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는 어떤 냄새를 다시 맡는 경우 전에 그 냄새를 맡았던기억을 떠올릴 수 있을 뿐만 아니라, 거꾸로 어떤 냄새의 기억을 떠올리는 것만으로도 정말로 그 냄새를 맡을 수가 있었다.
어디 그뿐인가. 심지어 그는 상상 속에서 냄새들을 서로 섞을수도 있었기 때문에 현실 세계에서는 존재하지 않는 냄새들을만들어 낼 수도 있었다.  - P43

 아마도 그의 재능은 청각을 통해 멜로디와 하모니, 그리고절대음을 알아낼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직접 완벽하게 새로운멜로디나 하모니를 만들어 낼 수 있는 음악의 신동에 비교하는 것이 가장 적절할 것이다. 물론 냄새의 자모(母)는 음계와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방대하고 다양할 뿐만 아니라, 그르누이라는 신동의 창조 활동은 오로지 그의 내면세계에서만이루어지고 있기 때문에 그 자신 이외에는 어느 누구도 눈치채지 못한다는 차이점은 있었다. - P43

그가 이긴 셈이었다. 그는 살아남았고, 더욱이 계속살아가는 데 충분할 정도의 자유까지 획득했기 때문이다. 겨우살이의 시간은 지나갔다. 진드기 그르누이는 다시 움직이기시작했다. 그는 아침 공기를 들이마셨다. 돌아다니고픈 충동이 그를 사로잡았다. 세상에서 가장 넓은 냄새의 영역이 그의앞에 펼쳐져 있었다. 그것은 파리였다. - P52

 그는 그 모든 냄새를 먹어 치웠고 빨아들였다. 그러고는 끊임없이 상상 속에 마련된 냄새의 부엌에서 새로운 냄새를 혼합해 만들어 냈다. 물론 아직까지는 어떤 미학적 원칙이 있는 것은 아니었다. 나무 조각 쌓기 놀이를 하는 어린아이처럼 만들었다가는 금방 없애 버리는 그 냄새들은 아주 기한 것들로서, 그것을 식별할 수 있는 창조 원리는 없지만 아주독창적이면서도 파괴적이었다. - P58

그는 이렇게 멋진 일이 살인으로부터 시작되었다는 사실을잊지는 않았지만 깊이 염두에 두지도 않았다. 마레 거리의 그소녀의 모습, 그녀의 얼굴과 육체를 그는 더 이상 떠올릴 수 없었다. 하지만 그는 그녀의 가장 좋은 것을 빼앗아 자신의 것으로 만들어 놓았다. 그것은 바로 향기의 법칙이었다. - P6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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향수 열린책들 창립 30주년 기념 대표 작가 12인 세트
파트리크 쥐스킨트 지음, 강명순 옮김 / 열린책들 / 2016년 9월
평점 :
품절


그것을 막을 수도, 그걸 피해 숨을 수도 없었다…………. 그 자신은아무 냄새도 없는 아이가 뻔뻔스럽게도 남의 냄새를 맡고 있다니! 냄새로 남의 존재를 알아차리다니! 테리에는 갑자기 자신의 몸에서 땀 냄새, 시큼한 체취, 절인 양배추 냄새, 그리고빨지 않은 옷 냄새 등의 악취가 퍼져 나가는 기분이 들었다.
자기 쪽에서는 정체를 노출시키지 않는 누군가에 의해 자신의추한 모습이 발가벗겨진 것이다. 이 아기는 자신의 피부 속까지 뚫고 들어와 뱃속 가장 깊은 곳의 냄새까지 맡고 있었다.  - P29

어린 그르누이에게 가이아르 부인의 집은 축복이라고 할 수있었다. 아마 다른 곳이었다면 그르누이는 살아남을 수 없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여기 영혼이라곤 없는 여자의 집에서그는 잘 자라났다. 그는 질긴 생명력을 지니고 있었다. 쓰레기더미 속에서도 살아남았던 아이를 세상 밖으로 끌어내기는 어려운 법이다. 그는 며칠 동안 계속 물같이 희멀건 스프만 먹고도 견딜 수가 있었고, 멀건 젖을 먹고도 그럭저럭 버텨 냈으며,
썩어 문드러진 야채와 상한 고기도 먹을 수 있었다.  - P34

어머니를 단두대로 보내게 된, 자신의 존재를 알아 달라고 생선 좌판 밑에서 질러 댄 그 울음소리는 동정이나 사랑을 갈구하는 본능적 울부짖음이 아니었다. 그것은 오히려 충분한 생각과 심사숙고 끝에 나온 비명이었다. 그렇게 소리를 질러 댐으로써 그는 오히려 사랑을 거부하고> 생명을 <선택한> 셈이었다.  - P35

그르누이는 바로 그 진드기 같은 아이였다. 그는 자기 자신속에 틀어박힌 채 더 좋은 때가 오기를 기다리며 살았다. 그가세상에 내놓은 것이라고는 배설물밖에 없었다. 웃거나 비명을질러 대지도, 또 눈을 반짝이지도 않았을 뿐만 아니라 결코 자신의 냄새를 풍기지도 않았다. 다른 여자들 같았으면 누구라도 이 괴물 같은 아이를 내쫓았을 것이다. 그러나 가이아르부인은 그렇게 하지 않았다. - P36

등을 창고 벽에 기댄 채 장작더미 위에 다리를 쭉 뻗고 앉은그는 눈을 감은 채 꼼짝도 않고 있었다. 그는 보지도 듣지도만지지도 않았다. 단지 아래로부터 퍼져 올라오다가 뚜껑에덮인 것처럼 지붕 밑에 갇혀서 그를 감싸고 있는 나무 냄새를•들이마실 뿐이었다. 냄새를 들이마시고 그 냄새에 빠져 자신의가장 내밀한 땀구멍 깊숙한 곳까지 전부 나무 냄새로 가득 채 - P40

운 그는 그 스스로가 나무가 되어 버렸다. 그러고는 나무 인형,
즉 피노키오가 된 것처럼 그 장작더미 위에 죽은 듯이 앉아 있었다. 그러고는 한참 뒤, 거의 30분쯤 지나서야 비로소 <나무>라는 말을 내뱉었던 것이다.  - P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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렛잇고 2024-04-22 22:13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우와 이 책 읽고 싶은데 모나리자님께서 읽으셨네요!! 읽을만 한가요?? 모나리자님?

모나리자 2024-04-23 22:03   좋아요 1 | URL
네, 이 책을 몇 년이나 갖고 있다가 이제야 읽고 있네요. 밑줄긋기인데 이제 보니
리뷰로 등록되었군요.ㅎ 몰입도가 높은 것 같아요.
감사합니다. 렛잇고 님.^^
 
향수 열린책들 창립 30주년 기념 대표 작가 12인 세트
파트리크 쥐스킨트 지음, 강명순 옮김 / 열린책들 / 2016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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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른 기이한 천재들의 이름과는 달리 장바티스트그르누이라는 그의 이름은 오늘날 잊혀져 버렸다. 물론 그것은 오만, 인간에 대한 혐오, 비도덕성 등 한마디로 사악함의 정도에 있어 그르누이가 그 악명 높은 인물들에 뒤떨어지기 때문은 아니다. 단지 그의 천재성과 명예욕이 발휘된 분야가 역사에 아무런 흔적도 남기지 않는 냄새라는 덧없는 영역이었기때문이다. - P9


물론 악취가 가장 심한 곳은 파리였다. 프랑스에서 가장 큰도시였기 때문이다. 파리 안에서도 특히 악취가 지옥의 냄새처럼 배어 있는 곳이 있었는데, 바로 페르 거리와 페론리 거리사이에 위치한 이노상 묘지였다. 8백 년 동안 시립병원과 주변의 교구에서 죽은 시체들이 이곳으로 옮겨졌기 때문이다. - P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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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리사키 서점의 나날들
야기사와 사토시 지음, 서혜영 옮김 / 블루엘리펀트 / 2013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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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쿄 여행 때 두 차례 진보초 고서점가를 다녀온 후, 언젠가 그 책방 거리를 누비면서 나날의 기억을 블로그에 연재하고 싶다는 버킷 리스트가 생겼다. 번역 수업 시간에 야기사와 사토시의 모리사키 서점의 나날들을 알게 되고 꼭 한번 읽어봐야지 했던 책이다. 두 편의 연작소설로 구성되어 있다.

 


과거 시점을 회상하는 장면으로 시작되는데 대략의 줄거리는 이렇다. 히데아키와 1년 동안이나 사귀고 있던 다카코는 어느 날 그가 결혼한다는 말을 듣고 충격에 빠진다. 그런 마음을 내색하지도 못하고 끙끙 앓던 다카코는 돌연 회사를 그만두고 실의에 빠진 나날을 보낸다. 그러던 중 10년 동안 만난 적 없던 외삼촌의 연락을 받고 그가 운영하는 모리사키 서점에서 지내면서 서서히 마음의 상처를 치유하고 나아가는 이야기다.

 


허리 아픈 외삼촌이 병원에 다녀올 동안 서점을 봐달라는 부탁이었다. 책을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얼씨구나 좋다며 흔쾌히 받아들일 것이다. 하지만 책을 좋아하지도 않고 아직 실연의 아픔에서 헤어나지 못한 다카코가 곰팡내 나는 중고책 서점에서 얼마나 견딜 수 있을까, 궁금한 마음으로 몰입하며 읽었다. 아니나 다를까, ‘수면 괴물이라고 할 정도로 잠에 빠져사는 다카코를 보며 외삼촌은 걱정한다. 어느 날 아침 다녀올 곳이 있으니 같이 가자는 외삼촌의 말에 다카코는 시큰둥한다. 앞으로 몇 시간을 자든 일절 간섭하지 않겠다는 조건을 걸자 할 수 없이 따라나선다. 50년도 넘었다는 외삼촌의 단골 가게라는 카페 스보루는 다카코의 기분 좋게 하였고 오랜만에 가슴이 뛰었다. 스보루에 다녀오고 나서 다카코는 달라지기 시작한다. 반전처럼 그동안 왜 이렇게 살아왔는지 후회가 될 만큼 그곳을 좋아하게 된다. 데면데면하기 그지없던 외삼촌과의 관계도 좋아지고 숙맥이라고 여겼던 외삼촌이 다르게 보였다.

 


돌연 집을 나가 5년 동안이나 소식이 없던 외숙모 모모코, 잔소리꾼 같았던 단골손님 사부 씨, 카페 스보루 사람들과 친해지면서 점점 마음의 여유를 찾는다. 다카코의 인생 대반전을 기대했는데 약간 밋밋한 결말은 살짝 아쉬웠다.

 


그래도 참 따뜻한 소설이다. 다카코를 천사라고 여기며 응원해 주는 외삼촌을 보며 겉모습만 보고 판단했던 자신이 얼마나 어리석었는지 뉘우친다. 자신을 그렇게 사랑해 주는 외삼촌의 마음을 이제야 알다니. 갑자기 떠났던 외숙모는 왜 돌아왔을까. 외삼촌은 모모코의 마음을 알아보려고 다카코에게 부탁을 하지만 모모코는 이미 알고 있다는 눈치다. 갑자기 여행을 가자는 모모코의 말을 거절하지 못한 채 따라나선 다카코는 지난날의 외숙모의 아픔을 알게 된다. 다카코가 쓰라린 실연을 겪은 후 모리사키 서점에서 지낸 날들은 다카코에게 큰 자양분이 되었다. 어쩌면 모리사키 서점은 사람들을 이어주고 품어주는 장소가 아니었을까. 외삼촌은 다카코에게 오랫동안 방황했던 경험을 들려주면서 모리사키 서점이야말로 신성한 곳이고 가장 마음 편히 쉴 수 있는 장소라고 했다.

 


어디에 있든, 누구와 있든 자신의 마음에 거리끼는 게 없다면, 그곳이 바로 자신이 있을 장소야. 그 사실을 깨달을 때까지 내 인생의 전반부가 지나갔어. 그리고 나는 이제 가장 마음에 드는 항구로 돌아와 거기에 닻을 내리기로 결정한 거야. 나에게 이곳은 신성한 곳이고 가장 마음 편히 쉴 수 있는 장소야.”(79P)

 


다카코는 어느새 히데아키를 원망했던 마음을 내려놓으며 늘 적당히수동적으로 살았던 태도를 반성한다. 헌책들의 곰팡내가 떠도는 모리사키 서점 2층 작은 방이 그렇게 소중한 공간이 될 줄이야. 책을 좋아하고 진보초 책방 거리를 사랑하는 등장인물들이 엮어내는 따뜻한 이야기다. 마음 편히 쉴 수 있는 곳, 자신이 좋아하는 소중한 공간이 있다는 건 행복한 일이 아닐까. 모모코가 다카코에게 여행을 권유한 것도 그토록 사랑했던 이 공간으로 돌아오고 싶기 때문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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즐라탄이즐라탄탄 2024-04-01 10:17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p.79에 나오는 ‘자신의 마음에 거리끼는 게 없다면, 그곳이 바로 자신이 있을 장소‘라는 말이 굉장히 공감이 되네요. 좋은 글 잘 읽었습니다. 고맙습니다!

모나리자 2024-04-01 10:31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그쵸. 이 말이 마음을 편안하게 해주네요. 4월에도 좋은 시간 보내세요. ^^

즐라탄이즐라탄탄 2024-04-01 10:44   좋아요 1 | URL
예 감사합니다. 모나리자 님도 보람찬 4월 되시길 바랍니다!

모나리자 2024-04-01 11:14   좋아요 1 | URL
감사합니다!! 오늘도 좋은 하루 보내세요.^^
 

"나는……………, 이런 식으로 아무것도 하지 않고 그저 시간만 허비하고 있는데..."
외삼촌은 나를 바라보며 부드럽게 미소 지었다.
"그렇지 않아. 인생이란 가끔 멈춰 서보는 것도 중요해. 지금이러고 있는 건 인생이라는 긴 여행에서의 짧은 휴식 같은 거라고 생각해. 여기는 항구고 너라는 배는 잠시 닻을 내린 것 뿐이야. 그러니 잘 쉬고 나서 다시 출항하면 되지." - P50

우리는 그렇게 한바탕 그 책에 대해 이야기를 나눴다. 지금까지 접점이 전혀 없는 것처럼 생각됐던 사람과 불현듯 한 가지일로 맺어지는 기쁨. 그건 설령 상대가 외삼촌 같은 사람이라할지라도, 아니, 외삼촌 같은 사람이니까 더욱 가슴 뛰는 일이었다. - P56


책을 통해 이런 멋진 체험을 할 수 있다는 것을 그 전까지는전혀 알지 못했다. 왠지 지금까지의 인생을 손해 본 것 같은 기분조차 들었다. 나는 더 이상 게으르게 자고 또 자는 일을 하지 않았다. 그럴 필요도 느끼지 않았다. 잠 속으로 도망쳐 들어가는 대신 외삼촌과 가게를 번갈아 보면서 내 방에서든 카페에서든 책을 읽었다. - P57

고요하게 시간이 흐르는 작은 공간에 거처할 수 있게 된 것이 내 인생에서 무척 귀중한 기회라고 생각하게 됐다. 덕분에작가들에 대해서도 꽤 많이 알게 됐고 어느새 단골고객들하고도 친숙해졌다. - P58

나는 그때 결심했단다. 이제 나도 나 혼자만의 좁은 틀 안에박혀 사는 생활은 그만두자, 넓은 세계를 돌아다니며 많은 것을 배우자, 그래서 내가 있을 장소, 내가 거기에 있어도 좋다고자신 있게 말할 수 있는 그런 장소를 찾자, 하고. 여행을 떠난것도, 책을 마구 읽어댄 것도 그때부터였어. 그러니까 요컨대다카코와의 만남은 나에게는 일종의 계시 같았다는 이야기야." - P77

어디에 있든, 누구와 있든 자신의 마음에 거리끼는 게 없다면 그곳이 바로 자신이 있을 장소야. 그 사실을 깨달을 때까지 내 인생의 전반부가 지나갔어. 그리고 나는 이제 가장 마음에 드는 항구로돌아와 거기에 닻을 내리기로 결정한 거야. 나에게 이곳은 신성한 곳이고 가장 마음 편히 쉴 수 있는 장소야" - P79

"누굴 사랑하는 걸 두려워하지 마. 누군가를 좋아할 수 있을때 마음껏 좋아해야 해. 설령 거기서부터 슬픔이 생겨나더라도아무도 사랑하지 않고 사는 따위의 쓸쓸한 짓은 하면 안 돼.
나는 네가 이번 일로 더 이상 누군가를 사랑하지 않기로 마음먹었을까 봐 무척 걱정이야. 사랑하는 건 멋진 일이란다. 그걸부디 잊지 말아라. 누군가를 사랑한 추억은 마음속에서 결코사라지지 않아. 언제까지나 기억속에 남아서 마음을 따뜻하게데워준단다. 나처럼 나이를 먹으면 그걸 알 수 있어." - P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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