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머니는 잠 못 이루고>


포장을 걷은 포장마차가 동남아의 작은 수상가옥처럼 미끄러지듯 도로를 지나갔다. - P171

어떤 말은, 특정 음식이 인체에 계속 알레르기반응을 일으키듯, 정신에 그렇게 반복적인 부작용을 일으킨다고 오익은 생각했다. 말의 독성은 음식보다 훨씬 치명적이었다. 알레르기 반응을 일으킨 음식은 기피할 의지만 있다면 그럴 수 있지만,
부정적인 반응을 일으킨 말은 아무리 기피하려 해도 그럴 수 없기때문이다. 아니, 기피하려는 의지가 강하면 강할수록 점점 더 그말에 사로잡혀 꼼짝달싹도 할 수 없게 된다. 원채는 다 갚기 전에는 절대 안 없어진다고, 죽어도 안 끝나고 죽고 또 죽어서도 갚아야 하는 빛이 원채라고 어머니는 말했다. 오익은 그게 바로 사는 일 같다고 생각했다. 기피 의지와 기피 불가능성이 정비례하는 그런 원채 같은 무서운 말과 일들이 원채처럼 쌓여가는. - P17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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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늘 높이 아름답게>


각각의 계절을 나려면 각각의 힘이 필요하다!


자기 존재를 감추고 무화하는 법을 터득했다. 숨어서 공부했고 숨어서 성당에 나갔고 숨어서 일을 꾸몄다. 그 은신술이 얼마나 뛰어났던지 마리아가 파독 간호사를 지원해 독일로 떠난 후 사흘이 지나도록 집안에서 그녀의 부재를 눈치챈 사람이 아무도 없을 정도였다. 심지어 죽기 전까지도 숨어서 약을 먹고 주사를 놓았으므로 마리아가 죽을 만큼 아프다는 것을 눈치챈 사람이 아무도 없었다. - P88

마리아가 지난주에 신부님 드시라고 가져다준 밑반찬이 아직 냉장고에 남아 있는데 그걸 만든 당사자가 더이상 이 세상에 없다는 게 믿기지 않았다. 반찬통에 든 반찬처럼 마리아도 곧 관에 들려니 생각하다 



찜찜해졌다.
- P95

죽을 때까지 마리아에게 은밀한 기쁨이 하나 있었다면 그건 태극기를 팔러 가는 일이었다. 살기 위해 무엇이든 떼다 팔던 시절,



열아홉 살의 마리아가 미지의 나라인 독일로 출발하는 순간에 보았던, 태극기가 무수히 펄럭이던 장면의 뒤늦은 효과인지도 몰랐다. 현란한 태극 무늬와 검은 괘의 점선들은 그 당시 마리아의 가슴속을 가득 채우고 있던 희열과 공포를 그대로 찍어 인화해놓은 듯했다.  - P105

참 고귀하지를 않다. 전혀 고귀하지를 않구나 우리는.....



한 계절이 가고 새로운 계절이 왔다. 마리아의 말대로라면 새로운 힘이 필요할 때였다.
각각의 계절을 나려면 각각의 힘이 들지요. 사모님. - P1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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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슴벌레식 문답>

[직시하지 않는 자는 과녁을 놓치는 벌을 받는다] P40


Q. 주눅들게 만드는 질문의 덫에 걸려들지 않는 방법은?

A. 의젓한 사슴벌레식 문답법

자신의 삶을 살아낼 실용적 방법
☆☆☆☆☆


인간의 자기합리화는 타인이 도저히 이해할 수없는 비합리적인 경로로 끝없이 뻗어나가기 마련이므로, 결국 자기 합리화는 모순이다. 자기 합리화는 자기가 도저히 합리화될 수없는 경우에만 작동하는 기제이니까. - P36

어디로 들어와, 물으면 어디로든 들어와, 대답하는 사슴벌레의 말은의젓한 방어의 멘트도 아니고, 어디로든 들어왔다 어쩔래 하고 윽박지르는 강요도 아닐 수 있다. 그것은 어쩌면 감당하기 힘든 두려움의 표현인지도 모른다. 어디로든 들어 왔는데 어디로 들어왔는지 특정할 수가 없고 그래서 빠져나갈 길도 없다는 막막한 절망의 표현인지도.



어떻게 미안하지가 않아?
어떻게든 미안하지가 않아.
어떻게든 미안하지가 않다는 말은 미안할 방법이 없다는, 돌이킬 도리가 없다는 말일 수도 있다. 우리가 지나온 행로 속에 존재했던 불가해한 구멍, 그 뼈아픈 결락에 대한 무지와 무력감의 표현일 수도 있다. - P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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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람스 오~ 브람스

기억하고 싶은 일도 아닌데 잊혀지지 않는 것들이 있듯
연유도 없이 머리와 가슴과 입에서 자꾸 맴맴돌며 착 붙어 안 떨어지는 것도 있다.

브람스 오~ 브람스


때때로 음악은 눈에 보이지 않는 화살처럼 우리 마음속으로 곧장 날아든다. 그리하여 신체의 조성組成을 완전히 바꿔버린다. - P161

첫머리에 호른의 잔잔한 인트로가 흐르고 나서 피아노 선율이 흘러 나왔다. 그 연주를 듣고 있으려니 웬일인지 몸속의 피로가 쑥 빠져나가는 듯이 느껴졌다. ‘나는 지금 치유되고 있다.‘는 것을 확실히 알 수 있었다. 세포의 구석구석에 찌들어 붙어 있던 피폐함이 하나씩 씻겨지듯 사라져갔다. 나는 거의 꿈꾸는 듯한 기분으로 음악을 들었다. 브람스의 협주곡 2번은 옛날부터 좋아해서 여러 사람의 연주를 들어보았지만, 이렇게 감동을 받은 적은 난생 처음이었다.
곡이 끝난 후, 나는 거의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이 얼마나 근사한 체험인가 하고 나는 감탄했다. - P1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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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261 [인생이란 살아보지 않으면 어떻게 될지 모르는 법이다]

눈에 보이는 계급, 계층. 
인간이란 동물은 차별을 지향한다.
‘다름‘을 인정하자고 외치면서도 자신은 ‘다르다는 것‘을 극구 확인하고자 하는 모순덩어리들.
그레타 툰 베리가 대단한 것이 아니라 그녀의 주변이 달라서 그렇게 보이는 것이다.

결국 부모의 소득 격차가 그대로 아이의 운동능력 격차로 이어져버리는 것이다.
일찍이 공부를 못하는 아이는 운동을 잘한다고 말하곤했다. 노동자 계급의 아이가 부자가 되려면 축구 선수나 연예인이 되어야 한다던 시절도 있었다. 하지만 이제는 부모에게 돈이 없으면 아이도 무언가를 빼어나게 잘하기 어렵게 되었다. 그런 현실이 눈앞에 생생히 펼쳐지는 것을 보면서 기분이 너무나 어두워졌다. - P108

"오늘은 유독 미세먼지가 많이 날아왔어. 재채기가 도통 멈추질 않네. 중국이 날려 보내는 거 아냐. 그 녀석들은 이웃나라에 끼치는 폐 같은 건 생각도 안 하는 민족이야. 관광 매너만 나쁜 게 아니라 산업 매너도 나쁘다고. 일본인과 달라서 섬세한 배려를 할 줄 모르는 놈들이야. 그런 나라의 기업이 매출을 올리는 건 다 너희 같은 젊은 세대가 신통치 않아서라고. 너희들, 정신 똑바로 차려야 해." - P184

"... 인간이란 패거리로 어울려서 타인을 괴롭히길 좋아하니까."



"나는 인간이 타인을 괴롭히길 좋아한다고 생각하지 않아… 
벌주는 걸 좋아하는 거야." - P226

동트지 않는 새벽은 없듯이, 내리지 않는 지혜열은 없다.
이렇게 믿고 싶다. - P256

거시적인 뉴스는 땅바닥에 덩그러니 떨어진 닭꼬치의 고기 조각 따위는 절대로 전하지 않는다. - P28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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