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 주일이어서 아침부터 저녁까지 교회에서 예배를 드렸다 .


 


저녁예배시간에 갑자기 목사님이 세례받은 이전의 삶과 이후의삶에 대해서 간증을 하라고


 


하셨다 .


 


간증 ~ 그동안 기독교 방송중에 새롭게 하소서라는 코너를 통해 여러사람들의 신앙간증을


 


듣고 눈물흘리고 감동하고 함께 기뻐하고 했던 기억들이 있었다.


 


하지만 직접적으로 나의 이야기를 다른사람앞에서 이야기를 하라고 하시니 눈앞이 캄캄했다.


 


그동안 울렁증이 많이 감소되고 다른사람앞에 서서 말을 하는것이 좀 자연스러워졌다고는하나


 


아직까지도 많은 부끄럼과 소심함으로 가득차있는 나에게 많은 성도님들앞에 서서


 


마이크를 잡고 간증을 한다는것이 내게는 엄청난 부담이었다.


 


아직도 나는 사람눈을 제대로 쳐다보면서 이야기를 하지못한다.


 


왠지 눈빛을 피하게 되고 사람들을 마주보면서 이야기하는것이 부끄럽다.


 


나이 40이 다되어가지만 아직까지 많은 부분에서 처음처럼 쑥스럽고 용기없다.


 


더구나 많은 사람들앞에서 나가서 이야기하는부분에 있어서는 더욱그러하다.


 


하지만 성령님의 은혜충만하기를 기도하고 앞에나가서 이야기를 했었다.


 


처음 어떻게 예수님을 영접하게되었는지 부터 시작해서 이런저런 이야기를 30분정도 이야기를


 


한것같다  그순간은 내가 이야기한것이 아니라


 


내 안에 계시는 성령님이 이끄시고 이야기를 하신것같다.


 


도무지 내가 무슨말을 했는지 알수없을 정도로 빨리 시간이 흘러간것같고 이야기를


 


했던것같다. 많은 사람들이 은혜많이 받았다고 이야기를 하셔서  간증을 한것이


 


잘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간증을 하게 한것도 할수있었던것도 모든것이


 


하나님의 주권하에서 이루어진것이란 생각이들었다.


 


많은 불신자들(비기독교인)이 이야기하기를  예수님의 가르침은 좋은말이요


 


공감이 가지만 성경의 이야기나 기독교신자들의 타협하지 않는 행동에는


 


공감을 하지 못하고 산다는 이야기를 많이 한다. 그리고 또한 그런점떄문에


 


더욱 교회를 기독교를 멀리 하게 된다는 이야기를 들었고 또한 나역시도 그런한


 


관점으로 많은 사람들에게 기독교의 나쁜점(?)을 이야기하고 다녔던 사람이다.


 


하지만  서울도 안가본사람이 서울을 더 잘알고 미국에 가보지못한 사람들이


 


미국에대해서 이러쿵저러쿵 이야기를 더 잘하는것처럼


 


우리는 실제로 알지못하고 밖에서서 이러쿵 저러쿵 이럴것이다 저럴것이다


 


이렇다더라 저렇다더라 하고 이야기를 하곤한다.


 


하지만 실제로 스스로에게 이야기를 해보자.


 


과연 자신이 알고있는 지식이란게 얼마나 대단한것인지?


 


우리는 수없이 많은 문명의 이기들을 쓰고 도움받고 살고있다.


 


핸드폰 컴퓨터 그리고 티브 등등 우리중위에서 볼수있는 몇가지의


 


필수 전자제품만해도 우리는 가장 기초적인 작동법 몇가지만 가지고서


 


그 제품에대해서 다안다고 이야기한다.


 


하지만 실제로 그 제품에대해서 알고있는것은 거의 없다 .


 


어느회사 제품이라는정도 아주 간단한 작동법정도~ 어떻게 돌아가는 원리라든가


 


문제점 그리고 제조부품등은 알수도없고 알필요조차도 느끼지못한다.


 


하지만 그러면서도 우리는 이것은 어떻고 저것은 어떻고 이런식으로 이야기한다.


 


그것만 봐도 우리가 얼마나 오만하고 교만한사람인지 알수가 있다.


 


모든것을 다 알고 있고 다자신의 힘으로 할수있다고 이야기하는 사람


 


자신이 가장 완벽하고 구하는것이 아무것도 없고


 


부족한것이 아무것도 없고 욕심도 고통도 그리고 그어떤 감정의 떨림도 없는사람이


 


있다고 치자 ~


 


그렇다면 그게 과연 살아있는 생명체요 사람이라고 할수있을까?


 


그것은 아니다  우리는 살아있는 생명체이기 때문에 언제나 고민하고


 


고통받고 힘들어하고 뭔가 허전한것을 채울려고하고 또한 언제나 뭔지 알수없지만


 


근원적인 것을 찾으려고 노력한다.


 


수없이 많은 철학자와 종교인들이 그 근원을 찾을려고(물론 과학적으로 접근하는사람도 있다)


 


많은시간과 노력을 기울였다. 하지만 그 누구도 확연하게 답을 내놓지를 못했다.


 


하지만 오로지 기독교의 성경만이 우리의 모든 문제에 대해서 답을 내려놓았다.


 


그리고 ? 표가 아닌 느낌표 ! 를 주었다.


 


무슨말인가 하니 기독교가 아닌 모든 철학이나 사상이나 종교는 언제나 물음표?


 


로 시작된다 그리고 끝마저도 물음표이다?


 


하지만 기독교는 ! 표이다 처음부터 해답이 있고 마침도 해답이있다 .


 


그에 대한 느낌을 인간이 가지는 것이다 . 그 느낌을 받아서 눈물을 흘리고 감동으로


 


이어지는 사람은 구원을 받고 선택을 받는것이지만 그렇지 못하고 느낌을 받았지만


 


그 느낌을 애써 외면하려는 사람은 구원받지 못하는것이다.


 


인간이나 동물이나 모든 생물에게는 회귀본능이란것이 있다고 한다.


 


하지만 한가지 사람에게만 있는것은  육적인 회귀본능이 아니라 그보다 더깊은


 


감정으로 표현될수 없는(여기서 감정이란것은 마음을 이야기한다)


 


그보다 더깊은 곳에 있는 가장 본질적인 자신의 느낌이 회귀본능을 일으킨다


 


우리는 우리의 감정이나 마음이 모든것을 지배한다고 이야기하지만


 


우리의감정이나 마음이란것도 어린시절부터 지금까지 자라온 환경과 지식 그리고


 


정보에 대한 것으로 인하여 굴절되고 변할수도 있는것이다.


 


그러므로 각나라에 사는사람들이 느끼는 감정이 한가지일에 대해서도 서로가


 


다르게 나타날수있고 다르게 표현될수있는것이다.


 


하지만 그보다 더깊은 내면 즉 영적인 부분에서는 어떠한 사람이던지


 


가난하던 부자던 늙었던  젊었던 아기이던 노인이던


 


알수없는 공포와 두려움 그리고 갈구하는 느낌이 있는것을 알수있다.


 


그것에 대한 해답이 그어떤 철학이나 종교에서도 답을 내려줄수가 없다.


 


피조물은 그자신에 대해서 알수가 없는것이다 .


 


우리가 만약에 핸드폰이라고 한다면 핸드폰은 자신의 생성과정이나 작동원리를


 


사람이 입력해서 스스로 작동하게 프로그램 되어있지않으면


 


사람(창조주)의 맘을 알수가 없는것이다. 그러므로 입력되어지지않고


 


프로그램되어지지않은 핸드폰 스스로 아무리알려고 발버둥을 쳐봐도 알수가 없는것이다.


 


그렇다면 문제는 무엇인가? 핸드폰을 만든 사람에게 맡겨져야만이 해답을 알수가 있는것이다.


 


창조주의 권능이고 마음인것이다. 알게 할수도 있고 모르게 할수도 있는것~


 


프로그램을 넣고 안넣고는 오로지 그 만드는 사람의 주권에 달린것처럼~


 


우리인간도 마찬가지인것이다 아무리 자신이 노력하고 깨달으려고 해도


 


창조주께서 알려주시고 가르쳐주시지않는이상 그 어떤 행위도 답을 낼수없는것이다.


 


그것이 바로 예수님을 통하지 않고서는 천국을 볼자 구원을 얻을자가 아무도 없다는


 


말씀을 이해할수 있는 비유일것이다.


 


내가 이해할수있는것은  어릴때부터 내가 잘못교육을 받았고 복음을 듣지 못했기에


 


잘못된 생각으로 알지 못했다는것이다.


 


그러므로 지금까지 내 삶이 정말로 곤고하고 힘들고 어려웠던것을 알수가있다.


 


아무리 자신을 엶심으로 살고 성공을 하더라도 그 속사람까지


 


열심으로 살고 성공을하고 채우기 위해서는 오직 예수님을 영접하고


 


성령님의 은혜를 받아야 만이 살수있는것이다 하나님앞에 나와서


 


무릎끊고 자신의 피조물됨을 인정하는자만이


 


진리를 알게되고 모든해답과 궁금증이 풀릴것이다~


 


생각나는대로 나의 생각들과 관점들을 이야기하는 시간이 되었으면 한다


 


나는 소망한다 ..


 


오늘 하루도 하나님의 은혜안에서 살아가는 기쁜 하루가 되기를 .....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 아  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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