면 잃어버린 상상력을 찾을 수도 있겠다. 인간이 가진 위대한 유산은, 어쩌면 자연에게서 물려받았던 게 아닐까. 숨을 쉬면 들이마시는 공기처럼 경주에 가면 고대인들의 상상을 들이마시리라. 경주에서 나 역시 근원으로 회귀를 시작하리라.

 

모든 것을 채우기보단 비우는 삶처럼, 나 또한 자유를 알아가리라. 그것이 경주로 가는 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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줄리언 웰즈의 죄 판타스틱 픽션 골드 Gold 5
토머스 H. 쿡, 한정아 / 알에이치코리아(RHK) / 2014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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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무 유명해서 인용하기도 민망한 니체의 말, 심연을 들여다보면 심연 또한 나를 들여다본다는 말. 이 책을 읽으면서 내내 이 구절이 떠올랐다. 줄리언 웰즈가 자살할 수밖에 없었던 이유는 너무 오래도록 심연을 들여다봤기 때문이라고. 그가 지은 '죄'라는 게 그가 평생을 좇아온 어떤 죄의 모습이었다면 스스로 목숨을 끊을 수밖에 없지 않겠냐고.

미스터리 장르란 타이틀을 달고 있기엔 아까운 작품이라고 생각했다. 내가 그간 읽은 미스터리엔 인간 본연의 심리를 다룬 작품도 있고 미야베 미유키의 <모방범>처럼 사회 본연의 모습을 다룬 작품도 있었다. 하지만 결국 미스터리가 향하는 곳은 인간의 심리다. 정확히 꼬집어 말하면, 인간의 심리 중에서도 범죄자와 피해자의 마음. 모든 범죄에는 범죄자와 피해자만 존재한다. 제3의 인물이 존재할 수가 없다. 사건 안에서 어떤 사람도 피해자를 이해할 수 없고 어떤 사람도 범죄자의 마음을 이해할 수 없다. 탐정 소설에 탐정이 나타나는 것을 보면 그들은 피해자와 범죄자, 모두 이해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그저 수수께끼에 목말라하는 자들일 뿐,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다. 심리면으로 볼 땐 <줄리언 웰즈의 죄>는 기가 막히도록 치밀한 심리를 다뤘다. 줄리언 웰즈의 죽음을 듣고 왜 그가 죽어야만 했는지 탐구해가는 필립과 로레타를 보면서, 그들이 목도한 것은 어느 누군가의 잔인한 마음이었으므로. 종국적으로 그들은 줄리언 웰즈라는 한 사내의 심연으로 들어가게 된 것이다.

미스터리란 장르를 보고 <줄리언 웰즈의 죄>를 논할 때, 이 글은 미스터리라기보단 '팩션'이 좀 더 어울리지 않을까 싶었다. 나치, 학살, 엘리자베스 바토리, 질 드 레, 여러 인물을 놓고 볼 때 이 글은 미스터리라고 볼 수는 없다. 치밀하게 짜여있기는 하지만 미스터리에서 말하는 긴장감은 아니다. 범인이 누구인지 추적해가는 상황도 아니거니와, 줄리언 웰즈가 지었다던 죄나 필립과 로레타가 내내 들었던 마리솔의 이야기나, 누군가가 누군가를 해쳤다고는 할 수 없는 상황이다. 이 글에서는 피해자만 존재한다고 생각한다. 가해자란 어떤 악의를 가지고 상대방을 해쳤을 때 생기는 것인데, 이 글에서 악의를 가진 사람은 없었으므로. 마리솔도 줄리언 웰즈도 기가 막힌 상황에서 사투르누스의 기습을 받은 것이다.

책의 뒷표지에 '인생은 사투르누스의 기습이다'라고 적힌 구절이 있는데 왜 이런 구절을 적었는지 처음에는 이해가 되지 않았다. 이 작품에서 주로 다룬 것은, 사기와 기만에 능한 사람들의 죄를 고발하는 식의 이야기였다. 선량한 사람의 탈을 쓰고 타인을 죽음으로 몰아갔던 악인의 이야기. 줄리언 웰즈가 말한 죄란 바로 그 속임수에 대한 것이었고 그 속임수가 타인의 목숨을 앗아갔을 때 장난으로 돌멩이를 던지면 안 된다는 경각심을 일깨워주는 것이다. 어찌 보면 굉장히 단순한 주제지만 그 안에 내포된 진실은 때론 걷잡을 수 없이 두렵기도 하다. 그리고 동시에 슬픔이 몰려온다. 고작 그런 까닭으로 누군가가 목숨을 잃어야만 했다는 것도, 고작 그런 속임수 하나로 줄리언 웰즈가 그리 되었다는 것도. 인생이 어느 쪽으로 갈지 예측할 수 없을 때, 어쩌면 때론 그 예측할 수 없는 순간이 본인이 상상한 것과 다른 방향으로 향할 때 이는 사투르누스의 기습이 될지도 모르겠다. 태어나자마자 아비의 입속에 삼켜졌던 신들처럼 말이다. 그들은 결국 그들 스스로 아비를 치고 말았지만.

마지막에 줄리언 웰즈의 진실을 목도했을 때 지나치게 허무했다. 허무하여 슬펐다. 왜, 그는 그렇게까지 해야만 했는가. 이런 의문이 머릿속에서 떠나질 않았다. 사기와 기만에 대해 초점을 맞출 때부터 그는 자신의 죄를 인정하고 있었단 말인가. 차라리 필립에게라도 털어놓을 수 있었다면 그렇게까지 비극적으로 되진 않았을 것이다.

나는 줄리언 웰즈를 동정한다. 그를 가엾게 여겨 슬픔을 느낀다. 그가 적은 책들은 인간의 잔혹사를 담았다. 그가 고발하는 인물들을 보며 나는 김언수 작가님의 <설계자들>을 떠올렸다. 너구리 영감이었나, 누군가 인간은 서로를 죽이기 위해 설계되었다고 했을 때 그때도 슬픔을 느꼈다. 줄리언이 적어갔던 인물들은 모두 누군가를 죽이기 위해 태어났다. 그리고 다른 누군가에게 지독한 영향을 주었다. 나비의 날갯짓이 태풍을 만들어내듯, 줄리언 웰즈의 영혼을 꺼져버리게 했다. 그렇기에 지독한 슬픔을 느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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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으른 삶
이종산 지음 / 문학동네 / 2014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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형광등 불빛이 느리게 깜빡였다. 손이 멈칫거렸다. 책등이 보이도록 책을 뒤집은 후 천장에 눈길을 주었다. 언제 깜빡였냐는 듯, 형광등은 본래의 빛을 뿜었다. 다시 책에 시선을 준 채 글자와 글자 사이에 있는 빈 공간을 찾아가는데, 형광등이 다시 깜빡였다. 느리게 숨을 내뱉듯, 몸을 살짝 떨듯. 마지막 힘을 쥐어짜내다가 죽어버리는 어느 생명처럼 버티다가 형광등은 나가버렸다. 빛이 사라진 어둠 속에서 나는 책만 붙잡은 채 멀거니 앉아 있었다. 어둠에 눈이 익기까지는 시간이 느리게 흘러갔다.

참치와 너구리 사이에는 형광등이 깜빡이는 순간만큼의 어떤 망설임이 있었다고 생각한다. 서로에게 손을 뻗지만 그 손을 잡아주는 사람 없는 무안한 순간들. 지나가는 풍경처럼 무심하지만 그 풍경 하나하나를 간직했던 청춘의 모습들. 왠지 참치와 너구리의 사랑에는 바람에 흔들리는 느티나무처럼, 무언가에 흔들리면서도 굳건히 뿌리를 박고 선 것만 같다. 그들의 사랑은 느리지만 그만큼 서로를 진지하게 마주보고 있고 진지하게 마주보고 있기에 서로를 외면할 수밖에 없었던 게 아닌가 하고 생각하게 된다. 그러니까 그날의 사랑은 그들 모두에게 아주 느린 속도로 다가와 서로의 마음에 뿌리를 내린지도 모른 채 서성이다가 어느 순간 반짝거리는 것을 찾게 되는 그런 따스한 날과 같다고. 그들이 고양이침대에 앉아 날카롭게 빛나는 햇살을 훔쳐봤듯이.

감정은 또렷했지만 다가가는 것은 느렸다. 느린 연애의 이야기다. 떠나기를 자처하는 참치와 머물기를 자처하는 너구리. 어찌 보면 참치와 너구리의 습성을 닮은 두 사람이다. 가을에 남하하다가 봄에 돌아온다는 참치. 너구리는 언제나 한 곳에 머문다. 그들은 결코 만날 수 없을 것처럼 보이지만 그럼에도 만났다. 서로의 온기는 언제나 그들 손아귀에 있었다. 바다와 육지에서 사는 존재가 만났던 것이 기적과 가깠다면, 너구리와 참치의 사랑도 기적에 가깠다고 해야 할까. 어쩌면 서로 사는 세계를 본인 스스로 인지하고 있었기에 다가가는 것에 망설임이 있었던 건지도 모른다. 떠나야 하는 참치와 떠날 수 없던 너구리의 사정을 서로 헤아리고 있었던 건지도.

나는 귀찮아, 란 말을 자주 입에 담았다. 그것은 나른해진다는 거라기보단, 어떤 두려움을 내포하고 있었다. 두려움을 포장하는 것이다. 나는 그저 그것에 관심이 없다는 것으로. 귀찮다라고 할 때마다 그런 내 말을 묵묵히 들어주던 아이가 있었다. 누나는 항상 그러더라. 무심하게 말하는 말투에는 웃음이 어렸다. 한심하다고도 하는 게 아닌 그저 묵묵히 기다려주겠단 의지와 같은 것. 나는 그렇게 말해주는 사람이 있을 때마다 언제나 나 자신으로 있을 수 있었다. 참치와 너구리가 느낀 평화로움을 나는 알았다. 내가 내 자신으로 있을 때에 평화롭다. 너구리가 너구리로, 참치가 참치로. 그 순간만큼은 공기도 느리게 흘러가고 햇살도 느리게 닿고, 모든 것이 느려지는 순간이다. 느린 게 좋거든, 참치의 목소리가 귀에 울리는 것만 같다. 그래서 나는 참치와 너구리를 보면서 나 자신으로 있을 수 있었다.

너구리가 날에게 느낀 부러움도 나는 알았다. 어떤 것을 간절하게 붙잡을 수 있는 날. 감정을 솔직하게 마주하는 날. 강아지를 잃지 않으려고 발악하는 날. 날은 살아 있다. 엄청난 생명을 느낄 수 있는 존재다. '귀찮아'라고 말하는 순간 느껴지는 무기력을 너구리도 알았을까. 너구리는 알았을 것이다. 어딘가로 향하고 싶은데, 그럴 수 없는 무기력이 너구리에게도 있었을 것이다. 떠나려는 참치가 너구리에게 같이 가자고 했을 때, 너구리는 가지 않겠다고 버텼다. 그것은 단순히 귀찮아서가 아니라, 어떤 무기력과 두려움, 그리고 낯선 세상으로 향할 때 드러나는 자기 자신의 낯섦일 것이다. 어쩌면 너구리는 너구리답게 기다리는 것을 잘해서 기다리기로 했는지도 모르지만.

내 시간이 다른 누군가와 겹쳐져 같이 공존했으면 좋겠다고 생각한다. 같은 시간에 있는 서로 다른 체온의 느낌. 그것은 가슴이 벅차게 아름다울 것이며 눈물이 나도록 슬플 것이다. 그런 감정들은 붙박인 채, 서로에게 달라붙어 서로를 마주하도록 할 것이다. 사랑이란, 그런 것일 테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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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록 가죽소파 표류기 - 제3회 문학동네 대학소설상 수상작
정지향 지음 / 문학동네 / 2014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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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왜 울고 말았을까. 당신의 소설을 얼마 남겨두지 않고 있을 때였어. 한없이 슬픈 기분이 들어 페이지를 넘기다 말고 그대로 울고 말았지. 소리 없는 울음이었어. 가끔 그렇게 울음이 나올 때면 나는 어쩔 수 없는 기분이 되어버려 내가 어딘가로 표류하고 있다고 느꼈지.

아주 어릴 때에는 내가 아주 먼 별에서 왔다고 생각했어. 짧은 생으로의 여행을 하다가 지루해질 즈음엔 다시 내가 왔던 별로 간다고. 그 별의 이름은, 사람들마다 부르는 게 다르겠지만 나는 언제나 그 별의 이름을 감춰뒀었지. 당신의 소설은 나의 어린 시절을 떠올리게 했어. 어린 시절에 했던 생각조차도. 소설을 통해 어딘가로 가고 있다고 나는 다시금 느꼈어.

당신의 소설에서 만난 요조와 민영, 그리고 '나'는, 표류하고 있었지. 나는 표류하다가 그들을 만난 기분이었어. 그들은 각기 저마다의 소파를 갖고 있었는데, 나는 모든 사람들이 다 갖고 있을 소파를 나 혼자만 갖지 못한 건 아닌가 불안한 마음이 들었어. 눈물이 난 건 그 때문이 아니었을까. 어디로 갈지 모르는 시간 속에서, 모두 한번쯤은 자신의 소파를 내줄 텐데, 나는 그러지 못하겠단 생각이 들었으니까. 그런 생각은 사람은 한없이 외롭게 하거든. 별이 떨어지는 순간이 세상에서 가장 외롭게 느껴지는 것처럼.

그리움은 그날의 시간에만 있기 때문에 그리워할 수 있는 거야. 언젠가 홍대 거리를 걷다가 교복을 입고 기타를 치며 노래를 부르고 있는 소년을 보았어. 소년은 밝은 얼굴로 리듬을 맞추듯 고개를 까닥이며 노래를 불렀지. 그가 부른 노래는 처음 듣는 곡이었지만 들리는 목소리가 거리 곳곳으로 퍼지는 걸 보았어. 한번쯤은 누군가 걸음을 멈춰 그 노래를 들었을 거라 생각해. 누군가는 어느 날 그날 보았던 풍경을 기억하겠지. 그날에만 존재하는 기억이 있기 때문에 그날의 그리움이 생겨난 것이라면 당신의 소설은, 당신이 가진 그리움만이 존재하는 공간이 된 게 아닌가 생각했어. 당신의 소설은 당신이 아주 오래전부터 간직해온 그리움이 담긴 이야기라고 말이야. 요조와 민영이었을 누군가를, 당신이 소설에서 말한 당신이란 존재를.

어떤 기억은 생각만 해도 곧장 풍경과 함께 떠오르기도 하지. 어떤 기억은 아주 오래도록 고민해야 떠오르기도 해. 당신이 남긴 소설은, '나'가 부끄럼 없이 다른 누군가와 함께 하게 될 때에도 요조를 떠올린단 말처럼, 소파만 봐도 떠올릴 것 같아. 나는 거리를 지나가면서 지나치는 가구점에 진열된 소파에서 민영과 요조와 '나'가 나눈 대화를 떠올릴 거야. 앞으로 자신들이 살아갈 공간에서, 하나씩 소파를 살 것이란 말들. 사람들이 지나가지 않을 어두운 밤거리에서도 그들이 서로의 발걸음을 새기며 걸어갔던 것처럼 나도 그러리란 것을. 붉게 그어져 가는 지평선 너머에서 사라져가고 있을 여명의 빛깔처럼. 눈에 보이지 않지만 존재했던 시간들을 아로새길 거야.

당신은 '그날의 사랑은 그날에만 있다'고 했지. 나는 그 말이 당신이 쓴 소설 그대로라는 걸 알았어. 그날 할 수 있는 사랑처럼 그날 살 수 있는 삶이 있다고 말이야. 어정쩡하게 흘러가던 시간들은 사실 그대로의 시간이었어. 민영이 입양아로서 여기저기 여행을 하고 여행을 하다가 '나'를 만난 것은 단순한 우연이 아니었을 거야. 어떤 시간과 어떤 시간은 만날 운명이라는 것을 어렴풋이 느꼈던 것 같아.

요조가 살아온 시간들은 그가 새긴 발자국이야. 민영이 여행을 하면서 만난 사람들도 민영의 발자국이지. 그들 모두 자신의 시간을 살고 있지만 나는? 나를 돌아보게 한 글이었어. 내 스무 살은 어땠는지, 아주 오래 생각했던 것 같아. 이런 생각을 할 때마다 나는 민영을 떠올릴 거야. 민영이 뿌리를 내렸다가 거두고 사라졌던 여행의 흔적과도 같은 삶을 그리워하면서 앞을 바라볼 거야. 나는 당신의 소설에서 보인 성장통이 아직도 진행하고 있다고 생각해. 그날의 시간에 머무는 그리움이 점점 커지듯, 나의 시간도 점점 커져서 언젠가 민영과 요조처럼 어떤 그리움을 남기겠지. 당신이 남긴 소설처럼 말이야.

우리가 살아가고 있는 시간은 무한정으로 펼쳐져 있어 때론 부딪치기도 하고 때론 돌아가기도 하지만 결국 그날에 머물러 있다는 걸, 나는 이제 알게 된 것 같아. 그러니까 이제 괜찮아. 다시 살아갈 수 있을 것 같아. 그리움이 머무는 곳에서 한 발씩 멀어지면 새로운 그리움을 쌓아갈 테야. 그러니까 그날까지 당신도 안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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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록 가죽소파 표류기>의 화자의 방식을 모방하여 적은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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