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와 디탄
사철생 지음, 박지민 옮김 / 율리시즈 / 2021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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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작품 소개를 처음 보았을 때 우리 아이들이 초등학생일 때 함께 읽었던 내게는 한쪽 다리가 있다(주대관, 송방기 공저)가 떠올랐다. 세상에... 한쪽 다리가 있다니, 읽기도 전에 제목만 보고 마음이 내려앉았던 기억이다. , , 그림에 재능이 있던 대만 어린이 주대관이 소아암으로 겨우 아홉 살의 짧은 생을 살았던 이야기다. 다리 한쪽을 절단하는 수술을 받고도 아직 한쪽 다리가 있다며 오히려 부모님을 위로하는 씩씩한 아이였다. 그것이 더 마음 아프게 하는 줄도 모르고. 그리고 처음 만나는 이 작가 사철생은 20세에 하반신 마비로 평생 휠체어 생활을 해야 했던 중국의 국민작가라는 책 소개가 호기심을 불러일으켰다. 한창 앞날에 대한 꿈으로 부풀 나이에 닥친 불행을 어떻게 헤쳐나갔을까, 궁금한 마음에 만나게 되었다.

 



책 표지는 따뜻한 동화 이미지가 떠오르는데 휠체어를 탄 주인공의 모습은 애잔함을 불러일으켰다. 중국의 가장 아름다운 현대 산문으로 꼽힌다는 <나와 디탄>을 비롯하여 중학교를 졸업한 후 문화혁명이라는 이름으로 생산대에서 7년 동안 가혹한 노동을 하다가 하반신 마비가 되기까지 이야기가 들어있는 <스물한 살, 그해> 등 여러 편의 산문이 들어있다. 다리를 못 쓰게 된 초기에 어머니에게 살갑게 대하지 못했던 것에 대한 후회, 돌아가신 후엔 어머니 등 가족에 대한 그리움 등 몇 편의 이야기 조각이 맞춰지면서 그의 삶의 여정을 엿볼 수 있었다. 이 중 몇 편을 소개해 보려고 한다.

 



나와 디탄

 

이 책을 다 읽고 밖에 나갔다. 땅을 딛고 걷고 뛰다가 두 다리를 못 쓰게 된 화자의 심정을 느껴보려고 했다. 그가 휠체어를 타게 된 날들이 길어지면서 다리의 감각을 떠올리려고 상상하는 부분이 있었다. 발을 땅에 딛는 느낌은 어떨까, 돌을 발로 차는 느낌은 어떨까, 등등... 그가 그랬듯이 땅을 딛고 뛰지 못하는 느낌은 어떤 것일까. 아무리 생각해도 알 수 없었다. 어쩌면 삶이란 옛날의 기억을 조금씩 잊어버리며 살아가는 것인지도 모른다. 얼마나 한이 되었으면 이생에서는 불구로 살 테니까 다음 생애에는 칼 루이스처럼 튼튼한 몸으로 태어나고 싶다는 그의 말에 가슴이 아려왔다.

 



두 다리가 마비가 되어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처지가 되어 휠체어에 의지하게 된 그는 황량한 디탄 공원으로 찾아간다. 몇 년을 죽음에 대해 생각하고 왜 태어났을까 생각하다가 마침내 깨닫게 된다. 한번 태어난 생명은 언젠가 죽음을 맞이하게 된다는 것을. 그런 깨달음을 얻고 15년 동안 찾아갔던 디탄 공원은 그를 삶으로 나아가게 하는 희망이었다. 거기서 만난 중년 부부, 아픈 어린아이, 노래 부르는 청년, 달리기 하는 친구 등 공원에서 만났던 사람들을 떠올린다. 늘 죽음을 생각하던 그가 비로소 살아보기로 마음먹으면서 글을 쓰기 시작하고 약간의 명성도 얻는다. 하지만 그러다가도 왜 살아야 하는가에 대한 고민은 끊이지 않는다. 그가 죽지 않았던 건 살아갈 용기를 찾도록 끊임없이 편지를 보내며 응원과 격려를 아끼지 않았던 친구들 덕분이었다고 한다. 따뜻한 친구들이 있어서 다행이었다.

 



아픔만 함께 나누다가 떠난 어머니에 대한 그리움을 회상하는 부분은 정말 안타까웠다. 그 넓은 디탄 공원에서 행여 아들이 잘못된 생각을 할까 봐 찾아 헤매다가 불안하고 초조하셨을 어머니의 마음을 뒤늦게야 헤아린다. 이처럼 이 작품에는 지난날에 대한 뒤늦은 후회와 안타까움이 가득하다. 그리고 산문이라고 해서 술술 읽히는 가벼운 문장들은 아니다. 한창 꿈과 열정으로 피어오를 시기인 스무 살에 닥친 불행으로 인해 일찍 철이 든 때문이었을까. 철학적인 사색이 담긴 물음은 묵직하게 다가오면서도 뭉클한 감동을 주었다. 우리는 왜 남의 불행한 모습 속에서 위안과 행복을 찾는 존재인지 참 아이러니할 때가 있다. 작가의 이야기를 통해서 우리는 참 많은 것을 갖고 있다는 다시금 깨달을 수 있었다. 그리고 중요한 건 지금, 현재를 살아가야 한다는 것을. 주변을 한번 돌아보고 지금 옆에 있는 사람을 잘 챙기고, ’지금행복한 시간을 보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지난날의 한때는 지나가면 그뿐이다. 돌이킬 수도 없고 결코 돌아오지 않는다.

 



작가에게 디탄 공원은 무엇이었을까. 온통 죽음을 생각하러 갔다가 내면에서 울리는 소리를 듣고 깨닫는다. 그래서 살았고 15년 동안 디탄 공원에 대한 헌사를 이렇게 마무리한다.

 



장자가 나비의 꿈을 꾼 것처럼, 그때 디탄에서 보낸 시간에 가끔 의문이 든다. 나는 디탄에 있었나? 아니면 디탄이 내 안에 있었나? 지금 나는 허공에 그어진 경계선을 본다. 그리움을 안고 그 선을 넘어 들어가면, 넘기만 하면 깨끗하고 순수한 기운이 훅하고 들어올 것 같다.

나는 이제 디탄에 없다. 디탄이 내 안에 있다.(P249)

 



 늘 죽음을 생각하면서도 자신 안에서 강렬한 삶의 의욕을 찾았기 때문이 아닐까. 인간의 다른 이름은 욕망이며 욕망을 갖는 것이 나쁜 것이 아니라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 그리고 살기 위해 글을 썼다는 것을 알게 된다. 그렇게 열정을 다해 살았던 그가 남긴 작품을 읽어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담장 아래에서의 단상

 

 담장에 대한 사색은 어릴 때 놀았던 추억의 골목에 가서 돌아본 이야기. 국수 삶는 솥에 축구공을 떨어뜨린 이야기 등 어린 시절 유치원에 대한 추억과 마음속의 담에 대한 사색으로 이어진다. 유치원에 가지 않겠다고 떼를 쓰다가 맛있는 것에 넘어간 어린 화자를 데리고 멀리 돌아온 어머니의 작전을 늦게 눈치챈 어린 화자는 높고 높은 담장이 모습을 드러내자 대성통곡을 한다. 그랬던 자신의 어린 시절을 추억하며 아침마다 잠결에 유치원에 들어가기 싫은 아이들의 울부짖는 소리가 들린다는 장면에서 웃음이 났지만, 웃고 넘길 수 없는 기억이 되살아났다. 큰 아이가 다섯 살 때 미술학원에 학원에 안 가겠다고 엄청 떼를 쓴 적이 있었다. 작은 아이는 온몸에 두드러기가 나서 피부과에 가려고 함께 나왔는데. 결국 학원에 가지 않았고... 나한테 혼나고 그 하루는 엉망이 되었다. 아이가 가고 싶지 않다면 이유가 있었을 텐데, 그런 걸 알아보려고 하지 않았다. 학원 하루 빠지는 게 무슨 큰일이라고. 그럼 우리 셋이서 맛있는 거 먹으며 재미있게 놀자, 했어도 되었을 텐데 그러지 못했다. 어른이든 아이든 인생의 어느 한때는 다시 돌아오지 않는 법인데, 그땐 왜 그걸 몰랐을까. 두고두고 마음에 걸리는 일이 되었다.

 



 담장에 대한 추억은 물리적인 모습에서 심연 속으로 걸어 들어간다. 담이 보이지 않는 곳으로 가기 위해서 바다, , 사막까지 찾아 떠나지만 우리는 담에서 벗어날 수 없다고 말한다. 담은 언제나 우리의 마음속에 있다고. 그 속에서 두려움을 쌓고 그리움을 불러일으킨다고 말이다.

 



 사실 비밀 자체가 이미 담이다. 뱃가죽과 눈꺼풀도 모두 담이고, 거짓 미소와 거짓 눈물도 담이다. 다만 이런 담은 너무 약하고 피곤한 게 맘에 들지 않아 좀 더 내구성을 더해 보완을 강화하려고 한다. 설령 이런 마음의 벽은 쉽게 허물 수 있다고 해도, 산과 물 모두가 담이고, 하늘과 땅도 담이고, 시간과 공간도 모두 다 담이다. 시간과 공간도 담이고, 운명은 무한한 속박이고, 신의 비밀은 끝없이 이어지는 담이다. 정말로 이 비밀의 담까지 다 없애려 한다면, 어쩌면 오래 꿈꿨던 이상을 실현하게 된 것 같겠지만 기다려보라. 재미를 잃어버린 세상은 아무것도 하지 않고 그저 잠만 자고, 잠꼬대조차 할 말이 없는, 의욕이라고는 사라진 곳이 될지도 모른다.(P103)

 



 여기서 장벽이라는 의미도 된다. 우리 인간의 마음에도 벽이 있으며 인간관계, 세상일에 벽이 없을 수 없다는 말이 아닐까. 그런 벽이 거침없이 허물어진다고 해서 행복한 삶을 살 수 있는 것은 아닐 것이다. 무엇을 하려고 노력하고 성취하는 것을 잃어버린다면 재미없는 세상이 될 것이 뻔하기 때문이다. 화자도 오랫동안 담을 바라보며 죽음을 주거나 아니면 걸을 수 있는 다리를 달라고 기도를 했지만, 어느 날 노인이 부는 피리 소리에 이끌렸다가 장애라는 벽을 받아들이고 살아가라는 의미로 받아들인다. 그렇게 담과 나눈 대화는 글쓰기로 이어졌고 그를 살게 했다는 것을 알았다. 글을 쓰기 위해 살아간 것이 아니라 살기 위해 글을 썼다는 말이다.

 



기억과 인상

 

 이 이야기는 유년 시절의 기억부터 둘째 외할머니와 외할아버지 어머니, 할머니등 가족이 문화혁명이라는 역사의 굴레에서 받은 고통을 그의 기억과 인상으로 풀어내고 있다. 외할아버지에 대한 기억은 알고 싶어도 어머니의 침묵 때문에 명쾌하지 않았다. 때로는 궁금해도 당당하게 큰 소리로 물어볼 수 없는 아픔과 두려움이 깃들어 있었다. 그렇게 시대적 아픔에 맞물린 어머니, 외할아버지, 외할머니의 기구했던 삶을 반추한다. 그리고 그리움과 두려움이 뒤섞인 고향에 대한 그리움과 초등학교 시절 듣던 종소리, 어린 시절에 자주 찾았던 절 마당, 자주 꿈에 나타나는 어머니 모습, 어머니와 할머니를 떠올리게 하는 자귀나무와 해당나무의 추억으로 이어진다. 그 그리움은 아픔과 후회가 뒤범벅된 채 오랫동안 괴롭혔다. 어쩌면 인간은 살아오면서 경험한 기억과 추억으로 앞날을 살아가는 존재인지도 모른다. 그렇다면 지금을 더욱 행복하게 살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는 것이 답이라는 결론에 이른다.

 



 휠체어에 앉은 자신의 그림자를 바라보다가 그럼에도 자신이 자비 속에 있음을 깨닫고 무엇이든 써야겠다는 마음의 소리를 듣는다. 그리고 제목에 끌려서 읽게 되었다는 롤랑 바르트의 글쓰기의 영도를 만나게 된다. 그에게 있어 글쓰기의 영도는 삶의 시작점이라고 하였다. 글쓰기는 결국 찾아가는 과정이고, 영혼의 가장 처음을 바라보는 행위라고. 최근 다른 책에서도 인용된 책이라 관심 목록에 올려 두었는데 또 접할 수 있어서 반가웠다.

 



 누구나 자신 나름대로 삶을 살아가면서도 종종 삶의 의미란 무엇인가, 에 부딪힐 때가 있다. 인간이란 누구도 선택의 자유 없이 이 세상에 던져진 존재라고도 한다. 살아가면서 힘듦도 부침도 겪기 마련이다. 그런데 우리는 아무런 고난 없는 평탄한 삶을 바라지 않는가. 작가 사철생은 20세에 맞이한 시련을 처음에는 견딜 수 없었지만, 어머니를 비롯한 가족과 친구들의 사랑과 주변 사람들의 삶을 바라보면서 힘을 얻고 살아갈 의미를 찾는다. 그리고 아픔도 있었고 후회도 했지만, 그때마다 이겨내며 살아냈다. 그는 이런 나도 살았는데 당신은 어떠냐고 묻는 듯하다. 아무리 힘들어도 인생은 살아볼 만한 가치가 있으니 힘내라고 얘기해 주는 듯하다. 누구나 자신의 고통이 가장 큰 법이라고 한다. 하지만 이 작가의 인생 앞에선 그런 말을 할 수 없을 것 같다. 그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살기 위해서 글을 썼고 그 결과 현 위의 인생이 영화화되면서 전 세계에 알려진 작가가 되었고, 많은 작품이 교과서에 청소년 필독도서로 선정되었다고 한다. 많은 독자가 이 작품으로 삶의 의미를 다시 한번 되새겨 보고, 용기와 위안을 얻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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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아 2021-06-05 22:12   좋아요 6 | 댓글달기 | URL
롤랑 바르트의 다른 책 몇 페이지 읽고 놀라서 덮어놨는데,
글쓰기가 ‘찾아가는 과정‘이고, 영혼의 가장 처음을 바라보는 행위라..왠지 뭉클해요!!

모나리자 2021-06-05 22:28   좋아요 5 | URL
저도 최근 다른 책에서 자꾸 언급되는 바람에 읽고 싶어지더라구요.
영도라는 단어는 영상과 영하를 가르는 기점이고 왼쪽, 오른쪽 어디에도 속하지 않는 균형점이기에 기준점이자 시작점이라는 의미가 있다고 합니다.
작가의 해석도 멋지요~^^

새파랑 2021-06-05 23:08   좋아요 5 | 댓글달기 | URL
리뷰만 봐도 뭔가 뭉클하고 인생에 대한 교훈이 느껴지네요 ㅜㅜ

모나리자 2021-06-07 10:51   좋아요 2 | URL
네.. 정말 뭉클한 감동이었어요. 건강했던 사람이 장애를 입게 되어 더 힘들었을 것 같아요. 글쓰기를 하며 그나마 조금이라도 위안을 받았을 것 같아요.
새 한주도 즐거운 시간 되세요. 새파랑님.^^

그레이스 2021-06-06 08:18   좋아요 6 | 댓글달기 | URL
장자가 나비의 꿈을 꾼것처럼 디탄공원에서의 그 시간에 가끔 의문을 품는다는 작가의 말에 공명합니다
꼭 읽어봐야겠어요^^
감사합니다 ~

모나리자 2021-06-07 10:53   좋아요 3 | URL
네. 15년 동안이나 찾았던 공원이고 그러면서 마음도 강해지고 성장하지 않았나 싶어요.
감사합니다. 그레이스님~
새 한주도 화이팅 하세요~^^

scott 2021-06-06 00:25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현 위의 인생≫ 작가였군요!
[비밀 자체가 이미 담이다. 뱃가죽과 눈꺼풀도 모두 담이고, 거짓 미소와 거짓 눈물도 담이다.마음의 벽은 쉽게 허물 수 있다고 해도, 산과 물 모두가 담이고, 하늘과 땅도 담이고, 시간과 공간도 모두 다 담이다. 시간과 공간도 담이고, 운명은 무한한 속박이고, 신의 비밀은 끝없이 이어지는 담이다]
우와 사철생 작가의 인생 철학에 탐복 합니다.

모나리자 2021-06-07 10:55   좋아요 3 | URL
그쵸? 어디든 담이 존재한다는 철학적 통찰 멋졌어요.
나중에 영화도 챙겨 봐야겠어요.
새 한주도 즐겁게 화이팅 하시길 바래요.^^
 

어린 시절의 모든 놀이 속에 그 어두운 그림자가 있었고, 모든 꿈속에서 그는 떠들썩했다. 나는 철이 들자마자 그 두려움을 느꼈고,
모든 소년이 품는 기대 속에, 모든 동경 속에 그 검은 날개가 퍼덕거렸다. 햇빛 속에도 잠복처럼 처량함이 있었고, 바람 속에도 그의 어두움이 함께했다. 외할머니는 전전긍긍했고, 어머니는 아무 말도 하지 못했고, 할머니와 아버지는 주변을 의식하며 소리를 낮추었고, 둘째 외할머니는 알 수 없는 두려움에 떨었다.……..
- P180

외할머니는? 그분의 행복과 바람은 어디에 있을까? 어린 소녀가여자가 되고, 그가 오고, 혼인을 하고, 그의 아이들을 낳고…… 그다음에 그를 자주 볼 수 없어도 여전히 바느질을 하며 세월을 보냈다.
그가 밖에서 무엇을 하는지도 몰랐는데 갑자기 총성이 들렸다. 그녀는 공백의 세계에서 늘 살아 있는 듯 생생한 공포와 굴욕을 느꼈고, 그것은 죽어서도 쉽게 벗어나기 어려웠다.
- P182

전에 그 종소리는 어디로 갔을까? 유일하게 확신할 수 있는 것은그 소리는 기억과 더불어 미래로 갔다는 것이다. 종소리는 그렇게 오랜 시간을 떠돌았고 나는 꿈속에서 그 소리를 자주 들었다. 은은하게울려 퍼지는 종소리를 들었고, 종을 흔들며 신중히 걷던 할아버지를보았다.  - P213

장자가 나비의 꿈을 꾼 것처럼, 그때 디탄에서 보낸 시간에 가끔의문이 든다. 나는 디탄에 있었나? 아니면 디탄이 내 안에 있었나?
지금 나는 허공에 그어진 경계신을 본다. 그리움을 안고 그 신을 넘어 들어가면, 넘기만 하면 깨끗하고 순수한 기운이 훅하고 들어올 것같다.
나는 이제 디탄에 없다. 디탄이 내 안에 있다.
- P2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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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cott 2021-06-05 00:4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 책 어디지 모르게 슬픔이 ( ͒ ́ඉ .̫ ඉ ̀ ͒)
모나리자님 주말 멋지게 보내시길 바랍니다 ^ㅅ^

모나리자 2021-06-05 20:20   좋아요 1 | URL
네, 그랬어요. 살기 위해서 글을 썼고 세계적인 작가가 되고 중국의 국민작가라고 하네요. 이미 고인이 되어서 더 안타까운...
남은 주말도 멋진 시간 되세요. 스콧님.^-^!
 

내 몸은 이미 오래전에 침대에 고정되고, 휠체어에 고정돼 있지만내 마음은 언제나 밤이면 야행을 나간다. 밤이면 불구의 몸에서 벗어나고, 대낮의 마법을 벗어나고, 현실을 떠나 속세의 소란함이 잠시 멈춘 밤의 세계를 여행한다. 모든 꿈꾸는 자들의 말을 듣고, 속세의 역할을 벗어던진 떠도는 영혼들이 밤의 하늘과 광야에서 또 다른연극을 하는 것을 지켜본다.  - P148

그때 알았다. 내가 이 세상에 왔을 때 들었던 소리가 바로 이 성당의 종소리였음을, 바로 저 뾰족한 종탑에서 울려 퍼지는 소리임을.
저녁노을은 더욱 짙어져 종탑 꼭대기에 햇빛은 이미 사라졌다. 숲에 바람이 불자 참새들은 바람을 따라가고 까치들은 기쁘게 울었다.
종소리는 침착하고 평온하게 오래 울려 퍼졌고, 은은하게 흩날리며저녁노을과 이른 달과 함께 이어져 하늘의 깊은 곳까지 퍼져 나갔다.
어쩌면 땅의 끝까지도.….
- P155

저녁만을 기다렸다. 나는 꾀병을 앓기 시작했고, 어떡하든 집에서 할머니와 함께 있으려고 온갖 방법을 생각해내야 했다. 지금도 나는 유치원 문 앞에서 들어가지 않으려고 우는 아이들을 보면 조마조마하다. 저 유치원에서도 혹시 그처럼 무서운 놀이가 있는 건 아닌지 상상한다. 그 생각만 하면 밝은 대낮에도 어디선가 귀신이 배회하는 것처럼 으스스해진다.
- P16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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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니콜라 테슬라Nikola Tesla* 같은 사람들에게서도 공통적으로나타나는 능력이었다. 테슬라는 자서전에서 "나는 어떤 생각이 떠오르면 머릿속에서 즉시 그것의 기본모양을 상상으로 그려본다. 상상속에서 그것의 구조를 바꿔보기도 하고 한번 작동을 시켜보기도 한다. 중요한 것은 내가 실물이나 형체 없이 그 모든 것을 상상 속에서한다는 것이다" 라고 적고 있다.
- P85

극히 소수의 사람들만이 다른 사람들보다 뛰어난 형상화능력을타고나며, 대부분의 사람들은 연습을 통해 능력을 키울 수 있기 때문이다. 연습을 많이 하면 할수록, 수많은 발명가와 수학자, 물리학자.
화가, 작가, 무용가들이 해왔던 시각형 사고 과정에 참여할 기회가많아지고 그것에 대해 더 많은 것을 이해하게 될 것이다.
- P88

노벨상 수상자를 포함한 40명의 과학자들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우리는 예술적 조예와 시각적 사고능력, 과학적성취도 사이에 상당히 밀접한 관련성이 있음을 발견했다. 과학분야에서 형상화를 잘하는 사람은 예술활동에서도 형상화능력이 뛰어나고, 이런 경우 어느 한쪽의 활동이 다른 쪽 활동에 도움을 준다.
- P89

많은 소설가들 역시 시각형 사고자들이다. 찰스 디킨스(chearles picketis는 자신의 소설이 머릿속으로 ‘보았던‘ 것을 글로 적은 것에불과하다고 밝혔다. 


- P89

새커리는 책을 쓰기 위해 글뿐만 아니라 그림으로메모를 했고 브론테 자매나 생텍쥐페리 Saint-Exupéry, 에드워드 리어 Edward Lear, 조지 뒤 모리에, 윈드햄 루이스, D.
H. 로렌스와 J. R. R. 톨킨도 마찬가지였다.  - P9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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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곤충학자 칼 폰 프리시 Karl von Firisch는 자신의 관찰능력이란대단한 것은 아니고 단지 움직이지 않고 돌 틈에 몇 시간 동안 누운채로 생물을 끈질기게 주시하는 힘일 뿐이라고 말한다. 그의 말에따르면 행인들이 무신경하게 못 보고 지나치는 순간, 세계는 참을성많은 관찰자에게 그 놀라운 모습을 드러낸다고 한다. 벌이 추는 춤을 언어로 보고 해독한 성과 역시 그가 가진 관찰의 힘에서 비롯된것이다.
- P63

관찰하는 것과 관찰한 것을 일정한 방식으로 표현하는 것은 마음이 하는 일이다. 만일 우리가 무엇을 주시해야 하는지, 또 어떻게 주시해야 하는지를 알지 못한다면 우리는 주의력을 집중시킬 수가 없다. - P72

그래서 관찰‘은 ‘생각‘의 한 형태이고 생각은 관찰의 한 형태다.
결국 관찰행위의 목적은 감각적 경험과 지적 의식을 가능한 한 가깝게 연결하는 데 있다.  - P74

많은 과학자들 역시 관찰력을 기르는 방법의 하나로 미술을 들고있다. 그들은 "그리지 못한 것은 눈으로 보지 못한 것이다" 라는 논지를 계속 반복하고 있다.  - P76

물건들을 수집하는 것, 이를테면 우표, 동전, 곤충, 단추, 야구카드, 엽서, 책, 사진, 인쇄물, 그림 같은 것들을 모으는 것도 시각적 관찰력을 증대시키는 아주 좋은 방법이다. 진정한 수집가가 되려면 물건의 질과 종류의 차이를 잘 감별하는 능력이 필요하다. - P7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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