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저는 추리소설과 깊은 사랑에 빠져 있습니다. 원래 추리소설은 여름이 제철인데 어찌된 영문인지 저에게 지난 겨울은 추리소설 그것도 일본 추리소설을 읽은 기억만 떠오르네요. 물론, 저를 추리소설의 세계로 안내 한 이가 있는데 종종 언급했던 '물만두'라는 블로거입니다. 알라딘 서재에 십년 동안 무려 1838편이라는 전무후무한 리뷰를 올린 전설의 블로거지요.
2000 년 3월2일 <해리포터와 마법사의 돌>을 시작으로 2010년 11월17일 <메타볼타>까지 약10년동안 1838편의 서평을 썼습니다. 서평이란 말 그대로 책을 읽고 적은 소감이므로 10년 동안 무려 1838권의 책을 읽었다는 계산이 나오지요.
아, '혹시 만화책이나 가벼운 에세이류겠지...'라고 오해하시는 분도 계실 것 같아 미리 밝혀둡니다. 물만두님은 다른 장르는 손도 대지 않고 오로지 국내외의 추리소설만 읽고 리뷰를 달았습니다. 추리소설은 어떤 장르보다도 작품의 분량이 많다는 점은 제가 굳이 이 자리에서 길게 설명하지 않아도 될 듯...
물만두의 블로그를 방문한 이후, 저는 두 가지 의문(?)에 시달려야 했습니다.
한 가지는 평균 하루 걸러 한편씩 서평을 올렸다는 점입니다. 약 십년동안 1838권의 책을 읽으려면 도대체 어느 정도의 독서력을 갖고 있어야 하는지 상상이 되시나요? 대략 계산해 보면 일년에 183권, 한달이면 15.25권. 이틀에 한권꼴로 책을 읽고 리뷰를 달았다는 결론에 도달합니다. 희귀질환을 앓고 있었기에 매일 출근할 필요도 없었고 집안일에서도 자유로웠겠지만 안타깝게도 그녀는 하루하루 조금씩 자신의 몸이 굳어가는 상태에 있었습니다.
처음 리뷰를 달기 시작할 당시에는 엄청난 책값을 감당할 수 없어 집에서 대중교통을 이용하여 시내의 대형서점을 직접 오가며 서점안에서 책을 읽었답니다. 그러다가 두 다리에 힘이 풀리면서 외출이 불가능하게 되고... 다시 혼자 힘으로는 일어설 수 없게 되고... 그러다가 앉을 수도 없이 누워만 지내게 되고... 마지막 리뷰를 올릴 당시에는 열 개의 손가락 중 고작 여섯 개만 움직일 수 있는 상태였답니다.
이렇게까지 처절하게 몸부림치면서 생이 사그라드는 마지막 순간까지 책을 읽고 리뷰를 올려야 했던 이유는 무엇일까요? 삶의 마지막 순간까지 사람을 철저하게 '몰입'하게 만든, 그런 열정은 도대체 어디에서 오는 것인지 궁금했습니다.
또 다른 의문은 많고 많은 장르 중에서 어째서 추리소설을 선택했을까? 하는 점입니다. 만약, 세상에 알려진 바 대로 질병을 앓고 있었다면 마음의 평정에 도움이 되는 종교서적이나 부드럽고 선한 책들도 얼마든지 많았을 텐데 하필이면 잔인하고 끔찍한 장면이 등장하기도 하고 죽음을 가깝게 다루는 추리소설을 선택한, 그 '심리'는 무엇인지 도무지 쉽게 납득이 되지 않았습니다.
결 국, 이와 같은 의문들이 지난 겨울 내내 저로 하여금 추리소설들을 찾아 읽게 만들지 않았나 싶습니다. 그리고 일본의 사회파 추리소설을 접하면서 마침내 어렴풋이 조금이나마 그녀의 심정을 이해하게 되었다고 한다면 너무 '오만한 발언'일까요?
일 본의 사회파 추리소설이란 고전적인 추리소설이 '범인이 누구인가?'와 '어떤 트릭을 사용했는가?'에 집중되어 있는 것과는 달리, 범행 동기와 범죄를 불러온 사회적 환경을 중시하는 특징을 갖고 있습니다. 그리고 대표 작가들로는 마쓰모토 세이초와 미야베 미유키를 꼽을 수 있습니다.
참! 최근 영화화되어 상영 중인 <화차>가 바로 미야베 미유키의 작품입니다. 자칭 타칭 마쓰모토 세이초의 '장녀'로 불리우는 미야베는 에도를 배경으로 한 고전물과 현대물에서도 빼어난 수작을 여러편 남겼고 활발히 활동하고 있으니 앞으로도 뛰어난 작품들을 만들어낼 가능성이 높아 보입니다.
그 녀가 자신의 문학적 스승이라 칭송해마지 않는 마쓰모토 세이초라는 작가는 한두 마디로 쉽게 설명될 수 있는 인물이 아닙니다. 일단, 그는 1909년에 태어났습니다. 그러고 보니 공교롭게도 한국의 현대추리소설작가로 널리 알려진 김내성과 같은 연도에 태어났더군요. 평양 명문가 출신으로 일본 와세다 대학을 나온 유학파 엘리트였던 김내성과는 달리 마쓰모토 세이초의 학력은 초등학교 졸업이 전부입니다. 습작 연습을 할 수도 없었던 그는 아사히 신문사의 광고부에서 일하면서 41살 늦은 나이에 작가로 입문합니다. 그리고 1992년 81세의 나이로 타계할 때까지 무려 원고지로 24만장의 글을 남깁니다. 보통 장편소설 한권이 원고지 천장을 기준으로 한다고 하니, 40년 동안 240권의 장편소설에 해당하는 분량의 작품을 남긴 셈입니다. 40년 동안 240권이면 1년에 6권, 두달에 한권 꼴로 장편소설을 썼다는 계산이 나옵니다.
'가벼운 수필이거나 뻔한 스토리의 잡문 나부랑이겠지...'라고 여기는 분들이 계실지도 모르겠기에 여기에서 한마디 덧붙이자면, 그는 일단 일본의 '이상 문학상'이라고 할 만한 아쿠타가와상을 수상합니다. 그리고 1956년 47세의 나이에 전업 작가의 길로 들어선 이후 일본 세무청이 발표한 작가 부문 부동의 납세 1위 자리를 십 수년이나 지킵니다. 이는 그의 작품들이 문학성과 대중성을 모두 갖고 있지 않다면 불가능한 일이겠지요. 특히, 그의 초기 단편들은 50년여년이라는 시간과 일본이라는 공간의 격차를 무색하게 만들 만큼 저에겐 커다란 충격이었습니다.
미야베 및 세이초와 함께 범죄의 동기를 추적해 나가다보면, 어느 순간 '인간이란 스스로를 지키지 위해 몸부림치는 슬픈 존재'라는 결론에 도달하게 됩니다. 인간이 이처럼 슬픈 존재라면 스스로를 더욱 더 사랑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내 눈에 비친 세이초는 추리소설가이기에 앞서 '인간에 대한 사랑'으로 똘똘 뭉친 휴머니스트였습니다. 그의 다작(多作)은 사회와 주변 사람들에 대한 끊임없는 관심과 탐구의 결과라 할 수 있습니다.
공 포는 미스터리 즉 무지(無知)에서 출발합니다. 공포에서 벗어나기 위한 방법은 '무지'의 영역을 줄이고 '앎'의 영역을 확대시키는 것이겠지요. 즉, 두려움이란 세상에 대한 무지에서 나오는 것이므로 세상을 이해하면 할수록 두려움에서 벗어날 수 있다는 뜻으로도 해석할 수 있지 않을까요? 가히, 다독(多讀)의 대가라 할만한 물만두님이 십년동안 추리소설이라는 장르에 심취했던 이유 또한 바로 이 점을 겁니다.
한 명은 전무후무한 '다독(多讀)'으로 또 한 명은 전무후무 한 '다작(多作)'으로 제 앞에 '불쑥' 나타났습니다. 우연이라고 하기엔 너무 절묘하기에 계절은 이미 바뀌어 봄으로 향하고 있건만, 전 아직도 겨울의 한가운데에서 길을 잃고 헤매는 기분입니다. '남들이 그 많은 책을 읽고 그 많은 글을 쓰는 동안 도대체 나는 어디에서 뭘 찾아 헤매고 있었던 걸까...'하는 생각에 제 자신이 한없이 초라해지는 순간입니다.
그렇지만 이들을 만나게 된 건 분명 저에겐 크나큰 행운이었습니다. 기쁨과 환희 못지 않게 좌절과 절망 또한 안겨 주었지만 다시 도전할 수 있는 '용기'와 꿈 꿀 수 있는 '자유'를 일깨워주었으니 말이지요. 곰곰히 생각해보면, 뭔가를 이루어낸 사람들은 한결같이 여가 시간을 이용하여 뭔가를 했던 이들입니다. 학교 공부가 바쁘다고... 직장에 출근해야 한다고... 갖은 돈이 없다고... 여건이 안 된다고... 우리는 어쩌면 소중한 꿈을 이루기 위해 주어진 여가시간을 불평불만하는 데에 다 써버렸는지도 모릅니다. 스스로 자신의 꿈을 홀대하는 줄도 모르면서 말이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