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xml version="1.0" encoding="utf-8"?><?xml-stylesheet href="https://blog.aladin.co.kr/blog/rss/rssUserXSL.aspx" type="text/xsl" media="screen"?><rss version="2.0"><channel><title>스프링버드 (스프링버드 서재)</title><link>https://blog.aladin.co.kr/755452123</link><language>ko-kr</language><description /><copyright /><generator>Aladdin RSS(Alss) v0.9</generator><lastBuildDate>Sat, 29 Aug 2026 15:54:08 +0900</lastBuildDate><image><title>스프링버드</title><url>https://image.aladin.co.kr/img/blog2/manage/profileimg.jpg</url><link>https://blog.aladin.co.kr/755452123</link><width>100</width><height>100</height><description>스프링버드</description></image><item><author>스프링버드</author><category>마이리뷰</category><title>환대: 자리 만들어주기</title><link>https://blog.aladin.co.kr/755452123/17456223</link><pubDate>Mon, 17 Aug 2026 20:24: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s://blog.aladin.co.kr/755452123/17456223</guid><description><![CDATA[<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8956186871&TPaperId=17456223" target="_blank"><img src="https://image.aladin.co.kr/product/6804/66/coveroff/8956186871_1.jpg" width="75" border="0"></a>&nbsp;<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8958282479&TPaperId=17456223" target="_blank"><img src="https://image.aladin.co.kr/product/169/98/coveroff/8958282479_1.jpg" width="75" border="0"></a>&nbsp;<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8932027269&TPaperId=17456223" target="_blank"><img src="https://image.aladin.co.kr/product/5606/62/coveroff/8932027269_3.jpg" width="75" border="0"></a>&nbsp;<br/><br/>&nbsp;<br>환대는 오래전부터 마음에 담아둔 주제였다. 그건 무척 개인적인 이유 때문인데, 사람들에게서 이기적인 모습이 좋은 모습보다 더 많이 보이고, 나 자신에게서 그 점을 가장 예민하게 느껴서이다. 천사와 악마가 내 양 옆에서 반대되는 말을 속삭이며, 악마의 말은 천사의 말보다 훨씬 달콤했다. 세상에 도움이 되고 싶다는 생각을 소극적으로나마 할 때면 나 자신이 너무 위선적으로 느껴지곤 했다. <br>그런데 소설가 이승우의 글을 읽고 위안이 되었다. 오래전 신문 칼럼에 그는 대강 이런 식의 얘기를 썼다. 이기적인 마음으로 선한 일을 했더라도 어찌 됐든 세상에 선한 행위는 이루어진 거라고. 의도가 어떻든 결과적으로 타인은 도움을 받았으니 그것으로 되었다는 말이었다. 도움을 받는 타인의 마음이 어떠할지를 따지자면 문제는 또다시 복잡해지겠으나, 그래도 그의 글을 읽은 다음부터는 약간은 덜 갈등하게 됐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여전히 극히 이기적이고 소극적이며 그래서 자꾸만 환대라는 말 앞에서 황홀해진다. 마치 쇼윈도 앞에서 내가 갖지 못하는 반짝이는 구두를 홀린 듯 구경하듯이 말이다. &nbsp;&nbsp;&nbsp;&nbsp;&nbsp;<br><br> <br><br><br><br><br><br><br><br><br><br><br><br><br><br><br>철학자 김현경은 &lt;사람, 장소, 환대&gt;에서 이상적인 제안을 한다. 우리는 한 사회에 도착한 모든 낯선 존재들을 조건 없이(!) 환대해야 한다고. 여기서 낯선 존재들이란 세상에 갓 태어난 아기들도 해당된다. 그의 표현을 빌자면, '갓난아기의 둘레에 금줄을 치고 함부로 손댈 수 없게 선언하는 것은 사회'다. 국경을 넘어온 이주민들도 절대적 환대를 받아야 할 대상이다. 김현경이 이렇게 단언하게 되는 바탕에는 사회에 대한 그만의 정의가 있다. <br>김현경에 따르면, 사회란 경제적 제도적 문화적 구조의 총체가 아니라 우리 머릿속에 들어있는 상상적 공동체다. 말하자면 '우리'라고 할 때 각자가 머릿속으로 떠올리는 집단이 있을 것이고 '우리 사회'라고 할 때도 마찬가지다. 이때 중요해지는 것은 성원권 즉 사회의 구성원이 될 권리다. 상대방이 나의 말에 화답하지 않고 마치 내가 보이지 않는 듯이 행동하며 나를 무시할 때 나는 사람으로서 대접받지 못한다는 느낌을 받는다. 이 느낌은 느낌으로 그치지 않을 수 있다. 아이들의 따돌림 대상이 되는 아이는 사람으로 인정받지 못한다. 사회에서 배척되는 사람 역시 그 사회의 구성원으로 인정받지 못하고 배제된다. 사회에서 보이지 않는 존재는 과연 사람의 존엄성을 지킬 수 있을까. 김현경의 말대로,&nbsp;'사람이라는 것은 사람으로 인정된다는 것'이며 '사회적 성원권을 인정받는다는 것'이다. <br>미지적 차원에서부터 거시적 차원에 이르기까지 우리 사회가 얼마나 타자를 환대하는가, 우리 안에 받아들여주는가는 결국 사람으로서의 존엄성을 그에게 부여하는 문제이며 우리 안에 그를 위한 자리를 만들어주는 문제가 된다. 사람이라는 존재 자체로 이미 신성하다고 사람들은 말하지만, 사회적 동물로서의 사람으로 살아가기 위해서는 나와 우리의 환대가 필수적인 것이다. 이주자의 경우를 예로 들자면 이렇다:<br>우리는 외국인들에게 특별한 호의를 베풀면서, 그들이 우리 문화의 장점들을 제대로 평가해 주기를 기대하기도 한다. 하지만 이것은 어디까지나 그들이 이상적인 외국인의 이미지에 부합하는 한에서이다. 돈 많고, 교양 있고, “원더풀”이라고 말할 준비가 되어 있는, 잠시 머물다 가는 ‘손님’. 그들이 이런 이미지와 거리가 멀다는 게 판명된다면, 가령 그들이 돈도 없고, 교양도 없는 데다 남의 나라에 와서도 자기네 방식을 고집한다면, 게다가 금방 돌아가지 않고 눌러앉아 ‘우리의’ 일자리를 빼앗고 ‘우리의’ 여자들을 건드린다면, 그들에게 주어졌던 환대는 철회될 것이다. (사람, 장소, 환대,&nbsp;김현경 저, 문학과사상사, 2015, p.69) &nbsp;&nbsp;&nbsp;&nbsp;<br>시원을 따져보자면 우리 자신도 낯선 존재로 이 세상에 왔다. 가족의 막내로 태어난 나는 우리 가족이라는 미시적 사회에 가장 늦게 합류한 존재였다. 가족이 받아들여주지 않았다면 지금의 나는 존재하지 못했을 것이다. 우리는 모두 낯선 존재로 이 세상에 도착하여 환대를 통해 사회 안에 들어왔다. 김현경의 말이다. &nbsp;&nbsp;&nbsp;<br><br> <br>&nbsp;&nbsp;&nbsp;&nbsp;<br><br><br><br>2006년에 출판된 숀 탠의 그림책 &lt;도착&gt;은 이주민의 이야기를 그린다. 이 그림책은 실제로 작가의 가족사이기도한데, 숀 텐의 아버지는 1960년 말레이시아에서 호주로 이주했다고 한다. (숀 탠은 이 책을 부모님께 헌정했다.) &nbsp;<br>표지의 남자는 이상하게 생긴 생명체를 내려다보고 있다. 양복 차림에 중절모를 쓰고 트렁크를 든 것으로 보아 남자는 여행자다. 실제로 그는 긴 시간 항해 끝에 낯선 땅에 방금 내렸다. 고향에 사랑하는 아내와 딸을 두고 먼 땅에 온 데에는 절박한 이유가 있었다. 먼 이국에서 언어와 풍습과 기후는 낯설고 남자는 철저히 혼자다. 그이가 느낄 고독과 두려움, 황망함을 작가는 비현실적인 모습의 생명체와 풍경으로 전달한다. 표지의 저 동물이 우리에게 친숙한 개나 고양이가 아닌 까닭이 그래서다. <br>이방인이 느끼는 심리적 풍경은 불길하고 기이한 그림들로 표현된다. 작가 숀 탠은 이방인이 되어보지 못한 독자를 고의적으로 이런 낯설고 두려운 풍경 안에 밀어 넣었다. 그래야 독자는 이방인의 심경을 마치 자기의 일처럼 체감할 수 있을 것이므로. 예술품은 아는 만큼 보인다고 하는데 이해와 공감도 아는 만큼 싹튼다고 나는 믿는다. 그리고 타인을 이해하고 공감할 때 비로소 우리는 사람다워지는 게 아닌가 싶다. <br>다행히 &nbsp;&lt;도착&gt; 속의 인물들은 위로를 거절하지 않는다. 그들도 모두 이방인이었기에 남자의 어려움을 내 일처럼 느꼈던 모양이다. 나도 내 고향에서 박해를 받았소, 나도 가족을 떠나왔어요, 일자리를 찾는군요... 글자 없는 이 그림책 속의 인물들은 표정과 몸짓으로 자신의 이야기를 하고 연민과 이해로 남자를 포용한다. 전혀 모르는 사회에 갓 진입한 남자는 그 땅에 내렸으나 아직 사회에는 발을 내리지 못했는데, 그를 안으로 불러들이며 환대해 주는 그들이 있어서 남자는 비로소 사회의 일원이 되었다. <br>지난겨울, 아주 추운 날이었다. 만 사 년째 살고 있던 &nbsp;동네에서 가끔씩 보게 되는 노숙인이 있었다. 그날 횡단보도 맞은편에 노숙인이 우뚝 서 있었다. 그랬다. 우뚝. 그는 어디로도 가지 않았고 마치 못 박힌 사람처럼 그 자리에 서 있었다. 나는 언제나 그이가 두렵고 불쌍했다. 혼잣말을 하며 다녔기 때문에 나를 해코지할까 봐 무서웠던 것도 있었고, 어쩌면 인간의 망가진 모습을 본다는 사실이 두려웠는지도 모르겠다. 내 안의 어두운 심연 같은 것, 혹은 인간 존재에 내재된 파국의 가능성을 보는 게 무서웠던 것 같다. &nbsp;&nbsp;&nbsp;&nbsp;&nbsp;&nbsp;&nbsp;<br>그이는 분명히 그 동네에 살고 있었다. 하지만 동네 주민은 아니었다. 그가 디디고 선 땅은 서울의 한 지역이었지만 그는 우리의 이웃이 아니라 철저한 이방인이었다. '우리'에게 속하지 못한 타자, 사람이지만 사람대접을 받지 못하는 존재였다. 다시 김현경의 물음을 떠올린다. 우리는 어떻게 이 세상에 들어오고 사람이 되는가? 우리가 사람이기 때문에 이 세상에 받아들여진 것인가, 아니면 이 세상에 받아들여졌기 때문에 사람이 된 것인가?&nbsp;&nbsp;&nbsp;&nbsp;&nbsp;&nbsp;<br>그 추운 날, 나는 내 행위가 지극히 자기 위안이고 위선적일 수 있음을 또렷하게 의식하면서도 그이에게 보통 사람의 기분을 느끼게 해주고 싶은 강한 충동을 느꼈다. 그걸 선의라고 해야할지, 유치한 감상이라고 해야할지, 횡단보도 앞에서 내 마음은 갈라져 싸웠다. 아무튼 단 몇 분 동안만이라도 그를 평범한 일상을 사는 생활인으로 만들어주고 싶었고 그 순간을 놓치면 두고 두고 후회를 할 것만 같았다. 나는 카페에서 뜨거운 커피를 사서 시럽을 듬뿍 넣어서 횡단보도를 건너 그이에게 건네주었다. 추운 겨울날 뜨겁고 달콤한 커피를 마시는 보통 사람이 되시라고. 남자는 마치 평소에도 나와 자주 커피를 주고받았던 사람인 냥, 커피를 받아 들었다. 나는 부끄럽고 당황해서 아직 신호등이 바뀌지 않은 횡단보도를 뛰어서 건넜다. 남자가 나에게 말을 걸까 봐 두려웠다. 내 행위가 왠지 떳떳지 못하다는 수치심 때문에도 그랬는데, 나중에 생각해 보니 그이에게서 도망친 그 행위가 오히려 그를 모욕했던 것임을 깨달았다. 나는 왜 한두 마디라도 남자와 대화를 나누지 않았을까.<br>노숙자가 아니라도 내 옆의 사람들을 과연 나는 환대하고 있는가를 자문한다. 환대함으로써 그들에게 사람대접을 하고 있는가를. 말을 무시하거나 눈길을 피하거나 무관심함으로써 그들을 없는 사람인 듯 취급하고 그럼으로써 그들의 사람다움을 지우는 건 아닌가를. 내 앞의 존재가 사람이며, 그이를 사람으로 만들어주는 것은 나에게 달렸다는 것을 잊지 않으려고 한다. 김현경은 그것을 상호의례라는 말로 부른다. 상호의례란 상대가 말하고 쳐다볼 때 반응하고 마주 쳐다보며 고개를 끄덕이고 우리 안에 끼워주는 일, 우리의 일원임을 인정하는 일. 상대에게 사회적 성원권을 인정해 주는 일이다. <br>숀 탠의 밀도 높은 그림체 정반대편에서 지극히 단순 소박한 화풍으로 이 절대적 환대의 길을 정확히 가리키고 있는 또 한 권의 그림책이 있다. &nbsp;&nbsp;&nbsp;&nbsp;&nbsp;<br><br> <br><br><br><br><br>얼룩말, 토끼, 기린, 너구리, 박쥐, 거북이가 주인공이다. 다들 토스터에 빵을 구워 아침을 준비하고 있다. 그런데 거북이는 항상 빵을 태운다. 친구들은 묵묵히 자기 빵을 굽고 식탁에 앉아서 거북이를 기다린다. 거북이 자리는 언제나 준비되어 있다. 거북이가 마침내 탄 빵을 들고 자리에 앉자 다들 자기 빵을 여섯 조각으로 잘라서 서로의 접시에 나눠 담는다. 그들은 그렇게 거북이의 새카만 빵까지 나눠 먹는다. 개성 다른 여섯 조각의 빵조각들을. 절대적 환대란 이런 게 아닐까. 아무 말 없이 둥글게 식탁에 앉아 함께 먹는 일. 이치를 따지고 들어가려면 한없이 어렵고 복잡하지만 환대란 사실 아주 쉽고 간단한 일이 아닌가 싶다. &nbsp;&nbsp;&nbsp;&nbsp;&nbsp;<br><br><br><br style="color: rgb(51, 51, 51); font-size: 14.6667px; letter-spacing: 0.8px;">]]></description><image><url>https://image.aladin.co.kr/product/5606/62/cover150/8932027269_3.jpg</url><link>https://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temId=56066229</link></image></item><item><author>스프링버드</author><category>마이리뷰</category><title>음악이 기억하는 것을 듣는 일 - [애도하는 음악 - 음악이 역사를 기억하는 방법]</title><link>https://blog.aladin.co.kr/755452123/17398615</link><pubDate>Sat, 18 Jul 2026 17:16: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s://blog.aladin.co.kr/755452123/17398615</guid><description><![CDATA[<table width="100%" height="30" border="0" align="center" cellpadding="0" cellspacing="0"><tr><td width="14"><img src="https://image.aladin.co.kr/img/blog/trans.gif" width="14"></td><td width="85"><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K112033166&TPaperId=17398615" target="_blank"><img src="https://image.aladin.co.kr/product/37725/96/coveroff/k112033166_1.jpg" width="75" border="0" class="box1"></a></td><td valign="top"><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K112033166&TPaperId=17398615" target="_blank" style="color:#386DA1;font-weight:bold">애도하는 음악 - 음악이 역사를 기억하는 방법</a><br/>제러미 아이클러 지음, 장호연 옮김 / 뮤진트리 / 2025년 11월<br/></td></tr></table><br/><br>테오도어 아도르노는 예술이 세상에 대한 무의식적인 연대기가 되어야 한다고 말했다. 예술은 세상에 대해 증언할 의무가 있다는 뜻일 것이다. 이 책의 저자는 아도르노의 이 말을 음악에 특정해서 살펴본다. 음악은 그것이 만들어진 시대의 본질적인 정신을 반영한다. 그렇기에 우리는 음악을 통해서 과거와 연결될 수 있고, 그렇게 함으로써 현재의 우리가 역사에 무엇인가를 되돌려 줄 수 있을 것이라고 저자는 믿는다. 작곡가가 곡을 만들고 세상에 내보내면 그의 의도와 상관없이 연주자와 청자는 매번 다른 의미를 거기에 더하고 ‘위대한 음악 작품은 그 자체가 대중의 기억을 담은 방대한 보관소가 된다.’ 하지만 음악 속의 기억들을 제대로 들어내는 일은 다른 문제다. 저자는 여기에는 ‘깊은 청취’가 필요하다고 보았다. ‘깊은 청취가 없다면 과거의 목소리를 허공에 대고 속삭이는 것’이나 마찬가지이기 때문이다.  <br>  제2차 세계대전 중에 일어난 홀로코스트는 인간의 가장 어두운 심연을 들여다보게 한 사건으로 온 인류의 트라우마가 되었다. 음악은 홀로코스트의 역사를 통과하여 깊은 상처를 입은 채로 여기 우리에게 와서 암흑의 시대를 증언하고 있다. 저자는 네 명의 작곡가와 그들의 작품을 깊이 있게 들여다본다. 예술가가 놓였던 역사적 시대적 상황이 어떻게 작품에 투영되었는지를 살핀다는 점에서 이 책은 역사서와 평전의 중간쯤에 있다.    &nbsp;  ● 리하르트 슈트라우스의 &lt;메타모르포젠&gt;슈트라우스는 모순적이며 많은 것을 감춘 인물이었는데, 그의 &lt;메타모르포젠&gt;도 그렇다. 그는 독일의 제3 제국 시절에 상황을 심각하게 오판했고 문화정책 분야에서 나치에 협력함으로써 명성에 영원한 오점을 남겼다. &lt;메타모르포젠&gt;은 이 모든 상황이 벌어진 뒤에 작곡되었다. 슈트라우스가 깊이 공감하여 음악으로 만든 괴테의 시는 자기 인식의 한계를 토로하는 내용이다. 괴테의 시 ‘누구도 자신을 알지 못하네’의 전문은 이렇다.    &nbsp;  누구도 자신을 알지 못하네,내면의 존재와 멀어지니.그럼에도 그는 매일 알게 되네,마침내 바깥에서 명확하게 드러난 것을.자신이 어떤 존재이고 어떤 존재였는지,무엇을 할 수 있고 무엇을 해야 했는지.  &nbsp;  슈트라우스는 &lt;메타모르포젠&gt;이 정확히 무엇을 이야기하는지 밝히지 않고 모호하게 남겨두었다. 저자는 이 침묵을 청자들이 새로운 기억으로 채워 넣어주기를 바란다. ‘요동치는 소리에 새로운 기억을 불어넣고, 음악이 가리키는 범위를 넓히고, 도덕적 관심사의 폭을 넓히고, 슬픔의 각도를 작곡가 주위에서 벌어졌지만 그는 생전에 겪지 못했을 고통으로 향하게 두고 싶다.’<br>  ● 아르놀트 쇤베르크의 &lt;바르샤바의 생존자&gt;쇤베르크의 &lt;바르샤바의 생존자&gt;를 듣고 카를 린케는 ‘이것이야말로 우리가 애타게 갈구했던 음악’이라고 느꼈다. 이 느낌은 우리의 진짜 모습이 이렇다는 것이었다. 쇤베르크는 제1차 세계대전이 벌어지던 시대를 최전선에서 맞닥뜨리고 통과한 사람이었다. 유대인이었지만 유대인 전통에서 멀었던 쇤베르크는 개인적 경험의 결과로서 12음 기법의 불협화음으로 유대인의 고통을 진실되게 표현해냈다. 7분 길이의 이 곡은 쇤베르크가 직접 쓴 텍스트로 작곡되었다. 1부에서는 생존자 역할을 하는 해설자가 유대인 수감자의 참혹한 장면을 설명하고, 2부에서는 남성 합창단이 수감자의 역할을 맡아서 유대교의 주요 기도문인 세마 이스라엘을 힘차게 노래한다. 다음은 1부의 내용 일부이다:  &nbsp;  나는 모든 것을 기억하지는 못한다.대부분의 시간에 정신을 잃었던 것 같다.다만 장엄한 순간만큼은 기억한다.오랫동안 소홀히 했던 옛 기도문을다들 미리 약속이나 한 것처럼 부르기 시작한 순간을. 잊었던 신앙 고백을!하지만 내가 바르샤바의 하수관에서 오랜 시간을 어떻게 버텼는지는 기억이 없다.  &nbsp;  그날도 평소처럼 시작했다. 아직 날이 어두울 때 기상나팔이 울렸다.밖으로 나와! 당신이 자고 있었든 걱정으로 밤을 꼬박 새웠든 상관없다.당신은 자식, 아내, 부모에게서 떨어져 있다.그들에게 무슨 일이 벌어졌는지 모른다. 그런데 어떻게 잘 수 있겠는가?트럼펫이 다시 울렷다.밖으로 나와! 하사관이 화낼라!그들은 나왔다. 늙은 자들과 병든 자들은 느릿느릿 나왔고, 불안해서 잽싸게 나오는 사람도 있었다.다들 하사관을 두려워했다. 최선을 다해 서둘렀다.하지만 소용없었다! 소음이 난무하고, 분주한 움직임이 난무했다. 그럼에도 충분히 빠르지 않았다!하사관이 소리쳤다. [독일어로]“차려! 서둘러! 내 개머리판의 맛을 보고 싶나”? 좋아, 원한다면 해주지.“  &nbsp;  합창단이 히브리어로 부르는 ‘세마 이스라엘’은 신명기 6장 4~7절의 내용이다:  &nbsp;  들어라, 오 이스라엘아, 우리의 하나님은 한 분이시니.너는 마음을 다하고 영혼을 다하여힘을 다하여너의 하나님을 사랑하라.그리고 오늘 내가 너에게 명하는 이 말씀을너의 마음에 새겨라.그리고 너의 자녀에게 부지런히 가르치고 말하라.집에 앉아 있을 때도길을 갈 때도자리에 눕거나 일어날 때도.     &nbsp;  무분별한 폭력과 희생을 미적 대상으로 삼는 것에 대해 우려와 회의가 없을 수 없다. 그러나 저자는 우리가 그의 음악에서 무엇을 어떻게 듣는가가 문제의 핵심이라고 보았다. &lt;바르샤바의 생존자&gt;와 같은 음악적 기념물을 제대로 경험하려면 평소와 다른 청취 방식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적어도 일부 음악에 대해서 우리는 즐기려고 듣는 것이 아니라 증언을 목격하려고 듣는다. 생존자의 증언, 작곡가의 증언, 죽임을 당할 집단의 증언을 듣는 것이다. 우리는 음악이 짊어지고 있는 역사의 트라우마를 그 안에서 들어내야 한다.   &nbsp;  ● 벤저민 브리튼의 &lt;전쟁 레퀴엠&gt; &lt;전쟁 레퀴엠&gt;은 청자가 안이하게 명복을 빌고 위안에 빠지게 허락하지 않는다. 쇤베르크의 &lt;바르샤바의 생존자&gt;가 그렇듯이 이 곡도 죽은 자를 아프게 기억하게 만든다. 평화로운 고별인사는 어쩌면 그들을 잊기 위한 핑계가 될 수도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 작품은 아름다운 음악과 몹시 불안한 음악이 교차하는 식으로 긴장을 끌고 간다. 국가들이 무분별한 전쟁을 멈추지 않는 한, 죽은 자들이 안식하는 평화는 얄팍하고 임시적이고 계속해서 불협화음을 낼 것이라고 브리튼의 음악은 말한다. 한편, 브리튼은 어떤 이유에서인지 &lt;전쟁 레퀴엠&gt;을 보편적 진술로 만들려고 했다. 다시 말해서 제2차 세계대전과 유대인 학살을 특정하지 않으려고 했는데, 이와 같은 회피는 그 자체로 많은 얘기를 하고 있다. 영국 사회는 제2차 세계대전을 제1차 세계대전보다 의미 있게 다루지 않으려 하는 경향이 있었고 홀로코스트에 대해 무관심하고 반감까지 갖고 있었다. 브리튼의 음악은 자신이 속했던 사회를 의식적이든 무의식적이든 정직하게 반영했던 것이다.       &nbsp;  ● 드미트리 쇼스타코비치의 &lt;교향곡 13번&gt;쇼스타코비치의 &lt;교향곡 13번&gt;은 소비에트의 삶을 가장 직접적으로 비판하는 작품으로서, 유대인 학살을 증언하는 예브투셴코의 시 &lt;바비 야르&gt;에서 영감을 받았다. 쇼스타코비치는 시인에게 다음과 같은 편지를 보낸다. “&lt;바비 야르&gt;를 읽고 나서 뭔가가 되살아났다는 기분이 들었소... 다시 빚을, 양심의 빚을 지게 되었소. 내가 꼭 갚아야 하는 빚이오...&lt;교향곡 13번&gt;을 마무리하면 내가 음악가에서 양심의 문제를 ‘표현’하도록 도와준 그대에게 크게 고개를 숙이겠소.” 쇼스타코비치의 &lt;교향곡 13번&gt;은 유대인 학살에 대한 고발이자, 그 사건에 대한 기억까지 억압하고자 했던 사회에 대한 고발이다.   &nbsp;  <br>저자에 따르면, 음악은 기억과 특별한 관계를 갖는다. 수십 년 혹은 수백 년 전의 음악을 현재로 가져와 연주하고 들으면서 우리는 잃어버린 과거의 시간을 만난다. 음악은 다른 시대가 기록하고 듣고 꿈꾸고 희망하고 애도했던 것을 지금 여기로 불러낸다. 그리고 오늘날에도 여전히 중요하고 올바른 세계에 대한 전망을 우리에게 일깨워준다. 우리는 음악을 통해서 과거의 이야기를 듣고 재난의 역사에서 특정한 순간들을 떠올리는데, 이런 기억은 우리가 미래로 계속 이어가려고 하는 가치들을 선택할 때 영향을 미친다. 베토벤의 음악이 아우슈비츠 이전과 이후에 똑같이 들려서는 안 되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저자는 우리에게 깊이 들을 것을 요구한다. 깊이 듣는다는 것은 음악 속에 담긴 ‘과거의 반향을 의식하면서 듣는 것’이다.    &nbsp;  저자가 인용하는 파울 첼란의 말이 인상 깊다. 파울 첼란은 시가 여전히 시간을 거쳐, 역사를 거쳐-이를 넘어서는 것이 아니라 통과하여-우리에게 온다고 했다. 시간을 통과하여 오는 이 여행에서 예술 작품이 아무 상처도 입지 않을 수는 없다. 저자가 이 책에서 전하고자 하는 말은 음악이 상처를 입으면서 끝내 기억하는 것을 우리는 들어내야 할 의무가 있다는 것일 테다:     &nbsp;  교향곡 9번을 들으면서 그 사이 여러 세기가 입힌 상처를 듣지 않는다면, 여기에 담긴 신실한 이상주의를 그저 기분 좋은 자유의 외침으로 바꾸는 셈이다. 요점은 이런 이상주의를 부정하거나 ‘철회’하라는 것이 아니라, 그것이 오늘날 우리에게 오기까지 (첼란의 표현으로) ‘천 개의 암흑’을 지나왔음을 기억하라는 것이다. 그러고 나면 이런 기억은 미래로, 현재의 행동으로 방향을 틀 수 있다.    &nbsp;    &nbsp;    &nbsp;  ]]></description><image><url>https://image.aladin.co.kr/product/37725/96/cover150/k112033166_1.jpg</url><link>https://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temId=377259678</link></image></item><item><author>스프링버드</author><category>마이리뷰</category><title>새벽이 올 때</title><link>https://blog.aladin.co.kr/755452123/17352359</link><pubDate>Wed, 24 Jun 2026 12:12: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s://blog.aladin.co.kr/755452123/17352359</guid><description><![CDATA[<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E642638361&TPaperId=17352359" target="_blank"><img src="https://image.aladin.co.kr/product/38856/39/coveroff/e642638361_1.jpg" width="75" border="0"></a>&nbsp;<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8932015236&TPaperId=17352359" target="_blank"><img src="https://image.aladin.co.kr/product/50/54/coveroff/8932015236_1.jpg" width="75" border="0"></a>&nbsp;<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8993838275&TPaperId=17352359" target="_blank"><img src="https://image.aladin.co.kr/product/1898/7/coveroff/8993838275_2.jpg" width="75" border="0"></a>&nbsp;<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895278278X&TPaperId=17352359" target="_blank"><img src="https://image.aladin.co.kr/product/11799/11/coveroff/895278278x_1.jpg" width="75" border="0"></a>&nbsp;<br/><br/><br>산이 자락을 담근 조용한 호수, 사위가 어슴푸레한 이른 새벽이다. 두 사람이 작은 배를 타고 호수 가운데로 들어가고 있다. 푸른 산 그림자가 드리운 물은 하늘빛을 받아 살짝 보랏빛을 띠었다. 물 표면은 거울처럼 매끈하고 대기는 싸늘하다. &nbsp;<br> <br><br><br><br><br><br><br><br><br><br>유리 슐레비츠는 이 그림책에 글을 최소한만 남겨놓았다. 그림책의 첫 장을 열면 하늘도 짙고 푸르고 물도 그렇다. 장을 넘기면 새벽빛은 조금씩 밝아지고, 산 등성이와 호수가 점점 뚜렷해진다. 호수에는 산 그림자가 비치고, 호숫가 나무 아래 할아버지와 손자가 잠들어 있다. 하늘에는 달빛이 환하고 아무것도 움직이지 않는데, 문득 실바람이 불어 호숫물을 살짝 흔들며 하루를 깨운다. 느릿하고 나른하게 물안개가 피어오르고 박쥐 한 마리가 외로이 허공을 맴돌며 개구리가 한 마리 또 한 마리 물에 뛰어든다. 새가 지저귀고 어디선가 다른 새가 화답하듯 지저귄다. 이제 사람도 잠이 깰 시간이 되었다. &nbsp;&nbsp;&nbsp;&nbsp;&nbsp;<br>할아버지는 손자를 깨우고 모닥불을 피워서 간단히 아침을 먹는다. 두 사람은 담요를 개고 잠자리를 정리한 뒤에 호수에 배를 띄운다. 배는 작고 낡았다. 삐걱 삐걱 노를 젓는 할아버지의 얼굴에는 미소가 어렸다. 배는 호수의 푸른 산 그림자 속으로 조용히 들어가고 한순간 산과 호수는 초록이 된다.&nbsp;<br>새벽에 대한 기억이 있다. 검푸른 새벽의 색깔, 코와 피부로 느껴지는 싸늘한 새벽의 기운, 잠이 덜 깬 몸의 찌뿌둥함, 갈라지는 목소리와 뻑뻑한 눈꺼풀, 무거운 발에 신발을 꿰어 신고 문을 나설 때 만나는 익숙한 길의 낯선 느낌, 온 세상이 모두 깊은 잠에 빠진 것만 같았는데 도로에는 차가 다니고 버스에도 부스스한 얼굴의 사람들이 드문드문 앉아있는 것을 발견했을 때의 놀라움 같은 것들을 기억한다. &nbsp;<br>그리고 깨끗하고 경건한 새벽의 느낌을 기억한다. 눈부시게 내리쬐는 햇살 속에서 묵직한 성당 문을 열고 들어가면 문득 걱정과 투쟁과 계산의 아우성이 그치며 마치 영원히 존재하고 있었던 것처럼 어둑하고 고요한 공간이 열리듯, 새벽도 그렇다. 나는 놀라고 기뻐하며 그 안으로 들어가 안긴다. 아우성은 아직 잠들어있다. 새벽은 한없이 고요하고 깨끗해서 신성이 머무는 시간이다. <br>새벽은 사람마다 다른 얼굴로 찾아온다. 언어를 초월한 모습으로 그이는 찾아온다. 사랑의 열병으로 들뜬 젊은 연인에게 새벽은 머리부터 발끝까지 온통 푸르른 이로 찾아온다. 연인의 뜨거운 이마를 찬 손으로 짚어주려고 새벽은 푸르게 찾아온다. <br>밤은 창 너머에서 소멸하고대지는 또다시 숨을 멈추었다이 창 너머 낯선 누군가가그대와 나를 향하고 있다오, 머리부터 발끝까지 온통 푸르른 이여불타는 기억처럼 그대의 손을 내 손에 얹어 달라그대를 사랑하는 이 손에생의 열기로 가득한 그대 입술을사랑에 번민하는 내 입술의 애무에 맡겨 달라바람이 우리를 데려다 주리라바람이 우리를 데려다 주리라-&nbsp;바람이 우리를 데려다 주리라(포루그 파로흐자드) 일부<br>&nbsp;&nbsp;<br>푸른 새벽은 아프게 온다. 한 계절을 더 피 흘려도 좋겠다고 결심하는 이 새벽은 결연하다. &nbsp;<br>새벽은 푸르고희끗한 나무들은 속까지 얼진 않았다<br>고개를 들고 나는찬 불덩이 같은 해가하늘을 다 긋고 지나갈 때까지 두 눈이 채 씻기지 않았다<br>다시견디기 힘든달이 뜬다<br>다시아문 데가벌어진다<br>이렇게 한 계절더 피 흘려도 좋다&nbsp;-&nbsp;새벽에 들은 노래 3(한강)&nbsp;일부<br><br>새벽은 끝내 찾아오는 시간이다. 죽어 가는 이도 살아가는 이도 낮과 밤의 긴 시간을 밀고 나가서 맞이하는 해방의 시간이다. <br>다들 죽어 가는 사람들에게검은 옷을 입히시오.<br>다들 살아가는 사람들에게흰옷을 입히시오.<br>그리고 한 침대에 가지런히 잠을 재우시오.<br>다들 울거들랑젖을 먹이시오.<br>이제 새벽이 오면나팔소리 들려올 게외다.-&nbsp;새벽이 올 때까지(윤동주) 전문&nbsp;&nbsp;&nbsp;&nbsp;&nbsp;&nbsp;<br><br>새벽은 모두에게 다르게 온다. 그러나 반드시 온다. 푸르고 차고 고요하게. 빛으로 온다. 공기로 온다. 어머니가 아픈 아이의 뜨거운 이마를 차가운 손으로 덮어주듯, 번뇌로 끓는 우리의 이마를 찬 손으로 식혀주러 새벽은 온다. 아직 자는 이는 편안한 잠의 세계 속에 조금 더 머물라고 가만히 이불을 당겨준다. 잠 깬 이는 세상의 소음으로부터 귀를 덮어주며 푸르고 고요한 품으로 감싸안는다. 새벽은 그렇게 온다. 언제나 온다. <br><br> <br><br><br><br><br><br><br><br><br> <br><br><br><br><br><br><br><br> <br><br> <br><br><br><br>]]></description><image><url>https://image.aladin.co.kr/product/11799/11/cover150/895278278x_1.jpg</url><link>https://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temId=117991188</link></image></item><item><author>스프링버드</author><category>마이리뷰</category><title>살아 나오기 - [킨츠기 - 2024년 볼로냐 라가치상 대상작, 2024년 학교도서관저널 추천도서, 2024년 이탈리아 프레미오 안데르센상, 2024년 디픽터스가 뽑은 전 세계 눈에 띄는 그림책100권, 2024년 서울특별시교육청어린이도서관 겨울방학 권장도서]</title><link>https://blog.aladin.co.kr/755452123/17312803</link><pubDate>Tue, 02 Jun 2026 11:53: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s://blog.aladin.co.kr/755452123/17312803</guid><description><![CDATA[<table width="100%" height="30" border="0" align="center" cellpadding="0" cellspacing="0"><tr><td width="14"><img src="https://image.aladin.co.kr/img/blog/trans.gif" width="14"></td><td width="85"><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8962194651&TPaperId=17312803" target="_blank"><img src="https://image.aladin.co.kr/product/33730/43/coveroff/8962194651_1.jpg" width="75" border="0" class="box1"></a></td><td valign="top"><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8962194651&TPaperId=17312803" target="_blank" style="color:#386DA1;font-weight:bold">킨츠기 - 2024년 볼로냐 라가치상 대상작, 2024년 학교도서관저널 추천도서, 2024년 이탈리아 프레미오 안데르센상, 2024년 디픽터스가 뽑은 전 세계 눈에 띄는 그림책100권, 2024년 서울특별시교육청어린이도서관 겨울방학 권장도서</a><br/>이사 와타나베 지음, 황연재 옮김 / 책빛 / 2024년 04월<br/></td></tr></table><br/><br>일본인 작가 이사 와타나베가 상실로 슬퍼하는 사람들을 위해 아름다운 그림책을 지었다. 킨츠기는 깨진 도자기를 옻으로 이어 붙이고 금분으로 장식하는 일본의 전통적인 공예 기법이다. 제목에서 우리는 작가가 말하려 하는 바를 이미 짐작할 수 있다. 사랑하는 이를 잃었을 때 남은 사람이 깨어진 삶을 이어 붙이는 가장 아름다운 방식이 있어요. 그러나 이 작품이 진정 내 마음을 울리는 것은 이 아름다운 방식이 새로워서가 아니다. &nbsp;<br>사랑하는 이와 영원히 작별했을 때 삶은 부서진다. 더욱이 그 삶이 더없이 빛나고 완벽에 가까웠다면 더더욱 산산이 부서지는 것처럼 느껴질 테다. 우리의 삶도 킨츠기처럼 아름답게 이어붙일 수 있을까. 불가능하지는 않을 것 같다. 그러나 언제나 그럴 순 없고, 누구나 그렇게 할 수도 없다. 삶은 예고도 없이 또 다른 잔을 깨뜨리기도 한다. 작가는 깨어진 잔을 이어 붙이는 이야기를 쉽게 꺼내지 않는다. 그 대신 남은 이의 황망함을 이해하며 그의 걸음을 좇는다. 그가 어디까지 내려가는지를 보여준다.&nbsp; &nbsp;&nbsp;   &nbsp;<br>토끼에게는 사랑하는 빨강 새가 있었다. 어느 날 불현듯 빨강 새는 빛을 잃고 식탁보를 잡아끌며 날아가버린다. 행복하고 완벽하게 아름다웠던 식탁은 온통 깨어지고 흩어졌다<br><br>토끼는 절망하며 새를 찾아서 심연으로 내려간다. 그곳은 죽음의 세계여서 모든 존재가 희다. 빨강빛은 존재하지 않는다. 새도 없다. 희게 변한 새조차도. &nbsp;&nbsp;&nbsp;&nbsp;<br><br>사실, 토끼는 그곳에 남아있어도 그만이었다. 그러나 새를 찾을 수 없다면 심연에 머무는 것이 의미가 없다고 토끼는 생각했던 것일까. 표지의 그림 속에서 토끼는 힘차게 두 팔을 뻗고 위로 올라간다. 그를 이끄는 것 혹은 그가 잡으려는 것은 빨강 새의 파란 잔이다. 깨지지 않고 온전한 파란 잔.&nbsp;그림책 첫 장에서 토끼가 한 손에는 자기의 하얀 잔을 들고 한 손에는 빨강 새의 파란 잔을 들고 식탁으로 걸어가는 장면이 나오는데, 그때의 온전했던 파란 잔을 토끼는 깊은 심연에서 다시 본다. 그리고 그것을 따라 위로 헤엄쳐 올라간다. &nbsp;<br>빨강 새가 떠나버린 현실로 돌아와 보니 파란 잔은 여전히 깨져있다. 그것을 아무리 완벽하게 복원한다고 해도 빨강 새는 돌아오지 않는다. 작가가 킨츠기라는 일본의 공예 기법을 떠올린 건 현실의 상실을 가장 아름답게 복원하는 길이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일 것이다. 부서진 잔을 아름답게 이어 붙여서 우리는 계속 살아갈 수 있다고 작가는 이야기한다. 그래서 작가는 온전한 파란 잔으로 손을 뻗으며 토끼가 위쪽으로 헤엄쳐 올라가게 그렸을 것이다.&nbsp;<br>토끼를 이끈 온전한 파란 잔은 결심이 아니었을까. 빨강 새를 잊지 않고 사랑하겠다는 결심. 혹은 사랑 그 자체였을지도. 하지만 나는 다른 가능성도 떠올린다. 부력이다. 살아있는 존재 안에 내재된 공기 방울들. 심연에 머물러 있으려고 해도 우리를 위로 밀어 올리는 가볍고 강력한 힘 말이다. &nbsp;<br>수영을 해본 사람이라면 알 테다. 손을 아래로 향하면 몸이 아래로 내려가고 손을 위로 향하면 뜬다는 걸. 아무리 물속에 가라앉아 있으려고 해도 어느 순간 몸은 떠오른다. 불행 속에서 때로는 부력의 힘으로, 때로는 결심의 힘으로 끝내 우리는 심연에서 살아 나온다. 우리를 이끄는 온전한 파란 잔을 향해 손을 뻗으면서. ]]></description><image><url>https://image.aladin.co.kr/product/33730/43/cover150/8962194651_1.jpg</url><link>https://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temId=337304323</link></image></item></channel></rs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