잊기 좋은 이름
김애란 지음 / 열림원 / 2019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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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김애란 소설가를 이 책으로 처음 만났다. 한국 소설을 한동안 읽지 않아서. 늦게나마 김애란 작가의 책을 만난 건 번역 수업 덕분이다. 번역 공부는 거의 국어 공부라 할 정도로 많은 부분을 차지한다. 좋은 책, 좋은 소설을 많이 읽어야 한다고 했다. 읽어야 할 책 목록에 올려 두고 설레는 마음으로 기다리고 있다.

 



워낙 유명한 작가라서 책 제목 정도는 알고 있었는데 생각한 것보다 꽤 젊은 작가였다. 한국일보문학상, 이효석문학상, 김유정문학상 등 많은 상을 받은 상복도 많은 작가였다. 이 산문집은 작가를 있게 한 이름들, 작가와 함께한 이름들을 주제로 썼다. 1부 나를 부른 이름 2부 너와 부른 이름 3부 우릴 부른 이름들 세 개의 에피소드가 들어있다.

 



작가의 어린 시절 이야기부터 활발한 작품 활동을 하고 인정받아서 스코틀랜드 에든버러에 있는 인문고등연구소(LASH)에 초대받아 머물렀던 화려한(?) 경험까지 담고 있다. , 정말 부럽군, 했다. 한 사람의 작가가 탄생하기까지 추억이 깃든 장소와 에피소드를 엿보는 일은 늘 뭉클한 감동을 주는 것 같다. 작가의 어머니가 20년 넘게 손칼국수를 팔았던 가게 맛나당은 작가에게도 큰 의미를 부여한 곳이었다. 작가로서의 기질을 키우고 꿈을 꾸게 한 곳이 아니었을까. 김애란 작가는 자신의 정서가 거기서 만들어졌다고 했다. 수많은 손님을 만나고 거기서 들려오는 이야기들이, 그 분위기가 작가의 가슴에 차곡차곡 스며들지 않았을까. 어머니는 그 돈으로 세 딸을 가르치고 생활을 꾸리고 집도 장만했단다. 그곳은 어머니가 경제 주체이자 삶의 주인으로 자의식을 갖고 꾸린 적극적인 공간이었다. ‘맛나당은 작가의 삶을 살 수 있도록 팔 할의 힘이 되었고 나머지 이 할은 사범대학에 가라는 어머니의 뜻을 거스르고 예술학교에 들어간 것이란다. 주체적인 삶을 사는 어머니를 본받아서 자신이 선택했고, 그것이 인생을 바꾸었다고.

 



가족을 위해 열심히 살아오신 아버지와 어머니의 삶, 두 분의 첫 만남과 사랑 이야기도 재미있고 진한 가족애와 행복한 정경이 전해져 왔다. 또 지인과의 우정, 읽은 책을 소개하며 들려주는 소소한 감상 이야기도 좋았다. 나도 전에 읽다 만 적 있던산해경을 접할 수 있어서 반가웠다. 이 책은 원래 중국의 신화집 또는 역사서, 지리서 고대 동아시아 풍습과 종교를 다룬 책이지만 문학 텍스트로 읽는다면 창작자에게 먹을 만한 플랑크톤이 풍부한 심해라고 알려 주었다. 귀한 보석을 주운 기분이었다. 선후배 작가와의 여행 이야기도 부럽기는 마찬가지였다. 글을 쓰는 동료로서 함께 보고 공감했던 시간은 무엇과 비교할 수 없는 소중하고 충만한 시간일 것이다.

 



글을 쓸수록 아는 게 많아질 줄 알았는데 쥐게 된 답보다 늘어난 질문이 많다. 세상 많은 고통은 사실 무수한 질문에서 비롯된다는 걸, 그 당연한 사실을, 글 쓰는 주제에 이제야 깨달아간다. 나는 요즘 당연한 것들에 잘 놀란다. 그리고 앞으로도 그러려 한다.’(P124)

 



우리의 삶은 하나하나 문제를 해결하는 과정이라고 했던가. 한 가지를 풀고 나면 또 한 가지가 우리에게 닥친다. 글 쓰는 삶이나 보통의 삶도 마찬가지가 아닌가 싶다. 당연한 것이 당연한 것이 아니었음을 깨달을 때 우리는 감사를 말하게 된다. 당연한 것들에 놀라는 삶, 그러려고 하는 마음의 다짐이 있을 때 우리 삶은 한층 행복해지지 않을까.

 



그러니 만일 제가 그때로 돌아간다면 어린 제게 이런 말을 해주고 싶습니다. 지금 네가 있는 공간을, 그리고 네 앞에 있는 사람을 잘 봐두라고. 조금 더 오래 보고, 조금 더 자세히 봐두라고. 그 풍경은 앞으로 다시 못 볼 풍경이고, 곧 사라질 모습이니 눈과 마음에 잘 담아두라 얘기해주고 싶습니다. 같은 공간에서 같은 사람을 만난대도 복원할 수 없는 당대의 공기와 감촉이 있다는 걸 알려주고 싶습니다.’(P133)

 



역시 작가다운 통찰이 들어있는 대목 같다. 이 글은 작가가 창비 50돌 축사를 맡게 되어 쓴 축사의 일부인데 너무나 공감이 가는 문장이라 소개해 본다. 작가가 태어나 처음 가보았던 창비 출판사, 마포 사무실을 떠올리며 감개무량에 젖는다. 다시 올 일 없을 줄 알았기에 대충 보고 말아서 기억도 나지 않는 그곳. 그 순간을 소중하게 기억하려고 하지 않았던 것을 아쉬워하며 하는 얘기였다. 몇 달 전부터, 자꾸만 가보고 싶은 곳이 떠올라 가봐야지 벼르고 있던 내 마음을 들킨 것 같았다. 내가 20대 시절에 다닌 직장이 있던 동네이다. 언제 한번 가보자고 작은 아이에게 말했다. 벌써 30년도 더 지났는데 그곳은 어떻게 변화되었을까. 김치찌개가 끝내주던(?) 식당이 있던 골목, 그 뒤편에 수녀원이 있던 동네였다. 지금이라면 휴대폰으로 모든 걸 담을 수 있지만, 그 시절은 온통 아날로그 세상이었다. 그때 함께 했던 친구들, 가게 아줌마들, 그들의 떠들썩한 웃음소리가 새삼 그립다. 일찍이 아파트촌으로 뒤바뀐 지 오래여서 그 풍경은 온데간데없겠지. 자세히 보고 기록해 둘걸. 그때는 그곳을 벗어나고 싶은 마음뿐이어서 미처 생각지 못했다.

 



이 산문집을 읽은 계기로 김애란 작가와 조금 친숙해진 느낌이다. 에피소드 중에는 작품을 쓰면서 기록해 두었던 창작 노트도 들어있다. 소설 한 편을 완성하고 나면 인물들이 작가에게서 떠난다고 했다. 가장 좋아하는 소설 속 인물은 난장이가 쏘아올린 작은 공에 나오는 신애라고 했다. ‘쪼그려 앉은여자 신애. 한동안 잊고 살았다고 했다. 이렇게 다른 작가의 작품 속 인물을 만나면서 영감을 얻기도 하고, 자신의 작품 속에 그려 넣은 인물들은 분신이나 마찬가지로 애착이 많을 것이다. 내가 가장 좋아하는 소설 속 인물은 누구였더라. 막상 떠오르지 않는다. 내가 소설을 쓰는 사람이 아니어서였을까. 생각해 본다. 어렸을 때부터 나와 만나고 스쳐 지나간 이름들은 얼마나 될까. 무수한 이름들이 머릿속에서 맴돈다. 앞으로 내 발길 눈길 닿는 곳은 좀 더 세심하게 보고 기록하고 싶은 마음이 생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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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7-25 12:30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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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7-29 23:20   URL
비밀 댓글입니다.
 
덜 먹고 우직하게 달려라 - 기자의 집요함으로 찾은 단 하나의 건강 습관 좋은 습관 시리즈 39
김고금평 지음 / 좋은습관연구소 / 2024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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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은습관연구소의 습관 시리즈 39번째 책이다. 덜 먹고 우직하게 달려라는 머니투데이 기자로 일하고 있는 김고금평 저자가 2022423일부터 20231028일까지 머니투데이(온라인판)에 연재한 중년아재의 건강일기칼럼을 바탕으로 썼다. 30대 후반에 노안, 40대 초반 오십견, 40대 중반에 전립선염, 고지혈증, 50대 초반 당뇨 전단계 판정을 받은 저자가 50세부터 3년 동안 실천한 건강 찾기 여정을 담고 있다. 메모하고 기록하는 것은 건강관리에서도 무척 효과적이라는 것을 새로이 알게 되었다.

 



메모 차원의 단순한 기록이 아니다. 하루하루의 운동 기록과 식단 관리에 얼마나 많은 정성과 공을 들였는지 엿볼 수 있다. 3년 넘게 의학 담당 기자를 한 저자답게 풍부한 의학 상식과 함께 생체 실험(?)이라고 할 정도로 집요하고 상세한 실천 기록을 들려주고 있어서 더욱 생생하고 재미있게 읽을 수 있다.

 



100세 시대의 화두는 웰빙이 아닐까. 건강하게 오래 살고 싶은 것이 인지상정이다. 그런데 나이를 먹음에 따라 노화가 찾아오며 없던 질병이 생기기도 한다. 대개 사람들은 큰 병은 아닐지라도 한두 가지씩 질병이 있거나 미병 단계에 있는 경우가 많을 것이다. 모르는 사이에 건강에 좋지 않은 생활습관과 식습관이 축적된 결과일 것이다. 하지만 같은 나이라도 건강하고 젊어 보이는 사람이 분명히 있다. 건강 문제도 습관을 바꾸고 노력하는 만큼 달라질 수 있다는 희망을 보여주었다. 하지만 운동과 다이어트만큼 끝까지 실천하기 어려운 것이 또 있을까. 그런 점에서 저자의 건강 찾기 실천 프로젝트는 정말 대단하다고 생각된다. 여러 실천 사례 중 몇 가지 소개해 보려고 한다.

 



커피 한잔으로 하루를 시작하고 점심을 먹은 후 반드시 커피를 마셔야 개운할 정도로 누구에게나 사랑받는 기호품이 커피다. 커피는 건강에 이롭다, 또는 해롭다는 등 끊임없는 논란거리가 자주 기사에 오르내린다. 이 책에서도 나쁜 콜레스테롤의 주범이 아메리카노라는 얘기가 나온다. 커피 한잔에 카페스톨이 4mg 들어있는데 이것이 콜레스테롤 수치를 1% 높인다는 연구 결과가 있다고 한다. 미국 베일리 의대 연구팀은 카페스톨은 인간이 먹는 음식 중 가장 강력하게 콜레스테롤을 상승시키는 물질이라고 했다. 그럼 커피를 마시지 말아야 할까. 콜레스테롤을 높이지 않는 방법은 없는 걸까. 에스프레소 머신은 고온압착 방식이어서 카페스톨 생성을 막을 수 없다고 한다. 콜레스테롤 영향을 가장 적게 받는 방식은 알맹이로 된 인스턴트 커피라고 한다. 하지만 건강두 가지를 챙긴다면 핸드드립방식이 좋다. 세계에서 가장 많이 커피를 소비하는 나라는 핀란드로 심혈관계 질환이 가장 많다고 하는데 역시 상관관계가 있는 것 같다. 건강에 관한 정보는 새로운 연구 결과에 따라 달라지기도 하니 과하지 않게 적당히 즐기는 지혜가 필요한 것 같다.

 



음식 외에도 건강을 위해 중요한 것이 운동이다. 저자는 만보 걷기, 달리기, 등산, 맨발 걷기 등 다양한 운동을 실천하며 기록했다. 특히 목 디스크를 앓으면서도 매일 한 시간씩 걷기를 실천하여 6주 만에 통증이 씻은 듯이 사라졌다는 예는 신기하고 놀랍다. 반면 운동의 역설 얘기도 흥미로웠다. 매일 근육 운동을 할 때보다 주 3회를 했을 때 근육 생성에 더 도움이 된다고 한다. 동물 실험 사례이긴 하지만 격일 운동을 한 그룹이 매일 운동을 한 그룹보다 상대적으로 근육이 더 커졌다는 논문 자료를 들어 설명하고 있다. 운동을 열심히 하겠다고 다짐하고 하루 이틀 빼먹다가 작심삼일이 되는 경우가 많은데 너무 운동하는 것에 집착하지 않아도 된다는 점에서 왠지 위안이 된다.

 



이밖에도 수면 시간이나 수면의 질은 건강한 몸을 유지하는데 중요한 요소이다. 흔히 잠을 줄이고 일찍 일어나는 것을 부지런함의 미덕으로 여기지만 건강에는 악영향을 끼친다고 한다. 12시 이전에 잠자리에 드는 것이 좋으며 7, 8시간 충분히 자야 좋다고 한다. 먹거리 문제도 여러 주장이 많다. 채식이 좋다, 고기를 멀리해야 한다는 등 의견이 많지만 개인의 체질마다 달라서 딱 떨어지는 공식 같은 건 없다고 생각한다. 지중해 식단이 좋다고 하지만 전 미국 국무장관 키신저는 육식 애호가였으며 100세까지 살았다 한다. 운동, 음식, 수면 등 건강에 좋은 습관을 얼마나 잘 실천하는가에 달려있다고 생각한다. 소식이 건강에 좋다는 것은 널리 알려져 있다. 하지만 다양한 메뉴와 맛있는 먹거리가 쏟아지는 요즘에 그 유혹을 이겨내기도 힘들다. 하지만 건강한 몸을 회복하기 위해서는 선택할 수밖에 없다. 저자가 실천한 건강 찾기 프로젝트의 핵심은 제목에 나와 있는 것처럼 건강한 음식으로 식단을 차려 조금 덜 먹고 많이 움직이는 습관, 그것을 꾸준히 반복하는 것에 건강의 비결이 있다는 얘기다.

 



저자가 건강을 회복하기 위해 전력을 기울이며 실천하고 기록한 과정을 보며 깨달은 것이 있다. 무슨 일을 하더라도 이만큼 정성과 공을 들인다면 못 할 게 없을 거라고. 좋은 습관을 꾸준히 실천하는 과정에서 원하는 성과에 다다를 것이다. 티나 실리그, 조슈아 포어 등 다수의 공저 루틴의 힘2를 언급하며 결과 중심 마인드셋성장 중심 마인드셋을 비교 설명하는 얘기가 기억에 남는다. 타인과 비교하지 않고 자신의 발전에 초점을 맞추는 성장 중심 마인드셋을 적용할 때 더 나은 나로 성장할 수 있다는 얘기다. 건강에 대한 실천과 기록이지만 어떤 일에도 적용할 수 있는 이야기다. 건강, , 취미, 공부 등에서 한층 성장하고 싶은 독자가 읽으면 좋겠다.

 

 

 


 

** 이 리뷰는 좋은습관연구소 대표님이 보내주신 책으로 작성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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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수업 천양희 : 첫 물음 작가수업 1
천양희 지음 / 다산책방 / 2015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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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다산책방 작가수업시리즈 중 하나인 천양희 시인의 산문집이다. 우리 문학사에 족적을 남긴 한국 대표 작가들의 문학적 체험과 삶을 담은 산문선 이라고 한다. 도시락 편지의 작가인 줄 알았는데 착각이었다. 천양희 시인은 이 책으로 처음 만난 셈이다. 세상에나. 나의 친정엄마와 비슷한 연배의 시인이었다. 1965년 박두진 시인의 추천으로 현대문학정원 한때등을 발표하며 등단했으며, 시집으로 마음의 수수밭, 오래된 골목, 너무 많은 입, 나는 가끔 우두커니가 된다등이 있고 산문집 직소포에 들다, 시의 숲을 거닐다등이 있다.

 



이 책에서 다루고 있는 내용은 1부 첫 물음이 내 문학의 이었다 2부 계속 써라! 뭔가 멋진 것을 찾을 때까지 3부 시는 나의 생업으로 구성되어 있다. ‘작가 수업이라는 테마로 짜여진 소제목에도 문학을 향한 열정과 절실함이 느껴진다. 천생 시인이었다. 등단 50년이 넘은 것에 비하면 그다지 많은 작품을 낸 건 아니었다. 어쩌면 시인의 완벽주의 때문이 아니었을까 생각이 들었다. 얼마나 시를 사랑하는지 시인이라는 직업에 얼마나 자부심이 큰지 시는 나의 생업이라고 말할 정도였다. 이 말에 큰 울림과 공감대가 생겼다. 나야말로 책 읽고 글을 쓰고 공부하는 일은 나의 본업이라고 생각하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시인도 이렇게나 독서를 열심히 하는구나 놀랐다. 뭉클한 감동을 주는 문장에 포스트잇을 다닥다닥 붙이고 언급해준 책을 메모하며 읽었다.

 

천양희 시인이 문학의 첫 길이 생긴 것은 초등학교 때 작문대회에서 뽑힌 동시를 보고 너는 앞으로 시인이 될 거야라고 했던 선생님의 말씀 한마디 덕분이었다. 그와 더불어 책을 좋아하고 상상력과 호기심이 많은 문학소녀의 꿈을 고이 간직하며 오직 한 길만을 걸어왔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시를 쓰는 것이 내 운명일까? 생각하다 보면 운명을 걸지 않았다면 시가 재미없었을 것이라던 박용하 시인의 말이 생각날 때가 있다. 그 말은 내가 하고 싶은 말이기도 하다. 말을 가지고 작업해야 하는 것이 시인의 운명이며 팔자는 끌로 파도 파지지 않는다고 하니, 시 쓰는 일을 내 운명이라 생각하기로 한다. 문학이 성격의 힘으로 밖에 할 수 없는 것이라면 그 성격의 힘이 바로 운명이 아닐까 생각한다. 문학은 결국 자기 구원을 위한 글쓰기다.’(p84)

 



시인정신은 평면에 굴복하지 않는 나무의 수직성과 같다. 어떤 훌륭한 시인이 있다면 그 시인의 시를 본받을 것이 아니라 그 정신을 본받아야 한다는 말을 오랫동안 옷처럼 입고 살았다. 속에서는 불꽃을 피우나 겉으론 한 줌 연기로 날려 보내는 굴뚝의 정신. 세찬 물살에도 굽히지 않고 거슬러 오르는 연어의 정신, 속을 텅 비우고도 마디가 굵어져도 굽어지지 않고 꼿꼿하게 푸른 잎을 피우는 대나무의 정신, 폭풍이 몰아쳐도 눈비를 맞아도 독야청청하는 소나무의 정신이 시인의 정신이라 믿으면서, 시마(詩魔)에 끄달리면서 궁하게 견뎌온 것이다.(p103)

 



자신이 좋아하는 일을 하며 평생을 살아간다는 것은 행복한 일이다. 하지만 어느 인생이 평탄한 꽃길만 펼쳐지겠는가. 시인의 삶도 마찬가지였다. 평생을 좋아하는 시를 지으며 살았지만, 사람으로 인해 깊은 고통을 겪었다는 얘기가 행간 곳곳에 들어있었다. 시의 정신으로 똘똘 무장한 시인이었지만 죽을 결심을 한 적도 있었다. 그럴 때마다 산으로 들어가고 작은 새싹이 움트는 생명을 보며 마음을 돌리기도 했다. 시인은 요즘 시인들의 안일함을 비판하며 쓴소리도 한다. 쉽게 쓴 시는 독자와 소통이 될지는 몰라도 시의 질을 떨어뜨리는 요인이 되므로 바람직한 일은 아니라고 했다. 소통보다는 공감할 수 있는 시여야 한다고 했다. 좋은 시를 쓰지 않고도 살아남아있고 정신이 빠져도살아남아 있음을 안타까워했다.

 



그렇다면 어떻게 하면 좋은 시를 쓸 수 있을까. 어느 분야의 글쓰기든 읽지 않고서는 불가능하다. 천양희 시인은 천 개의 시를 쓴 후에야 명시를 알게 된다고 했다. 젊어야 젊은 시를 쓰는 것은 아니라는 말도 했다. 시인에게는 나이가 있지만 시인이 쓴 훌륭한 작품에는 나이가 없는데도 원고 청탁이나 문학상마저도 자꾸 젊은 쪽으로 기울어가는 현실을 꼬집는다. 시를 쓸 때는 무엇을 어떻게 보느냐가 중요하다고 했다. 이미지가 선명해지려면 소리를 듣는 것보다 사물을 눈으로 보아야 한다고 했다. 어떻게 보느냐에 따라 인식이 달라지고 새로운 발견을 하게 된다고 말한다. 시는 설명이 아니라 표현의 대화이기 때문이다. 소설 작법에서도 본 내용인 것 같다. 설명하는 것이 아니라 눈앞에 그려지듯이 묘사를 해야 한다고.

 



시를 쓸 때 우선 본다는 것이 중요하다. 무엇이든 보아야만 느낄 수 있고 발견할 수 있기 때문이다. 본다는 것은 읽는 것과 같은 것이다. 책을 볼 때 읽는다고도 하고 본다고도 한다. 책을 읽고 느낄 수 있어야 이해할 수 있게 되고 쓸 수 있게 되는 것이다.’(p191)

 



왜 시를 쓰느냐고 물으면 주저하지 않고 잘 살기 위해서라고 대답한단다. 시가 밥 먹여주는 것도 아니고 편안하게 해주는 것도 아니지만 오로지 시를 쓰는 동안에만 행복했다. 가장 힘들었을 때는 아파서 시를 쓰지 못할 때라고 했다. 시와 소통할 때가 가장 덜 외롭고 시 외의 어떤 삶도 시인에게는 의미가 없다고 했다. 천양희 시인의 작가수업을 읽으며 요즘 시와 문학에 뜻을 둔 사람들은 얼마만큼 그것에 대한 열정을 가지고 있을까 궁금해졌다. 노시인만큼 운명처럼 여기며 절실하게 이 길이 아니면 안 된다고 생각할 정도로 진심인 사람은 얼마나 될까. 오늘날은 누구나 글을 쓰는 시대이고 글이 아니라도 미디어 영상 등 즐길 거리가 넘친다. 작가나 작가 지망생이 읽는다면 자신의 상황을 돌아보며 문학의 정신과 태도를 배울 수 있고 동기부여에도 큰 도움이 되리라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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젤소민아 2024-07-06 00:47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이달의 당선작 당선, 축하드립니다~

모나리자 2024-07-06 22:57   좋아요 0 | URL
축하의 말씀 주셔서 감사합니다~ 젤소민아님.^^!!
장마철 건강에 유의하시고 7월에도 좋은 시간 보내세요.^^
 
위반하는 글쓰기
강창래 지음 / 북바이북 / 2020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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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쓰기에 원칙이라는 게 있을까? 흔히 글을 잘 쓰려면 좋은 문장을 필사하거나 오랫동안 글쓰기 훈련을 해야 한다는 것 등이 우리에게 익숙한 얘기다. 또 하나의 예를 들자면 최근에 읽었던 책에서 말하듯이쓴다는 방법을 새로 알게 되었다. 그런데 이 책은 제목에서 짐작하듯이 고정관념으로 알고 있었던 글쓰기 방법에서 벗어나 글쓰기 원칙을 업그레이드하라고 조언하고 있다. 이 책을 쓴 저자 강창래는 20년이 넘는 출판 편집기획자 생활을 거쳐 다방면의 글을 쓰며 강연활동을 하고 있다. 저서로 요리 에세이 오늘은 좀 매울지 몰라, 한국출판평론상 대상을 수상한 책의 정신등이 있다.

 



이 책 내용의 구성은 1부 바로잡기 2부 쓰기 3부 고치기로 세 가지 주제로 서른네 가지 방법을 담고 있다. 번역 수업에서 들었던 내용과 반대되는 내용도 있어서 흥미로웠다. 한 가지 예를 들면 번역 수업에서는 한자어보다는 고유어로 쓰라고 했는데, 저자는 이 세상에 고유어(겨레말)로만 이루어진 언어는 없다면서 반박한다. 글쓰기에 완고한 원칙을 갖고 있었던 저자는 이오덕의 우리말 바로쓰기(5)를 읽고 충격을 받았다고 한다. 지금 세상은 지구촌으로 연결되어 각국의 다양한 문화와 새로운 언어는 물론 그들의 사고방식까지도 주고받는 세상이니 당연히 언어도 뒤섞일 수밖에 없다고 한다.

 



세 가지 큰 주제의 내용에서 인상 깊었던 내용을 몇 가지 소개하는 방식으로 리뷰를 하려고 한다. 각 글마다 예문을 제시, 비교하며 설명하고 있어서 머릿속에 쏙쏙 들어오고 읽는 재미도 있다. 다양한 장르의 예문을 소개하고 있어서 나중에 읽어보려고 열심히 목록을 추가하며 읽었다. 이렇게 책 읽기를 통해 다른 책을 만나가는 과정이 참 즐겁다.

 



글을 잘 쓰기 위해서 다독해야 한다는 말은 글쓰기에서 마치 진리처럼 여겨왔다. 하지만 저자는 노력할 일은 아니라면서 독서가 즐겁고 행복한 일이어서 그만둘 수 없어서 많이 읽다 보니 쓰게 되고 작가가 되는 것이라고 말한다. 즉 독서가 즐겁고 행복한 일이 되어야 한다는 거다. ‘노력하기보다는 그것을 기꺼이 즐길 때자연스럽게 좋은 결과로 이어지는 것이며, 독서는 필요조건일 뿐 충분조건이 아니라는 말도 했다. 또 필사에 대해서도 언급한다. 우리는 책을 읽다가 좋은 문장을 만나면 기록해 두거나 필사하는 습관이 있다. 그런데 무작정 따라 쓰는 것은 효과가 아주 적다고 한다. 앵무새처럼 따라 하지 말고 문장에 담긴 의미와 생각, 그것을 표현하는 방식을 완전히 자기 것으로 만들어 자신의 언어가 되어 자연스럽게 흘러나오게 해야 한다고 말한다.

 



일본식 한자어는 쓰지 말자? 라고 하는 글에서 우리말에 대한 오해도 흥미로웠다. 퀴즈를 내 보겠다. ‘토시’, ‘에누리’, ‘구라’, ‘애매하다에서 애매는 일본식 한자어일까? ! 아니다. 한국 고유어라고 한다. 이 단어들은 모두 조선왕조실록<태조실록>에 나오는 단어라고 한다. 한중일 다 같이 사용했던 단어이며 한자어에는 그런 예가 많다고 한다. 이밖에도 식사(食事), 순번(順番), 구입(購入), 월요일(月曜日), 인간적(人間的), 지불(支佛), 모금(募金), 기증(寄贈), 이유(理由), 건강(健康), 자유(自由), 장소(場所), 영화(映畫), 문화(文化) 등의 단어가 일본식 한자말이라고 한다. 평소에 자주 사용하는 말이 일본식 한자어라니 놀라웠다. 그러니 순수한 우리 고유어란 없다는 저자의 말에 매우 공감할 수 있었다. 한국어가 일본어의 영향으로 오염되었다고 말하는 사람도 있는데 이쯤 되면 무조건 비판하기보다는 열린 마음으로 알아보려는 자세를 가져야 할 것 같다.

 



더 나아가 저자는 일본식 한자어는 일본의 것이냐고 묻는다. 우리가 많이 사용하는 한자어인 교육, 학교, 교실, 국어, 과학, 사회, 헌법, 민주주의, 시민, 신문, 방송이라는 단어의 원저작자는 유럽이지만 일본이 번역을 한 단어라고 한다. 수용된 언어가 우리도 모르는 사이에 우리의 언어와 문화에 깊이 스며들어 있음을 알게 된다. 이렇게 실용적인 관점에서 이미 번역되어 유포된 한자어를 굳이 사용하지 않을 이유가 없지 않겠는가. 순수한 문화 같은 건 없다면서 뒤섞이면 풍부해지는 것이라고 매듭을 짓는다.

 



2부 내용에서는 글쓰기의 순서와 이유부터 플롯 구성하는 방법까지 다양한 예문을 제시하며 알려준다. 특히 글쓰기에 있어 자료 조사의 중요성을 저자가 쓴 서평을 예로 들어 설명하는 부분이 인상 깊게 다가왔다. 한 편의 서평을 쓰는데 관련 책과 영화까지 두루 챙겨 보면서 깊이 있는 서평을 쓰기 위해 노력을 했다는 점에 감탄했다.

 



특히 작품이라고 할 만한 글을 쓰기 위해서는 자료 조사가 절대적이다. 조정래는 장편소설을 쓰기 위해 언제나 깊고 넓게 자료를 조사한 것으로 잘 알려져 있다. 태백산맥(10)을 쓰기 위해서는 4년이 걸렸다고 한다. 그런 의미에서 작품은 자료 조사의 결과이다.’(p145~146)

 



흔히 글쓰기에 있어서 잘 아는 것을 쓰라는 말도 있지만 잘 모르는 분야라도 쓰고 싶은 마음이 있다면 얼마든지 가능하다는 얘기다. 철저한 자료 조사와 공부하려는 열정적인 태도만 있다면 말이다.

 



3부는 고치기다. 좋은 글은 여러 번 읽고 고치는 과정을 통해서 탄생한다. 좋은 편집자가 책을 만드는 과정은 수없이 읽으면서 교정하고 교열한다고 한다. 내 이름은 빨강의 오르한 파묵, 농담을 쓴 밀란 쿤데라, 세계적인 천재 중 한 사람이라는 움베르토 에코 역시 열 번이나 스무 번 고쳐 썼다는 에피소드를 얘기한다. 글쓰기 초보 저자들은 어떨까. 아마도 어떻게 고쳐야 할지 몰라서 고치지 못할지도 모른다. 스스로 고치기 어려운 초보자들에게는 같은 주제의 글을 세 번쯤 써 보라고 말한다. 이야기의 순서와 스타일, 초점을 조금씩 바꾸어 써보는 변화를 경험해 보라는 거다. 그러다 막히면 독서를 하라고 한다. 그럴 때는 자료 조사, 독서가 최고라고 한다. 다양한 글의 예시를 통해서 읽고 싶은 책도 늘었다. 새로운 보물을 발견한 듯이 관심 목록에 적어두었다. 수많은 글쓰기 관련 책을 읽어왔다. 이 책은 글쓰기 할 때 원칙은 이래야 한다고 알고 있었던 고정관념을 깨주는 책이어서 유익한 시간이었다. 어떤 규칙에서 벗어나 자유롭게 나만의 개성이 담긴 글쓰기를 할 때 좋은 글을 쓸 수 있지 않을까. 자신의 글쓰기를 한층 업그레이드하고 싶은 독자에게 권하고 싶은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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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은 시는 무의식을 취한다. 시는 체험이라는 자양분을 빨아들여꽃을 피우는 무의식이다. 그것은 빵이기도 하다. 먹어도 먹어도 허기가 가시지 않는 꿈의 빵이다. 시는 이 세계를 드러내면서 다른 세계를 창조한다. 시는 선택받은 자들의 빵이자 저주받은 양식이다." 옥타비오 파스가 활과 리라」에서 한 말이다. - P119

암 수술 후, 오른팔을 못 쓰면 왼손만이라도 연주해야겠다는 생각에서 라벨의 <왼손을 위한 협주곡>을 눈물을 흘리며 들었다는 피아•니스트 서혜경씨는 퇴원한 뒤에 맨 먼저 <호프만의 뱃노래>를 쳤는데, 오른쪽 손가락이 움직일 때의 그 감사와 환희는 기쁨의 눈물로대신할 수밖에 없었다고 고백하고 있다. 그 고백을 들으며, 나도 다시 시를 쓰는 기쁨을 눈물로 대신했던 생각이 났다. 그녀는 재활 훈련을 하며 연주 계획을 세웠다고 한다. 항암치료를 받은 지사 개월만에 건강한 사람들도 치기 어렵다는 <라흐마니노프 피아노 협주곡)을 쳤던 것이다. 이 곡은 영화 <샤인>에서 데이비드 헬프캇이 연주하다가 미쳐버린 곡이다. 서혜경의 연주가 끝났을 때 객석은 온통 눈물바다가 되었다. 그 연주는 자신만을 위해서가 아니라 병마로 인해 좌•절하고 고통 받는 환우들에게 희망의 메시지를 전하기 위해서였다고한다.  - P120

사람이 내는 소리의 가장 깨끗하고 묘한 것이 말이라면, 악기가 내는 가장 아름다운 소리는 사람의 영혼이 내는 소리다. 시를 쓸 때 손으로 쓰지 않고 영혼으로 쓰고, 피아노를 칠 때도 손으로 치지 않고영혼으로 친다면, 그 시와 피아노 연주는 누구에게라도 감동을 줄 것이다. 어떤 일에 자기를 다 바친다면 그것만으로도 그의 삶은 광채를얻는다. - P121

시를 쓰는 것과 연주를 하는 것은 영혼과 마주한다는 의미에서 서로 통한다고 생각한다.
좋은 시는 읽는 사람을 감동시키는 동시에 깊은 생각에 잠기게 하듯이, 훌륭한 연주도 사람을 감동시키는 동시에 깊은 생각에 잠기게하기 때문이다. - P1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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