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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를테면, 그단스크 - 낯설지만 빛나는 도시에서
고건수 지음 / 효형출판 / 2022년 12월
평점 :
낯선 도시로의 초대,
공간감수성이 풍부한 전문가로부터 낯설지만 애정어린 공간을 소개받았다. 과거와 현재, 그리고 미래를 들여다 보았다. 세월의 더께를 들추며 감추어진 마을로 걷다가 발견한 역사의 증언들, 그곳에서 여전히 그들의 존재가치를 증명하고 있었다. 과거의 상흔을 품고, 한계를 넘어 한 걸음 더 나아가는 공간 속에서 새로운 패러다임을 발견한다.
'우리는 때때로 공감의 순간을 마주한다.'
나에게 여행길에서 가장 기억 나는 순간은 유명한 랜드마크 앞에서가 아니라 길을 잃었을 때였다. 그 기억 탓에 여행중에는 의도적으로 길을 잃고는 했다. 잠시 지도를 넣어두고, 네비게이션을 꺼두는 시간. 발길이 닿고 마음이 닿는대로 걷다가 발견하는 곳으로 들어갔다. 그곳에서 떠나온 집에 보내는 엽서를 적고는 했다. 여행 책자에서 흔하게 추천하지 않는 지역을 전문가의 시선과 동행하는 산책은 즐겁다. 특히 유럽의 건축은 공학보다 예술적인 학문에 가깝다. 잘 알려져 화려한 명성으로 둘러쌓인 곳보다 미지로의 방문은 특별하게 다가왔다. 지명조차 낯선 공간, 이름은 들어봤으나 가보지 못했던 유럽의 어느 도시들. 의미없던 무명의 도시들이 유의미하게 다가왔다. 오랜시간 사람들의 애정으로 지켜온 도시와 문화예술의 가치를 존중해 온 사람들 덕에 그곳을 찾는 사람들에게 옛 향취를 엿보는 것이 가능했다. 건축가의 진심으로 지켜진 마을의 역사를 발견할 수 있었던 것은 다정한 공간 여행자의 애정어린 시선 덕이라고 감히 말한다.
과거를 넘어 현재 새로운 이야기를 덧 입히는 공간들이 있다. 한국에서도 성수나 익선동과 소제동은 철거 대신 다른 방식으로 살아남는 길을 택했다. 대나무 숲이 있는 곳의 정취를 살려 풍류를 담은 공간을 만들기도 했다. 머물러 있는 공간에 새로운 의미를 부여하며 용도를 변경하면서 잊혀진 곳들이 다시 떠오르기 시작했다. 단순히 경제적으로 가치가 더해진것 그 이상의 사례들을 발견했다.
이곳에는 초콜릿 공장이 도서관으로 바뀐 것, 리예카의 종이 공장등은 도시 경제를 담당하는 곳에서 다음 세대를 위한 문화 공간이 되었다. 산업 유산이 골칫덩이가 아닌 새로운 역할을 감당하는 것, 특히나 다음 세대의 문화 교육을 담당했다. 건물의 용도변화를 넘어 과거와 현재 더불어 미래까지 품게 되었다.
여행에 문화, 역사,예술적인 서사가 담겼다. 읽지 않을 이유가 없다. 아니 예찬하지 않을 이유가 없다.
건물도 결국 사람이다. 태어나고 성장하며 이런저런 일을 겪는다. 인생이 주름 위에 새겨지듯, 공간의 역사도 건물 곳곳에 흔적을 남긴다. (중략) 예스러움은 세월의 떄가 낀 채 조금 낡은 그대로 남았고, 수술로 꿰맨 자국은 자국대로 정직하게 스몄다. p91
다른 시간에 쓰인 글이 한데 만나던 공간은, 그렇게 도시의 지난 이야기들이 촘촘히 새겨진 새 옷을 입었다. 새 옷 위에는 책을 세운 모양의 창을 냈다.p127
그가 사랑으로 남긴 계획은 시간을 초월해 공간으로 남았다. 류블랴나 도시 이름에는 사랑이 담겨 있다. 류블라나에서 류비티는 슬로베니아어로 ‘사랑하다‘라는 뜻이다. 이 도시에는 폐허가 된 고향에 희망이 되겠다는 한 건축가의 진심이 담겨 있다. p1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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