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세 청소년 현대 문학선 10
이순원 지음, 이정선 그림 / 문이당 / 2005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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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게,

 내 19세의 신고식이었다.

 

이젠,

 정말 늘 푸르기만 해야 할......

 

 

 

 

유치하다고 생각했다.

사십대에 이런 책을 읽는다는 게...

 

낯간지럽다고 생각했다.

다시 십대의 그 시절을 떠올리는 게...

 

무엇보다도 머리로는 이해가 충분히 되나, 도무지 감정이 투척되질 않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좋은 작품이라는 데에는 공감한다.

나 역시, 마지막 책장을 넘긴 다음에는 감동을 받았으니까...

물론, 폭풍처럼 휘몰아치는 감동이라기보다는 잔잔하게 그러나 거듭거듭 몰려오는 파도와 같은 감동이라고 해야하리라... 

 

난 왠지모르게 자전적 작품에 많이 끌리는 편인데, 이 작품 역시 공간적 배경 때문인지는 몰라도 자전적 작품같다.

작가도 고향이 강원도 강릉이고 상고를 나왔단다. 이 소설의 주인공 이정수처럼...

 

그렇다면...?

작가도 열일곱의 어느 날...

빨리 어른이 되고 싶다는 생각에 학교를 그만두고 대관령에 올라가 고랭지 배추농사를 지었을까...?

대개는 부끄럽고 철없게 느껴지는 첫사랑을 아름다운 추억으로 만들어준 승희누나와 같은 친구의 누나가 있었을까...?

 

"정수야."

"예."

"너, 누나 좋아하니?"

"......많이요."

"감격스럽다. 내가 정수 그 말 가슴속에 간직할게. 정수도 오늘 내게 했던 말 영원히 잊지 말고. 우리는 거기까지야. 지금 정수가 한 말이 아름다운 건 정수가 지금 내게 한 말도 아름답지만, 그 말을 하는 정수의 나이가 아름답기 때문인 거야. 아마 스무 살만 지나가도 그 말이 스스로 아름답게 느껴지지 않을지도 몰라. 내 열여덟 살도 그랬거든. 선생님에게든 누구에게든, 어떤 때는 결혼한 선생님에게까지 내 가슴속에 품고 있던 생각들 다 아름다웠을 거야. 지금 정수도 그렇고. 그렇지만 스무 살이 넘어가면서 똑같은 생각도 어떤 것은 아름답지 않게 되어가는 것이 있어. 지나고 보면 정수 형에 대한 생각도 그랬고, 다른 생각도 그런 게 있었을 거고."

나는 눈이 가물가물한 배추밭의 능선만 바라보았다. 정말 누나가 그렇게 멋지게 말할지 몰랐다. 스무 살이 넘어 어느 한순간에 이르면 우리 마음을 보는 눈도 그렇게 깊어지는 것인지 몰랐다. 누나는 내가 부끄럽지 않게, 그리고 먼저 한 내 고백이 부끄럽지 않게 따뜻하게 내 마음을 만져주고 있었던 것이다.

(......)

나는 그 고백을 앞으로 잊지 않을 거라고 생각했다. 누나도 잊지 않을 것이다. 그러면서 그런 생각을 했다. 훗날 서른쯤 나이를 먹어, 또 마흔이나 쉰쯤 나이를 먹은 다음 오늘 이 시간을 다시 생각할 때 지금처럼 그때도 그것이 부끄럽거나 철없지 않고 아름답게 추억되었으면 좋겠다고. - 이순원, <19세>  p215~217 中-

 

이 부분은...

읽는 이로 하여금 자신의 첫사랑을 떠올리게 만든다. 

만약,

철부지 시절의 어설픔으로 아련한 추억 대신 '풋ㅡ'하고 웃음이 나온다면, 그 사랑은 '첫사랑'이 아닌 '풋사랑'이었으리라...

이런 감정의 경험을 꼭 '사랑'이라 불러야 하는지 난 참으로 유감이다. 이건 그냥 사춘기에서 성인으로 성장하는 과정... 혹은 사람과 사람 사이의... 조금은 색다른 감정이라고 볼 수 있지 않을까? 

 

무릇, '첫사랑'이라면...?

이처럼 정수와 같은 것이어야 하지 않을까?!

너무 애틋하고 소중해서, 솟구치는 본능적 욕망조차 넘어서 버리는 그런 어떤 거 말이다...

 

여자가 상을  치우고, 벽장문을 열어 요를 내려 깔고, 자신의 속치마의 어깨 끈을 풀 때까지만 해도 이제까지 경험해보지 못한 몸과 마음으로의 어른 세계에 대한 적당한 두려움과 적당한 설레임, 적당한 흥분 같은 것이 있었다. 그러나 참으로, 아니, 참으로가 아니라 그 어떤 말로도 그것을 다 설명할 수 없을 만큼 그 뒤끝은열 배의 두려움과 열 배의 어둠보다 더허망하고도 허망하던 어른의 선이 있었다. 지난 가을 책과 책가방, 교복을 불 싸지를 때보다 더 크고 깊은 죄의식이 내 가슴 밑바닥으로부터 스며들며 슬픔의 강을 이루던 것이었다. 내 살에 닿아 있는 여자의 몸조차 벌레의 그것처럼 보이던 것이었다. 나는 거칠게 여자의 몸을 밀어냈다. - 이순원, <19세> p203~204 中-

 

 

이 순간, 정수가 참 부러웠다. 

주인공 정수처럼 어른이 된다면 참 좋을 것 같다. 그처럼 강렬하고... 아름답고... 순수한... 19살이 내게도 있었더라면...

 

그리고,  

많이 배운 그 어떤 사람보다도 더...

많이 갖은 그 어떤 사람보다도 더...

부모다운 부모님을 둔 정수가 너무 부럽다. 

 

"사람이 늘 그렇게 살 것도 아닌데 편한 걸 알면 꾀가 나게 된다. 편한 걸 알게 되면 지 사는 데가 싫어지고 며칠 살아본 편한 곳만 자꾸 생가갛게 돼. 니 거기 가서 공부 잘했다니 애비도 좋긴 하다만, 불편하게 사는 사람은 불편한 게 무엇인지도 알고 또 참고 커야 한다. 지금 그게 그렇게 돼 있는 니 몫이면 말이다. 무슨 말인지 아나?" -p049

 

"나중에 커보면 안다. 사람이 세상을 살아가는 데 공부 많이 한 사람과 적게 한 사람의 차이는 그렇게 나지 안흔다. 잘한 사람과 못한 사람의 차이도 그렇고. 그렇지만 책을 많이 읽은 사람과 적게 읽은 사람의 차이는 몇 마디 얘기만 나눠봐도 금방 눈에 보인다. 니가 대관령에 가서 농사를 짓든 뭘 하든 애비가 보내주는 책만 제대로  챙겨 읽는다면 학교 공부 손을 놓는다 해도 어디 가서 무식하다는 소리는 듣지 않을 게다." -p145

 

"그래. 그동안 니가 지은 건 농사가 아니다. 운이 좋아 남이 만지지 못한 돈을 만지긴 했어도 그거야 농사랄 것도 없이 노름이고 장난인 거지. 너는 그걸로 무얼 벌었다고 생각했을지 모르겠다만 더 크게 잃은 것도 있을 게다. 하지만 그냥 허송세월을 한 시간만은 아닐 게다 .그건 앞으로 니가 하기 나름인 게지." -p220

 

그나저나,

작가에게도 이런 부모님이 계셨을까?

왠지 그랬을 것만 같다.

 

이젠 부모가 되었을 나이인 작가에게도 정수같은 아이가 있을까?

왠지 그럴것만 같다.

 

 

진솔함과 솔직함으로 무장한 '각주'를 보면, 이런 내 추측이 단순히 억측만은 아니라는 걸 미루어짐작 할 수 있지 않을까 싶다. 1999년도에 쓰여졌으니 1957년생 마흔줄에 접어든 작가가 십대인 자신의 자식을 키우면서 20여년 전 십대의 끝으로 되돌아간 흔적이 곳곳에서 감지된다.

 

 

열일곱 어른이 되고 싶었던 정수는...

마침내,

어린 시절 잠시 기르다 날려 보낸 파랑새를 다시 가두듯 그렇게 열아홉에 다시 학교로 돌아온다.

 

왜냐하면...

자신이 2년동안 한 건, 어른노릇이 아니라 어른놀이였음을 깨달았기에...

 

왠지 그 기간동안 내가 했던 것은 어른 노릇이었던 것이 아니라 어른 놀이였다는 생각이 자꾸만 내 가슴을 무겁게 하던 것이었다. 이런 상태로 다시 한 해가 지나고 또 한 해가 지나 스무 살이 된다고 해도, 아니 그보다 더 많은 시간이 흘러 서른이 되고 마흔이 된다 해도 그 일에 대해 어떤 후회거나 미련 같은 것이 남는다면 그때에도 내가 하는 짓은 여전히 어른 노릇이 아니라 어른 놀이일 것 같은 생각이 들던 것이었다. 지난해와 마찬가지로 이번 해에도 배추농사에서 큰돈을 만졌다 하더라도 지난여름 어느 날 갑자기 들기 시작한 그 생각만은 변함없을 것 같았다. 같은 나이의 다른 아이들이 하지 못하고 있는 무언가를 내가 하고 있다는 것이 아니라 같은 나이의 다른 아이들이 다하고 있는 어떤 것을 나만 하지 못하고 있다는 생각이 뒤늦게야 어떤 후회거나 소외감처럼 조금씩 내 가슴에 스며들어 오던 것이었다.

- 이순원, <19세> p219~220 中-

 

 

이렇게 정수의 열아홉 성인식은 끝이 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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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년이 온다
한강 지음 / 창비 / 2014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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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책들이 있다.

읽은 다음 몇 일이 지났음에도 불구하고 독후감을 쓸 수 없는....

심지어, 이미 손에는 다른 작가의 다른 작품이 들려있음에도 불쑥 불쑥 떠오르는....

 

한강의 <소년이 온다>는 바로 그런 책이다.

1980년 5.18을 배경으로 한다.

그러나, 만약 또 '그 이야기'라고 생각한다면...?

이 책을 반드시 읽어보라고 권하고 싶다. 

 

우리나라에서 5.18을 배경으로 한, 소위 '후일담' 문학은 이미 문학의 한 부분을 차지하고 있을 정도로 한시절을 풍미(?)하지 않았나 싶다. 공지영이나 공선옥같은 이들은 이 사건이 없었다면 과연 작가가 될 수 있었을까? 싶을 정도다. 이는 작가로서 그들의 실력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그만큼 이 사건을 작품의 주제 혹은 소재로 삼아 깊숙하게 천착했다는 의미에서다. 

그래서 나 역시 '5.18'을 소재로 한 작품들을 여러편 만나봤고, '꽃노래도 많이 들으면 물리듯이' 그렇게 식상함을 갖고 있었더랬다.

 

그런데....

한강의 <소년이 온다>는 전혀 뜻밖이었다.

 

같은 노래를 어떻게 편곡하느냐에 따라 전혀 다른 노래가 되듯, 그녀의 작품은 지금까지 나온 '5.18'관련 작품 중, 베스트 오브 베스트가 아닐까 싶다.

 

정미와 정대 남매....

이들 남매가 세들어 살던, 주인집의 막내아들 동호...

동호와 함께 마지막까지 그곳에 있었던 선숙, 은주 누나....

그리고 또 다른 많은 이들....

 

그날 이후.

우린 다 알고 있다. 한국 사회에서 빛고을 '광주'는 단순한 지명이 아닌, 남다른 의미를 갖는다 걸... 그리고 광주 출신이라면 왠지 모르게 옷깃을 여미게 되고 그 사람 앞에서만큼은 행동거지를 조심하게 된다는 걸....

이런 감정을 '부채감'이라고 하는지 혹은  '죄책감'이라고 하는지 잘 모르겠으나 단순한 '호기심'이나 '부담감'이 아닌 것만은 분명하다. 

뭐랄까...?

함께 하지 못했음에서 오는 미안함과 똑바로 바라보지 못했음에서 오는 자책감이 서로 뒤엉킨 그런 심정이랄까.

 

광주 출신으로 열살 나던 1980년 그해 1월 서울로 이사를 왔다는 작가...

타지역 출신들도 이러할진데... 비록 어린 나이라고는 하더라도 눈치는 빤했을 그런 나이에 마주한 5.18은 이젠 중년이 된 작가를 오랫동안이나 따라다니지 않았을까 싶다.

 

마침내,

작가는 용기를 내어 영혼들을 불러오고 그들과 대화를 나눈다.

 

 

무명천을 걷기 전에 너는 눈을 감지 않는다. 피가 비칠 때까지 입술 안쪽을 악물며 천을 걷는다. 걷은 다음에도, 천천히 다시 덮으면서도 눈을 감지 않는다. 달아났을거다,라고 이를 악물며 너는 생각한다. 그때 쓰러진 게 정대가 아니라 이 여자였다 해도 너는 달아났을 거다. 형들이었다 해도, 아버지였다 해도, 엄마였다 해도 달아났을 거다.  -한강, <소년이 온다> p45 中-

 

 

두려움을 견디며 나는 누나를 생각했어. 이글거리는 태양이 남쪽으로, 더 남쪽으로 팽팽히 기우는 걸 보면서, 뚫어지게 내 얼굴을, 감긴 눈꺼풀들을 들여다보면서 누나를, 누나만을 생각했어. 견디기 어려운 고통이 느껴졌어. 누나는 죽었어. 나보다 먼저 죽었어. 혀도 목소리도 없이 신음하려고 하자, 눈물 대신 피와 진물이 새어 나오는 통증이 느껴졌어. 눈이 없는데 어디서 피가 흐르는 걸까, 어디서 통증이 느껴지는 걸까. -한강, <소년이 온다> p50 中-

 

세상에서 제일 무서운 게 뭐라고 생각하는가?

마마, 호환, 돈도 아닌, 바로 양심이라고 말한다.

그들은...

계엄군으로부터 최후의 통첩을 받고도 시청을 떠나지 않았던 그들은...

 

양심.

그래요, 양심.

세상에서 제일 무서운 게 그겁니다.

(...)

모든 사람들이 기적처럼 자신의 껍데기 밖으로 걸어나와 연한 맨살을 맞댄 것 같던 그 순간들 사이로, 세상에서 가장 거대하고 숭고한 심장이, 부서져 피 흘렸던 그 심장이 다시 온전해져 맥박 치는 걸 느꼈습니다. 나를 사로잡은 건 바로 그것이었습니다. 선생은 압니까, 자신이 완전하게 깨끗하고 선한 존재가 되었다는 느낌이 얼마나 강렬한 것인지. 양심이라는 눈부시게 깨끗한 보석이 내 이마에 들어와 박힌 것 같은 순간의 광휘를.   -한강, <소년이 온다> p114~116 中-

 

그저 양심때문에,

목숨을 잃어야 했고...

그저 양심때문에,

간신히 살아났어도 제대로된 삶을 이어가지 못했던 그들...

 

그후 우리는 이따금 만나 함께 술을 마셨습니다. 서로가 자격증 시험에 떨어지고, 교통사고를 내고, 빚이 생기고, 다치거나 병을 얻고, 정 많고 서글서글한 여자를 만나 잠시 모든 고통이 끝났다고 믿고, 그러나 자신의 손으로 모든 걸 무너뜨려 다시 혼자가 되는 비슷한 경험을 거울 속 일그러진 얼굴처럼 지켜보는 사이 십년이 흘렀습니다. 하루하루의 불면과 악몽, 하루하루의 진통제와 수면유도제 속에서 우리는 더이상 젊지 않았습니다. 더이상 누구도 우리를 위해 염려하거나 눈물 흘리지 않았습니다. 우리 자신조차 우리를 경멸했습니다. 우리들의 몸속에 그 여름의 조사실이 있었습니다. 검정색 모나미 볼펜이 있었습니다. 하얗게 드러난 손가락뼈가 있었습니다. 흐느끼며 애원하고 구걸하는 낯익은 음성이 있었습니다.   -한강, <소년이 온다> p126 中-

 

다 알고 있다고 생각했고...

잘 처리되었다고 생각했더랬다.

가해자들은 이미 죄과를 충분히 받았으며, 피해자들의 명예회복과 보상 또한 잘 이루어졌다고...

 

그런데도...

왜 이렇게 가슴이 미어지는 걸까?

왜 이렇게 억울한 느낌이 사라지지 않는 걸까?

 

이제야 할 것 같다. 

이 세상엔 그 무엇으로도  치유될 수 없는 상처도 있다는 걸....

.

.

.

한강의 <소년이 온다>는 참으로 놀라운 작품이다.

그나저나...

글솜씨도 유전되는 걸까...?

그렇다면,

우리 부모님은 나에게 글솜씨를 물려준 걸까...? 아닐까...?

작가 한강은 작가 한승원의 친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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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의 노래
김훈 지음 / 문학동네 / 2012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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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명량>이 1000만을 돌파했다고 한다.

1000만!

거칠게 계산해도 우리나라 인구가 4000만이 넘으니 노약자를 제외한 성인 중 1/2은 봤다는 얘기다.

'나도, 볼까?' 하다가 말았다.

극장에 사람들이 넘실댈 것 같다. 

나란 인간, 인파에 심히 취약하단 말이지....-.-;

지난 봄에도 뒤늦게 <겨울왕국>을 보려고 큰 맘먹고 갔다가 평일 한낮 극장안에 줄서 있는 사람들을 보고는 발길을 돌린 전력이 있었지...


대신, 책 한권을 집어 들었다. 

21세기 새천년과 함께 세상에 나온 책,

나오자마자 화제를 몰고 온 책,

그리고...

무엇보다도 '남자의 남자에 의한 남자를 위한 책',

바로 <칼의 노래>다.


<칼의 노래>는 신문기자로 일하다가 마흔이 넘어 작가가 되고 쉰이 넘어 쓴 단 한편의 장편으로 대표작가 반열에 오른 김훈의 역사소설이다.


 

작가는 이십대 언저리에 읽은 <난중일기>에 깊히 매료된 나머지 이순신을 수십년동안 마음에 품고 살아온듯 싶다. 

1인칭 주인공 시점으로 전개되는 책을 읽고 있노라면, 충무공에 대한 작가의 감정이입의 정도가 매우 깊고 넓다는 것에 놀라게 된다. 작가는 스스로 충무공이 되어 그의 삶과 죽음, 슬픔과 두려움, 희망과 좌절을 그려내고 있다. 


 

<칼의 노래>는 1597년 정유재란이 터지자, 순신이 풀려나 '백의종군'하는 시점부터 전개된다.

아이러니가 아닐 수 없다.

만약, 적이 다시 쳐들어오지 않았던들 순신은 과연 살아남을 수 있었을까?

임금의 뿌리깊은 질투와 의심과 좌절을 가라앉힐 수 있었을까...?

갈갈이 찢긴 조국강산을 되살리고, 흩뿌려진 백성의 피와 눈물을 닦아낼 수 있었을까...?

어쩌면 처음부터 이순신은 희생양으로서 이 땅에 태어난 것인지도 모른다... 



 

수졸들이 여자들의 시체를 들어서 밭둑 위로 옮겼다. 굶어 죽고 병들어 죽은 피난민들의 시체 20여구가 밭둑에 쌓여 있었다. 수졸들은 묵은 밭 가운데 커다란 구덩이를 파놓았다. 역질이 돌고 있었으므로 구덩이는 깊었다. 수졸들이 시체를 하나씩 구덩이 안으로 던졌다. 수졸들은 시체의 팔다리를 마주 잡고 흔들다가 공중으로 휙 날렸다. 시체는 구덩이 안으로 떨어져 쌓였다. (......)

나는 개별적인 죽음을 이해할 수 없었다. 온 바다를 송장이 뒤덮어도, 그 많은 죽음들이 개별적인 죽음을 설명하거나 위로할 수는 없을 것이다.

-김훈, <칼의 노래> p102~104 中-

 


순신은 전쟁의 실체를 보았다.

적이 죽는다고 해서 내가 사는 것도 아니요, 내가 죽는다고 해서 적이 사는 것도 아닌 것임을... 

전쟁을 일으킨 장본인(정치인들)은 모두 살고, 전쟁과는 아무런 연관도 없는 백성들만 죽는 것.

이것이 바로 전쟁인 것임을...

충무공은 베어낸 적들의 죽음 앞에서 인간의 개별적인 죽음을 마주하며 어찌할 수 없는 깊은 자괴감과 슬픔에 빠진다.


한편, 전쟁의 실체와 개별적 죽음의 비애를 외면하는 조정 대신들은 사악했고, 그들에 둘러싸인 임금은 무능했다.

왜군을 막아줄 요량으로 조선에 파견된 명의 군대는 싸움은 하지 않은 채, 강화도와 중부지방 요지에 둥지를 틀고 들어앉았다.

일개 장수가 한나라의 임금을 모욕해도 죄를 물을 수 없고, 적군과 내통해도 이를 막을 수 없었다.

그 당시 조선은 스스로를 지켜낼 수 없고 자신의 운명을 스스로 결정할 수도 없는 '노예'와 다름 없어 보였다. 


 

적들은 조선인 포로들 중 극소수는 데리고 가기로 하고 나머지는 모두 죽였거나, 해안 진지에 배치했다. 적들은 조선인 포로들 중 병약자 3백 명을 죽여서 시체를 바다에 버렸다. 조선인 포로를 죽일 때, 적들은 포로를 바닷가 창고에 가두어놓고 하나씩 끌어내서 목 베었고, 시체를 배에 싣고 외항으로 나갔다. 광양만 바다에는 적병들의 시체와 조선인 포로들의 시체가 섞여서 떠다녔다. 시체들은 모두가 머리가 잘려 있었다. 적들은 베어낸 머리통을 소금 창고에 보관하고 창고 주변에 경비 병력을 배치했다. 이 머리통들의 용도는 적들이 바다에서 퇴로를 열 때 진린에게 바칠 뇌물일 것이라고 정탐들은 판단했다. 

-김훈, <칼의 노래>p297~298 中-

 


제 나라 백성도 아니요 제 나라 영토도 아닌 조선을 위해 명나라 군인들이 목숨을 내놓고 싸우길 바란다는 건, 처음부터 순진한 발상이었다. 싸움보다는 명분을 얻으려 혈안이 되어 있고 심지어는 퇴각하는 적군과 내통하는 명나라 수군 대장 진린 앞에서 충무공은 한없는 울분을 삭혀야만 했으리라.

 


 

비록 그 당시로서는 결코 젊지 않은 나이인 50줄에 들어섰지만 순신 역시 살고 싶었을 것이다.

살아서 자자손손 부귀영화를 누리고 싶었을 것이다.

그러나 그는 이미 자신의 운이 거기까지 미치지 못할 것임을 일찌감치 깨달았다. 그는 살고 싶었고 살 수도 있었지만 그 길을 선택하지 않았다.

충무공의 담대하고도 위대함은 바로 자신이 희생양이 되어야한다는 사실을 스스로 잘 알고 있었으며, 또한 이를 피하지 않았던 점에 있지 않을까 싶다.


 

바로 이러한 점 때문에,

 

그는 평범했지만 또한 평범치 않고...

나약했지만 또한 나약하지 않으며...

살아있되 살아있는 것이 아니요, 죽었으되 죽은 것이 아닌 인물이다. 

 



이와 같은 충무공의 깊은 내면을 김훈은 일찌감치 엿보았다.  물비늘에 흔들리는 파도처럼 넘실거리는 그의 문장들은 바로 복잡다단한 충무공의 마음을 상징하는 것처럼, 읽는 이의 마음을 내내 휘감고 돈다.


이름있는 자들에 의해 만들어지는 역사란, 이름없는 민중들의 삶이다.

이 점을 잘 알았던 충무공은 <난중일기>로 자기 자신의 역사를 써내려갔다. 만약 <난중일기>가 없었더라면 우리의 역사는 그를 어떻게 기록하여 기억했을까...?

새까맣게 잊혀졌거나 아니면 역적 죄인으로 우리 앞에 등장하지 않으리란 보장 또한 없지 않으리라...

생각이 여기에 미치자,  <난중일기>의 중요성에 다시 한번 심장이 울려온다.



순신은 스스로를 잊지 않기 위해 일기를 썼고, 시간에 의해 잊혀지지 않기 위해 일기를 썼다.

그는 일기로써 자신의 삶을 기록하고 더 나아가 역사에 기억됨으로써 마침내 영웅으로 거듭날 수 있었다. 

 




 

 

일찍이 수전 손택은 '일기란, 단순히 신변잡기를 기록하는 게 아니라 자아를 창조하고 규정해 가는 과정'이라고 했다. 

 

.

.

.

하루 하루 일기를 쓰고 있는 나, 부끄러워진다.

일상의 편린들과 감정의 조각들만 격하게 토해내고 있는 내 일기들은 과연 무얼 위한, 누굴 위한 기록이란 말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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식물들의 사생활
이승우 지음 / 문학동네 / 2000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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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어떻게 표현할 길이 없구나...

 

형의 여자를 흠모하는 남자...

두 다리에 장애를 입은 아들을 업고 사창가를 찾아가는 엄마...

 

짧은 인연의 남자를 잊지 못하고 평생을 기다리는 여자...

내가 아닌 다른 사람을 사랑하는 그녀를 포기하지 못하는 남자...

 

줄거리만 본다면 분명 이 작품은 신파에 막장 드라마다.

 

부록으로 실린 작품평을 먼저 읽은 탓에 줄거리까지 꿰고 있었던 게 실수라면 실수였을 것이다. 1/3 넘게 진도가 나갈 때까지 작품에 몰입할 수 없었다. 무엇보다도 등장인물들의 어처구니 없는 행동과 사고방식을 납득할 수 없었고, 납득하지 못하니 공감할 수도 없었다.

 

나는, 그녀에 대한 내 사랑이 어째서 허물인가, 무엇이 내 사랑을 당당하지 못하게 만드는가, 하고 물었다. 나는 나에게 묻고 스스로 대답했다. 그것은 형의 존재였다. 나는, 하필이면 형의 여자를 사랑하게 되었는가?하고 묻지 않고, 왜 내 사랑 앞에 형이 장애물로 있는가? 하고 물었다. 모든 생각이 나로부터 비롯하고, 나를 중심으로 돌고, 나에게서 멈췄다. 내가 태초였다. 내가 있기 전에는 아무것도 없었다. 나의 사랑이 있기 전에 있었던 어떤 사랑도 실체가 아니었다. 실체가 아니므로 인정할 수도 없는 것이었다. 나의 사랑이 있기 전에는 형의 사랑도 없었고, 없어야 했다. 있었다 하더라도 그것은 실체로 인정할 수 없었다........이쯤 되면 심각하지 않은가? 이쯤 되면 위험하지 않은가? 그랬다. 내 사랑은 심각한 사랑이었고 위험한 사랑이었다.

 

-이승우, <식물들의 사생활> p63 中-

 

작중 화자이자 형의 여자를 사랑하는 주인공의 사랑은 상대를 '향한' 열정이다. 

이유도 조건도 없다. 그러므로 그와 그녀 혹은 주변 인물들이 처한 상황은 고려 대상이 되지 못한다. 모든 사랑이 특별한 건 제각각 처한 상황이 다르기 때문이라는 사랑의 특수성을 그는 이해하지 못한다. 한 가지 생각에 맹목적으로 집착하게 만드는 열정은 그에게 터무니 없는 자신감을 불어넣었을 뿐만 아니라 '내가 이렇게 사랑하는데 그녀 또한 나를 사랑하지 않을 까닭이 없다'는 환상을 만들어냈다.

 

분별이 생략된 열정은 위험하다. 이런 맹목적인 열정을 우리는 종종 사랑이라고 착각한다. 그래서 더더욱 위험하고 치명적이다... 

 

그런 그가 다시 집으로 돌아온다.

두 다리가 불구가 된 아들을 등에 업고 욕구를 해소시켜 주기 위해 사창가를 찾아가는 어머니를 본다.

발작으로 엉망이 된 아들의 방을 치우고 꼼꼼하게 목욕까지 시켜주는 아버지를 본다.

좌절된 사랑으로 불행의 늪에 빠져버린 사랑하는 여자를 본다.

그리고...

그의 사랑이 눈을 뜬다.

사랑은 상대를 '향한' 열정이 아닌, 상대를 위한 '분별'임을 깨닫는다.

 

잠깐만!

여기까지 읽고나서 만약 이 작품을 앞으로 읽으실 예정이시라면 더 이상 이 글을 읽지 마시길 정중히 부탁드립니다.  그리고 참고로 작은 팁((tip) 하나 더 드리자면, 부록으로 실려 있는 작품 해설도 절대로 먼저 읽지 말기를....

 

 

그녀의 굽은 어깨를 가만히 토닥거리며 아무것도 걱정할 게 없다고 삶이란 생각처럼 엄숙하지도 않고 기대처럼 정연한 것도 아니라고 맑았다가 흐리고, 비가 오다 해가 뜨는 거라고, 그런 게 삶이라고 속삭여주고 싶었다. 하지만 그렇게 하지 못했다. 자꾸만 형의 얼굴이 떠올랐다. 자꾸만 형의 얼굴이 떠올라서 나를 제지했다. 북받쳐오르는 감정을 추스리지 못하고 흐느끼는 그녀를 가만히 지켜보고 있다가 나는 조용히 도서관을 빠져나왔다.

 

-이승우, <식물들의 사생활> p121~122 中-

 

여기 또 다른 사랑이 있다.

사랑은 사람마다 그리고 매번 각기 다른 빛깔로 다가온다고 했던가.

그래서 여러번 사랑을 해본 사람도 사랑을 깨닫지 못하고 스쳐지나치기도 한다.  마찬가지의 이유로 한번도 사랑을 해보지 않은 사람도 단번에 사랑임을 알 수도 있다. 

 

학교를 중퇴하고 병든 아버지를 부양하던 스물한살 꽃같은 그녀에게 사랑이 찾아왔고, 그녀는 단박에 알아차렸다. 이게, 사랑이라는 걸...

 

그렇게 왔다. 사랑은. 마치 눈에 띄지 않은 사이에 꽃봉오리가 벌어지듯이, 그렇게 천천히. 사랑이었을까, 그러나 사랑이 아니라면 그것이 무엇이란 말인가.

 

-이승우, <식물들의 사생활> p155~156 中-

 

짝사랑은 참 힘들다.

내가 아닌, 다른 사람만 쳐다보는 상대방...

좌절된 사랑을 위로하기 위해서라도 아니 내가 숨쉬고 살아가기 위해서라도 잊어야 한다. 그따위 사랑은...

대부분의 사람들은 그렇게 한다.  그런데 그렇지 못한 사람들도 있다. 

 

그녀를 사랑하게 될 거라는 사실을 처음 만나던 날 예감했었다. 그리고 그때부터 지금까지 단 한순간도 그녀를 사랑하지 않은 적이 없다, 그녀가 그 사람을 그때 이후로 단 한순간도 사랑하지 않은 적이 없는 것과 같이... 내 눈에 다른 사람이 보이지 않는 것처럼 그녀에게는 내가 보이지 않았다.  그렇지만 그런 건 상관없었다, 왜냐하면 그녀에 대한 내 사랑만으로 나는 충분히 행복했으니까, 나에게 사랑하는 행복을 알게 해준 첫번째 사람이고, 유일한 사람이다, 그리고 그 이유만으로도 나에게는 너무나 소중한 사람이다.

 

-이승우, <식물들의 사생활> p259~260 中-

 

'나를 사랑하지 않는다'는 것이 내가 상대방을 사랑하지 않을 이유가 될 수 없었다는 이 남자...

이 남자의 마음을 잴 수 있는 줄자가 있다면 족히 2만킬로는 넘을테지...

지구의 둘레가 4만킬로니 딱 지구 반바퀴, 태평양을 가로 지를 만큼의 거리....

 

 

읽는 동안에는 잘 몰랐는데....

이 작품, 참 깊고 넓다.

마치 바다처럼...  

마치 하늘처럼...

 

아니, 아니,

땅속 깊이 파고드는 나무처럼...

하늘 높이 솟아오르는 나무처럼...

바다를 품어 안은 나무처럼...

 

사랑이란, 스펙트럼처럼 제각각의 빛깔을 띄고 있다. 그래서 이 세상에 똑같은 사랑이란 존재하지 않는다. 

 

 

 

2000년도에 출간되었지만 올해 재출간된 작품이다.

그만큼 독자들 사이에서 읽혀지고 또 읽혀지는 작품이란 의미일테지...

2008년 노벨문학상 수상작가인 르 클레지오가 '어떻게 읽어도 고갈되지 않는 무궁무진한 작품'이라고 극찬한 이유를 알 것도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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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국보다 낯선 오늘의 젊은 작가 4
이장욱 지음 / 민음사 / 2013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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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이하고 낯설다.

마치 하루키 소설과 같은 느낌이랄까...

참고로,

나는 하루키 소설을 좋아하지 않는다. 아니, 좋아하려고 무지막지 노력했건만 번번히 실패했다.

 

 

 

그러니까...

나에게 하루키 풍의 소설이란 남들은 좋다고 난리인데 나에겐 그저 그런 작품을 의미한다.

이장욱의 이 소설 역시 나에겐 하루키 풍의 소설에 속하는 셈이다.  

 

 

 

웬지 나만 속은 것 같고... 웬지 나만 작품 속에서 뭔가를 놓친게 아닐까... 싶어, 웬지 자꾸만 스스로를 의심하게 만드는... 그런, 괘씸한 작품이다.

 

 

 

이장욱이라는 이름은 책소개 블로그를 통해서 최근에 알았다.

블러거들의 급칭찬에 급영업을 당했다고나 할까...

 

 

 

 

 

 

 

이야기 구조는 아주 마음에 든다.

A라는 친구의 급작스런 사망소식에 김, 정, 최, 염이라는 네명의 절친이 문상을 가면서 제각각 A를 회상한다. 

그리고 이 과정에서 현실과 상상, 과거와 현재, 미래가 뒤섞여 있을 뿐만 아니라 반전과 역설 그리고 물론 패러디까지 담겨 있다.

 

 

 

주제목격인 <천국보다 낯선>을 비롯해서 13개의 소제목 역시 모두 영화 제목을 차용했다. 내가 본 영화는 단 한편도 없었다. 그나마 <천국보다 낯선>이라는 오래된 영화 제목만 어디선가 들어본 것 같고, 나머지는 하나같이 어렵고 난해한 영화들이다.  일반 독자들보다는 평론가들이 좋아할 법한 작품들이다.

 

 

 

이 작품은 단순히 영화제목만을 따온 것이 아니라 영화 속에 나오는 대사와 장면은 물론이고 분위기와 영화 자체가 주는 느낌까지 효과적으로 차용한 듯 싶다. 결론은 이 열 네편의 영화들을 다 섭렵한 다음에야 이 소설을 제대로 이해할 수 있다는 얘기다.

 

 

 

A는 모든 친구들의 뮤즈가 아닌가 싶다.

경영대를 나와 금융권에 입사한, 김이 가장 먼저 A의 연인이 되었다. 

예민한 최 역시 A를 남몰래 좋아했지만 고백 한번 하지 못한 채, A가 김의 연인이 된 게 오히려 잘 됐다고 생각한다. 그는 제일 마지막까지 학교에 남아있다가 결국 대학교 강사가 된다.

 

 

 

한편, 염은 대책없는 망난이로 나온다. 학교 생활 엉망으로 하고 어찌어찌하여 졸업은 했지만 뭐 하나 잘 풀리지 않는 인생 중 하나다.  친구의 문상가는 길에도 약속을 어겨 혼자 고속버스를 타고 내려간다. 그도 A를 짝사랑했을까...? 글쎄, 잘 모르겠다. 그러나 분명한 건, A와 가장 거리감이 있기에ㅡ혹은 사심이 없었기에ㅡ 그는 앞으로도 혼자서 잘 살아갈 것이다.

 

 

 

문제는 정이다.

정은 A와 가장 가까운 친구다. 그리고 A와 헤어진 김과 결혼한다. 정이 직접 밝힌 김과의 결혼 이유는 김이 속한 세계의 공기때문이었다. 그가 속한 세계의 공기는 불안이 영혼을 잠식하지 않는 세계, 불안이나 비관이 무엇인지 이해하지 못해 의아해하는 세계이다.

그러나...

독자들은 알게 된다. 정이 김과 결혼한 진짜 이유는 바로 A 때문이라는 걸...

 

 

 

아, 여기까지 줄거리를 대충 끄적이고나니 머리속을 휘젓고 다니던 것들이 한줄로 정리되는구나...

 

 

 

그러니까, A란 존재하는 실존인물이 아니라 각 주인공들이 상상하고 마음 속에 담아뒀던 그 '어떤 것'인지도 모르겠다.

꿈꿔왔던 삶의 이상일수도 있고...

추구해오던 삶의 본질일수도 있고...

아니면,

영원히 알 수 없는 '세상의 끝'일지도 모른다.

 

 

 

 

 

 

연애소설인 줄 알았더니, 성장소설이고...

추리소설인 줄 알았더니, 순수소설이며...

한편의 소설인줄 알았더니, 여러편의 영화이고...

여러편의 영화인줄 알았더니, 한편의 영화로구나....

아니, 한편의 영화같은 소설이였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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