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년 동안의 고독 - 1982년 노벨문학상 수상작 문학사상 세계문학 6
가브리엘 가르시아 마르케스 지음, 안정효 옮김, 김욱동 해설 / 문학사상사 / 2005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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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국 사회는 유전 사회다. 부모가 어떤 사람이냐에 따라 자식의 인생도 변한다. 즉, 부모의 위치에 따라 가난이 유전되거나 , 부와 명예가 유전되거나, 지식이 유전되거나, 무지와 부도덕이 유전된다. 어떤 집안의 사람은 할아버지가 독립운동가라는 이유로 해방 70년이 지난 지금도 차별과 가난 속에서 살고 있고, 또 다른 집안의 사람은 아버지가 회사 사장, 정치가라는 이유로 오만과 편견에 빠진 채 살고 있다. 분명 이것은 불공평한 처사이며, 시급한 개선이 필요하다. 그러나 나는 해답을 내지 않겠다. 그저 이것을 하나의 예언이라 받아들일 것이다. 현재 한국 사회는 타락이 대물림되고, 무너져 가는 집안을 책임지려 하지 않고 있다. 이것은 작년 타계한 가브리엘 마르케스의 대표작, 『백년 동안의 고독』의 줄거리와 다를 바 없다. 이 환상적 소설은 우리에게 주어진 경고다.

 

 마콘도, 그러니까 대한민국이 처음 만들어졌을 때, 이곳은 문명의 손이 닿지 않는 순수한 개척지였다. 그런데 맬키아데스를 비롯한 집시들이 마을을 세운 호세 아르카디오 부엔디아에게 문명의 힘을 전파하자, 그 순간부터 문명이 그를 고독과 무기력으로 사로잡기 시작했다. 그 때만 해도 나처럼 순진한 독자나 호세 아르카디오 부엔디아는 몰랐을 것이다. 그의 맹목적인 문명 추구가 집안에 대물림되어, 부엔디아 집안이 멸망할 때까지 지속된다는 것을. 그리고 그것이 얼마나 무의미한 행동이었는지, 죽는 순간에야 알았다(죽을 때까지 모른 이들도 있었다!).

 

 또한, 문명은 마콘도 마을 사람에게 고독을 안겨주었다. 본격적으로 마콘도 마을이 붕괴되기 시작한 것은 기차가 들어온 이후였다. 기차는 집시들이 가져온 진기한 물건 대신 바나나를 싣고 왔으며, 호기심에 찬 사람들 대신 무자비하게 학살된 3000명의 노동자들을 싣고 갔다. 전쟁은 빈번하게 발생하고, 그 때마다 마을 사람들을 고독과 고통에 빠뜨렸다. 한 부엔디아의 고독이 집안 전체의 고독으로 이어지고, 이는 곧 마콘도 마을, 나아가 콜롬비아, 마침내 전 인류를 고독하게 만든다. 여기서 고독이란, 죽음 이상의 고통으로, 서로의 소통이 단절된 상태를 말한다. 장님처럼 서로를 보지 못하고 지나가는 것이다. 아니, 장님보다 못하다. 우르슬라는 장님이 되서도 자신이 장님인 것을 드러내지 않고, 계속 집안을 유지했으니까.

 

 한 세대씩 시간의 흐름에 따라 죽지만, 우르슬라는 부엔디아 집안의 주축이 되어 5세대까지 살아남는다. 마치 성서의 '창세기'를 보는 듯, 세대를 거칠수록 집안 사람의 수명은 줄어든다. 1세대는 115세(남편은 유령)였는데, 마지막 세대는 신생아(개미에게 잡아먹힌다)다. 돼지꼬리 달린 아이, 그것은 마지막 징조다. 그 아이가 태어나는 순간, 이미 부엔디아 집안은 끝났다. 돼지꼬리 달린 아이는 근친상간의 상징이니까. 타락의 끝에서 부엔디아 집안, 마콘도는 그렇게 최후를 맞는다.

 

 끝으로, 오랜만에 나에게 큰 즐거움을 선사한 가브리엘 마르케스의 『백년 동안의 고독』에 큰 찬사를 보낸다. 이토록 현실과 비현실을 적절하게 버무려놓은 작가는 앞으로도 없으리라. '마술적 리얼리즘'이 뭔지 확실히 알았다. 주제 사라마구를 통해 알았고, 마르케스를 통해 완성했다. 이 소설의 재미와 의미는 글로 다 표현할 수 없다. 직접 느껴보라는 말밖에 없다. 유전되는 고독을 느껴보라. 벗어나려고 해도 지독하게 발목을 잡는 이 저주를 풀어보라. 과연 당신은 벗어날 수 있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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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문도와 블라디보스토크 - 19세기 한반도의 파행적 세계화 과정 서강학술총서 5
김용구 지음 / 서강대학교출판부 / 2009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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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박은식은 흥선대원군이 수렴청정을 한 1863년부터 조선이 일제에 합병되는 1910년까지의 역사를 "한국통사"라고 일컬었다. 말 그대로, 이 시기는 고난의 역사이다. 쇄국 정책을 펼치며 세상의 흐름에 저항하려 하지만, 외세의 강력한 힘 앞에 무릎을 꿇고, 서서히 열강에 잠식되어가다 마침내 국권을 박탈당하는, 읽으면 읽을수록 화가 나는 역사. 그리고 그 역사의 중심에는 바로 '거문도 사건'이 있었다. 강화도 조약으로 강제로 항구를 열고, 개화 정책을 받아들인지 10년도 되지 않아 임오군란, 갑신정변과 같은 내부의 충돌이 발생했다. 그리고 그 결과는 청과 일본의 국정 개입이었다. 조선 정부는 이 답답한 상황을 해결하기 위해 또 다시 '러시아'라는 외부 세력에게 도움을 청하지만 결국 당시 국제적 상황과 얽혀, 총 7개국이 관여한 전무후무한 '거문도 사건'이 일어나게 되었다. 필자는 지금까지 잊혀져 왔던 아픔의 역사를 여기에 써내려가고자 한다.

 

  1. 거문도에 관하여

 

  거문도 사건의 공간적 배경이 되었던 '거문도'는 어떤 중요성을 가지고 있는가? 다시 말해, 왜 영국은 다른 많은 섬을 두고 하필 그 작은 섬을 불법 점령한 것일까? 거문도는 전라남도 여수에 위치한 섬으로, 총 3개의 섬으로 이루어져 있다. 예로부터 거문도는 한일 양국의 해상 통로뿐만 아니라 러시아의 태평양 진출의 요충지로 평가 받았다. 특히, 미국과 영국은 거문도의 지리적, 군사적 이점을 사건 10년 전부터 파악하고 있었다. 조미 수호 통상 조약을 체결한 하순 슈펠트는 거문도를 지중해 입구의 지브롤터(이베리아 반도의 남쪽에 있는 영국 땅)로 비유하면서 훌륭한 해군기지이며 해군의 요양소로 적격이라고 평가했다. 영국도 이와 마찬가지였다. 영국 공사 파크스와 사령관 라이더 제독은 1875년에 거문도의 군사적 중요성을 강조하며 그곳을 점령해야 한다고 외무성에 문서를 보내지만, 거절당한다. 비록 시도는 무산되었지만 영국은 이때부터 거문도를 눈여겨보고 있었다. 한 마디로, 거문도 사건은 이미 예견된 비극이었다.

 

 거문도 사건의 배경이 된 거문도는 고도, 서도, 동도로 이루어져 있다. 영국군은 고도

를 점령한 후, 당시 영국 해군성 부상인 해밀턴의 이름을 따 해밀턴 항이라고 불렀다.

 

 2. 거문도 사건의 발생

 

 거문도 사건이 일어난 까닭을 "갑신정변 이후 열강을 둘러싼 대립"으로 설명하기에는 너무 일반적이다. 사건의 경과는 매우 복잡하다. 시계는 1860년 베이징 조약으로 돌아간다. 당시 러시아는 베이징 조약에서 연해주를 획득함으로써 조선과 국경을 접하게 되었다. 이때부터 러시아는 조선에 남하 정책을 펼쳐 1884년에 수호 통상 조약을 체결하였다. 청은 러시아를 견제하기 위해 알선을 거부했지만, 러시아는 독자적으로 베베르를 파견하여 조약을 맺었고, 조선은 임오군란과 갑신정변 이후 심화된 청의 간섭에서 벗어나기 위해 러시아와의 조약을 체결하였다. 문제는 조선과 러시아가 맺은 밀약에서 비롯되었다. 이 '경흥조약'의 내용은 육로통상장정과 영흥만을 조차하는 대가로 조선에 군사 교관을 파견하여 군사 훈련을 담당한다는 내용이었다. 그러나 이 조약은 청의 방해로 실패하였다. 이 사건이 세상에 알려지면서, 이에 긴장한 영국은 거문도를 점령하였다.

 

 한편, 거문도를 점령한 영국의 입장은 어떨까? 영국은 1885년 3월에 아프가니스탄 지역의 분쟁으로 러시아와 전쟁을 결정할 수밖에 없는 처지에 있었다. 당시 영국은 전장을 선택하는 데 있어서 가장 최적의 장소를 거문도로 정했다. 영국은 자신들이 이 섬을 먼저 점령하지 않으면 러시아가 반드시 이곳을 침공할 것이라는 논리를 내세우며 거문도를 불법 점령하였다. 여기에는 영국의 조선 경시 정책과 러시아의 현상 유지 정책이 한몫한다.

 

 근본적으로 따지면, 이 사건은 제국주의가 낳은 비극적 산물이다. 19세기는 약육강식의 시대였다. 약한 자는 강한 자에게 먹히는 것이 당연하게 여겨지는 시대였고, 강한 자들도 서로 더 많이 차지하기 위해 속이고 속였다. 이 책에서도 미국의 영국 추종 정책이나 일본의 이중 외교, 청의 중재, 영국식 상업 외교 등이 그려지고 있는데, 이것 모두 자본주의와 제국주의가 낳은 지독한 이기주의의 결과이다. 미국, 독일, 영국, 러시아, 중국, 일본의 외교 전쟁에 조선은 고래 싸움에 새우등 터진 꼴이 된 것이다. 제국주의가 없었다면 영국이 중앙아시아 지역을 얻기 위해 러시아와 갈등하는 일도 없었을 것이고, 조선의 작은 섬을 점령하지도 않았을 것이다. 결국 거문도 사건은 '제국주의'가 지배하는 세상에서 필연적으로, 그리고 자연스럽게 일어날 사건이었다.

 

 저자 김용구는 이것을 "파우스트 정신(슈펭글러가 차용한 용어)"이라고 일컫는다. 그는 19세기를 폭력과 파우스트 정신의 역사적 기간이라고 정의한다.

  폭력은 물리적인 힘만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다. 자신의 사고방식과 이익을 최고의 가치로 간주하고 다른 사람을 이에 종속시키려는 의지를 의미한다. 파우스트 정신은 먼 거리를 정복하기 위한 욕망, 탐험에 대한 집착, 보다 더 많은 생산을 위한 발전, 그리고 신속한 여행을 위한 기계 발명의 욕구를 뜻한다.

 폭력과 파우스트의 유럽 문명권은 그들 이외의 다른 문명권의 존재를 인정하지 않는다. 이들 지역은 팽창과 섬멸의 대상일 뿐이다. (…) 물로 한반도도 예외는 아니었다. 1885년 4월 영국의 거문도 점령이 이런 현실을 웅변적으로 말해주고 있다. (김용구, 『거문도와 블라디보스토크』p,18~19) 

 

 3. 거문도 사건의 경과

 

 아이러니하게도, 거문도 사건은 조선의 노력보다는 청의 중재로 해결되었다. 처음에 중국은 영국의 거문도 점령을 찬성했으나 태도가 돌변하여 거문도 점령을 극구 반대했다. 그 까닭은 영국의 거문도를 점령하면 러시아와 일본도 조선의 다른 지역을 점령할 것이기 때문이었다. 이에 대해 영국은 자신의 거문도 불법 점령을 '잠정 점령'이라고 변명하였다. 한편, 러시아는 조선에 협박이 실패하자 현상 유지 정책을 시행하여 거문도에 대한 관심을 버렸다. 특히, 아프가니스탄 영토 관련 분쟁이 해결되고, 영국과 러시아간의 관계가 우호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영국군의 거문도 주둔은 청과 조선의 많은 항의를 불러일으켰다. 거문도 사건은 새로운 국면으로 접어들었다. 이제 더 이상 정치적 명분이 사라졌으니, 어떻게 하면 이익을 챙겨갈까, 라는 영국식 상업외교의 시작이었다.

 

 거문도 사건의 최대 수혜자인 일본의 입장은 어떠했을까? 일본 역시 영국의 거문도 점령을 달가워하지 않았다. 일본은 청과 톈진 조약을 체결한 후에도, 거문도 사건과 관련된 만남을 가졌다. 결론은 청과 일본이 합심하여 조선을 타국이 점거하는 사태를 예방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조선을 지켜주는 척 하며 야욕을 감추는 일본의 이중 외교는 이 때부터 잘 드러난다고 할 수 있다. 이렇게 진실을 알고 나니, 일본에 대해 정말 화가 난다.

 

 심지어 이 사건과 전혀 무관해 보이는 독일과 미국까지 숟가락을 얹었다. 독일 영사 젬브쉬는 점령이 가져올 부정적인 영향을 언급하며 영국의 철수를 주장하였다. 반면, 미국의 대리공사 폴크는 영국이 조선에 대해 우호적인 태도를 가지고 있다고 변명하며 영국의 입장을 대변하였다.

 

 무엇보다 화가 나는 것은 영국의 조선 경시 정책이었다. 그들은 우리를 중국의 속방으로 여기고 조선 대신 중국과 교섭하였다. 이러한 정책으로 인해 "조선 당국은 당사자이면서 국외자로 전락하게 되었다." 이런 부당한 대우를 볼 때마다(훗날 헤이그 만국평화회의에서도 비슷한 일이 일어난다) 우리나라가 힘을 가져야 한다는 것을 절실히 깨닫는다. 영국은 거문도에 임대료를 지불하고 저탄소 설치를 주장하며 자신들의 점령을 합리화시켰다.

 

 그러나 한계가 왔다. 영국에서는 거문도 무용론이 일기 시작했고, 거문도를 점령하는 데 유지되는 비용에 비해 얻을 수 있는 이익이 없다고 판단했다. 결국 영국은 중국으로부터 거문도에서 철수하면 다른 나라들도 이 섬을 점거하지 않는다는 약속을 받아놓고 1887년 2월 27일, 영국 국기를 내렸다. 그리고 영국과 러시아를 오가며 두 나라의 입장을 중재한 것은 청나라의 리훙장이었다.

 

 거문도 사건 중재에 결정적인 역할을 한

이홍장(리훙장).

 

 4. 조선의 대응

 

 그렇다고 조선은 손 놓고 지켜본 것만은 아니다. 리훙장의 외교만큼이나 김윤식의 노력이 빛났다. 김윤식은 러시아 참사관 쉬페이에르의 협박에 아랑곳하지 않고 차분한 논리로 대응하였다. 결국 쉬페이에르는 아무 수확도 하지 못하고 물러났으며, "쉬페이에르의 조선 방문은 러시아의 치욕으로 끝을 맺었다"고 역사에 기록되었다. 또한, 김윤식은 베이징의 오코너 공사와 서울의 칼스 총영사 대리에게 항의 각서를 보냈다.

 

 요즘 국내에서 듣는 바에 따르면 귀국이 거문도에 뜻을 두고 있다고 한다. 이 섬은 우리나라의 지방으로 타국이 점유할 수 없다. 만국공법에도 원래 이런 이치는 없어 놀랍고 의심스러워 무어라 말하기 곤란하다. (…) 귀국이 만일 우의를 중하게 여겨 깨달아 지난 계획을 고쳐 이 섬을 빨리 떠난다면 이 어찌 우리나라만이 행운이겠는가? 만국이 모두 찬양할 일이다. (김용구, 『거문도와 블라디보스토크』p.130~131, 김윤식이 칼스에게 전달한 문서)

 그가 열강에 발송한 회한(5월 20일)은 독일의 점령 반대를 불러일으켰고, 1885년 7월 7일 열강의 중재를 요청하는 회한과 1886년 7월 4일 영국에 보낸 항의 각서 등은 그가 거문도 사건 해결에 결정적인 영향을 끼쳤음을 짐작하게 한다. 김윤식이 아니었다면, 이 사건은 새로운 국면으로 접어들었을지도 모른다. 이런 깨어 있는 사람들이 있었기에 우리나라가 여기까지 온 것이 아닐까 싶다. 비록 청의 중재와 영국의 내부 의견이 절대적이었지만, 김윤식의 노력은 분명 기억되어야 한다.

 

 온건개화파 운양 김윤식. 그의 험난한 삶 자체가

한국통사의 과정이다.

 

 5. 사건, 그 이후

 

 거문도 사건은 조선을 둘러싼 열강의 대립이 표면적으로 드러난 사건이었다. 영국이 거문도를 불법적으로 점령한 2년간의 외교 전쟁은 조선이 세계적 위치에서 얼마나 초라한 위치를 가지고 있는지 적나라하게 드러냈다. 이 사건은 조선에 "파행적 세계화(쉽게 말해 열강의 공격에 쉽게 노출된 상태를 말한다)"를 가져왔다. 조선의 세계화 과정은 너무 빨라 유길준과 부들러의 중립화론을 무의미하게 만들었다.

 

 거문도 사건을 일으킨 직접적 원인인 영국과 간접적 원인인 러시아의 세력은 급격히 약화되었다. 반면, 사건을 중재한 청의 간섭은 더욱 심화되었고, 이중외교를 통해 이득만 취한 일본의 세력 역시 상대적으로 강화되었다. 두 세력의 거센 충돌은 거문도 사건이 종결된지 채 10년도 되지 않아 전쟁을 불러일으켰다. 이 당시 러시아는 양국의 전쟁에 참여할 기회를 잃어, 야욕을 드러낸 일본을 막을 수 없었다. 강력한 적수였던 청과 러시아의 몰락, 그리고 거문도 사건에서도 암시되었던 영국과 미국의 이기주의적 묵인은 결국 한반도를 일본에 빼앗기게 한 중대한 원인이 되었다. 글쓴이의 말대로, 이미 25년 전부터 1910년의 비극은 시작되었다. 가히 한국통사의 본격적인 출발점이자 중심에 있다고 해도 무방하다.

 

 거문도 사건이 종결된지 약 130년이 지났지만, 한반도의 국제적 위상은 그 때와 크게 달라지지 않은 듯 하다. 여전히 외교 전쟁은 진행 중이다. 자기 자신의 이익을 위해 남을 짓밟아야 하는 이 국제 사회에서 대한민국의 위상은 어디에 있나? 지금은 우리를 대신해 문제를 해결해 줄 리훙장도, 온 몸 바쳐 우리나라의 주권을 지켜내었던 김윤식도 없다. 누가 현재진행형에 놓인 이 고통의 역사의 맥을 끊을 수 있을까? 이것은 나 혼자만의 노력으로 되지 않는다.

 

 아픔의 역사를 기억하라. 그리고 하나로 뭉쳐라. 힘을 모으지 않는 한, 거문도 사건은 반복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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총 균 쇠 (무선 제작) - 무기.병균.금속은 인류의 운명을 어떻게 바꿨는가, 개정증보판
제레드 다이아몬드 지음, 김진준 옮김 / 문학사상 / 2005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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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인류 역사의 기준을 재확립한 이 역작의 시작은 한 뉴기니인의 질문에서 비롯되었다.

 "당신네 백인들은 그렇게 많은 화물들을 발전시켜 뉴기니까지 가지고 왔는데, 어째서 우리 흑인들은 그런 화물들을 만들지 못한 겁니까?"

 이에 대한 대답은 다양하다. 어떤 사람은 말문이 막힐 것이고, 어떤 사람은 당연한 것처럼 "백인은 우월한 인종이고, 흑인은 열등한 인종이니까"라고 대답할 것이다. 그러나 재레드 다이아몬드는 다른 길을 걸었다. 그의 요지는 이것이다: 문제는 사람이 아니라 환경에 있었다. 얄리의 질문은 다시 말해 인류의 역사가 왜 지금처럼 불공정한가, 언제부터 이러한 불공정이 시작되었는가에 대한 물음이다. 이제 그 단순한 질문은 한 마디로 정리하기 불가능한 대답을 요구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저자는 보충 설명이 필요한 결론을 내린다. 그것은 바로 "민족마다 역사가 다르게 진행된 것은 각 민족의 생물학적 차이 때문이 아니라 환경적 차이 때문이다"라는 주장이다.

 

 다이아몬드는 이 결론을 도출해내기 위해 기록조차 남겨지지 않은 과거로 되돌아간다. 민족의 뿌리와 그 분파들이 지구 곳곳에 흩어져 누군가는 원주민이 되고, 누군가는 떠돌이가 되었다. 인류의 시작은 동일했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면서 자연의 순리가 작용했다. 최초로 차이를 낳은 것은 살벌한 총, 균, 쇠가 아니라 수확할 수 있는 농작물과 기를 수 있는 가축의 여부였다. 우리는 전자를 통해 인류 문명의 기원이 모두 강에서 시작되었다는 것을 이해할 수 있으며, 초승달 지대가 왜 비옥한 땅의 상징이었는지 알 수 있다.

 

 초승달 지대(출처: 네이버).

 

 여기서 주목할 점은, 작물화와 가축화의 과정에서 중요한 인류사의 법칙이 적용되고 있다는 점이다. 바로 "행복한 가정은 모두 엇비슷하고 불행한 가정은 불행한 이유가 모두 다르다"라는 안나 카레니나의 법칙이다. 이것을 그대로 적용하면, "기를 수 있는 식물과 동물은 모두 엇비슷하지만 키울 수 없는 이유는 제각기 다르다." 즉, 한 가지 조건이라도 만족하지 않으면, 이 식물 또는 동물은 인류의 문명에 이바지할 수 없다는 원칙이다. 이 원칙에 힘입어, 세계는 기를 수 있는 작물과 가축의 여부에 따라 편차가 발생했다. 이것이 첫 번째 불평등이었다.

 

 얼마 안 가 평화는 끝났다. 위의 환경적 차이로 동일한 시간에 다른 삶을 살고 있는 사람들은 의도했든 의도하지 않았든 서로 부딪치기 시작했다. 앞선 문명, 즉 총, 균, 쇠를 보유한 자들(주로 유라시아인들)이 원주민(아메리카와 오스트레일리아)들을 정복했고, 불평등은 심화되었다. 물론 여기에도 예외는 존재한다. 저자가 애착을 가지고 있는 뉴기니와, 우리나라와 "고대에 쌓았던 유대를 성공적으로 재발견"해야 하는 일본이 바로 그 사례이다. 여기에 저자는 특정한 개인을 개입한다. 알렉산더 대왕, 카이사르, 나폴레옹, 히틀러, 이들이 없었다면 세계사의 흐름은 오늘날과는 완전히 달랐을 것이다. 저자도 그것을 인정한다. 그러나 그는 그들의 존재가 환경적 차이와 무관하다고 일축한다. 이렇게 해서 다시 한 번 저자의 결론이 언급된다. 민족마다 역사가 다르게 진행된 것은 인종의 차이도, 영웅의 존재도 아닌, 단순한 환경적 차이이다. 

 

 저자의 논지를 그림으로 정리한 것

 

 따라서 우리는 현대의 모습에 대해 누구에게도 책임을 물을 수 없다. 너의 환경을 탓하느니, 환경적 차이를 넘어서는 '특정한 개인'이 되라. 이것이 『총, 균, 쇠』를 통해 내가 얻은 교훈이다. 다이아몬드의 주장도 일맥상통한다. 그는 이 책을 통해 오늘날 세계에 나타나는 오늘날 세계에 나타나는 다양한 불공평을 민족이나 문화의 우열로 가리지 말라고 주장하고 있다. 동시에, 역사의 책임을 환경 탓으로 돌리지 말라고 설파하고 있다. 오늘날 세계가 불공평한 것은 환경적 차이에 불과할 뿐, 환경의 책임은 아니다. 역사를 바꾸는 주체는 여전히 사람이다. 시대는 바뀌었지만 그 밑에 흐르는 세계사의 보편적 원리는 변하지 않았다.

 

 예를 들어볼까? 총, 균, 쇠다. 총이라는 이름의 폭력은 물질적으로, 정신적으로 다양한 모습으로 발전하여 통치자의 도구로 쓰인다. 균은 예기치 못한 시점에 창궐하여 면역력 없는 약자들과 원주민들을 살상한다. 그리고 쇠라는 이름의 문명은 불평등 그 자체이다. 물론 저자는 모든 문명을 해체하고 자연으로 돌아가라고 주장하지는 않는다. 대신 누구에게나 가능성은 있고, 문명의 우열은 있을지언정 민족과 문화의 우열은 결코 존재하지 않는다는 메시지를 전하고 있다.


 다이아몬드가 에필로그에서 하고 싶었던 말은 이것이다. 역사학도 과학이다. 실제로 『총, 균, 쇠』를 들여다 보면, 생명과학이나 지구과학을 알지 못하면 이해할 수 없는 부분이 많이 존재한다. 그 부분을 과학적으로 설명하지 않으면 역사의 발전이나 퇴보의 원인을 알 수 없다. 역사와 과학은 연결되어 있으며, 나아가 역사학도 과학의 일원이다, 라는 것이 재레드 다이아몬드의 주장이다. 나도 그 의견에 동감한다. 그리고 내가 그의 말에 동감하는 한, 나는 결코 역사학자가 될 수 없다. 단지 역사에 흥미를 가진 학도일 뿐이다. 과학, 정치, 경제를 이해하지 못하면 역사도 이해할 수 없다. 선사 시대부터 전해 내려온 '땅'에 대한 이야기는, 인류가 얼마나 부동산에 영향을 많이 받는지 보여주는 실례인 것이다.


 바야흐로 21세기, 시대는 변했다. 어디까지나 이 책도 개정이 되었을언정 20세기, 구세계의 흔적이다. 농업혁명은 끝났고, 어느새 정보 혁명까지 왔다. 세상은 땅의 주인이 아니라 보이지 않는 힘을 가진 자가 다스리는 곳이 되었다. 가축의 양이 아니라 기술의 질이 훌륭한 사람이 돈과 명예를 얻는다. 그러나 재레드 다이아몬드는 신세계에 전달해 줄 몇 가지 메시지를 이 책 안에 담았다. 아무리 세상이 변해도, 가치가 흐려지지 않을 역사적 원리들 말이다. 왜 『총, 균, 쇠』에 '일본인의 뿌리'에 관련된 논문이 실렸는가? 마치 저자는 2014년까지 지속된 한일 관계의 악화를 예상하고 있는 듯 하다. 그 논란은 아이러니하게도 역사적 논쟁이다. 그리고 그가 한일 양국에게 전하는 메시지는, 두 나라는 형제라는 것이다. 화해하지 못한 형제, 그것이 우리다. 언제쯤 우리는 타인과 악수할 수 있을까? 오늘날 우리 사회에 만연한 이기주의와 개인주의 풍조는, 역사적으로 보나 과학적으로 보나, 분명 고쳐져야 할 요소일 것이다. 고치지 못한다면, 우리에게 주어진 환경은 고사하고, 문화나 민족조차 지킬 수 없을 것이다. 이렇게 볼 때, 『총, 균, 쇠』는 제목만큼이나 살벌하고 냉혹한 미래를 예견하고 있는 무서운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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율리시스
제임스 조이스 지음, 김종건 옮김 / 생각의나무 / 2011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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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임스 조이스는 표현의 영역을 뛰어넘은 작가이다. 따라서 나는 그에게 어떠한 표현을 담아 찬사를 담을 수 없다. 다만 『율리시스』는 주어진 시간으로 그 사람의 삶을 보여주는 위대한 작품이라는 것은 분명하다. 그리고 그의 소설들은 모두 하나로 모아지는데, 그것의 중심에 바로 이 책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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옥수동 타이거스 - 2013년 제1회 한국경제 청년신춘문예 당선작
최지운 지음 / 민음사 / 2013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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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것은 아주 특별한 이야기다. 이 책에 묘사된 이야기는 현실에서는 일어나기 어려운 경우가 대다수다. 그래서 누가 봐도 '아, 이 소설은 허구다'라고 생각할 수 있을 내용이다. 그런데 소설을 읽다 보면 나도 모르게 옥수동에 있는 용공고과 거기서 재학했던 오호장군이 실제로 있었다는 생각이 들게 한다. 『옥수동 타이거스』의 매력은 여기에 있다. 가상인 것을 알면서도 마치 진짜 있었던 일처럼 느끼게 하는 것. 사실 이 기법은 매우 어려운 방법이다. 그런데 신춘문예에 응모한 한 신인작가가 이 책을 썼다는 것이 더 놀라운 점이다. 사실 이런 가볍고 통속적인 소재를 다루는 소설치고, 신춘문예에서 뽑아주는 경우는 거의 없다. 그런데 왜 심사위원들은 이 놀라운 책에 반했을까? 그리고 나는 왜 많은 고전을 읽어놓고도 이 현대소설을 삼류로 분류하지 않은가? 그것은 『옥수동 타이거스』가 지닌 메시지 때문이다.

 

 첫 번째 메시지는 향수다. 오호장군의 멤버인 성혁, 규태, 재덕, 지선, 현승이 다른 학교 써클과 벌이는 싸움 이야기 등은 남자들에겐 로망일 것이다. 영화 <친구>가 대표적인 예이다. 싸움을 잘하는 아이들의 멋진 이야기를 다룬 『옥수동 타이거스』는 육체적인 싸움이 아니라 사회와 자기 자신과의 싸움을 치러야 하는 청장년 남자의 향수를 불러일으키기에 충분하다. 특히 성혁은.

 

 두 번째 메시지는 MB 정권에 대한 비판이다. 오호장군은 각자의 뜻깊은 사연을 가지고 있다. 이런 점에서 『옥수동 타이거스』는 성장소설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작가 최지운은 단순히 개인만이 성장한다고 그들이 성공한다는 일반적인 성장소설의 법칙을 따르지 않았다. 그들이 다녔던 학교이자 낙오자로 살아가던 그들을 구제해준 용공고는, MB 정권이 들어선 이후(연보를 보면 알 수 있다-여담이지만 연보까지 만드니 더욱 리얼감이 있다), 폐교 결정이 나 버린다. 그리고 그 폐교 결정의 배경에는 님비 현상을 비롯한 현대 사회문제의 진상이 담겨 있다. 명문학교만을 원하는 부모들의 탐욕과 재개발 산업으로 터를 잃어버린 가난한 사람들의 아픔과 학벌을 위주로 하는 현실이 한데 어우러져 있는 것이다. 나중에 가서는 그들이 폐교하는 장면에서 함께 분통해할 것이다. 『옥수동 타이거스』의 가장 주된 메시지인 '사회 비판'을 잊지 말길 바란다.

 

 세 번째 메시지는 성장이다. 오호장군으로 옥수동 일대를 잡아쥐던 다섯 명의 학생들은 사실 속마음은 착하고 꿈을 향해 노력하는 사람들이었다. 3인칭 관찰자 시점을 도입한 덕분에, 그들 마음속으로 파고들 기회를 독자에게 주지 않았으나, 그것을 '인터뷰'라는 소재로 대신하고 있다. 오호장군은 각자 원하는 것을 하면서 살아간다. 그것이 프로게이머라도 상관없다. 과거에 잘못을 저질러도 상관없다. 학벌이 안 좋아도, 대학에 못 가도, 행복할 수 있다. 최지운은 오호장군의 성공을 기록하며 우리에게 이러한 메시지를 전해주고 있는 것이다.

 

 그렇다. 『옥수동 타이거스』은 엄밀한 소설이다. 그러나 이 책은 동시에 우리의 이야기이기도 하다. 과거의 로망과 현실에 대한 비판과 미래의 성장을 향한 갈망. 이 소설은 이 모든 것을 완벽하게 담아냈을 뿐만 아니라 정교한 디테일을 자랑한다. 『옥수동 타이거스』는 멀리서 봐서는 평범한 통속소설 같지만, 진심으로 열의를 품고 탐구하면 놀라운 사실을 발견할 수 있는 책이다. 마지막으로 내가 생각하는 이 책의 주제를 적고, 이 리뷰를 마친다.

 

  이 세상에 실패한 인생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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