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의 역사
니콜 크라우스 지음, 민은영 옮김 / 문학동네 / 2020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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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레오 거스키가 쓴 <사랑의 역사>에는 여러 사람의 인생이 얽혀있다. 이래저래 꼬여있는 넝쿨을 이야기를 따라 하나씩 풀어 나가다 보면 전혀 접점이 없어 보였던 이들의 관계가 조금씩 드러나며 이야기의 전체 윤곽이 잡히게 된다.

 

니콜 크라우스가 쓴 책과 레오 거스키가 쓴 책 제목이 <사랑의 역사>로 같다는 설정과 레오 거스키-앨마-즈비 리트비노프가 축이 되어 맞물려가는 이야기의 흐름은 무척 인상적이다. 각 장마다 담겨 있는 레오 거스키의 생각과 그의 행동에서 느껴지는 세월의 흐름에 따른 육체적, 정신적 노쇠는 같은 인간으로서 공감할 수밖에 없는 감정을 느끼게 하고, 그의 친구 즈비 리트비노프가 레오 거스키를 보며 느끼는 열등감과 질투 또한 우리에겐 익숙한 감정으로 이런 장치들이 하나씩 모여 그들의 서사에 더한 깊이를 만들어준다.

 

무엇보다 내가 이 책에서 가장 좋아했던 부분은 소녀 앨마와 레오 거스키의 대화가 담긴 마지막 장으로, 레오 거스키가 그의 상상의 친구 브루노와 나누었던 두드리기를 소녀 앨마와의 문답에도 그대로 인용하는 부분이다. 이는 무척 감동적이면서도 우리에게 잊지 못할 여운을 선사한다. 거기다 브루노라는 상상의 인물에 의지하며 살아가야 했던 레오 거스키의 외로운 삶을 생각하면 마음이 아려오는 걸 막을 수가 없다.

 

책과 사람 간의 인연. 레오 거스키가 쓴 <사랑의 역사>가 여러 사람의 인생을 거쳐 전해져 왔듯이 니콜 크라우스가 쓴 <사랑의 역사> 또한 많은 이들의 손을 거쳐 그들의 마음속에 자리 잡을 것이다. 그 소중한 인연의 한 줄기에 나 또한 함께 할 수 있어 기쁜 마음이다


나이가 더 들고는 진짜 작가가 되고 싶다는 결론을 내렸다. 실재하는 것들에 대해 쓰려고 했다. 세상을 묘사하고 싶었다, 묘사되지 않은 세상에 사는 것은 너무 외로웠기에. - P16

때때로 나는 내 책의 마지막 페이지와 내 인생의 마지막 페이지가 하나이며 똑같다고 믿었다. 책이 끝나면 나도 끝날 거라고, 큰 바람이 방을 휩쓸어 원고를 모두 날려버릴 거라고, 허공에 펄럭이던 흰 종잇장들이 모두 사라지고 나면 방이 고요해질 거라고, 내가 앉아 있던 의자가 텅 빌 거라고. - P19

모든 상실한 것들에서 받는 타격은 췌장이 전담한다. 상실한 것들이 너무 많은데 비해 그 장기는 너무 작은 게 사실이다. 그러나. 그것이 얼마나 많은 것을 받아낼 수 있는지 알면 놀랄 거다, (...) 어제 한 남자가 개를 발로 차는 것을 봤을 때는 그것을 눈 뒤편에서 느꼈다. 그 부위를 뭐라 불러야 할지 모르겠다, 눈물 바로 앞자리. (...) 외로움: 온전히 감당할 장기 없음.
매일 아침, 조금씩 더. - P21

어딘가에 말하고 싶다, 용서하려고 노력해왔다고. 그렇긴 하지만. 살면서 분노를 억누르지 못했던 때가, 아니 여러 해가 있었다. 추함이 나를 완전히 뒤바꿔놓았다. 원한을 품을 때 느끼는 어떤 만족감이 있었다. 원한을 자초했다. 바깥에 서 있는 그것을 안으로 불러들였다. 세상을 향해 인상을 썼다. 그러자 세상도 내게 인상을 썼다. 우리는 서로를 향한 혐오의 시선에 묶여 옴짝달싹할 수 없었다. (...) 나는 암적인 인간이었다. 그리고 솔직히 말하자면, 정말로 화가 난 것도 아니었다. 더는 그렇지 않았다. 아주 오래전에 분노를 어딘가에 두고 왔다. 공원 벤치에 내려놓고 걸어나왔다. 그렇긴 하지만. 너무 오래 그렇게 살아와서 다른 존재 방식을 알지 못했다. 어느 날 나는 잠에서 깨어나 혼잣말을 했다, 아직 너무 늦진 않았어. 처음 며칠은 이상했다. 거울 앞에서 미소를 연습해야 했다. 하지만 되돌아왔다. 마치 묵직한 추를 내려놓은 느낌이었다. 내가 내려놓았더니 무언가가 나를 내려놓았다. - P34

엄마는 아빠를 사랑하는 마음을 둘이 처음 만났던 여름만큼 생생하게 유지했다. 그러기 위해 인생을 외면했다. 때로 엄마는 물과 공기만으로 며칠을 버티기도 했다. (...) 조각가이자 화가인 알베르토 자코메티는 머리 하나를 그리기 위해 때로는 몸 전체를 포기해야 할 수도 있다고 말했다. 나뭇잎을 그리기 위해서는 전체 풍경을 희생해야 한다. 처음에는 자신에게 한계를 지우는 것 같을지 몰라도 시간이 좀 지나면, 하늘 전체를 다루는 척할 때보다 무언가의 4분의 1인치 정도밖에 안 되는 부분을 다룰 때, 우주에 대한 어떤 느낌을 붙잡을 가능성이 더 크다.
엄마는 나뭇잎이나 머리를 택하지 않았다. 엄마는 아빠를 택했고, 어떤 느낌을 붙잡기 위해 세상을 희생했다. - P72

삶은 아룸다워. 나는 생각했다. 어쩌면 그런지도 모르지. 어쩌면 그것이 삶을 표현하는 말인지도 모르지. 문 반대편에서 브루노가 숨쉬는 소리가 들렸다. 연필을 찾았다. 거기에 갈겨썼다. 영원한 농담이기도 하고. 문 아래로 쪽지를 밀어냈다. 그가 쪽지를 읽는 동안 잠깐의 멈춤. 그런 다음, 이제 됐다 생각했는지 그가 위층으로 올라갔다.
나는 울었을 수도 있다. 무슨 차이가 있나. - P122

그로첸스키의 입술에서 한 단어가 흘러나왔다. 파리. 조용히 그는 페이지를 넘겼고, 조용히 나는 그것을 봤다. 광택 나는 사진에 우리의 입김이 서렸다. 어쩌면 그로첸스키는 내게, 잔잔한 긍지를 느끼며, 자신이 가끔 콧노래를 흥얼거리며 일하는 이유를 보여주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마침내 그가 잡지를 덮고 다시 종이 안으로 밀어넣었다. 그는 다시 일을 시작했다. 이브가 사과를 먹은 것은 세상에 수많은 그로첸스키들이 존재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함이었다고 누군가 말했다면, 나는 그 말을 믿었을 것이다. - P128

나는 세상이 날 맞을 준비를 못했다고 생각하고 싶지만, 어쩌면 내가 세상을 맞을 준비를 못했다는 게 진실일 것이다. 나는 인생의 현장에 항상 너무 늦게 도착했다. - P130

"넌 어떤데? 넌 지금 이 순간 가장 행복하고, 또 가장 슬프니?" "물론 그렇지." "왜?" "그 무엇도 나를 더 행복하게, 더 슬프게 하지는 못하니까, 너 말고는." - P142

누군가에게 선물을 받아본 것은 참으로 오랜만이었다. 행복한 기분이 심장을 살짝 찔렀다. 매일 아침 잠에서 깨어 뜨거운 찻잔에 손을 덥힐 수 있다는 것이. 비둘기가 날아오르는 것을 볼 수 있다는 것이. 인생의 끝자락에서 브루노가 날 잊지 않았다는 것이. - P143

아무리 긴 끈이라 해도 말해져야 하는 것들을 말하기에 충분히 길지 않을 때가 있다. 그럴 때 끈이 할 수 있는 유일한 일은, 어떤 형태의 끈이든, 사람의 침묵을 전달하는 것이다. - P172

그들은 아예 다른 종種이었다. 명백히 그렇다, 리트비노프는 생각했다. 같은 주제에 각자 얼마나 다르게 접근했는지만 봐도 알 수 있었다. 그는 종이에 적힌 단어들을 보았지만, 같은 곳에서 친구는 망설임을, 블랙홀을, 말과 말 사이의 가능성이 펼쳐진 들판을 보았다. 친구는 어룽거리는 빛, 비상의 희열, 중력의 슬픔을 보았지만, 같은 곳에서 그는 평범한 참새의 구체적인 형태를 보았다. 리트비노프의 삶은 실재하는 것들의 무게를 느끼며 기뻐하는 것이었으나, 친구의 삶은 지척거리는 무거운 사실들로 무장한 현실을 거부하는 것이었다. 캄캄한 창문에 비친 자신의 모습을 바라보던 리트비노프는 자신에게서 무언가 벗겨져나가며 진실이 드러났다고 믿었다. 즉, 그는 평균적인 인간이었다. 무엇이든 있는 그대로 기꺼이 받아들이며, 그로 인해 어떤 식으로든 독창성을 발휘할만한 잠재력이 부족한 인간. 비록 이런 생각은 모든 면에서 틀린 것이었지만 그날 밤 이후 그 무엇도 그의 생각을 바꾸지 못했다. - P178

죽음의 공포는 일 년 동안 머리를 떠나지 않았다. 누가 유리잔을 떨어뜨리거나 접시를 깨뜨릴 때마다 나는 울었다. 하지만 그 시기가 지나고 나서도 지워지지 않는 슬픔이 남았다. 새로운 일이 일어난 것은 아니었다. 그보다 더 나쁜 경우였다. 내가 몰랐을 뿐 언제나 곁에 있었던 무언가를 인식하게 된 것이다. 나는 이 새로운 인식을 발목에 매단 돌처럼 끌고 다녔다. 그것은 내가 어디를 가든 따라왔다. 나는 머릿속에서 슬픈 노래를 지어내곤 했다. 떨어지는 나뭇잎에 추도사를 바쳤다. 나의 죽음을 수백 가지 다른 방식으로 상상했으나 장례식만은 언제나 똑같아서, 상상 속 어딘가에서 붉은 카펫이 펼쳐졌다. 어떤 비밀스러운 죽음을 맞이하든 언제나 내 위대함은 결국 밝혀졌으니까.
그런 식으로 계속 흘러갈 수도 있었다. - P193

도서관을 나왔다. 도로를 건너며 무자비한 외로움과 정면으로 충돌했다. 어둡고 공허한 느낌이었다. 버려진 채, 간과된 채, 잊힌 채, 보도에 서 있는 나는 아무것도 아닌 사람, 먼지만 모으는 사람이었다. 사람들이 서둘러 지나쳐 갔다. 내 옆을 지나가는 사람들은 모두 나보다 행복했다. 해묵은 부러움을 느꼈다. 그들 가운데 하나가 될 수 있다면 무엇이든 바쳤을 것이다. - P199

그는 진실을 견디며 사는 법을 배우게 되었다. 받아들이는 것이 아니라 견디는 법. 그것은 코끼리와 함께 사는 것과 같았다. 그의 방은 비좁아서 아침마다 욕실에 가려면 진실 주위를 비집고 돌아가야 했다. 속옷을 한 벌 꺼내러 옷장에 가려면 진실 아래로 기어가면서 그것이 바로 그 순간 얼굴 위에 주저앉지 않기를 기도해야 했다. 밤에 눈을 감으면 진실이 그의 위로 덮칠 듯 다가오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 P239

넌 물을 사랑했어. 왜요? 왜라니, 무슨 말이야? 내가 왜 물을 사랑했어요? 그게 네 생명이었으니까! 그리고 우리가 얘기를 나누는 동안 그애가 손가락을 하나씩 담그게 했을 테고, 그래서 자기도 모르는 사이, 내가 잡아주지 않아도 물에 뜨게 되었을 것이다.
그러다 나는 생각했다, 아마도 아버지가 된다는 건 그런 것일 테지―아이가 나 없이도 살 수 있도록 가르치는 것. 그렇다면, 나보다 더 훌륭한 아버지는 없었다. - P251

사랑하고 싶었던 유일한 여인을 잃었어요. 세월을 잃었어요. 책들을 잃었어요. 제가 태어난 집을 잃었어요. 그리고 아이작을 잃었어요. 그러니 제가 그사이 언제인가 저도 모르는 사이에 정신마저 잃지 않았다고 누가 단언할 수 있을까요?
내 책은 어디에도 없었다. 그곳에 나의 흔적은, 나 자신을 제외하면, 전혀 없었다. - P258

엄마를 다시 행복하게 해줄 사람을 찾는 일은 그로써 끝이 났다. 내가 무슨 일을 하건, 혹은 어떤 사람을 찾아내건, 나는―그는―우리 중 누구도―엄마가 간직한 아빠의 기억을 이겨낼 수 없다는 것을 마침내 이해했다. 엄마를 슬프게 하면서도 위안을 주는 그 기억으로 엄마는 세상을 만들어냈고, 다른 사람은 불가능해도 엄마는 그 안에서 살아남는 방법을 알았다. - P277

즈비는 읽고 있던 중국 시가집 어딘가를 펼쳐 그 작품이 나를 위한 시라고 말했다. 제목은 ‘배를 띄우지 마세요’였다. 매우 짧은 시인데, 다음과 같이 시작한다. "배를 띄우지 마세요/내일이면 바람은 잦아들 테니/그때 가셔도 돼요/그러면 나도 당신을 걱정하지 않겠어요," 그이가 죽던 날 아침에는 밤새 정원에 몰아치던 엄청난 돌풍과 폭풍우가 그쳤고 창문을 여니 하늘이 맑게 개어 있었다. 바람 한줄기 불지 않았다. 나는 돌아서서 그이를 불렀다. "여보, 바람이 잦아들었어요!" 그러자 그가 말했다, "그럼 나는 가도 되겠군요. 당신도 날 걱정하지 않겠지요?" 나는 심장이 멎는 느낌이 들었다. 하지만 맞는 말이었다. 바로 그렇게 되었다. - P287

해가 갈수록 아빠에 대한 기억이 희미하고 불명확하고 멀어진다. 처음에는 생생하고 정확했다가 점점 사진처럼 바뀌더니 이제는 사진을 찍은 사진에 가까워졌다. 하지만 흔치 않은 어떤 순간에는 아빠의 기억이 너무도 갑작스럽고 명료하게 떠올라서 몇 년간 눌러놓았던 모든 감정이 상자 속 스프링 인형처럼 튀어나온다. 그런 순간에는 엄마가 바로 이런 느낌으로 살아가는 건가 하는 생각이 든다. - P293

이따금 나는 세상이 나와 같은 일정으로 돌아가지 않는다는 것을 잊는다. 모든 것이 죽어가는 게 아니라는 것, 혹은 죽어가더라도 해가 조금 비치고 일상적인 격려만 해주면 다시 살아날 거라는 것. 이따금 나는 생각한다, 난 이 나무보다 나이가 많고, 이 벤치보다 나이가 많고, 비보다 나이가 많다. 그렇긴 하지만. 난 비보다 나이가 많지는 않다. 비는 오랜 세월 동안 내렸고 내가 간 뒤에도 계속 내릴 것이다. - P336

아무 생각도 하지 않는 때가 있었고, 내 인생에 대해 생각한 때도 있었다. 최소한 삶을 꾸리기는 했다. 어떤 종류의 삶? 그냥 삶. 나는 살았다. 쉽지는 않았다. 그렇긴 하지만. 절대로 견딜 수 없는 것이란 거의 없다는 것을 깨달았다. - P340

수백 가지 일들이 인생을 바꿀 수 있다. 그리고 내가 편지를 받은 때부터 누가 됐든 그것을 보낸 사람을 만나러 갈 때까지 그 며칠 사이에, 무슨 일이든 일어날 수 있었다. - P351

그렇다고 내 삶이 거의 끝났다는 것은 아니다, 인생에 관해 가장 인상 깊은 점은 그 변화 능력이다. 어느 날 우리는 사람이었는데 다음날 그들은 우리가 개라고 한다. 처음에는 견디기 힘들지만, 한참 지나면 그것을 상실로 여기지 않는 법을 터득한다. 심지어 짜릿한 흥분을 느끼며 깨닫는 때도 있다. 변함없이 유지되는 것들이 아무리 적어도 우리는, 달리 적당한 표현이 없어서 ‘인간으로 살기’라고 칭하는 노력을 여간해서는 멈추지 않는다는 사실을. - P354

군인 남편을 기다리는 데 지친 그 아내 때문에 나는 살아남았다. 남자가 건초 밑에 아무것도 없다고 결론짓기 위해 한 일이라고는 건초를 쿡쿡 쑤셔보는 것뿐이었다. 그의 머릿속이 그렇게 꽉 차 있지 않았다면 나는 발각되었을 것이다. 이따금 그 여자는 어떻게 되었을까 궁금하다. 여자가 그 미지의 남자에게 키스하려고 처음으로 다가선 순간 그녀는 그를 향해 마음이 움직이는 것을, 혹은 그저 외로움으로부터 멀어지는 것을 느꼈을 것이고, 그것은 별것 아닌 사소한 일이 세상 건너편에서 천재지변을 일으키는 그런 상황이었는데, 다른 점이 있다면 이것은 재앙의 정반대였다는 것, 그녀가 생각 없이 베푼 은혜가 우연히 내 생명을 구했는데 그녀는 그것을 알지 못했으며 그 또한 사랑의 역사의 일부라는 것, 나는 그런 상상을 즐겨 한다. - P358

그리고 바로 그 순간 그녀를 보았다. 가슴이 지시를 내릴 때 머리가 무얼 할 수 있는지 생각하면 참 신기하다. 그녀는 내 기억과 달라 보였다. 그렇긴 하지만. 같았다. 눈, 그 눈을 보고 그녀를 알아보았다. 나는 생각했다, 천사는 바로 이렇게 오는구나. 그녀가 나를 가장 사랑했던 나이에 멈춰진 모습으로.
이게 무슨 일이람, 나는 말했다. 내가 가장 좋아하는 이름인데.
나는 말했다. "제 이름은 『사랑의 역사』라는 책에 나오는 모든 소녀의 이름에서 따왔어요." - P360

나는 세상에서 가장 늙은 할아버지의 눈을 들여다보며 열 살 때 사랑에 빠진 소년을 찾아보았다.
나는 말했다, "이름이 앨마인 소녀를 사랑한 적이 있나요?"
할아버지는 말이 없었다. 그의 입술이 떨렸다. 나는 그가 이해했다고 생각했고, 그래서 다시 물었다. "이름이 앨마 메러민스키인 소녀를 사랑한 적이 있나요?"
할아버지가 손을 내밀었다. 그는 내 팔을 두 번 두드렸다. 할아버지가 내게 무슨 말을 하려고 한다는 것은 알았지만 무엇인지는 알 수 없었다.
나는 말했다, "이름이 앨마 메러민스키이고 미국으로 떠난 소녀를 사랑한 적이 있나요?"
할아버지의 눈에 눈물이 가득 고였다, 그는 내 팔을 두 번 두드리더니 다시 두 번을 두드렸다.
나는 말했다, "아버지의 존재조차 몰랐다는 그 아들, 그 사람 이름이 아이작 모리츠인가요?" - P370

심장이 부풀어오르는 느낌이 들었다. 나는 생각했다, 난 이렇게 오래 살아왔어. 제발. 조금 더 산다고 큰일이 나지는 않잖아. 아이의 이름을 소리 내어 불러보고 싶었다, 내 사랑이 어떤 소소한 방식으로 그애에게 이름을 주었다는 것을 알았기 때문에 그 이름을 부르는 것은 기쁨이었을 것이다. 그렇긴 하지만. 말이 나오지 않았다. 잘못된 문장을 고르게 될까봐 두려웠다. 아이가 말했다, 아버지의 존재조차 몰랐다는 그 아들―나는 아이를 두 번 두드렸다. 그러고 나서 두 번 더 두드렸다. 아이가 내 손을 잡았다. 다른 쪽 손으로 두 번 두드렸다. 아이가 내 손가락을 꽉 쥐었다. 두 번 두드렸다. 아이가 머리를 내 어깨에 기댔다. 두 번 두드렸다. 아이가 한쪽 팔로 나를 감쌌다. 두 번 두드렸다. 아이가 양팔로 나를 감싸안았다. 나는 두드리기를 멈췄다.
앨마, 나는 말했다.
아이가 말했다, 네.
앨마, 나는 다시 말했다.
아이가 말했다, 네.
앨마, 나는 말했다.
아이가 나를 두 번 두드렸다. - P372

그는 혼자 죽었다, 누구에게든 전화를 걸기가 너무 창피해서.
혹은 앨마를 생각하다가 죽었다.
혹은 생각하지 않으려 하다가.
정말이지, 별로 말할 것은 없다.
그는 위대한 작가였다.
그는 사랑에 빠졌다.
그것이 그의 삶의 전부였다. - P37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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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원에 머문 날들 인문 서가에 꽂힌 작가들
W. G. 제발트 지음, 이경진 옮김 / 문학동네 / 2021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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낯가림이 심할 수밖에 없는 책이다. 제발트가 여기서 다루고 있는 작가들 대부분이 우리에겐 낯선 사람들이고, 그들이 쓴 작품 또한 접한 적이 없으니 이렇게 거리감이 느껴지는 건 당연한 것인지도 모른다. 만약 제발트가 이들의 작품을 하나씩 친절하게 소개해 줬더라면 우리가 접근하기에 좀 더 쉬웠을지 모르지만, 여기 있는 제발트의 글들은 이들의 작품을 차례대로 소개해 주기보다는 그에 대한 자신의 솔직한 감정과 생각을 파편적으로 서술하는 데 집중하고 있다.

 

비록 <전원에 머문 날들>이 제목에서 느껴지는 첫인상처럼 읽기 편한 책은 아니었지만, 책을 다 읽은 지금은 이 표현이 무엇보다 책의 내용을 잘 담고 있는 제목이란 생각이 든다.

 

책을 읽으면서 이해가 안 되는 부분은 다시 한 번 더 연달아 읽었고, 밑줄 친 문장들을 타이핑하면서 그 부분만 다시 한 번 더 읽어보기도 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독파에 올리면서 반복적으로 또 읽어보았는데, 처음엔 이해되지 않는 부분들도 횟수를 거듭할수록 점점 더 알아보기 쉽게 느껴져 재독하는 보람이 있었다. 이렇게 낯선 글들이 친근하게 다가오는 순간들이 있어 이 책을 끝까지 다 읽을 수 있었던 것 같다.

 

어쩌면 여기 나온 작품들을 제대로 접할 기회가 언젠가 생길지도 모르겠다. 만약 그렇게 된다면 그 작품들을 다 읽고 나서 다시 한 번 이 책을 읽어보려 한다. 그럼 지금과는 또 다른 깊이와 방향으로 제발트의 말들을 생각해 볼 수 있을 것이다.


헤벨의 산문에서 문장 끝에 카덴차와 음조의 변화를 주어 더없이 웅숭깊은 감정의 순간들을 드러내는 이런 기법을 통해 언어는 내면을 향해 전환되고, 우리는 우리의 팔에 닿는 이야기꾼의 손길을 느끼게 된다. (...) 헤벨은 그의 반음조 내린, 헛헛한 맛을 내며 끝나는 덧붙인 문장들 속에서 생의 연관으로부터 스스로 빠져나와 저기 드높은 망루에 오른다. 그곳은 장 파울Jean Paul이 남긴 유고 속한 메모에 따르면 인간들의 머나먼 축복의 땅을 멀리 내다볼 수 있는 곳으로, 또다른 격언에 따르면 아무도 가본 적이 없다는 그 고향이다. - P27

나는 하지만 루소의 방에서 과거의 시간 속으로 되돌아간 것만 같았다. (...) 이따금씩 호수를 스치며 불어오는 산들바람에 커다란 포플러나무 잎사귀들이 사부작거릴 뿐, 미동하는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짙어지는 어스름 속으로 한 발씩 내디딜 때마다 고운 자갈이 깔린 길은 점점 더 환해졌다. 나는 울타리가 쳐진 목초지와 은빛의 고요한 귀리밭, 포도밭과 막사를 지나 그새 칠흑같이 컴컴해진 너도밤나무 숲의 끝자락까지 올랐다. 산비탈에 서자 호숫가 저쪽에서 하나둘씩 불이 밝혀지는 모습이 보였다. 어둠이 호수 자체에서 부상하는 것 같았다. - P56

루소가 이후 『고독한 산책자의 몽상』에 쓰고 있는 것처럼 "숲속 그늘 속에서는 내가 잊히고, 자유롭고, 그 누구의 방해도 받지 않는 것처럼 느껴진다. 마치 모든 적이 다 사라진 것처럼." - P60

발레산은 산 밑까지 내려온 텁텁한 대기의 베일이 벗겨진 풍경으로 묘사되는데, 그 풍경은 어떤 초자연적인 성격을 지녀서 그곳에 있으면 모든 것을, 자기 자신까지도, 또 자신이 어디에 있는지까지도 금세 잊게 되는 곳으로 그려진다. 루소의 글에 나타나는 투명성이라는 주제를 파고든 장 스타로뱅스키는 "완벽히 맑은 풍경의 순간이란 개인적 실존이 스스로의 한계지점에서 해소되고 대기 속으로 꿈꾸듯 흔적도 없이 사라지는 순간이기도 하다"라고 쓴다. 스타로뱅스키에 따르면, 스스로를 남김없이 투명하게 만들기는 현대적 자서전 문학의 창시자가 품은 최고의 야심이었다. 수정水晶은 이러한 야망의 상징으로, 스타로뱅스키에 따르면 우리는 "그것이 순수한 상태에 있는 것인지, 아니면 정반대로 딱딱하게 굳은 영혼인 것인지" 알지 못한다. - P72

행복과 향락을 약속하는 경제적 번영의 이면에는 사람들이 그토록 쉽게 단념해버리는 자유가 있다. 그리고 또한 노동이 있고, 궁핍과 빈곤이 있으며, 어둠이 있다. 켈러의 세계에서는 그와 같은 유령들이 흔하게 발견된다. - P116

"나는 숲을 뚫고 지나 경작지와 목장을 걸었고, 길과 멀리 떨어진 곳에서 희미한 윤곽이나 어렴풋한 빛이 보이는 마을을 지나갔다. 자정 무렵이 되어 꽤나 널찍한 마을 공유지를 지날 때는 깊은 정적이 대지를 감쌌다. 서서히 움직이는 별들이 가득한 밤하늘은 보이지 않는 철새 떼가 공중에서 날갯소리와 함께 울며 날아갔기 때문에 더욱 활기를 띠었다."
켈러의 산문이 모든 살아 있는 생명에게 무조건적으로 우호적인 태도를 취하기는 하지만, 그래도 특히나 영원의 테두리를 더듬어 나아갈 때야말로 자신의 가장 기막힌 정점에 도달한다는 사실이 바로 이 부분에서 드러난다. 한 문장, 한 문장 우리 앞에 펼쳐지는 그의 산문의 아름다운 궤도를 따라 움직여본 사람은 그 산문이 어느 방향으로나 얼마나 그윽한 심연으로 떨어지는지, 또 어떻게 한낮의 햇살이 저 멀리 바깥에서 드리워지는 그림자에 가려 흐릿해지다가 죽음의 암시와 더불어 사라지게 되는지 번번이 전율 속에서 느끼게 된다. - P128

로베르트 발저의 작품이 아무리 박사 학위 논문의 대상이 될 만하다고 해도 어떤 체계적인 분석으로도 포착하기 어렵다는 마르틴 발저의 주장은 이런 점에서 정말로 옳은 지적이다. 그토록 그늘 속에 잠겨 있으면서도 펼치는 페이지마다 더없이 다정스러운 빛을 뿜어내는 글을 쓰는 작가를 어떻게 이해해야 할까? 또한 순수한 절망에서 유머러스한 이야기를 써내려가고, 항상 같은 이야기를 쓰지만 절대로 반복하는 것은 아니며, 미세한 부분에서 예리함을 발휘하는 자신의 생각에 스스로 놀라워하고, 지상에 확고하게 발을 디디고 있지만 공중에서 주저 없이 자신을 놓아버리는 그런 작가, 읽는 도중에 벌써 해체되기 시작해 몇 시간 뒤에는 글 속의 하루살이 같은 인물과 사건, 사물 들이 기억에서 가물가물해지는 산문을 쓰는 작가를 어떻게 이해해야 할까. - P153

"네 바지 좀 봐. 밑이 다 너덜너덜해졌잖아. 물론 나도 알아. 바지는 바지일 뿐이지. 하지만 바지는 영혼과 똑같은 상태에 있어야 하는 거야. 다 해진 누더기 바지를 입는 건 그 사람이 얼마나 게으른지 증명해주니까. 그 게으름은 영혼에서 오는 거야. 그러니까 너도 누더기 영혼을 가진 거야." 이와 같은 비난은 발저의 누나 리자가 발저에게 이따금 가했던 질책에서 따온 것이리라. 하지만 마지막의 천재적인 표현, 즉 누더기 영혼에 대한 부분은 자신의 내면이 얼마나 심각한 상황인지 의식하고 있는 서술자의 독창적이고 기발한 표현일 것이다. 당시 발저는 처음부터 그의 삶에 드리워져 있었던 그림자로부터, 그리고 앞으로도 걷잡을 수 없이 길어지기만 할 거라는 예감이 일찌감치 들었던 그 그림자로부터 글쓰기를 통해서, 무겁게 짓누르는 것을 거의 무게가 나가지 않는 것으로 만듦으로써 벗어날 수 있으리라 희망했으리라. 그의 이상은 중력을 극복하는 것이었다. - P162

"그토록 다감하고 또 탁월하게 느끼는 한 인간이 동시에 그토록 감정이 빈곤할 수 있을까?" 이에 대한 대답은 동화 속에서처럼 인생에서도 순전히 가난과 공포 탓에 감정의 여유가 없는 사람들도 있다는 것이리라. (...) 발저가 일종의 철두철미한 동화와 공감을 통해서 그 안에 영혼을 불어넣는 방식은 어쩌면, 가장 하찮은 것들에서 입증되는 감정이야말로 결국 가장 처절하다는 것을 드러내는 듯하다. (...) 여기에서 느껴지는 강렬한 감정은, 사소하다는 듯한 어투로 재와 바늘, 연필, 성냥개비를 논하는 이 대목이 실은 작가 자신의 순교에 관한 것이라는 사실에서 기원한다. 이 네 가지 사물들은 임의적으로 나열된 것이 아니라 작가의 고문도구 내지는 자신의 분신을 위해 필요한 도구들, 그리고 그 불이 꺼지면 남는 사물인 것이다. - P170

"내 등은 굽었다"라고, 동명의 산문에서 작가는 보고한다. "머리에서 종이까지 먼 길을 가는 단 한 개의 단어를 따라가느라 몇 시간 내내 몸을 굽히고 앉아 있으니까." 이 작업이 자신을 행복하게 하지 않지만 불행하게 하지도 않는다고 그는 덧붙인다. - P172

내가 처음으로 읽은 로베르트 발저의 산문은 클라이스트가 스위스 툰Thun에서 잠시 살았던 시절에 대한 것으로, 자기 자신과 글쓰기에 대해서 절망하는 한 인간의 고통을 황홀하리만치 아름다운 주변 풍경과 함께 다루는 글이다. "클라이스트는 어느 교회 안뜰의 담장에 앉아 있다. 사위가 온통 습하고 후텁지근하다. 그는 가슴이 답답하여 윗옷 단추를 푼다. 저 아래에는 전능하신 하느님의 손에 의해 아래로 던져진 것 같은 노랗고 붉게 타오르는 호수가 있다. 생명을 얻은 알프스산은 경이로운 몸짓으로 이마를 물속에 담그고 있다." 그후 나는 몇 쪽 되지 않는 이 이야기에 거듭해서 빠져들었고, 이 작품을 시작으로 발저의 나머지 작품들을 답사하는 짧고 긴 여정들을 떠나곤 했다. - P185

중요한 것은 맹렬한 노동의 동물인 우리와 종속적이고 의존적인 관계를 맺고 있는 사물들의 자율적인 현존이다. 그런데 그 사물들은 (보통은) 우리보다 더 오래 살아남으므로, 우리가 그것들에 관해 아는 바보다 그것들이 우리에 관해 아는 바가 더 많다. 그 사물들은 우리와 함께한 경험을 지니고 다니며―사실상―우리 자신의 역사가 쓰인 우리 앞에 펼쳐진 책 그 자체이다. - P198

인생은, 운명이 사람을 말 대신 잡고 두는/ 밤과 낮이 격자무늬를 이루는 체스판이다./ 이쪽으로 저쪽으로 움직여 잡고, 죽이고/ 하나씩 하나씩 상자로 돌려보낸다.
얀 페터 트리프의 그림들에서 죽음이라는 주제는 전적으로 프루스트의 규정을 따라 덧없는 순간들과 성좌들이 시간의 흐름에서 벗어남으로써 중지되는, 지나가고 있고 지나갔으며 잃어버린 시간의 주제와 연결된다. 빨간 장갑 한 짝, 다 타버린 성냥개비, 도마 위의 작은 양파 한 개와 같은 사물들은 자신 안에 모든 시간을 품고 있으며 화가의 헌신적인 노고를 통해 영원히 구원된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그 사물들을 감싸고 있는 기억의 아우라는 사물들에 멜랑콜리의 결정을 이루는 일종의 추모Andenken의 성격을 부여한다. - P208

놓쳐버린 시간과 기억의 고통, 죽음의 형상이 자기 자신의 삶에서 가지고 온 인용으로서 여기 추모함 속에 모아져 있다. 추모란 인용과 근본적으로 다를 바가 전혀 없지 않던가. 텍스트에 (또는 이미지에) 집어넣은 인용은 움베르토 에코가 썼듯이 다른 텍스트와 이미지 들에 대한 우리의 앎과 더불어 세계에 대한 우리의 앎을 점검할 수밖에 없게 만든다. 이것은 다시금 시간을 요청한다. 우리는 그러한 시간을 들임으로써 이야기된 시간과 문화적 시간 속으로 진입한다. - P2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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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년 8개월 28일 밤
살만 루슈디 지음, 김진준 옮김 / 문학동네 / 2020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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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 책을 펼쳤을 땐 조금 당황스러웠던 게 사실이다. 내가 좋아할 만한 소재도 아니었고, 초반부터 생소한 이름들이 나오면서 복잡하게 이야기가 전개되어 앞으로 나아가기가 낯설고 어렵게만 느껴졌다. 하지만 차근차근 책장을 넘기다 보니 이야기의 흐름을 잡을 수 있었고 중, 후반부에 가서는 상대적으로 편안하게 책을 읽을 수 있었다.

 

이 책에서는 이성과 비이성의 대립을 반영하는 이븐루시드와 가잘리의 논쟁두니아가 이끄는 제로니모 무리와 거마 주무루드가 이끄는 마족 무리의 대결로 펼쳐진다. 인간과 마계의 전쟁이 시작된 거다. 그리고 그 속에서 펼쳐지는 수많은 인물들과 마족들의 개인사와 역사는 이 책의 내용을 더 풍부하게 만든다. 개인적으로는 이븐루시드와 가잘리가 나누었던 티끌과 티끌의 논쟁이 가장 기억에 남는다. 또 이야기 기생충이 나오는 우냐자족 이야기도 상당히 흥미로웠다.

 

솔직히 취향에서 많이 벗어난 책이라 독파가 아니었다면 찾아 읽었을 것 같진 않다. 하지만 읽을 때도 다 읽고 나서도 이 책으로 파생되는 이야깃거리는 많을 것 같다



어떤 공동체든 그곳이 어떤 곳인지, 그 안에서 어떤 일이 벌어지는지, 한마디로 어떤 상황인지 합의조차 할 수 없다면 이미 위기에 빠진 공동체입니다. - P126

왜 하필 나냐, 이 질문을 자제하기는 쉽지 않았지만 그는 이미 어떤 일이든 원인은 있겠으나 반드시 무슨 목적이 있으란 법은 없다는 고통스러운 진리를 깨닫기 시작한 터였다. 설령 어떤 일이 어쩌다 일어났는지 알아내더라도-어떻게라는 질문의 해답을 찾더라도-왜라는 질문의 해답에 한 걸음 더 다가간 것은 아니다. 질병과 같은 자연의 이상 현상은 동기가 무엇이냐는 물음에 응답하지 않는다. - P156

우리는 누구나 이야기 속에 갇혀 있어요. (...) 모든 사람은 자기만의 이야기 속에 갇힌 수감자 신세, 모든 가족은 가족사의 포로, 모든 공동체는 또 그들만의 이야기 속에서 꼼짝도 할 수 없고, 모든 민족은 자신들이 기억하는 역사의 피해자가 된다. 세계 곳곳에서 이야기끼리 맞붙어 전쟁을 벌이는데, 양립할 수 없는 둘 이상의 이야기가 같은 공간을 차지하려고, 말하자면 같은 지면을 차지하려고 싸우기 때문이다. - P171

이게 우리의 비극이죠. 우리는 온갖 허구 때문에 죽어가지만 어쩌면 그런 허구가 다 사라져도 죽으리라는 것. - P173

진정한 현실이란 대부분의 사람들이 믿는 그것과는 전혀 다르다는 사실을 그는 잘 안다. 세상은 평범한 시민이 감당할 수 없을 만큼 거칠고 사납고 기이하다. 평범한 시민은 진실을 외면하고 베일로 눈을 가린 채 무지한 상태로 살아간다. 베일을 벗고 세상을 바라보면 두려워지고, 확신이 무너지고, 기가 꺾이고, 결국 술이나 종교로 도피하게 된다. 이 세상은 원래 그대로가 아니라 그가 만들어놓은 세상이다. 그는 스스로 구상한 세상에 살고, 이 세상을 잘 다루고, 이 세상을 움직이는 조종간이나 엔진, 끄나풀이나 열쇠가 무엇인지, 어떤 단추는 눌러야 하고 또 어떤 단추는 누르지 말아야 하는지 안다. 그가 창조하고 조종하는 진짜 세상이니까. 험한 세상이지만 상관없다. - P196

이븐루시드가 가잘리에게, 티끌이 티끌에게 말했다. "비이성은 비이성인 까닭에 자멸하기 마련이오. 이성이 잠깐 토막잠을 잘 때도 있지만 비이성은 아예 혼수상태에 빠질 때가 많으니까. 결국 비이성은 영원히 꿈속에 갇혀버리고 마침내 이성이 승리할 거요."
그러자 가잘리가 말했다. "인간이 꿈꾸는 세상은 자기가 만들고 싶은 세상일세." - P210

활동적인 사람이(혹은 마족이) 마침내 사색을 통해 스스로 나아지기로 마음먹었다면 그를 경계해야 한다. 어설픈 사색은 위험하기 때문이다. - P211

이븐루시드는 두니아의 몸을 어루만질 때마다 그 아름다움을 지나치게 찬양해 짜증이 날 정도였다. 내 생각은 칭찬할 가치가 없다고 보는 거예요? 그러자 그는 정신과 육체는 하나라고 대답했다. 정신은 인체의 틀이므로 인체의 모든 활동을 좌우하는데 그중 하나가 생각이다. 따라서 육체를 칭찬하는 것은 그것을 지배하는 정신을 칭찬하는 일이기도 하다. 아리스토텔레스도 그렇게 말했고 이븐루시드 자신도 동의한다면서, 그렇기 때문에 인간의 의식이 육체보다 오래 살아남는다는 말은 믿기 어렵다는 신성모독적인 말을 그녀의 귓가에 속삭이기도 했다. 정신이 육체에 깃든 것이라면 육체 없이는 의미가 없을 테니까. 그녀는 아리스토텔레스와 논쟁을 벌이고 싶지 않아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이븐루시드는 플라톤은 달랐다고 인정했다. 플라톤은 정신이 새처럼 육체 안에 갇혀 있으며 그 새장을 벗어나야 비로소 자유롭게 날아오를 수 있다고 믿었다. - P217

우리는 수없이 되풀이되며 입에서 귀로, 귀에서 입으로, 그렇게 우리에게 전해진 이야기를 하는 중이다. (...) 이야기는 수많은 사람이 몇 번이고 되풀이하는 경험담이지만 때로는 한 사람의 작품으로 여기기도 한다. 호메로스, 발미키, 비야사, 셰에라자드. 그러나 우리는 우리를 간단히 ‘우리’라고 칭할 뿐이다. ‘우리’는 자신이 어떤 생물인지 이해하기 위해 스스로에게 이야기를 들려주는 생물이다. 우리에게 전해진 이야기는 시간과 공간을 벗어나면서 처음에 지녔던 특수성을 잃어버리는 대신에 본질적 순수성을 얻어 이야기 자체만 오롯이 남는다. 그리고 더 나아가, 혹은 우리가 선호하는 표현으로는 그러한 이유로, 비록 그 이유가 무엇인지 무엇이었는지 우리 스스로는 알 수 없지만 비로소 우리가 아는 이야기가 되고, 우리가 이해하는 이야기가 되고, 우리에 대한 이야기가 된다. 우리의 현재에 대한 이야기, 어쩌면 우리의 미래에 대한 이야기라고 해야 할지도 모른다. - P271

아이라가이라는 궁금했습니다. 도대체 어떤 기계이기에 이렇게 온 나라가 매달려 만들어야 할까? 뱃사람은 이 기계 속에 배를 통째로 밀어넣고 농부는 쟁기를 집어넣어야 했습니다. 기계를 만드는 거대한 공장에서 이리저리 끌려다니는 동안 그는 기계 속에 호텔을 짓는 호텔 경영자도 보고 영화촬영용 카메라와 방직기도 보았지만 호텔에는 손님도 없고 카메라에는 필름도 없고 방직기에는 헝겊 쪼가리도 없었습니다. 기계가 커질수록 의문도 점점 커져만 갔습니다. 여기저기서 기계를 만들 공간을 마련하느라 동네를 송두리째 밀어버렸는데, 아이라가이라가 보기에는 기계와 나라가 이미 동의어가 되어버린 듯했습니다. 이제 나라 안에는 그 기계 말고는 남은 공간이 전혀 없었으니까요. - P276

그게 바로 나야! 그녀가 외쳤다. 나야말로 아무런 목적도 없는, 고작 영광처럼 허무맹랑한 목적을 내세운 기계를 만드느라 고생고생하며 기나긴 세월을 허비했어. 그런 노력이 자멸의 길인 줄도 모르고 내가 만들려 했던 기계는 바로 내 삶이고, 기계 따위로는 결코 이룰 수 없는 목적이 바로 아버지의 사랑이라는 영광을 차지하는 일이었어. 나야말로, 대장장이나 선생이나 철학자가 아니라 나야말로 질병과 건강의 차이를, 전염병과 치료법의 차이를 깨닫지 못했던 거야. 너무 비참해서 나는 아버지가 딸을 멸시하는 게 자연스러운 현상이라고, 건강한 상태라고, 오히려 내가 여자로 태어난 게 재앙이라고 믿었어. 그런데 이제야 진실이 드러난 거야. 아버지는 탈이 나셨고 나는 멀쩡해. 아버지를 중독시킨 독이 뭐냐고? 아버지 자신이겠지. - P285

의미란 여러 조각이 없어져버린 퍼즐과 같아서 인간이 친밀도를 바탕으로, 즉 자기가 잘 아는 파편들을 가지고 형성해가는 것이다. - P286

인간은 시계의 포로다. 주어진 시간이 지독하게 짧기 때문이다. 인간은 구름의 그림자처럼 빠르게 움직이다가 바람과 함께 사라진다. - P288

험담이란 말로 빚은 진흙 같은 것, 진흙이 으레 그렇듯이 찰싹 달라붙기 때문이다. - P296

이것은 우리 인류의 과거에 대한 이야기인데, 까마득한 옛날의 이야기라서 때로는 이것이 역사인지 신화인지를 놓고 논쟁이 벌어진다. 어떤 이들은 지어낸 이야기라고 말하기도 한다. 그러나 한 가지만은 누구나 동의하는데, 과거에 대한 이야기가 곧 현재에 대한 이야기라는 사실이다. 환상적인 이야기, 상상을 다룬 이야기는 곧 현실을 이야기하는 다른 방법이기도 하다. 만약 그렇지 않다면 이야기하는 일 자체가 무의미할 텐데, 일상생활에서 우리는 무의미한 일을 가급적 피하려고 노력하기 마련이다.
우리가 역사를 탐구하고 서술할 때 자문해보는 질문이 바로 이거다. 거기서 여기까지 어떻게 왔을까? - P304

역사는 얼마나 불완전한가! 반쪽뿐인 진실, 무지, 속임수, 가짜 단서, 착오, 거짓말 등의 오리무중 어딘가에 진실이 묻혀 있으련만 우리는 믿음을 잃어버리기 쉽고, 그래서 다 허깨비다, 진실 따위는 없다, 모든 것은 상대적이다, 누군가의 절대적 신념이 또 누군가에게는 망언에 불과하다, 그렇게 말하기 쉽다. 그러나 우리는 진실이란 한낱 상대주의 궤변가의 주장만 듣고 포기하기에는 너무 중요한 것이라고 강력히, 정말 강력히 강조한다. 진실은 반드시 존재한다. - P322

정보의 한계를 솔직히 인정하면서 이미 아는 사실만 이야기할 때 비로소 대중은 더 신뢰하기 마련이다. - P323

그는 자신의 삶이 얼마나 변했는지 서서히 깨닫는 중이었다. 공중부양을 겪었다는 것까지는 충분히 알고 있었다. 그런 상황도 견뎌내고 받아들였다. 하강은 무심결에 해낸 일로 떠오를 때만큼이나 뜻밖이었지만 자신의 내면에서 일찍이 상상조차 못했던 비밀 자아가 눈을 뜬 결과라는 것도 이해했다. 그러나 지상으로 다시 내려오는 데 어쩌면 인간적 측면도 함께 작용했는지 모른다. 아무래도 잘못했다는, 자기가 잘못한 탓이라는 생각을 극복했기 때문이다. 허공에 떠 있던 외로운 시간 동안 그는 일생의 온갖 어두운 기억을 직시했다. 예전의 인생과 결별하는 아픔, 그를 외면하고 그 역시 외면했던 인생행로에 대한 번뇌. 그는 이 깊은 상처를 인정하고 자신에게 보여줌으로써 고통보다 강해졌다. 그리하여 중력을 되찾아 지상으로 내려왔다. 최초 감염자가 질병의 근원으로 끝나지 않고 치유의 근원이 되었다. - P326

사람이 죽음 근처에 가보고 나면 사랑의 용량이 커진다. - P363

인식의 문이 활짝 열리는 순간, 마족의 사악하고 극악무도한 모습은 곧 인간의 극악무도하고 사악한 일면을 비춰주는 거울과 다름없음을 깨달았고, 인간의 본성에도 똑같은 무분별이 있어 무자비하고 괴팍하고 악의적이고 잔인함을, 마족과의 싸움은 인간의 마음속에서 벌어지는 싸움과 닮았음을, 따라서 마족은 현실인 동시에 추상적 개념임을, 그들이 하계로 내려오면서 이 세상에서 무엇을 근절해야 하는지 보여주었음을 깨달았는데, 그것은 바로 비이성이었고, 비이성이야말로 인간의 마음속에 도사리는 흑마족의 이름이었고, 그 사실을 깨닫는 순간 테리사 사카의 자기혐오를 이해할 수 있었고, 그녀가 이미 알듯이 제로니모 자신도 내면에 깃든 마족 자아를 제거해야 한다는 것을, 마족뿐만 아니라 인간 내면의 무분별도 물리쳐야 비로소 이성의 시대가 시작된다는 것을 알았다. - P397

분노는 제아무리 정당하더라도 결국 분노한 자를 망가뜨리기 마련이다. 우리는 사랑하는 것으로 인해 새로 태어나듯이 증오하는 것으로 인해 몰락하고 파멸한다. - P4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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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어 라이프 (무선) 문학동네 세계문학전집 113
앨리스 먼로 지음, 정연희 옮김 / 문학동네 / 2013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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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어 라이프. 책을 읽기 전에도 다 읽은 후에도 참 다정한 제목이란 생각이 든다. 이 책은 작가의 자전적 이야기를 포함해서 총 14개의 단편들을 담고 있는데, 어떻게 이렇게 짧은 분량으로 인간의 깊은 내면을 모두 담아낼 수 있었는지 읽는 내내 감탄스러웠다.

 

여기 나오는 이들은 모두 평범한 이들이지만 그 속에 담긴 인간 본연의 모습은 날카롭고 서늘하다. 그래서 앨리스 먼로가 그리는 인간들이 우리와 더 가깝게 느껴지는 건지도 모른다.

 

갈피를 잡지 못하고 낯선 곳을 서성거릴 때, 어두운 감정들에 짓눌려 숨이 막힐 때, “사람들은 이따금 그런 생각을 한단다.”라고 말하던 목소리를 떠올려본다. “중요한 건 행복해지는 거야. (...) 뭐가 어떻든 간에, 그냥 그러려고 해봐. 넌 할 수 있어. 하다보면 점점 쉬워질 거야. 주변 상황과는 아무 상관없어. 그게 얼마나 좋은 건지 넌 모를 거야. 모든 걸 받아들이면 비극은 사라져. 혹은 가벼워지지. 어쨌든 그러면 그저 그 자리에서 편하게 세상을 살아갈 수 있게 돼.”라고 말하던 또 다른 목소리도 떠올려본다. 그럼 그들을 통해 전하려고 하는 앨리스 먼로의 따뜻한 위로를 느낄 수 있을 것이다.

 

사람들은 말한다. 어떤 일들은 용서받을 수 없다고, 혹은 우리 자신을 결코 용서할 수 없다고. 하지만 우리는 용서한다. 언제나 그런다. (416p) 



흐름을 따라가는 것. 자신을 내맡기는 것. 어떤 사람들은 자신을 내맡기지만 어떤 사람들은 그러지 못했다. 머리의 안쪽과 바깥쪽 사이에 세워진 벽이 무너져야 했다. 진실함에는 그것이 요구 되었다. - P29

내 가족에게는 무슨 일이 있었는지 절대 말할 수 없을 것 같아요. 뭐든 어중간한 진실은 그들을 죽일 수 있으니까요. - P31

객차들 사이에는 다른 객차로 넘어갈 수 있는, 각 객차들을 연결하는 짧은 통로가 있었다. 그곳에 서면 기차의 움직임이 갑작스럽고 무섭게 느껴졌다. 뒤에도 무거운 문이, 앞에도 무거운 문이 있었고, 통로 양쪽에는 덜컹거리는 금속판들이 있었다. 그 금속판들이 기차가 정차할 때 내려지는 계단을 가려주었다.
사람들은 그곳을 통과할 때 늘 걸음을 서둘렀다. 덜컹대는 소리와 흔들림은, 결국 세상 모든 것이 그리 필연적인 방식으로 만들어지는 게 아니라는 사실을 다시금 일깨워주었다. 사람들은 무심한 듯, 하지만 다급하게 덜컹대는 소리와 흔들림을 통과한다. - P35

객차들 사이 시끄러운 공간에 망연히 앉아 있는 케이티. 울지도 않고, 칭얼거리지도 않고, 어떤 설명도 희망도 없이 그곳에 영원히 앉아 있어야 하는 것처럼. 묘하게 표정이 없는 눈동자와 살짝 벌어진 입, 그러다 아이는 자기가 구조되었다는 사실을 깨닫고 울기 시작한다. 그제야 아이는 자기 세상을 되찾는다. 괴로워하고 불평할 권리를 되찾는다. - P37

그들 중 누구도 어떤 종파의 일원이나 엄격하고 까다로운 사람들로 보이지는 않았다.
하지만 누군가를 잠깐 보고 어떻게 그런 것을 장담할 수 있겠는가? - P37

사랑에 관한 한 정말로 변하는 것은 없다. - P88

그녀는 줄곧 존재해왔지만 이제는 그렇지 않았다. 사라졌다. 존재한 적조차 없는 것처럼. 사람들은 현명하게 잘 처리하면 이 충격적인 사실을 극복할 수 있을 것처럼 부산스레 돌아다녔다. 그 역시 관습을 따르며 서명하라는 곳에 서명을 했고, 그들의 말대로 유해를 처리하기 위한 조치를 취했다.
‘유해遺骸’라니 얼마나 굉장한 말인가. 찬장에 남겨져 켜켜이 그을음을 묻히며 말라간 무언가처럼. - P117

"중요한 건 행복해지는 거야." 그가 말했다. "뭐가 어떻든 간에, 그냥 그러려고 해봐. 넌 할 수 있어. 하다보면 점점 쉬워질 거야. 주변 상황과는 아무 상관 없어. 그게 얼마나 좋은 건지 넌 모를 거야. 모든 걸 받아들이면 비극은 사라져. 혹은 가벼워지지. 어쨌든 그러면 그저 그 자리에서 편하게 세상을 살아갈 수 있게 돼."
이제, 안녕.
그가 어떤 의미로 그 말을 했는지 나는 안다. 그러는 것이 정말로 옳다. 하지만 내 마음속에서 카로는 여전히 물을 향해 달려가 의기양양하게 자기 몸을 던지고, 나는 여전히 그것에 붙들려 있다. 그녀가 무슨 말이라도 해주기를 기다리면서, 첨벙 소리가 들리기를 기다리면서. - P142

무슨 일이든 잘 풀리지 않는 사람들이 있다. 어떻게 설명해야 할까? 그러니까, 세상 모든 일이 그에게 불리한 쪽으로만 일어나는 그런 사람들 말이다. 이런 사람들은 삼진 아웃으로 모자라 이십진 아웃까지 당한다. 하지만 결국 나중에는 나아진다. (...) 의지만 있다면 어떤 일도 좋게 만들 수 있다. - P175

무엇보다 끔찍했던 것은 캐나다와 뉴펀들랜드 사이, 우리 해안과 가까운 바다에서 민간인을 태운 페리가 침몰한 것이었다.
그날 밤 나는 잠을 이룰 수 없어 타운의 거리를 배회했다. 바다 밑바닥으로 가라앉은 사람들이 자꾸 생각났다. 뜨개질을 하고 있던, 내 어머니만큼 나이가 들었을 노부인들, 치통을 앓는 꼬마. 죽기 전 마지막 삼십 분을 뱃멀미로 툴툴거리느라 다 써버렸을 사람들. 나는 한편으로는 공포와 한편으로는-최대한 비슷하게 묘사한다면-서늘한 흥분이 뒤섞인 아주 묘한 감정에 사로잡혔다. 순식간에 모든 것이 날아가고, 한순간에 나 같은 사람들이나 나보다 더 못한 사람들이나 그들 같은 사람들이나 모두 평등-이렇게 말해야겠다-평등해진다. - P183

지금 생각하면 내 학창 시절은 내가-내 얼굴이-어떻게 보이는지에 익숙해지다가, 다른 사람들이 그것을 어떻게 생각하는지에 익숙해지다가 다 가버린 것 같다. 내가 새로운 사람들과 끊임없이 부대끼지 않고도 이곳에서 살아남아 생계를 유지할 수 있음을 알게 된 것, 그리고 이곳에서 용케 버텨낸 것을 나는 작은 승리라고 생각한다. - P189

그때 나는 생각했다. 오래 살다보면 많은 문제들이 그냥 해결된다고. 선택된 사람들만 들어가는 모임에도 들어갈 수 있게 된다. 어떤 장애를 가지고 살았건 그 시기에 이르면 많은 문제들이 상당수 해결된다. 모두의 얼굴이 고통을 경험했다. 당신의 얼굴만이 아니라. - P197

내가 그해의 문 앞에 서 있는 남자에게 말했다.
"미지의 세계로 안전하게 들어갈 수 있도록 내게 빛을 주세요."
그러자 그가 대답했다. "어둠으로 나가 신의 손을 잡으시오. 그것이 그대에게 빛보다 더 좋고 알려진 길보다 더 안전할 것이오." - P276

모든 것은 가두어 잠가버릴 수 있다. 그러는 데 필요한 것은 단지 결심뿐이다. - P278

내게 일어난 일은 드문 일은 아닌 것 같았다. 책에 없다면 진짜 인생에는 있을 것이다. 그 문제를 다루는 상투적인 방법이 있을 것이다. 틀림없이 있어야 한다. 이렇게 걷는 것도 물론 한 방법이었다. 하지만 걸음을 멈춰야 할 때가 있었다. 이런 규모의 타운에서조차 자동차와 빨간 신호등 때문에 멈춰야 했다. 가다 서다 하며 어설프게 돌아다니는 사람들도 있었고, 내가 가르쳤던 아이들처럼 떼지어 돌아다니는 학생들도 있었다. 왜 그렇게 많이 돌아다니는지, 왜 그렇게 소리를 질러대며 바보같이 구는지, 쓸데없고 불필요한 존재들이 넘쳐났다. 어느 곳에나 노골적인 모욕이 흘러넘쳤다.
상점과 간판처럼, 섰다 출발하는 자동차 소음도 모욕이었다. 어디에서나 이것이 삶이라고 외쳐댔다. 우리에게 그것이 필요하다는 듯이, 더 겪어봐야 한다는 듯이. - P323

"우리는 싸울 여력이 없어." 그가 말했다.
참으로 그렇다. 나는 우리가 얼마나 늙었는지 잊고 있었다. 모든 것을 잊고 있었다. 생각해보면 세상에는 늘 괴로워할 것과 불평할 것이 존재한다. - P330

우리는 스스로가 꽤 건강하다고 생각하지만 어느 순간 그냥 죽을 수도 있다. - P330

무언가를 다 하고, 끝내고, 마무리를 할 때 들리는 일상적인 소음이 사라지고 나면 집은 낯선 장소가 되어갔다. 그 안에서 사는 사람들과 그들의 생활에 영향을 미치는 일들이 잠잠히 가라앉고, 그들 주위에 있는 모든 것의 쓰임새가 서서히 줄어들었다. 가구들도 모두 그 자체의 세계로 물러났다. 더는 누군가의 관심을 받기 위해 그곳에 존재하는 것이 아니었다.
그것을 해방이라고 생각할지도 모르겠다. 처음에는 아마 그랬을 것이다. 자유. 낯선 느낌. 하지만 내가 잠들지 못하는 날이 많아지고 결국 새벽이 될 때까지 잠을 이루지 못하자 나는 점점 불안해졌다. - P360

서쪽으로는, 길게 휘감아 도는 강과 들판과 나무와 일몰이 가로막히는 것 없이 다 보였다. 사람들과 얽혀들 일도 없고, 일상적인 생활도 영원히 없을 것 같았다. - P363

사람들은 어떤 생각들을 하지만 그것들은 이내 사라진다. 살다보면 그렇게 된다.
요즘에는 부모 노릇을 오래 하다보면 실수인 줄 아는 실수뿐 아니라 딱히 실수인 줄 모르는 그런 실수도 하게 된다는 사실을 깨닫는다. 그러면 내심 얼마간 초라해지고 이따금 스스로에게 혐오감을 느끼기도 한다. - P369

나는 페기를 울린 일이 무엇이었다고 생각했을까? 그때는 그 질문에 큰 흥미를 느끼지 않았다. 나는 용감하지 않았다. 처음 다녔던 학교에서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누군가가 나를 쫓아와 돌멩이로 맞히면 나는 울었다. 타운의 학교에서 선생님이 엉망진창으로 지저분한 내 책상을 웃음거리로 만들려고 나만 혼자 교실 앞으로 불러냈을 때도 울었다. 선생님이 그 문제로 어머니에게 전화를 걸어서, 어머니가 전화를 끊은 뒤 내가 자랑스러운 딸이 아니라는 사실에 참담한 심정을 견디며 흐느꼈을 때도 나는 울었다. 어떤 사람들은 태어날 때부터 용감하고 어떤 사람들은 그렇지 않은 것 같다. 누군가 페기에게 무슨 말을 했을 테고, 페기도 나와 마찬가지로 뻔뻔하지 않아서 훌쩍였을 것이다. - P387

이 나라에 폭격 훈련을 받으러 왔던, 폭격 도중 대부분 죽음을 맞게 될 그 청년들은 아마도 콘월이나 켄트, 헐, 스코틀랜드의 평범한 억양으로 말했을 것이다. 하지만 내게는 그들이 입을 열면 곧바로 축복의 말이 쏟아질 것처럼 느껴졌다. 그들 앞에 놓인 미래가 재앙뿐이라는 사실, 평범한 그들의 생명이 창밖으로 날아가 땅에 부딪혀 박살날 거라는 사실은 내게 떠오르지 않았다. 나는 그저 그 축복에 대해, 그런 축복을 받는다면 얼마나 근사할지에 대해, 그럴 가치가 없는 페기라는 여자가 그런 행운을 누린다는 것이 얼마나 이상한지에 대해 생각했다.
(...) 그리고 그들이 아직 완전히 여물지 않은 내 에로틱한 환상 속에 머물러 있는 사이, 그들은 떠나버렸다. 그들 중 몇몇이, 대부분이, 영원히 떠나버렸다. - P388

그 딸은 한동안 내가 어른이 되어 살던 곳과 그리 멀지 않은 곳에서 살았다. 나는 그녀에게 편지를 써 보낼 수도 있었고, 어쩌면 찾아가볼 수 도 있었을 것이다. 내가 나의 어린 식구들과 한결같이 불만족스러웠던 내 글쓰기 때문에 바쁘지만 않았다면. 하지만 그때 내가 정말로 이야기를 나누고 싶었던 사람은 더는 세상에 존재하지 않는 내 어머니였다.
어머니의 마지막 순간에도 그리고 장례식에도 나는 집에 가지 않았다. 내게는 어린 자식이 둘 있었는데 밴쿠버에는 아이를 맡길 사람이 없었다. 우리는 거기까지 갈 경비가 없었고 내 남편은 의례적인 행동을 경멸했다. 하지만 그것이 왜 그의 탓이겠는가. 내 생각도 같았다. 사람들은 말한다. 어떤 일들은 용서받을 수 없다고, 혹은 우리 자신을 결코 용서할 수 없다고. 하지만 우리는 용서한다. 언제나 그런다. - P4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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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이토록 작은 존재들을 위하여
사샤 세이건 지음, 홍한별 옮김 / 문학동네 / 2021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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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 감사하는 마음으로 하루를 보내려고 노력하지만, 그것과는 별개로 나 자신이 한없이 하찮고 형편없게 느껴지는 순간들이 있다. 이런 우울하고 무기력한 순간들이 찾아오면 순식간에 무거운 감정에 둘러싸여 나 자신에게 못된 마음을 품게 되기도 한다. <우리, 이토록 작은 존재들을 위하여>는 그런 우리들에게 이런 나라도 괜찮다고, 나만큼 놀랍고 경이로운 존재는 없다고 따스한 말로 위로하고, 다친 마음을 다독여준다. 그 속에는 감탄하고 감동하고 감사하는 마음, 자신의 잘못을 인정하고 사과하는 마음, 용서하고 믿어주고 사랑하는 마음, 봄의 축복에 기뻐하는 마음이 있다. 그리고 이 마음들은 앞으로도 봄처럼 따뜻하게 나를 지탱해 주는 토대가 될 것이다.


  

사실이기를 바란다고 해서 사실이라고 믿어버리면 위험해. - P10

우리처럼 작은 존재가 이 광대함을 견디는 방법은 오직 사랑뿐이다. - P14

무언가를 ‘믿지 않는다’라는 말이 그것이 존재하지 않는다고 확신한다는 뜻은 아니다. 존재한다는 증거를 보지 못했기 때문에 믿음을 보류한다는 뜻이다. 신이나 내세 같은 종교적 요소에 대한 내 생각도 아버지가 외계인에 대해 갖는 생각과 마찬가지다. 아버지는 "증거의 부재는 부재의 증거가 아니다"라고 했다. 다시 말해 증거가 없으므로 존재하지 않는다는 게 아니라 존재하는지 아닌지를 알 수 없다는 말이다. - P35

내게는 이 모든 혼돈 속에서 어떻게든 당신이 당신이 되었다는 생각만큼 놀랍고 경이로운 건 없는 것 같다. - P41

우리 각자가, 살아서, 이 세상에서 함께 살아가게 되기까지, 우리가 바로 지금 이 순간에 도달하기까지 있었던 그 모든 일에 대해 나는 경이를 느낀다. - P46

어쩌면 우리는 봄을 사랑하게끔 진화했는지도 모른다. 봄이 왔다는 것은 이제 위험을 벗어났으며 얼어 죽거나 굶주릴 가능성이 줄어들었다는 뜻이기 때문이다. 사방에서 모든 것이 다시 태어나는 모습을 보면서 죽음에 대한 근원적 공포를 누그러뜨릴 수 있기 때문일 수도 있다. 어느 쪽이든, 봄의 기쁨은 신앙이나 교리 같은 것과 무관하게 누구든 얼마든지 누릴 수 있다. - P66

어떤 주제와 상징들이 수천 년을 넘어 계속 이어진다는 것은 근사하고 감동적인 일이다. - P74

삶의 아주 사소한 신비들까지도 다 찬미하면서 살 수 있다면 우리 일상은 얼마나 많이 달라질까? - P91

과학은 모호함을 허용해야 한다. 우리가 모르는 것에 대해서는 믿음을 유보해야 한다. 불확실성 때문에 짜증이 날 수도 있겠지만 그 덕분에 우리는 더 많은 데이터를 축적하게 된다. - P98

결국은 우리의 취약함이 우리가 무언가 더 깊은 것에 다가갈 수 있게 해준다. 사랑도 그렇고. 오류를 기꺼이 인정한다면, 예측이나 선입견을 과감히 놓아버릴 수 있다면, 상상했던 것보다 더 많은 것에 다가갈 수 있다. - P107

죽음을 통해 우리는 삶의 소중함을 알게 된다. 무언가의 부재를 겪지 않고는 그것의 진짜 가치를 알 수가 없다. 우리가 헛발질했다는 사실을 시인하고 속죄하지 않고는 더 나은 존재가 될 수 없듯이. - P126

삶이 유한함에도 불구하고 행복한 게 아니라, 삶이 유한하기 때문에 행복하다고 느낄 수가 있었다. 이게 나에게는 어른이 되었다는 징표 같았다. 나는 모르는 게 약이라고는 절대 생각하지 않는다. 아는 것이 축복이며, 기쁨을 얻으려면 때로 공포를 직접 마주해야 할 때도 있다고 생각한다. 우리가 얼마나 작은 존재인지, 우리의 시간은 얼마나 짧은지를 진심으로 인정하고도 삶을 사랑할 수 있게 되자, 진짜 어른이 된 느낌이었다.
성장의 정의에 ‘두려움을 마주한다’는 의미가 들어가기도 한다. 무언가 힘든 일을 하고, 자신을 해방하고, 내 운명을 스스로 받아들이는 일이 성인이 되는 관문이다. - P141

어떤 정보 때문에 마음이 불편하다고 해서 그 정보를 계속 머리에서 밀어내지 않게 되었다. 아니 적어도 덜 밀어내게 되었다. 그게 나에게는 성장을 향한 큰 걸음이었다. 그러려면 환상을 버려야 했고 그래서 고통스러웠다. 한편으로는 그 덕에 더 깊은 현실감을 얻었으니 잘된 일이다. 사람은 살아남으려면 반드시 나름의 방법으로 높은 곳에서 뛰어내리고, 애착담요를 버리고, 세상의 무시무시한 경이를 향해 나아가야 하기 때문이다. - P143

"사실 우리도 시간여행을 하는 거야." 아빠는 말하곤 했다. "일 초씩 미래로!" - P154

책이란 얼마나 놀라운 물건인가. 나무로 만든 납작하고 잘 휘어지는 물건인데 그 안에 검은색 선이 꼬물꼬물 우스운 모양으로 찍혀 있다. 그런데 그 물건을 한번 들여다보면 어느새 다른 사람의 마음속에 들어가게 된다. 그 사람은 수천 년 전에 죽은 사람일 수도 있다. 저자가 수천 년의 세월을 넘어 조용하면서도 또렷한 목소리로 당신의 머릿속에서 말을 건다. 글은 인류의 가장 위대한 발명일 것이다. 서로를 모르는 사람들, 멀리 떨어진 시대에 사는 사람들을 하나로 이어준다. 책은 시간의 굴레를 벗어난다. 책은 인간이 마법을 부릴 수 있다는 증거다. - P156

내가 아버지한테로 시간여행을 하는 방법이 한 가지 더 있다. 어릴 때 아버지가 대기 중의 공기 입자는 아주 오래전부터 변함없이 그대로이기 때문에 우리는 수천 년 전에 살았던 사람들과 같은 공기로 호흡한다고 말한 적이 있다. 요새도 가끔 그 생각을 한다. 깊은 숨을 들이마시고 이 공기 입자 중 일부가 아버지가 들이마시고 내쉬었던 공기일 수도 있다고 생각한다. 사랑하는 사람의 공기를 들이마신다니 얼마나 친밀한 행위인가. - P159

나는 우리에게 옳은 것이 다른 모든 사람에게도 옳을 수는 없다는 걸 안다. 옳은지 아닌지를 판단하는 데 쓸 수 있는 유일한 잣대는 그로 인해 다치는 사람이 있나?라는 질문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 P235

납골당에는 방이 여섯 개 있는데 전부 아주 오래전부터 카푸킨 수도회 구성원들의 유골을 재료로 써서 아주 정교하게 장식해놓았다. 정강이뼈, 종아리뼈, 넓적다리뼈의 방. 엉치뼈, 엉덩뼈, 꼬리뼈의 방. 해골의 방. 수천 개의 인체조각. 지금 우리 몸안에 있는 것과 같은 것들이다.
마지막 방에는 여러 언어로 이런 문구가 적힌 액자가 있었다. 지금 당신의 모습은 우리의 과거이고, 지금 우리의 모습은 당신의 미래다...... - P278

플레이아데스성단의 별 일곱 개도 언젠가는 죽을 것이다. 우리는 그 사실을 머릿속에서 밀어내는 대신에, 두려움을 무시하는 대신에, 두려움을 존중하고 두려움에 관해 이야기하고 빛이 사라지기 전까지 빛을 조금이라도 더 즐겨야 한다. - P279

너희한테 들려줄 아주 멋지고 대단하고 짜릿한 사실이 있어. 너무 거대하고 장대해서 어떤 인간도 멈출 수가 없는 일이야. 내일부터 다시 낮이 조금씩 길어질 거고, 서서히 다시 꽃이 필 거고, 햇살이 돌아올 거야. 여름이 다가오고 있어. - P311

삶에서 상실을 마주할 때마다 이전의 모든 상실을 다시 겪는다. 하나하나의 작별은 다른 모든 작별이다. (...) 이 상실들이 모두 하나로 이어진 것처럼 느껴진다. 이 모든 일이 내 삶의 최초의 슬픔으로 나를 끌고 간다. 나의 아버지의 죽음. - P333

우주에 어떤 비밀이 숨어 있든 우리가 태어났다는 사실은 달라지지 않는다. 우리는 기쁨을 느낄 것이고 고통을 느낄 것이고 거대하고도 광활한 우주의 아주 작은 일부로서의 존재를 다양하게 경험할 것이다. 다음에 무슨 일이 일어나건 간에, 우리는 여기에 있었다. 각각의 삶의 기록은 시간의 흐름 속에서 잊힐지라도 우리가 여기에 있었다는 사실은 변함이 없다. 우리는 살았다. 우리는 이 거대함의 일부였다. 살아 있음의 모든 위대함과 끔찍함, 숭고한 아름다움과 충격적 비통함, 단조로움, 내면의 생각, 함께 나누는 고통과 기쁨. 모든 게 정말로 있었다. 이 모든 것이. 광대함 속에서 노란 별 주위를 도는 우리 작은 세상 위에 있었다. 그것 하나만으로도 축하하고도 남을 이유가 된다. - P342

몇 주 뒤, 내가 헬레나에게 줄 채소를 찌다가 돌아보니 헬레나가 유아용 의자에 앉아 나를 쳐다보고 있었다. 그때 나는 가장 가까운 별의 도움으로 땅에서 자라난 음식을 헬레나가 더 크게 자라는 데 쓸 에너지로 바꿀 수 있게 준비하고 있었다. 수백만 년에 걸친 진화의 결과로 가능해진 일이다. 헬레나는 호기심 어린 눈으로 내가 사소하고 일상적인 의식을 수행하는 것을 지켜보았다. 반쯤 신성한 과업을 수행하는 나의 모습이 헬라나의 뇌에 각인되는 중이었다. 언젠가 나는 사라질 테지만, 헬레나는 나를 기억하기를 바란다. 그러면 나는 헬레나 뇌의 뉴런 안에서, 그리고 핏속의 세포 안에서 조금 더 살 수 있을 테니까. - P349

남편 존, 내 평생의 사랑, 나는 어쩌면 이렇게 운이 좋을까. 변하지 않는 무조건적 사랑과 수없는 격려의 말과 한없는 인내심과 믿음에, 매일매일을 축하할 만한 날로 만들어준 것에 감사해. 당신과 함께할 수만 있다면 광대한 시간 속에서 눈 한 번 깜짝할 만한 순간이라도 나에게는 충분해. - P358

우리 각자가, 살아서, 이 세상에서 함께 살아가게 되기까지, 우리가 바로 지금 이 순간에 도달하기까지 있었던 그 모든 일에 대해 나는 경이를 느낀다. - P3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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