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지러는 졌으나 보름을 갓 지난 달은 부드러운 빛을흐뭇이 흘리고 있다. 대화까지는 팔십 리의 밤길, 고개를 둘이나 넘고 개울을 하나 건너고 벌판과 산길을 걸어야 된다. 길은 지금 긴 산허리에 걸려 있다. 밤중을 지난 무렵인지 죽은 듯이 고요한 속에서짐승같은 달의 숨소리가 손에 잡힐 듯이 들리며, 콩포기와 옥수수 잎새가 한층 달에 푸르게 젖었다. 산허리는 온통 메밀밭이어서 피기 시작한 꽃이 소금을 뿌린 듯이 흐뭇한 달빛에 숨이 막힐 지경이다. 붉은 대궁이 향기같이 애잔하고 나귀들의 걸음도 시원하다.  - P181

때때로그 애들을 데리고 어떻게 지내나 하고 물어요. 그럴 적마다 죽지못해 살지요.‘ 하고 아무 말도 아니했어요. 그러는데 한 번은 가니까큰애를 누구를 주면 어떠냐고 그래요. 그래서 제가 데리고 있다가먹이면 먹이고 죽이면 죽이고 하지, 제 새끼를 어떻게 남을 줍니까?
그리고 워낙 못생기고 아무 철이 없어서 에미 애비나 기르다가 죽이더래도 남은 못 주어요. 남이 가져갈게 못됩니다. 그것을 데려 가시는 댁에서는 길러 무엇합니까. 돼지면 잡아서 먹지요.‘ 하고 저는 줄생각도 아니 했어요. - P2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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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돼지가 치었다니. 두 번 종묘장에 가서 씨를 받은 내 돼지 암퇘지 양돼지......."
99엉겁결에 외치면서 훑어보았으나 피 한 방을 찾아 볼 수 없다. 흔적조차 없다니기차가 달롱 들고 간 것 같아서 아득한 철로 위를바라보았으나 기차는 벌써 그림자조차 없다.
한방에서 잠재우고, 한 그릇에 물 먹여서 기른 돼지, 불쌍한 돼Z]......."
정신이 아찔하고 일신이 허전하여서 식이는 금시에 그 자리에 푹쓰러질 것 같았다. - P16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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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도 금이면 앨 써 키워온 콩도 콩이었다. 거진 다 자란 허울 멀쑥한 놈들이 삽끝에 으츠러지고 흙에 묻히고 하는 것이다. 그걸 보는것은 썩 속이 아팠다. 애틋한 생각이 물밀 때 가끔 삽을 놓고 허리를구부려서 콩잎의 흙을 털어 주기도 하였다.

- P134

"요담부터 또 그래 봐라, 내 자꾸 못살게 굴 테니."
"그래 그래, 이젠 안 그럴 테야!"
"닭 죽은 건 염려 마라. 내 안 이를 테니."
•그리고 뭣에 떠다 밀렸는지 나의 어깨를 짚은 채 그대로 퍽 쓰러진다. 그 바람에 나의 몸뚱이도 겹쳐서 쓰러지며, 한창 피어 퍼드러진노란 동백꽃 속으로 폭 파묻혀 버렸다.
알싸한, 그리고 향긋한 그 냄새에 나는 땅이 꺼지는 듯이 온 정신이 고만 아찔하였다.
너 말 마라
"그래? - P1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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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에는 매몰스럽게 내어대는 모양.
"나의 천사, 나의 하늘, 나의 여왕, 나의 목숨, 나의 사랑, 나를 살려 주어요. 나를 구해 주어요."
사내의 애를 졸이는 간청
"우리 구경 가 볼까?"
짓궂은 셋째 처녀는 몸을 일으키며 이런 제의를 하였다. 다른 처녀들도 그 말에 찬성한다는 듯이 따라 일어섰으되 의아와 공구13와 호기심이 뒤섞인 얼굴을 서로 교환하면서 얼마쯤 망설이다가 마침내가만히 문을 열고 나왔다. 쌀벌레 같은 그들의 발가락은 가장 조심성많게 소리나는 곳을 향해서 곰실곰실 기어간다. 컴컴한 복도에 자다가 일어난 세 처녀의 흰 모양은 그림자처럼 소리 없이 움직였다. - P85

"자. 우리 술이나 마자 먹읍시다."
하고 우리는 주거니받거니 한 되 병을 다 말리고 말았다. 그는 취흥에 겨워서 우리가 어릴 때 멋모르고 부르던 노래를 읊조렸다.


볏섬이나 나는 전토는
신작로가 되고요-
말마디나 하는 친구는
감옥소로 가고요-
담뱃대나 떠는 노인은
공동묘지 가고요-
인물이나 좋은 계집은
유곽으로 가고요- - P9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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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얼?"
"보구 싶어요. 붉은 산이 그리고 흰 옷이!"
아아, 죽음에 임하여 그의 고국과 동포가 생각난 것이었다. 여는힘있게 감았던 눈을 고즈너기 떴다. 그 때에 ‘삶‘의 눈도 번쩍 뜨이었다. 그는 손을 들려고 하였다. 그러나 이미 부러진 그의 손을 들리지않았다. 그는 머리를 돌이키려 하였다. 그러나 그런 힘이 없었다. - P52

"이 눈깔! 이 눈깔! 왜 나를 바루 보지 못하고 천정만 바라보느냐,
응??
하는 말끝엔 목이 메이었다. 그러자 산 사람의 눈에서 떨어진 닭똥같은 눈물이 죽은 이의 뻣뻣한 얼굴을 어룽어룽 적시었다. 문득 김첨지는 미친 듯이 제 얼굴을 죽은 이의 얼굴에 한데 비벼대며 중얼거렸다.
"설렁탕을 사다 놓았는데 왜 먹지를 못하니, 왜 먹지를 못하니・・・・・・・ 괴상하게도 오늘은 운수가 좋더니만…………." - P7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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