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xml version="1.0" encoding="utf-8"?><?xml-stylesheet href="https://blog.aladin.co.kr/blog/rss/rssUserXSL.aspx" type="text/xsl" media="screen"?><rss version="2.0"><channel><title>스프링버드 (스프링버드 서재)</title><link>https://blog.aladin.co.kr/755452123</link><language>ko-kr</language><description /><copyright /><generator>Aladdin RSS(Alss) v0.9</generator><lastBuildDate>Fri, 10 Apr 2026 15:57:31 +0900</lastBuildDate><image><title>스프링버드</title><url>http://image.aladdin.co.kr/img/blog2/manage/profileimg.jpg</url><link>https://blog.aladin.co.kr/755452123</link><width>100</width><height>100</height><description>스프링버드</description></image><item><author>스프링버드</author><category>마이리뷰</category><title>용기가 필요해</title><link>https://blog.aladin.co.kr/755452123/17193821</link><pubDate>Fri, 03 Apr 2026 09:33: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s://blog.aladin.co.kr/755452123/17193821</guid><description><![CDATA[<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K162638736&TPaperId=17193821" target="_blank"><img src="https://image.aladin.co.kr/product/23651/58/coveroff/k162638736_1.jpg" width="75" border="0"></a>&nbsp;<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8949112736&TPaperId=17193821" target="_blank"><img src="https://image.aladin.co.kr/product/10420/1/coveroff/8949112736_1.jpg" width="75" border="0"></a>&nbsp;<br/><br/><br>어제 나는 안녕했다. 오늘은 안녕할까? 내일, 모레는? 나이가 들어도 내 불안감은 여전한 것 같다. 어릴 때는 사람에 대한 두려움이 컸다면 성인이 되는 과정에서는 사회의 일원으로서 내 능력에 자신이 없어서 두려웠고 늙어가는 지금은 노후에 대한 두려움이 상대적으로 크다. 하지만 내용은 변해도 내 두려움은 하나로 정리된다. 과연 나는 잘 살 수 있을까?   &nbsp;  내 상상력과 자기 불신은 과해서 살면서 종종 문제를 일으켰다. 그것은 현실의 내 발목을 붙잡아서 바깥세상으로 걸어 나갈 수 없게 했고, 현실의 내 눈을 가려서 있는 그대로의 세상을 보지 못하게 했다. 막상 문을 열고 나서면 세상은 내 생각과 아주 많이 다를 때가 아주 많았는데도 집으로 돌아오면 또다시 상상의 세상을 지어내서 그 안에 틀어박히곤 했다. &nbsp;&nbsp;&nbsp;&nbsp;&nbsp;어떤 화가 선생님은 독신으로 고양이와 사는 육십 대 중반 여성인데, 젊을 때부터 외지고 거친 곳에서 살았지만 그림만 있으면 하나도 무섭지 않았다고 했다. '그림만 있으면'이라니! 어떤 젊은 여성 소설가도 비슷한 얘기를 했다. 폐교를 고쳐 만든 한 문학관에 입주 작가로 들어갔는데 그 당시 그곳에 입주한 작가가 아무도 없어서 텅 빈 폐교 건물에 달랑 혼자 머물렀던 모양이다. 어떤 미친년이 혼자 거기서 글을 쓴다는 얘길 듣고 그 문학관을 운영하는 선배 소설가가 호기심에 자기를 찾아오기까지 했다나. 그 여성 작가 역시 써야 할 이야기만 있다면 귀신도 강도도 무섭지 않았나 보다. &nbsp;&nbsp;&nbsp;  &nbsp;  저 화가와 소설가는 배포가 큰 걸까? 그럴 수도 있지만 아닐 수도 있다. 그들이 그렇게 용감하게 낯선 곳에 머물 수 있었던 건 그들에게 그림과 이야기가 있었기 때문이 아닐까 짐작한다. 그들이라고 나처럼 상상력이 없었겠나. 예술가들이니 상상력은 나보다 더하면 더했지 절대 덜하지 않았을 것이다. 그러니까 그들에게는 있고 내게는 없는 것, 그걸 찾아야 할 것 같다. 그걸 찾으면 새 집에서의 내 불안과 공포 혹은 자기 의심을 해소할 수 있을지 모른다.   &nbsp;    &nbsp;   <br>  &nbsp;    &nbsp;  <br><br><br><br><br><br><br><br><br><br>여자아이 아이린이 눈보라 속에서 큰 상자를 들고 간다. 상자 속에는 아이린의 엄마가 만든 공작부인의 무도회 드레스가 들어있는데, 무도회는 바로 오늘 저녁이고 엄마는 병이 나서 아이린이 대신 드레스를 공작부인의 집에 가져가는 중이다. 날씨가 거칠어서 엄마는 아이린을 걱정했지만 아이린은 할 수 있다고 고집을 부렸다. 엄마가 만든 세상에서 제일 예쁜 드레스가 무용지물이 되는 걸 견딜 수 없었기 때문이다.   &nbsp;  아이린은 엄마를 침대에 눕게 하고 누비이불을 두 장이나 꼭꼭 덮어준 뒤에 발치에 담요까지 하나 더 얹어주었다. 그리고 꿀을 넣은 레몬차를 끓여 놓고 난로에 장작도 한가득 집어넣었다. 그러고 나서 옷을 단단히 껴입고 눈발이 휘몰아치는 길로 나섰다. 밖은 아주 추웠고 눈이 쉬지 않고 내렸다. 바람은 얼마나 못되게 구는지, 나뭇가지를 부러뜨려서 내던지고 허공으로 눈을 퍼 올려서 마구 흩뿌렸다. 바람은 아이린이 앞으로 나아가지 못하게 가로막았지만 아이린은 물러서지 않고 뒤로 돌아서서 등으로 바람을 밀면서 계속 걸어갔다. 입술을 꼭 깨물고서 말이다. 아이린은 정말 중요한 심부름을 하는 중이었으니까.   &nbsp;  "집으로 가라, 아이린! 집으로 돌아가란 말이다아아아..."<br> "싫어! 난 절대 돌아가지 않을 거야, 이 못된 바람아!"<br> "집으로 돌아가라니까아아아아! 어서 집으로 돌아가라니까아아아아. 내 말 안 들었다가는..."  &nbsp;  아이린은 바람과 계속 싸우다가 그만 상자를 뺏기고 말았다. 바람은 상자 뚜껑을 홱 열어젖혔고 무도회 드레스는 너풀너풀 일어나 빙글빙글 춤을 추며 날아갔다. 아이린은 눈물이 솟구쳐 속눈썹이 얼어붙어 버렸다.  &nbsp;  "엄마가 얼마나 열심히 만들었는데. 겨우 이렇게 날려 보내려고 그렇게 오랫동안 재고, 자르고, 시침질을 하고, 한 땀 한 땀 꿰맸단 말이야? 공작부인은 또 어떻고? 가엾은 공작부인!"  &nbsp;  아이린은 빈 상자라도 들고 가서 무슨 일이 있었는지 공작부인에게 얘기하기로 결심했다. 집밖으로 나왔을 때부터 아이린의 여정은 이미 험난했지만 공작부인의 집으로 가는 길은 더 험난했다. 눈은 끝도 없이 내려 점점 깊이 쌓였고, 바람은 울부짖었고, 아이린은 구덩이에 발이 빠져서 발목까지 접질렸다. 짧은 겨울 해는 저물어서 이윽고 밤이 되었고 허허벌판 한가운데서 아이린은 길을 잃고 말았다.  &nbsp;  작은 꼬마는 마지막 남은 힘을 모아서 산비탈을 내려가다가 낭떠러지 아래로 떨어져 온몸이 눈 속에 파묻혔다. 살려달라고 해봤자 들을 사람은 아무도 없는데 아이린은 추위에 온몸이 부들부들 떨리고 이가 딱딱 부딪혔다. 그때 아이린은 생각했다.  &nbsp;  "그래, 그냥 이대로 얼어 죽자. 그럼 이 고생도 끝이잖아?"  &nbsp;&nbsp;하지만 곧 생각을 고쳐 먹었다. 갓 구운 빵 냄새가 나는&nbsp;사랑하는 엄마 생각에 아이린은 팔다리를 마구 휘저어서 눈구덩이에서 빠져나왔고 끝내 공작부인의 집에 도착했다. 무도회 드레스는 훨훨 날아서 기적적으로 공작부인의 집 근처 나무를 꼭 끌어안고 있었고, 새 드레스를 입은 공작부인은 밤하늘에 빛나는 별처럼&nbsp;아름다웠다.&nbsp;&nbsp;  &nbsp;  용기가 필요할 때 나는 눈보라를 뚫고 걸어가는 아이린의 모습을 종종 떠올렸고 그러면 아이린의 용기가 내게도 솟는 것 같았다. 아이린은 확실히 용감한 아이다. 그런데 작가는 아이린을 통해서 그 이상의 얘기를 하고 있는 것 같다. 아이린은 거센 눈바람을 맞으며 품에 상자를 꼭 껴안고 걸어가는데, 그 안에는 엄마가 공작부인을 위해 만든 무도회 드레스가 들어있다. 마치 화가의 그림과 소설가의 이야기처럼 아이린에게도 엄마의 드레스가 있고, 그 덕분에 혹은 그 때문에 아이린은 눈보라가 거세게 치는 집밖으로 용감하게 나설 수 있었다.   &nbsp;  그런데 그 드레스의 진짜 의미는 따로 있다. 그것은 드레스가 바람에 날아간 뒤에 분명해진다. 드레스가 바람에 날아가버려도 상자의 빈자리는 비어있지 않다. 거기에는 아이린의 마음이 있다. 엄마의 수고를 헛되지 않게 하려는 마음, 엄마에 대한 따뜻한 사랑, 공작부인에 대한 존중, 더 나아가 드레스로 상징되는 예술에 대한 추앙이 드레스가 날아가고 나서 비로소 보인다. 아이린이 빈 상자를 버리지 않고 공작부인에게 가는 건 그 안에 소중한 가치가 들어있다는 걸 말하기 위해서가 아닐까 싶다. 그러니까 이 그림책은 단순히 용감한 꼬마에 대한 이야기가 아니라 무엇이 사람을 용감하게 만드는가에 대한 철학적 질문이다.   &nbsp;  무서움을 잊게 만들 정도로 소중한 것이 있다면 참 좋겠다. 화가의 그림, 소설가의 이야기, 아이의 엄마 사랑 같이 소중한 것이 있다면. 그것은 비싸고 화려한 게 아니어도 보물 같을 것이다. 맛있는 케이크 한 조각, 한 송이 꽃, 사랑스러운 반려동물의 반짝이는 두 눈동자와 코, 내 옆의 식구나 친구, 조용히 차를 마시는 순간 같은 것. 용감해지는 건 먼저 소중한 걸 찾는 데서부터 시작되는 일이다. 용기란 그걸 지키고 싶어서 나도 모르게 솟는 것이니까. 옷이 날아간 빈 옷상자 속에 있는 눈에는 보이지 않는 그 마음을 지키고 싶어서 말이다. &nbsp;한편으로, 아이린이 공작부인의 집으로 가는 험난한 여정을 미리 세세히 알았더라면 집밖으로 나설 수 있었을까도 생각해 본다. 바람한테 드레스를 빼앗기고, 눈구덩이 속에 빠져서 차라리 죽어버렸으면 좋겠다고 할 지경까지 가리란 걸 미리 알았더라면 아이린은 대담하게 현관문을 열고 나갈 수 있었을까? 이 이야기의 결말은 해피엔딩이지만 현실은 그렇지 않을 때가 더 많아서 어쩌면 아이린은 집안에서 난롯불을 더 피우고 "어차피 옷은 못 전해드려요. 공작부인도 이해하실 거예요" 하고 엄마를 위로하고 보살피는 쪽을 택했을지도 모른다. &nbsp;미래의 일은 아무리 철저하게 준비해도 견고하게 내 마음대로 끌고 갈 수 없다. 어쩔 수 없이 일어나는 일은 일어나는 법이다. 화가가 아무리 용감해도 외진 작업실로 가는 길이 때로는 무섭고 외로울 때가 있었을 테고, 소설가가 아무리 굉장한 이야기를 머릿속에 가득 담고 있어도 큰 폐교 건물의 검은 공간에 압도될 때가 있었을 것이다. 그림만 있으면, 이야기만 있으면, 드레스만 있으면 하나도 무섭지 않아서 용감하게 길을 나섰지만 여정이 너무 험난할 때가 있을 텐데 그땐 어쩌나. 이렇게 앞일을 미리부터 걱정하는 나에게 누가 얘기해 주었다. "무슨 일이 닥치면 닥치는 대로 하는 거지 뭐. 그건 그때 가서 생각해." &nbsp;  &nbsp;    &nbsp;    &nbsp;   <br>  &nbsp;    &nbsp;  <br><br><br><br><br><br><br><br><br><br>표지의 저 곰은 어느 날 문득 그냥 궁금해서 강을 따라가 봤다. 그러다가 그만 강에 빠졌다! 전혀 예상치도 못했던 일이었다. 곰은 어떻게 했을까? 강물을 따라 떠내려가는 수밖에. 그러다가 우연히 통나무 위에 올라탔고 그다음에는 개구리와 거북이와 비버와 너구리 같은 여러 친구들이 합류했다. 그들은 강에 빠지기 전까지는 몰랐다. 외로웠지만 실은 친구가 많은 줄, 통나무배 타기가 위험하지만 재밌는 줄, 강이 일직선이 아니라 구불구불 꺾이는 줄. 그리고 결정적으로 그들 모두 몰랐다, 강줄기가 끊기며 강이 느닷없이 폭포로 바뀌는 줄을.   &nbsp;  지나간 과거의 일들이 쇳덩이 같은 손아귀로 내 발을 붙들고 놓아주지 않는다. 후회할 일 천지고 내가 실패자 같아서 마음이 처지는 날들이 있다. 앞으로 올 시간은 어디로 나를 이끌고 갈지 몰라서 두렵다. 곰처럼 호기심에서 강물에 살짝 발을 담가봤다가 예상치 못하게 빠진 일이 수없이 많아서 새로운 일을 기획하고 실행할 때면 이번에도 내가 허튼짓을 했나 의심하곤 한다. 하지만 그림책의 저 곰처럼 강물에 몸을 맡기고 떠내려가기로 했다. 닥치면 닥치는 대로. 이건 매우 수동적이지만 한편으로는 아주 적극적이기도 한 삶의 역설적 태도가 아닐까 싶다.&nbsp;  &nbsp;  흘러가다 보면, 걸어가다 보면 끝에 이르겠지. 이 길과 강은 숨기고 있던 새로운 만남과 풍경을 펼쳐주겠지. 나서지 않고 빠지지 않으면 볼 수 없는, 내가 모르던 세상을 보여주겠지. 눈구덩이에도 빠지겠지만 아이린처럼 팔다리를 휘휘 저어 빠져나올 수 있겠지. 아무튼 닥치면 닥치는 대로, 그건 그때 가서 생각해도 되겠지. 용감해지고 싶어서 이렇게 용기를 내본다.   &nbsp;  <br>]]></description><image><url>https://image.aladin.co.kr/product/10420/1/cover150/8949112736_1.jpg</url><link>https://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temId=104200158</link></image></item><item><author>스프링버드</author><category>마이리뷰</category><title>결핍을 지나서 온전함으로 가는 이야기</title><link>https://blog.aladin.co.kr/755452123/17146347</link><pubDate>Thu, 12 Mar 2026 17:37: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s://blog.aladin.co.kr/755452123/17146347</guid><description><![CDATA[<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8932010609&TPaperId=17146347" target="_blank"><img src="https://image.aladin.co.kr/product/19/1/coveroff/8932010609_2.jpg" width="75" border="0"></a>&nbsp;<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8943302630&TPaperId=17146347" target="_blank"><img src="https://image.aladin.co.kr/product/5/74/coveroff/8943302630_2.jpg" width="75" border="0"></a>&nbsp;<br/><br/>  &nbsp;  내겐 무엇이 부족할까, 무엇이 빠져있을까를 심각히 고민하던 시기가 있었다. 오래된 고민이고 지금도 여전한 고민이지만 그래도 점점 나는 나 자신과 조화롭게 타협해가고 있는 것 같다. 그림책의 고전이라 할 수 있는 &lt;반쪽이&gt;는 결핍과 관련된 재미있는 옛이야기이다.<br><br> <br><br><br><br><br><br><br><br><br><br><br>이 그림책은 안 본 아이가 드물 것 같다. 무려 1997년에 발표되어 지금까지도 사랑받는 스테디셀러다. 이야기와 그림이 찰떡궁합이고, 이야기는 이야기대로 그림은 그림대로 옛이야기의 반복적 운율을 참 잘 살려냈다. 재치 있는 글맛, 흥미로운 장면 구성이 20년이 지난 지금에도 전혀 낡은 느낌이 없고 오히려 현대적이기까지 하다.  &nbsp;  주인공 반쪽이는 이름 그대로 반쪽 인간인데, 입도 코도 눈도 귀도 팔도 다리도 모두 하나씩밖에 없다. 이렇게 된 이유는 엄마의 실수 때문이랄 수도 있겠지만, 인간의 한계 때문일 수도, 불가항력이었다고 얘기할 수도 있겠다. 어쩌면 자신이 벌인 일을 끝까지 매조지 못한 신령님의 게으름을 탓해도 좋으리라.   &nbsp;  옛날 깊은 산골에 어떤 아주머니가 늙도록 자식이 없어서 신령님께 지극정성으로 빌었더니, 뒤뜰 우물에 잉어 세 마리를 내려줄 테니 구워 먹으라고 신령님이 알려주신다. 아주머니기 이튿날 눈을 뜨자마자 우물가로 갔더니 정말 우물에 큰 잉어 세 마리가 헤엄치고 있는 게 아닌가!<br>아주머니는 신령님의 말대로 잉어를 구워서 먹었는데, 두 마리 반을 먹고 배가 불러서 잠깐 쉬는 사이에 고양이가 남은 반쪽을 한입에 날름 먹어버렸다. 아주머니는 성의가 없지 않았다. 한 마리는 한입에 꿀꺽 삼키고 또 한 마리는 꼭꼭 씹어 먹었으며 마지막 한 마리는 배가 부른대도 '꾸역꾸역' 먹으며 최선을 다했기 때문이다. 반쪽을 남겼던 까닭은 아주머니가 신령님을 무시해서도 아니고, 불성실해서도, 교만해서도 아니었다. 다만 위장의 용량이 세 마리의 잉어를 모두 감당해 낼 수 없었을 뿐이다.&nbsp;아무튼 얼마 뒤에 아주머니는 아들 셋을 낳았는데 마지막 잉어를 반쪽만 먹은 탓에 셋째 아들이 그만 반쪽 인간이 되었다. 아들들은 무럭무럭 자랐고 어느덧 첫째와 둘째 아들이 과거를 보러 가게 되는데, 형들은 반쪽이가 따라오는 게 싫었던 모양이다.   &nbsp;  "형들은 반쪽이랑 같이 가기 싫었대. <br> 사람들이 놀릴 테니 말이야."  &nbsp;  그래서 반쪽이를 큰 바위에 묶고 큰 나무에 묶어서 따라오지 못하게 했는데, 그때마다 반쪽이는 바위를 번쩍 들어서 집 마당에 쿵 내려놓고 나무도 쑥 뽑아서 집 마당에 털썩 내려놓았다. 반쪽이는 힘이 장사였기 때문이다. 자신들을 따라오는 동생에게 약이 오른 형들은 반쪽이를 밧줄로 꽁꽁 묶어 호랑이가 나오는 깊은 산속에 던져버렸고, 당연히 반쪽이는 밧줄을 툭툭 끊어내고 호랑이를 다섯 마리나 잡았다.  &nbsp;  반쪽이는 호랑이 가죽을 벗겨서 집에 돌아가다가 그것을 탐내는 부잣집 영감을 만났고, 영감은 반쪽이에게 호랑이 가죽과 자기 딸을 내기로 걸고 장기 세 판을 두자고 했다. 반쪽이가 장기에서 이기자 영감은 딸을 못 주겠다며 고집을 부렸다. &nbsp;"그럼 내가 오늘 밤 (영감님 딸을) 업어 갈 테요."  &nbsp;  영감네 집에서는 딸을 지키려고 야단이 났는데 반쪽이는 그날 밤이 지나고 다음 날 밤이 지나도 찾아오지 않았다. 세 번째 밤이 됐을 때는 모두 지쳐서 쿨쿨 잠이 들었다. 반쪽이는 다 계획이 있었다. 사람들에게 떡시루를 씌우고 상투를 서로 묶고 북이랑 꽹과리를 손에 잡아매고 영감 수염에 유황을 바른 다음, 딸 방에 벼룩을 술술 뿌려서 딸이 따가워하며 방에서 뛰어나왔을 때 딸을 냉큼 업고 달아나며 냅다 소리를 지른 것이다.&nbsp; &nbsp;  &nbsp;  "반쪽이가 영감 딸 업어 간다."  &nbsp;  고함소리에 모두 잠을 화다닥 깼는데, 유황을 바른 영감 수염에는 불이 붙었고 사람들의 상투는 묶였고 머리에는 떡시루를 썼고 손에서는 북 꽹과리가 둥둥 꽹꽹 정신없이 울렸다는 얘기. 반쪽이는 영감 딸을 색시로 삼아 호호백발이 되도록 잘 먹고 잘 살았다.  &nbsp;  반쪽이 이야기는 재미로 읽어도 충분하다. 아이들은 무조건 이 이야기를 좋아할 수밖에 없을 것 같다. 뭔가 크게 결핍된 주인공에게 아이들은 끌리게 마련이다. 반쪽이는 게다가 제일 어린 막내이기까지 하다. 아이들은 그저 천진하기만 하고 세상 걱정거리가 없어 보이지만 막상 아이들도 그렇게 느낄까? 아이들은 하지 못하고 할 수 없는 게 너무 많다. 이 큰 세상에 방금 온 어린아이들은 모든 게 모르는 것투성이고 모든 게 서툴다. 워낙 쑥쑥 자라니 아이들의 반년이나 일 년은 어른들 세계에서 이삼 십 년을 맞먹는 것 같다. 그래서 형누나들에게도 열등감을 심하게 느끼게 된다.  &nbsp;  이 때문에 아이들이 알게 모르게 속에 감추고 있을 무력감을 위로하고 힘을 불어넣어 주는 주인공이 필요해진다. 반쪽이 이야기는 심리적인 결핍감을 신체적인 결핍으로 보여준다. 입도 눈도 팔도 다리도 하나씩밖에 없는 반쪽이. 그런데 이 반쪽이가 힘도 장사고 꾀도 많고 호호백발이 되도록 잘 먹고 잘 살았다니 얼마나 든든하고 안심이 되는가!  &nbsp;  그런데 결핍은 반쪽이에게만 있는 건 아니다. 이야기 속 아주머니에게는 남편이 없다. 그러니까 반쪽이는 아버지 없는 자식이다. 아주머니는 신령님이 점지해 주신 덕분에 아들을 셋이나 얻는다. 전해져 내려오는 영웅담을 보면 평범하게 태어나는 경우가 드물어서, 반쪽이의 영웅성을 강조하려고 평범한 남자 대신 신령님이 등장했는지 모르겠다. 우리 옛이야기에서 완전수를 상징하는 3이 계속해서 나오는 것을 보면-잉어 세 마리, 아들 삼 형제, 셋째 아들, 바위와 나무와 호랑이로 이어지는 형들과의 세 번의 힘대결-남편 혹은 아버지의 부재를 그렇게 해석해도 완전히 엉뚱하지는 않을 것 같다.   &nbsp;  흥미로운 건, 반쪽이는 바위와 나무를 계속 늙은 어머니에게 갖다 주는데 이야기의 결말은 어리고 예쁜 색시와 행복하게 사는 것으로 마무리된다는 점이다. 반쪽이는 이야기가 진행되면서 성장하는 것이다. 어머니에게 의지하는 어리고 부족한 아이에서 사회적으로 완전한 한 사람 몫을 해내는 어른으로. 어머니는 그 단계에서 아이의 무대에서 퇴장해 주는 것이 마땅하다.   &nbsp;  그런데 반쪽이는 어른이 되었어도 여전히 반쪽이다. 눈과 코와 입고 팔다리가 제대로 채워지지는 않는다. 그리고 바로 이 부분이 이 옛이야기가 진짜로 하려는 말이 아닐까 싶다. 사람은 어떻게 생겼든, 외적으로든 내적으로든, 온전하다는 얘기를 하려는 것은 아닐지. 너는 그 자체로 온전한 존재야, 하고 옛이야기는 우리에게 속삭인다. 알아들을 수 있는 사람은 알아들으라고 너무 세세히 설명하지는 않으면서 말이다. 아마도 아이들은 은연중에 다 알아들을 것만 같다. 이야기를 읽으며 유쾌하게 웃고 나면 마음이 훈훈해지는데 아마도 그 순간, 잠시, 나도 나의 온전함을 살짝 경험해서 그런 게 아닐까 생각해 본다. <br>예전에는 많은 게 부족하다고 느꼈고 그것 때문에 열등감이 심했다. 결핍을 채우려고 무진 애를 쓰기도 했지만 나의 결함을 보정하고 채우려고 할수록 부족한 구멍은 더 커지는 것만 같았다. 하지만 결핍감이 무조건 나쁘기만 할까? 그것은 사람을 앞으로 전진시키는 힘일지도 모른다. 과거를 보러 가는 형들을 따라가는 반쪽이가 바위와 나무를 번쩍번쩍 드는 건 어쩌면 질투의 힘이 아닐까 의심해본다. 정상적인 몸으로 정상적인 궤도를 따라 사회로 진입하는 형들을 보며 반쪽이가 심한 상실감을 느끼지 않았으리라고 누가 자신있게 말할 수 있을까. 그러니 자신을 밀어내는 형들을 기어코 쫓아가려고 했겠지 싶다. 하지만 결핍감에서 비롯된 이른바 질투의 힘으로 반쪽이는 죽죽 앞으로 나아가서 결국에는 색시를 얻는다. 그리고 그때 가서야 비로소 자기 자신이 제대로 보이는 것이다. 나는 처음부터 온전한 존재였구나! 그래서 반쪽이는 영원히 반쪽이로 남는다. 그것은 수동적인 받아들임이 아니라 적극적인 결심이었을 거라고 나는 믿는다.<br>아무튼 시인 기형도도 바로 이 질투의 힘으로 멋진 시를 썼으니 결핌과 질투는 아주 나쁜 것만은 아니라고 말하고 싶다. 결핍과 그것으로 인한 질투는 사람을 앞으로 나아가게 하는, 성장의 걸음을 추동시키는, 인간 내면의 중요한 동력일지 모르겠다.&nbsp;<br><br>질투는 나의 힘  &nbsp;  아주 오랜 세월이 흐른 뒤에힘없는 책갈피는 이 종이를 떨어뜨리리그때 내 마음은 너무나 많은 공장을 세웠으니어리석게도 그토록 기록할 것이 많았구나구름 밑을 천천히 쏘다니는 개처럼지칠 줄 모르고 공중에서 머뭇거렸구나나 가진 것 탄식밖에 없어저녁 거리마다 물끄러미 청춘을 세워두고살아온 날들을 신기하게 세어보았으니그 누구도 나를 두려워하지 않았으니내 희망의 내용은 질투뿐이었구나그리하여 나는 우선 여기에 짧은 글을 남겨둔다나의 생은 미친 듯이 사랑을 찾아 헤매었으나단 한번도 스스로를 사랑하지 않았노라  &nbsp;  <br>   &nbsp;    &nbsp;    &nbsp;    &nbsp;  <br>]]></description><image><url>https://image.aladin.co.kr/product/5/74/cover150/8943302630_2.jpg</url><link>https://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temId=57418</link></image></item><item><author>스프링버드</author><category>마이리뷰</category><title>판타지의 힘</title><link>https://blog.aladin.co.kr/755452123/17135752</link><pubDate>Sat, 07 Mar 2026 15:02: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s://blog.aladin.co.kr/755452123/17135752</guid><description><![CDATA[<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8936455753&TPaperId=17135752" target="_blank"><img src="https://image.aladin.co.kr/product/28739/65/coveroff/8936455753_1.jpg" width="75" border="0"></a>&nbsp;<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8949161729&TPaperId=17135752" target="_blank"><img src="https://image.aladin.co.kr/product/3132/11/coveroff/s762636804_1.jpg" width="75" border="0"></a>&nbsp;<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8952782925&TPaperId=17135752" target="_blank"><img src="https://image.aladin.co.kr/product/10947/40/coveroff/8952782925_1.jpg" width="75" border="0"></a>&nbsp;<br/><br/><br> 어린이들은 상상의 친구를 만든다고 한다. 나도 꽤 공상을 하는 어린이였지만 상상의 친구를 만든 기억은 없다. 그러나 책 속에서 많은 친구들을 만났고 그들로부터 큰 기쁨과 위로를 선사받았다. 어린이를 소재로 하거나 어린이를 위해 만든 문학이나 영화를 보면 상상의 친구 모티브를 직접적으로 사용하는 예가 많은데, 그런 걸 보면 아이들에게는 평범한 현실만으로는 만족할 수 없는 깊고 생생한 욕구가 있는 게 아닐까 싶다. 혹은 현실이 아이들에게 너무 버거워서 그들을 도와줄 보조적 수단이 필요한 것일지도 모른다. &nbsp;&nbsp;  &nbsp;   <br>  &nbsp;    &nbsp;  <br><br><br><br><br><br><br><br><br>노란 옷을 입은 소녀가 토끼와 어깨동무를 하고 있다. 소녀는 혼자 있는 시간이 많은 외로운 아이다. 텔레비전도 보고 책과 장난감도 많고 가끔 엄마랑 놀이터도 가고 외식도 하지만, 그럴 때는 정말 신이 나지만, 그러고 나면 소녀는 '다시 혼자'가 된다. 소녀는 거친 현실 세상 속에서 너무나 작고 외로워 보인다. &nbsp;  &nbsp;  하지만 소녀는 특별한 친구가 있다. 그래서 '정말 정말 다행'이라고 느낀다. 그 친구 이름이 알도다. 알도는 정말 힘든 일이 생기면 언제나 찾아와 도와주는데, 아이들이 소녀를 발로 차고 때렸을 때도 알도가 나타나서 걔네들을 쫓아줬고 무서운 꿈을 꿨을 때도 책을 들고 와서 읽어줬다. 다행히 소녀는 알도와만 놀지 않고 알도를 까맣게 잊고 지내는 날도 있다. 그런 날들이 점점 더 늘어나는 것 같다. 그것도 알도 덕분인 것으로 어렴풋이 짐작된다. 혼자 지내는 버거운 하루하루를 알도가 같이 있어줬기에 소녀는 조금씩 강해지는 것처럼 보인다. 소녀는 여전히 어리고 여리다. 그래서 소녀에게는 여전히 알도가 필요하고, 여전히 알도에 대한 믿음이 필요하다. &nbsp;  &nbsp;  "나에게 정말 힘든 일이 생기면<br> 알도는 언제나 내 곁에 있을 거야."  &nbsp;  <br><br>  &nbsp;  여기에 외로운 아이가 또 있다. 그림책이 아니라 글밥이 꽤 되는 저학년 동화인데, 아이들용이라고 절대 무시할 수 없는 아주 잘 쓰인 판타지 문학이다.&nbsp;&nbsp;  &nbsp;  &nbsp;&nbsp; <br>  &nbsp;    &nbsp;  <br><br><br><br><br><br><br><br><br><br><br><br>주인공 아이는 햇볕도 안 드는 지하에서 엄마와 단 둘이 산다. 엄마는 식당 일을 마치고 밤늦게야 돌아오고 친구들은 아이가 다리를 절뚝거린다고 놀린다. 아이는 학교 준비물을 잘 챙겨가지 않아서 선생님한테 자주 혼이 나고 주인집 개는 너무 무섭다. 아이는 스스로를 '꼬마 여자애'라고 정의한다. 그러니까 작가는 '꼬마'와 '여자'애가 약점이라고 단언하고 이야기를 시작하는 셈이다. 아이들 세계에서도 여자가 약점이 되는지는 개인적으로 의문이 들지만, 아무튼 이야기는 이 두 약점을 약점이 아니라 선언하듯, 주인공 아이를 여왕님이 아닌 임금님으로 등장시킨다. 일단은 아이의 이름이 임금님이다. 성이 '임'이고 이름이 '금님'이다.   &nbsp;  금님이는 빈 집에서 외롭고 심심하고 슬프다. 가슴이 답답할 때가 많아서 자주 한숨을 쉬곤 해서 엄마에게 타박을 받기도 한다. 그런데 그런 날 중 어느 하루에 신기한 일이 벌어졌다. 금님이는 평소처럼 혼자 빈 집에서 어두운 생각에 잠겨 있었다. 그러다가 이제 그런 생각은 그만하자고 마음을 먹고 다리를 쭉 펴고 발가락을 꼼지락거리다가 발끝을 가만히 바라보았다.  &nbsp;  "얼마나 시간이 흘렀을까요? 두 발 사이에 말이에요, 그러니까 그게, 두 발 사이에 무언가가 생겨나기 시작했어요. 놀랍게도 그건 바로 호리병이었어요!"  &nbsp;  그리고 더 놀라운 일이 그다음에 벌어졌다. 호리병 안에서 개미만큼 작은 사람들이 나와 아이를 빙 둘러서 에워싸고는 한 목소리로 물었다. "당신이 임금님이세요?" 아이는 그렇다고 대답했다. 이름이 임금님이니까. 작은 사람들은 서로를 얼싸안으며 드디어 임금님을 만났다고 기뻐했다.  &nbsp;  "오, 세상에! 드디어 임금님을 만났네요. 저희들은 임금님의 백성이에요."  &nbsp;  외롭고 불행한 아이에게 나타난 판타지의 세계다. 이 세계로 들어가는 문은 이렇게 심심하고 외롭고 불행하고 슬플 때 열린다. 작은 사람들은 판타지 문학의 중요한 모티브인데 흥미롭게도 작가는 이들을 아이의 두 발 사이에서 홀연히 나타난 호리병 속에서 나오게 했다. (두 발을 닿지 않을 거리로 가까이 대보면 꼭 호리병 같은 공간이 만들어진다.) 아이는 이제 이름만 아니라 진짜 임금님이 된다. 백성들을 거느리고 보살피는 임금님 말이다. 작은 사람들은 임금님에게 자신들이 몹시 굶주리고 있다고 하는데 그때 마침 아이도 배가 고픈 참이었다. 엄마 없이 혼자 있을 때 아이는 밥을 잘 챙겨 먹지 않기 때문이다. 금님이는 작은 사람들을 위해서 밥을 차려주었고 작은 사람들이 말했다. "임금님이 드셔야 우리도 먹을 수 있어요." 하고. 그래서 금님이는 엄마가 만들어놓은 감자조림 반찬으로 맛있게 밥을 먹었다.  &nbsp;  판타지의 세계 속에서 아이는 좋은 임금님이 되는 법을 배운다. 작은 사람들은 임금님이 행복해야 백성이 행복하고 임금님이 불행하면 백성도 함께 불행하다고 말했고, 아이에게 지금 왜 불행한지를 물었다. 아이는 자신의 결핍을 돌아본다. &nbsp;&nbsp;&nbsp;  &nbsp;  "지금 이 순간, 어떤 일이 일어나면 기쁘고 흐뭇하시겠어요? 어떤 일이 생기기를 원하세요?"  &nbsp;  금님이가 행복해지려면 결핍이 채워져야 한다. 그런데 그보다 선행되어야 할 건, 무엇이 결핍인지, 결핍을 직면하는 일이다. 그건 아이 어른 누구에게나 그럴 테다. 아이는 진짜 임금님처럼 예쁜 옷을 입고, 맛있는 음식을 먹으며, 자신 곁에서 든든하게 보살펴주는 하인들이 있기를 바랐다. 아이는 다리를 절뚝거리지 않고 푸른 들판을 달리고 싶었다. 아이는 수염이 까칠까칠하고 목말을 태워주고 휘파람을 부는 아빠를 갖고 싶었고, 팔짱을 끼는 친구를 원했다. 주인집 개 앞에서 움츠러들지 않을 용기도.  &nbsp;  이 모든 현실 인식과 욕구 충족이 두 발 사이에서 생겨난 호리병 속에서 나온 작은 사람들을 통해서 이루어졌다. 물론 다 상상 속에서. 하지만 상상 속에서라도 결핍감이 채워지면 나면 마음이 좀 위로받지 않을까? 위로를 받으면 자연히 힘이 나는 법이다. 실제로 금님이는 백성들에게 밥을 차려주면서 자기도 엄마가 해준 감자조림 반찬으로 맛있게 밥을 먹었고, 무서운 개를 만났을 때 백성들을 떠올리며 용기를 내 보았다. 친구들이 놀릴 때도 백성들을 생각해서 당당해져 보았다. 그렇게 해서 금님이의 현실이 조금씩 바뀌어나간다. 그건 금님이가 현실을 수용하는 법을 배워나간 덕분이기도 하다. 아동문학 평론가 김서정은 이 상호작용을 '판타지 세계와 현실 세계의 따뜻하면서도 힘찬 포옹'이라고 했다. 참 적절한 표현이라고 생각한다.   &nbsp;    &nbsp;  <br>여기에 임금님처럼 다리가 아픈 아이가 또 있다. 이 아이는 금님이보다 더 힘든 상황에 놓여있다. 다리가 아파서 일 년째 침대에 누워만 있기 때문이다. 게다가 아무래도 영영 못 걷게 될 것 같다. 이 아이의 이름은 예란. 예란은 엄마 아빠가 자신의 다리를 두고 하는 얘기를 몰래 들었던 날, 판타지의 세계를 만난다. 이성적인 현실주의자는 주인공이 판타지의 세계로 도망쳤다고 할 수도 있겠으나, 판타지의 세계가 예란을 보호하기 위해서, 혹은 아이의 무의식이 혹은 아이의 영혼이 아이를 감싸주려 나섰다고 볼 수도 있지 않을까? 그건 생각하기 나름이다. 나는 그게 옳고 그름의 문제라기보다 아이에게 도움이 되는 쪽으로 생각하는 게 좋다고 본다.  &nbsp;  &nbsp;&nbsp; <br>  &nbsp;    &nbsp;  <br><br><br><br><br><br><br><br><br><br>그 충격적이고 절망스러웠던 날, 예란 앞에 어스름 나라의 백합줄기 아저씨가 찾아왔다. 이층 집의 닫힌 창문으로 불쑥 나타난 작은 아저씨는 예란을 어스름 나라로 데려간다. 어스름 나라는 '허깨비 나라'라고도 불린다는 걸 예란은 알고 있다. 자신도 그게 상상인지 안다는 얘기다.   &nbsp;  어스름 나라에서는 아무것도 문제 되지 않는다. 창문을 열지 않아도 창문 밖으로 나갈 수 있고 다리가 아파도 걷고 날고 춤을 출 수 있다. 주스를 뿌리며 장난을 쳐도 괜찮고 전차도 운전할 수 있다. 예란은 자기가 할 수 없는 것들을 다 할 수 있다. 현실 세계의 어려움과 불가능과 제약을 벗어난 세계를 예란은 꿈꾼다. 그런 게 아무 문제가 되지 않을 세계를. &nbsp;  &nbsp;  "괜찮아. 어스름 나라에서 그런 건 문제가 되지 않아."   &nbsp;  &lt;알도&gt;의 존 버닝햄과 &lt;나는 임금님이에요&gt;의 이미현, &lt;어스름 나라에서&gt;의 린드그렌은 아이를 판타지 속에 얼마나 머물게 할 것인가와 관련해서 약간씩 차이가 있지만 아이로 하여금 판타지 세계를 완전히 떠나게 하지는 않는다.&nbsp; &nbsp;&nbsp;  &nbsp;  임금님이 어려움을 하나씩 이해하고 극복해 나가서 현실 속에 성공적으로 자리를 잡았을 때, 그러니까 바쁜 엄마를 도와 설거지와 청소도 해놓고 학교 준비물도 챙기고 공부도 하고 친구들과 놀기도 하느라 바빠서 백성들을 잘 만나지 못할 즈음, 백성들이 임금님에게 이제 돌아가겠다고 말한다. 임금님 덕분에 자신들도 평화롭고 행복해졌으니 다시 제자리로 돌아가겠노라고 말이다. 하지만 백성들은 늘 임금님 곁에 있다고, 그러니 언제나 저희를 잊지 말라고 얘기한다.   &nbsp;  백성들은 호리병 속으로 들어갔어요. 나는 호리병을 가만히 바라보고 있었어요. 호리병은 점점 연해지다가 투명하게 변하더니 마침내 환한 빛이 되었어요. <br> 그런데 그 환한 빛은 내 발 속으로 빨려 들어가고 있었어요. 발이 따뜻해지고 전기가 찌릿찌릿 통하는 것 같은 느낌이 들었어요. <br> 빛은 남김없이 내 양쪽 발로 빨려 들어가 다리를 타고 배와 가슴으로 가더니 머리까지 가득 차올랐어요. <br> 내 몸이 빛으로 가득 채워진 것 같았어요.<br> 나는 가만히 내 몸을 감싸 안았어요. <br> 빛이 된 백성들이 내 안에 함께 있는 것만 같았지요. 백성들의 합창 소리가 들리는 것 같았어요. <br> "우리는 늘 임금님 곁에 있답니다."  &nbsp;  린드그렌 작가의 백합줄기 아저씨는 어스름 나라 여행을 끝내고 헤어질 때면, 이제 돌아가겠다고 말하는 임금님의 작은 사람들과 다르게 언제나 이렇게 인사한다.  &nbsp;  "내일 어스름 녘에 다시 만나자."  &nbsp;  예란은 영영 걷지 못하게 될지도 몰라서 그랬을까? 예란은 침대에서 보낸 일 년을 잘 버틴 아이다. 그런데 앞으로 더 힘든 시간이 예란 앞에 놓여있는 것 같고, 그런 현실을 받아들이기 위해서는 마음이 단단해질 시간이 더 필요하다. 단순하게 보자면, 아이는 밖에 나가 뛰어놀 수 없는 매일의 낮을 견뎌낸 보상을 어스름 녘에 누릴 권리가 있다고도 말하고 싶다. 린드그렌 작가는 아이의 마음을 그 누구보다 잘 이해하는 사람이라는 생각이 드는 건 이 작품을 포함해서 몇몇 작품이 거의 파격적으로 보이는 선택을 하기 때문이다. 아이들을 판타지에 그대로 남겨두는 것! &lt;그리운 순난앵&gt;이란 작품에서는 아이들이 현실로 돌아오는 문을 아예 닫아버리기도 한다. 아이들은 충분히 그 안에서 위로받아야 한다는 듯이. 때가 되면 아이 스스로 결정할 수 있을 것이라고 작가는 믿는 것 같다. 어느 쪽을 선택하든 나는 너를 언제나 지지하고 난 언제나 네 편이야, 라고 말하는 것 같다.  &nbsp;  <br><br>일본의 정신분석학자 가와이 하야오는 판타지를 '영혼의 발로'라고 보았다. 그에 따르면 영혼은 '인간이라는 존재를 몸과 마음으로 나누어 생각할 때 어느 쪽에도 포함될 수 없는 것, 또는 몸과 마음을 통합하여 인간이 존재할 수 있게 해 주는 것'이다. 어려움에 놓인 아이들, 그러니까 알도의 소녀와 임금님과 예란 같은 아이들이 힘을 내고 활력을 되찾을 수 있는 건 그들의 영혼 덕분일 것이라고 하야오는 말한다. 영혼이 아이들을 돕는 것이다. 그렇다면 판타지는 영혼이 아이들과 또 우리 어른들에게 어떻게 작동하는가를 잘 보여주는 예시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든다. 혹은 반대로, 영혼이 활발하게 작동할 수 있도록 판타지가 마음의 지평을 열어주는 것일지도 모르겠다.&nbsp; &nbsp;  &nbsp;  "영혼 그 자체는 파악할 수 없지만, 영혼은 늘 우리 주위에서 작용하고 있으며 판타지는 그것을 어느 정도 파악하여 남에게 전달하는 방법으로 가장 적절한 수단이다."&nbsp;- 가와이 하야오  &nbsp;  아이들에게는 환상이 필요하다. 아이들은 환상 속에서 현실의 어려움을 해결할 수 있는 힘을 얻는다. 어른의 세계는 거칠고 무정할 때가 많고, 아이들끼리의 세계는 더 야만적일 수 있다. 그래서 아이들은 자신이 맞닥뜨리는 현실의 장애와 위험과 갈등을 판타지 세계 속에서 살아내 보는 게 필요하다. 상상의 존재에게 위로받고 의지하고 화를 내고 망쳐도 보는 것이다. 그렇게 해서 아이는 현실의 상황을 객관적으로 볼 수 있는 거리 두기를 할 수 있게 되고, 자기를 조절할 수 있는 능력을 조금씩 터득해 나갈 수 있다. 무엇보다도 아이는 어려운 시기를 넘어갈 수 있다. 그럭저럭, 잘 하든 못 하든.&nbsp;&nbsp;  &nbsp;  그런데 나는 똑같은 말을 문학 일반에도 대입하고 싶다. 특히 좋은 소설 속에서 나는, 하야오 식으로 말하자면 내 영혼은, 현실 세계를 벗어나 자유롭게 풀려난다. 그곳에서는 아무것도 문제가 되지 않아, 라고 나는 말하게 된다. 문학은 그것이 판타지든 사실주의든 실존주의든 SF든 다 통틀어서 판타지가 아닐까. 어차피 현실은 아니라는 점에서. 회화가 구상과 추상으로 더는 나뉘지 않고 구상이 곧 추상이라고 보는 것과 같은 선상에서 말이다. 문학을 읽는 우리는 발을 현실과 판타지의 경계에 걸친 채 두 세계를 넘나들며 살아가는 것일지 모르겠다. 현실을 더 잘 살아내기 위해서 우리는 은연 중에 모두 그렇게 하고 있지 않을까?   &nbsp;    &nbsp;    &nbsp;  인용 자료그리운 순난앵, 아스트리드 린드그렌, 홍재웅 옮김, 열린어린이, 2010.판타지 동화를 읽습니다, 김서정, (주)학교도서관저널, 2021.판타지 책을 읽는다, 가와이 하야오, 햇살과나무꾼 옮김, 비룡소, 2006. ]]></description><image><url>https://image.aladin.co.kr/product/10947/40/cover150/8952782925_1.jpg</url><link>https://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temId=109474073</link></image></item><item><author>스프링버드</author><category>마이리뷰</category><title>우정이란</title><link>https://blog.aladin.co.kr/755452123/17117587</link><pubDate>Fri, 27 Feb 2026 12:02: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s://blog.aladin.co.kr/755452123/17117587</guid><description><![CDATA[<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894911271X&TPaperId=17117587" target="_blank"><img src="https://image.aladin.co.kr/product/10438/88/coveroff/894911271x_2.jpg" width="75" border="0"></a>&nbsp;<br/><br/><br>아주 다른 두 사람이 친구가 되는 건 가능할까? 그럴 수 있을 것 같다. 모든 차이를 뛰어넘어서 두 사람은 맺어질 수 있다고 믿고, 그러기를 꿈꾸기도 한다. 하지만 그 우정이 오래가려면 전제가 있다. 서로 다름을 받아들이기. 사랑이 깊으면 다름이 문제 되지 않는데 사랑이 얕을 때 두 친구는 고민이 깊어진다. 다르다는 사실이 큰 걸림돌이 된다. 사랑하고 싶은데 사랑할 수 없어서 두 친구는 괴롭다. 한편으로 다른 전제가 더 있을 것 같다. 사람마다 중요하게 생각하는 전제는 다를 텐데 그림책 작가 윌리엄 스타이그는 뭐라고 생각했을까? &nbsp;<br> <br><br><br><br><br><br><br><br><br><br><br>민담이나 설화, 전설을 간단히 옛날이야기라고 치자. 이것들은 형식상의 차이가 있을지는 몰라도 모두 상징적이고 비유적이란 점은 공통된 것 같다. 옛날이야기는 재미를 기본으로 갖추고 있지만 더 깊숙이 들어가 보면 인간과 인간 삶의 본질적인 부분을 건드린다. 생과 사라든가 선과 악, 사람이 사람답기 위해서 반드시 갖춰야 할 것, 삶이 향상으로 나아가기 위해 극복해야 할 것 같은 문제들이 가장 빠르고 간결한 지름길을 통해서 핵심으로 달려간다. 그림책도 옛날이야기와 비슷한 구석이 있어서 문학 장르로 보자면 시만큼이나 압축적이다. 꼭 필요한 얘기만 하고, 때로는 말을 삼켜서-시인 나태주의 표현-생략된 부분을 우리의 상상력으로 채워 넣어야 한다. &lt;아모스와 보리스&gt;도 옛날이야기처럼 읽어야 한다. 현실적으로 전혀 있을 것 같지 않은 이야기를 지금부터 할 테니 그런 줄 알고 들어주세요, 하는 작가의 웃음이 담뿍 밴 첫 문장으로 이야기는 시작한다. <br>"옛날에 어떤 바다에 생쥐 한 마리가 살고 있었어. 그 생쥐의 이름은 아모스였지."<br>아모스는 육지에 사는 작디작은 생쥐인데 바다가 좋았다. 바다에서 불어오는 바람 냄새, 부서지는 파도 소리, 조약돌이 파도에 밀려 굴러가는 소리를 사랑했고, 바다 저 멀리에 어떤 세계가 있는지도 궁금했다. 그래서 낮에는 배를 만들고 밤에는 배 타는 법을 공부해서 드디어 항해를 떠났다. &nbsp;<br><br>아모스는 즐겁게 항해했다. 삶에 대한 사랑으로 아모스의 가슴은 부풀어 올랐다. 검푸른 밤바다에서 발견하는 거대한 우주, 그 안의 작은 생명체로서의 자신, 만물과 하나가 되는 감동에 젖었다. 그러다가 아뿔싸!<br>"아모스는 온갖 생명체의 아름다움과 신비함에 취해서 데굴데굴 구르다가 갑판에서 떨어져 바다로 빠지고 말았어."<br>로우던트라고 이름까지 붙여준 배는 무정하게도 돛을 활짝 펴더니 아모스를 버리고 멀어졌고, 아모스는 망망대해에 혼자 외로이 남았다. 밤이 지나고 아침이 밝고 비가 오고 다시 날이 개었다. 아모스는 지치고 힘이 점점 빠져서 이제 죽는구나 생각했다. 시간이 오래 걸릴까? 그저 무섭기만 할까? 내 영혼은 하늘나라로 올라갈까? 하늘나라에는 다른 쥐들도 있을까? 아모스가 이렇게 끔찍한 질문들을 던지고 있는데 물속에서 큰 머리통이 불쑥 치솟아 올랐다. 고래였다. &nbsp;<br>"넌 무슨 물고기니? 너, 물고기 맞지!" " 난 물고기가 아니야. 난 생쥐라고. 고등 동물인 포유류에 속하지." "난 뭍에서 살아.""아니 세상에! 바다에서 살긴 하지만 나도 포유류란다. 내 이름은 보리스야."<br>'귀찮지 않다면'&nbsp;집으로 데려다 달라는 아모스의 부탁에 보리스는 기꺼이 아모스를 등에 태워주었다. 집까지 가는 데는 일주일이 걸렸고, 두 포유류는 때로는 빠르게 때로는 느리게 헤엄을 치며 나아갔는데, 그러는 동안 둘은 서로에게 깊이 감동하게 됐다. 보리스는 아모스의 가냘픔과 떨리는 듯한 섬세함, 가벼운 촉감, 작은 목소리, 보석처럼 빛나는 모습에 감동했고, 아모스는 보리스의 거대한 몸집과 위험, 힘, 의지, 굵은 목소리, 끝없는 친절에 감동했다. <br>이 과정이 둘을 가장 친한 친구로 만들어주었다. 보리스와 아모스는 서로의 생활과 꿈을 이야기하고 깊이 감춰두었던 비밀을 나누었다. 고래는 육지 생활을 신기해했고 아모스는 바닷속 깊은 곳에서 일어나는 일들에 반했다. 해변에 도착했을 때 둘은 헤어질 수밖에 없다는 사실에 슬펐지만 서로를 영원한 친구라고 불렀다. 그리고 덧붙였다. <br>"난 절대로 널 잊지 않을 거야."<br>아모스가 보리스에게, 목숨을 구해줘서 늘 감사할 테고 도움이 필요할 때 기쁘게 도와줄 거라고 하자 보리스는 바다로 돌아가며 혼자 웃었다. "저렇게 작은 생쥐가 어떻게 나를 돕겠어?"&nbsp;그러면서도 생각했다, "아모스는 마음이 아주 따뜻해, 난 아모스를 사랑해, 정말 보고 싶을 거야."&nbsp;&nbsp;&nbsp;<br>우리가 예상하고 기대하듯, 이야기는 이 불가능한 일을 이루어지게 했다. 허리케인 때문에 해변으로 떠밀려온 고래 보리스를 아모스가 발견하고, 마음씨 고운 큰 코끼리 두 마리를 데려와 고래를 바다로 밀어 넣어 목숨을 구해준 것이다. 그렇게 해서 다시 한번 아모스와 보리스는 헤어지게 되었다. <br><br><br>"거대한 고래의 두 볼 위로 눈물이 흘러내렸지. <br>조그만 쥐의 눈에서도 눈물이 흘렀고. <br>아모스가 찍찍댔어. "안녕, 보리스!!" <br>보리스도 천둥처럼 소리를 질렀어. "안녕, 아모스!" <br>보리스는 파도 속으로 사라졌어. <br>아모스와 보리스는 서로 만날 수 없다는 것을 알고 있었지. <br>하지만 서로를 절대로 잊지 않으리란 것도 알고 있었어."<br><br>이 그림책을 부러 찾아 읽었다. 친구가 무척 그리웠구나, 그림책을 한 장 한 장 꼼꼼히 들여다보는 나를 돌아보며 생각했다. 오랜 친구와 헤어져야 할 것 같아서, 관계를 더 지속할 수 없을 것 같아서 그동안 마음을 많이 앓았더랬다. 어른이 되면 어린 시절의 깨끗한 우정을 누리기가 힘들어지는 것 같다. 그건 상대의 잘못이라기보다 내가, 친구가, 어른이 되었기 때문이다. 생각이 복잡해지고 가치관이 뚜렷해지고 시간에 쫓기고 현실의 문제에 매몰되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단순히 그것 때문만일까? 이런저런 이유들을 더 떠올려보다가 문득 이러는 건 무익하고 어리석은 짓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br>우정을 이어주는 것, 너무나 다른 두 친구가 서로 영원히 친구로 남아있을 수 있게 해주는 것에 대해 저 사람 좋은 윌리엄 스타이그는 진솔하게 답한다. "그건 잊지 않는 거야." 만날 순 없지만 잊지 않는 것이라고. 우리의 첫 만남과 우리가 나눴던 마음속 이야기들, 비밀들, 그리고 그럴 일이 생긴다면 꼭 도와주겠노라 약속하는 따뜻한 마음, 그 모든 걸 잊지 않는 거라고. <br>사람에게도 유통기한이 있다는 말에 대해 약간 거부감을 느끼면서도 동의했었다. 그러나 사람은 물건이 아니고, 유통기한이란 말을 사람에 붙이는 순간 사람은 숭고한 존재에서 물건으로 끌어내려진다. 유통기한 대신 쓸 수 있는 더 좋은 말은 없을까? 그건 단어가 아닌 문장으로 풀어서 얘기해야 하는 것일지 모르겠다. 이렇게. <br>"우리가 영원히 친구로 남게 되면 좋겠다. 우린 영원히 친구가 될 수는 있지만, 함께 있을 순 없어. 너는 육지에서 살아야 하고, 나는 바다에서 살아야 하니까. 그래도 난 절대로 널 잊지 않을 거야."<br>우정이란 지금 이 순간의 관계만 가리키는 게 아닐 수 있다는 생각이 든다. 과거의 어느 순간들, 그때의 그 바다, 그 밤과 그 낮의 일주일, 그때의 보리스와 아모스로, 그 순간과 그 순간 속에 놓였던 우리로 영원히 기억해 주는 일이 우정을 존재하게 한다. 내가 그렇게 기억할 때 친구는 영원한 친구가 된다. 마치 우리 내면에 순수한 아이가 언제나 살아있듯이 말이다.&nbsp;&nbsp;<br><br><br><br><br><br><br style="color: rgb(51, 51, 51); font-size: 14.6667px; letter-spacing: 0.8px;">]]></description><image><url>https://image.aladin.co.kr/product/10438/88/cover150/894911271x_2.jpg</url><link>https://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temId=104388836</link></image></item><item><author>스프링버드</author><category>마이리뷰</category><title>흘려보내기</title><link>https://blog.aladin.co.kr/755452123/17098789</link><pubDate>Wed, 18 Feb 2026 13:55: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s://blog.aladin.co.kr/755452123/17098789</guid><description><![CDATA[<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8952784340&TPaperId=17098789" target="_blank"><img src="https://image.aladin.co.kr/product/10007/93/coveroff/8952784340_1.jpg" width="75" border="0"></a>&nbsp;<br/><br/><br> 어쩐 일인지 강과 관련된 이야기라면 무조건 끌렸다. 지금도 그렇다. 깊은 산 어디에 작은 시원이 숨어있어 물은 시작되고 작은 물길을 이루며 흐르고 흐르고 흘러간다. 물길은 모든 물을, 작고 큰, 깨끗하고 흐린, 조용하고 시끄러운 온갖 물을 거부하지 않고 받아주며 점점 커진다. 그리고 마지막에는 큰 하구를 열어 바다로 자신을 남김없이 풀어놓는다.&nbsp;<br>여기에 강을 이야기하는 그림책이 있다.&nbsp;<br><br> <br><br>  &nbsp;  <br><br><br><br><br><br>아름답고 평화로운 마을에 작은 강이 흐른다. 그림책의 영어 원제는&nbsp;Letting Swift river go. 스위프트 강을 놓아줘, 정도로 이해하면 될 것 같다. 이건 사랑이 깊은 나머지 강을 붙잡고 보내주지 못하는 누군가에게 건네는 말이다. "강을 가게 해 줘, 놓아줘, 더는 잡지 마, 가야 할 곳으로 강을 놓아주렴."&nbsp;&nbsp;&nbsp;이 그림책은 저수지에 수몰된 작은 마을과 그곳 사람들에게 헌사된 이야기다. 산으로 둘러싸인 작은 마을, 그곳에는 아름다운 강이 흐른다. 마셔도 되는 맛있고 맑은 물이 흐르는 스위프트 강. 강을 끼고 사람들은 정답게 살고 있다. 교회와 방앗간이 길로 이어지고 아이들은 놀기 위해 네거리에서 만난다. &nbsp;  &nbsp;  그림책의 주인공 섈리 제인은 친구들과 도시락을 싸서 공원묘지로 소풍을 가고, 뒤뜰 단풍나무 아래 누워 밤하늘을 올려다보기도 했다. 그러면 멀리서 기차 소리가 울리고 가끔은 올빼미 기척도 들을 수 있었다. 침실 창가에는 바람이 버드나무 가지를 스치며 불어 들어오고 겨울이면 아빠가 작은 호수에서 얼음을 잘라왔다. 평화로운 시간이었다. &nbsp;&nbsp;&nbsp;<br> 그런데 갑작스럽고 전격적인 변화가 평화로운 일상을 전복시킨다. 멀리 떨어진 대도시에 물을 공급하기 위해 이 일대에 저수지를 만들기로 한 것이다. 마을 사람들은 깨끗하고 맑고 맛 좋은 강물을 내어주는 대신에 돈을 받고 다른 곳으로 삶의 터전을 옮긴다. 샐리 제인의 아빠는 눈물을 흘리며 할아버지와 할머니의 무덤을 이전하고, 아이는 가족 같았던 늙은 나무와 이별했다. 집도 방앗간도 교회도 학교도 허물어졌다. 친구들과는 작별 인사조차 나누지 못했다. 안녕이란 말을 할 새도 없이 헤어졌다. 그리고 세월이 흘렀다. 어른이 된 샐리 제인은 아빠와 이곳을 찾아와 저수지로 배를 타고 나간다. &nbsp;아빠는 물 밑을 내려다보며 말씀하셨다.   &nbsp;  "저길 보렴, 샐리 제인. <br> 프레스콧 마을로 가던 길 자리야. <br> 저긴 비버 시냇가 가던 길 자리고,<br> 저긴 네가 세례를 받은 교회가 있던 자리란다. <br> 학교가 있었고, 마을회관이 있었고, 오랜 된 돌집 방앗간이 거기 있었지. <br> 다시는 그 모든 걸 못 보게 됐구나."  &nbsp;    &nbsp;  샐리 제인은 물밑으로 아스라이 마을의 윤곽을 본 것 같다고 생각했지만 옛 모습을 읽어내긴 어려웠다. 이제는 물고기들 차지가 되어버린 옛날 길들. 날은 차츰 어두워져 밤하늘에 별이 떴다. 물에 반사된 별빛은 개똥벌레처럼 빛났고 두 손을 모아 강물을 뜨는데 문득 떠오르는 기억들이 있었다. 버드나무 가지에 스치던 바람, 선로를 따라 달리던 기차 소리, 친구들을 만나던 네거리, 지금은 가 버린, 물속으로 영원히 사라져 간 모든 것.&nbsp;그리고 물에 잠긴 세월 저편에서 엄마의 목소리가 들렸다. 개똥벌레를 잡아 병에 가두던 자신에게 했던 엄마의 말이었다.   &nbsp;  "놔주렴, 샐리 제인."  &nbsp;    &nbsp;  샐리 제인은 점점 검어지는 깊은 물속을 들여다보며 가만히 웃었다. 그리고 엄마가 하라는 대로 했다. 강물을, 개똥벌레를, 별빛을, 소중한 추억들을, 흘러간 시간을 샐리 제인은 놓아주었다. &nbsp;  &nbsp;  인간 사회의 발전사를 놓고 어둡고 비판적인 이야기를 할 수도 있겠다. 실제로 이 책은 퀴빈 마을 역사 연구 협회에서 보관하고 있는 자료를 바탕으로 하고 있다. 하지만 글 작가와 그림 작가는 이야기를 전혀 다른 결로 풀어내서, 사랑과 애도에 초점을 맞췄다.   &nbsp;  "지나간 것은 지나간 대로,"&nbsp;가요는 노래하는데 그렇게 하기에는 시간이 걸린다. 사소한 볼펜이며 시계도 잃어버리면 섭섭하고 오래 탄 자동차를 보내주는 일은 더 가슴이 아린 일인데, 하물며 깊이 미워하거나 깊이 사랑한 인연을 떠나보내기는 너무 어렵다. 작게든 크게든, 얕게든 깊게든, 내 마음의 일부가 같이 떨어져 나간다. 그래서 아프다. 마음이 떨어져 나간 생채기에서는 피가 흐르고 상처는 오래, 마치 영원처럼 오래, 아물지 않는다. &nbsp;  &nbsp;  샐리 제인은 스위프트 강 아래 잠긴 고향의 모든 것, 고향에서의 모든 아름다운 기억과 시간을 잊어야 했을까? 이제는 없는 그것을? 엄마의 말씀은 잊으라는 얘기가 아니었으리라. 개똥벌레는 병 안에 가둬질 존재가 아니고, 별이 있을 자리는 별빛 반짝이는 밤 강물이 아니라 하늘이며, 강물은 흘러가야 한다. 지나간 것은 지나간 대로, 흘러가는 것은 흘러가는 대로, 보내주어야 하는 것이다. 모든 것은 변하게 마련이며, 시간은 거꾸로 흐르지 않는다. &nbsp;  &nbsp;  그림책의 이야기는 시종일관 차분하지만 세월이 흘러 아이가 어른이 되었을 때까지 샐리 제인의 마음속에서 스위프트 강은 맴돌고 있었던 것 같다. 세월의 저편에서 엄마가 강을 놓아주라고 한 걸 보면. 그것은 엄마의 목소리처럼 들렸지만 실은 강의 목소리였는지 모른다.&nbsp;"나를 놓아줘, 샐리 제인. 나는 흘러갈 테야. 나는 강이니까."  &nbsp;  그림책 표지를 본다. 아이가 다리 위에 서서 작은 강을 내려다보고 있다. 아이 뒤로는 정겨운 마을이 보이고 강가에는 나무가, 언덕에는 부드러운 곡선의 길이 나 있다. 아름다운 풍경이다. 이 풍경은 이제 없다. 이곳으로 가려면 샐리 제인의 마음속으로 들어가야 한다. &nbsp;  &nbsp;  우리 마음속에도 이처럼 풍경이 들어있을 것이다. 현실에는 이미 사라져 버린 풍경. 이 그림책은 수몰 마을의 역사를 한 장 한 장 넘기듯 이야기하고 있지만 그 역사는 샐리 제인의 마음속에서 재현되는 개인적 아픔이기도 하다. 시간을 되감아 그림책의 첫 장에서 마지막 장으로 과거의 시간들이 천천히 불려 나온다. 애도의 마지막 단계에 이르기 위해, 놔주어야 할 지점으로 이르기 위해, 책장은 한 장씩 넘어가고, 이야기는 되감기고 다시 풀려나온다. 현실에서는 아주 긴 시간이 필요할 회상의 과정. 여섯 살 아이가 어른이 될 때까지의 긴 세월. 계속 반추될 기억들. &nbsp;  &nbsp;  도도히 흘러가는 강물을 보고 있으면 마음도 따라 흐르는 것 같다. 강물이 이토록 내 마음을 이끄는 건 부드러움과 한없는 포용도 있지만 흘러간다는 사실, 바로 그것 때문이지 싶다. 흘러서 간다는 것. 자신을 다 풀어놓을 곳까지 흘러가는 것. 한때 강이었던 존재가 마침내 정체성을 벗어버리고 무한히 자유로워지는 것. 내가 강에 끌리는 까닭은 아마도 자유에 대한 끌림이 아닐까 막연히 짐작한다.   &nbsp;  가요가 가슴에 깊이 와닿는 나이가 있다는데 "지나간 것은 지나간 대로"라는 가사가 이렇게 진실로 들릴 줄이야. 나이가 든 것이다. 진실을 알아볼 수 있는 나이로 진입하고 있는 것이려니 생각한다.   &nbsp;  ]]></description><image><url>https://image.aladin.co.kr/product/10007/93/cover150/8952784340_1.jpg</url><link>https://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temId=100079394</link></image></item><item><author>스프링버드</author><category>마이리뷰</category><title>영원의 시간과 유년기</title><link>https://blog.aladin.co.kr/755452123/17091527</link><pubDate>Sat, 14 Feb 2026 11:39: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s://blog.aladin.co.kr/755452123/17091527</guid><description><![CDATA[<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8932911320&TPaperId=17091527" target="_blank"><img src="https://image.aladin.co.kr/product/749/13/coveroff/8932911320_1.jpg" width="75" border="0"></a>&nbsp;<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8949180111&TPaperId=17091527" target="_blank"><img src="https://image.aladin.co.kr/product/22/20/coveroff/8949180111_1.jpg" width="75" border="0"></a>&nbsp;<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8955826958&TPaperId=17091527" target="_blank"><img src="https://image.aladin.co.kr/product/31190/12/coveroff/8955826958_1.jpg" width="75" border="0"></a>&nbsp;<br/><br/>며칠 전 기사에 이금이 작가가 소위 아동문학계의 노벨상이라고 불리는 한스 크리스티안 안데르센 상의 최종후보에 올랐다는 소식이 올라왔다. 그런데 이금이 작가에게는 미안한 일이지만 내게 더 반가웠던 건 &lt;그해 여름, 에스더 앤더슨&gt;의 글 작가 티모테 드 퐁벨도 최종후보자로 선정됐다는 사실이었다. 그걸 알고 제일 먼저 든 생각은, 내 그럴 줄 알았지! 그의 이야기 세계와 문장은 너무나 아름답고 시적이어서 사랑하지 않을 수 없다. &nbsp;&nbsp;&nbsp;<br> <br><br><br><br><br><br><br><br><br>이 그림책이 '작품'이 된 건 티모테 드 퐁벨의 글에 이렌 보나시나가 그림으로 완벽하게 화답했기 때문이기도 하다. 펜으로 그린 헐렁한 선, 수채화의 맑은 색감, 넉넉한 여백이 아이의 자유로운 여름 방학을 더없이 잘 담아내고 있다. 가로 34센티미터 세로 24센티미터의 길고 큰 판형도 신의 한 수다. 책을 펼치는 순간, 화폭은 가로가 2배로 확장되면서 이야기 공간이 독자를 에워싼다. 100호가 넘는 대형 그림이 감상자에게 주는 효과, 아이맥스 영화관이 관객들에게 주는 바로 그 효과를 이 그림책도 노린 것이다. 글과 그림과 판형이 독자를 데려가고자 하는 지점은 바로 무한한 자유, 빛나는 자유다. &nbsp;&nbsp;&nbsp;&nbsp;&nbsp;<br>여름이 되었다. 열두어 살 무렵의 남자아이는 집을 떠나 혼자 기차를 타고 삼촌 집으로 간다. 아이는 해마다 여름 방학을 삼촌 집에서 보내는 것 같다. 삼촌의 집은 옥수수밭 한가운데에 있고, 삼촌은 평생 아무것도 버리지 않는 사람이어서 집은 잡동사니로 꽉 차있다. 삼촌은 책을 읽지 않는 사람이기도 하다. 하지만 조카를 위해 책을 한 무더기 장만해 놓을 줄 아는 사람이다. 넓은 옥수수밭 한가운데 잡동사니로 그득한 집에서 보내는 담백한 시간은 아이에게 자유를 허용한다. 아이는 무한대로 펼쳐지는 자유를 얻는다.&nbsp; &nbsp;<br>"앞으로 펼쳐질 길고 긴 여름날을 생각했다. <br>너무나 아득해서 나무 꼭대기에 올라가 보아도 끝이 보이지 않을 여름날들."<br><br><br>아이는 매일 자전거를 타고 동네와 그 너머를 탐험한다. 삼촌의 집을 중심으로 아이는 나선을 그리면서 점점 더 멀리 나가본다. 방학은 달팽이 집 같았다고 작가는 묘사한다. 이것은 영원의 이미지다. <br>그러던 어느 날, 밀 수확으로 길이 막혀서 아이를 나선형의 행로 밖으로 이탈시키는 일이 벌어진다. 아이는 길을 잃고 낯선 모랫길로 들어간다. 길을 따라 넘어간 모래 언덕 너머에는 새로운 세상이 있었다. 가슴을 벅차 오르게 만드는 드넓은 바다가 출렁대는 세상, 그리고 자기 또래의 여자아이 에스더 앤더슨이 있는 세상이.<br>"이 순간 이후, 모든 것이 영원히 달라질 거라는 걸 느낄 수 있었다."<br>집으로 돌아온 아이는 아무 말도 할 수 없었고 몸이 떨렸다. 책도 읽을 수 없었다. 아이는 어둠 속에서 에스더 앤더슨을 불러본다. 다음 날은 비가 왔고, 비가 그친 그 다음날 아이는 자전거를 끌고 집을 나섰다. 바다에서 에스더 앤더슨을 만나려고. 거기로 가려면 길을 잃어야 했다.&nbsp;&nbsp;<br>"어떻게 해야 길을 잃을지 나는 잘 알고 있었다."<br>느슨한 탐색과 자유가 달팽이 집처럼 빙빙 나선을 그리고 이어진다. 어린아이는 안전한 보호자의 품 안에서 마음껏 자유롭다. 영원처럼 이어질 것 같았던 달팽이 집이 끝나는 지점에서 아이는 바깥세상으로 자연스럽게 나아간다. 전혀 새로운 세상과의 만남은 충격이어서 아이는 입이 얼어붙고 몸이 떨렸다. 하지만 이제 기꺼이 길을 잃을 줄 안다. <br><br>어릴 때 나는 때로 심심했다. 심심하다는 말보다 더 적당한 말을 찾으라면 딱히 한 단어로는 안 될 것 같다. 어린 나는 심심한 그 시간이 버거웠다. 그것은 견딜 수 없는 공허감이기도 했다. 끝나지 않는 낮 시간, 무한하게 풀려나가는 실타래처럼 지루했던 시간들, 눅진하게 쌓여 어린 나를 무겁게 내리누르던 무료한 시간들이 지금도 생생하다. &nbsp;<br>작은 언덕에 올라앉은 자그마한 우리 집에는 영원처럼 길고 긴 낮이 내려앉아 있었다. 마루에서 마주 보이는 건너편의 야트막한 초록 언덕도 정적이었다. 앞마당에는 칸나가 뒷마당에서는 사과나무와 배나무가 자라고 있었지만 식물들은 조용했다. 온 집이 죽은 듯이 고요했다. 뒷마당 광의 옥상으로 올라가 내려다보는 도로에는 장난감처럼 작은 차들이 달리고 하늘에는 푸름이 한가득, 흰 구름이 무료하게 모양을 바꾸며 떠 있었다. 그 모든 정적과 고요는 어린 내가 감당하기엔 너무 진하고 거대했다. 해는 하늘 가운데 박아놓은 듯 기울지 않았고 언니며 오빠, 아버지가 돌아오고 엄마가 저녁을 준비하느라 집이 북적대며 활기가 도는 저녁 시간은 기다려도 기다려도 오지 않았다. <br>어린 나는 &lt;그해 여름, 에스더 앤더슨&gt;의 아이처럼 자전거를 타고 길을 빙빙 휘감으며 조금씩 더 멀리멀리 나아갈 생각을 왜 못했을까? 여러 이유가 있었겠지만 장소의 탓도 없지 않았을 듯싶다. 나는 익숙한 집에 있었고, 저 아이는 집과 부모를 떠나 옥수수밭 한가운데 잡동사니로 가득한 집에서 활자의 필요성을 느끼지 않으며 사는 삼촌에게 갔으니까. 낯설면서도 안전한 그곳에는 발견과 해방감이 충만했다! &nbsp;&nbsp;&nbsp;&nbsp;<br><br>어릴 때의 나처럼 영원히 끝날 것 같지 않은 지루하고 외로운 시간을 감당하지 못하는 소년이 있다. 파스칼레.<br><br> <br><br><br><br><br><br><br><br><br><br><br><br><br><br><br>프랑스 소설가 앙리 보스코가 백 년도 전에 쓴 &lt;아이와 강&gt;의 주인공 아이는 시골의 들판 한가운데 외따로 떨어진 조그만 소작인 농가에 살고 있다. 밭과 나무 울타리, 식물, 멀리 떨어진 두셋의 농가 밖에 없는 단조로운 풍경에 갇혀서 아이는 쓸쓸하다. 그 풍경 너머에 강이 흐르고 있다는 걸 파스칼레는 들어서 알고 있다. 강은 여름철이면 말라 버리지만 봄철에 알프스의 눈이 녹을 때면 큰 강으로 변해서 엄마 아빠는 파스칼레에게 절대로 강가로 가지 말라고 다짐시킨다. 강에는 사람이 빠지는 죽음의 구멍들이 있고 갈대숲에는 뱀이, 강가에는 위험한 집시들이 산다고. 파스칼레의 이야기는 영원히 끝날 것 같지 않은 무료한 날, 어른들이 집을 비우고 딴 데 신경을 판 사이, 홀린 듯 집을 나서면서 시작된다. <br>"조그만 오솔길들이 속삭이듯 나를 이끌었다. <br>'이리 와, 몇 걸음 더 나가 보는 거야. 어때? 첫 번째 모퉁이 길이 여기서 멀지 않아? 오베핀느 꽃나무 앞에서 걸음을 멈추면 된단다.' <br>이렇게 속삭이는 소리가 정신을 어리둥절하게 만들었다. <br>새들이 가득히 올라앉고, 푸른 열매가 잔뜩 달린 두 줄의 나무들 사이로 꼬불꼬불 이어진 그 오솔길로 일단 발걸음이 내디뎌지고 난 뒤에 내가 어떻게 걸음을 멈출 수 있었겠는가?"<br>아이는 결국 강까지 걸어갔고 이끼가 덮인 부드러운 흙바닥에서 깜박 잠이 드는 바람에 날이 저물어서야 집으로 돌아왔다. 집안일을 돌봐주는 친척 할머니는 아이 몸에 코를 대고 킁킁 냄새를 맡더니 말했다.<br>"야, 이 떠돌이야! 바람둥이야!"<br>할머니는 아이가 다시 집을 나가 강으로 갈까 봐 사흘 동안 감시했다. 아이는 꼼짝도 하지 않았고 할머니는 다시 자기 일에 정신을 팔기 시작했다. 그리고 다음 날, 아이는 다시 몰래 집을 빠져나가 곧장 강으로 갔다. 강은 너무나 멋졌다. 파스칼레는 강기슭을 따라서 걷다가 말뚝에 매인 채 흔들리고 있는 나룻배를 발견한다.&nbsp;&nbsp;<br>"배에는 노가 없었다. 삼으로 꼬아 만든 나룻배는 다 헐어빠진 밧줄로 비끄러매어져 있었다. 물이 어찌나 잔잔한지 밧줄은 강물 속에 가만히 잠겨 있었다. 이 고요함과 아늑한 분위기가 곧 내 마음을 끌어갔다. 나는 배 있는 곳으로 내려가서 잠깐 망설이다가 발을 뱃전에 얹어 놓았다."<br>어떻게 해야 길을 잃는지 알았던 티모데 드 퐁벨의 남자아이처럼 앙리 보스코의 아이도 기꺼이 길을 잃는다. 절대 가지 말라는 강으로 가서 절대 타서는 안 될 나룻배에 올라탔다. 그리고 퐁벨이 묘사하듯, 이 순간 이후 모든 것이 영원히 달라졌다. 배를 묶어놓았던 밧줄이 풀리고 표류를 하면서 파스칼레는 생전 가보지 않았던 강 중앙의 섬 모래밭에 내린다. 그리고 그곳에서 야생적이고 매혹적인 소년 가쪼를 만나 위험천만하고 가슴 뛰는 모험을 한다.&nbsp; &nbsp;<br>어린아이의 시간은 영원처럼 펼쳐지고, 나뉠 수 없는 시간임에도 영원은 전반부와 후반부로 나뉘어진다. 길을 잃거나 '이리 와, 몇 걸음 더 나가보는 거야.'라는 오솔길의 속삭임을 들음으로써. 퐁벨의 묘사를 다시 빌리자면, 영원은 후반부를 향해 달려가는 것이다. <br>마크 트웨인의 &lt;허클베리 핀의 모험&gt;은 훨씬 파격적이며 강력하고 풍부한 모험 이야기를 펼친다. 퐁벨의 아이와 보스코의 아이의 모험은 문명 안에서 이루어지는 것이라면 이 이야기는 대단히 반문명적이며 냉소적이다. 영원 같은 여름 방학에 바다와 첫사랑을 만나고, 오솔길의 유혹에 넘어가 어른들이 설정한 경계선을 넘어가 집시들이 사는 위험한 강을 향해 갔던 아이들이 이제 허클베리에 이르러서는 경계선 자체를 부정하며 어른들의 세계, 문명 세계와 정면으로 대결한다.<br> <br><br><br><br><br><br><br><br><br><br><br><br><br><br>&lt;허클베리 핀의 모험&gt;은&nbsp;&lt;톰 소여의 모험&gt;이라는 책을 읽어보지 않은 사람이라면 아마 나에 대해 잘 모를 겁니다라는 허클베리 핀의 독백으로 시작한다. 허클베리는 술에 취해서 아이를 때리는 아빠 밑에서 방치된 채 숲에서 살다가 어느 날 아빠로 추정되는 익사체가 발견되면서 한 과부댁의 양자로 들어간다. 과부는 허클베리를 '교양 있는 사람'으로 만들겠노라 결심했다. 그러나 허클베리는 교양을 위한 모든 규범이 견딜 수 없다. 집 안에서 지내고 침대에서 잠을 자는 것, 단정하게 옷을 입는 것, 식탁 예절을 지키는 것, 성경을 읽고 학교를 다니는 것 등등. 허클베리는 담배를 피우고 거짓말을 하면서도 죄책감이 없으며, 마크 트웨인이 창조한 또 다른 아이 톰 소여와 갱단을 만들 비밀스러운 작당을 하는 아이다. 허클베리가 학교에서 읽고 쓰기를 그나마 조금이라도 배우고 구구단을 육 단까지 외울 수 있었던 건, 다시 말해서 학교를 참을 만하게 여기게 됐던 건 선생의 구타 덕분이었는데, 이 대목은 이른바 교양을 자랑하는 서구 문명의 위선을 향한 마크 트웨인의 조롱을 여실하게 보여준다. <br>"학교가 견딜 수 없이 싫어질 때에는 땡땡이쳤고, 그다음 날 얻어맞고 나면 기분이 좋아지고 마음이 편해졌습니다. <br>그래서 학교에 가면 갈수록 학교 가는 일이 점점 쉬워지게 되었죠."<br>그런데 죽은 줄 알았던 악당 아빠가 돌아왔다. 허클베리는 다시 숲에서 아빠와 함께 살게 되는데 어느 날 우연히 강에서 표류하는 카누를 발견한다. 이야기는 당연히 모험으로 이어진다. 허클베리는 카누를 타고 미시시피 강을 따라 도망을 치고, 동행하는 친구도 생겼다. 주인으로부터 도망을 친 흑인 노예 짐이었다. 도망 노예를 숨겨주는 건 위법이지만 허클베리는 짐을 노예가 아니라 사람으로 볼 줄 안다.&nbsp;&nbsp;<br>도망치는 이 두 사람은 밤이면 배로 이동하고 낮이면 강어귀에 배를 숨겨놓고 마을로 들어가는 생활을 반복하며 다양한 사람들을 만나고 다양한 삶의 양태들을 목격한다. 교양 있는 자들의 위선, 인간의 잔인하고 어리석은 본성, 그것이 빚어내는 비극, 또 인간의 선함까지. 마크 트웨인은 이 소설을 통해서 노예제도 또한 통렬하게 비판한다. <br>허클베리의 모험 이야기는 솔직하고 명민하며 거칠면서 인간적이다. 그리고 이 모든 이야기가 강을 따라 흘러간다. 한 강변 마을에 들러 이런 일을 겪고 다른 강변 마을에서 저런 일을 겪으면서 허클베리와 짐은 줄곧 강으로 돌아오고 강으로 도망친다. 인간들의 모순적인 사회에서 자연의 너른 품으로. 인간은 이성이 있으나 비이성적으로 행동하고 신을 믿으나 신을 배반하며 선하나 동시에 악을 행한다. 자연은 그 모든 것을 벗어나 있다. 인간의 희비극은 육지에서 벌어지고 강으로도 흘러들지만 강은 그저 무심하다. 두 사람은 완전한 자유가 있는 곳, 강에서 안심한다. &nbsp;&nbsp;&nbsp;&nbsp;<br>"어느 곳에서도 아무 소리 하나 들려오지 않았습니다-사방은 쥐 죽은 듯 고요했지요-마치 세상의 모든 것이 다 잠을 자고 있는 것만 같았습니다. <br>다만 어쩌다 먹개구리가 울어대고 있을 뿐이었습니다. <br>물 위를 저 끝까지 바라다보고 있으면 시야에 들어오는 것이라고는 희미한 선 같은 것뿐이었습니다-그것은 저쪽 강둑에 있는 숲이었지요-그 밖엔 아무것도 알아볼 수가 없었습니다. <br>그다음 하늘에 뿌연 곳이 보였고, 그것이 점점 사방으로 퍼져나갔습니다. <br>그다음 하늘에 뿌연 곳이 보였고, 그것이 점점 사방으로 퍼져나갔습니다. <br>그다음 강이 저 멀리서 뿌옇게 밝아져 검은색은 찾아볼 수 없이 회색으로 변했습니다."<br><br>무한하게 이어지는 낮이 끝나기를 기다리며 어린 나도 모험을 꿈꿨다. 모험은 골목길과 산으로 이어지기도 했지만 대체로는 책과 상상 속에서 이뤄졌다. 꽝꽝 언 강을 따라 스케이트를 타고 내려오는 북유럽 동화를 읽으며 나도 주인공처럼 뺨이 얼얼해진 채 뜨거운 코코아를 마시는 상상을 했다. 열차 도둑을 잡는 소년을 따라가며 가슴을 졸였다. 모험 이야기들은 읽고 또 읽어도 재미있었다. 소설 속 누구처럼 나도 고상하고 아름다운 내 진짜 엄마가 있어서 나를 데리러 왔으면 좋겠고, 내가 죽어서 식구들이 뒤늦게 후회하고 미안해하며 울었으면 좋겠고, 뭐 그런 상상을 하며 청승을 떨었다. 나는 썩 활기 넘치는 아이가 아니었고 학교에서 돌아오면 누가 시키지 않아도 곧장 숙제부터 하고 노는 얌전하고 모범적인 아이였다. 그래서인가 보다. 모험과 일탈에 여전히 은근하게 마음이 기운다.<br>어린 시절의 그 많던 시간들은 영원히 끝나지 않을 것처럼 이어졌다. 어릴 때는 영원을 알았다. 영원의 느낌을. 그런데 나이가 들며 그 느낌이 슬며시 사라지고 그 대신 단락 단락 끊긴 시간들을 살게 되었다. 풀린 실타래 같던 시간의 그 지루한 느낌들은 잊어갔다. 허공으로 끝간 데 없이 펴지는 광대한 시간들에 대한 기미를 어린 나는 느꼈으나 지금의 나는 관념으로만 이해한다. <br>우주의 시간은 영원하나 인간의 시간은 유년 청년 장년 노년 그리고 죽음으로 이어지는 유한하고 뻔한 전개를 따라간다. 영원은 곧 무한이다. 우리는 어릴 적 영원을 살았다. 불가능한 얘기처럼 들리지만 그랬던 것 같다. 다행히 이야기들은 영원을 글로써 잡아놓았다. 그래서 이야기 안에는 영원이 존재한다. 우리가 현실에서 실현하지 못하는 영원, 마음과 꿈과 상상에서만 가능한 영원의 시간이 이야기 속에서는 여전히 흐르고 있다. &nbsp;<br><br><br><br><br>"방학은 달팽이 집 같았다. 가운데에는 집이 있었다. 나는 나선형 원을 그리면서 멀리 떨어진 가장자리까지 가려고 애썼다. 그러던 여름 어느 날, 그 일이 벌어졌다. 밀밭에서 수확이 한창이라 교차로를 지날 수 없었다. 두 시간이나 더 멀리 돌아 자전거를 타야 했다. 소나무들이 모두 사라지고, 잡초 사이로 난 모랫길이 하늘로 향했다. 바퀴가 빛 가운데로 나아가는 것 같았다. 처음 와 본 곳이었다. 이 순간 이후, 모든 것이 영원히 달라질 거라는 걸 느낄 수 있었다."<br><br><br style="color: rgb(51, 51, 51); font-size: 14.6667px; letter-spacing: 0.8px;">]]></description><image><url>https://image.aladin.co.kr/product/31190/12/cover150/8955826958_1.jpg</url><link>https://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temId=311901294</link></image></item><item><author>스프링버드</author><category>마이리뷰</category><title>용서로 가는 문</title><link>https://blog.aladin.co.kr/755452123/17075630</link><pubDate>Fri, 06 Feb 2026 18:27: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s://blog.aladin.co.kr/755452123/17075630</guid><description><![CDATA[<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8952782747&TPaperId=17075630" target="_blank"><img src="https://image.aladin.co.kr/product/10711/20/coveroff/8952782747_1.jpg" width="75" border="0"></a>&nbsp;<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8949110040&TPaperId=17075630" target="_blank"><img src="https://image.aladin.co.kr/product/6/28/coveroff/8949110040_3.jpg" width="75" border="0"></a>&nbsp;<br/><br/><br>그제부터 오늘까지 나는 누군가를 진심으로 미워하고 있다. 화가 났고&nbsp;화를 터뜨리고 싶었다. 아주 실컷! 그런데 마음이 점점 괴로워졌다. 미워하면서 화를 품을수록 더 심하게 괴로워졌다. 미움의 눈덩이가 경사진 언덕을 굴러내려가며 걷잡을 수 없이 커졌고, 작은 불이 큰 산불로 번지면서 그와 나 사이에 놓인 다리를 활활 불태웠다. 다정한 계곡에 놓인 소박하고 오래된 그 다리를. 이 모든 상황이 내 마음속에서 지금까지 벌어지는 풍경이다. &nbsp;  &nbsp;  미워하는 마음은 괴롭다. 누구에게 잘못이 있든 미움은 우선 나 자신을 괴롭히는 일이다. 그런데 가만히 들여다보면, 미워서 괴로운 게 아닌 것 같다. 실은, 사랑하지 못해서 괴로운 게 아닐까. 오래전부터 막연히 짐작해 왔는데 왠지 그 짐작이 맞을 것 같은 확신이 든다. 나는 진심으로 사랑하고 싶은데 사랑이 잘 안 돼서 괴롭나?   &nbsp;  우리말에는 화 대신 쓸 수 있는, 왠지 모르게 귀여운 표현이 있다. 삐지다. 이 말은 특히 어린아이를 향해서 잘 쓰인다. "쟤가 화났어."라고 하는 대신 "쟤, 삐졌어." 하고 속삭대며 우리는 응큼하게 웃는다. 장난스럽게 들리는 '삐졌다'는 표현은 '화났다'는 표현과 다르게 상황을 덜 심각하게 만드는 것 같다. 하지만 그럴 리가. 어린아이의 화는 절대 가볍게 취급되어서는 안 될 것이, 아이는 진심으로 속이 상하기 때문이다.   &nbsp;    &nbsp;   <br>  &nbsp;    &nbsp;  <br><br><br><br><br><br><br><br>풀밭에서 잔뜩 화가 난 저 아이의 이름은 스핑키. 스핑키는 엄마, 아빠, 누나, 형에게 무지막지하게 화가 났다. 무슨 일인지는 모르겠지만 스핑키를 화나게 만든 건 하루 이틀 일이 아닌 것 같다. 가족 중의 한 사람에게만 화가 난 것 같지도 않다. 왜냐하면 가족들이 차례로 마당으로 나가 스핑키에게 용서를 구하지만 스핑키는 절대 한 명도 용서해 줄 마음이 없어 보이기 때문이다. 이건 아주 오래 묵은 화가&nbsp;틀림없다.&nbsp;  &nbsp;  스핑키는 대략 여덟, 아홉 살쯤 돼 보이는데 그 나이에는 별일도 아닌 일에 잘 삐진다. 툭하면 서운해하고 화를 낸다. 아마도 자의식이 싹트는 나이라서 그럴 것이다. 하지만 새싹처럼 돋아나는 이때의 자의식은 아직 연약해서 쉽게 상처를 입는다. 아이는 자기 방어를 위해서 화를 낸다. 화를 '내야만' 하고 '낼 수밖에' 없다. 아이는 자신을 위협하는 유형무형의 적들과 싸우는 고독한 전사 같다.   &nbsp;  우리의 스핑키는 이 이야기 속에서 실컷 화풀이를 한다. 형과 누나와 엄마가 아무리 빌고 달콤한 말을 속삭여도, 아빠가 설교를 하고 친구들이 놀자고 해도, 그들의 호의를 내팽개친다. 작가 윌리엄 스타이그는 그림책의 거의 전부라 할 수 있을 29쪽에 이를 때까지 스핑키에게 복수할 기회를 무궁무진하게 베풀어주고 나서 단 3쪽으로 상황을 간단히 마무리해 버린다. 스핑키에게 속이 후련해질 만큼 실컷 화를 내게 해준 것이다. 무릇 화풀이는 이렇게 해야 한다. 과하다 싶을 정도로 실컷.   &nbsp;  살아보니, 마음의 앙금을 풀어내려면 실제 경험했던 부당함에 대해 딱 그만큼만 되갚아주는 것으로는 모자라는 것 같다. 반갑게도 스타이그 역시 그렇게 생각했나 보다. 밉살스러운 누나가 꽃을-팽개쳐버릴 꽃을-따주고 &nbsp;거만한 형이 무릎을 꿇고-백번을 꿇어도 용서 못할 테지만-사랑하는 엄마-가장 사랑하기 때문에 더 서운한 엄마-가 맛있는 음식을 아무리 멋지게 차려줘도 끝장을 보고 싶은 마음이 있는 것이다. 복수는 유혹적이다. &nbsp;  &nbsp;  윌리엄 스타이그는 스핑키를 심하게 편애해서 아이가 원하는 만큼 복수하게 해 준다. 그런데 이건 그림책의 세계에서나 가능하다. 현실의 가족은 스핑키의 가족처럼 다정하지 않은 경우가 훨씬 많다. 설사 이상적인 가정이라고 해도 가족 가운데 한두 명쯤은 쌀쌀맞거나 인색하거나 무심하다. 아이에게 와서 무릎을 꿇고 사랑의 말을 해주는 가족과 친구는 아주 드물지 싶다. 그래서 작가는 그림책 속에서나마 후련하게 화풀이를 할 수 있게 아이에게 멍석을 펼쳐준다. 연약한 아이들에게. 바깥세상에서는 이렇게까지 못하지. 아무렴. 여기서나 실컷 화풀이해. 난 네 편이야&nbsp;하면서. 누구는 그랬다, 편애란 편을 들어주는 것이라고. 난 이 말이 진실이라고 생각한다. &nbsp;  &nbsp;    &nbsp;    &nbsp;<br>  <br>  &nbsp;  여기에 화난 아이가 또 한 명 있다. 맥스다. 맥스는 늑대 옷을 입고 벽에 못을 박고 포크를 휘두르며 개를 위협하며 놀다가 엄마한테 이 괴물딱지 같은 녀석이란 말을 듣는다. 맥스는 엄마한테 맞받아쳤다. 그럼, 내가 엄마를 잡아먹어버릴 거야. 엄마는 저녁밥도 안 주고 맥스를 방에 가둬버렸다. 바로 그날 밤 맥스의 방에서는 풀과 나무가 자라고 큰 바다가 열려서 아이는 배를 타고 항해를 한다. 괴물들이 사는 나라로 간다.  &nbsp;    &nbsp;   <br>&nbsp;  &nbsp;  <br><br><br><br><br><br><br>맥스는 이 나라에서 괴물들의 왕이 되어 마음껏 놀았다. 스핑키가 실컷 화를 터뜨렸던 것처럼 맥스도 괴물들의 나라에서 실컷 못되게 놀았다. 부정적 감정을 풀어놓고 야생적인 본능을 마음껏 발산하면서. 지칠 때까지 놀고 나자 맥스는 문득 집으로 돌아가고 싶어졌다. 그래서 가지 말라고 말리는 괴물들을 뿌리치고 다시 배를 타고 바다를 건너 자기 방으로 돌아와 보니, 엄마가 가만히 놓고 간 저녁밥이 있었다. 밥은 아직 따뜻했다.   &nbsp;  작가 모리스 샌닥도 아이에게 무척 너그럽다. 엄마에게 괴물딱지 같은 녀석이란 말을 들은 아이 마음은 무사할 수 없다. 괴물딱지라니! 그래서 맥스에게 용기를 듬뿍 불어넣어서 엄마한테 지지 않고 소리치게 해 줬다. 내가 엄마를 잡아먹어버릴 거야. 스핑키의 아빠는 스핑키가 나잇값을 못 하고 어린애처럼 군다고 설교를 했는데 윌리엄 스타이그는 그걸 허튼소리라고 명명했다. 그리고 스핑키를 이렇게 변호해 준다. &nbsp;  &nbsp;  사실, 아빠가 이 사실을 모르는 것 같은데, 스핑키는 여느 아이들과 다를 바 없는 아주 정상적인 아이랍니다.  &nbsp;    &nbsp;  맥스의 세계도 역시 그림책이니까 가능하다. 괴물딱지 같은 녀석과 잡아먹어버릴 거야라는 말싸움은 현실 속에서 잘 벌어지지 않는다. 화난 감정을 거리낌없이 말로 내뱉거나 행동으로 옮기는 현실 엄마는 충분히 있을 것 같은데, 아이가 엄마한테 잡아먹어버린다고 말하는 상황은 잘 상상이 가지 않는다. 그렇게 말하는 순간 더 큰 반격을 불러올 걸 알기에 아이들은 겁이 나서 그런 말을 쉽사리 밖으로 꺼내놓지 못한다. 대신 속에 담아둔다. 언어화되지 못한 채 어떤 검은 감정의 덩어리로. 어린 독자들이 스핑키와 맥스의 이야기를 좋아한다면 그건 두 아이가 자기 대신 어른들에게 실컷 화를 내고 복수를 해주기 때문이 아닐까 싶다.&nbsp;아무튼 이제 스핑키와 맥스는 속이 후련해졌다. 마음이 누그러졌다. 스핑키의 가족은 인내심이 바닥나서 슬슬 약이 오를 참인데 이 절묘한 순간에 스핑키는 문득 이런 생각을 했다. 어쩌면 식구들이 잘 몰라서 그랬는지도 몰라. 지금은 잘하려고 노력하고 있잖아. 식구들이 나한테 그렇게 군 게 꼭 식구들만의 잘못일까?&nbsp;화를 풀면서도 우스운 꼴이 되지 않으려고 스핑키는 다음 날 아침 일찍 일어나 가족을 위해서 밥상을 근사하게 차렸다. 맥스 또한 괴물들이 사는 나라에 가서 진짜 괴물이 될 뻔했는데 다행히 엄마가&nbsp;따뜻한 저녁밥으로 맥스를 무사히 그 나라로부터 데려왔다.   &nbsp;  이 두 작가의 그림책 세계 속에는 기본적으로 사랑이 있다. 사랑이 핵심이다. 사랑이 아이의 화난 마음을 부드럽게 녹여주고 원초적인 괴물들의 세계로부터 불러들인다. &nbsp;&nbsp;&nbsp;&nbsp;  &nbsp;  특히 윌리엄 스타이그는 우리가 언제 너그러워지는지를 잘 아는 것 같다. 아이들은-사람은-사랑을 받으면 너그러워진다. 하루 삼시세끼 밥을 먹어야 몸에 활기가 있듯이 사람은 사랑을 받아야 마음에 힘이 생기고 넉넉해진다. 삼시세끼 밥이 굳이 진수성찬일 필요가 없듯이 사랑도 대단하고 위대한 어떤 것일 필요는 없을지 모른다. 한없이 자비로운 사랑, 얼음산을 넘어 눈바람을 뚫고 약초를 구해오는 효심 같은 어마어마한 사랑은 받기도 힘들고 주는 것은 더더욱 불가능하니까. 산다는 일이 배가 고프고 부르고의 연속이듯이 마음의 일도 고프고 부르고의 연속이어서 소소한 사랑으로 매일 우리를 먹여줘야 하는 걸지 모른다. &nbsp;  &nbsp;  그런데 진짜 그럴까? 혹시 우리의 무의식은 무한히 깊고 큰 사랑을 원하고 있진 않을까? 그래서 내가 가진 사랑이, 내가 줄 수 있는 사랑과 상대가 나에게 줄 수 있는 사랑이, 너무 초라하고 너무 섭섭한 건 아닐까? 내가 지금 이렇게 화가 나서 속을 끓이는 까닭, 미움과 분노로 내 자신을 괴롭히는 상황, 소중한 관계의 다리를 불태우고 끊어버리려고 하는 어리석음이 혹시 그래서는 아닐까? 불경에서는 만족할 줄 알라고 했는데.   &nbsp;  미움과 분노와 화라는 표현을 삐졌다, 부루퉁해졌다, 골을 낸다는 말로 바꿔보면 좀 나아지려나 하는 유치한 꿍꿍이도 해보면서, 이 두 그림책에 환호하는 어린 독자들처럼 나도 그림책을 보고 있자니 마음이 부드럽게 녹으며 좀 너그러워지는 것 같다. 용서로 가는 길은 이렇게 이해하고 화해하는 과정인가도 싶다. 상대에 대해서도 그렇지만 내 자신을 이해하고 내 마음과 화해가 이루어질 때 나는 마침내 용서라는 문을 열고 자유로워지리라 기대한다. 문이라는 말이 무색하게 문 자체가 사라지는 걸 경험하게 될 거라고. 그런 경험을 하길 희망한다. 내 생각은 아직 내가 못 이른 그곳에 이미 가 있다. 이제 나의 마음이 생각을 따라 가는 일만 남았다.   &nbsp;    &nbsp;    &nbsp;  ]]></description><image><url>https://image.aladin.co.kr/product/6/28/cover150/8949110040_3.jpg</url><link>https://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temId=62853</link></image></item><item><author>스프링버드</author><category>마이페이퍼</category><title>사심 없는 마음을 위하여</title><link>https://blog.aladin.co.kr/755452123/17058494</link><pubDate>Fri, 30 Jan 2026 22:13: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s://blog.aladin.co.kr/755452123/17058494</guid><description><![CDATA[<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8987504816&TPaperId=17058494" target="_blank"><img src="https://image.aladin.co.kr/product/43/57/coveroff/8987504816_1.jpg" width="75" border="0"></a>&nbsp;<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031236749X&TPaperId=17058494" target="_blank"><img src="https://image.aladin.co.kr/product/101/47/coveroff/031236749x_1.jpg" width="75" border="0"></a>&nbsp;<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8952783018&TPaperId=17058494" target="_blank"><img src="https://image.aladin.co.kr/product/10516/85/coveroff/8952783018_2.jpg" width="75" border="0"></a>&nbsp;<br/><br/><br>동심을 어떻게 정의할지 고심했다. 모두가 동의하는 보편적 의미가 있을 것 같았다. 어린이 같고 어린이다운 마음, 실체로서의 동심이란 게 존재할 거라 막연히 믿었다. 하지만 적확하게 정의내리라고 하면 동심은 연기처럼 흩어졌다. 동심이 실재하기는 하는지 의심스러웠다. 평균 키나 평균 체중처럼 '평균'이라는 개념이 흔하게 쓰이지만 실제로는 평균 키나 평균 체중이 허상이듯 동심도 그런 게 아닐까 의심했다. &nbsp;  &nbsp;  하지만 일상에서 구체적으로 우리는 동심을 만난다. 하루 종일 식당에서 일한 엄마가 아픈 다리를 펴고 편하게 쉴 수 있는 안락의자를 사드리고 싶은 아이의 마음이 동심이 아니면 무얼까. &nbsp;<br><br> <br><br><br><br><br><br><br><br><br>  &nbsp;  아이의 집은 일 년 전 화재로 모든 걸 잃었다. 가족은 새 집으로 이사했고 다정한 이웃 사람들과 친척들은 식기와 침대 같은 살림살이를 나눠주었고 음식도 가져와 어려움을 잘 이겨낼 수 있었다. 하지만 안락의자는 마련하지 못했다. 아이의 엄마는 일을 마치고 집에 돌아오면 늘 발이 아프다고 했고 할머니도 딱딱한 부엌 의자에 앉아야 했다. 그래서 안락의자를 사기 위해 어느 날 엄마는 식당에서 가장 큰 유리병을 가져와 동전을 모으기 시작했다.   &nbsp;  아이는 엄마의 식당에서 소금통, 후추통을 씻고 병에 케첩을 채우고 양파를 까는 소소한 일을 했고 그러면 식당 주인인 조세핀 아줌마가 돈을 줬다. 그중 절반을 아이는 유리병에 넣었다. 엄마도 팁으로 받은 잔돈을 유리병에 넣었고, 할머니도 물건을 싸게 사고 남은 동전을 넣었다. 그렇게 일 년 동안 동전을 꼬박꼬박 모은 끝에 유리병이 동전으로 꽉 차는 날이 왔다. 세 사람은 식당이 쉬는 날 안락의자를 사러 간다. 은행에서 동전을 지폐로 바꾼 다음, 버스를 타고 시내에 가서 그들은 가구점을 네 군데나 돌아다니며 온갖 의자에 다 앉아보았다. 그리고 마침내 모두가 꿈꾸어 온 의자를 발견했다. 이야기의 서두에서 아이가 꿈꿨던 바로 그 의자를!  &nbsp;  그래요, 의자요. 멋있고, 아름답고, 푹신하고, 아늑한 안락의자 말이에요. <br> 우린 벨벳 바탕에 장미꽃무늬가 가득한 의자를 사려고 해요. <br> 이 세상에서 가장 좋은 의자를 요.<br>이제 엄마는 저녁에 집에 돌아오면 화사한 장미꽃무늬 안락의자에 편안히 앉아서 텔레비전 뉴스를 보며 쉬고, 낮에는 할머니가 이 의자에 앉아 창밖의 사람들과 이야기를 나눈다. 아이가 저녁을 먹고 안락의자에서 엄마 무릎에 안겨 잠이 들면 엄마는 아이를 안은 채로 팔을 뻗어 불을 끌 수도 있다. 아이가 바라는 건 오로지 엄마를 쉬게 해 드리는 것이었다. 아이의 마음은 순전히 그랬다. &nbsp;  &nbsp;  <br>그렇다면 이 아이는 또 어떨까. 경제 공황으로 일자리를 잃고 아이를 키울 수도 없을 만큼 가계가 힘들어지자 부모는 아이를 도시에 사는 외삼촌에게 보내기로 한다. 시골의 넓은 초원에서 할머니와 꽃을 키우고 밭을 일구던 여자아이는 느닷없이 익숙한 집을 떠나 삭막한 도시, 거대하고 황량한 기차역에 혼자 내린다. 엄마가 자신의 옷을 줄여서 만든 파란 원피스를 입고서.   &nbsp;  그런데 놀랍게도 아이는 씩씩하다. 낯선 장소 낯선 관계를 다정하게 대한다. 아이는 무뚝뚝한 외삼촌의 빵집에서 열심히 일을 도우며 크리스마스에는 외삼촌에게 시를 선물하고, 빵집에서 일하는 엠마 아줌마에게 꽃씨 이름을 가르쳐주는 대신 빵 반죽하는 법을 배우면서 틈틈이 꽃을 키운다. &nbsp;<br><br> <br><br><br><br><br><br><br><br><br><br><br>삭막한 도시에서 꽃을 피울 수 있는 방법이 있을까? 있다. 할머니가 보내준 씨앗, 흙을 담을 화분, 햇빛과 물만 있다면. 그리고 친절한 사람들이 있으면 더 풍성하게 피울 수 있다. 동네 사람들에게 원예사 아가씨라고 불린 이 아이는 빵집 건물의 내버려진 옥상을 꽃밭으로 꾸미기로 마음을 먹는다. 엄마를 위해 동전을 모으던 아이처럼 이 아이도 오랜 시간을 들여서 마침내 건물 옥상에 멋진 정원을 완성했고 그걸 외삼촌에게 선물했다. &nbsp;&nbsp;  &nbsp;  행복해서 가슴이 터질 것 같아요!   &nbsp;    &nbsp;  꽃 정원을 완성해서가 아니라 외삼촌에게 그걸 선물해서 아이는 행복했다. 선물은 꽃 정원이 아니었어도 좋으리라. 사랑은 자신이 가장 좋아하고 아끼는 걸 주고 싶은 마음일 것이다. 사랑하는 이가 선물을 받아 들고 활짝 웃고 행복할 수 있다면 나도 '행복해서 가슴이 터질 것 같은' 그 마음이 사랑이다. &nbsp;&nbsp;<br> <br><br><br><br><br><br><br><br><br><br><br>여기에 또 한 아이가 있다. 아픈 할머니 때문에 놀이 공원을 가지 못해 화가 난 아이. 엄마 아빠는 아픈 할머니를 모시느라 아이의 마음을 살필 겨를이 없다. 두 사람은 할머니가 좋아하는 홍시를 냉장고에 쟁여놓고 할머니의 병시중을 하는 데만 온통 신경이 가 있다. 아이는 방에 누워만 있는 할머니가 원망스럽다. 엄마 아빠가 많이 밉다.  &nbsp;  다래는 방문을 쾅 닫았어.<br> 할머니는 왜 맨날 누워만 있는 거야? <br> 맨날 누워 있는 할머니 생각만 하고 <br> 다래 생각은 하나도 안 해주는 <br> 엄마 아빠가 너무너무 미웠어. <br> 다래는 이불을 뒤집어쓰고 눈을 꽉 감았어.<br> <br>   &nbsp;  그런데 이게 무슨 일일까? 할머니가 다래를 깨웠다. 다래, 아직 안 일어났니?&nbsp;그리고는 놀이공원에 가자고 했다. 할머니는 엄마, 아빠가 피곤할 테니 둘만 살짝 다녀오자고 했다. 할머니는 엄마가 얼려 놓은 홍시까지 챙겨놓았다. 다리가 아플까 봐 놀이공원 입구에서 자기를 업어주는 할머니한테 미안해서 아이는 할머니에게 홍시를 먹여드린다.   &nbsp;  그런데 이상하게도 할머니가 자꾸만 젊어졌다. 공원 입구에서는 엄마만큼 젊어지고 은하철도를 탈 때는 언니가 되었다. 그리고 아이스크림 가게에서 무지개 아이스 바를 먹으며 할머니가 자기만 한 친구가 된 뒤에야 아이는 할머니 이름을 알게 되는데... &nbsp;  &nbsp;  "다래, 넌 나만 쳐다볼 거니?"<br> 다래는 그때서야 아이스 바를 받아 들었어.<br> "그, 그럼 네가..."<br> "그래, 명애. 내 이름도 몰랐어?"  &nbsp;    &nbsp;&nbsp;놀이공원의 정글짐 꼭대기에서 둘은 푸른 나무들을 바라보며 약속했다. 가을이 오면 나무들이 울긋불긋 정말 예쁘겠다. 우리 그때 또 놀러 오자고.   &nbsp;  명애와 다래는 해가 질 때까지 신나게 놀다가 집으로 돌아오는데 지하철 안에서 할머니는 그새 동생이 되어있었다. 아이는 할머니를 등에 업었지만 하나도 무겁지 않았다. 살금살금 할머니 방에 들어갔을 때 할머니는 더 작아져 있었다. 아이는 할머니 명애를 조심조심 바닥에 눕히고 곁에서 스르르 잠이 들었다.   &nbsp;  다음 날 아침 다래는 자기 방에서 깜짝 놀라서 깼다. 엄마는 네가 홍시를 먹었냐며 냉장고에서 홍시를 찾고 있었다. 할머니 방에 들어가보니 할머니는 방에서 가르랑가르랑 소리를 내며 자고 있었다. 아이는 쭈글쭈글한 할머니 얼굴에 대고 속삭인다.   &nbsp;  "명애야... <br> 가을이 오면 우리 꼭 다시 놀러 가자."<br><br>동심을 꿈꾼다. 그게 뭔지도 모르면서. 모두가 나와 똑같은 마음일 거라 오해하면서 나는 동심을 꿈꾼다. 아름다움과 선함과 진실함은 질료나 행동이나 이야기 같은 구체성으로밖에 잡을 수 없고 그걸 욕심껏 잡으려 하면 어느새 허망하게 사라지듯이-어쩔 수 없는 인간의 한계이리라-동심도 그런 것 같다. 엄마의 아픈 다리를 쉬게 해주고 싶은 안타까움, 활짝 핀 꽃으로 외삼촌을 웃게 만들고 싶은 다정함, 아픈 할머니를 아이로 돌려놓고 싶은 한없는 연민에서 나는 동심을 본다. 보드라운 아이의 웃음에서, 다정하게 잡아주는 손에서, 지칠 줄 모르는 호기심에서, 의심 않고 전폭적으로 믿어주는 믿음에서, 자기를 활짝 연 품에서. &nbsp;  &nbsp;  달리 표현해 보자면, 사심 없는 마음이 동심의 얼굴 같다. 나를 생각하지 않고, 남을 의심하지 않고, 내 욕심을 부리지 않고, 남을 나쁘게 생각하지 않는 마음. 어른도 가끔 그런 마음이 되는 찰나가 있다. 오래 유지하기는 도저히 어려운 아주 짧은 동안에만 어른도 그럴 수 있다. 어른은 그 순간을 드물게 만나지만 아이는 그 순간을 아예 사는 것만 같다. 그건 누구보다도 우선 아이 자신에게 최고로 좋은 일이어서, 아이들은 모두 행운아다. 자라면서 우리는 행운을 하나씩 하나씩 길에 떨어뜨리며 잃어버렸다. 혹여 운이 좋다면 어떤 어린아이가 그걸 주워 우리에게 다가와 물을지 모른다. 이거 아저씨, 아줌마 거예요? 하고.<br><br><br>]]></description><image><url>https://image.aladin.co.kr/product/10516/85/cover150/8952783018_2.jpg</url><link>https://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temId=105168575</link></image></item><item><author>스프링버드</author><category>마이페이퍼</category><title>우리는 괜찮고 또한 괜찮지 않다</title><link>https://blog.aladin.co.kr/755452123/17043976</link><pubDate>Sun, 25 Jan 2026 06:24: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s://blog.aladin.co.kr/755452123/17043976</guid><description><![CDATA[<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8937814803&TPaperId=17043976" target="_blank"><img src="https://image.aladin.co.kr/product/56/93/coveroff/s092030513_1.jpg" width="75" border="0"></a>&nbsp;<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8937814757&TPaperId=17043976" target="_blank"><img src="https://image.aladin.co.kr/product/56/97/coveroff/s952836861_2.jpg" width="75" border="0"></a>&nbsp;<br/><br/><br>   &nbsp;<br><br><br><br><br><br><br><br><br><br>    &nbsp;    &nbsp;  폭풍우 치는 밤, 작은 오두막에 두 동물이 비를 피해 들어간다. 칠흑 같은 어둠 속에서 누군가의 기척이 느껴지자 마음은 불안해지는데, 누굴까, 주저하다가 둘 중 좀 더 친절한 동물이-이런 상황에서 마음을 여는 존재는 대체로 약자인 것 같다-조심스레 말을 꺼냈다. 비바람이 정말 대단하지요? 그러자 상대가 화답했다. 아이고! 이런, 실례했습니다. 깜깜해서 누가 있는지도 몰랐어요.  &nbsp;  어둠 속의 주인공들은 늑대와 염소였다. 작가 키무라 유이치는 잡아먹는 늑대와 잡아먹히는 염소를 한 공간 안에 들여놓음으로써 흥미진진한 상황을 연출했다. 절대 강자와 절대 약자가 닫힌 공간에서 대면하는 설정은 이야기 작법에서 흔하고 어린이문학에서도 즐겨 쓰인다. 하지만 이야기를 풀어가는 면에서 키무라 유이치는 대단히 독창적이고 과감하며 철학적이다.  &nbsp;  &lt;폭풍우 치는 밤에&gt;는 총 일곱 권으로 이루어진 시리즈 가운데 첫 번째 책으로 시리즈의 이름은 '가부와 메이 이야기'다. 가부는 늑대, 메이는 염소다.  &nbsp;&nbsp;    &nbsp;  메이와 가부는 어둠 속에서 두런두런 이야기를 나누기 시작한다. 서로 사는 곳이 가깝다는 얘기, 맛있는 먹이 얘기, 맛있는 먹이가 많은 산들산들 산에 대한 얘기 같은 소소한 대화를 나누며 둘은 서로에게 호감을 느낀다. 하얀 염소와 늑대는 그들 엄마가 빨리 달리라는 똑같은 잔소리를 한다는 사실에 신기해하는데, 둘의 관계를 정작 주인공들만 모르고 독자는 안다는 점이 이 이야기의 묘미다.  &nbsp;  밖에선 아직도 폭풍우가 휘몰아치고 밤이 깊어지며 배는 점점 더 고파오는데 두 친구는 이야기로 추위와 외로움과 배고픔을 잊는다. 작가는 서로에게 정체를 알려줄 듯 말 듯 끝까지 팽팽하게 긴장을 가져간다. 늑대의 발이 우연히 염소의 몸에 닿고 염소는 복슬한 털의 발 주인을 상상해본다. 혹시? 걸걸한 목소리도 미심쩍다. 하지만 염소는 곧 마음을 돌린다. 설마, 아니겠지 하며. 그때 문득 번개가 번쩍 내리치며 오두막을 환하게 밝히는데, 둘은 공교롭게도 서로의 얼굴을 보지 못했다. 어둠은 상대의 정체를 숨겨주며 오로지 이야기만 남긴다. 오로지 이야기만을. 이야기를 나눈다는 건 진실로 들어가는 가장 곧은 길 같을 때가 있다.&nbsp;하하하, 우리는 닮은 데가 정말로 많네요.&nbsp;하하하. 깜깜해서 얼굴은 안 보이지만, 얼굴도 진짜 닮은 거 아닌가 모르겠어요.   &nbsp;  작가가 이야기를 끌어가는 솜씨는 감탄스럽다. 이 첫 번째 이야기에서 작가는 염소와 늑대에게 서로의 얼굴을 보여줄 듯 말 듯하다가 끝내 사실을 모르도록 이야기를 끝내고 다음 권으로 이야기를 넘긴다. 폭풍우가 그치자 염소 메이와 늑대 가부는 헤어지면서 다음 날 낮에 만나자고 약속한다. 좋은 친구를 만났다는 사실에 둘은 순수하게 기뻐한다.&nbsp;엄청난 폭풍우를 만나 정말 운 나쁜 밤이라고 생각했는데, 좋은 친구를 만났으니 오히려 좋은 밤이 될지도 모르겠군요. 내일 낮에 만날까요? 우리는 서로 얼굴도 모르잖아요. 그럼, 우리 암호를 '폭풍우 치는 밤에'로 하지요.&nbsp;<br>우리는 순수함을 주로 흰색에 비유하지만 이렇게 새까만 어둠도 순수할 수 있다는 걸 이야기는 보여준다. 순수함의 핵심은 '눈에 보이지 않는 것'을 마음의 눈으로 볼 수 있는가에 달려있다는 듯이.   &nbsp;  이어지는 시리즈는 예상한 대로 흘러간다. 먹고 먹히는 이들의 관계가 어떻게 순탄할 수 있을까. 숲 속 동물 사회에서 둘의 관계는 화젯거리가 되고 시선은 곱지 않다. 둘이 친구가 되는 건 '정상'이 아니기 때문이다. 늑대 무리와 염소 무리는 분노한다. 어떻게 먹이와 친구가 된단 말이지? 어떻게 우리를 잡아먹는 적과 친구가 돼? 게다가 늑대는 염소에게 사냥 시간과 장소를 몰래 알려줄 수 있고 염소 역시 늑대에게 염소 무리의 위치를 귀띔해 줄 수 있으니 둘은 내통자라고 두 무리는 단정해버린다. 다른 여지는 없다.&nbsp;이렇게 위태위태한 상황 속에서도 메이와 가부는 서로에게 좋은 걸 보여주고 싶어 한다. 보름달이 가장 아름답게 보이는 절벽이 있어. 거길 너에게 보여주고 싶어. 내가 제일 좋아하는 풀이 자라는 산에 가보지 않으련. 우리는 좋아하는 친구와 좋은 걸 나누고 싶으니까. 위태로움은 외부에도 있지만 자기 내부에도 있다. 염소 메이는 늑대 친구가 혹시 자기를 잡아먹지 않을까 문득문득 두려워하고 늑대는 자꾸만 염소 친구가 맛있는 먹이로 보인다.&nbsp;정말 괜찮은 애야. 먹어도 맛있겠지만... 그런데 같이 있으면 왠지 마음이 차분해진단 말이야. 음, 맛도 좋겠지! 그래도, 어? 귀가 쫑긋 움직이네. 조금만 깨물어 볼까? 친구니까 한쪽 귀만 맛보라고 하면 좋을 텐데. 아, 정말 배고프다.  &nbsp;  이야기는 점점 파국을 향해 간다. 늑대 무리는 가부에게 염소가 어디에서 먹이를 먹을지 알아오게 시킨다. 염소 무리도 메이에게 늑대들이 언제 어디에서 염소 사냥을 할지 알아오게 시킨다. 둘은 궁지에 몰린다. 숲 속 모든 동물들이 주시하는 속에서 이들은 뭘 할 수 있을까. 도망치는 수밖에. 자신의 고향으로부터, 자신의 무리로부터 벗어나는 길 밖에. 둘은 결국 강 건너로 달아나기 위해 강물에 뛰어들었다. 시리즈의 여섯 번째 책 &lt;안녕, 가부&gt;는 강물에 뛰어든 뒤에 벌어지는 이야기다.  &nbsp;  <br> <br>  &nbsp;&nbsp;<br><br><br><br><br><br><br><br><br>    &nbsp;    &nbsp;   둘은 기적적으로 거친 강물에서 빠져나온다. 숲 속 동물들은 둘을 지켜보며 속닥거린다. 늑대 무리가 자기네를 배신한 가부를 절대 용서하지 않겠다고 한 걸 가부는 이 속닥거림으로 우연히 알게 되었다. 늑대들은 세상 끝까지 가부를 쫓아가서 갈가리 찢어 죽이고 메이를 축하용 먹이로 쓰겠다며 떠벌리며 숲 전체를 뒤지고 있었다. 둘은 더 멀리 도망쳐야 했다. 메이는 가부에게 말했다.&nbsp;달아나자, 가부. 저 산 너머로.  &nbsp;  멀리 보이는 높은 산 너머는 누구도 가 본 적이 없는 곳이었다. 그래서 그곳에 대한 어떤 얘기도 전해지지 않았다. 산꼭대기는 새하얀 눈으로 덮여 있었다. 하지만 둘은 상상했다. 저 산 너머에도 푸른 숲과 폭신폭신한 풀밭이 꼭 있을 거야. 그래, 틀림없이 있을 거야. 둘은 산을 오르기 시작했다. 산은 올라갈수록 험해졌고 눈까지 내리기 시작했다. 하지만 되돌아갈 수는 없었다. 늑대들이 쫓아오고 있었으니까. 둘은 몇 날 며칠을 눈 속에서 배를 곯으며 걸었다. 눈발이 둘의 몸을 휘감았다. 눈도 뜨지 못하고 입도 벌리지 못할 정도로 거센 눈보라 속에서 세상은 온통 새하얬다.  &nbsp;  늑대보다 몸이 약한 염소 메이가 추위에 먼저 쓰러졌다. 죽음이 그곳에 있었다. 늑대 무리에게 잡아먹히든 얼어죽든 이제 죽음은 피할 수 없었다. 메이는 가부를 향해 다정하게 웃었다. 죽음을 앞뒀을 때 우리는 가장 진실한 마음이 되지 않을까? 죽음을 두려워하지만 않는다면 말이다. 진실이 가장 또렷하고 맑게 보이는 순간은 죽음을 앞둔 때일 것 같다. 메이가 얘기했다. 친구를 만나서 정말 행복했고, 내 목숨을 줄 수도 있다고 생각한 친구를 만났다고. 그리고 이어서 말했다. 나를 먹고 건강하게 이 산을 넘어서 푸른 숲으로 가라고.&nbsp;&nbsp;  가부는 당연히 메이를 먹을 수 없었다. 자꾸만 메이가 먹이로 보이긴 했지만 그럴 순 없었다. 대신 목숨을 주어도 좋을 친구라는 말이 가부를 흔들었다. 산 아래에서 늑대들이 올라오고 있는 모습이 보였고 메이는 눈구덩이에 누워있었다. 메이를 살리기 위해 가부는 목숨을 바치기로 결심했다. 가부는 숨을 한번 크게 쉬고 커다랗게 울부짖으며 산 아래로 달려 내려갔다. 가부의 몸은 하얀 눈덩이가 되어 구르고 굴러 작은 눈사태를 일으켰습니다. 눈이 연기처럼 자욱하게 피어오르고, 폭풍이 되어 모든 것을 죄다 집어삼키며 내려갔습니다. 그 순간 거짓말처럼 눈보라가 그쳤고 저 멀리 푸른 숲이 보였다. 눈보라 속에서 가부와 메이는 높은 산을 넘었던 거였다. 메이가 소리쳤다:<br>가부. 숲이 보여. 푸른 숲이 진짜 있었어. 가부, 빨리 와 봐. 우리가 산을 넘은 거야. 가부! 가부! 메이는 그칠 줄을 모르고 언제까지나 가부를 불렀습니다.  &nbsp;  &lt;안녕, 가부&gt;는 이렇게 이야기를 맺는다. 우리말에서 안녕은 만날 때와 헤어질 때 공통으로 하는 인사인데, 가부에게 하는 안녕은 헤어질 때의 안녕이었다. 슬프게 안녕을 하는 이야기. 어린이문학에서, 그것도 아주 어린아이들이 보는 그림책에서 이렇게 슬프게 이야기를 끝내는 법이 있냐고 작가가 항의를 받지는 않았을까? 왠지 그랬을 것 같은 건, 삼 년 뒤에 나온 시리즈의 마지막 권 &lt;보름달 뜨는 밤에&gt;는 푸른 숲에서 친구를 그리워하며 홀로 슬프게 지내던 메이 앞에 기적적으로 가부가 나타나면서 이야기가 행복하게 마무리되기 때문이다. '두 사람은 행복하게 오래오래 살았답니다'로 끝나는 전형적인 옛날이야기처럼 말이다.  &nbsp;  어린이든 어른이든 행복은 무조건 이야기의 결론이어야 하고 우리가 추구하는 가장 좋은 것이 되어야 한다고 생각해 왔다. 하지만 과연 그래야 할까, 다시 생각해 본다. 이야기로 은유되는 우리의 삶은 무조건 괜찮아야만 할까? 윤가은 감독의 &lt;세계의 주인&gt;을 보고 나오며 무의식 중에 떠오른 말이 있었다. 우리는 괜찮고 또한 괜찮지 않다.&nbsp;  &nbsp;    &nbsp;    &nbsp;  저 소녀의 이름은 주인이다. 영화 제목 &lt;세계의 주인&gt;의 주인은 주인공의 이름이면서 동시에 우리는 모두 자기 삶의 주인임을 말하고 있다. 열여덟 살 주인은 어릴 때 성폭행을 당했다. 주변의 몇 사람만 알고 있던 이 사실은 영화 중반을 지나서야 밝혀지지만 영화가 하려는 말은 영화 초반에 이미 말해진다. 성폭행범 거주반대 서명운동을 하는 친구에게 주인은 서명하기를 거부하면서, 자신이 동의할 수 없는 문구를 명확하게 짚어서 말한다. 성폭행은 평생 씻을 수 없는 상처를 남기고 피해자의 영혼을 파괴하는 사건이 아니라고. 나는 성폭행이라는 단어 자리에 다른 말을 넣어도 이 명제는 성립된다고 생각한다. 세상은 위험하고 수많은 위협이 우리를 넘본다. 가난과 폭력과 재난과 부조리와 인간 본성의 어쩔 수 없는 야수성 같은 것들 앞에서 인간은 대책이 없다. 인간은 서로에게 늑대가 되고 염소가 될 수 있다. 우리는 안전하지 못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것들은 평생 씻을 수 없는 상처가 되지 않을 수 있고, 피해자의 영혼은 그것들로 인해서 파괴되지 않을 수 있다. 영화는 이 말을 하려는 것이다. 하지만 세상사는 일종의 러시안룰렛과도 같아서, 어떤 경우에는 그것들이 평생 씻을 수 없는 상처가 되고 피해자의 영혼은 그것들로 인해서 완전히 파괴되는 일도 일어날 수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소녀는 다짐하며 외친다. 잘 살아내겠노라고. 삶은 불행한 사건 속에서도 눈부시도록 빛날 수 있다는 걸 보여주겠노라고. 마치 &lt;댈러웨이 부인&gt;의 첫 구절처럼 소녀는 삶의 생기로 터질 듯하다:<br>꽃은 자기가 사 오겠노라고 댈러웨이 부인은 말했다. 루시는 루시대로 해야 할 일이 있었기 때문이다. 문들도 떼어내야 했고, 럼플메이어에서 사람들이 오기로 되어 있었다. 그런데, 하고 클라리사 댈러웨이는 생각했다. 얼마나 상쾌한 아침인가. 마치 바닷가의 아이들에게나 찾아오던 아침처럼 신선했다. 얼마나 유쾌했는지! 마치 대기 속으로 뛰어드는 것만 같았다!  &nbsp;  어떤 불행한 큰 사건이 개인에게 닥친다면, 그 일이 일어나기 전과 일어난 뒤는 같을 수 없다. 그것은 어쩔 수 없이 상처를 남긴다. 우리의 일생에 일어나는 모든 일이 흔적을 남긴다. 때로는 깊고 때로는 얕을지언정. 어쩌면 사건으로 채워지는 게 우리의 삶이 아닌가 싶기도 하다. 그것들을 파도처럼 넘어가며 우리는 살아간다. 수없이 반복하며 씻어내고, 파괴되어도 다시 회복해 가면서.  &nbsp;  이 영화에서는 바흐의 &lt;사냥칸타타&gt; 9번 곡 '양들은 한가로이 풀을 뜯고'가 반복적으로 흐른다. 바흐가 독일 바이마르공국의 작센을 통치하는 크리스티안 공작의 생일을 축하하기 위해 작곡한 칸타타 중 이 9번 곡에는 가사가 붙었다. 좋은 양치기가 지켜보는 가운데 양들은 평화로이 살 수 있다는 내용이다. 바흐는 은근하게 권고한다. 그러니 통치자여, 당신의 백성들을 잘 다스리시라. 제목은 주로 '양들이 평화로이/한가로이 풀을 뜯고'로 번역되지만 원문은 '안전하게'다. 안전하면 평화로울 수 있을 테니 번역이 완전히 틀렸다고 말하기는 어렵지만 평화는 더 궁극적인 상태고 안전은 지금 당장의 내 환경과 직결되는 문제다.  &nbsp;  영화에서 이 곡이 흐를 때마다 눈물이 났다. 괜찮기 위해서 안간힘을 쓰는 이 연약한 소녀를 위해서 올리는 기도처럼 노래가 들려서였다. 양들이 안전하게 풀을 뜯게 해 주소서, 양들을 보호해 주소서, 이 소녀를 안전하게 지켜주소서, 이 영혼을 불쌍히 여기소서, 소녀를 위해 웁니다. 소녀로 대변되는 모든 슬퍼하는 이들을 보호해 달라고 기도하는 마음이 되었다.  &nbsp;    &nbsp;&nbsp;    &nbsp;    &nbsp;성모마리아는 죽은 예수를 안고 우신다. 성모의 눈물은 크고 깊은 슬픔의 강물이 되어 이 세상 모든 슬퍼하는 이들을 위로한다. 우리의 눈물이 슬픔의 큰 강으로 흘러들어가 위로받는다. 그래서 성모는 영원히 슬퍼하시는 거라고 나는 느낀다. ’성모가 영원히 행복하게 잘 살았습니다‘로 이야기를 끝낼 수는 없다. 세상에 슬퍼하는 이들이 있는 한, 성모는 끝없이 슬퍼하신다. 크고 깊은 슬픔으로 우리들의 슬픔을 품어주신다.  &nbsp;  우리는 괜찮고 또한 괜찮지 않다. 일본의 어린이문학 작가 키무라 유이치는 과감하게도 이 피할 수 없는 삶의 진실을 그림책으로 전하고 있다. 어쩌면 우정이 죽음을 부를 수도 있다는 무서운 사실을 가감 없이 보여준다. 남은 친구가 '그칠 줄을 모르고 언제까지나' 떠난 친구의 이름을 부를 수도 있는 안타까운 사실을. 행복한 어린이는 이 이야기를 무서워할 수도 있겠지만 마음이 아파서 슬픈 아이는 오히려 위로를 받을지 모른다. 메이의 울음 속에서 자신의 눈물이 녹아드는 것 같은 느낌, 그것은 안심하는 마음과도 비슷하다. 내 슬픔이 더 큰 슬픔 속에서 감싸이고 위로받는 것 같은 느낌과도. 슬픔을 따뜻이 감싸 안을 수 있는 건 실은 행복이 아니라 슬픔이 아닐까 한다.&nbsp;그래서 나는 이 시리즈가 &lt;안녕, 가부&gt;로 마무리되어도 좋다고 생각한다. 메이는 끝도 없이 울고-영화에서 주인이 세차장에서 차가 세차장을 통과할 때 엄마를 원망하면서 소리 내어 우는 장면이 있는데 이 감정 폭발이 수없이 반복되어 왔으리라는 걸 우리는 짐작할 수 있다-절대 영영 그 자리에서 일어날 수 없을 것만 같아도 언젠가는 훌훌 털고 일어나 그다음 걸음을 뗄지 모른다. 하얀 염소는 눈물을 닦고 푸른 숲으로 갈지 모른다. 우리 모두는 염소가 그럴 수 있기를 마음으로 기원하리라. 하지만 등을 떠밀고 싶진 않다. 슬픔을 빨리 털어버리라고, 친구의 죽음을 빨리 잊으라고 강요하고 싶진 않다. 다만 기도할 뿐이다. 신이시여, 어린 양들을 안전하게 지켜주소서, 우리를 불쌍히 여기시고 우리의 영혼을 위해 같이 울어주소서라고. 충분히 위로받고 나면 털고 일어날 힘이 생기는 법이다. 기원전 8-7세기에 유다 왕국이 위태로울 때 예언자 이사야가 했던 예언도 먼 먼 이상향의 약속이 아니라 기도가 아니었을까. 나에게는 이사야의 예언이 슬퍼하는 이들을 깊이 위로하는 기도의 말로 들린다.&nbsp;&nbsp;  &nbsp;  늑대와 어린양이 함께 풀을 뜯고 사자가 소처럼 여물을 먹으며 뱀이 흙을 먹고 살리라. 나의 거룩한 산 어디에서나 서로 해치고 죽이는 일이 없으리라.“ 야훼의 말씀이시다. (이사야 65:25)  &nbsp;    &nbsp;    &nbsp;<br><br><br><br><br><br><br><br><br><br>]]></description><image><url>https://image.aladin.co.kr/product/56/97/cover150/s952836861_2.jpg</url><link>https://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temId=569782</link></image></item><item><author>스프링버드</author><category>마이페이퍼</category><title>순수의 노래: 윌리엄 블레이크와 인간의 진보</title><link>https://blog.aladin.co.kr/755452123/17029711</link><pubDate>Sun, 18 Jan 2026 21:10: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s://blog.aladin.co.kr/755452123/17029711</guid><description><![CDATA[<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8952783158&TPaperId=17029711" target="_blank"><img src="https://image.aladin.co.kr/product/11567/96/coveroff/8952783158_1.jpg" width="75" border="0"></a>&nbsp;<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8949110172&TPaperId=17029711" target="_blank"><img src="https://image.aladin.co.kr/product/3/38/coveroff/8949110172_2.jpg" width="75" border="0"></a>&nbsp;<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8949110393&TPaperId=17029711" target="_blank"><img src="https://image.aladin.co.kr/product/1/61/coveroff/8949110393_2.jpg" width="75" border="0"></a>&nbsp;<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K132831059&TPaperId=17029711" target="_blank"><img src="https://image.aladin.co.kr/product/31196/24/coveroff/k132831059_1.jpg" width="75" border="0"></a>&nbsp;<br/><br/><br> <br><br><br><br><br><br><br><br><br><br><br><br><br>모래 한 알에서 세상을 보고들꽃 한 송이에서 천국을 보려면,그대의 손바닥에 무한을 쥐고한 시간 속에 영원을 담아라. -윌리엄 블레이크, &lt;순수의 전조&gt;의 첫 구절<br><br>독일에서 활동한 화가 노은림(1946-2022)은 한 다큐멘터리에서 '영원'에 대해 매우 인상적인 얘기를 했다. 자신이 그날 눈으로 본 대상을 화폭에 옮기려고 노력하지만 아무리 그려도 그것을 제대로 그려낼 수 없어서 결국 그리기를 포기해야겠다고 느낄 때, 다시 말해서 완전히 절망할 때, 문득 손님이 온 것 같은 순간이 찾아온다. 그리고 그때 비로소 진짜 그림이 그려진다. 화가는 그 신비한 손님을 '영원'이라고 불렀다.<br>윌리엄 블레이크(1957-1827)가 노래한 '영원'도 그런 종류일까? 신성하고 무한한 자유 같은 것, 시간이라기보다는 절대 공간 같은 것, 진리와 동의어처럼 보이나 개념적으로는 전혀 파악될 수 없는 것쯤으로 나는 그들이 말하는 영원이라는 단어의 의미를 막연히 짐작해 볼 뿐이다. <br>블레이크는 매우 특별한 사람이었던 것 같다. 그는 어릴 때부터 환상을 봤는데 이를테면 창문으로 하나님(기독교의 하나님)이 머리를 들이밀고, 농부들 사이에서 천사가 함께 걸어가며, 나무에 천사들이 열매처럼 주렁주렁 달린 모습 등을 봤다고 한다. 블레이크가 본 환상들 중에는 구름 위에 사는 아이도 있었던 모양이다. &nbsp;&nbsp;<br>거친 산골짝 아래로 피리를 불다가즐거운 기쁨의 노래들을 부르다가,구름 위에 있는 한 아이를 나는 보았습니다.&lt;순수의 노래&gt; '서시' 첫 구절<br>재미있게도 현대의 그림책 작가 존 버닝햄도 같은 상상을 했는데, 작가가 블레이크를 몰랐을 것 같진 않아서 어쩌면 아래의 그림책도 블레이크의 시에서 연상했을지 모른다. 하지만 꼭 그렇다는 법도 없는 것이, 존 버닝햄의 상상력은 놀라워서 굳이 환상을 보지 않아도 그는 하늘 위의 구름에서 언뜻 꼬맹이 하나가 뛰노는 모습을 충분히 상상하고도 남을 사람 같다. &nbsp;<br><br> <br><br><br><br><br><br><br><br><br><br><br><br>블레이크는 여러 권의 시집을 자비로 제작했는데 그중에서 &nbsp;&lt;순수의 노래&gt;와 &lt;경험의 노래&gt;, &lt;천국과 지옥의 결혼&gt;이라는 연작 형식의 시화집이 있다. 이 시집들은 내용상 하나의 큰 줄거리를 이뤄서, 블레이크는 헤겔의 변증법을 적용해서 인간의 진화를 정반합으로 설명한다. <br>인간은 순수한 자연의 일부로 태어나지만 인간이 만들어내는 문명 세계는 타락했고, 대립된 이 두 세계를 조화롭게 극복해 낼 때 인간은 진화한다고 블레이크는 믿었다. 그에 따르면, 문명의 타락은 선함과 악함을 동시에 갖고 태어난 인간의 모순에서 비롯한다. 그러니 인간이 발전하려면 자신의 결함을 극복해 내는 길밖에 없다. 인간의 무지와 폭력성과 악함은 진정한 천국을 이루기 위해 반드시 필요한 통과의례 같은 것으로 블레이크는 생각한 것 같다. 그래서 그의 세 번째 시집 제목이 &lt;천국과 지옥의 결혼&gt;이다. <br>과연 우리는 천국과 지옥을 결혼시킬 수 있을까? 어쩌면 블레이크는 그럴 수 있었을지 모른다. 그는 글을 읽을 줄 모르는 여자와 결혼해서 아내에게 읽기와 쓰기, 그림 그리는 법까지 가르쳐 자신의 훌륭한 조수로 키워냈고, 두 사람은 마치 아담과 이브처럼 알몸으로 정원을 거닐었을 정도로 순수한 자연의 상태를 추구하며 살았다고 한다. 블레이크가 임종하는 자리에서 아내에게 했다는 말은 감동적이다. &nbsp;<br>"케이트, 그대로 가만히 있어요. 나에게 당신은 언제나 천사였소. 당신의 초상화를 그려주리다."<br>블레이크가 죽고 아내는 다시 식모살이로 돌아가 남은 생을 살았다고 하니 그녀가 블레이크와 같이 했던 그 시간이 내 눈에는 천국 같다. 천국은 반드시 하늘 어딘가, 현실 바깥의 어딘가에 있는 건 아니리라. 블레이크의 아내에게 천국은 남편의 세상이 아니었을까? 그러니 천국과 지옥을 결혼시키는 일도 사람에 따라서는 가능하리라고 믿는다. <br>블레이크의 시화집 그림은 &nbsp;아름답고 정성스러워서 나는 그의 시집을 그림책처럼 읽는다. (블레이크는 동판에 글자와 그림을 한 땀 한 땀 새겨 넣고, 여러 판으로 색을 겹쳐 찍는 다색 판화 기법을 사용해서 그림을 채색했다.) 그리고 거기에 아이들 이야기가 나오기 때문에 더 그림책 같다. <br><br>&lt;순수의 노래&gt; 표지<br><br>고운 아가, 너의 얼굴에서성스러운 형상이 보이는구나.옛날에 고운 아기님, 너를 창조하신 분도너처럼 누워서 나를 위해 울었단다.<br>그분이 자그마한 아기였을 때나를 위해, 너를 위해, 모두를 위해 울었단다. 네가 부디 그분의 형상을, 너에게미소하는 거룩한 얼굴을 만나기를-<br>너에게, 나에게, 모두에게 미소하는 분옛날에 자그마한 아기가 되었던 그분을.아기의 미소는 바로 그분의 미소란다하늘과 땅을 평화롭게 하는 미소란다. - &lt;순수의 노래&gt;, '자장가' 중에서 <br>우리는 동심이라는 말을 쉽게 쓰지만 사실 동심이 무얼 뜻하는지는 분명하지 않다. 어떤 사람은 동심을 가리켜 순수한 마음이라고 하고, 어떤 사람은 선한 마음이라고 하며, 또 어떤 사람들은 다른 종류의 마음을 동심이라는 말에 갖다 붙인다. 한 가지 분명한 사실은 그런 마음들이 대체로 좋은 마음이라는 점이다. 우리는 은연중에 온갖 좋은 가치를 동심이라는 말에 부여한다. 순수, 선량함, 기쁨, 사랑 같은 아주 좋은 가치들을. 다른 식으로 보자면, 폭력이나 질투, 분노, 원한, 적개심, 욕심 같은 부정적 마음으로부터 완전히 해방된 상태를 동심이라고 보는 것 같기도 하다. <br>어린이다움 혹은 어린이스러움에 우리가 부여하는 가치들을 우리 곁의 현실 아이들이 실제로 갖고 있고 마음껏 누리는지는 자신하기 어렵다. 어린이는 어린이대로 많은 모순을 자기 내부에 품고 있는 것 같다. 세상에 갓 태어난 아이의 미소와 울음에 대해 생존 전략이라는 살벌한 정의를 하는 학자들도 있다. 세상은 어떤 식으로든 해석될 수 있고 그러니 동심이든 어린이든 어떤 식으로도 해석될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아이들은 어른보다 대체로 선량하고 단순하며 지혜로운 건 사실인 것 같다. 나는 현실에서 그렇게 경험했고, 그림책 속의 아이들은 모두 그렇다. <br>하지만 아이들이 무조건 행복한 건 아니다. 아이다움이나 아이 같은 마음, 동심, 아이스러움이 행복과 동의어일 수는 없어보인다. 블레이크의 시에 등장하는 아이들은 선량하고 순수하지만 절대적 약자다. 거칠고 탐욕스러우며 자비심 없는 어른들의 세계에서 아이들은 견뎌내는 길 밖에 다른 탈출구가 없다. 블레이크의 시에서 흑인 소년은 "우리 엄마가 남쪽의 야생에서 나를 낳았어 / 그래서 난 까매 / 하지만 오, 나의 영혼은 하얘 / 영국 아이는 천사처럼 하얗지 / 하지만 나는 마치 빛을 잃어버린 듯이 까맣지." 노래한다(&lt;순수의 노래&gt; 중 '어린 흑인 소년'). 굴뚝청소부 아이의 사정도 좋지 않다. 아이가 아주 어릴 때 엄마가 돌아가셨고 아빠는 아이를 팔아버려서 "그래서 여러분의 굴뚝을 청소하고, 검댕투성이로 자는 거예요." 아이는 순진하게 이야기한다(&lt;순수의 노래&gt; 중 '굴뚝-청소부'). 또 길을 잃은 아이도 있다. <br><br>길 잃은 어린 소년<br>"아버지, 아버지, 어디로 가는 거예요?오, 그렇게 빨리 걷지 마세요!말해줘요, 아버지, 당신의 어린 아들에게 말해줘요.그러지 않으면 나는 길을 잃고 말 거예요."<br>밤은 어두웠고, 아버지는 거기에 없었습니다.아이는 이슬에 젖었습니다.늪은 깊었고, 아이는 울었습니다.그리고 운무가 흩날렸습니다.- &lt;순수의 노래&gt; 중에서<br><br>블레이크는 말했다. 종달새 한 마리가 날개를 다치면 천사 하나가 노래를 멈춘다고.('순수의 전조' 중에서) 블레이크가 말하는 종달새는 우리 곁의 아이들, 세상의 모든 아이들이다. 버르장머리 없는 못된 아이들도 실은 날개를 다친 종달새인 셈이다. 블레이크는 우리를 그렇게 설득시킨다. 아이들을 종달새로 보라고 말이다. <br>어린이의 순수함은 위협받는다. 그건 어린이의 외부와 내부에서 동시에 온다. 불행한 부모, 사랑하는 이의 죽음, 나쁜 어른, 삭막한 학교, 질투하는 친구들, 그리고 자기 자신의 욕망 같은 것들. 어린이들을 슬프게 만드는 요소는 너무나 많다. 그래서 블레이크는 &lt;순수의 노래&gt;에 이어서 쓴 &lt;경험의 노래&gt; 표지에 슬퍼하는 여인을 그렸다. &nbsp;&nbsp;<br><br>&lt;경험의 노래&gt; 표지<br><br>어린이의 순수한 자연 상태는 오래가지 못하고 타락한 문명 세계로 아이는 진입하는데 블레이크는 그것을 호랑이에 비유한다. <br>한밤의 숲 속에서밝게 불타는 호랑아, 호랑아,어떤 불멸의 손 아니면 눈이너의 무서운 균형을 빚을 수 있었을까?- &lt;경험의 노래&gt; '호랑이'의 첫 구절<br>증오와 공포, 타락, 지옥은 다른 곳에서 오지 않고 우리 내부에서 기인한다. 두려운 공포를 품은 무자비라는 이름의 나무는&nbsp;인간의 뇌 속에서 자란다고 블레이크는 노래한다(&lt;경험의 노래&gt; 중 '인간의 추상'). 이제 우리는 그리고 아이들은 그림책의 세계에 머물지 못한다. 그 세계에서 추방되었다. 그러나 추방은 우리의 성장을 위해서 꼭 필요한 것일지 모른다. 블레이크식으로 생각하자면 그렇다. 마치 유대인들이 이집트에서 나와 사십 년을 광야에서 방황한 것이 그들에게 꼭 필요한 과정이었던 것처럼 말이다. 그 길은 우리가 진정한 천국에 이르기 위해 거쳐야 하는 여정일 수 있다. 그래서 블레이크는 분노하는 호랑이가 가르치는 말보다 슬기롭다('지옥의 격언' 중에서)고 말한다. 인간 영혼이 모순되고 대립된 상태를 극복하고 마침내 둘이 조화를 이룰 때 천국(같은 마음)과 지옥(같은 마음)은 결혼하여 평화를 찾고 우리는 새로운 천국을 살게 될 수 있을 거라고. &nbsp;&nbsp;&nbsp;&nbsp;<br>상반되는 것들이 없이는 어떤 진보도 없다. 끌림과 반발, 이성과 에너지, 사랑과 증오가 인간의 존재에 필요하다. 이 상반되는 것들에서 종교인들이 선과 악으로 부르는 것이 생겨난다. 선은 이성에 복종하는 수동적인 것들이다: 악은 에너지에서 솟구치는 능동적인 것들이다. 선은 천국이요, 악은 지옥이다. - &lt;천국과 지옥의 결혼&gt; '서시' 중에서<br>사람들은 천국이 무료해서 오히려 지옥에서 다 같이 어울려 재미있게 살고 싶다고 농담을 하곤 하는데 그건 말 그대로 농담에 지나지 않는다. 천국은 어쩌면 참 재미있을지도 모른다. 어린아이들이 노는 걸 보면 천국이 재미없을 리 만무하다. 블레이크가 말하는 인간의 타락을 '경험'하고 그것을 통과하기 위해서는 어린 시절의 천국은 꼭 필요하다. 그리고 인간은 천국을 품고 태어났고 천국과 함께 태어난 존재라고 믿는다. 성장하면서 천국의 기억을 잃어가도 그것이 그립고 그래서 그곳으로 가는 길을 찾고 싶다면 우리의 마음 속으로 들어가면 되지 않을까. &nbsp;<br>현대의 그림책 작가들은 블레이크처럼 영성적이지는 않지만 블레이크가 노래한 지고한 순수의 세계를 어린이들에게서 보아내는 예민한 눈을 가진 사람들이다. 에즈라 잭 키츠가 그려낸 천진한 아이는 천사 같고 아이가 노는 눈의 세계는 천국 같다. 아니, 아이가 놀고 있는 그 시간이 곧 천국이다. 그리고 이 아이를 보는 우리는 지극한 기쁨을 구체적으로 같이 느끼는 행운을 누린다. &nbsp;<br><br> <br><br><br><br><br><br><br><br><br><br><br>마리 홀 예츠는 어른 없이 혼자 숲 속에 들어간 아이 이야기를 상상했다. <br><br> <br><br><br><br><br><br><br><br><br><br>아이는 혼자서 어두운 숲 속으로 들어가 '모험'이 아니라 '산책'을 한다. 아이는 제일 먼저 사자를 만나는데 잠이 깬 사자는 아이에게 묻는다. "머리 빗고, 나도 같이 가면 안 될까?" 아이는 목욕하는 아기코끼리와 잼을 먹고 있던 곰 두 마리, 캥거루 가족, 늙은 황새, 작은 원숭이, 토끼도 만난다. <br>아이는 나팔을 불고, 사자는 어흥하고, 코끼리는 부우 하고, 곰은 으르렁, 캥거루는 북을 칩니다. 황새는 부리를 맞부딪히며 딱딱거리고, 원숭이는 환성을 지르며 박수를 칩니다. 토끼는 조용, 합니다. <br><br>친구들과 숨바꼭질 놀이를 하다가 눈을 떠보니 친구들은 보이지 않고 아빠만 있는데 아빠가 누구한테 얘길 하고 있느냐고 아이에게 묻는다. 아이는 친구들과 놀고 있었다고 대답하면서 아빠에게 안겨 집으로 돌아가며 뒤를 돌아보고 외친다. <br>"안녕! 멀리 가지 마! 다시 산책하러 와서 너희들을 찾을게."<br><br><br>아이가 자연 만물과 합일된 상태는 오래가지 않지만 한때 아이였던 우리 모두는 본질적으로 이 애니미즘의 세계에 존재의 뿌리를 내리고 있는 게 아닐까 막연히 짐작한다. 그리고 동심이라는 걸 떠올릴 때 우리는 뭐라고 분명하게 설명할 수 없는 아련하면서도 미진하고 가슴 뻐근한 그리움, 소중한 걸 영영 잃어버린 듯한 깊은 상실감으로 괴로워하고 있는 중일지도 모른다. 자신이 괴로워하고 있는지도 모른 채로.&nbsp;<br><br><br><br>]]></description><image><url>https://image.aladin.co.kr/product/31196/24/cover150/k132831059_1.jpg</url><link>https://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temId=311962427</link></image></item></channel></rs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