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림으로 15분 만에 끝내는 생각정리 회의 나가타 도요시의 생각정리 시리즈 1
나가타 도요시 지음, 양수현 옮김 / 아르고나인미디어그룹 / 2015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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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판절판


학교에서 이루어지는 회의는 여러가지가 있겠지만 교무회의가 의사결정에서 가장 대표성이 있고 그 중요성도 높을 것이다. 그러나 교무회의가 과연 '회의'라고 부를 수 있을지, 그 과정이 민주적인지는 의문이다.

작은 학교는 좀 다르겠지만 큰 학교에서 교무회의는 말이 회의지 전달 통로에 더 가깝다. 보통 교무가 개시를 하면 각 업무 담당자가 그 주 또는 월에 필요한 일들을 안내하고 행정실 안내, 교감 전달, 교장 전달로 마무리가 된다. 얼굴을 보기 힘든 큰 학교에서 모임 자체가 서로의 얼굴을 본다는 의미가 있긴 하겠지만 과연 그게 회의인지는 잘 모르겠다. 무릇 회의라면 어떤 목표 또는 문제가 있고 이에 대한 자유로운 의사소통을 통해 어떤 결론을 도출해야하지 않을까? 그런 점에서 전 교직원이 모여서 이루어지는 회의라는게 과연 시간 대비 효율이 있을지 모르겠다.

설령 관리자가 없다해도 또는 민주적 회의를 지향하는 관리자라 해도 문제는 여전하다. 유감스럽게도 많은 수가 모인 자리에서 발언하는 사람은 한정되어 있고 비록 전제는 수평적 관계를 깔고 있다 하더라도 가만보면 발언권은 절대 동등하지 않다. 교사라고 해도 다 같은 교사는 아닌 것이다. 보통 업무 담당자 또는 연장자, 부장교사가 우선권을 쥐고 있다. 

어쩔 수 없는 측면이 있긴 하다. 보통 학교 생활을 좀 더 오래한 교사가 더 많은 것을 알 가능성이 높으며 보직교사가 아무래도 의사결정을 하는데 더 필요한 정보를 많이 쥐고 있을 가능성이 높다. 또 주제와 관련된 업무 담당자의 발언이 더 중요한 것은 너무 당연한 일이다. 

그러나 어쩔 수 없는 측면이라면 차라리 모든 교사가 모일 필요는 없는 것 아닐까? 의사결정하는 데 너무 많은 인원은 도리어 장애가 된다. 따라서 소수의 필요한 인원이 모여 짧은 시간에 회의를 진행하는 것이 더 효율적이고 서로에게 편한 방법이라는 생각이 든다.

일본 자기계발 저자가 펴낸 "생각정리 회의"는 학교에서 이루어지고 있는 비효율적인 회의문화를 개선하는데 상당한 시사점을 보여준다. 그는 회의를 위한 회의를 하는 기업은 다른 기업에 밀릴 수 밖에 없으며 기존 회의에서 벗어나 클라우드 서비스 시대에 맞게 소수 인원 자율 분산형 회의로 전환해야 한다고 말한다. 그의 새로운 회의의 특징은 다음과 같다.

1) 필요할 때 바로
2) 실무자 2~3명 (Small people)
3) 15~30분 안 (Shot time)
4) 화이트 보드 앞에 서서 진행 (Standing)
5) 다이어그램으로 표현
6) 화이트 보드를 스마트폰으로 촬영하여 공유

그는 이니셜을 따서 이 회의를 3S회의라 이름 짓는다. 

이 외에도 여러 회의의 요점을 이야기한다. 다이어그램의 종류, 생각을 정리하는 방법, 생각을 발상하는 방법 등 여러 노하우가 들어있다. 학교를 위한 책은 아니지만 책을 읽으면서 정말 공감했다. 목표를 명확히 하고 도해를 사용하여 집중력있게 하는 회의, 내가 바라는 모습이다. 게다가 모든 사람이 참가자이자 당사자라는 점도 좋았다. 물론 이를 위해서는 불필요한 인원은 제해야 맞다. 

 

앞으로 있을 교무회의 문화를 이렇게 바꿔보면 어떨까? 회사에 최적화된 회의라 안 맞는 부분도 있지만 적어도 큰 뜻은 받아들일 만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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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s://www.evernote.com/shard/s263/sh/6d9f0d17-819b-483e-95e6-016730f238f8/cd48442d151748c3b02161470bb7a9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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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꾸로교실 - 진짜 배움으로 가는 길
존 버그만 외 지음, 정찬필 외 옮김, 이혁규 감수 / 에듀니티 / 2015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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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교육계의 가장 중요한 이름이기 때문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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몽테스키외, 무법자가 되다 탐 철학 소설 23
박민미 지음 / 탐 / 2015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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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 헌법에는 우리나라가 민주주의 국가이며 주권은 국민에게 있고 모든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온다고 되어 있다. 이는 우리나라와 북한을 구별시켜주는 가장 큰 특징이며 권력을 독점하려는 자들과 싸워 쟁취해낸 결과이기도 하다.


그러나 요즘 들어 우리나라의 민주주의는 안녕한지에 대해 의구심을 품는 목소리들이 늘어나고 있다. 그러면서 민주주의가 무엇인지 좀더 깊게 파헤져보려는 사람들이 늘어가고 있으며, 이를 위한 다양한 논쟁들이 이루어지고 있다.

민주주의를 직역하면 백성이 주인이 되는 체제를 의미한다. 하지만 이 말은 너무 원론적인 이야기다. 모든 사람이 지분을 행사한다는 것이 아름다워 보이긴 하지만 잡음이 상당하기 때문이다. 우리나라에서는 대의민주주의라는 대표를 선택해서 그 대표가 위임받은 권한을 행세하는 체재로 그 모습을 드러낸다.

보통 독재자들도 자신들이 독재를 한다고 대놓고 이야기하는 사람들은 없다. 그 북한의 독재자들도 겉으로는 민주주의를 한다고 말한다. 박정희 유신독재 때는 헌법을 수정하여 주권은 국민에게 있지만 이를 대표를 통해 행사한다로 문구를 바꾸어 간선제로 대통령 선거를 바꾸기도 했다. 단순히 백성이 주인이 된다고 치면 어쨌든 주권은 국민에게 있으니까 저 문구도 크게 잘못되었다고 보기는 어려울 수 있다. 중요한 것은 민주주의가 어떤 모습으로 드러나야하는가, 어떤 조건이 충족되어야 비로소 정말 백성이 주인이 될 수 있는가 이 부분이다.

몽테스키외는 이에 대한 답으로 '법의 정신'이란 책을 집필했다. 그 책에 따르면 세상에는 군주정, 귀족정, 민주정 3개 체재가 있고 이들 정치 제재는 체재마다 중요시 하는 것과 돌아가는 방식이 다르다고 한다. 특별히 몽테스키외가 어떤 정치제재를 더 내세운 것 같지는 않다. 하지만 그가 절대 반대했던 정치 제재가 있으니 그것이 바로 '전제정'이다. 조선시대 시스템만 봐도 알 수 있지만 군주정이라고 해서 군주가 멋대로 하는 경우는 연산군처럼 폭군이란 소리를 듣고 쫓겨나기 마련이다. 전제정 하에서 지배자는 법이 아닌 '공포'를 지배 메커니즘으로 사용한다. 그런 점을 포착했다는 면에서 몽테스키외는 탁월한 통찰력을 지녔다고 생각한다. 우리가 법치국가가 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어떤 한 사람이 권력을 독점하여 멋대로 휘두르는 것을 막아야 한다. 이를 위해 바로 그 유명한 '삼권분립' 개념이 나온다.

이 책에서 전제정을 추구하는 세력은 '모나크'라는 회사다. 정확히 말하면 그 회사의 주인인 독고재이다. 책에서는 그가 어두운 측면도 있지만 마냥 악인으로 묘사되지는 않는다. 그러나 그가 인간의 자유를 억압하려고 한다는 측면에서 인간의 가능성을 제거하려 한다는 측면에서 그는 반 민주주의자이며 독재자이다. 그리고 반인간주의자이다. 설령 그가 꿈꾸는 미래에 긍정적인 결과가 있다 하더라도 그 결과에서 사람들은 주체가 되지 못하고 객체로 존재할 뿐이다. 이것이 과연 우리가 추구할만한 삶인가?

그렇기 때문에 박정희 시기에 경제가 성장했다는 것을 인정한다쳐도 우리는 그를 독재자로, 헌법을 어긴 무법자로 볼 수 밖에 없다. 그 경제성장의 주체는 박정희며 그 과실 역시 대다수의 민중은 그가 죽은지 한참 후에야 투쟁 끝에 맡볼 수 있었기 때문이다. 게다가 그 대가로 우리 국민들은 스스로 뭘 하기보다는 다른 사람의 눈치를 살피며 다른 사람의 지시를 기다리는 수동적인 모습을 보이게 되었다.

하지만 민주주의 정부가 들어선 이후에도 여전히 민주주의는 안녕하지 못하다. 자본의 막강한 힘 앞에 민주주의는 시녀 역할을 하고 있다. 민주주의가 자본을 견제하기 보다는 자본의 확대를 보조하는 역할을 하고 있는 것이다. 더 무서운 것은 이를 지지하는 사람들이다. 그들은 오로지 경제에만, 그것도 꼭 재벌에게만 적용되는 자유주의라는 미명하에 이를 견제하는 목소리를 다 포퓰리즘으로 몰고 있다. 그리고 이를 지지하는 사람들이 여전히 막강한 세력을 가지고 있다.

이런 현실에서 우리는 무엇을 할 수 있을까? 삼권분립은 과연 지켜지고 있는가? 우리는 민주시민으로서 과연 정부를 제대로 견제하고 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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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래 나는 책을 좋아하지 않았다. 생각해보면 대학교 졸업 때까지 책을 한 20권이나 제대로 정독했는지 모르겠다. 물론 교과서와 문제집이야 열심히 봤지만 그런 책들은 정말 하나의 수단일 뿐 학교를 졸업한 후 다 버려버렸다. 이걸 책을 읽었다고 하기에는 무리가 있을 것이다. 여튼 졸업 이전까지 나는 책을 제대로 선택하지도 보지도 읽지도 않았고 그럴 필요성 역시 하나도 느끼지 못했다.

이런 내가 책을 손에 쥐기 시작한 것은 발령 받아 처음 맡은 업무가 바로 '도서'였기 때문이다. 생전 별로 가보지도 못한 도서관이라는 곳을 관리하기 위해서는 관련된 책을 찾아볼 수 밖에 없었다. 그리고 학습능력이 부족한 아이들을 보면서 아무래도 교과 관련 책이 필요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게 책을 손에 쥐기 시작하다가 만난 책이 여희숙 선생님께서 쓰신 '책읽는 교실'이다. 이 책에 나와있는 책으로 꾸려가는 학급 운영의 모습은 그 당시 내게 너무 이상적으로 보였다. 그렇지만 나와있는 교육활동을 바로 내가 하기에는 힘들거 같아 가장 쉬운 것부터 하기로 했다. 교사로서 근무하고 있는 동안 활용할 학급문고 만들기 말이다. 

그러나 난 '책읽는 교실'을 너무 내 식으로 받아들였던 모양이다. 직접 사비를 털어서 책을 모으는 것은 좋았지만 그런 책들의 종류가 너무 편중되어 있었다. 책을 읽기 시작한 시점에도 나는 소설 같은 문학에는 마음이 열리지 않았다. 그래서인지 내가 아이들을 위해 사는 책들도 동화와 같은 문학류는 거의 없었다. 있다 하더라도 교과 관련된 것들이었다. 나중에서야 내 오류를 알았지만 그때는 그랬다.

나에게 있어 책읽기란 하나의 내 자아를 성장시키는 수단이다. 공익 때도 도서관에서 책을 빌려보곤 했다. 그리고 서평도 쓰고 느낀 점도 쓰고 그랬다. 그러나 이러한 책읽기는 개인의 성장은 되었지만 교사로서는 갖추어야할 여러 자질을 골고루 키우기에는 내 관심사에만 너무 편중되어 있었다. 그렇기 때문에 다시 복직해서도 욕심은 있었지만 제대로된 독서교육을 해보지 못했다.

다행히 학교 안 독서모임에 참여하게 되었고 함께 독서모임에 참여하는 좋은 선생님들 덕분에 조금씩 변해가기 시작했다. 그러나 이 변화의 속도는 너무 느렸고 내 마음은 여전이 닫혀있던 모양이다. 그 당시에도 나는 그림책을 왜 읽어줘야는지, 그게 무슨 의미를 가지는지는 알지 못했다. 그저 하나의 학급운영 스타일 정도로만 생각했다. 

혁신학교로 지정이 되고 여희숙 선생님께서 주신 목록으로 본격적으로 독서모임을 하면서 내가 가진 문제가 무엇인지 무엇을 해야하는지 알게 되었다. 그림책에 대해서도 관심을 가지고 모으기 시작했고, 아이들에게도 읽어주기 시작했다. 작년에는 잘 안됐지만 올해는 신기하게도 책을 읽어줄 때는 조용해진다. 놀라운 일이다.

이러한 작지만 소중한 변화는 나 혼자라면 불가능했을 것이다. 나 혼자서 독서를 한다면 일단 그런 책을 선택하지도 않았을 것이고 그 감동도 얼마가지 못했을 것이다. 그저 스쳐지나가는 한 권의 책에 불과했을 것이다. 그러나 함께하는 선생님들이 계셨기 때문에 그리고 그러한 분들과 함께하는 독서모임이 있었기 때문에 지금의 나는 예전에 비해 한 단계 성장했다. 그리고 그걸 자신있게 이야기할 수 있다.

앞으로도 독서모임은 계속될 것이다. 이제 이 모임은 우리 학교 전통으로 자리잡아가고 있다. 아직 미진한 부분도 있지만 이는 시간이 해결해줄 것이다. 다른 학교에 가서도 이런 모임을 꾸준히 해나가고 싶다. 학교를 벗어나 지역의 큰 흐름으로 나타났으면 하는 마음이다. 그리고 그 흐름에 나 역시 역할을 맡아 기여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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