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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년이 온다 - 2024 노벨문학상 수상작가
한강 지음 / 창비 / 2014년 5월
평점 :
이 책을 무더위가 극심했던 지난여름 병원에서 읽기 시작했는데 이제야 리뷰를 쓴다. 남편이 큰 수술을 하게 되어 간병을 하면서 휴게실에서 틈틈이 띄엄띄엄 읽다가 오래 걸렸다. 마음 편하게 집에서 책을 읽을 수 있다는 건 얼마나 행복한 일인지. 한강 작가의 책은 2016년 인터내셔널 부커상을 받은 『채식주의자』로 처음 접했다. 사실 읽다가 그만 두었다. 한참 시간이 지났으니 다시 읽어봐야겠다. 『소년이 온다』는 2014년에 출간된 작품으로 한국인 최초 아시아 여성 최초로 2024년 영예로운 노벨문학상을 받았다. 노벨문학상 선정이 된 동시에 온라인 서점과 오프라인 서점가를 뜨겁게 달구었을 만큼 독자들의 반응도 대단했다. 워낙 알려진 작품이라 줄거리를 언급하기보다는 이 책을 읽으면서 가졌던 내 생각을 정리해보는 것이 좋을 것 같다.
이 작품을 읽으면서 작년 여름 읽은 공선옥 작가의 『내가 가장 예뻤을 때』가 떠올랐다. 두 작품 모두 5ㆍ18 광주 이야기를 다루었다. 하나같이 어린 학생이거나 청춘들 그리고 민중들이 국가의 폭력에 저항하면서 죽어간 고통스러웠던 시간을 담고 있다. 무엇보다 『소년이 온다』는 국가의 폭력이 얼마나 무자비했는지 더 구체적으로 묘사하고 있어서 섬뜩한 마음이 들었고 이게 인간인가, 하는 물음과 한숨이 나와 한참씩 쉬어가며 읽어야 했다. 내게 특별한 인상을 주었던 부분은 소설을 쓰는 방식이다. 보통 소설에서 볼 수 없는 묘사 방식인데 마치 각각 등장인물의 처절한 증언과 고백을 전해주는 듯한 진심 어린 문장이었다. 그들 마음속 저 밑바닥에 들어가 앉아서 바로 그 사람의 영혼이 되어 받아쓰기하는 느낌이랄까. 정말 놀라웠다. 아마도 이건 한강 자신만의 독특한 글쓰기 방식이 아닐까 싶다. 아니면 무고한 민중이 겪어야 했던 처절한 고통과 역사의 아픔을 가장 잘 알리는 방법을 연구하다가 실험해 본 글쓰기 일지도 모르겠다. 내가 전에『채식주의자』를 읽다가 내려놓은 것은 작가가 작품에서 말하고자 했던 의미를 제대로 이해하지 못해서였던 것 같다. 읽어나가는 과정에서 돌을 씹는 듯 불편한 마음이 들어서 덮고 말았다.
이야기는 1980년 5월 18일부터 열흘간의 광주 상황을 묘사하고 있다. 열다섯 살 소년 동호의 이야기를 담은 1장 <어린 새>로 시작하여 동호 어머니가 어린 동호와의 추억을 돌아보는 시선으로 쓴 6장 <꽃 핀 쪽으로>에서 마무리된다. 많은 부분을 소리 내어 읽어 보았다. 노벨문학상 선정 이유로 ‘시적 산문’ 같다고 했던 호평이 있었는데 그 말에 너무나 공감했다. 소설가의 감정은 최대한 자제한 채 등장인물이 처한 환경과 감정을 있는 그대로 보여주는 묘사가 정말 시처럼 느껴졌다.
‘죽음은 새 수의같이 서늘한 것일지도 모른다고 그때 생각했습니다. 지나간 여름이 삶이었다면, 피고름과 땀으로 얼룩진 몸뚱이가 삶이었다면, 아무리 신음해도 흐르지 않던 일초들이, 치욕적인 허기 속에서 쉰 콩나물을 씹던 순간들이 삶이었다면, 죽음은 그 모든 걸 한번에 지우는 깨끗한 붓질 같은 것이라고.’(p122)
‘나는 싸우고 있습니다. 날마다 혼자서 싸웁니다. 살아남았다는, 아직도 살아 있다는 치욕과 싸웁니다. 내가 인간이라는 사실과 싸웁니다. 오직 죽음만이 그 사실로부터 앞당겨 유일한 길이란 생각과 싸웁니다. 선생은, 나와 같은 인간인 선생은 어떤 대답을 나에게 해줄 수 있습니까?’(p135)
계엄군에 맞서 싸우다 잔혹한 폭력을 당하고 싸늘한 주검이 되었거나 극렬분자로 낙인을 찍히고 사형을 언도 받았지만 운 좋게 살아남은 자의 트라우마도 강렬했다. 세월이 흘러도 지워지지 않는 고통스러운 나날들이었다. 감옥에서 나와서도 술 없이는 잠을 못 이루었던 영재는 죽으려고 손목을 여섯 차례나 그었고 결국엔 정신병원에 들어가게 된다. 죽이고 싶은 사람이 있다고 말하는 진수 등 부모도 자식을 지키지 못했다는 자책으로 고통스럽다. 작가의 소설 서술 방식이 왠지 낯설게 느껴졌는데 다 읽고 나면 등장인물들의 관계가 연결되고 마치 모자이크를 완성한 것처럼 환해진다.
읽는 내내 먹먹한 기분과 분노가 일었다. 채식주의자에 비해 잘 읽히는 작품이다. 하지만 빨리 읽기보다는 천천히 읽기를 권한다. 마음속으로 음미하듯 소리 내어 읽어 보라고 말하고 싶다. 응축된 시처럼 가슴에 와 닿을 것이다. 그리고 그들이 경험했던 고통과 트라우마를 조금이나마 공감할 수 있지 않을까. 작년 12월 우리는 또다시 계엄을 경험했다. 너무나도 비현실적이어서 처음에는 장난인 줄 알았다. 해외에 있는 아들에게 듣고 알았는데 너무 피곤한 나머지 그냥 잤다. 이튿날 아침부터 6개월 동안 뉴스와 유튜브 영상에서 눈을 떼지 못했다. 충격적인 일의 연속이었다. 지금도 마찬가지고. 역사는 되풀이된다더니. 그렇다고 해도 21세기를 살아가는 중에 이런 일을 겪게 될 줄은 몰랐다. 민중이 정치에 무관심할 때 권력자들은 좋아한다는 말도 있지 않나. 눈을 부릅뜨고 그들이 무엇을 하는지 지켜봐야 한다. 그들의 고통은 우리가 겪을 고통이기도 했을 것이다. 이 역사의 아픔 결코 잊어서는 안 된다. 오래도록 기억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