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5년 <이중주>가 동아일보 신춘문예에 당선되면서 등단한 은희경은 현대인의 소외와 일상속의 위선을 그리는데에 뛰어나다. 1996년 발표된 장편소설 <새의 선물>이야말로 은희경이라는 작가와 작품 세계를 한 눈에 알 수 있는 대표작이라고 할 수 있다. 잘 알려져있다시피 <새의 선물>은 주요섭의 <사랑방 손님과 어머니>의 형식을 빌리고 있지만, 열두살 진희는 여섯살 옥희보다 훨씬 더 조숙하고 영악하다.
공교롭게도 <새의 선물>과 같은 해에 발표된 <빈처,1996> 역시 현진건의 <빈처>에서 제목을 차용했다. 그러나 현진건의 <빈처>가 경제적 빈곤에 시달리는 1930년대의 아내상인 반면, 은희경의 <빈처>는 1990년대 정신적 빈곤에 허덕이는 중산층 아내의 초상을 담고 있다.
작중 화자는 비록 하루가 멀다하고 술타령이지만 번듯한 직장에 다니며 월급을 꼬박꼬박 갖다주는 전형적인 샐러리맨이다. 우연히 보게 된 아내의 일기를 통해 아이 둘을 키우는 가정주부이자 한 남자의 아내가 아닌, 전혀 새로운 아내의 이면을 엿보게 된다. 물론, 그 이면이라는 것도 주체적 자아찾기라기 보다는 남편이 가정에 좀더 충실해주길 바라는 아내의 속내지만 말이다.
그녀가 언제부터 이렇게 자기 생각을 갖고 산다는 걸까. 좀 뜻밖이었다. 나는 그녀에 대해 그 정도로 알고 있었다. 물론 연애 시절에는 잔디밭에 앉아 문학 토론도 하고 포장마차에서 소주잔을 기울이며 시국에 대한 막연한 의분을 토로하기도 했지만 그것은 어디까지나 아줌마가 되기 전 일이다. 결혼 이후에는 그녀가 책을 들치는 것조차 본 적이 없는데......하긴 그녀와 길게 얘기를 나눠본 것도 꽤 오래되긴 했다.
(......)
8월29일
난 그이가 매일 일찍 들어오는 것도 싫다. 일찍 오는 것이 가정에 충실한 거라는 편견도 갖고 있지 않다. 자기 시간을 갖지 않는 인간은 고여있는 물처럼 썩는다고 생각한다. 그런데, 그런 나도 못 견딜 외로움이라니!
분명히 사랑해서 결혼했는데 사랑을 이루고 나니 이렇게 당연한 순서인 것처럼 외로움이 기다리고 있다. 이루지 못한 사랑에는 화려한 비탄이라도 있지만 이루어진 사랑은 이렇게 남루한 일상을 남길 뿐인가.
-은희경, <빈처>中-
남편은 아내를 시종일관 '그녀'라는 3인칭으로 부르는 반면, 아내는 남편을 '그이'라고 표현한다. 3인칭대명사인 '그녀'는 왠지 모르게 상당한 거리감을 느끼게 한다. 남편의 세계에서 아내의 자리는 저만치 멀리 떨어진, 구석진 곳에 덩그렇게 놓여 있음을 엿볼 수 있는 대목이 아닐 수 없다. 아내는 비록 몰래(?) 일기를 쓰고 남편 몰래 음주를 한 사실을 일기에 털어 놓기도 하지만 이와같은 '일탈'은 자신의 세계에서 남편을 몰아내려는 것이라기보다는 남편의 관심과 사랑에 목말라 있음을 보여주는 반증으로 해석된다.
아들 녀석이 칭얼거린다. 아까 5분 넘게 벨을 눌러도 끄떡 않던 그녀의 잠은 아이의 두척이는 소리에 민감하게 깨어난다. 그녀는 황급히 아이 곁으로 다가가더니 이마 위의 물수건을 내려놓고 아이를 품에 끌어 안는다. 그러고는 졸린 눈을 감은 채 아이의 뺨에 자기 뺨을 대고 앞뒤로 몸을 흔들며 등을 토닥거린다. 그러나 잠이 덜 깬 탓에 등을 토닥이다가 뒤통수를 토닥이다가, 손놀림이 일정하지 않다. 그녀의 앉은 엉덩이께에는 약봉지며 체온계며 대야, 수건 같은 것이 어지럽게 널려 있어 지금 아이를 안는 그녀의 동작이 몇 시간 동안이나 반복된 것임을 말해준다.
아이를 안은 채 눈을 꼭 감고 있는 그녀의 얼굴은 피곤에 절어 있다. 뒤로 묶은 머리가 머리핀 사이로 잔뜩 빠져나와 어수선하다. 나는 손에 펴 들고 있던 그녀의 일기장을 가만히 덮어준다.
살아가는 것은, 지지한 일이다. 비록 모양틀 안에서 똑같은 얼음으로 얼려진다 해도 그렇다. 살아가는 것은 엄숙한 일이다.
-은희경, <빈처>中-
그렇다.
아내가 일기를 쓰고 남편이 그 일기를 몰래 읽어 보았다고 해서 변하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 세상은 그렇게 아내의 역할을 그리고 남편의 역할을 규정지어 놓았으므로......
은희경의 또 다른 작품 <짐작과는 다른 일들, 1996>은 아무런 생각없이 읽었다. 작가 특유의 물흐르듯 부드럽게 흘러가는 필체는 곳곳에 뽀족하게 돋아나 있는 가시처럼 오감을 자극하는 신경숙의 그것과는 분명 다르다. 창비사에서 나온 20세기 한국소설 제48권(신경숙과 은희경외)에 실려 있는 황도경 문학평론가의 작품 해설을 읽고 나서야 단순하지 않은 작품이라는 것을 실감했다.
그는 3년째 중풍으로 자리보전을 하고 있는 어머니를 보고 투명한 눈물을 떨구던 그녀의 모습에 반해 결혼을 했다. 그러나 그녀는 결혼 후, 생명보험과 교육보험을 들고 아파트를 청약하는 등 억척를 부렸으며, 싸울 때마다 이혼을 들먹였다.
한동안 그는 퇴근하자마자 선배가 얻어놓은 작은 사무실로 달려갔다. 창사회의를 한다고 이틀 계속 술을 마신 적이 있었다. 사흘째 되던 날 집에 들어가니 그녀가 문을 열어주지 않았다. 한밤중에 아파트 놀이터의 벤치에 몽유병자처럼 멍하니 앉아 있어야 했다. 한참 만에 그녀가 오더니 열쇠를 던졌다. 아이를 업고 가방을 들고 있었다. 이젠 내가 외박할 차례야! 그는 발민의 열쇠는 쳐다보지도 않았다. 그대로 일어나 여관으로 갔다.
(......)
그는 생각했다. 자기가 사랑한 것은 결혼 전의 그녀라고. 그가 가슴에 간직한 그녀는 다이아몬드가 아니라 시커먼 숯검댕이었다고.
처녀 아닌 아줌마와 살아야 한다는 것이 모든 결혼한 남자의 비애임을 그때의 그는 이해하지 못했다.
그것을 이해하지 못한 채 그는 죽었다.
-은희경, <짐작과는 다른 일들> 中-
그는 그녀가 병원에 도착하기 10분 전에 죽었다. 술에 취해 이사한 집이 아닌 옛집을 찾아갔다가 열리지 않는 옛집 문을 발가락에 멍이 들도록 걷어차다가는 돌연히 몸을 돌려 차도로 뛰어들어 달려오는 택시에 부딪혀 사망한 것이다. 그는 그렇게 그녀를 원망하면서 죽었다. 그는 자신의 짐작-아내가 문을 안 열어준다-과는 다른 일-새집으로 이사갔다-이 일어났음을 모른 채, 마지막 순간까지 아내를 죽도록 미워하며 오해 속에서 죽었던 것이다.
그가 죽은 다음 달부터 그녀는 직장에 다니기 시작했다. 그의 회사에서는 사우의 미망인에게 일자리를 주는 관례가 있었다. 이력서의 빈칸을 채우며 그녀는 중얼거렸다. 차라리 식물인간이라도 되어줬더라면......그렇게라도 그가 살아 있다면 보험 세일즈나 학습지 방문 교사를 해가면서라도 얼마든지 생활을 꾸려갈 수 있을 것 같았다. 대학 동창 중에 그런 친구가 있었다. 남편이 암에 걸린 뒤로 암웨이라는 회사의 외판 일을 하고 있었다. 그녀는 그 친구를 동정했던 자기를 비웃었다. 이제 그녀의 소원은 바로 그 친구처럼이라도 되는 거였다. 그가 살아 있기만 하다면 어떤 처지라도 견딜 수 있을 것 같았다. 그 없이는 세상이 다 두려웠다.
방학동에서 회사가 있는 서대문까지는 먼 거리였다. 지하철과 버스를 갈아탔다. 그녀는 전동차 안에서 두 번이나 외투 단추를 뜯겼던 그의 출근길을 생각했다. 그녀는 운전 학원에 등록했다. 면허를 따자마자 새 차를 샀다. 그녀는 그가 생각했던 것처럼 궁상스러운 여자는 아니었다.
그녀에 대한 그의 오해는 그것만이 아니었다. 그녀는 자신감이 없고 무능하지 않았다. 자료실 일에 쉽게 적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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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애 2년 결혼 생활 4년. 그녀는 언제나 캐묻기를 좋아했다. 사랑하는 사람의 모든 것을 알고 싶어 했던 그녀의 성격은 그를 짜증나게 했다. 하지만 지금 그녀는 그녀의 직장이 된 그의 직장에 대해서 꽤 많은 것을 알고 있었다. 그의 그녀에 대한 오해의 절정은 그것이었다. 그녀의 관심이 누구나를 짜증나게 하는 것은 아니었다. 그녀의 업무 처리에는 가정식 백반처럼 정감 같은 게 있었다. 가을 인사 때 그녀는 비서실로 발탁되었다. 그녀는 자기가 아직은 이십 대라는 데에 처음으로 주목했다. 컴퓨터를 배우고 향수를 사용하기 시작했다. 3년이 지나자 그녀는 승진을 했다.
-은희경, <짐작과는 다른 일들> 中-
회사 건물 9층에서 일하는 예술공연팀 차장을 만났다. 그도 그녀와 마찬가지로 첫번째 결혼에서 실패하고 그녀의 아들과 동감내기 아들을 홀로 키우고 있었다. 둘은 겉으로만 보기에도 상당히 잘 어울렸다. 그러나
짐작과는 다른 일들은 계속 된다.
남자들은 누구나 좋아하는 여자를 안고 싶어한다. 그런 한편 자기에게 안겨오는 여자의 정숙을 의심한다. 그녀의 눈에는 눈물이 넘쳐났다. 남자가 그녀를 그녀로서가 아니라 한 사람의 여자로 안았을 뿐이라는 것은 생각할수록 의심의 여지가 없어 보였다. 한 사람의 여자일 뿐이라면......
그녀는 입술을 깨물었다. 그렇다면 남자에게 그녀는 바람난 과부였을지도 모른다.
그녀는 남자 때문에 울었다. 눈물이란 철저히 이기적인 현상이며, 불편한 죄의식을 떼버리기 위해서 스스로가 택한 통과의례의 한 방식이란 것을 그때의 그녀는 모르고 있었다. 사람들은 울 때 대부분 자기가 왜 우는 지 진정한 이유를 알지 못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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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자에게서는 전화가 오지 않았다. 나흘이 지나자 그녀는 남자를 기다리는 대신 경멸하기로 결심했다. 그녀는 점심 한 끼 같이 먹기가 평생 소원이라고 농담을 하는 남자 중 하나인 영업부의 신차장과 함께 오페라의 마지막 공연을 보러 갔다.
그녀는 손수건으로 얼굴을 가리고 오페라 극장을 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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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녀는 자기가 왜 우는지 알지 못했다. 더욱이 왜 그도, 남자도 아닌 신차장에게 안겨 우는지 이해할 수 없었다. 그것을 이해하지 못한 채 그녀는 신 차장과 결혼했다.
-은희경, <짐작과는 다른 일들> 中-
오페라 '나비의 과부'는 장자가 죽자 장자의 아내가 남편의 무덤이 빨리 마르라고 부채질을 하고, 문상 온 후왕자에게 교태를 부리며 금방 죽은 사람의 골을 파서 눈에 얹어야 낫는다는 후왕의 병을 고치기 위해 장자의 관까지 뜯는다는 내용이다.
남여사이만큼 변화무상한 것도 없는 것 같다.
결혼전의 그 혹은 그녀가 결혼후의 남편, 아내의 모습과 같을 것이라는 오해와 착각 속에서 결혼을 하고, 더 이상 상대방이 나를 사랑하지 않으며 하루 빨리 헤어지기만을 손꼽아 바라고 있다는 오해와 착각 속에서 헤어진다. 인생이란 이처럼 짐작과는 다른 일들의 연속인 것일까?
그녀와 만나지 못한 한 달이 남자에게는 말할 수 없이 바쁜 시간이었다. 행사란 항상 준비할 때보다 끝났을 때 번거로운 일이 더 많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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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정이 생겨서 남자는 생각지도 않게 열흘 동안이나 광주에 따라다녀야 했다. 돌아와서는 다시 그 뒷정리에 매달렸다. 그동안 몇 번인가 그녀에게 전화를 했다. 그러나 공교롭게도 통화가 되지 않았다. 그뿐이었다. 남자는 그 한달이 그녀를 되찾기 위한 마지막 시한이었음을 알지 못했다. 아무리 강렬하다고 해도 그리움이란 얼마나 한가하고 무력한 감정인 것인지.
남자는 그녀가 떠난 이유를 알 수 없었다. 거기에 가장 큰 괴로움이 있었다. 여잔 다 그래. 그런 말말로 일반화할 수가 없었다. 남자에게 그녀는 한 사람의 여자 이상의 존재였다.
-은희경, <짐작과는 다른 일들> 中-
그렇게 남자가 그녀를 떠나 보낸지도 2년이 훌쩍 흘렀다. 그리고 우연히 황대리와의 잡담 속에서 짐작과는 다른 일이 일어났음을 알게 된다.
신 차장이 회사 그만두고 사업한다고 할 때부터 사이가 나빠졌다나 봐. 결국 다 말아 먹고 집까지 날렸잖아. 근데 이혼은 신 차장 쪽에서 하자고 했다던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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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여자 요즘은 암웨인가 하는 다단계 판매 있잖아. 거기서 외판을 한다고 하더라구. 사람 일이 참. 비서실에 있을 때는 분위기 있고 괜찮은 여자였는데. 나도 왜, 점심 한 끼 같이 먹는 게 소원이라고 농담하고 다녔잖아. 황 대리는 쓰게 입맛을 다셨다.
한 번도 아니고 두 번이나 실패했다면 어쩐지 께름직한 여자라는 생각이 들더라구. 애비가 다른 아들이 둘이나 딸려서 재혼하기도 쉽지 않을걸.
아들이 둘이라고? 남자는 불현듯 뭔가에 속은 기분이 들었다. 보름달이 스며들던 그날 밤 호텔의 창문이 생각났다. 남자는 고개를 가볍게 끄덕였다. 그러다가 깊게 두어 번 더 끄덕였다.
우리는 모두 삶에 속는다. 그러나 굳이 속지 않으려고 애쓸 이유도 없다. 유한한 앎을 가지고 무한한 삶을 어떻게 알 것인가. 알려고 하면 더욱 위태로워질 뿐이다.
-은희경, <짐작과는 다른 일들> 中-
<마이너 리그>라는 장편소설을 읽고 무지 실망했었다. 그리고 결심한 것도 아니건만 은희경이라는 작가는 서서히 내 기억 속에서 멀어져갔더랬다. 그런 작가를 새롭게 재발견하게 해준 작품이다. <짐작과는 다른 일들>은.
<누가 꽃피는 봄날 리기다소나무 숲에 덫을 놓았을까, 2002>는 중산층의 위선과 인간의 이중성에 대해 끊임없이 파고 들어 결국에는 적나라하게 폭로하고 마는 작가 특유의 장기가 유감없이 발휘된 작품이라 하겠다.
부모님의 사랑이 아닌 자랑으로써 키워진 소라는 또래에 비해 똑똑하고 교양이 있지만 시골 학교에서 이와 같은 '다름'은 결국 따돌림의 사유가 되기에 충분했다. 아이다운 동심을 잃어버린 소라는 사회로부터 강요된 임무를 수행하느라 엄청난 댓가를 치르며 성인이 되지만, 성인으로 성장한 소연-소라의 본명-은 주체성이라고는 눈씻고 찾아 볼 수 없는 의지박약의 여성일 뿐이다.
그리고 이런 그녀의 모습에 넌더리가 난 그녀의 남편은 서서히 그녀로부터 멀어지면서 바람을 피운다. 남편의 부정을 알게 된 소연는 스스로 자립하리라 결심하고 친척이 운영하는 회사에 낙하산으로 들어가 처음에는 월급만 축내는, 직원들 사이에서도 기피의 대상이 된다. 그렇지만 전체를 살펴보고 타인과 소통하는 방식에는 미숙하지만 소연 특유의 성격이 진가를 발휘하는 분야는 있기 마련이라서 마침내 회사에서 '제몫'을 충분히 해내는 커리어우먼으로 자리잡는다.
그런 그녀에게 김영재라는 남자가 다가온다. 그리고 그의 고백이 이어지는데...
사실, 나는 촌놈이에요. 땅 한 뙈기 없는 빈농에서 9남매 중 둘째아들로 자랐죠. 누나들은 열 살만 넘으면 읍내로 식모살이를 갔는데 셋째 누나가 들어간 집은 나하고 같은 반 여자아이네 집이었어요. 내가 열 세살 되던 해에 집으로 도로 돌아왔죠. 난 그게 싫었죠. 명절마다 다니러 온 누나한테서 그 여자애 얘기를 자세히 듣지 못하게 되었으니까요. 우리 시구들은 이듬해에 서울 변두리로 이사 왔는데 누나들이 공장 일을 해서 나를 공부시켰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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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연씨는 이해 못할 거예요. 어린 시절의 어떤 강렬한 결핍. 그리고 갈망이 나를 여기로 데려다 놓았어요. 난 운이 좋았어요. 모두가 다 꿈을 이루는 건 아니니까요. (......)
어린 시절 우리 반에 아주 똑똑한 반장 애가 있었는데, 남들은 잘 몰랐겠지만 우린 꽤 친했어요. 그 애가 나와 비슷한 결핍, 갈망을 갖고 있었다는 것도 남들은 몰랐죠. 정치가가 돼서 이 세상을 정의롭게 만들겠다고 호언하던 소년은 중학교도 못 가보고 열아홉 살에 공장 기숙사에서 자살했어요.
(......)
소연은 김영재의 입에서 무슨 말이 나올지 점점 두려워지기 시작했으며 유복하게 태어나서 별다른 시련없이 살아온 사람으로서 죽음 같은 엄청난 재난에 대해 듣고 있기가 편치 않았다. 어릴 때 소연은 남이 고통을 겪는 얘기를 들으면 아직 순서가 안 되었을 뿐 자신에게도 언젠가는 고통의 순번이 온다는 생각에 공포를 느끼곤 했는데 무슨 이유에서인지 갑자기 그때로 돌아간 듯한 기분이었다.
(......)
사실, 나 소연씨 잘 알아요. 난 당신 두려움 알 수 있다구요.
- 은희경, <누가 꽃피는 봄날 리기다소나무 숲에 덫을 놓았을까> 中-
김영재의 진지한 고백이 이어졌건만 아직도 소연은 김영재의 실체를 모른다. 그런 소연과 나란히 누운 김영재의 고백은 서서히 소연이 잊고 싶었던 과거로 향하고 있다.
김영재의 입에서는 자연스러운 반말이 새어 나왔다. 아직도 모르겠어? 뭘요? 네가 백일장 대회에서 다쳤을 때 약을 사다 준 게 나야. 이름도 기억하고 있어, 파상겔이라는 연고였지. 실과 시간에 네가 넘어졌을 때 선생님을 불러온 것도 나고, 또 첫눈 오던 날 도망치라고 개구멍도 알려줬잖아. 이년 동안 같은 반이었어. (......) 그리고 구두를 훔쳐다 버린 것도 나였어. (......) 그때 너 다쳤을 때 나뭇더미를 밀어버린 게 누군지 알아? 낙서를 하고 다닌 것은 나였어. 네가 군수 아들 좋아하는 거 참을 수가 없었거든. 하지만 나무를 밀었던 건 군수 아들 이현우였어. 이현우는 기억하겠지? 응. 집에서 벗어나기 위해서 나 혼자 속으로 이현우를 점찍었지. 소연의 말에 잠간 동안 짓고 있던 의아한 표정을 풀며 김영재가 말을 이었다. 어쨌든 모든 것을 다 이현우하고 반장이 짜고서 아이들을 시켰었어. 그때 네 편은 아무도 없었지. 알아. 소연이 고개를 끄덕였다. 근데 반장 말야, 죽었다니 정말 안됐다.
(.....)
소연의 목소리도 나지막하고 담담하게 들려왔다. 인생은 반복되나 봐. 한번 치인 덫에서 벗어날 수가 없어. 어른이 되어서도 늘 비슷한 일들이 닥쳐오거든. 그때마다 어린 시절 학습된 대로 반응하게 되고, 결과는 똑같아.
은희경, <누가 꽃피는 봄날 리기다소나무 숲에 덫을 놓았을까> 中-
분명, 은희경이라는 작가는 신경숙이나 공지영 등 비슷한 시기에 등단하고 90년대에 접어 들면서 활발하게 작품 활동을 한 여성 작가들과는 다른 그녀만의 어떤 것이 있었다. 1996년인가 아님 1997년인가 나는 은희경의 강연을 직접 들을 수 있는 기회가 있었다. 끝까지 자리를 지키지는 못했지만 그 당시 그녀는 30대 후반의 중산층 가정주부의 전형적인 분위기를 풍기고 있었다. 상당히 부끄럼이 많고 다소 고음의 목소리를 고분고분하게 울리던 그녀의 모습이 이제서야 제대로 떠오른다.
'그래, 그 당시 그녀의 가슴속에는 이런 말들이 담겨져 있었구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