면역 - 당신의 생명을 지켜 주는 경이로운 작은 우주
필리프 데트머 지음, 강병철 옮김 / 사이언스북스 / 2022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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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소에 건강 염려증이 있는지라 목이 붓거나 피부에 뭐라도 나면 열나게 인터넷을 검색해 보곤 했다. 그렇게 해서 접하는 정보라는 게 유용한 경우도 있었지만 대부분은 크게 도움이 되지 않았다. 면역 체계에 대해 기본 지식이 없는 상태로는 조금만 어려운 설명이 나와도 전혀 앞으로 나아가지 못했으니까. 핵심으로 가지 못하고 변죽만 울려대는 꼴이었달까. 하지만 그렇다고 ‘이참에 면역을 공부해 볼까‘하는 마음이 들지도 않았다. 너무 복잡하고 무시무시해 보였기 때문이다.


참으로 아름다운 책이다. 컬러풀한 삽화만 아름다운 게 아니다. 이리저리 파편화된 상태로 접했던 면역 체계에 대한 지식을 일관되게 묶어서 전달해 줄 뿐만 아니라, 면역계에서 일어나는 일들의 인과 관계를 이야기책을 읽듯이 이해하게 도와준다. 설명을 하기보다는 어떤 모습으로 일이 흘러가는지 묘사하는 쪽에 가깝달까. 그렇다. 이 책의 가장 큰 덕목은 자세하게 설명하는 데 쓸 지면을 섬세하게 묘사하는 데 쓴다는 것이다. 누가 경보를 울리고 누가 총을 들고 뛰어가는지, 최전방에서 전투가 벌어지는 동안 후방에서 대규모 군단이 어떻게 만들어지는지, 그 모든 시스템들이 전체적으로 어떤 모양으로 얼마나 신중하게 굴러가는지 마치 한편의 전쟁 영화를 보는 것처럼 머릿속에 자연스럽게 그려진다. 물론 300페이지 남짓한(판형은 큼지막하지만) 이 책 한 권을 읽고서 면역 전문가가 되려는 욕심을 부려서는 안 된다. 그저 면역계의 총체적 상을 그려볼 수 있는 지식을 쌓을 수 있다는, 그리고 인터넷에 돌아다니는 건강(질병) 정보를 좀 더 큰 틀에서 이해할 수 있는 안목을 키울 수 있다는 점에서, 집중해서 읽은 시간을 충분히 보상받을 수 있는 책이라고 생각한다. 특히 나에게는 아래와 같은 지점에서 도움이 되었다.

1. 내 몸이 생각보다 얼마나 치밀하고 꼼꼼하게 잘 지켜지고 있는지 알게 되었다. 쓸데없이 걱정하고 휘둘리지 않아도 될 것 같다.
2. 실제가 아닌 허상으로서의 ‘면역‘이라는 개념에 매달려, 이상한 대체의학 같은 데에 의존하고 병을 키우는 게 얼마나 바보 같은 짓인지 알게 되었다. 아닌 건 아닌 거다.
3. 예방 접종이 얼마나 효과적으로 면역계를 도울 수 있는지 자세히 알게 되었다. 한때 붐을 일으켰던 코로나19 백신 음모론 같은 데에 잠깐이나마 귀가 팔랑거렸던 과거를 반성하게 된다.



태어나서 죽을 때까지 온전히 굴리는 게 내 몸이라는 걸 생각하면 무엇보다도 잘 알아야 하는 게 몸이 아닐까. 사실 건강이라는 건 좋은 걸 먹고 나쁜 음식은 피하며 적당히 운동해 주면 그럭저럭 잘 지켜나갈 수 있지만, 내 몸의 보이지 않는 곳에서 일어나는 일을 상식선에서 알아둔다면 좀 더 동기 부여가 잘되지 않을까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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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를 위한 현대철학 사용법 - 니체, 푸코, 레비나스, 들뢰즈를 무기로 자신을 지키는 법
다카다 아키노리 지음, 지비원 옮김 / 메멘토 / 2016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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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렵다. 현대철학이라니.

하지만 쉽게 쉽게 핵심을 짚어주려 노력한 흔적이 보이는 책이다. 저자가 자아의 구조를 쉽게 설명하려 그린 그림들은 꽤나 탁월하다. 보다 보면 빠져든다. 가만히 보면 일본 사람들이 이런 건 참 잘해.

나처럼 철학에 익숙하지 않은 일반인은 한 번만 읽고서는 내용을 완전히 다 이해하기 어렵다. 책의 설명이 어려워서 그렇다기보다는 책에서 다루는 내용이 워낙 무거워서. 하지만 다 읽고 보니 접해보지 않고 지나쳤다면 후회했을 것 같은 내용들이다. 시간이 된다면 꼭 다시 읽어보고 마음에 새기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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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국에 ‘나‘를 쌓아 올리는 건 타자의 존재라는 사실. 나의 실존을 실감하게 하고 존재를 확인하게 하는 건 스스로 할 수 없다. 타자와 건강한 관계를 맺을수록 나는 튼튼해지고, 그러지 못할수록 내 존재는 희미해진다. 사람은 함께 살아가게 만들어진 존재이고 혼자서는 스스로 오롯이 서는 것조차 할 수 없다. 만약 혼자서 다 해내고 있다고 느끼고 있다면 그건 착각일 뿐. 오히려 그런 착각이 삶을 고되게 만들 수도 있다는 건 어쩌면 슬픈 역설일 것이다. 나는 내가 귀중히 여기는 사람들 사이에서 살아있을 수 있고, 나를 진심으로 소중히 대해주는 사람들 사이라서 살아나갈 수 있는 것이다.

때때로 입안이 서걱거린다고 느껴진다면, 내가 타자와 너무 얄팍한 관계를 맺고서 살아가서 그런 건 아닌지 점검해 볼 것. 너무 나 혼자만 믿고 의지하며 끙끙대고 있지는 않은지 되돌아볼 것. 어쩌면 새해를 맞아 삶을 바꾸고 힘껏 살아나갈 수 있게 해줄 실마리는 머나먼 곳에서 타오르며 떠오르는 태양 같은 게 아니라 가장 가까운 곳에, 하지만 눈길을 주고 싶지 않았던 부분에 숨어있는지도 몰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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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년기의 끝 - 아서 C. 클라크 탄생 100주년 기념판
아서 C. 클라크 지음, 정영목 옮김 / 시공사 / 2016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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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서 C. 클라크의 책을 두 권째 읽는다. 책을 덮으니 무척 싱숭생숭하다. 왜 이런 기분이 드는 걸까?



이 책은 외계인과 만난다는 SF 소설의 흔한 줄거리를 빌려 인류의 진화를 그려낸다. 그런데 소설 속 외계인의 모습도 (이쯤 되니 이 사람 소설은 원래 그런 것 같다) 흔히 상상하는 것과 무척 다르고, 진화하는 인류의 모양새도 전혀 생각하지 못했던 모습이라 당황스럽기까지 하다. 외계인이 등장하는 순간부터 종교, 예술, 문화, 물질문명 같은 인류의 성취가 모두 전복되고, 마지막에 가서는 무의미해진다. 인류의 운명은 어떻게 되는 것일까? 소설 끝에 큰 한 방이 기다린다.



읽으면서 인간과 삶을 더 잘 이해할 수 있게 된다는 게 소설의 미덕이라면 아서 C. 클라크의 문법은 ‘상식‘이라는 이름의 견고한 전제 사항들을 모두 뒤흔들어버린다는 점에서 다른 결의 미덕을 지닌 듯하다. 사고의 지평을 넓혀준다고 해야 할까. 나는 개인적으로 ˝라마와의 랑데부˝보다 이쪽이 더 재미있다.



첫 장면이 어릴 때 봤던 영화 인디펜던스 데이와 무척 닮아서 놀라기도 했다. 하지만 알고 보면 질적으로 전혀 다른 작품이다. SF라는 장르 문학의 형식을 취하고 있긴 하지만, 이 소설을 읽어낸 시간은 단순히 가벼운 오락을 즐긴 경험 그 이상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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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마와의 랑데부
아서 C. 클라크 지음, 박상준 옮김 / 아작 / 2017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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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계 존재를 다루지만 외계인이 뭔가-예를 들면 대화를 시도한다든가, 싸움을 걸어온다든가 하는-를 전혀 하지 않는 SF 소설.



압도적인 존재 앞에서 사람들이 분주하게 움직이며 생각에 빠지고 여러 가지로 말하고 행동한다. 외계의 존재는 아무것도 안 하지만 인간들은 도리어 이것저것 해보려다가 스스로 한계를 드러낸다.



명작은 명작이다. 소설을 읽는 내내 기존의 모든 ‘좌표계‘를 무시하는 세상에서 빙빙 도는 짜릿함도 느끼고, 자유도 느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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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비투스 - 인간의 품격을 결정하는 7가지 자본
도리스 메르틴 지음, 배명자 옮김 / 다산초당(다산북스) / 2020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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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제목을 보고 피에르 부르디외를 떠올렸다면 낚인 거다. 사실 나도 낚였다. 부르디외를 언급하되 부르디외와 다른 이야기를 한다. 사회를 분석하고 문제점을 찾아내는 책이 아니다. 주어진 질서와 그 안에서 각자도생하는 파편화된 개인, 그리고 남을 밟고 올라서는 법을 부르디외 이론의 파편을 빌려서 말하는 책이다. 이 책에서는 부르디외를 찾지 말고 자기 계발을 찾으세요.

그러나 꽤나 쓸만한 책이기도 하다. 모름지기 자기 계발서라면 이래야 한다는 걸 보여주는, 그쪽 업계의 모범생 같은 책이랄까? 읽다 보면 주어진 상황에 만족하지 않고 뭔가 노력해 보고 싶어진다. 사실 크게 특별한 내용은 없다. 다만 이런 이야기에 호소력과 설득력을 더했을 뿐. ‘더 큰 그릇을 품고, 더 너그럽게 굴며, 더 나은 사고와 행동을 하고, 더 좋은 관계를 맺어나가는 건 바로 이런 거야.‘ 그런 의미에서 이 책은 퍼질러 앉아 있던 사람을 일으켜 세우는 책이라고 말할 수 있겠다.

책에서는 시종일관 ‘잘나가고 돈 많은 사람들은 이렇게 생각하고 말하고 행동하니 너도 알아두면 좋아‘라고 말한다. 다만 어떻게 하면 나도 그렇게 돈이 많아질 수 있는지에 대한 내용은 역시나 빠져있으니 그런 건 기대하지 않는 게 좋다. 내용을 곧이곧대로 받아들여서는 곤란하며 그러기에는 그다지 쓸모없는 책이라는 말이다. 가볍게 읽으면서 취할 건 취하고, 버릴 건 버리길. 연애를 책으로 배우는 게 아니듯 삶도 책으로 배우는 게 아니에요. 다만 인상적인 부분 몇 군데를 표시해두었다가 가끔 찾아 읽어보며 지금 내가 살아가는 모습을 되돌아보고 정신 차리는 용도로 쓰면 좋겠다.

+
상류층이 스스로를 어떻게 타자와 구분 짓는지, 그리고 상류층의 그러한 행태를 그보다 아랫사람들이 어떻게 수식해 주는지를 엿보고 싶다면 이 책을 추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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