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출처 : 리코짱 > <거룩한 속물들> 오현종 저자 만남 후기
4월 17일 토요일 신촌 엔제리너스 커피 4층에서 책 <거룩한 속물들>의 오연종 저자 만남에 다녀왔다.
오현종 저자님과의 대화내용과 나의 생각을 정리해보았다.
- 연재시 염두한 점이 있다면?
알라딘에 인터넷 연재를 하였다.
작년 여름부터 겨울까지 마무리가 되었는데 인터넷 연재를 처음이였다.
문예지 연재와는 달랐다.
종이책에 익숙한 세대인데, 인터넷 연재에 대한 부담감이 있었다.
가독성 면에서 고민했고, 사이트에 와서 읽어주는 독자에 대한 책임감, 재미있게 읽혀야 한다는 생각, 독자들이 공감하고 읽는게 시간이 아깝지 않았으면 하는 생각이 있었다.
소설의 내용뿐 아니라 형식적인 고민까지하게 되어 힘들기도 했다.
삽화가 들어갔기 때문에 원고를 항상 먼저 일찍 넘겨야했다.
퇴고도 많이 하고 연재를 다섯달 하면서 오자가 한번 있었는데, 바로 댓글이 달려서 수정했던 기억이 있다.
- 속물이라는 소재를 쓴 이유는?
작가가 책을 쓸 때 자기 스스로 오래 고민한, 자신을 괴롭힌 문제에 집착을 하게된다.
자신을 괴롭히던 문제를 쓰게되는 것이다.
계기는 작년 봄 우연히 대학에 가보았는데 대학 내에서도 상업적인 시설들(패스트푸드점, 커피전문점 등)이 들어온 것을 보았다.
내가 지금과 같은 상황이었으면 어땠을까라는 생각이 들었다.
리포트를 쓰다 만 공강시간에 학생들이 대학내에 있는 상업적인 시설들을 가게된다면, 만약 돈이 없는 학생들을 어떻게 하지?
요즘 젊은 사람들은 돈이 있고 없고에 따라 누릴 수 있는 것이 많다.
돈이 있고 없고에 따라 삶의 질의 차이가 벌써 시작되는 것이다.
책에는 다양한 세대를 아우르지만 중슴인 20대 졸업반 여대생이다.
그 나이는 속물성에 극심하게 노출되는 나이이다.
- 속물이 드러나는 시기는?
소설가로 살면서 속물적인 것을 포기했다고 생각했음에도 속물적 선택을 하는 순간이 불쑥불쑥 찾아온다.
- 최고의 속물은 누구인가?
이 책은 블랙코미디 스타일이라는 점, 너무 위약적이지 않을까, 비난하지 않을까에 대한 우려감이 있었다.
인터넷 연재의 댓글을 보면서 과장적으로 받아들이는 것이 아니라 주변, 나 자신이 속물적일 수 있다는 댓글을 보면서 많은 사람들이 속물이라는 것에 공감하는구나라는 생각이 들었다.
왜 우리가 이렇게까지 위약적이 됬을까...
- 험난한 세상을 살면서 위안이 될 수 있는 부분?
누구나 속물성은 있다.
일말의 회의,고민을 하지 않는 존재가 가장 속물적이다.
바로 회의하지 않는 인간이다.
완전한 속물이 되지 못하므로 우리는 소외받고 상처받는다.
나만 세상에서 도태되는 느낌이 드는 것이다.
남들 사이에서 나만 뒤지기 싫은 불완전한 속물이기 때문에 삶이 힘들고 외로운것이 아닐까...
세상이라는 것이 부유하냐 가난하냐의 이분법으로 나뉘는 것이 아니라, 회의하는 자와 그렇지 않은자로 나뉘어있다.
자기 삶에 대한 반성할 수 있느냐 아니냐가 중요하다.
최소한의 회의를 가진 사람이 진보를 만들지 않을까...
주인공이 립스틱을 사며 두가지 제품중에 무엇을살까 고민하는 장면이 책에 나온다.
2개를 판매원이 권하고 결국 카드로 2개의 립스틱을 산다.
결국 우리는 두 가지 중 하나가 될 수 없다.
어느 하나도 규정짓지 못하는 우리의 모습이다.
진보하는 것은 회의하는 사람에 의해 이루어진다.
속물성 때문에 고민하고 타인으로 인해 아파하는 것은 우리가 완전한 속물이 아니기 때문이다.
발전하고 있다는 증거, 긍정적 발전이 아닐까...
- 거룩한 속물을 통해 작가가 하고 싶었던 말은?
소설을 써나가면서 답을 찾고 싶었다.
결말을 쓰면서 우리는 누구나 속물적이고 거기서 벗어날 수 없다.
개미굴을 바라보듯이 가장 문제가 되는 것은 속물적으로 사는 차원이 아니다.
우리가 가지고 있는 속물성을 비판하거나 동정함이 아니다.
속물스러움의 자기자신을 잃어버리는 것이 가장 안타깝다.
속물스러운 모습을 쫓아가고, 그 욕망 때문에 자기가 진정 원하는 것을 잃어버리는 것은 아닐까...
내 안에 간절하게 바라는 것을 잃어버리는 것, 알면서도 타인을 따라가버리는 것이 아닐까...
- 거룩한 속물이라는 제목의 의미는?
역설의 의미로 볼 수 있다.
또 하나는 거룩한은 종교적인 의미로 해석할 수 있다. 거룩한은 몸을 바치는 것이다.
속물성에서 바라볼 때 거룩한 것은 물질적인 것에 몸을 바치는 것이다.
- 속물이라는 것을 너무 부정적으로만 보는 것은 아닌지?
속물의 이면을 바라보자.
고정적인 관념을 비틀어보자는 작가적 관념이 들어있다.
이중적인 욕망을 다각적으로 바라보기 때문에 속물의 긍정, 부적의 결론을 내리지 않는다.
- 젊은이의 감각을 유지하기 위한 노력이 있다면?
감각이 낡아버린다는 것에 대한 공포가 있다.
사유는 깊어지나 감각은 낡아지면 안된다는 생각을 한다.
작업실에 TV가 없고 읽어야할 책은 많다.
영화를 많이 보고 새로운 것을 많이 경험한다.
요즘은 트위터도 시작했다.
트렌드를 알려는 노력이 필요하다.
미드,일드를 보면서 왜 사람들이 좋아하는지도 탐구한다.
학교에서 공부를 하면서 젊은 친구들의 이야기를 듣고 경청한다.
- 소설속 인물들은 어떻게 만들어지나?
자신이 순간순간 느꼈던 감정에 소설 속 인물들이 투영되는 과정이 많다.
- 인간의 퇴행성에 대한 생각은?
회의한다는 것은 인간의 행복에 대해 물어보는 것이다.
퇴행한다는 것은 인간이 행복감을 점점 잃어가는 것이다.
소외감을 느끼는 것이 아닐까...
- 앞으로 쓰고 싶은 작품은?
작가는 잉여가 있어야 한다.
채워나가고 싶다.
한가지에 국한되는 것이 아니라, 장르소설, 현실적인 소설, 역사소설을 써보고 싶다.
나는 "책을 매일 읽고, 글을 매일 씁니다"라고 소개한다.
연재할 때는 새벽 여섯시부터 소설을 썼다.
소설이 노동이라는 생각이 들정도로 힘든 작업이였다.
- 소설가들이 불행한 삶을 사는 경우가 많다. 작가님은 어떠신지?
개인으로서는 단순한 행복을 누리고 싶다.
개인적 삶이 불행하더라도 좋은 소설을 쓰고 싶다는 갈망도 있다.
작가가 되려고 했을 때 행복에 대한 생각을 했다.
내가 행복하든 불행하든 그것이 중요한것 같지는 않다.
문학적으로 좋은 작품을 쓰는지가 중요하다.
우리는 살면서 행복하다고 느끼는 순간보다 불행하다고 느끼는 순간들이 더 많을 것이다.
행복했던 그 기억에 의존하여 버텨나가는 것인지도 모른다.
행복했다면 굳이 소설을 쓰지 않아도 되었을 것이다.
소설을 쓰는 것은 나에게 있어서 구원이다.
그것에 기대여 살아가고 있기 때문이다.
다만, 문학이라는 것이 어느 한 순간에 위로가 되었으면 좋겠다.
괴오운 일이 많아서 소설을 계속 쓰게되는 지도 모른다.
싫증을 잘 내고 한가지를 꾸준히 하는 성격이 아닌데, 소설만큼은 계속 쓰게된다.
작가의 운명이 아닐까....
"용기를 내느냐, 아닌가야 따라 삶이 달라진다. 첫 소설이 나왔을대가 가장 간절했다. 책에 대해 간절함을 유지해야겠다는 생각을 한다. 무엇이든 관성화되면 안될것이다. 소설을 쓰는 불안감이 없어지면 작가로서 끝난거지라는 말에 동감한다."
인간이 회의하지 않으면 그것이 가장 속물적인것이라고 이야기하는 오현종 저자의 말에서 어쩌면 우리는 정말 연약한 인간이기에 불완전한 속물로서 살아가는 것이 아닐까라는 생각이 들었다.
삶을 살아가는 중심은 바로 나 자신을 잃어버리지 않는 것이다. 어쩌면 그것이 진정 인간이 중도를 지키는 것이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