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xml version="1.0" encoding="utf-8"?><?xml-stylesheet href="https://blog.aladin.co.kr/blog/rss/rssUserXSL.aspx" type="text/xsl" media="screen"?><rss version="2.0"><channel><title>이프리트의 서재입니다 (starover 서재)</title><link>https://blog.aladin.co.kr/755125167</link><language>ko-kr</language><description> 사색하는 자는 굴복하지 않는다. </description><copyright /><generator>Aladdin RSS(Alss) v0.9</generator><lastBuildDate>Sun, 05 Apr 2026 19:19:21 +0900</lastBuildDate><image><title>starover</title><url>http://image.aladdin.co.kr/Community/myface/pt_755125167625262.jpg</url><link>https://blog.aladin.co.kr/755125167</link><width>100</width><height>100</height><description>starover</description></image><item><author>starover</author><category>review</category><title>영감의 출발점과 종착역 - [해리스 버딕과 열네 가지 미스터리 - 14명의 경이로운 작가들이 들려주는 이야기]</title><link>https://blog.aladin.co.kr/755125167/17193835</link><pubDate>Fri, 03 Apr 2026 09:36: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s://blog.aladin.co.kr/755125167/17193835</guid><description><![CDATA[<table width="100%" height="30" border="0" align="center" cellpadding="0" cellspacing="0"><tr><td width="14"><img src="http://image.aladdin.co.kr/img/blog/trans.gif" width="14"></td><td width="85"><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8901166151&TPaperId=17193835" target="_blank"><img src="https://image.aladin.co.kr/product/4781/89/coveroff/8901166151_1.jpg" width="75" border="0" class="box1"></a></td><td valign="top"><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8901166151&TPaperId=17193835" target="_blank" style="color:#386DA1;font-weight:bold">해리스 버딕과 열네 가지 미스터리 - 14명의 경이로운 작가들이 들려주는 이야기</a><br/>레모니 스니켓 외 지음, 크리스 반 알스버그 그림, 정회성 옮김 / 웅진주니어 / 2014년 10월<br/></td></tr></table><br/>&nbsp;소설은 언제나 장면으로 시작된다. 작가 자신의 머릿속에 재구성된 이미지든, 타인이 만든 예술 작품에서 비롯되었든, 그 장면에 대한 묘사가 소설의 출발점이 된다. 물론 그것이 언제나 작품의 시작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누군가는 결말 부분을 염두에 두고 플롯을 창작하며, 누군가는 중간 지점을 기준으로 양쪽에 살을 붙인다. 확실한 것은 첫 장면을 완벽하게 구상하고 출발하는 이는 아무도 없다는 것이다. 그들 모두 이 계획이 얼마든지 변동될 수 있음을 염두에 두고, 미지의 세계를 향한 여정을 이어 간다. 종착역에 이르고 나서야 한숨을 돌리며 그간의 일탈을 회고할 수 있게 된다.<br>&nbsp;『해리스 버딕과 열네 가지 미스터리』는 해리스 버딕이 남긴 열네 점의 기이한 그림에 대해 작가 열네 명이 의기투합하여 지은 이야기를 모아 놓은 책이다. "한 장면을 두고 자유롭게 이야기를 지어내라"는 명령은 모든 독자를 흥분케 하는 과제이다. '딕싯(Dixit)'이라는 보드게임이 생각나는, 그야말로 '창작 게임'이 아닐 수 없다. 이 책을 교육용으로 사용한다면, 아무래도 각자 이야기를 지어 낸 다음, 이 훌륭한 작가들이 만든 가상의 세계와 어떤 점이 비슷하고 다른지 확인하는 시간을 가질 수 있을 것이다. 어느 무엇도 정답이 될 수 없기에 모든 상상이 가치 있다. 그런 점에서 문학은 모든 것을 줄 지어 세우는 현대 문명의 필연에 정면으로 맞서는 힘을 가지고 있다.&nbsp;<br>&nbsp;그렇다고 모든 이야기가 똑같이 기억에 남는다는 뜻은 아니다. 어떤 독자에게는 부족한 완성도나 설득력이 거슬리기도 하고, 혹자에게는 그저 흥미롭지 않기도 할 것이다. 이것은 나도 마찬가지이다. 분량과 소재가 천차만별인 만큼, 마음에 드는 작품도 다를 것이다. 다섯 개만 콕 집어 보자면, 「7월의 이상한 하루」, 「하프」, 「일곱 개의 의자」, 「토리 선장」, 그리고 「메이플 거리의 집」이다. 이 중에서도 가장 완성도 있는 작품은 아무래도 스티븐 킹이 지은 마지막 작품이리라. 그러나 개인적으로 가장 인상 깊은 작품을 고르라고 하면, 「하프」를 말할 것이다. 보통 작품에서 두 명의 주인공이 병렬로 배치되면, 그들이 어떻게든 만나서 서로를 치유하는 서사가 펼쳐진다. 그런데 이 단편에서는 각자의 사투가 뜻하지 않게 서로를 돕는 일이 벌어진다. 서로를 모른 채 저주를 풀고, 마음을 달래는 결말이 어쩐지 뭉클했다. 우리네 삶도 사실은 눈에 보이지 않는 기적들로 가득하지 않은가? 각자가 치열하게 살아가는 것만으로도, 그 하루를 감당하는 것만으로도 다른 누군가에게 위로가 되지 않은가?&nbsp;&nbsp;대개의 작품이 환상적이고 미스터리한 소재를 취하고 있지만, 메시지는 거의 유사하다. 상처 받은 자들을 치유하는 서사가 그것이다. 「토리 선장」은 사고로 죽은 선장이 힘겹게 살아 가는 폴의 가게를 찾아와 도움을 주고 위로한다. 「메이플 거리의 집」은 집 안에서 자라는 신비한 금속이라는, 코스믹 호러를 연상시키는 소재를 취하지만, 하고 싶었던 말은 새아버지로 인해 고통 받는 가정의 구제였다. 해리스 버딕이 어떤 사람인지는 몰라도, 자신이 신기한 그림을 편집자에게 제공한 이유는, 그것을 통하여 아이들이 꿈을 꿀 수 있게 만들기 위함이 아니었을까? 그의 유산이 그를 알지 못하는 어린 독자에게 향한다면, 그래서 그들에게 새로운 비전을 준다면, 그것으로 만족하지 않았을까?<br>&nbsp;그러므로 영감의 출발점은 하나의 장면일지라도, 그것을 종착역까지 이끄는 힘은 타인을 향한 마음이다. 예술이란 본질적으로 이기심에서 출발하여 이타심으로 끝나야 한다. 자기 안에 갇혀 있는 자는 예술가의 자격이다. 처음에는 자신의 희노애락을 표현하기 위해 연습할 수 있으나, 거기서 벗어나지 못하면 끝없는 자기 복제를 반복할 뿐이다. 마음 밑바닥에 있는 감정을 애써 끄집어내기보다, 시선을 바깥으로 돌리면 무수히 많은 고통이 보인다. 따뜻한 마음을 품고 차가운 이야기를 하는 것이 예술의 궁극적인 방향이다. 아무리 그럴 듯한 메시지를 담아도, 그 안에 자기의 유익을 향한 탐욕이 가득하다면, 그것은 예술을 빙자한 영업에 불과하다. 영혼은 본질적으로 광활하다. 시간과 공간의 제약을 아득히 벗어나 있다. 예술이 영혼의 흔적을 발견할 수 있는 단서라면, 얼마든지 향유할 가치가 있다. 다만 무엇인가를 누릴 수록 마음이 메말라 간다면, 그것은 일종의 경고이다. 인생의 모든 요소는 그것을 살아 내는 자를 풍성하게 만들고, 깊어지게 만든다. 그러한 본질에서 벗어나 있다면, 글쎄,&nbsp;그 요소는 삶에서 그다지 필요하지 않을지도 모른다.]]></description><image><url>https://image.aladin.co.kr/product/4781/89/cover150/8901166151_1.jpg</url><link>https://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temId=47818992</link></image></item><item><author>starover</author><category>review</category><title>세계에 매이거나, 누리거나 - [지리의 힘 - 지리는 어떻게 개인의 운명을, 세계사를, 세계 경제를 좌우하는가]</title><link>https://blog.aladin.co.kr/755125167/17173462</link><pubDate>Wed, 25 Mar 2026 22:19: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s://blog.aladin.co.kr/755125167/17173462</guid><description><![CDATA[<table width="100%" height="30" border="0" align="center" cellpadding="0" cellspacing="0"><tr><td width="14"><img src="http://image.aladdin.co.kr/img/blog/trans.gif" width="14"></td><td width="85"><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8993178690&TPaperId=17173462" target="_blank"><img src="https://image.aladin.co.kr/product/8864/8/coveroff/8993178690_2.jpg" width="75" border="0" class="box1"></a></td><td valign="top"><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8993178690&TPaperId=17173462" target="_blank" style="color:#386DA1;font-weight:bold">지리의 힘 - 지리는 어떻게 개인의 운명을, 세계사를, 세계 경제를 좌우하는가</a><br/>팀 마샬 지음, 김미선 옮김 / 사이 / 2016년 08월<br/></td></tr></table><br/>&nbsp;다소 투박한 번역인 『지리의 힘』의 원제는 'Prisoners of Geography'이다. 직역하자면, '지리의 죄수들' 정도로 된다. 이 책의 요지는, 현존하는 역사는 지리에 의해 결정되었고, 기술이 발전한 오늘날까지도 지리는 세계 정세에 강력한 힘을 끼치고 있다는 것이다. 그런 점에서, 지리의 영향으로부터 자유로운 자는 한 명도 없다. 인류의 일대기는 지리에 매인 채, 그것을 이용하거나 극복하려는 부류로 나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전 세계의 굵직한 나라나 대륙을 선정해서 그 나라의 역사에 지리가 미친 영향을 읽다 보면 현재의 국면이 꽤나 이해가 된다.&nbsp;&nbsp;첫 번째 장인 중국 편을 읽고, 중국이 왜 티베트나 네팔 등 상대적으로 규모가 작은 나라의 독립 여부에 그토록 집착하는지 알 수 있었다. 히말라야 산맥으로 인해 인도로 접근이 어려우나, 반면 인도는 티베트를 통해 강물의 수원을 확보할 수 있기 때문이었다. 9장인 인도와 파키스탄을 읽고, 두 나라가 그토록 오랜 갈등을 벌이는 까닭은 정치적 영향도 있었지만, 3000km가 넘는 국경을 맞대고 있는 탓도 있었다. 국경선의 길이와 위치가 모든 것을 설명하지는 못해도, 무시할 수 없는 요소인 것은 분명하다. 애시당초 한국이 선진국으로 부상하기 전부터 미국과 소련의 주목을 받은 것도 그 특유의 위치 때문이 아닌가? 일본이 독특하게 발달한 이유도 외부의 침략을 받지 않은 섬이기 때문이 아닌가? 동아시아 삼대장은 전 세계 어느 나라보다 지리에 의해 운명이 결정된 모범(?) 사례라고 보아야 한다.<br>&nbsp;지리에 매인 나라의 대표적인 경우는 러시아이다. 시베리아부터 동유럽에 이르는 방대한 영토를 러시아는 효율적으로 관리하고 싶었다. 그로 인한 혜택을 많이 누리기도 했다. 그러나 부동항(얼지 않는 항구)에 대한 갈망이 아프가니스탄 침공으로 이어졌고, 크림 반도를 향한 욕망이 우크라이나와의 갈등을 유발했다. 이밖에도 남아메리카, 아프리카는 자연적 지리로 인해 발전이나 문화적 교류의 가능성이 끊겼고, 이는 그들의 성장을 지연시켰다. 중동은 서양의 인위적인 국경선 긋기와 이슬람 종파 갈등으로 오랜 갈등을 맺고 있다. 여러모로 '지리의 죄수들' 내지는 지리 환경의 피해자라고 보아도 큰 무리는 없다.<br>&nbsp;반면, 미국은 지리를 풍요롭게 누린 몇 안 되는 나라들 중 하나이다. 천연자원이 풍부한 땅을 적절히 매입한 덕분에 자급자족이 가능하고, 각지에서 몰려오는 이들을 수용할 수 있는 넓은 국토를 보유했다. 그러면서도 방대한 해안선은 인접한 국가들인 캐나다와 멕시코가 분담해 준다. 물론 멕시코와 맞닿은 국경으로 인한 분쟁이 현재 미국의 뜨거운 감자로 여겨지고 있으나, 역사를 통틀어 보았을 때, 지리적으로 가장 축복 받은 나라가 아닐까 싶다. 보통 국가들은 지리적 조건이나 환경으로 발전이 가로막힌 경우가 많은데, 미국은 정반대의 결과를 받았으니 말이다. 대서양과 태평양에 동시에 영향력을 펼칠 수 있으니, 과연 서방 세계의 패권을 차지할 만하다.<br>&nbsp;21세기의 인류는 새로운 전환점을 맞이했다. 교통과 통신의 발달으로 지리적 제약이 그다지 치명적이지 않다. 그러나 그것을 아예 배제해서는 안 될 말이다. 지금도 각국에서 벌어지고 있는 첨예한 갈등을 이해하는 데에 있어서 '가치관의 차이'라거나 '원래 그런 것이다'라고 받아들여서는 안 된다. 왜 그럴 수밖에 없었는지 다양한 원인을 분석하고, 해결책을 모색해야 할 것이다. 나와 상관 없는 것처럼 여겨진다고? 한 번도 우리는 지리에서 자유로운 적이 없었다. 작든 크든 국지적인 갈등은 다른 곳으로 확산되기 마련이다. 세계화 시대인 요즘, 물리적 거리가 영향력에 비례하지 않는다. 인류는 필연적으로 세계에 매여 있으나, 그것을 누리기 위해서는 세계를 더욱 알아가고, 사랑으로 품는 마음이 필요하다. 이기심은 생존 확률을 반감시킬 뿐이다. 아마존의 환경 파괴와 중동의 종교 갈등, 아프리카의 빈민들, 유럽 연합의 엇갈리는 이해 관계, 세계 곳곳의 난민들에 대해 고민하고 공존의 방향을 모색하지 않으면 우리에게 모든 사안은 답답한 일들일 뿐이다. 그러나 풍성한 시각을 가지고 유한한 세계에 놓여짐을 감사할 때, 비로소 더 큰 꿈을 꿀 수 있다. 그대들이 세계를 누리는 자들로 하루하루를 기쁨으로 살아가길 소망한다.]]></description><image><url>https://image.aladin.co.kr/product/8864/8/cover150/8993178690_2.jpg</url><link>https://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temId=88640864</link></image></item><item><author>starover</author><category>review</category><title>사소함이 쌓인다 그렇게 삶이 된다 - [공터에서]</title><link>https://blog.aladin.co.kr/755125167/17170452</link><pubDate>Tue, 24 Mar 2026 17:51: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s://blog.aladin.co.kr/755125167/17170452</guid><description><![CDATA[<table width="100%" height="30" border="0" align="center" cellpadding="0" cellspacing="0"><tr><td width="14"><img src="http://image.aladdin.co.kr/img/blog/trans.gif" width="14"></td><td width="85"><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896574587X&TPaperId=17170452" target="_blank"><img src="https://image.aladin.co.kr/product/10060/59/coveroff/896574587x_1.jpg" width="75" border="0" class="box1"></a></td><td valign="top"><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896574587X&TPaperId=17170452" target="_blank" style="color:#386DA1;font-weight:bold">공터에서</a><br/>김훈 지음 / 해냄 / 2017년 02월<br/></td></tr></table><br/>&nbsp;글의 조각이 모여 소설이 된다. 문학이 삶을 반영하듯, 사소함이 차곡차곡 쌓여 역사를 만든다. 『공터에서』는 분석해야 한다는 강박을 빼고, 창작자가 생각한 파편을 조립해야 책의 의미가 완성된다. 대부분의 작가들은 반드시 써야 하는 장면을 점 찍어 두고 상상력이라는 선을 이용해 그것을 잇는다. 점 찍기는 너무나 간단하고 열띠지만, 그것을 아름답게 만드는 선 긋기는 고통스럽고 의욕을 떨어뜨린다. 이 소설의 아쉬운 점이라고 하면, 그 선을 긋는 과정이 다소 선명하게 노출된다는 것이다. 역사의 특정 장면에 대한 묘사는 생생하나, 독자가 집중해야 하는 후반의 서사는 얇다. 작가의 의도일지는 몰라도 개인사로 넘어온 이후의 이야기는 파편적이다.<br>&nbsp;박상희에 대한 태도도 다소 아쉽다. 이 소설에서 그녀는 매우 완벽한 인물로 등장한다. 서양 미술을 전공하고 미술 학원 강사를 하면서, 군대에 간 마차세를 기다려 주는 한편, 결혼한 이후에도 큰 다툼 없이 남편을 보필한다. 그녀가 생명을 잉태하는 부분에 대한 묘사는 탁월하나, 별다른 굴곡 없이 마차세를 지지하는 박상희의 존재가 어쩐지 판타지처럼 여겨진다. 능력, 성품, 사랑, 모든 점에서 완벽한 이 인물은 존경 받기 합당하나, 그가 그리는 세계에 과연 그런 인물이 몇이나 되었을까? 그리고 그런 여자가 마차세와 같은 불완전한 존재를 품은 것은 얼마나 비현실적인가? 박상희라는 캐릭터를 너무나 아꼈기에, 나는 그녀의 연약한 부분과 약점을 더 보고 싶었다. 그녀에게 상처가 없어서 아쉬움이 남는다.<br>&nbsp;그렇지만 마동수, 마장세, 마차세로 이어져 내려오는 한국 현대사의 단면은 촘촘하게 구현되어 있다. 흥남 철수와 베트남 전쟁과 같은 굵직한 역사의 기록과 처절하기 짝이 없는 개인사가 교차된다. 분명히 나는 역사적 사건보다 마차세가 치러야 하는 삶이라는 전쟁에 더욱 몰입했다. 그 시절 모두가 힘들게 살았건만, 그중에서도 마차세는 치매에 걸려 쪼그라드는 아버지와 그런 아버지를 보필하다가 자신도 요양원에 들어가는 이도순을 지켜봐야 했고, 다니던 회사가 부도를 맞아 새로운 직장을 구하려 하지만 매번 좌절했으며, 오장춘의 꾀임에 넘어가 형의 불법적인 사업에 휘말렸다. 그의 파란만장한 일대기에 나는 가슴을 졸였다. 작가는 역사적 사건의 아주 작은 순간까지 포착하다가, 한 남자의 개인적인 일대기에 대해서는 시야를 넓힌다. 두 축의 이야기 속에서 사소함은 축적되고, 그것이 마차세의 삶을 이룬다.<br>&nbsp;마차세와 마장세의 삶에서 그들의 결핍을 본다. 마차세는 자신을 지우려 했던 어머니에 대한 원망을 간직했고, 마장세는 아버지와 같은 삶을 살고 싶지 않아서 가족을 떠났다. 그러나 마차세는 누니라는 딸을 통해 그것을 해소했고, 마장세는 린다와 결합하지만, 그녀의 떠남으로 인해 상처가 악화된다. 각 인물이 통과한 삶의 여정이 새옹지마 같았다. 마차세는 우여곡절 끝에 결국 화목한 가정을 이루었고, 마장세는 사업으로 잠시 성공을 얻은 듯 했지만, 그 실체가 들통나자 모든 것을 잃었다. 비슷한 출발점에서 시작했는데, 같은 역사를 겪었는데, 형제였던 두 사람은 왜 다른 운명을 맞이했을까? 여러 가지 이유가 있을 것이다. 독자는 사소한 것들에서 그 단서를 찾아야 한다. 세상을 바꾸는 것은 모조리 사소함에서 비롯된다. 다른 사람의 삶을 주의 깊게 들여다보지 않으면 도저히 답이 나오지 않는다. 그 수고로움을 감내하는 이들에게만 주어진 현재 너머를 보는 여유가 주어진다.<br>&nbsp;마동수, 이도순, 마장세, 마차세, 박상희, 누니가 통과했던 현실이 지금과 다른가? 어쩌면 격동의 시기였던 과거보다 오늘이 훨씬 더 불안정하고 위태롭다. 일제강점기, 한국전쟁, 베트남전쟁, 대통령 암살, 독재라는 거대한 암흑은 지나갔으나, 개인의 삶에 드리운 먹구름은 더 치명적이고 위험하다. 벌이가 안정되고 기술이 발전했지만, 행복은 찾아왔는가? 각자에게 사랑할 여유가 있는가? 우리 모두는 여전히 공터에서 어떤 해답이 나타나길 기다리며 방황하고 있다. 진정한 사랑과 행복을 찾아 헤매지만, 실마리를 실시간으로 놓치고 있다. 일상의 사소한 순간에 집중할 수밖에, 거대한 서사에 목을 매기보다 주어진 삶에 최선을 다할 수밖에 없다. 여전히 세상은 무섭고, 달아날 수 없다. 우리가 마주해야 할 공포를 직면하고, 맞설 수 있기를. 감당했던 하루하루가 쌓여 역사가 되는 기적을 경험하는 날이 올 테니.&nbsp; &nbsp;]]></description><image><url>https://image.aladin.co.kr/product/10060/59/cover150/896574587x_1.jpg</url><link>https://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temId=100605910</link></image></item><item><author>starover</author><category>기억하고 싶은 책들</category><title>이 세상 모든 것들을 사랑하겠네 - [고흐의 하나님]</title><link>https://blog.aladin.co.kr/755125167/17146522</link><pubDate>Thu, 12 Mar 2026 19:45: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s://blog.aladin.co.kr/755125167/17146522</guid><description><![CDATA[<table width="100%" height="30" border="0" align="center" cellpadding="0" cellspacing="0"><tr><td width="14"><img src="http://image.aladdin.co.kr/img/blog/trans.gif" width="14"></td><td width="85"><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893650276X&TPaperId=17146522" target="_blank"><img src="https://image.aladin.co.kr/product/691/47/coveroff/893650276x_2.jpg" width="75" border="0" class="box1"></a></td><td valign="top"><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893650276X&TPaperId=17146522" target="_blank" style="color:#386DA1;font-weight:bold">고흐의 하나님</a><br/>안재경 지음 / 홍성사 / 2010년 04월<br/></td></tr></table><br/>&nbsp;저자에게 직접 선물 받은 책은 『고흐의 하나님』이 처음일 거야. 미술에 조예가 없는 나는 고흐의 이름만 들었지, 그의 작품에 담긴 정서와 의미를 헤아릴 수 없었어. 고흐가 신학교까지 갔다가 쫓겨났다는 사실을 이제야 알았어. 하나님을 사랑했고, 가난한 자들을 품었기에 그들처럼 살고자 했지. 세상 모든 것을 사랑했기에 거듭되는 발작 속에서도 그림을 포기하지 않았고, 그리 아름답지 못한 작별임에도 기꺼이 받아들였나 봐. 혹자는 그의 인생을 실패했다고 여길지 몰라도, 그의 걸음걸음마다 하나님이 동행했다면, 결과만으로 빈센트의 인생을 평가하기에는 무리야.<br>&nbsp;이 책은 고흐의 작품을 테마별로 전시하고, 친절하게 해설해 주는 큐레이터 같아. 전에는 눈여겨보지 않았던 그림들의 의미가 선명하게 박혀. &lt;감자 먹는 사람들&gt;에 성찬 공동체가 담겨 있다는 사실, &lt;별이 빛나는 밤&gt;에 주님과의 합일을 꿈꾸는 소망이 담겨 있다는 것을 알고 나니 조금은 다르게 보이는 것 같아. 빈센트의 삶과 그의 작품을 별개로 놓을 수 없어. 언어로 정보를 전달하는 것에 익숙한 나는 여전히 그림을 해석하는 일에 어려움을 겪지만, 어쩌면 미술이야말로 AI가 흉내낼 수 없는 인류 최후의 보루라는 생각도 들어. 화법이나 기풍은 흉내낼지 몰라도 그 안에 영혼이 없달까? 인생이 없는 존재이기에 어떤 그림에도 자신을 투영할 수 없겠지. 새삼스럽게 주어진 삶에 감사하게 되는 순간이야.<br>&nbsp;빈센트의 삶을 들여보고 있노라면, 조용필의 &lt;바람의 노래&gt;의 가사가 떠올라. "보다 많은 실패와 고난이 비켜갈 수 없다는 걸 우린 깨달았네. 이제 그 해답이 사랑이라면 나는 이 세상 모든 것들을 사랑하겠네." 그래서 그는 유럽 전역을 걸으며 마주한 세상을 영혼에 담았어. 일본의 자연 친화적인 사상과 불교에 매료되기도 해. 거리를 방황하는 과부를 거두어 그녀와 그의 아이를 책임지려 하기도 해. 하지만 그의 삶은 결점투성이였어. 동생 떼오의 집에 머무르며 손님들에게 화를 퍼부었어. 누구와도 잘 어울리지 못했고, 그래서 평생 혼자였지. 세상 모든 것을 사랑하겠다는 다짐은 빈센트에게 엄청난 절망이었을 거야. 눈앞의 사람도 사랑할 수 없는 무력함 속에 놓였겠지.<br>&nbsp;이 시대의 그리스도인이 통과해야 하는 믿음의 여정도 고흐와 같을지 몰라. 주님께 내 삶을 드린다고 결단하고, 그분의 사랑을 닮고 싶다고 간구하지만, 전혀 변하지 않는 현실 앞에서 좌절하지. 종교 공동체는 나를 인정해 주지 않고, 사람들은 나를 피하기도 해. 믿음이 충만해졌다가도 삶의 폭풍 속에 꺾이기도 하고, 정말로 하나님이 살아 계신지 의심이 들기도 하지. 그럴 때 나는 무슨 말을 해 주어야 할까? 막연하게 기도하고, 기다리라는 말을 해야 할까? 조심스럽게 제안하고 싶은 말은, 나의 것을 정말 모두 내려놓았는지 묻고 싶어.<br>&nbsp;고흐에게는 그림이 자신의 정체성이었겠지. 이것을 포기하는 일이 결코 쉽지 않았을 거야. "주님, 당신을 위해서라면 내가 가장 사랑하고 아끼는 화가로서의 삶도 포기하겠습니다"라는 결단을 내리는 일은 어려웠을 거야. 그런데 신기하게도, 바로 그때부터 하나님은 고흐를 사용하기 시작했어. 더 이상 자신의 힘과 의지로 꿈을 붙드는 것이 아니라, 주님께서 이끄시는 대로 은사를 쓰기 시작한 거야. 주님께 내 삶을 드리는 것은 모든 소유와 욕망을 포기하고 교회 안으로 들어가라는 의미가 아니야. 그런 삶도 참 귀하지만, 자신의 구원밖에 이루지 못하지. 고흐는 다시 세상에 보내졌어. 외로움과 궁핍함이 함께 했지만, 그렇기에 낮은 자들과 위태로운 자들의 마음을 이해했을 거야. 그리고 비로소 그의 붓은 자신의 뜻이 아닌 그리스도를 드러내기 위해 사용되었지. 누군가는 렘브란트처럼 기독교적 소재를 도입하지 않았기 때문에 고흐의 작품을 기독교적으로 해석하는 것은 무리라고 말할 거야. 그 말이 맞아. 하지만 다르게도 볼 수 있지. 그것이 예술의 특징이야. 정답을 강요하는 이 세상의 원리 속에서 정해진 답은 없다고 외치는, 시대의 흐름에 정통으로 거스르는 것이 문화의 옷을 입은 예술이 쓰임 받는 방식이겠지.<br>&nbsp;삶의 이유에 대해 고민하고 있니? 사실 정답은 나와 있어. 사랑하기 위해서야. 그러나 막상 세상에 발을 들이면 말로는 너무 쉬웠던 사랑이 삶으로 옮기기에는 너무 어렵다는 걸 알게 돼. 그 마음 충분히 이해해. 때로는 내 힘으로 안 되는 것이 있음을 인정해야 하니까. 언제나 정답을 알고 난 후에 실천에 옮기는 것이 지혜롭고, 그렇지 않은 자를 미련하다고 말하는 추세야. 먼저 사랑을 받아야만 그에 대해 반응하겠다고 호언장담하는 세대야. 그러나 항상 사랑은 먼저 마음을 여는 자에게 허락되더라. 사랑이 삶의 원동력이 되는 것이 아니라, 삶이 사랑의 원동력이 된다는 사실을 납득하려면, 결국 주님의 시선을 갖출 수밖에 없어. 예수 그리스도는 세상 모든 것을 사랑한 유일한 존재니까. 전부를 이해하지 못해도 일단 순종하는 자에게 사랑의 실마리가 주어지더라. 기꺼이 실패하고, 기꺼이 상처 받고, 기꺼이 낮아지고, 기꺼이 손해 보는 네가 되기를.]]></description><image><url>https://image.aladin.co.kr/product/691/47/cover150/893650276x_2.jpg</url><link>https://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temId=6914750</link></image></item><item><author>starover</author><category>review</category><title>겪고 나서야 이해되는 것 - [모순 - 개정판]</title><link>https://blog.aladin.co.kr/755125167/17122765</link><pubDate>Sat, 28 Feb 2026 23:09: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s://blog.aladin.co.kr/755125167/17122765</guid><description><![CDATA[<table width="100%" height="30" border="0" align="center" cellpadding="0" cellspacing="0"><tr><td width="14"><img src="http://image.aladdin.co.kr/img/blog/trans.gif" width="14"></td><td width="85"><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8998441012&TPaperId=17122765" target="_blank"><img src="https://image.aladin.co.kr/product/2584/37/coveroff/8998441012_3.jpg" width="75" border="0" class="box1"></a></td><td valign="top"><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8998441012&TPaperId=17122765" target="_blank" style="color:#386DA1;font-weight:bold">모순 - 개정판</a><br/>양귀자 지음 / 쓰다 / 2013년 04월<br/></td></tr></table><br/>&nbsp;삶이 모순으로 가득함을, 인간은 쉽게 인정하지 못한다. 어떻게든 인과 관계를 설정하고, 합리적인 이유를 덧붙여서 만사를 설명하려고 한다. 하지만 실로 삶이란 설명하려 할수록 그럴 수 없음이 드러난다. 어떤 사람을 사랑했던 그 이유가 미움의 계기가 되고, 누가 봐도 보필인 사람을 멀리하며, 가난한 자가 부유한 자보다 행복에 가깝다. 무엇보다 각자의 인생에게 반대편 상황에 대한 동경이 있다. 부족한 아비를 둔 자식은 그 아비를 외면하려고 하나, 끝내 그를 포기할 수 없고 그를 닮아간다. 가난에 진절머리가 난 자들은 부자를 부러워하지만, 부자는 걱정 없이 살고 싶어 한다. 인간에게는 자신의 힘으로 해결될 수 없는 결핍이 있고, 그것을 몸소 체험하고 나서야 이해한다.<br>&nbsp;『모순』은 지극히 평범해 보이나, 자세히 들여다보면 기구한, 정상적인 인물로 보이나 속은 모순으로 찬 안진진의 일대기를 그린다. 그 삶의 편린을 들여다보고 있으면, 지나치게 솔직한 것에 거부감이 들기도 하고, 시시콜콜한 이야기를 들어주느라 지치기도 하지만, 끝내 그녀가 통과하는 비극에 참여하게 된다. 마치 그것이 모든 인간의 운명인 듯이 말이다. 이별은 예고 없이 찾아오고, 재회도 갑작스럽게 일어난다. 그 상황에서 진진이 할 수 있는 것이라고는 바보 같은 선택을 반복할 뿐이다. 누구한테 들려주어도 어리석었다고 말할 짓만 벌인다. 하지만 그것이야말로 "내 인생에 나의 온 생애를 다 걸어야 해"라는 다짐을 실현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었다.<br>&nbsp;어쩌면 이 오래된 소설은 안진진의 작은 다짐에서 시작되었을지도 모른다. 모든 것이 무미건조했던 그녀는 담담하게 가난에 저항했고, 마음이 여유로워 보였던 이모를 따른다. 자유로운 아비를 끝내 사랑하는 어머니, 용서를 넘어서 불구나 다름 없는 남편을 돌보는 어머니를 거부한다. 나영규는 철저히 계획 속에서 자신을 사랑했고, 김장우는 온 마음을 다해 자신을 사랑했다. 안진진은 어떤 것은 선택으로, 어떤 것은 받음으로 엇갈린 운명을 맛본다. 자신을 알아보지 못하는 아버지께 돌아가고, 이모부와 다름 없는 나영규를 선택한다. 행복에 잠겨 있는 줄 알았던 이모는 불행과 불안 속에서 침식되고 있었다. 진상이 밝혀졌을 때는 이미 돌이킬 수 없었다. 그렇게 상실을 겪음으로 안진진은 인생이 모순투성이임을 이해한다.<br>&nbsp;아마 인간이 맞닥뜨리는 가장 큰 모순은 이것이 아닐까. 죽음을 받아내는 것은 산 자의 몫이다. 극복할 수 없는 죽음의 고통과 아픔을 견디는 일은 오직 생존자의 영역이다. 죽은 자가 통과한 영역을 끝내 남겨진 자는 알 수 없음이 결코 해결되지 않는 모순이리라. 세상살이에 놓인 우리는 종종 이러한 논의를 잊고, 외면한다. 마치 죽음이 나와 전혀 무관한 일인 것처럼, 타인의 고통과 몰락이 그들 자신의 모순으로 인한 것이라고 여긴다. 산 자들끼리 죽음에 대해 나누지 않는 것이 인간의 가장 큰 모순이다. 아마도, 죽음이란 겪고 나서야 이해되는 인생의 모토를 정면으로 거스르는 유일한 관념이기 때문이리라.&nbsp;<br>&nbsp;오늘날 많은 이들이 '카르페 디엠(Carpe Diem)'을 인생의 격언으로 삼는다. 마치 주어진 현재를 마음껏 즐기라는 선조들의 조언처럼 보인다. 하지만 이 라틴어 경구가 완성되려면 반드시 '메멘토 모리(Memento Mori)', '죽음을 기억하라'가 동반되어야 한다. 내가 언젠가 죽는다는 사실을 인식할 때, 현재는 너무나 소중해진다. 누구도 지금을 붙잡을 수 없기 때문이다. 당장 눈앞에 보이지 않는 세상을 꿈꾼 자에게만 진정한 오늘이 주어진다. 그저 눈앞의 즐거움만을 따르며 산다면, 반드시 자기 안의 모순과 직면하게 된다. 그때 좌절하고 아예 무너져버리느니, 우리의 일상을 적당한 무지와 적당한 가난과 적당한 고통으로 채우는 것이 오히려 행복에 가깝다. 완벽하게 안전하고, 완벽하게 건강하고, 완벽하게 편안한 상태를 꿈꾸며 살아간다면, 글쎄, 그 꿈이 당신을 좀먹을 것이다. 인간의 자체적인 모순과 불완전함을 생각한다면, 조금은 더 미련하게 살아가도, 조금은 더 손해 봐도, 조금은 더 따뜻하게 지내도 괜찮지 않을까?]]></description><image><url>https://image.aladin.co.kr/product/2584/37/cover150/8998441012_3.jpg</url><link>https://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temId=25843736</link></image></item><item><author>starover</author><category>review</category><title>한 권의 여정이 끝나고 나면 - [나의 돈키호테 (꿈의 책장 에디션)]</title><link>https://blog.aladin.co.kr/755125167/17105919</link><pubDate>Sun, 22 Feb 2026 00:13: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s://blog.aladin.co.kr/755125167/17105919</guid><description><![CDATA[<table width="100%" height="30" border="0" align="center" cellpadding="0" cellspacing="0"><tr><td width="14"><img src="http://image.aladdin.co.kr/img/blog/trans.gif" width="14"></td><td width="85"><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K032035585&TPaperId=17105919" target="_blank"><img src="https://image.aladin.co.kr/product/35336/63/coveroff/k032035585_2.jpg" width="75" border="0" class="box1"></a></td><td valign="top"><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K032035585&TPaperId=17105919" target="_blank" style="color:#386DA1;font-weight:bold">나의 돈키호테 (꿈의 책장 에디션)</a><br/>김호연 지음 / 나무옆의자 / 2024년 04월<br/></td></tr></table><br/>&nbsp;어쩐지 긴 글을 읽고 싶었다. 어렸을 때부터 나는 두꺼운 책에 설렜다. 그 방대한 이야기가 주는 도전, 모험을 시작할 때의 설렘, 그리고 여정의 끝에 성장하게 될 나에 대해 기대했다. 그러다 나는 긴 글을 쓰고 싶었다. 초등학교 6학년 때 시작된 무모한 돌진은 현재진행형이다. 현실이라는 것에 치여 책 읽을 시간도 없다는 사람들 틈에서, 나는 한가로이 1000페이지가 넘는 소설들을 읽으며 시간을 보냈고, 아무도 끝까지 읽지 못하는 긴 소설을 써 왔다. 때로는 이 여정의 목적이 무엇인지 고민이 되기도 했다. 이 모든 활동이 소일거리 내지는 자기만족을 위한 무의미한 일인가 회의가 들기도 했다. 그러나 이제야 납득하는 것은, 내가 접했던 모든 책이, 내가 만들었던 모든 이야기가 저마다의 의미가 있다는 사실이다.<br>&nbsp;『나의 돈키호테』를 도서관의 서가에서 고른 이유는 나 역시 『돈 키호테』를 사랑하기 때문이다. 『눈먼 자들의 도시』나 『성경』처럼 나의 인생을 지대하게 바꾸지는 못했어도, 어린 시절 나의 가치관을 형성하는 데에 상당히 일조했다. 소설에 담긴 모험들을 나 역시 사랑했고, 돈 키호테가 지향하는 가치를 마찬가지로 동경했다. 처음에는 산초의 편에 서서, 엉성하기 짝이 없는 기사의 여정에 코웃음을 쳤지만, 수많은 이야기들을 만나며 변화하는 그의 모습에 동화되었다. 이야기의 힘은 그런 것이다. 미련한 자조차 현명하게 만들어 버리고, 무모한 자를 용감하게 만든다. 누군가의 인생에는 그러한 힘이 있다. 각자의 삶은 하나의 이야기가 되고, 그것은 크든 작든, 좋든 싫든 타인의 삶에 영향을 준다. 설령 그 사람과 전혀 무관하다 할지라도 말이다.<br>&nbsp;『나의 돈키호테』는 『돈 키호테』라는, 세르반테스가 탄생시킨 불멸의 고전을 읽어야 그 의미를 이해할 수 있다. 나도 아주 오래 전에 작품을 읽었기에 선명하지는 않지만, 이 소설이 지향하는 바는 단순히 세르반테스를 '반태수'로, 세비야를 '서울'로 일대일대응시켜 번안하는 작업만을 의미하지 않는다. 원작과 마찬가지로, 처음에는 불가능해 보였던 여정이, 평범하고 때로는 한심하게 보이는 인물들이 그 끝에서 성숙해진다. 그 안에 수많은 인생들이 스쳐 지나가고, 어떤 삶은 인연이 되어 또 다른 생명을 낳기도 한다. 진솔의 도전은 그녀의 기억 속 돈키호테였던 장영수에게 닿아, 마침내 그조차 변화시키게 된다. 그들이 함께 만드는 이야기는 담백하고 소소하지만, 분명한 울림을 준다.<br>&nbsp;아마 여정의 중간에서 힘듦을 느끼는 독자들도 있었을 것이다. 진솔의 고민과 그녀가 마주하는 사람들의 이야기가 전체적인 흐름에 어떤 의미가 있는지 의문을 품기도 했을 것이다. 바로 내가 그랬으니까. 하지만 이야기가 완성되고 나서야, 그 서사들이 필요했음을 인정한다. 어떤 이야기던 간에 결말을 무시한 채 판단할 수 없다 했던가, 한 권의 책을 덮기 전까지는 섣불리 평가할 수 없고, 인생이 끝을 맺기 전까지 함부로 잣대를 매길 수 없다. 각 등장인물의 고민을 과소평가했던 나 자신을 반성한다.<br>&nbsp;한 권의 여정이 끝나고 나면, 우리는 다음 여정으로 나아갈 수밖에 없다. 마치 멈추고 싶어도 삶은 지속되듯이, 이야기는 끝나지 않고 이어진다. 그러므로 배움은 결과가 아닌 과정 속에 있다. 돌아볼 틈도 없이 나는 인생의 또 다른 모험 속으로 휘말린다. 처음에는 그것이 버거웠으나, 이제 그 모험을 즐길 줄 알게 되었다. 나의 매 순간이 기쁨으로 가득하다. 찰나에 남아 있던 불안마저 기대로 바꾸게 되었다. 돈 키호테로 살고 싶은데, 그럴 수 없다고? 한번이라도 마음을 열고, 도전해 보는 것은 어떤지. 나이와 상황 때문에 두렵다면, 그것도 존중한다. 가난과 실패보다 우리의 인생이 크다. 어떠한 역경도 여정을 끝낼 만큼 강력하지 않다. 이야기의 한 부분일 뿐, 그것이 지나고 나면 또 다른 결말이 우리를 기다리겠지. 우리 모두 세상을 이루는 귀중한 캐릭터이다. 각자의 이야기가 경청되고, 주목되는 세상이 오길.]]></description><image><url>https://image.aladin.co.kr/product/35336/63/cover150/k032035585_2.jpg</url><link>https://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temId=353366302</link></image></item><item><author>starover</author><category>review</category><title>우리가 모르는, 그러나 실재하는 세상 - [세상의 모든 균류 - 신비한 버섯의 삶]</title><link>https://blog.aladin.co.kr/755125167/17097794</link><pubDate>Tue, 17 Feb 2026 21:55: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s://blog.aladin.co.kr/755125167/17097794</guid><description><![CDATA[<table width="100%" height="30" border="0" align="center" cellpadding="0" cellspacing="0"><tr><td width="14"><img src="http://image.aladdin.co.kr/img/blog/trans.gif" width="14"></td><td width="85"><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K872832010&TPaperId=17097794" target="_blank"><img src="https://image.aladin.co.kr/product/31410/62/coveroff/k872832010_1.jpg" width="75" border="0" class="box1"></a></td><td valign="top"><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K872832010&TPaperId=17097794" target="_blank" style="color:#386DA1;font-weight:bold">세상의 모든 균류 - 신비한 버섯의 삶</a><br/>로베르트 호프리히터 지음, 장혜경 옮김 / 생각의집 / 2023년 02월<br/></td></tr></table><br/>&nbsp;균류 및 버섯의 생태에 대해 읽고 있자면, 절로 겸손해진다. 감각의 노예인 인간은 지각되는 것에 너무나 취약하다. 눈앞에 보이는 것이 전부요, 삶에서 가장 중요한 가치라고 생각한다. "나만 잘 살면 돼"라는 주문에 스스로를 세뇌시켜, 지구상에서 가장 생존에 유리한 '공존'을 실현하는 균류를 하찮게 여긴다. 균류의 세계는 굉장히 미세하고 섬세해서 잘 인지되지 않지만, 그것은 분명히 실재하고 눈에 보이는 세계보다 훨씬 더 크다. 벽 너머와 바닥 아래의 세상을 전혀 모르는 인간은 햇빛 아래에만 생명이 있다고 착각한다.<br>&nbsp;균류는 분명 동물과 식물도 아닌 그 무엇이다. 그것은 죽음을 이용하여 생명을 피운다. 선사시대의 대멸종이 균류에게는 낙원이었다. 방사능과 극지방, 사막이라는 열악한 환경 속에서도 그것은 생존한다. 그들은 물질을 분해하고, 생물을 감염시키기도 하지만, 생태계를 회복시키기도 한다. 한때 인간은 이것을 식물로 오해하기도 했고, 분류를 어려워 했으나, 이제야 실마리를 잡아가고 있다. 버섯은 실로 인간의 오랜 친구였다. 트러플, 목이, 느타리 등 희귀하거나 익숙한 버섯들이 줄줄이 소개된다. 어떤 것은 독성이 있으나, 어떤 것은 인간의 병을 치유한다.&nbsp;<br>&nbsp;균류의 세계는 아직 밝혀지지 않았다. 자연의 신비는 미처 다 드러나지 않았는데, 이것이 앞으로의 인간에게 어떤 유익이 있을지 기대가 된다. 한편, 그 지식들이 생태계에도 좋은 영향을 끼쳤으면 한다. 각 동식물이 어떻게 유기적으로 연결되어 있고, 어떻게 하면 보존할 수 있는지 알게 되면 환경을 보호하는 데에 조금 더 진심이 되지 않을까? 지식과 기술이 그동안 환경을 파괴하는 데에 이용되었지만, 역설적으로 지식과 기술이야말로 지금은 자연을 지킬 수 있는 가장 강력한 무기이다. 여전히 우리가 모르는, 그러나 실재하는 세상이 있고, 각 세대는 그것을 보존해야 할 책임이 있다.<br>&nbsp;인간은 멸종해도 균류는 살아남을 것이다. 소위 '인류세'를 논의할 때, 동식물이 주인공이 되는 문학 작품이 많은 것으로 알고 있다. 그러나 아무도 살아남을 수 없다고 여겨진 세상에서도 어떤 생명은 살아 남았다. 그리고 그 생명으로부터 수많은 종의 역사가 시작되었다. 그러니 눈에 보이지 않는다고, 지극히 사소해 보인다고 그 생명을 우습게 여기면 안 된다. 우리가 아기와 아이의 죽음에 더욱 슬퍼하는 까닭은 한 우주와 같은 가능성이 소멸했기 때문이리라. 그러나 지금 인류에게 필요한 시각은 죽음 너머의 생명을 바라보는 일이다. 균류가 물질을 분해하고, 또 다른 생명을 쌓는 토양이 될 것이다. 균류의 가치를 인정하고, 그것의 소중함을 모두가 동의할 때, 또 다른 변화는 시작될 것이다.]]></description><image><url>https://image.aladin.co.kr/product/31410/62/cover150/k872832010_1.jpg</url><link>https://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temId=314106228</link></image></item><item><author>starover</author><category>review</category><title>막연한 미래에 좌절하지 않으려면 - [화이트 스카이]</title><link>https://blog.aladin.co.kr/755125167/17088103</link><pubDate>Thu, 12 Feb 2026 19:34: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s://blog.aladin.co.kr/755125167/17088103</guid><description><![CDATA[<table width="100%" height="30" border="0" align="center" cellpadding="0" cellspacing="0"><tr><td width="14"><img src="http://image.aladdin.co.kr/img/blog/trans.gif" width="14"></td><td width="85"><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K852839564&TPaperId=17088103" target="_blank"><img src="https://image.aladin.co.kr/product/30064/71/coveroff/k852839564_1.jpg" width="75" border="0" class="box1"></a></td><td valign="top"><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K852839564&TPaperId=17088103" target="_blank" style="color:#386DA1;font-weight:bold">화이트 스카이</a><br/>엘리자베스 콜버트 지음, 김보영 옮김 / 쌤앤파커스 / 2022년 09월<br/></td></tr></table><br/>&nbsp;“파란 하늘 파란 하늘 꿈이

&nbsp;드리운 푸른 언덕에

&nbsp;아기염소 여럿이 풀을 뜯고 놀아요

&nbsp;해처럼 밝은 얼굴로”<br>



&nbsp;우리에게 너무나 익숙한 이 동요는 곧 개사될 운명이다. 아이들이 보는 하늘은 더 이상 파랗지 않다. 아기염소는 뜯어 먹을 풀이 없어 굶어 죽는다. 태양은 미세먼지에 가려져 뿌옇다. 미래 세대는 이렇게 물을지도 모른다. “대체 어디서부터 잘못되었나요? 왜 우리가 선조들이 일으킨 기후 위기에 책임을 져야 하나요?” 어른들은 묵묵부답이다. 그들이 할 수 있는 것이라고는 남몰래 버린 쓰레기와 낭비한 물에 양심의 가책을 느끼는 일이다. 사실 대부분의 사람들은 무엇이 강을 파괴하고, 종들을 절멸시키고, 빙하를 녹이는지 잘 모른다. 대신, 절망적인 소식이 닥쳐오면 누군가를 탓하거나 체념하는 것에 익숙하다. 기후 위기가 현실이 된 지금, 인류의 각 구성원은 어떻게 살아가야 할까?<br>

&nbsp;『화이트 스카이』의 저자 엘리자베스 콜버트는 사명감을 가지고 세계 곳곳을 직접 누빈다. 나는 생태학 저서를 읽을 때, 압도적인 통계 자료나 미래에 대한 암울한 전망에 대해 걱정한다. 그러한 서술들은 현실감 없는 불안을 주기 때문이다. 작가는 나의 우려와 달리, 자신이 방문한 현장의 상황을 생생하게 전달하는 것에 집중한다. 그녀는 아시아 잉어를 전기로 차단하는 운하 위에서, 멸종 직전인 물고기를 보호하려는 사막에서, 산호지대를 살리려는 연구실에서, 그린란드의 버려진 얼음 기지 안에서 저마다의 방식으로 기후 위기를 막으려는 이들을 조명한다. 그곳에서 독자는 여러 세대에 걸친 인간의 시행착오와 그것을 복구하려는 노력을 발견한다.<br>

&nbsp;사실 이 책이 말하고자 하는 것은 표지에 적힌 “인류는 더 이상 푸른 하늘을 볼 수 없을지도 모른다”는 불길한 예언이 아니다. 앞날이 어떻게 될지 몰라도 눈앞의 환경 문제를 해결하려는, 추천의 글에 적혀 있듯이 “뭐라도 해보려는 사람들의 이야기”이다. 작가 역시 탄소를 암석으로 전환하기 위해 아이슬란드에 위치한 본사를 찾아가 클라임웍스라는 회사의 취지와 원리를 소개한다. 혹자는 “그게 무슨 소용이 있습니까? 인간이 환경을 파괴하는 속도는 이미 걷잡을 수 없어요. 재앙은 예정되어 있습니다”라며, 그들의 노력을 폄하할지도 모르겠다. 저자는 적대적인 물음에 대해 이렇게 반박한다. “정말 그렇습니까? 지구를 구하려는, 아니 도와주려는 인간의 노력은 정말 부질없습니까?” 그녀는 생태계를 보호하려는 제도적 장치뿐만 아니라, 생물을 지키려는 개인의 사소한 노력도 귀중하다고 대답한다.<br>

&nbsp;기후 위기에 직면한 세태를 잘 표현한 문장이 있다. “때로는 아무것도 하지 않는 편이 뭔가를 하는 것보다 낫다. 또 때로는 그 반대다.”(187쪽) 절멸하려는 종을 살리려는 노력은 분명 가상하다. 그러나 수수두꺼비를 살리기 위해 유전자를 조작하는 것은 과연 그 유기체를 위한 일일까? 탄소 배출을 막기 위해 대기에 탄산칼슘과 다이아몬드 입자를 뿌린다는 지구공학은 이론상 합리적으로 보인다. 하지만 그것의 잠재적인 여파를 감히 예측할 수 있을까? 이 경우에는 “뭐라도 해봐야지”는 상당히 위험한 접근이다. <br>

&nbsp;그러므로 작금의 인류에게 필요한 것은 지혜다. 어떤 것이 지구를 위한 최선의 선택인지는 지구가 알고 있다. 그린란드의 빙하에는 고대의 눈부터 근대에 쌓인 얼음층, 그리고 현재에도 축적되는 입자들이 섞여 있다. 이를 통해 연구자들은 과거의 추운 기후로 인해 문명이 오랫동안 발전하지 못했음을 추론했다. 지혜란 그토록 자명하고 정직하다. 어떤 기발한 천재 한 명의 아이디어로도, 눈앞의 이익을 바라보는 집단이 합의한 지성도, 인간의 행복에 관심이 없는 인공지능의 제안으로도 얻어지지 않는다. 인류와 지구의 공생은 양쪽의 입장을 모두 헤아리며, 미래 세대의 안위까지 생각하는 사람들의 지혜로만 가능하다.<br>

&nbsp;이 문장을 나와 무관한 것으로 여겨서는 안 된다. 지혜란 행동으로 드러나기 마련이다. 그것을 체득한 사람은 인생을 살아가는 태도와 세계관이 달라질 수밖에 없다. 그러므로 파란 하늘을 지키는 일이 똑똑한 과학자나 정치가에 달려 있다고 단정 짓지 말자. 자라날 아이들에게 아기염소들과 함께 태양처럼 웃을 앞날을 기대하는 법을 알려주는 것만으로도, 미래 세대가 지켜야 할 가치에 대해 명확히 가르치는 것만으로도 우리는 기후 위기를 잘 통과하고 있다. 더 이상 막연하고 막막한 앞날에 대해 우려하는 일은 관두자. 혼자만의 노력으로는 어떤 것도 바꿀 수 없음을 알면서도, 지구를 위해 인생을 건 사람들을 이 책에서 증언한다. 현재의 독자에게 필요한 것은 좌절과 체념이 아닌 희망과 자신감이다. 지구는 당신 덕분에 더 나아지고 있다.<br>]]></description><image><url>https://image.aladin.co.kr/product/30064/71/cover150/k852839564_1.jpg</url><link>https://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temId=300647163</link></image></item><item><author>starover</author><category>review</category><title>모자를 아내로 착각한 남자 - [아내를 모자로 착각한 남자]</title><link>https://blog.aladin.co.kr/755125167/17059486</link><pubDate>Sat, 31 Jan 2026 10:17: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s://blog.aladin.co.kr/755125167/17059486</guid><description><![CDATA[<table width="100%" height="30" border="0" align="center" cellpadding="0" cellspacing="0"><tr><td width="14"><img src="http://image.aladdin.co.kr/img/blog/trans.gif" width="14"></td><td width="85"><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K052535697&TPaperId=17059486" target="_blank"><img src="https://image.aladin.co.kr/product/8982/24/coveroff/s242638443_1.jpg" width="75" border="0" class="box1"></a></td><td valign="top"><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K052535697&TPaperId=17059486" target="_blank" style="color:#386DA1;font-weight:bold">아내를 모자로 착각한 남자</a><br/>올리버 색스 지음, 조석현 옮김, 이정호 그림 / 알마 / 2016년 08월<br/></td></tr></table><br/>&nbsp;워낙 잘 알려진 책이고 제목도 독특해서 언젠가 읽어 보아야지 하다가 마침내 빠른 속도로 독파했다. 논픽션임에도 불구하고 전혀 딱딱하지 않고 잘 읽힌다. 그러면서도 환자들이 모두 실제로 그 일을 겪었고, 통과하는 중임을 알았을 때 신비로움을 느낀다. 세상에는 정말 다양한 인간 군상이 있고 그 삶이 하나하나 다름을 다시 한 번 깨닫는다. 24가지 사례에 다소 편차가 있지만, 저자는 애정을 가지고 이 환자들을 대하고 치료하려 한다. 뒷이야기에서는 그들이 어떻게 삶을 영위하고 있는지 보여줌으로써 독자도 그 치유(또는 동반)의 여정을 목격할 수 있게 한다.<br>&nbsp;인상 깊은 사례 세 가지만 꼽으라고 하면, 폭음으로 방금 전의 일을 모조리 기억하지 못하는 지미, 고유 감각을 잃어버린 크리스티너, 자폐증을 가진 예술가 호세이다. 지미는 1945년 이후의 기억을 모두 상실했는데, 여기서 올리버 색스는 "연속성을 잃어버린 존재를 과연 인간으로 볼 수 있는가?"라는 실존적인 질문을 던진다. 나는 내가 이러한 상태에 놓이면 어떤 삶을 살게 될지 생각했다. 과거에만 갇혀 있는 사람은 스스로를 불행하다고 생각할까? 확실한 건 음주가 건강에 정말 해롭다는 사실, 나를 지키기 위해서라도 해로운 물질은 입에 대지 않아야겠다는 다짐이었다.<br>&nbsp;제육감, 즉 자신의 몸이 어떻게 작동하는지 인지하는 감각이 없다면, 실로 내 몸이 사라진 기분이리라. 물론 나는 그것이 어떤 감각인지 헤아릴 수 없다. 예컨대, 키보드를 입력하는 나의 손의 감각이 없다면 눈앞에서 무엇인가를 두드리는 괴상한 물체에 당혹감을 느낄 것이다. 애초에 타자를 치라는 명령이 입력되지 않으면 작동하지 않으리라. 걷는 것도 의식하지 못해서 자신이 공중에 둥둥 떠다닌다고 생각할까? 발칙한 상상이 떠오르기는 하지만, 이것을 어느 날 갑자기 겪은 크리스티너는 얼마나 당황했을까? 그러나 그것에 적응하려 노력하는 그녀의 모습이 참 대단하다.<br>&nbsp;보통의 정신분열증 환자는 외부의 자극에 극도로 예민하지만, 자폐증 환자는 정반대이다. 마치 바다 한가운데의 섬처럼 외부의 자극에 대한 반응이 없다. 오직 자신의 세계 안에 놓여 있다. 자폐증은 다양한 매체를 통해 비교적 익숙하지만, 그것의 실상은 처음 본다. 호세에게 뛰어난 예술적 감각이 있고, 그것을 표현하는 일이 참으로 놀랍다. 저자가 가지고 있던 편견, 즉 자폐증 환자에게 예술성이 없으리라는 선입견을 나 역시 보유했고, 호세를 통해 어느 정도 완화된 듯하다.<br>&nbsp;올리버 색스는 자신의 연구 성과를 자랑하려고, 또는 신경학적 질병을 앓는 이들을 나열하려고 이 책을 쓰지 않았다. 위에서 언급했지만, 다양한 환자들을 접하고 그들이 세상과 공존하는 법을, 조금 다를지라도 포용하는 법을 독자에게 보이기 위함이다. 그의 노력이 어떤 성취를 거두었는지는 결코 알지 못한다. 책 한 권이 누군가의 인생을 바꾸기도 하지만, 같은 책이 누군가에게는 그저 시간 때우기에 불과하기도 하니까. 나에게도 『아내를 모자로 착각한 남자』는 상대적으로 가볍게 읽혔다. 그러나 언젠가 실제로 아픈 자들을 마주했을 때, 이 책이 생각나지 않을까? 관찰자가 아니라 동반자로, 치료의 대상이 아닌 이해의 대상으로 그들을 바라보고 싶다.]]></description><image><url>https://image.aladin.co.kr/product/8982/24/cover150/s242638443_1.jpg</url><link>https://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temId=89822465</link></image></item><item><author>starover</author><category>review</category><title>세월을 아끼라 때가 악하니라 - [댓글부대 - 2015년 제3회 제주 4.3 평화문학상 수상작]</title><link>https://blog.aladin.co.kr/755125167/17033026</link><pubDate>Tue, 20 Jan 2026 12:18: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s://blog.aladin.co.kr/755125167/17033026</guid><description><![CDATA[<table width="100%" height="30" border="0" align="center" cellpadding="0" cellspacing="0"><tr><td width="14"><img src="http://image.aladdin.co.kr/img/blog/trans.gif" width="14"></td><td width="85"><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8956609454&TPaperId=17033026" target="_blank"><img src="https://image.aladin.co.kr/product/7073/45/coveroff/s902939394_1.jpg" width="75" border="0" class="box1"></a></td><td valign="top"><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8956609454&TPaperId=17033026" target="_blank" style="color:#386DA1;font-weight:bold">댓글부대 - 2015년 제3회 제주 4.3 평화문학상 수상작</a><br/>장강명 지음 / 은행나무 / 2015년 11월<br/></td></tr></table><br/>&nbsp;『댓글부대』를 비롯해 시사를 폭로하는 작품을 볼 때마다 나는 "세월을 아끼라 때가 악하니라"는 에베소서 말씀을 떠올린다. 물론 이 세상의 악함은 인간이 선택한 것이고, 그 안에 나도 포함되어 있으므로 세상의 악에 대해 항상 관망하는 태도는 옳지 못하다. 하지만 나는 세태에 휩쓸리기보다는 진리를 따르고 싶을 뿐이다. 그리고 어느 때보다 그것을 지키기 어려운 시대에 살고 있는 것은 분명하다. 인간은 본능적으로 사회적 증거를 따르고 싶어 한다. 즉, 어느 것이 옳고 그른지, 또는 손익이 되는지 판단하기 어려울 때는 다른 사람들, 특히 많은 사람들이 채택하는 의견을 수용한다. 이렇게 되면 설령 내가 선택한 것이 잘못되었다 해도 책임이 분산되어 큰 부담이 없다. "나도 속았다"고 변명하면 그만이니까. 그래서 나는 다시 한 번 인간의 원죄가 얼마나 뿌리깊은 것인지 깨닫는다.<br>&nbsp;기자 출신인 작가는 연예인들의 실명과 실제로 일어난 사건들을 언급하며 허구와 실제의 경계를 거침없이 넘나든다. 순진한 독자들은 실제로 작가가 이렇게 생각하는 것이 아니냐고 생각할지 모르겠다. 그만큼 『댓글부대』가 가진 설득력과 흡입력은 강렬하다. 잘 만든 소설도 이 정도인데, 영상 매체나 미디어는 얼마나 더 강한 파급력이 있을까? 극중에서도 결국 댓글뿐만 아니라, 소셜 미디어를 적극 활용하지 않은가? 잘못된 정보가 한 번 퍼지게 되면, 그 영향력은 종잡을 수 없다. 매일 새로운 질병이 발견되는 것처럼, 어떤 디지털 테러가 우리의 정신을 좀먹을지 모른다. 소설의 종국에는 소위 메타적인 위협이 대중을 잠식한다. "너의 의견도 댓글부대(가짜)가 작성한 것이지?"라는 공격은 반박할 수 없게 된다. 메신저가 거짓임을 밝히면, 메시지는 그것이 어떤 내용을 담든 거짓이 될 수밖에 없으니까. "너 댓글부대지?"라는 질문에 한 번 걸려들면, 아무리 발을 빼려고 해도 불가능할 것이다. 나의 정체성과 생각이 거짓이라고 판별된 순간, 온라인에서 그는 죽은 것이나 다름없다. 그렇기에 사람들은 기를 쓰고 자신의 진실됨을 증명하려고 발악한다.<br>&nbsp;나는 어떻게 해야 하는가? 시류에 지나치게 휩쓸리지 않아야겠지. 어떤 정보가 퍼질 때는 상호 검토를 필수적으로 거치고, 다른 사람들의 의견보다는 나의 의견이 어떤지 정립해야 하겠지. 저 댓글이 진실인지, 거짓인지 판단하기보다, 나의 진실된 마음이 무엇인지 검토해야겠다. 또한, 비난을 받는 대상이 내가 될 경우도 생각해야 한다. 그리스도인은 모든 역사를 통틀어서 언제나 의심 받고, 비난 받고, 핍박을 받았다. 뉴스나 매체에서 타락한 목사나 이단과 사이비에 대한 기사가 나올 때마다 양면적인 감정이 들었다. 거짓이 밝혀지고 올바른 믿음이 세워지기도 하지만, "예수쟁이들이 다 그렇지"라는 말을 들을까 봐 무서웠다. 하지만 이제는 그 모든 비판과 의심을 이해한다. 어떤 모욕과 사상도(종교는 인민의 아편이라는 마르크스의 말이나 종교는 자아의 지나친 팽창이라는 니체의 철학 등) 그리스도의 존귀함을 전혀 손상시킬 수 없으니까. 복음이라는 부드러운 힘은 어떤 인간이든 반드시 굴복시키니까.]]></description><image><url>https://image.aladin.co.kr/product/7073/45/cover150/s902939394_1.jpg</url><link>https://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temId=70734583</link></image></item><item><author>starover</author><category>review</category><title>당신의 믿음 없음을 존중한다 - [왕국]</title><link>https://blog.aladin.co.kr/755125167/17009543</link><pubDate>Fri, 09 Jan 2026 08:37: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s://blog.aladin.co.kr/755125167/17009543</guid><description><![CDATA[<table width="100%" height="30" border="0" align="center" cellpadding="0" cellspacing="0"><tr><td width="14"><img src="http://image.aladdin.co.kr/img/blog/trans.gif" width="14"></td><td width="85"><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8932918775&TPaperId=17009543" target="_blank"><img src="https://image.aladin.co.kr/product/13653/64/coveroff/8932918775_1.jpg" width="75" border="0" class="box1"></a></td><td valign="top"><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8932918775&TPaperId=17009543" target="_blank" style="color:#386DA1;font-weight:bold">왕국</a><br/>엠마뉘엘 카레르 지음, 임호경 옮김 / 열린책들 / 2018년 03월<br/></td></tr></table><br/>&nbsp;교수님의 추천으로 알게 되어 읽게 된 책이다. 자클린 고모의 영향으로 믿음을 갖게 되었던 작가가 훗날 회의에 직면하여 불가지론자(신에 대해 인간은 절대 이해에 도달할 수 없다)로 돌아서고, 그러한 시선으로 기독교의 역사를 재구성하는 내용이다. 실제 이야기와 역사적 사실, 그리고 작가의 상념과 추측이 자유롭게 혼재되어 있어서, 어느 정도의 분별력이 요구된다. 성경을 잘 알고 있는 독자라면, "이것은 모두 헛소리야!"라고 치부할 수도 있고, 그 반대의 경우라면 "이 사람의 말이 사실이야. 신약 성경의 내용은 그럴듯한 허구에 불과해"라고 고개를 끄덕일 수도 있다.&nbsp;<br>&nbsp;사실 엠마뉘엘 카레르는 기독교를 전면으로 부정하려는 의도가 아니다. 구약 성경에 대한 언급은 일절 없고, 하나님의 존재를 모독하지도 않는다. 그저 그는 자신이 알고 있는 지식과 맥락 속에서, 지극히 인간적인 시선으로 바울, 누가, 베드로 등의 행적을 평가하고 마침내 예수께 질문하고 있다. 그러면서 그는 분명히 선언한다. 자신은 부활을 믿지 않는다고. 자신이 가진 의심은 더 큰 믿음을 가지기 위한 발판보다는, 불가지론에 확신을 더하기 위한 과정이라고 말하는 듯하다. 즉, 그는 작중에서 계속해서 자신의 믿음 없음을 설득하려고 한다.<br>&nbsp;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을 믿는 나는 그를 어떠한 태도로 대해야 할까? 먼저 해주고 싶은 말은, '당신이 겪었던 모든 의심을 나도 통과했다'는 것이다. 의심 많은 제자였던 도마와 같은 나는 눈에 보여야만, 또는 분명히 증명되어야만 그것을 믿는 사람이었다. 따라서 창세기에 적힌 말씀들이 매번 나에게 도전이었다. 또한, 오늘날의 가치관과 다소 동떨어져 보이는 구절들을 발견할 때마다 괴리감을 느꼈고, 이해되지 않는 구절들에 대해 좌절했다. 그러나 믿음은 논리와 이성을 초월한 것이다. 믿음은 언제나 나의 이해를 앞서 간다. 그러므로 아직 밝혀지지 않은 것들에 대해 따지기보다, 주어진 말씀에 대한 순종을 우선하기로 했다.<br>&nbsp;또한 엠마뉘엘 카레르, 당신의 적대와 의심은 결코 기독교에 있어서 중대한 위기가 아니다. 중세 시대나 기독교 문화권에서 이 소설을, 또 당신을 적으로 생각할 수도 있겠지만, 나는 당신의 생각을 용납한다. 니체를 비롯한, 신을 부정하는 철학자들의 의견도 존중한다. 왜냐하면 믿음에 있어서 가장 큰 위기는 그러한 적대와 의심이 아니라, 거짓된 가르침이기 때문이다. 그럴 듯한 진리로 포장하여 우리의 마음을 미혹하는 자들이 나는 더 무섭다. 시대를 지배하는 개인주의와 비관론, 그리고 이단이야말로 우리가 맞서야 할 적이다. 기독교를 논리로, 이성으로 격파하려는 시도, 얼마든지 가능하다. 하지만 그런 식으로 무너뜨릴 수 있었다면야, 기독교는 얼마든지 꺾였을 것이다. 어떤 잔혹한 수법으로 억압해도, 아무리 과학이 발전하고, 인간의 사고가 복잡해져도, 결코 사라지지 않는 무엇인가가 있다면, 그것이 바로 진리가 아닐까? 그럴 때마다 나는 오히려 그들의 비판 덕분에 예수의 진리가 선포되는 것 같아서 기쁘다.<br>&nbsp;혹시라도 당신이 가진 의심 때문에 주님께 돌아가기 두려운가? 괜찮다. 당신이 품고 있는 모든 의심에도 불구하고 나는 당신이 믿음을 가지길 원한다. 베드로는 주님께서 붙잡히시던 날, 세 번이나 그를 부인하고 저주했다. 예수께서는 부활하시고 그를 만났을 때, 세 번이나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라고 묻는다. 즉, 베드로가 열 번 부인했으면 주는 열 번 그렇게 물었을 것이다. 우리가 아무리 예수를 부인하고 외면해도, 그는 하염없이 우리를 사랑하신다. 그 끈질긴 사랑에 굴복하지 않을 자가 없다. 당신이 어떤 방식으로 그분을 비난하고 모욕해도, 그분이 가지신 존귀함과 거룩함은 전혀 손상되지 않는다. 그러니 "내가 예수를 못박았습니다. 나는 그분께 돌아갈 자격이 없습니다"라는 탕자의 마음가짐을 품고 있다면, 걱정하지 않기를. 그분은 당신이 돌아오기를 간절히 기다리고 계시니까. 당신이 찰나에 맛보았던 그 왕국을 온전히 누리기를 바라고 계시니까. 당신의 겨자씨 같은 믿음으로도 충분하다고 말씀하고 계시니까.<br>&nbsp;나 역시 지나온 삶을 돌이켜 본다. 어렸을 적부터 교회를 다니며 성경을 읽었고, 하나님과 예수님, 성령님의 존재를 인정했다. 왜냐하면 진리라고는 하나도 없어 보이던 이 세상에서 유일하게 납득할 수 있는 가치였으니까. 하지만 여전히 나의 마음은 의심으로 가득했고, 신앙 생활을 열심히 하는 한편으로는 "나의 이 열심과 믿음이 언제라도 의심에 의해 뒤집힐 수 있다"는 불안에 시달렸다. 그러나 일단 하나님의 사랑을 맛보게 되었을 때, 나는 예전과 같이 살아갈 수 없음을 알았다. 정말 실낱 같은 파편임에도 말이다. 그분이 가진 사랑의 총량을 내가 헤아릴 수 없고, 언어로도 표현할 수도 없으나, 주님께서는 실로 내 인생의 궤적에 관여하지 않는 부분이 없었다. 구원의 확신과 주의 임재에 잠겨 있는 지금, 이들이 지닌 의심은 더 이상 위협이 되지 않는다. 대신, 나는 그 생각을 용납한다. 언젠가 그 의심들이 걷히고, 순수한 빛이신 예수를 바라볼 수 있기를 기도한다. 예수가 내 안에 들어올 때, 모든 비난과 상처와 적대는 포용될 수 있다. 그러니 얼마든지 욕해도 좋다. 의심해도 좋다. 그럴수록 그리스도는 당신을 끈질기게 붙잡을 테니.]]></description><image><url>https://image.aladin.co.kr/product/13653/64/cover150/8932918775_1.jpg</url><link>https://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temId=136536411</link></image></item></channel></rs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