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xml version="1.0" encoding="utf-8"?><?xml-stylesheet href="https://blog.aladin.co.kr/blog/rss/rssUserXSL.aspx" type="text/xsl" media="screen"?><rss version="2.0"><channel><title>이프리트의 서재입니다 (starover 서재)</title><link>https://blog.aladin.co.kr/755125167</link><language>ko-kr</language><description> 사색하는 자는 굴복하지 않는다. </description><copyright /><generator>Aladdin RSS(Alss) v0.9</generator><lastBuildDate>Thu, 25 Jun 2026 15:42:45 +0900</lastBuildDate><image><title>starover</title><url>https://image.aladin.co.kr/Community/myface/pt_755125167625262.jpg</url><link>https://blog.aladin.co.kr/755125167</link><width>100</width><height>100</height><description>starover</description></image><item><author>starover</author><category>review</category><title>일단 살구 보자 - [자몽살구클럽]</title><link>https://blog.aladin.co.kr/755125167/17275186</link><pubDate>Wed, 13 May 2026 23:45: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s://blog.aladin.co.kr/755125167/17275186</guid><description><![CDATA[<table width="100%" height="30" border="0" align="center" cellpadding="0" cellspacing="0"><tr><td width="14"><img src="https://image.aladin.co.kr/img/blog/trans.gif" width="14"></td><td width="85"><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K082030009&TPaperId=17275186" target="_blank"><img src="https://image.aladin.co.kr/product/36808/37/coveroff/k082030009_1.jpg" width="75" border="0" class="box1"></a></td><td valign="top"><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K082030009&TPaperId=17275186" target="_blank" style="color:#386DA1;font-weight:bold">자몽살구클럽</a><br/>한로로 (HANRORO) 지음 / 어센틱 / 2025년 07월<br/></td></tr></table><br/>&nbsp;살어라, 살어야 다음이 있는 게지. 죽은 뒤에 암만 소리쳐도 그이는 들을 수 없어. 아무리 다정한 말을 건네도, 가슴을 치며 후회해도 단절은 변함이 없지. 죽음은 그토록 절대적인 것이야. 에녹과 엘리야, 예수 그리스도를 제외한 어떤 존재도 죽음을 피하지 못했어. 그 해결하지 못한 신비에 매료된 이들은 그것을 앞당기거나 자초하기도 했어. 고통은 남은 자에게 오롯이 맡긴 채, 돌아보지 않고 인식 너머의 세계로 넘어갔지. 한로로는 그것이 어떤 세계이든 영원할 것이라 믿고 있나 보군. 글쓴이가 염원하는 곳이 천국이길 바랄 뿐이야.<br>&nbsp;푼수 같은 소리지만, 이제 내가 알게 된 모든 영혼을 중보해. 한때는 나만 알고 있는 사람의 구원을 위해 기도하는 것이 오지랖이라고 여겼으나, 지금은 한결 더 진심이 되었어. 한로로, 네가 세상 어딘가에 있는 소하, 유민, 태수, 보현을 위해 이야기를 지어냈듯이, 나는 타인을 자기 생명처럼 아끼고 영원을 꿈꾸는 당신이 예수 그리스도를 알기를 바라. 당신이 벼려 왔던 고뇌와 외로움을 그분이 아셔. 음악과 글을 통해 담아내고 싶었던 진심을 기꺼이 쏟아내셔. 우리는 죽은 자를 위해 눈물 흘리는 것이 전부지만, 예수님은 죽을 수밖에 없는 우리를 위해 물과 피를 흘리셨어.<br>&nbsp;한때 나는 자살한 영혼이 구원 받지 못한다고 생각했어. 그런데 그것이 남은 자에게 위로가 되지 않음을 알게 되었지. 누군가의 구원을 내가 판단할 수 없음을 알게 되었을 때, 나는 떠난 영혼을 위해 무모한 기도를 하기 시작했어. 세상을 떠났지만, 그 자는 여전히 당신의 성도라고, 당신의 소중한 자녀라고, 그를 너무 미워하지 말아 달라고. 그리고 이제는 알아. 죽음이 끝이 아니라, 또 다른 생명을 부른다는 것을. 불교에서 주장하는 윤회 따위를 말하는 것이 아니야. 이 땅에 사는 동안 많은 영혼이 육신을 입었다가 떠나지. 그 상실을 주님께서는 사랑으로 채워 주셔. 누군가의 죽음은 또 다른 이의 삶을 살리는 씨앗이 돼. 예수 그리스도가 이 땅에 오신 이유는 그것을 몸소 보이기 위함이야.<br>&nbsp;앞으로도 계속 죽음에 대해 이야기하자. 인간의 필연에 대해 인식하는 자만이 현재를 누릴 수 있게 돼. 사후의 심판이 없는 세상은 죄악과 혼돈으로 가득 찰 거야. 공의와 사랑이 공존하는 세계에 우리를 지으시고, 그것이 꺼지지 않는 나라에 초대하신 하나님께 감사해. 삶을 사랑하려면 언젠가 죽게 됨을 기억해야 해. 또한, 그 끝이 허무가 아니라 기쁨과 소망으로 가득 찬 본향임을 알게 될 때, 우리는 보내진 이 세계를 누릴 수 있어. 하나님께서 이미 이루신 승리를 우리는 이 땅에서 예비하며, 아직도 복음을 외면하며 도망치는 자들을 추적해야 해. 그것이 그리스도인이 살아갈 결정적인 이유야.<br>&nbsp;그러므로 일단 살구 보자. 살다 보면 주님의 섭리가 발견돼. 내가 주님을 모른다 했던 그 순간에도 그분은 동행하셨어. 하나님의 존재를 받아들이지 못하고 노심초사하며 살았던 시간을 돌이키셔. 결국 너의 삶에는 평안과 행복이 가득하게 될 거야. 위태롭고 흔들렸던, 가난과 실패와 무시와 고독으로 점철된 되었던 삶을 예수 그리스도의 사랑이 뒤덮게 돼. 이 아름다운 인생은 주님이 허락한 위대한 축복이라고 고백할 수 있어. 나는 삶이라는 선물을 누리고 있어. 한로로, 또는 지금 이 글을 읽고 있는 넌 어때?]]></description><image><url>https://image.aladin.co.kr/product/36808/37/cover150/k082030009_1.jpg</url><link>https://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temId=368083714</link></image></item><item><author>starover</author><category>review</category><title>영원을 아직 모르는 우리는 - [아이온 - 어딘가에서 잃어버린 자기를 찾아서]</title><link>https://blog.aladin.co.kr/755125167/17235272</link><pubDate>Thu, 23 Apr 2026 23:40: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s://blog.aladin.co.kr/755125167/17235272</guid><description><![CDATA[<table width="100%" height="30" border="0" align="center" cellpadding="0" cellspacing="0"><tr><td width="14"><img src="https://image.aladin.co.kr/img/blog/trans.gif" width="14"></td><td width="85"><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K662535110&TPaperId=17235272" target="_blank"><img src="https://image.aladin.co.kr/product/9249/64/coveroff/k662535110_1.jpg" width="75" border="0" class="box1"></a></td><td valign="top"><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K662535110&TPaperId=17235272" target="_blank" style="color:#386DA1;font-weight:bold">아이온 - 어딘가에서 잃어버린 자기를 찾아서</a><br/>칼 G. 융 지음, 김세영.정명진 옮김 / 부글북스 / 2016년 09월<br/></td></tr></table><br/>&nbsp;돌이켜 보면, 믿음을 지키는 자는 늘 소수였다. 아브라함, 이삭, 야곱을 거쳐 초대 교회, 종교 개혁과 근대, 세계 대전과 포스트모더니즘을 거치면서 신앙의 입지는 항상 좁았다. 인공지능을 비롯한 과학 기술이 발전할수록 믿음을 지키는 것이 바보 같은 짓이라는 목소리가 있을 것이다. 이제 문명의 힘으로 많은 것을 이루어 낼 수 있는데 하나님을 무엇 하러 믿느냐고 따지는 세력이 나타날 것이다. 그에 대해 항변할 의지를 잃은 그리스도인은 현실에 순응할 텐가, 아니면 끝까지 좁은 길을 걸어갈 것인가?<br>&nbsp;칼 구스타프 융은 기독교, 특히 예수 그리스도를 해체 분석한다. 예수님의 부활을 믿지 않는 자들에게 그리스도는 언제나 난공불락의 요새와 같았다. 대체 그가 무엇이기에 이토록 사람들이 믿어 왔는가? 대체 그 안에 어떤 비밀이 있기에 아무리 억누르고 피하려고 해도 그의 존재가 심령에 다가오는가? 융은 영지주의와 신화의 상징을 총동원하여 특정한 결론에 이른다. 이른바 "끝과 끝은 통한다"는 것일까? 인간의 원형에 존재하는 그림자, 곧 인격된 억압의 원리를 이용하여 예수 그리스도라는 완전한 선이 악과 맞닿아 있다고 설명한다. 그는 그것을 입증하기 위해 우로보로스를 비롯한 많은 도식과 표를 이용한다. 그러면서도 악이 선의 부재가 아니라고 명명함으로써 결점을 최대한 보완한다.<br>&nbsp;사실 영지주의가 언급되면서 집중력을 많이 잃었다. 내 지식이 부족한 탓이리라. 다만, 왜 저자가 『아이온』을 글의 제목으로 삼았는지는 명시가 된다. 영지주의자의 주장 속에서 신은 의식도 없고 실질도 없으며, 남자도 여자도 아닌, 반대되는 것이 전혀 없는 '니르드반드바' 같은 존재이다. 그는 영원히 젊고, 남자이며 동시에 여자인 '불로의 아이온'이라고 불린다. 그는 자체 안에 모든 것을 포함하고 있으며 그 자신은 그 어떤 것에도 포함되지 않는다고 한다. 구스타프는 신이라는 존재를 어떻게 하면 설명할 수 있는지 꽤 고심을 했다. 영지주의 역시 모순과도 같은 언어 유희 속에서 신을 정의하려고 했다. 영원이란, 초월자란 본래 인간이 이해할 수 있는 영역이 아니라고, 인간은 신의 이해에 결코 도달할 수 없다고 선을 긋는 듯하다. 이 논리가 성립하면 자연스럽게, 스스로를 그리스도인이라 고백하는 자들은 자기들도 이해하지 못하는 어떤 내적인 체험에 의존하는 무지몽매한 자가 된다. 그리하여 예수를 믿는 자들을 미련하고 불쌍한 자들로 만든다. 그래서 기독교가 주류 사회였던 유럽 사회에서 이러한 주장들은 종종 공격을 받았다. 신성을 모독하는 것이 아니냐는 비판도 받았다.<br>&nbsp;하지만 언제나 기독교는 외부자의 관점에서 신랄하게 비판해 주는 존재가 필요하다. 하나님께서 모든 자들에게 믿음을 강요하지 않은 이유도 여기에 있지 않을까? 융은 삼위일체 교리가 현대인에게 역사적 괴짜로 해석되며, 교의가 개인의 내적 경험을 잇는 다리가 허물어져 버림으로써 신앙이 그 자체로 신성한 경험이 되었다고 지적한다. 그의 이런 목소리가 행여나 믿음이 약한 자들의 마음을 꺾을까 염려하는 이들은 융이나 니체, 다윈의 주장을 '허무맹랑한 헛소리'로 치부하고는 한다. 그러나 하나님의 시선에서 어떤 것이 완벽한 주장일 수 있을까? 그분은 인간의 논리를 두려워하지 않으신다. 세상의 어떤 존재도 그분의 거룩함을 조금도 훼손할 수 없다. 수많은 이들이 예수를 조롱하고 모독했으며, 그의 부활을 부인했으나, 그분은 지금도 전 인류의 마음 속에 계신다. 그러니 무슨 반박이 두려울까? 예수의 신성을 부인하는 자들의 소리를 경청하고 싶다. 그리고 그들에게 담담하게 증언하고 싶다. "당신 말이 맞을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나는 예수 그리스도를 믿습니다."<br>&nbsp;영원을 감당하지 못하는 이 땅의 우리는 그것의 가치를 매도하기에 바쁘다. 어떤 이는 신이 심심하지 않기 위해서 이 세계를 창조했다고 말한다. 영원이 해소할 수 없는 저주이고, 차라리 유한함을 택하겠다고 선언한다. 글쎄, 내가 장담할 수 있는 것은 시간과 공간을 초월한 개념인 영원 속에서 나는 이미 주님과 교제를 누리고 있다는 사실이다. 이미 그분은 자신의 나라를 이루셨고, 마르지 않는 사랑을 자녀들에게 더하여 주신다. 그 영원을 기꺼이 저버리는 것이 도리어 미련한 일이 아닌지. 그러니 나는 이 땅에서 충분히 미련해도 좋다. 조금 부족해도, 실패해도, 손해 봐도, 상처 받아도 괜찮다. 영원한 가치와 맞바꾸기에, 이 세상의 것들은 너무 사소한 것들이 아닌가? 다만 이 유한한 세상에 머문 시간을 소중히 여기길 바란다. 유한함 속에서 영원을 꿈꾼 자들에게 진정한 소망이 있다. 주님께서 모두에게 선물하신 인생을 누리기를 축복한다.&nbsp;]]></description><image><url>https://image.aladin.co.kr/product/9249/64/cover150/k662535110_1.jpg</url><link>https://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temId=92496401</link></image></item><item><author>starover</author><category>review</category><title>영감의 출발점과 종착역 - [해리스 버딕과 열네 가지 미스터리 - 14명의 경이로운 작가들이 들려주는 이야기]</title><link>https://blog.aladin.co.kr/755125167/17193835</link><pubDate>Fri, 03 Apr 2026 09:36: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s://blog.aladin.co.kr/755125167/17193835</guid><description><![CDATA[<table width="100%" height="30" border="0" align="center" cellpadding="0" cellspacing="0"><tr><td width="14"><img src="https://image.aladin.co.kr/img/blog/trans.gif" width="14"></td><td width="85"><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8901166151&TPaperId=17193835" target="_blank"><img src="https://image.aladin.co.kr/product/4781/89/coveroff/8901166151_1.jpg" width="75" border="0" class="box1"></a></td><td valign="top"><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8901166151&TPaperId=17193835" target="_blank" style="color:#386DA1;font-weight:bold">해리스 버딕과 열네 가지 미스터리 - 14명의 경이로운 작가들이 들려주는 이야기</a><br/>레모니 스니켓 외 지음, 크리스 반 알스버그 그림, 정회성 옮김 / 웅진주니어 / 2014년 10월<br/></td></tr></table><br/>&nbsp;소설은 언제나 장면으로 시작된다. 작가 자신의 머릿속에 재구성된 이미지든, 타인이 만든 예술 작품에서 비롯되었든, 그 장면에 대한 묘사가 소설의 출발점이 된다. 물론 그것이 언제나 작품의 시작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누군가는 결말 부분을 염두에 두고 플롯을 창작하며, 누군가는 중간 지점을 기준으로 양쪽에 살을 붙인다. 확실한 것은 첫 장면을 완벽하게 구상하고 출발하는 이는 아무도 없다는 것이다. 그들 모두 이 계획이 얼마든지 변동될 수 있음을 염두에 두고, 미지의 세계를 향한 여정을 이어 간다. 종착역에 이르고 나서야 한숨을 돌리며 그간의 일탈을 회고할 수 있게 된다.<br>&nbsp;『해리스 버딕과 열네 가지 미스터리』는 해리스 버딕이 남긴 열네 점의 기이한 그림에 대해 작가 열네 명이 의기투합하여 지은 이야기를 모아 놓은 책이다. "한 장면을 두고 자유롭게 이야기를 지어내라"는 명령은 모든 독자를 흥분케 하는 과제이다. '딕싯(Dixit)'이라는 보드게임이 생각나는, 그야말로 '창작 게임'이 아닐 수 없다. 이 책을 교육용으로 사용한다면, 아무래도 각자 이야기를 지어 낸 다음, 이 훌륭한 작가들이 만든 가상의 세계와 어떤 점이 비슷하고 다른지 확인하는 시간을 가질 수 있을 것이다. 어느 무엇도 정답이 될 수 없기에 모든 상상이 가치 있다. 그런 점에서 문학은 모든 것을 줄 지어 세우는 현대 문명의 필연에 정면으로 맞서는 힘을 가지고 있다.&nbsp;<br>&nbsp;그렇다고 모든 이야기가 똑같이 기억에 남는다는 뜻은 아니다. 어떤 독자에게는 부족한 완성도나 설득력이 거슬리기도 하고, 혹자에게는 그저 흥미롭지 않기도 할 것이다. 이것은 나도 마찬가지이다. 분량과 소재가 천차만별인 만큼, 마음에 드는 작품도 다를 것이다. 다섯 개만 콕 집어 보자면, 「7월의 이상한 하루」, 「하프」, 「일곱 개의 의자」, 「토리 선장」, 그리고 「메이플 거리의 집」이다. 이 중에서도 가장 완성도 있는 작품은 아무래도 스티븐 킹이 지은 마지막 작품이리라. 그러나 개인적으로 가장 인상 깊은 작품을 고르라고 하면, 「하프」를 말할 것이다. 보통 작품에서 두 명의 주인공이 병렬로 배치되면, 그들이 어떻게든 만나서 서로를 치유하는 서사가 펼쳐진다. 그런데 이 단편에서는 각자의 사투가 뜻하지 않게 서로를 돕는 일이 벌어진다. 서로를 모른 채 저주를 풀고, 마음을 달래는 결말이 어쩐지 뭉클했다. 우리네 삶도 사실은 눈에 보이지 않는 기적들로 가득하지 않은가? 각자가 치열하게 살아가는 것만으로도, 그 하루를 감당하는 것만으로도 다른 누군가에게 위로가 되지 않은가?&nbsp;&nbsp;대개의 작품이 환상적이고 미스터리한 소재를 취하고 있지만, 메시지는 거의 유사하다. 상처 받은 자들을 치유하는 서사가 그것이다. 「토리 선장」은 사고로 죽은 선장이 힘겹게 살아 가는 폴의 가게를 찾아와 도움을 주고 위로한다. 「메이플 거리의 집」은 집 안에서 자라는 신비한 금속이라는, 코스믹 호러를 연상시키는 소재를 취하지만, 하고 싶었던 말은 새아버지로 인해 고통 받는 가정의 구제였다. 해리스 버딕이 어떤 사람인지는 몰라도, 자신이 신기한 그림을 편집자에게 제공한 이유는, 그것을 통하여 아이들이 꿈을 꿀 수 있게 만들기 위함이 아니었을까? 그의 유산이 그를 알지 못하는 어린 독자에게 향한다면, 그래서 그들에게 새로운 비전을 준다면, 그것으로 만족하지 않았을까?<br>&nbsp;그러므로 영감의 출발점은 하나의 장면일지라도, 그것을 종착역까지 이끄는 힘은 타인을 향한 마음이다. 예술이란 본질적으로 이기심에서 출발하여 이타심으로 끝나야 한다. 자기 안에 갇혀 있는 자는 예술가의 자격이다. 처음에는 자신의 희노애락을 표현하기 위해 연습할 수 있으나, 거기서 벗어나지 못하면 끝없는 자기 복제를 반복할 뿐이다. 마음 밑바닥에 있는 감정을 애써 끄집어내기보다, 시선을 바깥으로 돌리면 무수히 많은 고통이 보인다. 따뜻한 마음을 품고 차가운 이야기를 하는 것이 예술의 궁극적인 방향이다. 아무리 그럴 듯한 메시지를 담아도, 그 안에 자기의 유익을 향한 탐욕이 가득하다면, 그것은 예술을 빙자한 영업에 불과하다. 영혼은 본질적으로 광활하다. 시간과 공간의 제약을 아득히 벗어나 있다. 예술이 영혼의 흔적을 발견할 수 있는 단서라면, 얼마든지 향유할 가치가 있다. 다만 무엇인가를 누릴 수록 마음이 메말라 간다면, 그것은 일종의 경고이다. 인생의 모든 요소는 그것을 살아 내는 자를 풍성하게 만들고, 깊어지게 만든다. 그러한 본질에서 벗어나 있다면, 글쎄,&nbsp;그 요소는 삶에서 그다지 필요하지 않을지도 모른다.]]></description><image><url>https://image.aladin.co.kr/product/4781/89/cover150/8901166151_1.jpg</url><link>https://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temId=47818992</link></image></item><item><author>starover</author><category>review</category><title>세계에 매이거나, 누리거나 - [지리의 힘 - 지리는 어떻게 개인의 운명을, 세계사를, 세계 경제를 좌우하는가]</title><link>https://blog.aladin.co.kr/755125167/17173462</link><pubDate>Wed, 25 Mar 2026 22:19: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s://blog.aladin.co.kr/755125167/17173462</guid><description><![CDATA[<table width="100%" height="30" border="0" align="center" cellpadding="0" cellspacing="0"><tr><td width="14"><img src="https://image.aladin.co.kr/img/blog/trans.gif" width="14"></td><td width="85"><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8993178690&TPaperId=17173462" target="_blank"><img src="https://image.aladin.co.kr/product/8864/8/coveroff/8993178690_2.jpg" width="75" border="0" class="box1"></a></td><td valign="top"><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8993178690&TPaperId=17173462" target="_blank" style="color:#386DA1;font-weight:bold">지리의 힘 - 지리는 어떻게 개인의 운명을, 세계사를, 세계 경제를 좌우하는가</a><br/>팀 마샬 지음, 김미선 옮김 / 사이 / 2016년 08월<br/></td></tr></table><br/>&nbsp;다소 투박한 번역인 『지리의 힘』의 원제는 'Prisoners of Geography'이다. 직역하자면, '지리의 죄수들' 정도로 된다. 이 책의 요지는, 현존하는 역사는 지리에 의해 결정되었고, 기술이 발전한 오늘날까지도 지리는 세계 정세에 강력한 힘을 끼치고 있다는 것이다. 그런 점에서, 지리의 영향으로부터 자유로운 자는 한 명도 없다. 인류의 일대기는 지리에 매인 채, 그것을 이용하거나 극복하려는 부류로 나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전 세계의 굵직한 나라나 대륙을 선정해서 그 나라의 역사에 지리가 미친 영향을 읽다 보면 현재의 국면이 꽤나 이해가 된다.&nbsp;&nbsp;첫 번째 장인 중국 편을 읽고, 중국이 왜 티베트나 네팔 등 상대적으로 규모가 작은 나라의 독립 여부에 그토록 집착하는지 알 수 있었다. 히말라야 산맥으로 인해 인도로 접근이 어려우나, 반면 인도는 티베트를 통해 강물의 수원을 확보할 수 있기 때문이었다. 9장인 인도와 파키스탄을 읽고, 두 나라가 그토록 오랜 갈등을 벌이는 까닭은 정치적 영향도 있었지만, 3000km가 넘는 국경을 맞대고 있는 탓도 있었다. 국경선의 길이와 위치가 모든 것을 설명하지는 못해도, 무시할 수 없는 요소인 것은 분명하다. 애시당초 한국이 선진국으로 부상하기 전부터 미국과 소련의 주목을 받은 것도 그 특유의 위치 때문이 아닌가? 일본이 독특하게 발달한 이유도 외부의 침략을 받지 않은 섬이기 때문이 아닌가? 동아시아 삼대장은 전 세계 어느 나라보다 지리에 의해 운명이 결정된 모범(?) 사례라고 보아야 한다.<br>&nbsp;지리에 매인 나라의 대표적인 경우는 러시아이다. 시베리아부터 동유럽에 이르는 방대한 영토를 러시아는 효율적으로 관리하고 싶었다. 그로 인한 혜택을 많이 누리기도 했다. 그러나 부동항(얼지 않는 항구)에 대한 갈망이 아프가니스탄 침공으로 이어졌고, 크림 반도를 향한 욕망이 우크라이나와의 갈등을 유발했다. 이밖에도 남아메리카, 아프리카는 자연적 지리로 인해 발전이나 문화적 교류의 가능성이 끊겼고, 이는 그들의 성장을 지연시켰다. 중동은 서양의 인위적인 국경선 긋기와 이슬람 종파 갈등으로 오랜 갈등을 맺고 있다. 여러모로 '지리의 죄수들' 내지는 지리 환경의 피해자라고 보아도 큰 무리는 없다.<br>&nbsp;반면, 미국은 지리를 풍요롭게 누린 몇 안 되는 나라들 중 하나이다. 천연자원이 풍부한 땅을 적절히 매입한 덕분에 자급자족이 가능하고, 각지에서 몰려오는 이들을 수용할 수 있는 넓은 국토를 보유했다. 그러면서도 방대한 해안선은 인접한 국가들인 캐나다와 멕시코가 분담해 준다. 물론 멕시코와 맞닿은 국경으로 인한 분쟁이 현재 미국의 뜨거운 감자로 여겨지고 있으나, 역사를 통틀어 보았을 때, 지리적으로 가장 축복 받은 나라가 아닐까 싶다. 보통 국가들은 지리적 조건이나 환경으로 발전이 가로막힌 경우가 많은데, 미국은 정반대의 결과를 받았으니 말이다. 대서양과 태평양에 동시에 영향력을 펼칠 수 있으니, 과연 서방 세계의 패권을 차지할 만하다.<br>&nbsp;21세기의 인류는 새로운 전환점을 맞이했다. 교통과 통신의 발달으로 지리적 제약이 그다지 치명적이지 않다. 그러나 그것을 아예 배제해서는 안 될 말이다. 지금도 각국에서 벌어지고 있는 첨예한 갈등을 이해하는 데에 있어서 '가치관의 차이'라거나 '원래 그런 것이다'라고 받아들여서는 안 된다. 왜 그럴 수밖에 없었는지 다양한 원인을 분석하고, 해결책을 모색해야 할 것이다. 나와 상관 없는 것처럼 여겨진다고? 한 번도 우리는 지리에서 자유로운 적이 없었다. 작든 크든 국지적인 갈등은 다른 곳으로 확산되기 마련이다. 세계화 시대인 요즘, 물리적 거리가 영향력에 비례하지 않는다. 인류는 필연적으로 세계에 매여 있으나, 그것을 누리기 위해서는 세계를 더욱 알아가고, 사랑으로 품는 마음이 필요하다. 이기심은 생존 확률을 반감시킬 뿐이다. 아마존의 환경 파괴와 중동의 종교 갈등, 아프리카의 빈민들, 유럽 연합의 엇갈리는 이해 관계, 세계 곳곳의 난민들에 대해 고민하고 공존의 방향을 모색하지 않으면 우리에게 모든 사안은 답답한 일들일 뿐이다. 그러나 풍성한 시각을 가지고 유한한 세계에 놓여짐을 감사할 때, 비로소 더 큰 꿈을 꿀 수 있다. 그대들이 세계를 누리는 자들로 하루하루를 기쁨으로 살아가길 소망한다.]]></description><image><url>https://image.aladin.co.kr/product/8864/8/cover150/8993178690_2.jpg</url><link>https://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temId=88640864</link></image></item></channel></rs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