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침이 고인다
김애란 지음 / 문학과지성사 / 2007년 9월
평점 :
<침이 고인다>는 작가의 첫 작품집 <달려라, 아비>의 뒤를 이어 나온 두번째 작품집으로, 주로
2005년에서 2007년 사이 각종 문예지에 발표된 단편 여덟편을 모은 것이다. 2002년 스물둘이라는 젊은 나이로
대산대학문학상을 수상하면서 혜성처럼 나타난 작가에 대한 문단과 독자의 관심을 이어간 작품집이라고 할 수 있다.
<달려라, 아비>와 <침이 고인다>는 각각 21세기와 함께 성인이 된, 소위 '88만원세대들의 자화상이자 넋두리다.
비록, 전쟁을 겪고 굶기를 밥먹듯 하진 않았지만 먹고 살기 위해 바둥거리는 부모 밑에서 유년기와 사춘기를 보내고, 마침내 대학생이
되어 상경하지만 기다리고 있는 건 도시 변두리의 반지하 자취방과 최저임금 아르바이트 뿐이다. '청춘'의 들끓는 고뇌도 불같은
열정도 없는 젊은이들은 소위 사회적으로 통용되는 '명함'을 얻기 위해 불철주야 매진한다. 누구는 신림동 고시촌에서... 누구는
노량진 4인용 독서실에서......
특히, 둘만의 오붓한 '공간'이 절실한 젊은 연인들의 성탄 전야 풍경을 그린 <성탄특선>은 기성세대로서 적게는 10살 많게는 20살 어린 '3포세대'의 아픔과 슬픔이 절절히 전해져왔다.
여자와 남자는 대학 때부터 사귀기 시작해 벌써 네번째 크리스마스를 맞는다. 그러나 두 사람이 함께 크리스마스를 보내는 건 올해가
처음이다. 첫번째 크리스마스 때, 여자는 남자에게 한마디 말도 않고 시골집에 내려가버렸다. 남자는 자신이 무슨 잘못을 한 게
아닐까, 통화가 안되는 휴대 전화를 붙들고 끙끙댔지만, 여자가 낙향한 이유는 단지 '옷이 없다'는 거였다.
(......)
두
번째 크리스마스 땐 남자가 고향에 내려가야 한다고 했다. 어머님이 편찮으시다는 이유에서였다. 남자는 그날 서울에 있었다. 옷이
아니라 돈 때문이었다. 남자는 졸업 후 일년 동안 취직을 못한 탓에 여자에게 많은 신세를 지고 있었다.
(......)
남
자는 여자와 크리스마스를 함께 보내고 싶었다. 저녁도 먹고, 선물도 주고, 와인이나 칵테일도 마시고, 평소 가던 곳보다 조금쯤 더
비싼 모텔에서 근사한 섹스도 하고 싶었다. 그러니까......남들처럼. 남자는 돈을 구할 수 없었다. 그렇다고 크리스마스 날까지
여자에게 모든 비용을 부담하게 만드는 형편없는 남자는 되고 싶지 않았다. 결국 남자는 거짓말을 했다. '어머님이 편찮으시다.'
그것이 자신과 여자에게 해줄 수 있는 유일한 크리스마스 선물이었다.
세 번째 크리스마스 즈음, 두 사람은 헤어진 상태였다. 여자가 취업 준비로 힘들어하는 동안, 남자는 야근과 과로 때문에 여자에게 마음을 쓰지 못했다.
(......)
그
리고 비로소 오늘, 이들은 둘만의 온전한 크리스마스를 맞이하게 되었다. 두 사람은 어느 때보다도 기쁘고 여유롭게 성탄을 맞을
준비가 돼 있다. 이제 남자에겐 번듯한 직장이 있고 여자에게도 깔끔한 구두와 소박한 정장이 있다. 두 사라은 조금쯤 세련돼졌고,
데이트 비용보다 주차 공간을, 옷보다는 주택 청약을 고민하는 나이가 되었다. 지금 이들에게 필요한 건 옷이나 돈이 아닌 '방'일
것이다.
-김애란, <성탄특선> p91~95 中-
'
젊음'으로 대변되는 20대는 젊어서 푸르고 싱그러운 만큼, 또한 젊기에 불확실한 미래로 불안할 수 밖에 없다. 사회 환경에 따라 각
세대가 보낸 청춘의 색채는 다르지만, 세대마다 개인이 어찌할 없어 감당해야 하는 삶의 무게에는 큰 차이가 없는 것 같다.
6.25 전쟁 세대가 전쟁의 아픔과 배고픔을 견뎌야 했고, 4.19세대가 독재와 고강도의 노동을 견뎌야 했으며, 소위
'386'세대가 시위와 데모로 점철된 청춘을 보낼 수밖에 없었듯이 말이다. 어느 세대가 더 행복하고 덜 행복하다고 말할 수
있겠는가.
김애란의 작품 속 등장인물들은 '이별'과 '좌절'의 트라우마 속에서 허우적거린다.
내
일의 행복을 위해 오늘의 행복을 저당잡힌 취업준비생과 아르바이트생 혹은 비정규직 저임금에 시달리는 대졸자(혹은 휴학생)들의 깊은
좌절감에 몸둘 바를 모르겠다. 아마도 이제 막 사십 고비에 접어든 '초짜' 중년이나 이제 막 젊음의 딱지를 떼어낸 삼십대라면
누구나 경험했을 취업의 좌절감이 생생하게 되살아 나리라. 무엇보다도 학원 강사를 '먹물들의 막장'이라고 표현한 부분에 이르러서는
마치 보면 안 될 장면을 우연히 '목격'하기라도 한 것처럼 일순 얼굴이 달아올랐다. 그리곤 나도 모르게 한동안 잊고 살았던 아니
깨끗이 잊고 싶었던 청춘의 씁쓸함이 입안 가득 단물처럼 고였다.
김애란의 단편들은 어딘지 모르게 떠올리고 싶지 않은 기억의 상처를 어루만지게 한다.
지금 되돌아보면 밤하늘의 별처럼 화려하고 눈부시게 빛나던 청춘의 어느 그늘진 한켠을......
열차가 노량진을 떠나고 있었다.
그러자 오랫동안 잊고 있던 일들이 떠올랐다.
내 인생의 성좌 중 어느 한 점.
유난히 흔들리며 약하게 빛났던 작은 별에 깃든 이야기.
노량진.
좌절된 꿈처럼 그곳을 감싸 안고 있던 성운과 고운 색의 먼지들.
-김애란, <자오선을 지나갈 때> p125 中-
그러니까 지금으로부터 한 이십여년전 나도 노량진에 있었더랬다.
청운의 꿈이라기보다는 취업의 압박감과 거듭된 좌절감에 시달리면서 한동안 노량진의 새벽을 밟고 다녔더랬다. <자오선을 지나갈 때>의 주인공(정아영)처럼 잠깐 머물다 갈 사람이라고 스스로를 위안하면서 말이다.
노
량진에는 머무는 사람보다 지나가는 사람이 많았다. 혹 오래 머물더라도 사람들은 그곳을 '잠시 지나가고 있는 중'이라 생각했다.
그것은 나도, 재수생 언니도, 민식이도, 총무오빠도 마찬가지였다. 사람들은 알고 있었다. 그렇게 '지나가는'곳에서의 생활, 관계가
어떤 것인지를. 나는 지하철에서 나와 같은 사람들을 알아볼 수 있었다.
-김애란, <자오선을 지나갈 때> p137~138 中-
지하철 노선도를 보면서 우주의 별자리를 떠올리는 작가의 상상력이 돋보인다.
어떤 작가의 말처럼 인간을 포함하여 우주의 일부분은 아무리 작더라도 모두 '질량보존의 법칙'의 적용을 받고 있는 것인지도 모른다. 즉, 사라지는 것이 아니라 다른 차원으로 이동하는 것이다.
김애란 작가 역시 인간의 실존적 범주를 머나먼 저 우주의 끝까지 길게 연장시키는 재주를 갖고 있다.
'눈 먼 물고기처럼 정해진 노선대로 움직이는 지하철 안에 앉아, 정해진 궤도를 정해진 속도로 움직이는 우주의 행성 속 '인간'임을 인식하고, 이를 타인에게 인식시키다니... 그 발상의 전환이 그저 놀라울 따름이다.
우리가 '지하철'을 타고 한점에서 또 다른 한점으로 이동하듯, 질량보존의 법칙에 따라 이 땅에서 사라진 생명들은 '블랙박스'를
이용하여 지구에서 우주의 어느 별로 혹은 그 반대로 우주의 어느 별에서 다시 지구로 이동해 오는 것일지도 모른다.
엄마 잃은 <플라이데이터리코더>의 어린 주인공의 얼굴에 작가의 얼굴이 그리고 다시 나의 얼굴이 겹쳐졌다. 어짜피 이 땅의
모든 어미는 새끼보다 먼저 떠날 운명을 타고 나지 않았던가. 하여, 새끼들은 모두 대부분 엄마를 잃는다. 어린 새끼에게 엄마와의
이별은 참을 수없는 상처이자 슬픔일 터. 영원한 이별이 아닌, 그저 잠시 잠깐의 헤어짐이라고 해두자. '질량보존의 법칙'에 따라
사라진 것이 아니라 이쪽 별에서 저쪽 별로 이동해간 것 뿐이라고...
나는 지하철 노선도를 보면, 오이도와 송탄이 매우 가까운 줄 알고 택시를 타면 금방이라고 말하던 친구가 떠오른다. 자가용만 타고
다녀 지하철 노선도 상에서 인접해 있으면 실제 거리도 그렇게 가깝다고 생각했던 것이다. 나는 그 친구가 농담이 아니라 진짜로
그렇게 생각했다는 걸 잘 안다. 그래서 화조차 낼 수 없었다. 다만, 4호선 오이도역과 1호선 송탄역 사이의 거리처럼 우리 둘
사이에는 친구지만 좁힐 수 없는 거리가 존재한다는 걸 다시 한번 확인했을 뿐이다.
김애란의 <침이 고인단>에 실려 있는 여덟 작품 중, 나는 <칼자국>이 가장 마음에 든다. 비록 '안목'은 없지만 문학적으로도 가장 완성도 높은 것 같고, 全세대를 아우를 수 있는 작품이 아닐까 싶다.
작품 <칼자국> 속에 등장하는 엄마는 '화장을 할 줄도 울 줄도 모르지만 순종적이지도 않은' 모성애의 전형이라 하겠다.
'난감한 남자'를 남편으로 삼은 죄로 20년 넘게 칼국수집 '만나당'을 운영한 엄마는 평생 '손안에 반지의 반짝임 대신 식칼의 번뜩임을 쥐고 살아 왔다.' 대략 난감한 그 남편이 바람을 피워도 무심한 듯 넘어가는 엄마....
'갚을 수는 없지만 잊어서는 결코 안되는 빚'이 있다면, 자식이 부모 특히 엄마에게 지고 있는 빚이리라. 김애란의 단편 <칼자국>은 바로 그 '빚'의 존재를 다시 한번 깨닫게 해주는, 별 다섯 '명품'이다.
'요즘 젊은 것들은 복도 많아. 우리 때에 비하면 세상 살기 얼마나 좋아졌어?!'라는 말을 달고 사는 기성세대가 아직도 있다면, 그들에게 김애란의 소설집을 읽어 보라고 추천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