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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방인 (양장) - 개정판 새움 세계문학
알베르 카뮈 지음, 이정서 옮김 / 새움 / 2020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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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작품을 고1때 읽었으니 기억은 그리 세세하게 남아있지 않다. 첫 문장 오늘, 엄마가 죽었다로 시작하는 간결하면서도 전혀 감정이 느껴지지 않는 이 문장은 오랜만에 접했어도 그 강렬함은 여전했다. 비교적 짧은 이야기로 알고 있었는데, 책을 받고 보니 분량이 상당했다. 역시나 번역 문제를 제기한 작품이어서인지 번역의 문제로 반론을 제기하는 역자 노트가 작품 내용보다 더 많은 분량을 차지하고 있었다.


 소위 고전의 자리를 차지하고 있는 작품들을 우리는 거의 번역본으로 읽는다. 고전 외에도 헤아릴 수 없을 만큼 많은 번역서들을 접한다. 원서로 읽을 수 있는 재능을 부여받았다면 모를까, 번역서를 만나면서 우리는 가끔 잘 안 읽히는 책을 읽으면서 스트레스를 받기도 한다. 그러한 부류의 책은 기억에 오래 남지도 않는다. 한 나라의 언어에는 그들의 역사, 문화, 풍습, 그들의 생활까지도 모두 내포하고 있다고 할 수 있다. 어떻게 해석하고 번역하느냐에 따라 작품의 등장인물의 성격이 달라지고 내용 전체를 뒤흔들 수 있다는 것을 다시금 깨닫게 된 책읽기였다. 원래 작품을 쓴 작가의 의도나 이야기가 알게 모르게 번역의 과정에서 왜곡 될 수도 있겠구나 싶었다. 사실 리뷰를 쓰면서도 조심스럽기는 하다. 번역으로 수십 년을 살아온 이 분야의 대가라고 할 수 있는 분들도 이렇게 도마 위에 올라 분쟁을 하는구나 싶다. 그런 상황에서 서로 오류를 인정하고 수정하는 일이 쉽지만은 않겠다는 생각이다. 어쨌든 나는 단지 독자로서 이 작품을 읽고 냉정한 판단을 할 수밖에 없다.


 여기서는 주로 김화영 번역가의 번역본을 비교하는 문장이 주로 차지했다. 등장인물들의 대사가 확실히 거칠다는 느낌이 들었다. 없는 접속사나 말을 끼워 넣었다거나 하는 오류를 범한 것을 낱낱이 지적한다. 프랑스어에 전혀 문외한인 나는 모르겠지만, 이렇게 지면을 할애하여 예를 든 문장들이 사실이라면 작품을 번역하는 역자에 따라 느낌이 달라질 수 있다는 것은 확실한 것 같다.


그는 피가 나도록 여자를 때렸다. 그전에는 그 여자를 때린 일은 없었다는 것이다. “손찌검은 했지만 말하자면 살살 했던 셈이지요. 그러면 그년은 소리를 지르곤 했지요. 나는 덧문을 닫아 버렸고, 결국엔 늘 마찬가지로 끝나 버리곤 했어요. 그렇지만 이번엔 본격적이었습니다. 그런데 나로서는 그년에게 벌을 속 시원하게 다 주지 못했거든요.”(김화영 역 민음사 P39~40)

그는 피가 날 정도로 때렸다. 전에는, 여자를 때리지 않았다. “내가 그 여자를 때린 건, 말하자면 다정함의 표현이었소. 그 여자가 조그맣게 소리를 질러 댔고 나는 덧문을 닫아 버리면 그것으로 항상 끝나는 일이었지. 그러나 이번엔 진짜였고. 그래도 나로서는 그 여자를 충분히 벌하지 못했다고 생각해요.”(본문 P52~53)

(※ 프랑스어 원문도 실려 있지만 여기서는 생략했다.)


 밑줄 친 부분은 그 여자를 뜻하는 프랑스어 ‘Elle’를 그렇게 번역하여 등장인물 레몽을 파렴치범이나 양아치의 부류로 만들었다는 것이다. 역자가 임의로 옮긴 번역의 예라고 하는데 작가가 맨 처음 쓴 인물의 성격과는 정 반대로 바뀔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든다.


 어머니의 장례식을 치른 뫼르소는 어느 일요일, 이웃과 함께 보내다가 레몽을 다치게 한 아랍인과 마주치게 되고... 그가 겨누는 칼에 대응하여 그를 권총으로 쏘아 죽이게 된다.


그 타는 듯한 칼날은 속눈썹을 파고들어 아픈 두 눈을 후벼 팠다. 모든 것이 휘청거린 건 바로 그때였다. 바다로부터 무겁고 뜨거운 입김이 실려 왔다. 온 하늘이 활짝 열리며 비 오듯 불을 뿜어 대는 것 같았다. 나는 온몸이 긴장했고, 손으로 권총을 힘 있게 그러쥐었다. 방아쇠가 당겨졌다. 나는 권총 손잡이의 매끈한 배를 느꼈다. 그리고 거기에서, 날카롭고 귀청이 터질 듯한 소음과 함께 그 모든 것이 시작되었다. 나는 땀과 햇볕을 떨쳐 버렸다. 나는 내가 한낮의 균형을, 스스로 행복감을 느꼈던 해변의 그 예외적인 침묵을 깨뜨려 버렸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그러고는 미동도 하지 않는 몸뚱이에 네 발을 더 쏘아 댔고 탄환은 흔적도 없이 박혀 버렸다. 그것은 불행의 문을 두드리는 네 번의 짧은 노크 같은 것이었다.’(P88~89)


 아, ‘불행의 문을 두드리는 네 번의 짧은 노크라니 간결한 이 문장이 함축하고 있는 고난은 얼마나 큰 것인가.

정당방위라고 할 수 있는 상황임에도 불구하고 재판의 과정은 뫼르소에게 유리하게 돌아가지 않는다. 햇볕 때문에 그를 죽였다는 것으로 많은 사람들이 기억하고 있다는 점을 지적하는데, 오랫동안 쌓아온 고정관념이란 얼마나 무서운 것인지 생각게 한다. 어머니의 장례식에서 울지 않았다는 이유, 무덤덤한 성격은 어쩌면 사전에 범행을 계획했을 수도 있다, 벌을 받아 마땅한 악한이다, 라는 쪽으로 힘을 실어줄 수도 있겠다. 그리 살갑지 않은 성격이지만 거짓말을 싫어하고 자신의 안위를 위해 주변 사람들이나 관계 맺은 사람들에게 굽신 거릴 줄 모른다. 어느 정도로 거짓말을 싫어하냐 하면 마음에 있는 여자 마리가 그와 결혼하고 싶다고 하면서 자기를 사랑하느냐고 그에게 묻는데, 사랑하지는 않지만 당신이 원한다면 결혼해 줄 수도 있다고 한다. 어찌 보면 융통성이 없다고 해야 할까. 자신에게 충실하다고 해야 할까. 좋은 게 좋은 거라고 하면 묻어가지 못하는 사람 뫼르소는 그렇게 이방인취급을 받으며 죽을 날을 기다린다. ‘모든 것을 다시 살아 볼 준비가 됐다고 느꼈, ‘세상의 부드러운 무관심에 처음으로 마음을 열었지만 사형을 언도 받은 사람치고는 너무 담담하다. 사형집행일에는 덜 외롭게 많은 구경꾼들이 와서 증오의 함성으로 맞이해 주길 바라기까지 하면서.


<번역문장의 비교 예>


오늘 엄마가 죽었다. 아니 어쩌면 어제. 양로원으로부터 전보를 한 통 받았다. ‘모친 사망, 명일 장례식. 근조(謹弔).’ 그것만으로써는 아무런 뜻이 없다. 아마 어제였는지도 모르겠다.(김화영 역 민음사 P9)

오늘, 엄마가 죽었다. 아니 어쩌면 어제인지도, 모르겠다. 양로원으로부터 전보 한 통을 받았다. ‘모친 사망, 내일 장례식. 삼가 애도함.’ 그것만으로는 알 수 없었다. 아마 어제였을 것이다.’(본문 P17)


잔은 그 녀석을 붙잡으려고 하질 않았다고요.”하고 여자가 소리소리 지르고 있었다. “, 그래?” 하고 사내는 말했다. “당신이 나오면 그 녀석을 꼭 붙잡을 거라고 말했지만, 그래도 붙잡으려들지를 않았어요.”(김화영 역)

잔이 그를 돌볼 수 없대요.” 그녀는 목청을 다하여 소리쳤다. “그래, 그래.” 남자가 말했다. “내가 그 여자에게 당신이 나오면 다시 그를 돌볼 거라고 했지만, 그 여자는 그것을 원치 않는대요.”(본문 P107)


나는, 그것도 또한 나를 사건으로부터 제쳐 놓고 나를 무시해버리는 것이고, 어떤 의미로는 그가 나 대신의 역할을 하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그때 나는 벌써 그 법정에서 아득히 멀어져 있는 느낌이었다.’(김화영 역 P116)

나는 그것이 나를 이 사건에서 더욱 멀어지게 하고, 나를 제로로 만들어 버리고, 어떤 의미에서는 나를 대체시킨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이미 나는 그 법정으로부터 아주 멀리 떨어져 있다는 느낌이 든다.’(본문 P144)


 책을 읽다보면, 특히 번역서의 경우 정말 잘 읽히지 않는 책이 있다. 그럴 때마다 우리는 내가 이해력이 부족한 건가 하다가도 번역이 매끄럽지 않다고 탓을 하는 경우가 종종 있다. 번역이 그리 쉬운 게 아니라는 것을 다시금 느낀다. 역자는 여기서 이렇게 당부한다. 번역서를 읽으면서 이해가 안 된다면 자신을 의심하기에 앞서, 역자의 권위에 우선 주눅 들지 말고 그가 번역을 잘못 했을 수도 있다는 생각을 한 번쯤 해볼 수 있는 우리가 되었으면 좋겠다고 한다. 앞으로도 이러한 논쟁은 수없이 벌어지리라고 생각한다. 해당 업계에서는 불편한 감정이 있겠지만 이를 계기로 더 좋은 작품을 만들어내는 디딤돌이 될 수도 있지 않을까 하는 희망을 품게 되었다.

 


 

* 이 리뷰는 예스24 리뷰어클럽을 통해 출판사에서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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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만과 편견 더디 세계문학 8
제인 오스틴 지음, 이정아 옮김 / 더디(더디퍼런스) / 2018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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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작품이 나온 지 200년이 지났음에도 여전히 많은 사랑을 받고 있는 작품이다. 무엇이 그토록 사랑받는 비결이 되었을까. 자료에 의하면 제인오스틴은 한 번도 결혼한 적이 없다. 한 번은 남자 쪽 집안의 반대로 무산되었고, 또 한 번은 청혼은 받았으나 사랑 없는 결혼에 회의를 느껴서 거절했다. 그러니 어쩌면 연애다운 연애도 못했다고 추측할 수도 있다. 그런데 이 작품은 연애와 결혼 이야기다. 아마도 자신의 소망을 작품에 쏟아 부은 건 아닐까 싶을 정도로 빛나는 사랑의 결실의 과정을 보여주고 흥미를 돋우며 독자를 참여시킨다. 그저 흔한 사랑 이야기에 오만편견이 빚어내고 엮어내는 이야기를 읽어나가다 보면 나도 모르게 미소를 흘리거나 웃음 짓게 된다. 인물들의 개성 있는 성격과 위트와 풍자 섞인 대화의 자연스런 조화에 이야기 속으로 몰입하게 된다.

 

 다섯 명의 딸을 둔 시골 소지주인 베넷 씨 부부를 둘러싼 베넷 가를 배경으로 경쾌하고 생동감 있게 펼쳐진다. 예나 지금이나 과년한 딸이 있다 보면 혼사 문제에 신경을 곤두서게 하는 것은 세상의 이치인 것 같다. 작품이 쓰인 시대만 해도 여성들에게, 특히 재산이 없는 여성들에게는 달리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 한 마디로 결혼은 최선의 생계대책이었던 것이다. 아마도 지금의 청춘 여성들이 듣는다면 어이없어 할지도 모른다. 특히나 베넷 씨의 집은 아들이 없는 관계로 한정 상속이라는 문제를 코앞에 두고 있어서 더욱 골칫거리가 된다. 즉 가장인 베넷 씨가 죽고 나면 콜린스라는 친척에게 재산이 다 넘어가게 된다는 상황이다. 부인의 미모에 반해 결혼한 베넷 씨는 이해력이 부족한 아내와 정신적 교감 같은 건 일찌감치 포기한 채 무미건조하게 살고 있다. 그러다보니 서재에 틀어박혀 지내거나 냉소와 조롱이 유일한 낙이다. 베넷 부인 또한 남편에게 큰 기대 없이 딸들을 결혼시키는 것이 삶의 유일한 목표이며 수다 떨기와 마실 다니는 일에 열심이다. 상황이 이러하니 딸들의 결혼에 목을 매는 베넷 부인의 심정을 이해할 만도 하다.


 오랫동안 비어 있던 네더필드 파크에 연수입이 4,5천 파운드나 된다는 잘생긴 미혼 남자 빙리가 사륜마차를 타고 왔다고 소문이 돌면서 베넷 부인의 신경은 온통 거기에 쏠린다. 당사자의 생각은 아랑곳하지 않고 부자인 이 남자를 사위 삼고 싶은 마음에 남편에게 빙리를 꼭 만나고 오라고 성화다. 얼마 후에는 무도회가 열리고 빙리의 친구 다아시가 들어오자 연수입이 1만 파운드라는 소문이 쫙 퍼지면서 사람들의 관심이 모두 그에게 쏠린다. 키 크고 멋진 외모에 재산이 많은 젊은이가 나타났으니 자연스러운 반응이겠지. 어떻게 하면 딸을 그런 사람과 결혼 시킬 수 있을까 궁리하느라고 바쁘다. 시대는 변했어도 백만 탄 왕자는 뭇 사람들의 로망이라는 것.


 빙리와 다아시는 첫인상으로 인해 호불호로 갈리게 된다. 첫인상이란 한번 굳어지면 고정관념에서 벗어나기 쉽지 않다고 하듯이, 다아시의 말수가 적은 것도 불리하게 작용한다. 빙리는 유쾌한 표정에 소탈한 태도로 사람들의 단번에 호감을 불러일으키는데, 다아시는 빙리보다 현명함은 한 수 위였지만, 내성적인 성격이 거만하고 까다롭게 비친다. 이렇게 정반대의 성격임에도 끈끈한 친구사이인 이들에게 관심이 가지 않을 수 없다. 다아시는 그 특유의 오만함으로 모두에게 미움을 받고, 빙리와 큰 딸 제인의 사랑은 점점 싹터 가는데... 갑자기 빙리와 다아시 일행이 런던으로 떠났다는 소식을 듣게 된다. 이어 엘리자베스가 콜린스 씨의 청혼을 단칼에 거절하면서 두 딸을 결혼시키려던 베넷 부인의 희망은 물 건너간다.


엘리자베스, 넌 이제 불행한 선택의 기로에 놓이게 됐구나. 오늘 이후로 너는 부모 중 한 사람과 남남이 되어야 한단다. 네가 콜린스 씨와 결혼을 하지 않으면 네 어머니가 다시는 너를 안 볼 테고 , 네가 그 사람과 결혼하면 내가 다시는 너를 안 볼 테니까.”(P157)

베넷 부인의 실망감은 이루 말할 수 없는 상황임에도 베넷 씨는 이런 말로 독자를 웃기고 엘리자베스는 속으로 쾌재를 부른다. 이런 유머와 풍자가 작품 전반에 포진되어 있어 있다.


있는 힘을 다해봤지만 소용이 없었습니다. 도저히 안 될 것 같습니다. 제 감정을 억누를 수가 없습니다. 제가 당신을 얼마나 열렬히 찬미하고 사랑하는지 고백할 수밖에 없습니다.”    (P258)

처음엔 엘리자베스의 웃음이 헤프다는 둥 시큰둥했던 다아시는 자신도 모르게 엘리자베스에게 빠져든다. 물론 당찬 엘리자베스가 눈치 채지 못하게. 그러다가 외삼촌 가드너 부부를 따라 여행길에 나섰다가 켄트에서 여러 번 다아시와 마주치게 되고, 어느 날 다아시는 엘리자베스에게 고백하기에 이른다. 다아시에 대한 편견으로 가득한 엘리자베스는 놀라움을 금치 못한다. 어떤 여성이 이런 고백을 듣고 심장이 콩닥콩닥 뛰지 않겠는가. 자신에 대한 애정 어린 찬사가 싫진 않지만, 묵은 감정이 있어서 받아들이지 못하는데...

 

오만편견에서 벗어나야 비로소 사랑은 시작된다.

제목에 충실한 이 작품의 이야기는 주로 다아시의 오만과 그에 대한 엘리자베스의 심각한 편견이 풀리는 과정의 이야기를 보여준다. 그 후 서서히 사랑하는 감정이 생기고 다아시의 열렬한 사랑에 대한 감동과 고마움을 느끼는 엘리자베스의 환희가 독자의 마음을 사로잡는다. 그리고 주변 인물의 결혼의 사례를 보여주는데 현실감 있는 이야기라 공감하게 된다.


 콜린스 씨의 청혼을 엘리자베스가 거절하자 이웃에 있는 그녀의 친한 친구 샬럿은 성직자의 지위와 재산이 있는 콜린스 씨의 청혼을 받아들여 결혼을 한다. 가난 대비책을 잘 찾은 셈이다. 사랑 없는 결혼이지만 어쩌면 실질적인 이득 면에서 계산한 것이다. 뭐라고 탓할 수 있겠는가. 선택의 여지가 없던 당시의 여성들의 지위를 보면. 또 하나의 커플은 베넷 가의 막내 딸 리디아와 위컴의 결혼이다. 이 경우는 정상적인 과정을 밟은 것이 아니라, 사랑의 도주를 통해서 가족들의 마음을 실컷 졸이게 하고 마을의 비웃음을 사게 한 철딱서니 없는 행위가 다행히 결혼으로 이어진 결과였다. 이 커플들의 대비로 다아시와 엘리자베스의 사랑 이야기는 더욱 빛을 발휘 한다.


 첫인상의 편견을 깨는 인물들의 사례도 참 재미있었다.(이 작품의 원래 제목은 첫인상이었다 한다.) 다아시가 내성적인 것이 오만함으로 보였다면 위컴의 경우는 어떤가. 위컴 이야말로 훤칠한 미남에 좋은 평판의 소유자였다. 그런데 알고 보니 완전히 반전이다. 역시 겪어보고 그 내막을 알지 못하면 겉모습이 그의 전부가 되는 항간의 편견 또한 유감없이 깨준다. 또 쾌활하고 친절한 빙리는 소심한 성격 때문에 결정적인 행동을 친구에게 의지하는 나약한 면이 있다. 이렇게 저마다 사람은 단점을 가진 완벽할 수 없는 존재라는 것을 알 수 있다. 사람들의 관계 속에서 자신의 단점을 발견하고 조금씩 성장하는 바람직한 모습이 보여서 읽으면서도 흐뭇해진다.


 확실히 엘리자베스의 톡톡 튀는 재기 발랄함은 그 시절의 여성상과는 달리 두드러진다. 그 오만했던 다아시가 사랑에 빠질 수밖에 없는 사랑스런 캐릭터다. 귀족층이라는 권력자의 오만함으로 똘똘 뭉쳐있는 캐서린 영부인 앞에서도 전혀 주눅 들지 않고 논리적으로 자신의 의견을 당당하게 말하는 부분은 얼마나 후련하던지. 그 당돌함에 영부인도 혀를 내두른다. 귀족과 서민의 신분이라는 격차를 뛰어넘은 신데렐라 같은 사랑이라고 할까. 제인 오스틴은 작품 속에서나마 그 소망을 이룬 것은 아닐까. 티격태격하며 오해를 불러일으켰지만, 오해를 풀어가는 과정에서 점점 성숙해지는 예쁜 젊은 연인들의 모습이 공감을 불러일으킨다. 따로 노는 것 같지만 불행 앞에서는 한 마음이 되는 베넷 부부와 가족 이야기, 특히 제인과 엘리자베스의 진한 자매간의 사랑은 오늘날엔 희귀할 만큼 느껴져서 보기 좋았다.

 

 

* 이 리뷰는 예스24 리뷰어클럽을 통해 출판사에서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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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금 물고기 (무선) 문학동네 세계문학전집 5
J.M.G. 르 클레지오 지음, 최수철 옮김 / 문학동네 / 2009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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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작품으로 르 클레지오의 작품은 처음 접하게 되었다. 2008년 노벨문학상 수상 작가이고 프랑스 현대 문단의 살아있는 신화라는 평을 받고 있는 그의 대표작 중의 하나이기도 하다.


 화자는 의 뜻을 가진 라일라가 과거를 회고하는 구성으로 쓰였다. 예닐곱 살에 인신 매매단 에게 유괴당한 이 흑인 여자 아이를 랄라 아스마라는 여주인이 샀고, 밤에 들어왔다 하여 그 이름을 붙여준 것이다.


그 일은 차라리 꿈이랄까. 아득하면서도 끔찍한 악몽처럼 밤마다 되살아나고 때로는 낮에도 나를 괴롭힌다. 햇살에 눈이 부시고 먼지가 날리는 텅 빈 거리, 푸른 하늘, 검은 새의 고통스런 울음소리, 그때 갑자기 한 남자의 손이 나를 잡아 커다란 자루 속에 던져 넣고, 나는 숨이 막혀 버둥거린다.(P9)


 이 어두운 기억은 트라우마가 되어 평생 동안 따라다닌다. 어둠과 밤이 무섭고 거리를 무서워하게 된다. 밖에서 들려오는 온갖 소리와 큰 소리로 떠들어대는 남자의 목소리도. 마당을 벗어날 엄두도 내지 못할 정도였으니 유괴에 대한 심리적 두려움이 얼마나 컸을까 짐작할 수도 없다. 그나마 랄라 아스마를 만난 것을 불행 중 다행이라고 할까. 오로지 기댈 수 있는 사람은 이 할머니, 마님뿐이다. 그녀를 위해 집안일과 심부름을 해 주는 대가로 읽는 법과 프랑스어와 에스파냐어로 쓰는 법을 배우고 암산과 수학을 그리고 종교에 입문하는 것도 배운다. 또 몸을 깨끗이 하고 항상 진실을 말해야 한다는 당부도 잊지 않는다.


 랄라 아스마는 항상 라일라의 편이 되어 주었지만, 며느리 조라의 학대와 아들 아벨이 뻗치는 추악한 검은 손에 불안에 떨 수밖에 없었다. 그렇게 방패막이가 되었던 랄라 아스마가 좀 더 건강하게 오래 살 수 있었다면 좋았을 텐데. 늙고 지쳐서 더 이상 읽기도 공부도 시키지 못한다. 그러던 어느 날 경련을 일으켜 쓰러지고... 의사를 부르러 갔다가 여인숙에서 산파인 자밀라 아줌마를 데려오지만, 간절한 라일라의 바램에도 불구하고 시름시름 앓다가 세상을 뜨게 된다. 이에 라일라에게 쏟아진 화살, 분노로 일그러진 조라를 피해 멜라의 저택을 빠져나오게 된다.


 수 년 동안 마당 밖을 벗어나지 못했던 라일에게 있어 이 사건은 어쩌면 극적인 장면이다. 깨끗하게 정돈된 랄라 아스마의 집과 전혀 다른 환경에서 사는 여인숙의 창녀들을 공주님이라 부르며 그 어느 때 보다 행복한 삶을 살아간다. 여태까지 받아본 적 없는 환대와 애정에 대한 보답으로 크고 작은 심부름을 하며 돌아다닌다. 억압으로 인해 가질 수 없었던 자유를 갖게 되어서인가. 도둑질과 거짓말에 재미를 붙이게 되고 이를 염려하는 자밀라 아줌마에 의해 기숙학교에 들어가지만, 오래지 않아 쫓겨나고 자유분방한 삶을 시샘이라도 하듯이 또 붙잡혀가고 만다. 조라의 덫에 걸려든 것이었다.


 경찰에 붙잡혔던 라일라는 다시 조라에게 넘겨진다. 친절한 들라예 씨 부부를 만나게 되어 조라의 매질에 벗어났다고 안도하지만, 여지없이 검은 유혹은 계속된다. 사진을 찍는다는 핑계로 들라예 씨의 이상한 행동에 환멸을 느끼고 가능한 한 멀리 지구 끝으로 떠나기로 결심한다. 여기서부터는 한번 찾은 자유는 절대 놓치지 않겠다는 라일라의 강한 의욕을 엿볼 수 있다. 떠나야 할 때, 도망쳐야 할 때를 잘 포착하는 감각, 촉수가 느껴진다하도 당해서 단련되었을까 어리지만 강인한 성격이다. 대담하고 낙관적인 면도 보인다. 아직도 어린 나이에 험한 세상을 어떻게 헤쳐 나갈 것인지 어느새 응원하는 마음이 된다.


 사람은 자신이 가장 힘들었을 때 도움을 준 사람을 먼저 찾게 마련이다. 여인숙 사람들이 라일라에게 있어 그런 사람들이었다. 하지만, 다시 찾은 여인숙은 온데간데없고 자밀라 아줌마는 감옥에 갔으며 나머지 사람들은 모두 뿔뿔이 흩어졌다는 소식을 듣게 된다. 배를 타고 강을 건너 타가디르, 후리야를 만나고 감격에 젖어 뭉클해진다. 하지만, 이 곳 타브리케트 천막촌의 삶은 만만치 않다. 갇혀 있었으되 가난이라는 것을 경험하지 못한 라일라에겐 더욱 그렇다. 하나같이 기구한 인물들이다. 남편에게 학대를 당해 도망쳐 나온 후리야, 다리가 괴저에 걸려 썩어 들어가서 이제 일도 못하게 된 타가디르. 그래서였을까. 일자리를 찾아달라는 라일라에게 후리야는 학교에 가서 공부를 해야 한다며 프랑스어와 에스파냐어 영어로 된 책과 공책들을 사다준다. 우리처럼 돼서는 안 된다며 뭔가 중요한 일을 하는 변호사나 의사 같은 사람이 되라고. 타가디르도 한 마음으로 라일라를 다독인다. 피붙이도 아닌 이들의 애정에 라일라로선 감동할 수밖에 없다. 마을 도서관에서 많은 책을 읽어나가며 학구적인 일상이 계속된다

 

 후리야와 함께 밀입국을 계획하고 에스파냐를 거쳐 프랑스로 건너간다. 여기서 많은 사람들을 만난다. 그 관계 속에서 상처를 받기도 하고 힘을 얻기도 한다. 집시들, 프로메제아 부인을 만나고 노노, 하킴과 하킴의 할아버지 엘 하즈, 시몬을 만난다. 영혼을 울리는 시몬의 노래 소리를 듣고 고향을 떠올리기에 이른다. 저항할 수 없는 그 음악은 라일라를 자신의 뿌리인 힐랄 족을 다시금 생각하게 한다. 시몬의 삶도 화려해 보이지만 속을 들여다보면 상처로 가득하다. 자유가 없는 삶이다. 자신의 육신을 가졌음에도 남에 의해 운명이 결정되는 삶이다.


 무엇이 라일라에게 미래에 대한 꿈을 꾸게 했을까. 항상 가둬두려는 사람들에게 에워싸여 있었지만, 결국은 박차고 나왔다. 생애 처음으로 성공이라는 이름으로 음반 계약을 했고 숨어 살아야 했던 고통의 몸부림의 대가로 새로운 이름의 여권을 선물 받았지만, 그것을 뒤로 하고 떠나온 곳으로 회귀했다. 수많은 위험과 생명 담보를 무릅쓴 과정이었다. 아무리 통과제의라고 하더라도 너무나 험난한 과정을 거쳤다. 세상은 그녀에게 호시탐탐 올가미를 씌우려 했지만 그에 굴복하지 않고 굳건히 일어섰다. 유괴에서 벗어나 자유를 찾고 자신의 정체성을 찾는 여정의 아름다운 성장소설이다. 한편 강자가 약자에게 군림하는 세태의 고발, 현대 문명이라는 이름으로 인간이 자연을 얼마나 혹사시키고 있는가 묻는 메시지도 떠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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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한 여자는 글을 쓰지 않는다 - 평생 말빨 글빨로 돈 벌며 살아온 센 언니의 39금 사랑 에쎄이
최연지 지음 / 레드박스 / 2019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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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래전에 재밌게 보았던 드라마 <질투>의 작가라는 기대감으로 읽게 되었다. 우선 재미있다. 책을 읽는다기보다는 옆에서 하는 이야기를 직접 듣는 느낌이다. 그만큼 생생하고 리얼해서 공감이 가는 부분이 많았다. 작가의 프로필을 보니 화려하다. 그 시절에 유치원을 다니고 경기여중고를 거쳐 이화여대 영문과, 한국외대의 통번역대학원을 졸업하고 기자로 2년간 활동, 국제회의 동시통역까지. 요즘으로 치면 한 스펙 하는 분이 행복하지 않다는 말인가.


 평생 글을 써서 밥을 먹고 살아온 작가, 글을 써서 밥벌이를 하는 것이 많은 사람들에겐 로망일 텐데 어떤 사연이 있기에 저런 제목의 책이 나왔을까 궁금했다. 돈 걱정 없는 집안의 부모를 만나 교육적으로 혜택을 받았지만, 엄격하고 자기중심적인 부모에게 받은 어린 시절부터 성장기까지 마음의 상처가 있었다. 그동안 드라마 작가로 살아오면서 만난 사람, 사랑과 삶의 이야기를 펄펄 살아있는 언어로 쏟아놓는다. 겉모습의 화려함 속에도 누구나 아픔이 있구나 싶었다.


글을 한 장 쓰는 건

한 마지기의 밥을 매는 것과 비슷한 강도의 노동이다.

것도 반드시 혼자 해야 하는…….

누구와도 더불어 함께할 수 없는

노동집약적 작업이 집필이다.’(P19)


이와 비슷한 말을 다른 책에서도 많이 접한 적이 있다.

누군가의 강제에 의해서 쓸 수 없는 것이 글이다. 작가가 된다는 건 혼자 그 많은 시간을 외로움과 함께 하는 것이라는 걸 새삼 느낀다.


불행한 여자가 작가가 되어서 비로소 행복해지는 게 아니라

불행한 여자가 글을 쓰면서 행복해지고

그렇게 행복해진 여자가 비로소 작가가 된다.’(P27)


과연, 공감이 가는 말이다.

행복한 사람은 누군가 자꾸 불러내기 때문에 글을 쓸 시간이 없단다. 어울려 놀며 즐거운 시간을 보내는 사람이 언제 글을 쓸 수 있냐고. 그럴 마음도 없고.

못 다한 이야기를 글로 털어놓는 일, 그것을 즐기고 외로움을 견딘 사람만이 작가가 된다는 것이다. 불행도 어중간하게 불행하면 안 된단다. 다른 말로 하면 그건 절실함이겠지. 역시 작가는 생각만으로 되는 게 아니다. 성공하기 위해서라면 무슨 일에든 적용되는 말이겠다.


 드라마, 영화, , 노래 등 많은 재료를 가지고 이야기를 펼쳐나가는 작가를 보고 천상 드라마작가구나 싶었다. 작가들의 작품에는 상상력과 더불어 자신의 이야기가 어느 정도는 반영될 수밖에 없다. 영상작가들은 그것이 어떻게 반영될까. 예를 들어 우리 엄마가 이런 엄마였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극중 인물로 만드는 것이다. 자식을 24시간 감시하는 간수 같은 엄마, 헬리콥터맘이 너무 싫었단다. 그래서 드라마 <질투> 속의 성희와 하경이 모녀 이야기를 쓸 때 너무 행복했다고 한다. 우리가 책을 읽으면서 대리만족을 하고 마음의 치유를 받는 모습과 어쩜 그렇게 똑같은지.


결혼관에 대한 이야기도 많이 와 닿았다.

오랜 세월 글을 쓰며 살아온 작가답게 성숙한 인생관과 경륜이 느껴졌다.


모든 결혼이 불행하다는 것.

결혼생활의 기본 감정이 노여움이라는 것.

적어도 이건 알고 결혼을 선택한 사람과

사랑의 절정에서 그 사랑을 영속화한다는

드높은 기대치를 갖고 결혼을 선택한 사람.

두 사람 다 결혼하면 불행해지지만

그 불행의 질은 천지차이다.’(P63)


사랑해서 결혼하지만 결혼이라는 제도 자체가 결국 자유를 잃은 것이란다.

이러한 사실을 직시하는 것은 대한 불합리한 점을 감수하고 해결할 수 있는 힘이 될 것임에 틀림없다. , 전자는 예방주사를 확실하게 맞은 사람이라 증상도 가볍고 무엇보다 절망의 구렁텅이에 빠져 몸부림칠 일은 없다는 거다.

 

매일 운동과 학습으로 행복의 근육을 만들면

확실히 행복해진다.

왜 확실한가.

내가 하니까 확실하다.

남에게 불확실하게 바라는 게 아니고

내가 확실하게 하니까 확실하다.’(P221)


요즘 소학행이야기가 대세다.

작지만 확실하게 누릴 수 있는 행복, 아무리 작은 것이라도 누가 거저 주는 것이 아니다

자기 자신이 만들어야 하는 것이다.

에세이 제목과는 달리 행복한 분이라고 여겨졌다.

누구에게 기대지 않고 치열한 노력으로 자신의 현재를 누릴 수 있다는 건 멋진 일이다. 사랑과 일, 삶 사이에서 고민하는 이들에게 많은 힘을 주리라 믿는다.

 

 

 이 책은 청림출판(주)로부터 제공 받아  작성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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뭉크 - 노르웨이에서 만난 절규의 화가 클래식 클라우드 8
유성혜 지음 / arte(아르테) / 2019년 1월
평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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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학창시절 미술책에서 만난 뭉크의 <절규>는 아름다운 그림도 아닌 오싹한 해골이 느겨지는 섬뜩함이었다. 어떻게 해서 이런 그림이 탄생했을까 하는 것은 생각해 볼 마음도 없었던 것 같다. 예전의 미술 시간은 화가들의 유파와 작품을 달달 외우며 재미없는 시간을 보냈던 기억이 전부다. 그 후로 많은 시간이 흘러 고흐를 만나고 미술에 관심이 생겼다. 간간히 미술 관련 책들을 만나면서 좀 더 알고 싶은 마음이 들었다. 일전에 읽었던 미술관으로 간 심리학에서 뭉크를 만났다. 거기서 미처 몰랐던 뭉크에 대한 삶의 배경을 알게 되었고 더 많은 뭉크의 그림과 삶을 이해하고 싶은 마음이 닿아 이 책을 만나게 되었다.

 

나는 보이는 것을 그리는 게 아니라 본 것을 그린다.”(P13)

 

 뭉크가 남긴 수많은 글 중 그의 예술관을 나타내는 핵심적인 말이다.

작품 <절규>를 이해하기 위한 최적의 문장이 아닐까 싶다. 당시 대부분의 화가들이 풍경이나 사물을 그린 반면, 뭉크는 자신이 본 것, 자신의 기억을 그리려고 했는데, 기억이란 감정과 생각에 따라 만들어지는 것이며 이는 화가의 뜻대로 해석되고 편집된다는 것이다. 이제는 전 세계에서 가장 유명하고 친숙한 예술 작품이 된 <절규>는 많은 매체를 통해 패러디될 정도로 자주 접할 수 있다. 뭉크의 <절규>는 소더비 미술품 경매 시장에서 11,992만 달러라는 당시 사상 최고가를 기록하기도 했다.

 

 뭉크의 자취가 어린 여러 장소, 그림과 그에 얽힌 배경 이야기는 마치 저자와 그 여정을 함께 하는 느낌이 들 정도로 생생하게 느껴져서 좋았다.

1,2,3장에서는 뭉크가 유소년기와 청년기를 보냈던 크리스티아니아(지금의 오슬로) 곳곳을 소개한다. 4,5장에서는 뭉크가 사랑했던 여인들과 그들과의 추억이 있는 오스고쉬트란드를 소개한다. 6,7장은 각각 베를린과 파리의 행적을 더듬는다. 베를린은 뭉크에게 큰 행운을 가져다준 곳으로 제2의 고향과도 같은 곳이다. 세계 화단의 중심지이자 뭉크가 유학했던 파리는 그가 진보적인 세계 미술의 흐름을 습득하고 예술적 자극을 받은 곳이다. 8,9,10장에서는 뭉크가 노르웨이의 국내외를 떠돌며 보낸 세월을 따라 그 시기에 제작한 그의 작품들을 소개한다. 11장은 노르웨이로 돌아온 뭉크가 마지막 30년을 보낸 오슬로 외곽의 에켈리를 돌아보고, 12장에서는 뭉크의 죽음 이후 이야기를 뭉크 미술관을 중심으로 풀어보는 이야기다.

 

 불안의 아이콘이라는 대명사가 된 뭉크의 성장배경은 어떠했을까.

다섯 살 때 어머니가 폐결핵으로 세상을 떠나고 열세 살 때는 엄마 대신이자 놀이동무였던 누이 소피에가 목숨을 잃자 정신적으로 큰 충격을 받는다. 또 파리 유학중에 뇌졸중으로 아버지의 죽음을 듣고 멀어졌던 관계에 죄책감을 느끼기도 한다. 연이은 가족의 죽음, 힘든 현실을 종교에 매달리며 뭉크에게 엄격하게 대했던 아버지, 병약했던 자신은 학교를 그만두고 가정 학습을 받으면서 더욱 말수가 적어지고 내성적인 아이가 되어간다. 다행히 우울했던 청소년기를 보내고 20대에 들어서면서 다양한 사람들을 만나고 새로운 지식을 접하며 새로운 환경과 자극에 몰입하며 화가로서 원대한 꿈을 꾸게 된다. 하지만 뜻대로 되지 않는 것이 삶이다. 난관과 이별을 겪으며 흔들리고 비관하며 마음이 불안정한 상태로 거리를 방황하다가 졸도를 하기도 한다. 스물여덟 살의 뭉크가 그린 <칼 요한 거리의 저녁>은 그 당시 뭉크의 심리와 태도를 잘 드러낸 그림이다.

<칼 요한 거리의 저녁>

 

뭉크는 같은 주제의 그림을 여러 버전으로 그리기로 유명했는데, 캔버스에 유채, 크레용 외에 판화로도 많은 그림을 남겼다.

               왼쪽 작품이 <절망>              오른쪽 작품은 <절규>

 1893년 뭉크의 대표작 <절규>가 나오기 전 그 토대가 된 작품이다그림에서 여러 시선으로 볼 수 있는 점이 새롭고 재미있었다.

 그림에 세 사람은 동일 인물이며 이들을 시간 순서대로 나열해놓은 것이라고 보는 의견도 있단다. ‘뭉크의 노트에 묘사한 것처럼, 길을 가다가 피오르를 바라보고, 죽을 듯 피곤하여 난간에 기대고, 그다음 비명을 듣는다는 것이다. 비명자연을 관통하여 들려오는 거대하고 끝없는 비명에서 그림의 영감을 받았다는데 그 해석에 대한 이야기를 읽으면서 그림을 보니 신비스런 느낌과 함께 노르웨이의 대자연의 역동성이 느껴졌다. 제목이 절규보다는 비명이 이 그림을 이해하는데 더 도움이 된다는 해석이 흥미롭다.

 

 불행한 가족사의 환경, 자신의 병약함으로 인한 불안 등으로 점철된 삶에서 어떻게 세계적인 화가로 우뚝 서게 되었을까 정말 궁금하다. 청년 뭉크의 멘토였던 한스 예게르와의 만남이 뭉크의 인생의 지표와 방향을 바꾸어 놓았다고 할 수 있다. 자유연애를 추구하고 기독교와 부르주아계급의 인습에 대해 끊임없이 비판하던 예게르와 그에 동조하는 사람들이 모여서 크리스티아니아 보헤미안이라는 모임이 자연스럽게 생겨났다. 예술가들과 젊은 학생들이 모여 패기 넘치고 새로운 것을 추구하는 젊은 예술가들에게 예게르의 주장은 혁신적이고 그만큼 매력적이었을 것이다. 뭉크는 이 그룹에서 활발한 편은 아니었지만 훗날 화단에 거센 논란을 불러일으키는 혁신적 예술을 선보일 수 있는 용기와 자신감을 얻었으리라 짐작할 수 있다.

 

 예술가들에게 영감을 주는 장소라든가 뮤즈가 되었던 사람들에 대한 이야기는 신비스럽다. 뭉크는 평생을 홀로 살았지만 사랑했던 여인들이 있었다. 짧고 강렬한 사랑을 했던 밀리, 약혼자였던 툴라 등과 결국은 헤어지고 그로 인한 마음의 상처는 실로 대단했다

<이별>

밀리와의 이별에 대한 상처가 얼마나 컸으면.

가슴에서 흘린 피가 떨어진 자리에 붉은 나무가 솟아난다. 등을 돌리며 유유히 떠나가는 여인의 모습. 이전에는 느끼지 못했던 그림에 대한 느낌. 자세한 배경 이야기가 쉽게 그림을 읽어낼 수 있게 한다.

 

 

사랑의 아픔, 이별 등으로 인한 외로운 마음의 상처가 <키스>, <두사람, 외로운 이들>에 잘 드러나고 있다. 밀리나 툴라는 이후로도 영감을 주는 뮤즈로 작용한다. 반면 뭉크에게 예술적 영감을 준 장소는 오스고쉬트란드였다고 한다.

 “오스고쉬트란드를 걷는 것은 내 그림들 사이로 걷는 것과 같다. 오스고쉬트란드에 있을 때 나는 그렇게 그림이 그리고 싶다”(P146)

라고 말했을 만큼 이곳의 풍경을 사랑했단다. 자신이 좋아하는 장소가 있다는 것은 얼마나 다행한 일인가. 불안한 삶을 차분히 들여다보고 약간의 희망을 품게 되었을지도 모른다. ‘그림들 사이로 걷는 것과 같고 그림이 그리고 싶은 마음이 들었다는 것을 보아도 뭉크에게 있어 편안함을 주는 장소였음이 틀림없다.

<달빛>

1890년대 초반, 뭉크는 신비로운 느낌의 여름밤 바다 풍경을 집중적으로 그렸는데 미술사가 애귬은 이것을 오스고쉬트란드 라인이라고 불렀다.

<달빛>은 오스고쉬트란드 라인을 보여주는 대표적인 풍경화다.

 

 주로 불안, 사랑의 상처, 죽음 등을 주제로 그렸던 뭉크는 1902년 봄, 베를린 분리파 전시회에서 <생의 프리즈>를 연작의 모습으로 첫 선을 보인다. ‘사랑의 씨앗’, ‘꽃피고 사라지는 사랑’, ‘삶의 불안’, ‘죽음’,이라는 4개의 그룹으로 생명의 탄생에서부터 죽음까지 인간의 일생을 보여준 것이다. 여기서 뭉크는 나는 예술로 삶과 그것의 의미를 설명하고자 노력한다. 그래서 내 그림들이 다른 이들에게 자신의 삶을 좀 더 명확하게 하는 데 도움이 되길 바란다”(P220)라고 의미를 부여했다. 그림뿐만 아니라 전시 기획과 디자인에서도 앞서갔던 예술가였음을 알려주는 대목이다.

 

 자신의 경험을 바탕으로 한 인생의 고통스러운 에피소드에 집중했던 뭉크의 인생 2막은 오슬로 대학 강당 벽화 작업을 하면서 인류와 민족, 지식과 역사 그리고 희망에 대한 관심을 가지게 된다. 이 아울라 벽화는 공모 결과 당선자가 없었지만 오슬로 시는 작품대금의 반만 지급하고 나머지는 뭉크가 오슬로 대학에 작품을 기증하는 형식으로 뭉크의 작품을 강당에 걸기로 결정한다. 강당의 정면에 <태양>이 있고, 오른쪽에 <알마 마테르>, 왼쪽에 <역사>가 있다. 3개의 큰 그림과 작은 그림 6개로 구성되어 있다. 오슬로 시민들에게 뭉크 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그림은 <절규><마돈나>도 많은 수를 차지하지만, 오슬로 대학 강당의 벽화도 빠지지 않고 등장한다고 한다. 아울라 벽화의 완성은 오랜 해외 생활로 국내에 입지가 약했던 뭉크에게 노르웨이의 국민 화가로 만들어 주었다.

<오슬로 대학 강당의 벽화>

 

 성공의 가도를 달리면서도 뭉크는 여전히 불안의 지옥을 살아간다. 30년에 가까운 시간을 해외와 노르웨이의 작은 해변 마을들을 떠돌다가 1916년 쉰두 살의 나이에 크리스티아니아로 돌아와 정착하게 되는데, 에켈리를 구입하고 1944년 사망할 때까지 기나긴 은둔과 고독은 여전하다. <잠들지 못하는 밤, 심적 혼란의 자화상>(아래 그림 왼쪽), <밤의 방랑자>(아래 그림 오른쪽)에는 노년이 된 뭉크의 죽음을 앞둔 불안과 외로움이 잘 드러나 있다.

 

 불행했던 가족사, 화단으로부터 거센 비난과 나치에 의해 퇴폐 미술 화가로 낙인이 찍히는 등 난관에도 굽히지 않고 자신만의 작품의 세계를 구축해 나갔던 뭉크의 삶과 그림에 대한 열정에 경외심이 느껴졌다. 뭉크의 많은 작품을 볼 수 있어서 충만한 시간이었고 삶의 굴곡을 잘 극복한 한 사람의 생애는 드라마틱했다. 언젠가 뭉크의 그림을 실제로 볼 수 있다면 얼마나 감동적일까. 미술의 세계에 조금은 눈을 뜬 것 같아 뿌듯한 마음이다. 어느 때보다 풍성하고 편리한 21세기를 살고 있지만 제각각 다양한 이유로 여전히 불안하고 아프다고 한다. 뭉크의 말처럼 자신의 삶을 좀 더 명확하게 하는 데 도움이 되기를바라는 이들에게 거대한 세상의 한 가운데를 나아갈 수 있는 용기와 위안이 되리라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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