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세와 타협 - 임진왜란을 둘러싼 삼국의 협상 동북아역사재단 교양총서 11
김경태 지음 / 동북아역사재단 / 2019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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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진왜란을 기존과 다른 느낌으로 다루는 이야기를 듣고 싶다면 추천하고 싶다.

우리는 임진왜란에서 있었던 일을 너무나 많이 들어 잘 알고 있지 않은가? 어떤 측면에서는. 전쟁의 책임이 누구에게 있으며 무슨 무슨 전투가 어디서 어떻게 일어났으며 누가누가 활약했는지. 아, 이런 이야기에 조금 지쳤다면.

당시 명, 조선, 일본 사이의 관계가 어떠했고, 서로를 바라보는 관점이 각자 어떠했는지의 이야기가 흥미롭다. 전황을 구체적으로 다루는 내용은 없다. 대신에 이왕에 터져버린 전쟁을 세 나라가 어떻게 풀어나갔고, 어떻게 마무리하려 했는가를 구체적으로 다룬다. 특히 종전 협상을 다루는 대목이 무척 재미있다. 7년을 끌었던 이 전쟁은 흔히 알려진 것과는 다르게 협상이 반 이상이다. 장수들은 싸우면서도 끊임없이 서로 사람을 보내 말을 걸고 이것저것 재본다. 어차피 전쟁이라는 것의 본모습이라는 게 다 거기서 거기다.

책을 다 읽고 나니 당시 세 나라가 각자 가졌던 입장이 선명하게 그려진다. 전쟁을 일으킨 일본은 얼마 지나지 않아 ‘아 이게 아닌데‘하며 쩔쩔매면서도 겉으로는 자기들이 다 이기고 있는 척 뻔뻔하게 큰소리치면서 세게 나온다. 에헴 하며 전쟁에 끼어든 명나라는 대국의 체통을 지키는 동시에 수렁에 빠진 전쟁에서 손해 역시 보지 않는 길을 찾느라 헤맨다. 명나라와 일본이 서로 손익을 따지는 사이 중간에 낀 조선은 자다가 갑자기 얻어맞은 장본인이면서도 가슴만 치고 소리는 내지르지 못하는, 뭔가 짠한 모습이다. 유린 당하는 나라를 지키려고 필사적으로 목소리를 내며 최선을 다하는 모습이 애잔하다.

도요토미 히데요시의 연극배우처럼 과장된 내면과 면모, 고니시 유키나가와 가토 기요마사의 경쟁과 그 후일담, 나름대로 노력하는, 그러면서도 책임 소재는 슬쩍 피해 가고 왕권은 그것대로 챙긴 알뜰살뜰한 선조의 이야기가 소설처럼 펼쳐진다.

조금이라도 쉽게 대중들에게 다가서는 책을 만들려고 고심한 흔적이 보인다. 읽는데 하루도 채 걸리지 않고, 책에서 다루는 내용의 깊이에 비해 문장들이 꽤나 경쾌하게 읽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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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을 읽고 문득 든 생각이다. 반도의 조그마한 이 나라는 자의든 타의든 강대국의 다툼에 끼어들어서는 절대 안 된다. 아프고 억울해도 외마디 비명 하나 지를 겨를 도 없이 맷돌에 콩 갈듯 처절하게 갈려나갈 수밖에 없다.



잘 하고 있습니까, 대한민국 정부? 이 양반들이 학습 능력이 있어야 할 텐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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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존체력 이것은 살기위한 최소한의 운동이다
피톨로지 지음, 한동석 감수 / 위즈덤하우스 / 2014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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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년 전에 읽다가 오랜만에 꺼내서 다시 읽는다.

홈트레이닝을 하고 싶어 하는 사람에게 최적화된 책이다. 나도 처음에 홈트를 하고 싶어서 이 책을 사서 읽었다. 도구 없이 체중 만으로 할 수 있는, 기본 중의 기본 운동인 맨몸 스쾃, 푸시업, 플랭크, 버피 테스트를 하는 올바른 자세와 방법을 자세히 설명한다. 사실 누군가에게 따로 배우지 않는다면 책을 읽는 것만으로는 부족하다. 운동은 책으로 배우는 게 아니기 때문이다. 이 책을 쓴 피톨로지 팀은 유튜브도 운영한다. 공중파 방송 촬영분도 있고, 다른 운동 유튜브와 비교해도 참 잘 만들어 놓았다. 유튜브를 보면 좀 더 직관적인 영상 설명을 보며 따라 할 수 있으니 그렇게라도 하면 좋다.

그러나 집에서 스스로 하는 운동은 어딘가 나가서 하는 것보다 훨씬 더 어렵다. 고독하고 의미도 찾기 힘들며 시간도 잘 내지 않게 된다. 나는 8년 전에 이 책을 읽으며 운동하다 결국에 실패하고서는 어딘가에 넣어두었다가 지금에 와서 다시 꺼냈다. 이제는 나이도 먹었고 그때보다는 ‘이 정도 운동이라도 해야 진짜 살 수 있겠다‘라는 동기 부여가 더 잘 된다. 일단 스쾃부터 꾸준히 하고 있다. 처음에는 100개부터 시작해서, 이제는 160개 정도 한다. 그래. 이거라도 해야 사람 꼴을 갖추고 살 수 있지. 나이를 먹어갈수록.

다시 부르기, 아니 다시 읽기를 하니 예전에는 눈여겨보지 않았던 부분에 더 시선이 많이 간다. 운동을 해야 하는 생물학적 이유와, 무엇보다도 건강하기 위해 지켜야 하는 식사 방법 부분이다. 왜 이걸 그때는 보지 않았나 싶을 정도로, 나는 개인적으로 운동 방법 파트보다 이쪽 내용이 더 좋다. 탄수화물을 많이 섭취하면 어떻게 되는지를 설명한 부분이 무섭게 와닿았고, 특히 좋았던 건 건강하게 먹으려고 이것저것 지키기 힘들다면 이렇게라도 하라는 내용이었다.

˝식판의 밥을 담는 부분에 반찬을 담고, 반찬을 담는 부분에 밥을 담아서 먹는다.˝

직장 구내식당에서 이렇게까지는 하지 못하지만, 이제 나는 밥을 정말 최소한만 담아서 탄수화물 섭취를 최대한 줄이려고 노력하는 사람이 되었다. 맞다. 이것은 살기 위한 최소한의 운동이고, 살기 위한 최소한의 실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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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얼빈
김훈 지음 / 문학동네 / 2022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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짧은 호흡에 모두 읽어내렸다. 안중근과 이토 히로부미 두 사람을 뼈대 삼아 긴장감 있게 이야기가 잘 짜여서일까. 배를 타고 기차를 타고 넓은 만주를 외롭게 내달린 그의 족적이 너무 생생해서일까. 외롭게 악의 시대와 분투하다 서른한 살에 죽은, 영웅의 외투를 벗은 안중근의 젊은 날을 만났다.

문장은 역시나 간결하고 이야기 흐름은 흐리멍덩하지 않고 또렷하다. 세세한 내러티브는 작가의 상상으로 새로 엮었지만 사건의 줄기는 모두 역사적 사실이다. 안중근 의사에 대한 여러 가지 근거 없는 낭설과 군더더기는 모두 뺐다. 그를 잘 모르는 사람이 읽어도 그의 삶의 궤적을 충실하게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단, 이토와 기타 주변 인물의 내면을 묘사한 대목 중에 단편적으로 잘라서 보면 간혹 작가의 역사관을 오해하게 할 수 있는 부분들이 있다. 하지만 그건 그것대로 시대를 그렇게 끌고 간 대세의 흐름과 침략자를 정당화한 논리, 한국의 비극에서 한발 멀리 떨어져 있던 이들의 상황 인식의 어떤 단면을 느끼게 해주는, 그렇게 안중근이 걸어간 길의 의미를 더욱 부각시켜주는 장치라고 생각한다.

광복절 새벽부터 띄엄띄엄 읽기 시작해서 책을 덮으니 광복절 다음날 새벽 네 시다. 되지도 않는 명분과 말의 성찬을 앞세워 한 나라가 다른 한 나라를 힘으로 휘젓고 집어삼킨 그 시대가 새삼 너무 슬프다. 그런 시대에 총을 들어 이토를 쏘아 죽인, 자기를 스스로 변호하지도 않은, 담담하게 포수와 무직으로 스스로를 진술한 안중근의 청춘과 담배팔이를 전전하다가 말없이 그와 함께 총을 들었던 우덕순의 청춘이 가슴을 먹먹하게 한다. 홀연히 던져버린 그들의 젊은 날과 지금 하루하루를 살아내는 나 같은 사람의 젊은 날은 어디서 만날 수 있을까? 어느 지점에서 만나야 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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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대 그리스에서 1년 살기 - 소설처럼 읽는 고대 그리스 생활사
필립 마티작 지음, 우진하 옮김 / 타인의사유 / 2022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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읽던 책을 두고 나간 바람에 근처 서점에서 급하게 사게 된 책이다. 그리고 밤늦게까지 책을 놓지 못했다.

‘고전 그리스‘와 ‘고대 로마‘ 사이에 끼어서 흘러가듯 지나치기 쉬운 헬레니즘 시대를 본격적으로 다뤘다. 그것도 알렉산드로스 대왕이 파죽지세로 영역을 확장시켜나가던 무렵이 아니라 그의 사후에 부하들이 사분오열하여 거대한 제국을 나누어 먹은 이후의 시점을 다루었는데, 나는 예전에 이 부분을 가지고 수업할 때 뭔가 임팩트를 주기 힘들었던 기억이 난다. 세계가 팽창하고 사람들의 사유와 삶의 방식이 자유로워지긴 했는데 결국 혼란에 빠져 허우적대다가 로마 문명에 잡아먹히고 말았으니. 그런데 그게 아니었다. 나는 이 책을 읽으면서 역사 전공자로서 많이 반성했다. 이걸 이렇게 재미있게 다룰 수도 있는데, 내 공부가 참 얕았구나 싶어서.

바로 그 혼란스럽지만 한없이 드넓고 자유로운 세계를 살아간 사람들의 이야기를 소설 형식으로 담아냈다. 농부와 도망 노예, 리라 연주가, 건축가, 올림피아 제전에 참가하는 달리기 선수, 마케도니아 제국의 외교관 등이 주인공으로 나온다. 주인공이 가상 인물이지만 그들의 말과 행동은 실제 역사 사실을 바탕으로 재구성된 것이다. 책을 덮고 나서도 지중해를 가로질러 넓은 세상을 항해하는 사람들의 궤적이 마음에서 지워지지 않는데, 특히 아래 내용들이 기억에 남는다.

고대 그리스 사람들은 스포츠를 군사 훈련처럼 중요하게 생각했다. 그래서 남자들이 발가벗고 운동하는 체육관이 많았고 거기서 많은 역사가 이루어졌다. 플라톤의 ‘아카데메이아‘ 또한 체육관에서 운영되던 학교였다.
고대 신전은 예배당이 아니었다. 그 자체가 신이 사는 집이었고, 대중들에게 그곳은 들어가서 향유하는 공간이 아니라 신을 상징하는 오브제였다.
올림피아 제전에서 선수가 부정행위를 하면 심판 보조원에게 채찍으로 매질을 당했다.

책 막바지에서 주인공이 고된 여정 끝에 벅찬 가슴을 안고 바다를 바라보며 부르는 노래가 아름다웠다. 이 노래는 실제로 존재했으며, 악보와 기보법이 전해져서 지금도 그때 모습 그대로 재연이 가능하다고 한다.



살아라! 그리고 살아 있는 동안 찬란하게 빛나라.
절대로 슬픔에 휘둘리지 마라.
우리가 살아가는 인생은 찰나와도 같으니
언젠가는 그 마지막 순간이 다가오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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존 버거의 글로 쓴 사진
존 버거 지음, 김우룡 옮김 / 열화당 / 2005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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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을 따라가다 보면 눈에 사진이 그려진다. 책 제목 그대로다. 예를 들면 이렇다.

˝언제부터인가 긴 벽이 지붕 무게를 이기지 못하고 불룩하게 튀어나오기 시작했다. 기둥들도 휘었다. 습기 먹은 안개는 오래된 모르타르를 먼지로 풍화시키면서 어디든지 스며들었다. 문짝들도 더 이상 아귀가 맞지 않았다. 수리하면 집은 살릴 수 있겠지만 돈이 많이 들 것이다.˝

오래된 동네의 낡은 집은 이런 느낌이어야만 할 것 같다. 이 책은 이렇듯 저자가 어떤 대상을 묘사하는 글로 채워져있다. 사진을 찍고서 남긴 스케치랄까, 촬영 대상에 대한 감상문이랄까. 아무튼 사진을 잘 찍고 잘 남기는 사람은 이토록 세상을 치밀하고도 섬세하게 관찰하고 남기는구나 싶었다. 뒤로 갈수록 흡입력이 대단해진다.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읽다 보면 어느새 책이 끝난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처음에는 이 책이 재미없어서 정말 혼났다. 천천히 그리고 낱낱이 이어지는 묘사가 내게는 다소 버거웠다. 아무래도 내가 묘사형 인간이기보다는 설명형 인간에 가까워서 그런가 보다. 직업이 직업인지라 그런 것일까? 그래서 내 사진에는 무언가 반짝반짝하는 느낌이 없는 것일지도. 가끔 이렇게 관찰하고 묘사하는 능력이 탁월한 사람들이 부럽기도 하고, 그걸 배워서 할 수 있는 것이라면 배워보고 싶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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