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의 진정한 행동은 스스로 설명할 것이고 다른 진정한 행동들도 거기 동참할 것이다. 하지만 순응하는 태도는 아무것도 설명하지 못한다. 그러므로 홀로 행동하라. 당신이 홀로 행동해온 것이 지금 당신을 정당화할 것이다. 위대함은 미래에 호소한다. 내가 오늘바른 일을 할 만큼 확고하며 남의 이목은 상관하지 않을 수 있다면,
전부터 옳은 일을 많이 해왔으므로 지금 나를 변호할 수 있다.  - P29

이제 순응이니 일관성이니 하는 말은 영원히 사라지길 바란다.
앞으로 이런 말은 관보(官報)에나 들어가 웃음거리가 되는 게 좋으리라. 식사 시간을 알리는 공소리 대신 스파르타의 군적(軍笛)‘에서 흘러나오는 가락을 듣도록 하자. 우리는 이제 더 이상 고개 숙이지도말고 사죄하지도 말자. 위대한 사람이 내 집에 식사하러 올 것이다.
- P30

인간은 자신의 가치를 알고 사물을 그 발아래 제압해야만 한다. - P31

그는 자신을 위해 존재하는 세상에서, 세상의 이면을 몰래 엿보거나훔치면서 혹은 고아, 사생아, 훼방꾼처럼 살금살금 돌아다녀서는 안된다. 평범한 사람은 자기 안에서 거대한 탑을 짓거나 대리석 신상(神像)을 조각할 정도의 힘을 발견하지 못한다.  - P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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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06-15 17:44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23-06-15 23:13   URL
비밀 댓글입니다.
 

세상은 자기에게 순응하지 않는 사람에 대해 불쾌하게 반응함으로써 채찍질한다. 따라서 우리는 상대방의 시큰둥한 얼굴을 금방알아채는 법을 배운다. 구경꾼들은 광장 네거리에서나 친구 집 응접실에서도 순응하는 않는 자를 흘끔흘끔 쳐다본다. 이런 혐오감이 경멸이나 저항에서 비롯된 것이라면, 비순응자는 슬픈 표정을 지으며집으로 돌아갈 것이다. 그러나 대중의 시큰둥한 얼굴은 그 상냥한얼굴과 마찬가지로, 바람 부는 대로, 신문 보도에 따라 오간다. 그런데도 상원이나 대학의 불만보다 일반 대중의 불만이 훨씬 더 무시무시하게 느껴진다. - P25

위대한 영혼은 일관성 따위는 전혀 신경 쓰지 않는다. 차라리 그 사람에게 벽에 얼비치는 자신의그림자나 신경 쓰라고 하라. 지금 이 순간 객관적인 언어로 당신 생각을 말하라. 그리고 내일이 되면 내일이 객관적으로 말해주는 것을말하라. 그것이 오늘 말한 것과 완전 모순된다 할지라도 전혀 신경쓰지 마라.
- P27

‘아, 그렇게 하면 당신은 오해받기 딱 좋아요.‘ 남에게 오해받는것이 뭐 그렇게 대수란 말인가? 피타고라스도, 소크라테스도, 예수도, 마르틴 루터도, 코페르니쿠스도, 갈릴레오, 뉴턴도 모두 오해를 받았다. 아니, 이 세상에서 순수하고 현명한 영혼은 다들 그런 식으로 오해를 받았다. 그러니 오해를 받는다는 것은 곧 위대하다는뜻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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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크pek0501 2023-06-15 17:37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27쪽의 글에 공감합니다. 소설가도 새 작품을 쓸 때마다 달라진 작가를 독자가 느낄 수 있는 게 좋다고 합니다. 더 성숙해진 작가로, 더 열린 의식을 가진 작가로 변신해야 한다는 거겠지요.
저도 일관성 있는 생각 따윈 집어치우고 매일 조금씩이라도 성장하는 쪽으로 변신하면 좋겠습니다.^^

모나리자 2023-06-15 23:16   좋아요 1 | URL
네, 정말 공감할 수 있는 문장이죠. 소설가도 독자도 조금씩 성장하고 변화하고
성숙해지는 것이 바람직한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고정관념에서 조금씩 벗어나고 열린 마음을 갖고 있어야겠지요.
우리 모두 조금씩 성장하는 사람이 되면 좋겠습니다.
감사합니다. 페크님.^^
 

이에 비해 어른은 자신의 의식감옥에 갇혀 있다.
이라는그가 어떤 발랄한 말이나 행동을 하는 순간, 그는 어느 한편을 지지하는 사람이 되어 수백 명에게 동정을 받거나 증오의 대상이 된다.
이제 그는 사람들의 감정을 의식적으로 참고하지 않을 수 없다. 이제 이것을 잊어버릴 방법은 없다.‘ 그렇게만 된다면 ‘아, 다시 중립으로 돌아갈 수 있을 텐데‘ 하며 아쉬워한다. - P18

우리가 혼자 있을 때는 이런 소리를 듣는다. 하지만 그 목소리는 세상에 들어가면서 희미해지다가 마침내 들리지 않는다. 어느 사회에서나 구성원이 씩씩하고 솔직한 어른으로 성장하지 못하도록 - P18

음모를 꾸민다. 사회는 일종의 주식회사다. 구성원들은 주주에게 빵을 더 확보해주려고 빵 먹는 사람의 자유와 문화를 포기하기로 합의한다. 거기서 가장 요구되는 미덕은 순웅이다. 그러므로 주식회사는자기 신뢰를 혐오한다. 사회는 실재나 창조성보다 명목과 관습을 더좋아한다. - P19

온전한 어른이 되려는 사람은 누구든지 순응을 거부할 줄 알아야 한다. 불멸의 종려 잎을 얻으려는 사람은 이름뿐인 선(善)의 방해를 받아서는 안 된다. 오히려 그 선을 면밀하게 살펴야 한다. 결국,
당신의 성실한 마음 외에 그 무엇도 신성하지 않다. 당신의 솔직한의견을 자기 자신에게 선언하라. 그러면 당신은 온 세상으로부터 지지를 받을 것이다. - P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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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루스트의 독서 (문고본) 마음산 문고
마르셀 프루스트 지음, 백선희 옮김 / 마음산책 / 2018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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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우 136쪽의 얇은 책인데 예상대로 금세 읽지 못했다. 프루스트가 쓴 글이 아닌가. 이 책에는 세 편의 서문이 들어있다. <독서에 관하여>는 영국 작가 존 러스킨의 책을 번역하고 쓴 역자 서문이다. 나머지 두 편 <침울한 주거지에 행복을><달콤한 비축품>은 지인들을 위해 쓴 서문이다. <독서에 관하여>99쪽이나 되는 이 책의 대부분을 차지할 만큼 긴 이야기다. 러스킨의 작품에 대한 언급은 거의 없고 프루스트 자신의 어린 시절의 독서 기억을 떠올리며 독서에 대한 흥미로운 성찰을 펼쳐나간다.



아마도 우정은, 개인을 상대로 한 우정은 변덕스러운 무엇인데, 독서는 하나의 우정이다. 그러나 적어도 진지한 우정이다. 독서가 죽은 이를, 부재한 이를 상대한다는 사실이 독서에 사심 없는 무언가를, 거의 감동적인 무언가를 부여한다. 게다가 독서는 다른 우정들을 추하게 만드는 모든 것을 벗어버린 우정이다.’(P78)

 



박웅현의 다시, 책은 도끼다에서 발견한 문장을 프루스트의 이 글에서 다시 만날 수 있어서 반가웠다. 책과 나누는 우정은 사람들 사이에서 나누는 우정과 비교할 수 없을 만큼 진지한 우정이라는 말에 많은 이들이 공감할 수 있을 것이다.

 



독서 속에서 우정은 돌연 본래의 순수성을 되찾는다. 책과 나누는 우정에는 상냥한 말이 필요 없다. 이 친구들과 우리가 저녁 시간을 같이 보내는 건 정말 그러고 싶기 때문이다. 적어도 우리는 그들과 헤어지는 걸 대개 아쉬워한다. 우리가 그들 곁을 떠나고 나서도 우정을 망가뜨릴 이전 생각들은 전혀 들지 않는다.’(P79)

 



책에 대한 기호가 지성과 함께 커진다면, 우리가 보았듯이 그 위험은 지성과 함께 감소한다. 독창적인 정신은 독서를 자신의 개인적 활동에 종속시킬 줄 안다. 그에게 독서는 그저 가장 고결한, 무엇보다 가장 고상한 소일거리일 뿐이다. 독서와 지식이 정신의 우아한 예절을 제공하기 때문이다. 우리의 감성과 지성의 힘을 우리는 우리 자신 안에서만, 우리의 정신적 삶의 깊이에서만 기를 수 있다. 그러나 정신의 태도교육이 이루어지는 건 다른 정신들과의 접촉 안에서, 다시 말해서 독서 속에서다.’(P85)

 



‘(중략) (Beaune)같은 도시를 거닐면서 느끼는 작은 행복, 우리는 라신의 비극이나 생시몽의 책 한가운데를 배회하면서도 이 같은 행복을 느낀다. 이 작가들의 책이 사라진 언어의 모든 아름다운 형태를 간직하고, 더 이상 존재하지 않는 관습이나 느끼는 방법들에 대한 기억을, 현재의 그 무엇과도 닮지 않은 과거의 흔적들을, 시간이 훑고 지나면서 색채를 더욱 아름답게 만든 과거의 완강한 흔적들을 간직하고 있기 때문이다.’(P90)

 



오래도록 어린 시절의 독서의 기억과 독서에 대한 성찰이 이어진다. 독서와의 우정을 논하는 부분은 감동적이고 아름답기까지 하다. 프루스트의 글을 읽다 보면 헤매기 일쑤다. 문장을 따라 읽다 보면 도대체 끝이 어디일까 확인하게 된다. 이 글은 그의 대작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를 예고하는 글이라고 했다. 존 러스킨의 책에 쓰는 서문인데도 자신이 생각하고 있는 독서에 대한 이야기를 끝도 없이 쏟아놓는다.

 



한 권의 책을 읽고 시간이 지나면 점점 기억에서 희미해진다. 프루스트가 책을 대하는 자세를 배워야 할까. 그는 작품을 창조한 정신이 그 작품에 담아낸 아름다움만 우리를 위해 품고 있는 것이 아니라고 했다. 훨씬 더 감동적인 다른 아름다움도 받아들이는데, 그것들의 재료와 쓰인 언어가 삶의 거울과 같다는 사실에서 오는 아름다움이라고 말했다. 후루룩 읽고 잊어버리는 보통의 독자와 다르지 않은가. 더 이상 존재하지 않는 관습에 대한 향수, 기억과 지나간 시간의 흔적은 프루스트의 작품에 잘 드러나는 주제다. 프루스트의 글은 음미하며 반복하여 읽지 않으면 문장속에서 헤매다가 허우적거리게 된다. 그래서 손바닥만한 책이지만, 프루스트를 애정하는 독자가 아니고서는 읽다가 덮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20세기 소설의 혁명”, “소설이 도달할 수 있는 극한이라고 평가되는 잃시찾 시리즈에 도전하고 싶은 독자라면 프루스트의 독서관을 이해하는데 많은 도움이 되는 글이라고 생각한다. 이 글을 읽으면서 프루스트의 문학에 대한 감수성이 참으로 대단하다는 것을 느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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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크pek0501 2023-06-11 23:42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저에게 책은 늘 가까이에 있는 친구 같아요. 제 곁을 떠나지 않는. 손만 뻗으면 빠져 들 수 있는.
책이 없었다면 무슨 재미로 살았을까 생각해 보게 되어요.

모나리자 2023-06-13 16:29   좋아요 0 | URL
네, 저도 공감하는 바입니다. 그냥 숨쉬는 것처럼 어렸을 때부터 책은 친구였지요.^^
오늘도 좋은 시간 보내세요. 페크님.^^
 

 처음 옷이 나에게 왔을 때는 맨살에 입으면 거칠거칠한 질감이 그대로 느껴지는 옷이었는데 매일 입고 가끔은 입은 채로 잠들기도 하며 어느덧그 옷은 메리노울로 뜬 옷처럼 부드러워졌다. 이 계기로 러스틱하고 양양한 실로 뜬 옷이 더 좋아졌다. 세월과 함께 길들여 입는 옷이라니 너무 멋지지 않은가? - P95

다시 도전해도 못하겠으면 또 잠시 치워 두고 할 수 있는 다른 걸뜨면 된다. 꼬불꼬불 라면처럼 말린 실은 스팀을 주면 되니, 내가 잃을 건 시간 정도밖에 없다. 하지만 그 시간 역시 결코 낭비한건 아니다. 결국은 그런 경험들이 모여서 내공이 쌓이고 언젠가는 할 수 있게 된다. 그러니 우리는 지금 점을 찍는 거라고 생각하고, 할 수 있을지 없을지 걱정할 시간에 일단 도전해보기를 바란다.

저스트 두 잇! - P141

함뜨를 운영하면서 정말 많은 니터들을 만날 수 있었고 감사하게도 다양한 직업, 연령대의 백그라운드를 가진 여러 사람들의 이야기를 들어볼 수 있었다. 그들이 사람들이 흔히 생각하는 여성스러운 성격이든 그렇지 않든 그런 건 별로 중요하지 않았다. 내가 만난니터들은 모두 뜨개로 인해 많은 위로를 받았고 누구보다 뜨개에 진심이었다. - P216

은퇴 후 한적한곳에 가서 조용한 노후를 보내고 싶어 하는 남편과 달리, 나는 뜨개를 하기 전까지는 단 한 번도 한적한 곳에서 조용히 노후를 보내고싶다는 생각을 해본적이 없었다. 하지만 드라마를 보면서 부러움을 넘어 나도 정말 저런 노후를 보내도 괜찮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뜨개가 정말 나에게 많은 영향을 미치고 있다는 걸 다시 한번깨닫는 순간이었다. - P2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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