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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투를 빈다 - 딴지총수 김어준의 정면돌파 인생매뉴얼
김어준 지음, 현태준 그림 / 푸른숲 / 2008년 11월
평점 :
품절
그의 이름 석자를 들어 알게 된 건 십년하고도 몇 년이나 더 전의 일이었지만 난 그가 처음부터 마음에 들지 않았다.
깎지 않은 수염과 봉두난발한 헤어스타일하며 제멋대로 껴입었다고밖에는 달리 표현할 길이 없는 옷차림 등등...
노숙자인지 원시인인지 도무지 구분이 가지 않는 그에게 사람들 특히 젊은 것(?)들이 '총수'라는 존칭까지 붙여가며 칭송하는 이유를 알지 못했다.
그런 그가 최근 불쑥 내 삶에 들어왔다.
십여년이 넘도록 잊혀졌던 그의 이름이 어떻게 내 머리속에 떠올랐으며, 검색창에 그 이름을 입력하게 되었는지 아무리 생각을 해봐도 모르겠다.
간단한 프로필-그는 생각보다 나이가 많았다-과 함께 그가 쓴 책들이 나왔다.
그의 책, <건투를 빈다>는 과거 몇 년동안 인터넷 방송을 통해 해온 '고민&상담'들 중, 일부를 추려 묶은 청춘상담서라 하겠다. 2008년 겨울에 출판되었으니 아이러니컬하게도 청춘상담서의 대명사라 할 수 있는 김난도의 <아프니까 청춘이다>보다도 무려 2년이나 먼저 나온 셈이다.
말이 나왔으니 말인데, 김어준과 김난도 달라도 너무 달라 보인(였)다.
한쪽이 엄친아 출신 교수라면 다른 한쪽은 문제아 출신 소장파 유명인사로 분류될 수 있겠다. <아프니까 청춘이다>가 특별히(?) 엄친아/엄친딸들을 위한 인생안내서라면, <건투를 빈다>는 엄친아/엄친딸이 될 수 없었던 젊은 '루저들'을 위한 인생상담서라고 하겠다. 또한, 전자가 교육적 목적에 충실한 감동적인 책이라면, 비속어가 아슬아슬하게 난무하는 후자는 불량도서에 가깝다.
우선, 10대에게 고하는 그의 불량스런 외침부터 들어보자.
두발 자유화. 이 쌍팔 년도 이슈가 아직도 현재 진행형이란다. 참, 후지다. 바리깡으로 학생 관리하겠다는 발상이 여전히 유효한 교육정책이 된다는 거, 정말 후지다. (......) 해서 결심했다. 사실대로 고백하기로, 10대들, 지금부터 잘 들어주시라. 이거 어른들끼리 암묵적 합의로 당신들에겐 그 접근을 원천 차단해온 기밀 되겠다. 먼저 두발과 공부의 상관관계, 한마디로, 없다. 학생이 공부나 하지 머릴 왜 길러, 왜 못 길러, 다리 털, 겨드랑이 털, 꼬추 털과는 다르게 두개골 털에는 DHA함유되어 있나. 그냥 이유는 털이 아니라 통제권 문제다. 머리털 내주면 쥐고 있던 학생 통제권 상실할까 두려운 거다. 선생님 자신들도 그 방식으로 육성됐다. 물론 자신들도 싫어했다. 하지만 편하다. 통제에 용이하니까. (......) 말 나온 김에 딴것도 고백하자. 공부 열심히 하면 훌륭한 사람된다? 거짓말이다. 우리나라 공교육 열심히 따라가면 시험 잘 치는 사람된다. 그럼 시험 잘 치면 훌륭한 사람 되나? 아니다. 시험 잘 치면 점수 잘 나온다. 하지만 점수와 훌륭한 사람과의 상관관계, 없다. 단, 점수 높으면 연봉 높을 확률, 상대적으로 높다. 그건 맞다. 하지만 반드시 그런 건 또 아니다. 돈 버는 능력과 공부 능력, 별개다. 그럼 왜 어른들이 공부 공부 하나. 불안해서. 공부 외에 어떻게 훌륭한 사람 되는 건지 어른들도 모르니까. 아니 보다 근본적으로는 어떤 사람이 훌륭한 사람인지, 어른들 모른다. 물론 공부 잘 하면 좋다. 유용하다. 하지만 공부와 훌륭한 사람, 관계 없다.
-김어준, <건투를 빈다> p42~43 中-
'어헛! 어디서 감히... 어른들끼리의 비밀을 폭로하고 난리야! 애들 버릇 나빠지게스리...'
라는 생각부터 들었다.
고백부터 하자면, 나는 기성세대이고 뼛속 깊이 '모범생 DNA'가 새겨져 있으니까...
그러나 인정할 건 하기로 한다.
그의 말, 하나도 틀리지 않다. 다 맞다. 그러나 10대란 아직 머리도 마음도 다 자라지 않은 불안전한 존재로써 10대시절의 선택은 성인이 된 후 후회할 가능성 90% 넘는다는 사실 또한 알려줬어야 한다.
그리고 10대의 김어준 역시 모범생에 우등생 출신이었을 개연성 심히 높아보인다.
초등학교 졸업하고 중학교2학년까지 미국에서 보냈으며, S대를 목표로 삼수를 했던 그의 '과거'는 그 당시 세대로서는 소수의 특권층만 누릴 수 있었던 '기회'였기 때문이다. 그러니 내 눈에는 이십대 사이에 불어닥친 '난도 열풍' 못지 않게, 십대들의 '총수님 추앙' 또한 위험해 보인다.
사실, <건투를 빈다>는 십대가 아닌, 20세 이상 40세 미만 성인을 대상으로 한다. 김어준의 열성팬들이 주로 집결해 있는 연령층으로, 이들이 직면한 고민에 대한 그의 답변은 솔직하고 멋지다. 특히, 원시인(?)의 입에서 나왔다고는 믿을 수 없을 만큼 깊이 있는 통찰력과 지성미가 돋보인다.
삶을 장악하라!
키 때문에 결혼을 못 할지도 모른다고? 아니지. 문제의 본질은 뼈의 길이가 아니라, 그로 인한 자존심의 결여다. 본능적으로 최고 우성 유전자를 판독해내는 여자들이 기가 막히게 구분해내는 건, 기장이 아니라, 바로 그 결여다. 있는 그대로의 자신을 고스란히 인정하고 스스로를 농담거리로 만들어버릴 만큼 견고하고 대범한 자기인식은, 그 자체로, 졸라 섹시하기까지 하다. 그러니까 당신을 진정 안 섹시하게 만드는 범인은 뼈의 길이가 아니라, 그로 인해 스스로 주눅 드는, 당신의 자기인식인 게다.-p59~60
'누군가의 자식'이 아니라 '누군가'가 되어야 한다.
아이는 어머니의 욕망을 욕망한다지만 당신은 성인이 되어서도 엄마 욕망을 충족시키지 못할까 봐 안절부절이다. 그러는 거 효도라 착각 마시라. 효도 아니다. 공포다. 부모 낙담시키고, 기대 저버리는 것에 대한 두려움, 그리하여 부모로부터 인정받지 못하고 분리되는 데 대한 공포. -p125
가족 구성원 간 과잉 감정은 이 자폐적이고 방어적인 가족주의의 필연이다. 서로가 서로에게 과도하게 기대하고 요구하며 또 그로 인해 과도하게 상처받고 실망한다. 서로가 서로에게 정도 이상의 감정 비용을 지불하며 서로가 서로에게 바가지를 쓰고 있다고 여긴다. 모두가 모두에게 그렇게 채무관계로 결박되어 있다. 명절은 이제 씨족 행사도, 집단 귀향도 아니다. 평소 마땅한 분량의 가족 의무를 수행하지 못한 자들이 그 죄의식을 탕감받으러 가는 날. 그러니 길이 막혀 다행이다. 부모는 신분이 아니라 실체다. 가족극의 배역이 아니라 구체적인 여자와 남자다. 그들은 숭고한 효의 대상이 아니라 애틋한 관심의 대상이다. -p109
정말 비겁한 건 자신이 비겁하다는 걸 인정 못하는 거다.
삶과 미래가 실천과 계획에 의해 대부분 결정 난다 생각하겠지만, 사실은 어느날 갑자기 닥쳐온 우연에 어떤 선택을 하느냐에 의해 결정된다. 선택으로 인한 비용과 대가를 기꺼이 지불하겠다면, 자신이 그 정도로 비겁하고 이기적인 사람이란 걸 스스로 인정하고 그에 따른 대가를 감수할 의사와 용기가 있다면, 정도의 차이가 있을 뿐 나쁜 인간은 아니다. 그러나 선택에 마땅히 따르는 이러한 대가를 지불하려 하지 않는 경우 부지기수다. 핑계를찾고 이유를 찾는다. 자신은 그럴 수밖에 없었다는 거다. 결정적 차이는 거기서 만들어진다. 그 선택을 합리화하기 위해 만들어내는 갖가지 거짓과 사기의 결과는 다른 누구보다 자기 자신을 좀먹는다. -p138~139
선택으로 인한 결과를 기꺼이 감당할 마음가짐이 먼저다.
진짜 문제는 어떤 선택도 하지 못하는 데 있다. 그 결과를 감당하는게 두려워서. 많은 사람들이 선택으로 인한 결과를 감당하기 싫어 아예 선택 자체를 피해버린다. (...)
사람이 나이 들어 가장 후회될 땐 잘못된 선택을 되돌아볼 때가 아니라 그때 아무것도 선택하지 못했다는 걸 알았을 때다.-p223~224
단언컨데, 그의 지적인 능력은 탄탄한 정규교육과 폭넓은 독서 그리고 배낭여행 덕분이었을 것이다.
반면, 그에게 다소 부족한 점이 있다면 '균형 감각'과 '표현 방식'이 아닐까 싶다.
선택에 책임이 따른다는 것 정도는 누구나 알고 있다. 다만, 머리로는 이해가 되지만 가슴이 몸이 거부할 따름이다. 이런 상황에 처해 있는 젊은이들에게 '그냥 마음이 가는대로 선택하고 결과를 받아들이면 그것이 곧 책임이다.'식의 솔루션은 마음의 갈등과 번민, 그리고 후회, 반성의 과정을 거치면서 성숙해지는 인간의 정신적 성장과정을 지나치게 소홀히 다룰 소지가 있어 보인다.
그리고 솔직한 표현 방식은 높이 살만 하나, 지나치면 이 또한 '예의'에서 벗어난다.
'인간에 대한 예의'란 상대방의 옳고 그름이나 도덕적 성품의 높낮이를 고려하지 않는 것이다. 그냥 상대방이 나와 같은 '인간'이기 때문에 보여주는 태도, 즉 예의인 것이다. 내가 싫어도, 나와 맞지 않아도, 상대방을 위해서 하는 것! 그게 바로 예의다. 인간에 대한 예의...
이제서야 알 것 같다.
젊은 세대는 김어준을 '총수님! 총수님!' 하고 따르고, 기성세대들은 '또라이'라고 손가락질하는 그 이유를 말이다.
일탈과 반항을 발전의 동력으로 삼는 젊은 세대의 특징이 그의 무교양(무례) 및 탈규범적 생활방식과 맞아떨어지기 때문이다. 한편, 욕망과 책임 사이에서 방황하던 2,30대를 거쳐 40대에 도달한 기성세대는 욕망 대신 책임을 선택한 이들이 대부분이다. 그리고 그들은 절제 속에서 자유를 느낀다. 그들에게 자유란 곧 안정이다. 이런 기성세대들에게 김어준은 어른이 되기를 거부하는 또 한명의 '피터팬 증후군' 환자로 보일 따름이다.
그는 자유로워보인다.
하고 싶은 말 다하고...
하고 싶은 대로 행동하고...
그런 그에게 꼭 한마디만 하련다.
'최대한 본능에 충실하자'는 본능지상주의는, 사실 본능을 최대한 억제하는 이들이 존재하기 때문에 가능한 것이라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