괴담의 집 스토리콜렉터 33
미쓰다 신조 지음, 현정수 옮김 / 북로드 / 2015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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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링컨과 케네디의 공통점’ 이라고 검색어를 치면 재미있는 게시물들이 많다. 100년을 간격으로 시대를 살아간 사람들에게서 발견되는 몇 가지 사실들이 지금까지도 이토록 많은 사람들을 매혹시키고 있다니 재미있는 일이다. 마치 알려지지 않은 세상의 비밀을 발견해낸 것 같은 희열감 같은 게 느껴진다. 조금 억지스러운 부분도 보이지만 말이다. 사실 이런 예는 참 사소한 것이다. 

 

그러니까 좋아하는 것 같다. 사람들이 일련의 사실이나 현상에 대해 규칙을 찾는 것 말이다. 왜냐면 학문적으로 증명이 됐건 아니건 간에 세상에는 이미 너무나도 많은 규칙이니, 법칙이니 하는 것들이 존재하기 때문이다. 또한, 누구나 은연중에 하는 것 아닌가? 일을 할 때나, 공부를 할 때나, 사람을 만날 때나, 아무 생각 없이 어딘가에 앉아 사람 구경을 할 때도, 그것과 그것 혹은 나와 그의 공통점을 찾고 있던 적이 한번이라도 있지 않나? 그렇게 비슷한 점을 한 가지 발견하면 호기심이 일고, 두 가지를 발견하면 신기하고, 세 가지를 발견하면 운명임을 느끼고 뭐 그런 것 아닐지. 그런데 그런 공통점을 전혀 다른 다섯 가지 사례에서 발견하게 된다면? 그건 호기심을 넘어서 부정할 수 없는 객관적인 ‘사실’이 되는 거다.

 

미쓰다 신조의 책 『괴담의 집』은 그런 이야기다. 있을 수 없고, 있을 리 없다고 생각되는 어떤 ‘존재’와 그 ‘존재’로 인해 벌어지는 사건을 부정할 수 없는 ‘사실’로 받아들이게 되는 이야기인 것이다.

 

“전혀 다른 두 가지 이야기인데도, 어쩐지 비슷하다는 느낌을 떨칠 수 없다……. 선생님께서는 이런 왠지 모를 섬뜩한 감각에 사로잡힌 경험이 없으십니까?”

 

수집한 괴담을 테마로 즐겁게 이야기를 이어가던 작가 미쓰다 신조는 편집자 미마사카 슈조의 제안으로 어쩐지 비슷하다는 느낌을 주는 두 원고를 받아 읽게 된다. 그리고 그와 비슷한 원고들이 더 발견되면서 출처가 다른 다섯 개의 원고가 모이게 된다. 그 원고들에서 공통적으로 영향력을 행사하는 ‘존재’는 있을 리 없고, 있어서도 안 되는 그야말로 괴담에서나 만날 법한 그것이다. 수년에서 수십 년의 시간 간격을 두고 쓰인 원고들에서 발견되는 그것의 흔적으로 미쓰다 신조는 어떤 ‘존재’의 실체를 추리해 낸다. 그것은 아마 현실세계에 아직도 존재하고 있을 터이다.

 

뭐 그런 이야기다. 『괴담의 집』이라는 제목을 들으면 이미 알겠지만, 집에 사는 무시무시한 것에 대한 이야기다. 흥미로운 주제지만, 이미 도입부에 ‘어쩐지 비슷한 느낌이 드는 전혀 다른 이야기’라고 밝히고 있기 때문에 전개가 충분히 예상 가능한 점이 아주 치명적인 단점이다. 두 번째 이야기 까지는 흥미롭게 읽히는데 세 번째, 네 번째로 갈수록 전개가 예상되고, 무서운 분위기를 조성하는 레퍼토리가 반복돼서 읽기 지루하다. 불가사의한 ‘존재’에 대한 실마리를 주는 다섯 번째 이야기가 그나마 다시 흥미를 돋우지만, 이 모든 이야기들의 미스터리를 밝혀내는 미쓰다 신조의 추리가 이어지는 종장은 기대만큼 흥미롭지 못하다. 이미 독자들은 다섯 개의 이야기가 공통적으로 어떤 ‘존재’에 대해 말하고 있다고 알고 있는데 그것을 새삼 되짚어 설명하고 있어서 지루했고, 그것을 설명하는 방식도 일본의 지명에 익숙지 않은 한국 독자들에게는 낯설기만 할 뿐이다. 종장이면 이야기가 마무리되고 미스터리가 해소되는 그런 재미가 있어야 되는데, 미쓰다 신조의 스타일상 그렇게 깔끔하게 마무리 되지 않는다는 점도 허무함을 느끼게 하더라.

 

이 책은 작가 미쓰다 신조가 도조 겐야 시리즈중 하나인 『유녀처럼 원한 품는 것』을 쓰는 도중 겪은 괴이(?)라는 설정이기 때문에 『유녀처럼 원한 품는 것』을 집필하는 과정이 간간히 소개된다. 해서 오히려 이쪽 책에 대한 홍보 역할을 톡톡히 하고 있다. 타 출판사에서 일 년에 한 권 정도는 도조 겐야 시리즈를 내줬었는데 올해는 소식이 없다. 다음에 나오는 편은 어떤 편일지 모르겠지만 『유녀처럼 원한 품는 것』이 읽고 싶어졌다. 이 책이 나왔으면 좋겠다. 미쓰다 신조도 나름 다작하는 작가지만 확실히 데뷔작이었던 작가 시리즈나 도조 겐야 시리즈를 제외하고 스탠드 얼론으로 나오는 책들은 기대치만큼의 재미를 주지 못하는 것 같다. 나름 애정하고 있는 작가인데, 갈수록 아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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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의 파편
이토 준지 지음, 고현진 옮김 / 시공사(만화) / 2015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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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작이 심심치 않게 소개되면 한권씩 사서 소장하는 유일한 만화 작가인데, 그동안 신간 소식이 없어서 이 작가가 절필을 했나? 아니면 그런 요상한 이야기를 만들다 못해 머리가 어떻게 돼버린건 아닌가 걱정을 했는데 나름 작품 활동을 쭉 해오고 있었단다. 꽤 오랜 기간 동안 공포 만화를 그리지 않던 그는 인연 깊은 담당 편집자의 죽음과 아끼던 애완묘가 무지개다리를 건넌 일 등을 겪으며 슬럼프 아닌 슬럼프를 겪고 다시 공포 만화로 컴백했다. 꽤 오랜만에 내는 공포 만화 단편집이라 본인 스스로도 감이 많이 떨어졌음을 통감했다고 후기에 적고 있다.

 

정말 그래서 그런지, 8편의 단편 중에 인상적인 단편이 별로 눈에 띄지 않는다. 「토미오, 붉은 터틀넥」이나 「해부중독자」같은 경우는 소재가 어딘가에서 많이 듣던 이야기라 이제는 무섭지도 않고 식상하기만 한, ‘도시 괴담’이라는 말을 붙이기가 미안하게 세련되지 못해서, 그야말로 ‘공포 특급’스러워서 궁금하지 않은 이야기 였달까? 물론 이토 준지는 그림을 아주 잘 그리는 작가라서 식상한 이야긴들 만화로 풀어내니 못 봐줄 정도는 아니었지만 말이다. 이전 작품들과 비교하면 참 아쉽다.

 

「나나쿠세 나나미」나 「귓속말하는 여자」같은 경우는 설정은 독특한데 얘기가 결국 그렇게 되겠구나 예상이 가능 수준이었고, 「이불」이나 「목조 괴담」같은 경우는 왠지 그림 빨로 때운 것 같다는 인상이 강했으니……. 다 이랬으면 엄청 실망스러웠겠지만,

 

「검은 새」는 정말 재미있게 읽었다. 개인적인 취향 때문인 어쩐지 정체모를 괴생명체가 나오는 에피소드는 대부분 만족스러웠는데, 「토미에」에 비할 바는 아니지만 굉장한 캐릭터가 나온다. 대사 한줄 없이 마성의 매력을 마구 뿜어주시는데 어찌나 인상적이던지. 다른 이야기들처럼 종결되는 결말이 아니라, 뭐 결말은 나지만 그게 끝없이 반복되고 이어질 것 같다는 인상을 주는 게 그야말로 소름이 돋았다. 검은 새에 대한 설명은 없지만(애초에 친절하게 설명 하는 분이 아니지만) 왠지 태고부터 존재했을 것 같은 무언가인데, 게다가 엄청나게 초월적인 능력을 갖고 있다는 설정이다. 그 능력이 어떤 조건에서, 어떤 사람에게, 어떻게 발현되는지에 대한 설명은 뭐 없지만, 그래서 더 소름 돋게 인상적이었다. 재미있는 캐릭터지만, 속편이 나올 것 같지는 않고. 하지만 여튼 대단한 이야기다.

 

「느린 이별」은 다른 의미로 대단한 게, 내가 이토 준지 만화를 보다가 감동에 젖을 줄은 정말 꿈에도 생각 못했는데 이 단편이 상당히 의외성이 있다. 반전도 있고, 결말도 훈훈해서 그냥 계속 생각나는 이야기다. 자극적인 설정이나 인체훼손같은 혐오감을 불러일으키는 그림은 없지만 이야기 전개가 참 괜찮다. 아마 공포 만화 공백기 동안 인연 깊은 담당 편집자를 잃고, 애정을 쏟았던 고양이를 떠나보낸 경험을 해서 그런지, 죽음이나 죽은 이를 떠나보내야 하는 남은 이들에 대해 작가가 많은 생각을 했던 것 같다. 사망한 친족을 염원으로 되살려내(비록 완전한 부활은 아니지만) 되돌아온 망자가 소멸되기까지 수년에서 수십 년을 유족들은 애도하고 조금씩 떠나보낼 준비를 한다는 설정은 정말, 기발하게 슬프다.

 

전체적으로 8개 단편 중에 2편은 아주 괜찮고 2편은 그저 그렇고, 4편은 그저 지면을 채우겠다는 생각뿐이었나 싶을 정도로 별로라서 총평하자면 좋은 점수는 못 주겠지만 말이다. 이미 이 책을 사서 볼 사람은 다 사서 봤을 것이고, 우연하게 표지에 끌려 이 책으로 이토 준지의 세계에 입문한 사람이라면 역량이 겨우 이정도인 작가가 아니니 다른 작품을 읽어보시라 권하고 싶다. 한동안 쉬었으니 공포 만화 좀 열심히 그려서 다음 작품도 만날 수 있기를. 그저 오랜만에 신작이라 반가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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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즈번드 시크릿
리안 모리아티 지음, 김소정 옮김 / 마시멜로 / 2015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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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줄로 정리하자면, 비밀을 소재로 과거와 현재가 뒤엉킨 세 여자에 대한 이야기다. 한 가정의 평범한 부인이자 엄마인 그녀들에게 남편의 비밀은 재앙과도 같아서 하루아침에 이제까지 이룬 모든 것들이 송두리째 흔들린다. 딱히 본인이 잘못한 것도 아닌데 거대한 소동에 휘말리게 되고 만다. 아내고 엄마라는 자리는 그렇게 벅차면서도 가벼운 자리인가 보다.

 

내가 죽은 뒤에 열어봐야할 치명적인 비밀

 

세실리아는 완벽한 아내다. 훌륭한 엄마다. 남편에게는 다정하고 헌신적이며, 아이들 학교 일에도 늘 활동적인 리더고, 그 와중에 자신의 일도 갖고 있는 정말 삶을 능동적으로, 활력적으로 살아가는 여자다. 그녀를 만난 사람들은 모두 그녀를 좋아한다. 그런 그녀의 남편도 완벽한 사람이다. 다정하고 세심하고 잘생겼다. 시댁도 훌륭해서 흠잡을 곳이 없다. 그야말로 누구나 탐내는 신랑감이었고, 누구나 탐내고 있는 남편이다. 그런 남편이 어느 날부터 이상해진다. 분명 좋은 관계를 해왔다고 자부하는데 갑자기 섹스도 거부하고, 사회봉사에 지나치게 열성적이고, 여자 티가 나기 시작하는 큰딸을 묘한 눈으로 바라보기 시작한다. 세실리아의 머릿속에서 말도 안 되는 온갖 상상이 펼쳐진다. 그러다 발견한 남편의 편지. 반드시 내가 죽은 뒤에 열어볼 것. 세실리아는 고민한다. 이 봉투를 열어볼 것이냐, 말 것이냐.

 

존 폴 피츠패트릭의 비밀은 대단하다. 개인이 감당할 수도 없거니와 주변 사람도 변화시킬 정도로 거대하고 힘이 세다. 영리하고 매력적인데다가 부지하기까지 한 완벽한 아내 세실리아를 무너뜨릴 정도의 파괴력이 있다. 하지만 그런 만큼 공감이 가지 않는다. 사실 비밀이란 아주 사소한 것이 아닐까? 너무나 작고 시시해서 막상 말로 꺼내려고 해도 말을 만들기가 어려울 정도로 사소한 것 말이다. 그 사소함이 인간 본연의 너절함과 찌질함에 닿아있는 거라서 말 꺼내기엔 쪽팔린, 그렇다고 모른 척 무시하기엔 손끝에 든 가시처럼 거치적거리는 그런 것 말이다. 그렇게 생각한다면 정말 공감이 가는 비밀을 가진 부부는 테스와 윌일지도 모르겠다.

 

내 가장 절친과 바람난 남편

 

테스는 남편 윌과 여전히 사랑을 하고 있다고 생각했다. 그 사랑이 전처럼 뜨겁고 열정적이진 않지만 서로에 대해서 누구보다 잘 알고 있고, 또 이해하고 있고, 그만큼 신뢰하고 있다. 그런데 어느 날 윌이 폭탄선언을 한다. 윌이 바람이 났단다. 그것도 테스의 분신과도 같은 존재인, 너무도 사랑하는 사촌인 펠리시티와. 테스와 윌, 펠리시티는 특별한 관계였다. 테스는 남편인 윌을 사랑하는 만큼 사촌인 펠리시티도 사랑했다. 그래서 항상 함께였고, 차마 말하지 못할 모든 비밀을 공유했고, 늘 함께할 거라 생각했다. 신뢰하는 남편이, 분신 같던 절친이 배신을 했다. 아직 잠자리는 갖지 않았지만 너무 사랑하고 있기 때문에 말하지 않을 수 없어서 털어놓는 거란다. 기가 찰 노릇이다.

 

엄마고 아내이기도 하지만 그 이전에 여자인지라, 테스는 이들의 배신을 견딜 수가 없다. 하지만 이혼을 할 수도, 절교를 할 수도 없다. 그들이 너무도 소중한 존재이기 때문이다. 여자로서, 아내고 엄마로서 테스는 그 어떤 결정도 내릴 수가 없다. 그래서 아이를 데리고 무작정 어릴 적 자린 곳으로, 엄마가 있는 곳으로 떠나 버린다. 테스는 윌을 마음속 깊이 신뢰하고 의지했고, 모든 비밀을 펠리시티에게 공유했는데 정작 윌의 마음을, 펠리시티의 비밀을 알지 못했다. 어쩌면 아직도 미처 깨닫지 못한 무언가가 있을 지도 모르겠다.

 

30년이 지나도 옅어지지 않는 상처로 남은 딸의 비밀

 

레이첼은 은퇴할 나이지만 여전히 학교에서 일하고 있다. 남편을 수년전에 먼저 보내고는, 아들과 똑똑한 며느리 그리고 너무도 사랑스러운 손자 제이컵과 종종 교류하며 평화로운 노년을 보내는 것처럼 보이다. 하지만 그녀의 내면을, 그 끔찍한 고통을 봐주는 사람은 많지 않다. 레이첼은 30여 년 전 딸아이 자니를 잃었다. 자니는 살해당했다. 범인은 잡히지 않았다. 의심이 가는 사람이 있지만 경찰을 그를 풀어줬다. 레이첼은 어쩌면 딸 자니를 죽였을지도 모를 남자를 매일 만나고 있다. 그가 레이첼의 학교에서 교사로 일하고 있기 때문이다.

 

엄마와 딸 사이에 비밀이 없을 줄 알았다. 하지만 레이첼은 자니가 죽은 뒤에야 자신이 몰랐던 자니를 하나 둘씩 알게 됐다. 어느 날 문득 문득 튀어나오는 딸아이의 흔적 속에서 너무나도 낯선 딸아이의 모습을 만나게 된다. 그럴 때마다 레이첼은 딸아이가 살해당한 그 날로 수도 없이 내던져 지는 것 같다. 그렇게 매일이 너무 고통스러워 주위를 둘러볼 겨를이 없다. 오직 순수한 제이컵만이 그녀에게는 위안이 되지만 아들, 며느리와의 관계는 벽이 쳐진 듯 소원하기만 하다.

 

 

비밀을 가진 사람들은 그것을 감추고 싶어 하는 동시에, 밖으로 드러내고 싶어 한다. 존 폴이 그 일을 종이에 남긴 것처럼, 윌이 결국 테스에게 자신의 감정을 털어놓은 것처럼, 자니가 비디오테이프를 남긴 것처럼 말이다. 스스로를 짓누르는 것에서 해방되고 싶은 마음이야 이해 못할 바가 아니지만, 그 마음의 무게를 가장 가까운 사람에게 전가하려 하는 행위는 참 잔인하다. 나의 가장 사랑하는 사람이기에, 누구보다도 신뢰하고 의지하고 있기에, 설사 자신의 치부를 알게 된다 하더라도 나를 떠나지 않을 거라는 것을 알기에 털어놓는 것이다. 죄책감 같은 건 없다. 하지만 과연, 그래도 되는가? 사랑의 책임은 사람의 치부마저 감내해야 할 정도로 무거운 것일까?

 

전혀 다른 삶을 살아왔던 세 여자가 가장 사랑하는 사람의 비밀을 알게 된 죄로 한데 만나서 인연을 맺게 된다. 결자해지라는 좋은 말이 있지만 세상일에는 수많은 우연과 말도 안 되는 필연이 있어서 속죄해야 할 사람, 용서를 해야 하는 사람, 죗값을 치러야 할 사람이 결국엔 물리고 물리게 되는 경우가 많다. 사람 틈바구니에 사는 인생이란 게 결국은 그런 게 아닌가 싶다. 사람의 본질이, 그의 치부가 나를 힘들게 한다면, 아무리 사랑한다 하더라도 떠나보낼 수 있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물론 끝까지 곁에 남아줄 수도 있다. 그 결정은 온전히 본인의 몫이지만. 용서와 화해라는 결말은 좀 고리타분하긴 하지만 어쩌면 이 책에서는 가장 어울리는 마무리이다. 이미 벌어진 일에 ‘만약에’를 붙이는 게 얼마나 쓸데없는 일인지 항상 생각하지만, 소설이니까 그런 마무리도 나쁘지 않다고 생각했다. 여하튼, 정말 시간가는 줄 모르게 재미있는 소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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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라딘 16주년 축하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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테두리 없는 거울
츠지무라 미즈키 지음, 박현미 옮김 / arte(아르테) / 2015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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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신은 홀로 있을 때만 나타난다. 왜 그런지 생각해 본 적이 없었는데 이제는 조금 알 것도 같다. 고독이 잡념을 부르고, 잡념이 망상을 낳고, 망상이 귀신으로 변태하는 것이다. 그런데 지독한 것은 그렇게 형태를 갖춘 귀신은 바이러스 같은 것이어서, 어리고 여린 사람일수록 쉽게 감염되고, 때문에 지독하게 앓게 되고 만다. 『테두리가 없는 거울』은 그런 이야기다. 어느 순간 누군가의 고독으로 인해 탄생한 귀신을 마주하게 되는 이야기인 것이다.

 

 

외로운 아이의 외로운 망령 - 계단의 하나꼬

 

어느 학교에나 존재한다는 학교 괴담, 그중에서도 흔하디흔한 하나꼬 이야기다. 이 학교의 하나꼬는 화장실이 아닌 계단에 산다. 하나꼬와 만나고 싶으면 하나꼬가 사는 계단을 진심을 다해 청소해야 한다. 하나꼬가 주는 음식을 먹으면 저주를 받고, 하나꼬의 질문에 거짓을 말해도 저주 받는다. 하나꼬가 주는 상자도 받아서도 안 된다. 하나꼬에게 부탁할 때는 하나꼬가 원하는 것을 들어줘야 하며, 이 금기들을 어길 시에는 벌을 받는다. 그것은 계단에 갇히는 무한 계단의 형벌이다.

 

불우한 가정환경과 지독한 따돌림으로 괴로워하던 외톨이 소녀 사유리가 자살을 한다. 그 사건은 사유리의 학교 선생들과 아이들에게 큰 충격으로 남는다. 그녀가 어째서 모질게도 자살을 선택하게 되었는지는 모를 일이다. 사유리의 죽음을 계단의 하나꼬라는 괴담과 연결하며 그 잔혹한 진실을 파헤치는 이야기이다. 예상 가능한 반전이지만 생각지 못한 복선이 이야기를 맛깔나게 살렸다.

    

 

외톨이가 되고 싶지 않아 불러낸 귀신 - 그네를 타는 다리

 

친구와 잘 어울리지 못하던 미노리는 우연치 않게 소위 잘나가는 아이들의 그룹에 끼게 된다. 교실은 사회의 축소판, 작지만 지독한 계급제 사회였다. 하루아침에 잘나가는 아이가 되어 인기인이 된 소녀. 하지만 미노리는 그네를 타다 떨어져 죽고 말았다. 그 아이와 어울렸던 다른 아이들은 미노리가 귀신의 저주를 받았다고 수군거렸다.

 

귀신을 불러내는 놀이인 분신사바를 소재로 한 이야기다. 어느 누구도 귀신을 불러 낼 수 없었지만 친구들과 어울리고 싶은 마음이 간절했던 미노리는 귀신을 불러낼 수 있었다. 미노리의 죽음은 귀신의 저주라고 말 할 수도 있다. 하지만 미노리와 같은 마음이 된 또 다른 소녀 아카네만은 미노리의 죽음에 대한 진실을 꿰뚫어 볼 수 있었다.

    

 

망령든 노인이 만들어낸 망령들 - 아빠, 시체가 있어요

 

치매가 든 외할머니의 집을 치워주기 위해 주말마다 쓰쓰지는 부모님과 함께 외가를 찾는다. 그런데 정말 곤란하게도 집을 치우기 위해 여기 저기 들쑤시자 알 수 없는 시체들이 쏟아져 나온다. 다행인지 불행인지 쓰쓰지의 외할머니 댁은 외진 산골 깊은 데에 있다. 찾아올 사람도 자식들 외에는 거의 없고 참견할 이웃도 멀리 떨어져 있다. 이 시체들이 어디서 어떻게 나온 건지는 알 수 없지만 조용히 처리하면 시끄러워 질 일은 없을 것이다. 힘들게 시체들을 치우고, 후에 다시 외가를 방문한 쓰쓰지는 경악한다. 또다시 시체들이 외가에 여기 저기 널브러져 있는 것이다. 어째서 이런 일이 생기는지 부모와 상의하고 싶지만, 부모는 시체를 같이 치운 기억은 없는 것처럼 행동한다.

 

상당히 독특한 얘기지만 비슷한 소재를 다룬 단편이 있었다. 교고쿠 나츠히코의 단편집 『싫은 소설』에서 「싫은 조상」이라는 단편이 그렇다. 껄렁하고 왠지 싫은 후배에게서 덜컥 불단을 맡아버린 주인공. 불단에는 고무인형 같은 ‘살아있지 않은’ 사람이 들어차 있다. 그것도 기괴한데 그 고무인형 같은 것들이 매일 매일 그 숫자를 불리고 있다. 기괴하게 겹쳐져 있는 ‘살아있지 않은’ 사람들은 아마도 불단에 모셔지는 후배의 조상들인 듯하다. 어떻게든 그 기분 나쁜 불단을 후배에게 다시 되돌려 주고 싶은데 후배는 자꾸 피하기만 한다. 그렇게 불단과 함께 생활하기를 수 일, 결국은 어떤 이유로 불단을 후배에게 돌려주지 못하게 돼 버리고 만다는 아주 기괴한 이야기다. 죽은 사람이 어디선가 계속해서 튀어나온다는 설정이 비슷한데, 교고쿠 나츠히코의 단편에서는 결말을 아주 깔끔하게 지어준데 비해 츠지무라 미즈키의 책에서는 아주 모호하게 끝내 버린다. 해석의 여지가 다분한데 내가 나름대로 읽기에는 이렇다.

 

외할머니 집에서 나타나는 시체들은 대게 훼손되고 반쯤 부패되어 있어서 신원 확인이 불가능 한 것도 있지만 어떤 것들은 외할머니 댁 주변에 살았던 사람들이다. 그 주변에 실종된 여자아이, 이웃집 여자 같은 한번쯤 외할머니와 교류했을 법한 이웃이다. 외할머니는 자식들의 왕래도 드문데다가 이웃과도 멀리 살고 있어서 외로운 지경이었다. 게다가 병까지 걸렸다. 그런 외할머니의 고독이 교류했던 사람들의 잔영과 결함하여 어떤 실체를 만들어 냈다. 그러니까 그 실체화된 시체들의 정체는 외할머니의 지독한 고독인 것이다. 외할머니의 자식들이 그 실체화된 것을 마주하고 만지고 치우기까지 하게 되는 것은 그들 내면에 자리한 죄책감이 때문이 아닐까? 때문에 집을 치우고 시체를 치우고 난 후(이런 봉사를 통해 홀로 방치한 노모에 대한 죄책감이 해소된 것이다) 그 기괴한 경험을 잊어버리게 되는 것이다. 다만 손녀 쓰쓰지 만은 외할머니 집에서 만난 시체들에 대한 기억을 똑똑히 갖고 있는데, 이는 실연을 한 그녀가 그 상실감으로 인한 외할머니와 같이 고독을 느끼고 있기 때문이 아닐는지.(무리하게 끼워 맞추자면 그런 게 아닐까 싶은 것이다.) 뭐 결론은 아주 애매하게도 아무런 증거도 찾을 수 없는 손녀의 환상으로 마무리 지어지는데, 흥미진진한 전개에 비해 결말이 매우 아쉽다.

  

  

고독과 망상과 현실의 뒤섞임 - 테두리 없는 거울

 

가나코는 클럽에서 색소폰을 부는 도야를 짝사랑 하고 있다. 그를 사랑하는 마음이 깊어 그와의 미래를 유행한다는 거울 점을 통해 보려고 한다. 거울 점으로 보게 된 건 도야를 닮은 듯, 그녀 자신을 닮은 듯 한 소녀의 모습이다. 가나코는 거울 속 소녀가 도야와 자신의 미래의 아이라고 굳게 믿게 된다. 그녀의 사랑이 이루어 질 것이라고. 하지만 거울 점으로 그녀의 미래의 아이를 마주한 이후로 꾸는 꿈들이 심상치가 않다. 과연 도야와 가나코는 미래에 행복할 수 있을까?

 

거울 속에서 미래를 보고, 현실이 불안정해 지더니 결국은 거울속의 미래가 현실을 잡아먹더라. 그런 이야기였다면 아마 조금은 뻔했겠지만 대단한 반전이 있다. 적당히 기괴하고 신비스럽고 애잔하다가 무시무시해진다. 미래의 행복을 바라며 헛된 꿈을 꾸던 여자의 현실은 아주 처참하게 망가져 버린다. 이 이야기는 앞도 없고 뒤도 없다. 표제작이 될 만하다.

    

 

상상속의 친구가 현실로 걸어 나오다 - 8월의 천재지변

 

나름 한때는 반에서 인기 있던 중심인물이었는데 어느새 친구 없는 찌질이로 중심에서 밀려나도 한참 밀려나 있다. 신지는 병약한 친구 교스케를 돌보느라 다른 친구들과 멀어졌다. 완전히 주변인이 되 버린 지 오래다. 걸핏하면 친구들에게 무시당하기 일쑤다. 처음에는 그저 자존심이 상해서 였다. 너희들은 나를 우습게 알고 무시하지만 나에게는 너희와는 비교도 안 될 멋진 친구가 있다. 그러니까 너희가 나를 어떻게 대해도 나는 아무렇지도 않다. 그렇게 신지는 가상의 친구를 만들어 내고 계속해서 거짓말을 한다. 하지만 거짓말은 결국 탄로나 버리고 오히려 친구들에게 괴롭힘을 당하게 된다. 제발 신이 있다면 천재지변이라도 일으켜 주길, 그래서 나와 상상속의 친구 유짱의 세계를 연결시켜 주길 바라던 그때, 느닷없이 상상속의 친구 유짱이 나타난다. 신지가 상상했던 그대로의 모습으로.

 

이 전까지의 단편들과는 전혀 다른 성격의 이야기이다. 갑자기 기습을 당한 것 같은 충격을 받아서, 정말 한동안 멍하니 그저 앉아만 있었다. 사람은 누구나 외롭다. 그래서 항상 친구를 찾지만 아무리 잘 맞는 친구라도 사소한 오해와 다툼으로 쉽게 헤어져 버리기도 한다. 완벽하고 이상적인 상상속의 친구는 어린 신지의 모든 것을 이해하고 배려한다. 누가 봐도 멋진 친구다. 하지만 그는 분명 상상속의 인물이다. 현실에 있을 수 없다. 그는 누구일까? 언제까지 나와 함께 해 줄 수 있을까? 뜻밖의 사고로 모든 것은 제자리를 찾고, 몇 년의 시간이 지난 후 교스케에게서 듣게 되는 상상속의 친구 유짱의 정체는 쓰리고 아프다.

 

 

5편의 단편 모두 고독한 이들의 이야기다. 그들은 너무나도 고독하고 외로운 나머지 귀신을 불러들이고 말았다. 환상적이고 상식적으로 생각할 수 없는 일들이 벌어지고, 비극을 맞는 이도 있고 구원 받은 이도 있다. 고독은 아주 원초적인 감정이다. 남녀노소 어떠한 사정이나 상황을 가릴 것 없이 누구나 고독을 느낀다. 그래서 한번쯤은 경험해 봤을 감정일 것이다. 여기 이 책의 이야기들 속에 모두 들어있다. 그래서 하나같이 무섭고, 쓰리고, 아프고, 슬프고, 아련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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