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2년생김지영을 읽고
67년생이 볼 때 82년생 김지영의 시대, 격세지감이다. 우리때는 지극히 당연한 인식으로 다들 그렇게 살았고 그러니 그 부조리를 부당하다고 말할 줄 몰랐고 그게 차별인지도 모르니 이의제기라는 것은 있을 수도 없었다.
이 소설이 사회적 반향을 일으켰다는 것이 달라진 세상임을 증명하는 것이다.
세상은 변하고 있지만 82년생 지영인 딸은 될 수 없고 며느리만 있는 명절, 숭고한 출산과 육아로 대책없이 수용할 수 밖에 없는 경단녀, 어쩌다 맘충으로 이 모든 것이 부당해서 아프다고 힘들다고 할 수 있으니 그나마 세상이 바뀌고 있는 것이다. ing
김지영이 태어나기도 전 난 여중생이었다 하굣길, 어둑어둑 했으니 초겨울로 기억한다. 등에는 책가방을 멨고 손에는 보온도시락을 들고 있었다.
버스정류장에서 내려 도로는 아니나 1.5 차선 정도의 넓은 길목에서 마주오던 낯선 아저씨는 50대 평범한 남자로 보였다.
˝학생 지금 몇시야˝ 하기에 난 걸음을 멈추고 손목의 시계를 찾아 봤다 시각을 읽기도 전에 그 아저씨는 어느새 내얼굴 바로 앞에 바짝다가와 있었고
˝한번 안아줄까˝ 라며 여태껏 본적 없는 확 풀린 눈깔로 웃고 있었다.
너무 섬뜩한 공포에 보온도시락을 떨어 뜨렸다 또 그게 뭐그리 중요하다고 떨어뜨린 보온도시락을 줍고 발이 안보이게 비명을 지르며 뛰었다 남자도 같이 뛰었다. 한참을 달렸다 그놈이 포기를 했는지 아니면 내가 100m 세계신기록을 깼는지 그래서 못 따라온건지 아무튼 더 이상 따라오지 않는다는 걸 알았지만 내 발은 멈추지 않고 우리집 대문을 열고 들어가서도 거실까지 같은 속도로 달려 거실 마루바닥에 기절하듯 쓰러졌다
˝야가 와 이라노, 무슨 일이고˝
호흡이 곤란할 정도로 가뿐 숨이 제박자를 유지할 즈음 엄마에게 자총지종을 이야기 했더니
˝큰일 날뻔 했다 다음부터는 시계 없다 케라˝
아주 소극적인 대처법을 가르쳐 주셨다.
요즈음 같았으면
일단, 보온도시락으로 그놈의 대가리를 후려치고
이단, 그놈의 촛대뼈를 걷어 차고
삼단, 성추행 현장범으로 면상을 찍어 신고했을 텐데...
지영이 아버지가 불안과 공포 수치심에 벌벌 떠는 딸에게 ˝교복치마가 왜 그렇게 짧아˝ 라며 성추행범 보다 성추행 유발죄(?)를 상위에 두고 딸 탓을 하는 장면에서 그 저의! 에 깔려있는 불평등과 부조리함이란.
우리 때는 피하는게 상책이지 처벌은 생각지도 못했다.
대학을 졸업하고 1991년 김지영이 9살 때 쯤이겠네
난 당시 홍콩영화에 미쳐 중국어도 배우고 홍콩에서 발행되던 영화전문 월간지 銀色世界은색세계를 정기구독하고 있었다. 1997년 영국이 중국에 홍콩을 반환하고 향후50년간 체제보장을 약속했지만 홍콩인들의 탈홍콩과 이듬해 銀色世界 월간지는 폐간되었다 -요즈음은 그렇게 미친걸 덕후라고 하지, 그러고 보니 난 원조급 덕후다-
당시 집요하게 데이트신청을 하던 k군, 자기 사촌동생이 유덕화 닮았고 유덕화만큼 생겼고...그러니 소개시켜 주면 만나주겠냐고... 난 일언지하에 거절했다. 유덕화를 원하지 닮은 놈 따위 만나고 싶지 않다고. K군은 시쳇말로 빡쳐서 이후 입을 닫고 술만 마셨고 나는 동석자들과 유쾌하게 시간을 보내고 자리에서 일어섰는데 k군도 따라 일어나 추근댔다-한때 히트쳤던 try광고의 이덕화처럼 -나를 벽에 몰아세워 가두고 몸싸움을 하다 술에 취해 비틀거리는 그를 밀쳐내고 나왔다. 일행들도 모두 따라 나온게 문제였다.
평소 K 군은 과묵하고 인물좋고 의리가 있어 주변에서 진짜 싸나이(?)로 인정받고 나름 인기도 있었다 그런데 여럿 앞에서 자존심이 상했는지 술도 취했고 욱~ 하는 객기가 발동해 내가 택시를 잡으려는 순간 난리를 쳤다. 늦은 시간이라 내려져 있던 약국 셔터를 주먹으로 쳐 파손하고 행패를 부려 누군가 신고를 하고 경찰차가 출동하고 결국 같이 파출소에 가서 경위서를 작성했었다.
인적사항을 파악하고 보호자를 부르고 나서 정리가 된 후 경찰들이 이구동성으로 한 말은 ˝아가씨가 잘못 했네˝ 였다.
청년의 구애를 안 받아준 나를 탓하는 것이었다.
요즈음 같았으면 공갈 협박에 데이트폭려으로 형사처벌 받을 수준인데 말이야. 그러니 격세지감 아닌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