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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트] 청춘의 문장들 + 청춘의 문장들+ - 전2권
김연수 지음, 금정연 대담 / 마음산책 / 2004년 4월
평점 :
품절
나와 비슷한 연배의 작가들의 글들은 어딘지 모르게 남다르게 다가온다.
아마도 시대공감 때문이 아닐까 싶다.
지금으로부터 딱 10년 전인 2004도에 나온 <청춘의 문장들>이 다시 화제다. 아마 지난 5월 후편 격인 <청춘의 문장들 +>가 나왔기 때문이리라. 십년이라는 시차에서 오는 느낌이나 감동이 남다르기 때문에 이런 시리즈물 아주 좋아한다. 하물며 나와 동년배인 작가가 쓴 것이라면 결코 놓쳐서는 안되는 목록 중 하나다.
작가가 서른넷에 출판된 <청춘의 문장들>은 이십대를 막 지나 직장생활을 거쳐 전업 작가의 길로 들어선 직후까지의 작가를 만나볼 수 있다.
특히, 유년시절과 사춘기의 추억들 그리고 시인으로 등단하고 작가가 되기까지의 과정 및 습작의 세월들이 고스란히 담겨 있다. 그래서 그런지 열정적이고 치열하다. 뭔가 이루고자 하는 충만함이랄까...? 확실히 청춘의 기운이 느껴진다. 그 당시 나 역시 막 서른에 접어든 시기였다. 그때를 떠올리면 십대와 이십대의 방황과 낯섦에서는 많이 벗어났지만 여전히 막막했으며 여전히 헤매이고 있었더랬지...
그때 그시절 내 곁에 있었던 김광석 역시 작가를 찾아갔던 모양이다. 그에 대한 작가의 애상에 내 마음이 나도 모르게 '뚝ㅡ'하고 비명을 지른다. 팽팽하게 작동하던 방어기제가 순식간에 무장해제되는 순간이었다. 김광석만 나오면 이 모양이다. 우리 세대는.... 작가 김연수만 만나도 역시 이 모양이지. 우리 세대는...
어....?!
아니다. 우리 세대뿐만 아니라 20대 심지어 10대조차도 김광석은 레전드인 것 같다. 그리고 <청춘의 문장들> 플러스가 올해 다시 출판된 걸 보면, 김연수 역시 여전히 2,30대에게도 사랑받는 작가인 것 같다.
김연수 작가의 말처럼, 우리 세대와 우리 윗세대는 공감대가 너무 없었다. 성장한 환경 차이가 너무 많이 났으니까... 그러나 그 이후 세대들끼리는 의외로 공감대가 많이 형성되어 있다는 걸 나도 느낀다. 인간의 감성이 진화하는 속도는 생각보다 느리다. 최소한 경제 성장 속도보다는 확실히 느리다. 감성 즉 문화란 어느 정도 경제가 발전한 다음에 형성되고 향유될 수 있다. 그러므로 90년대 이후 완만한 경제성장속도만큼이나 우리의 문화적 감수성 코드 역시 천천히 바뀌어 온 게 아닐까 싶다. 즉, 5,60년대 청춘을 보낸 세대와 7,80년대 청춘을 보낸 사람들은 서로 공유할 '거리'가 별로 없지만, 8,90년대 청춘들과 2000년대 이후 청춘들과는 의외로 공감대가 크고 넓을 수밖에 없다.
그래서 요즘은 띠동갑과 친구가 되는 게 전혀 불가능한 것만도 아니게 되었다. 아이유와 김창환이 듀엣으로 <너의 의미>를 부르는 것처럼 말이다.
청춘은 들고양이처럼, 재빨리 지나가고 그 그림자는 오래도록 영혼에 그늘을 드리운다. 김광석은 젊어서 죽고 2003년을 기점으로 나는 김광석이 살아보지 못한 나이를 살게 됐다. - 김연수, <청춘의 문장들> p141 -
<청춘의 문장들 +> 발문을 쓴 작가 김애란은 이를 두고, "세상의 모든 인연들은 두 번 만난다. 한번은 각자의 나이로, 또 한번은 상대방의 나이가 되서..."라고 표현했다.
순간 머리속이 '멍'해졌다.
결코 잊을 수 없는... 두 다리에 힘이 풀리면서 땅이 쑥 꺼지는 것 같은... 이런 기분, 언젠가 느꼈던 적이 있었더랬지....
내가 우리 엄마가 날 낳았던 그 나이가 되었을 때, 그해 내 생일날, 난 엄마 얼굴을 하염없이 바라보았었다. 그리고 그때 처음으로 엄마가 엄마가 아닌, 나처럼 꿈을 갖고 있는 여자로, 오롯한 하나의 인격체로 다가왔더랬지... 그순간 엄마를 향한 솟구치던 미안함과 애틋함과 고마움과 연민과 사랑은 말로 표현할 길이 없었다.
작가는 이런 마음을 <청춘의 문장들 +>에서 이처럼 풀어놓았고, 난 그만 눈물줄을 놓아 버렸다.
부모가 된다는 건 자기 인생을 희생하면서 아이의 인생을 떠맡는 거예요. 우리 부모 세대들은 그건 당연하다고 생각하셨던 것 같아요. (...) 바다를 건넌다는 것은 자기 삶의 일부를 희생한다는 뜻이에요. 어떤 사람들에게는 전부일 수도 있고...
- 김연수, <청춘의 문장들 +> p38 -
그렇구나...
그런 거였구나...
나의 탄생과 성장은 그 누군가의 삶의 희생 일부 위에 세워진 것이었구나....
어쩌면, 일부가 아닌 전부였던 그 누군가의 삶...
부모가 된다는 건 바다를 건너는 법을 배우는 것이란다. 망망대해를 어떻게 건널 것인가? 유일한 위안은 우리 부모님이 나보다 앞서 그 바다를 건너갔다는 사실 단 한가지 뿐.
마음에 시퍼런 멍이 든다는 건, 이럴 때 하라고 존재하는 표현인가 보다.
<청춘의 문장들> 곳곳엔 고전과 한문, 한시가 자주 등장한다.
익숙한 것들도 있지만 대부분은 낯선 것들이다. 작가는 몇 백년 혹은 그보다도 훨씬 더 먼 옛날 옛적 사람들의 생각과 삶 속에서 무언가를 발견해냈지만, 난 아쉽게도 그와 같은 경지까지는 이르지 못했다. 그래서 너무 고풍(?)스러워서 책장을 덮으라치면, 등장하곤 하는 빼어난 문장들... 문장들...
나도 모르게 손을 놀려 백지에 옮겨 적어 본다.
작가가 밑줄 그어가며 읽었던 문장들... 그리고 그 문장들을 소개하는 작가의 글을 읽으면서.... 나 역시 밑줄 긋고 백지에 옮겨 적는 문장들...
이런 문장들은 사소하지만 때론 조각배를 타고 인생이라는 바다를 건너갈 때 '노'가 되어 주기도 한다는 걸 잘 안다. 이런 건 경험하지 않으면 절대 알 수 없는 것들이다. 알 수 없으니 절대로 글로 표현할 수도 없다는 사실. 중년에 접어든 내가 깨달은 거라곤 이점 하나뿐이다.
아!
나 또한, 벌써 이만큼이나 바다를 건너왔구나.
이런 걸, 알만큼...
내가 아는 건 바로 이점이다.
아! 이런 걸 알만큼, 나 또한 벌써 이만큼이나 바다를 건너왔나보다.
누구도 막을 수 없는 것. 삶이란 그런 것이구나. 어른들은 돌아가시고 아이들은 자라나고... 다시 돌아갈 수 없으니까 온 곳을 하염없이 쳐다보는 것이구나. 울어도 좋고, 서러워해도 좋지만, 다시 돌아가겠다고 말해서는 안 되는 것. 삶이란 이런 것이구나. - 김연수, <청춘의 문장들> p242 -
살아오면서 나는 많은 것을 배웠다. 영어 가정법 문장을 어떻게 만드는지도 배웠고 3차 방정식을 그래프로 옮기는 법도 배웠다. 하지만 내가 배운 가장 소중한 것은 내가 어떤 사람일 수 있는지 알게 된 일이다. 내 안에는 많은 빛이 숨어 있다는 것, 어디까지나 지금의 나란 그 빛의 극히 일부만을 보여주고 있다는 것을 깨닫게 된 일이다. - 김연수, <청춘의 문장들> p195 -
재촉하는 만큼 빨리 흐르지는 않는다고 해도 나이가 들고 싶다는 아이의 소원쯤이야 들어준다는 것. 삶이 너그러운 건 그때 뿐이다. - 김연수, <청춘의 문장들> p210 -
흘러간다. 세월은, 그렇게, 그렇게, 부드럽게, 따뜻하게, (...) 가끔 아무런 후회도 없이, 아쉬움도 없이 세월을 보내던 그때 그 시절이 떠오른다. 내가 그리워 하는 것은 그렇게 흘러가는 세월의 속도이지 그 시절이 결코 아니다. - 김연수, <청춘의 문장들> p212 -
<청춘의 문장들> 이후, 다시 십년이 흘렀다.
나도 작가도 이젠 중년이다. 원치 않아도... 누가 뭐래도....
그렇지만 지난 십년을 어떻게 보냈는지 나는 기억하지 못한다. 십대와 이십대는 손에 잡힐 듯 선명하게 떠오르건만 삼십대는 도무지 어떻게 보냈는지 기억에 없다.
왜, 일까?
<청춘의 문장들 +>을 읽으면서 그 이유를 조금은 알 것 같았다.
앞으로 겪을 모든 일들을 스무 살 무렵에 다 겪었다는 사실을, 그 모든 사람을 스무 살 무렵에 다 만났으며 그 모든 길을 스무 살 무렵에 다 걸었습니다. 그 모든 기쁨을, 그 모든 슬픔을, 그 모든 환희를, 그 모든 외로움을, 스무 살 무렵에. - 김연수, <청춘의 문장들 +> p42 -
내가 삼십대에 만났던 사람들...
내가 삼십대에 겪었던 일들은...
모두 내 이십대의 연장이자 그림자였구나!
그래서 삼십대에 본 하늘은 이십대에 봤던 하늘만큼 강렬하지도 아름답지도 않으니 기억에도 없는 것이구나!
내 생애 가장 푸르른 하늘은 바로 이십대에 봤던 그 하늘, 단 하나밖에 없는 것이구나!
저는 시간이 아주 많은 사람들을 청춘이라고 생각해요. 시간이 하도 많아서 남은 시간 같은 것은 따져보지도 않는 사람들이 진짜 젊은 사람들이죠. 그래서 어떤 일에 자신의 전부를 걸 수도 있어요. 시간이 너무 많으니까 가능한 거죠. - 김연수, <청춘의 문장들 +> p165~166 -
그래, 맞다!
지금 돌이켜보면, 난 빨리 어른이 되고 싶었다. 갖고 있는 거라곤 시간밖에 없었던 나에게 어른이란 사회적 지위와 안정된 부를 갖고 있는 사람들이었다. 어서어서 시간이 흘러서 청춘이란 이 혼란한 시기가 빨리 내 인생에서 지나가기만을 바랬더랬지...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 청춘의 시간들은 참 느리게도 흘러갔을 것이다. 내가 '흘러 갔을 것'이라고 추측형을 쓴 건, 그 당시에는 시간의 흐름이 결코 느리다고 생각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청춘의 시간이 천천히 흐른다는 걸 깨달은 건, 그로부터 한참이나 지난 먼 훗날의 깨달음이었다.
피는 꽃이 좋았던 시절에는 그 꽃잎들이 지는 걸 굳이 지켜보지 않았다. 하지만 어느 틈엔가 나도 나이가 들고, 이제는 지는 꽃은 모두 화려한 옛 시절을 품고 있다는 걸 알게 되었다. (...)우연히 라디오에서 심규선과 덕원의 <왜죠>라는 노래를 들었다. '꽃처럼 한철만 사랑해 줄 건가요? 왜 꽃처럼 내 곁을 떠나려 하는 건가요?라는 가사처럼, 수없이 반복된, 꽃지는 시절의 이별은 오늘도 계속된다. 그리고 여전히 우리에게는 떨어지는 꽃잎 앞에서 배워야 할 일들이 남아 있다. 어쩌면 인생이란 그런 것일지도 모르겠다. 알지 못해서 몰랐던 게 아니라 내 일이 아니라고 생각해서 모르는 척했던 일들을 하나하나 배워가는 것.
- 김연수, <청춘의 문장들 +> p191 -
인생이란 알지 못해서 몰랐던 게 아니라 내 일이 아니라고 생각해서 모르는 척 했던 일들을 하나하나 배워가는 것이란다.
어떻게 이런 글을 쓸 수가 있지...?
당신도 나와 엇비슷하게 문학을 공부했을 뿐이잖아!
당신도 나와 똑같은 음악을 듣고 똑같은 책을 읽었을 따름이잖아!
당신도 나와 똑같은 하늘아래 똑같은 바다를 바라보며 나이 먹었을 뿐이잖아!
그런데 어찌하여 당신은 느끼고 표현하는데.... 나는 느끼지도 표현하지도 못하는 걸까...?
그래서 당신은 작가가 된 것이고, 나는 못 된 것이겠지...
당신은 언제 눈물을 흘리는가? 적어도 나는 짐작과는 다른 일들을 겪을 때 눈물을 흘린다. 대체적으로 삶이란 짐작과는 다르다. 그 사실을 깨닫게 된 순간부터 나는 삶을 추측하는 일을 그만 뒀다. 삶이란 추측되지 않았다. 그냥 일어날 뿐이다. 소설은 그 일어난 일들의 의미를 따져보는 일이다. 짐작과 달랐던 일들의 의미를 나와 당신이 함께 납득해가는 과정이다. 삶의 어느 순간에, 당신이나 내게 진심으로 눈물을 흘리게 만들었던, 혹은 진심으로 기뻐하게 만들었던 그 일들이, 결코 무의미하지 않다는 걸 당신과 내게 납득시키는 일이다. 당신이나 나나 이제 다른 존재가 돼 살아가겠지만, 그 일들이 사라지지는 않으리라.
- 김연수, <청춘의 문장들 +> p100~101 -
나 또한 젊은 시절, 세상이 나만 미워한다고 생각했더랬다.
난 이렇게 간절하건만....
난 이렇게 혼신을 다하고 있건만...
난 이렇게 온몸으로 아파하고 있건만...
세상의 빛은 늘 다른 사람들 차지였지.... 그런 널, 난 참 많이도 원망하며 미워했더랬지...
그런데 지나고 보니 세상이 나에게도 너그러움 한움큼은 베풀어주었구나...싶다.
일단, 세상은 나에게 좋은 문장들을 접할 수 있는 기회를 주었다. 난 책을 읽으면서 위안을 받았더랬지... 나에게 책읽기는 혼자가 아니란 사실을 확인하기 위한 몸부림이었고, 지금도 이는 마찬가지다.
시간이 지날수록 점점 지혜로워지다가 가장 훌륭한 사람으로 죽을 수 있다면, 그런 게 사람이라면 지나간 시간을 돌아보면서 무슨 말이라도 하겠는데요, 지금까지 살아보니까 사람은 시간이 지난다고 해서 좋아지지도 않고, 그렇다고 나빠지지도 않은 것 같아요. 뛰어난 사람들만이 시간이 갈수록 좋아질 수 있어요. 대부분의 사람들은 나빠질 가능성이 더 많아요. 조금만 방심하면 나빠지게 돼 있는 게 인간이거든요. - 김연수, <청춘의 문장들 +> p35 -
인류가 계속되는한, 청춘의 무지는 반복될 뿐이에요. 그러니까 <청춘의 문장들>을 읽는다고 해서 젊은 독자들이 젊은 시절 열심히 살아야겠다, 뭐, 그렇게 생각하기를 바란다는 건 무리겠죠. 오히려 그 반대입니다. 시간이 아주 많이 남았으니까 대충 살아도 됩니다. 이것저것 다 해보기도 하고, 그냥 시간만 보내기도 하고요. 청춘이란 그런 것이니까요. 너무 잘 살아보려고 하지 마세요. 그런 건 시간이 얼마 남지 않은 사람들에게나 어울리는 거잖아요. 젊었을 때는 천 년을 살 수 있는 사람처럼 살았으며 해요. 하고 싶은 거 다 하고, 보고 싶은 거 다 보고요.
하지만 그런 낮을 보낸 날에도 밤은 어김없이 찾아올 것이고, 그 밤에 대개 우리는 혼자겠죠. 그런 밤이면 아마 시간이 너무 많아서 버겁다는 생각이 들기도 할 거예요. 맞아요 .그래서 청춘은 무거워요. 빨리 늙었으면 싶기도 하고요. 그럴 때 저는 저보다 먼저 살았던 사람들의 책을 읽었어요. 그러다가 마음이 동하면 잘 알지도 못하는 문장들에 줄을 그었죠. 그렇게 책에다 몇 번 밑줄을 긋다가 잠들고 나면, 또 새로운 날이 시작됐죠. 역시 어마어마하게 많이 남은 나날 중의 첫번째 날, 누군가에게 <청춘의 문장들>은 그 새로운 날에 돌이켜보는, 지난 밤의 밑줄 그은 문장 같은 것이 됐으면 좋겠습니다. - 김연수, <청춘의 문장들 +> p197 -
지난 주말 방문을 걸어 잠근 채, <청춘의 문장들>과 <청춘의 문장들 +> 두권의 책을 내리 읽었다.
뭐라 할 말이 없다.
그저 참 좋다... 라는 말밖에는...
이 책에 대해서 김애란 작가는 발문에 이렇게 적어 놓았더라.
<청춘의 문장들>은 누군가 오래 본 문장, 앞으로 누군가 오래 볼 문장, 바로 청춘의 문장들이다. 라고...
한권의 책에 바쳐지는 발문으론, 최고 중에 최고가 아닐까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