게오르규는 15장에서 트라이안이라는 작가의 입을 빌려, 『25시』의 제목의 뜻을 이렇게 설명한다.

 

 "25시. 인류의 모든 구제가 끝난 시간이라는 뜻이야. 설사 메시아가 다시 강림한다 하더라도 아무런 구제도 할 수 없는 시간이라는 말이야."(삼성출판사)

 

 그리고 그는 예언한다. 1949년에 발표된 작품이다.

 

 

 

 

 

 

 

 "그렇다면 인류를 위협하는 그 위험은 대체 뭔가?"

 

 "그건 기계노예라는 거야. (…) 기계노예야말로 완벽한 하인이지. 그들은 밭을 갈고 전쟁을 하며, 경찰업무와 행정업무까지 도맡아 해주잖아. 그들은 인간의 모든 활동을 배워서는 그걸 완전히 대행하거든. 계산을 하고, 그림을 그리고, 노래를 부르고, 춤을 추고, 공중을 날고, 물 속에 잠수도 하지. 필요하다면 사형집행도 해주며, 의사 옆에서 환자를 치료하고, 미사를 집전하는 신부를 돕기도 한단 말이야. (…)  우리는 기계노예를 부려먹기 위해 그들의 언어와 법칙을 배우고 있어. 그러는 동안에 자신도 의식하지 못하면서 점차로 우리는 인간 자신의 법칙과 인간 고유의 특질을 포기하는 걸세. 그들의 생활방식을 습득해 가는 동안에 우리는 비인간화되어가고 있단 말이야. 비인간화의 최초의 증세가 뭔지 아나? 그건 인간 멸시의 사상이야. 현대인은 자기 자신까지 포함해서 모든 인간을 딴 것으로 대치할 수 있는 존재라고 생각하고 있거든."

 "사회적 관계는 판에 박은 듯이 정확하며 자동적이어서 기계의 부속품의 상호관계와 같은 것이 되고 말일세. (…) 그래서 끝내는 인간이 인간의 본성을 가지고는 살아갈 수 없는 사회가 올 거야. 모든 것이 동일하고 획일적인 것으로 간주될 것이며, 인간의 특성이 용납될 수 없는 기계노예의 법칙에 의해 다스려지는 세상이 될 거야. 체포나 선고·차압·집행 등이 모두 기계적, 자동적으로 처리되고 말 거야. 그렇게 되면 개인은 존재할 권리를 모두 상실하여 기계의 부속품이나 피스톤처럼 다루어질 거야."

 "앞으로 이 지구상에는 자유로운 인간은 하나도 없을 거야. (…) 우리는 야만인들이 태양을 숭배했듯이 인공의 태양 앞에 무릎을 꿇고 경배하는 시대에 살고 있어."

(출처: 삼성출판사)

 

 안타깝게도, 아시아가 기술사회의 지배를 종식시킨다는 예언은 이루어지지 않고 트라이언이 말한 비극적 미래만 다가오고 있다. 아마 최근의 일들을 보며 인공지능에 대한 불안함을 가진 이들이 많아졌으리라. 나 역시 예전부터 기계를 비롯한 모든 인위의 위험성에 주목하였다. 그리고 나는 인공의 태양이 아닌 그 무언가를 생각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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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편에서 그랬듯이, 영화를 먼저 본 뒤 소설을 보았다. 두 매체 모두 공통점이 있다면, 바로 강력한 흡입력이다. 영화는 시간 가는 줄 모르고 보았고 소설도 하루만에 다 읽었다. 확실히 이 시리즈는 사랑스럽다.

 

 소설과 영화 모두 각각의 장단점을 갖고 있다. 그래서 우열을 가리기 매우 힘들다. 또 그럴 필요도 없다. 소설은 소설 나름대로의 맛이 있고, 영화는 흥미 요소를 충분히 갖추었으니까. 그런데 2편 자체의 이야기 전개로 볼 때, 나는 영화의 전개에 손을 들어주고 싶다. '사악(위키드)'의 정체를 우린 이미 알고 있기에 그들은 마땅히 적이 되어야 한다. 영화는 적어도 그러한 선과 악의 대립을 잘 표현하였다고 할 수 있다. 소설은 밀도와 세부 사항 등에서 강점을 보이고 있으니 더 이상의 언급은 않겠다.

 

 설정의 변화와 등장인물의 비중도 눈에 띄었다. 영화에서는 '플레어 병'을 인간을 좀비(정확히 말해 광인)로 만드는 반면, 소설에서는 그것을 '미쳐가는 과정'으로 표현한다. 즉, 광인에게 최소한의 인격을 부여한 것이다. 그 점에서는 소설이 한 수 위다. 그리고 우열을 가릴 수 없는 것이 새 인물의 비중이다. 아리스(소설에서는 에어리스)와 브렌다의 비중이 각각 다르다. 소설에서는 전자를, 영화에서는 후자를 강조한다. 어떤 것이 나았는지는 읽은 자만 알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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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리차 갖고 싶은 책 몇 권 올려본다.

 

 나도 작가 새뮤얼슨처럼 문호의 곁에서 수업을 받는다면 얼마나 기쁠까? 

 "그저 나와 대화를 나누고 싶어서 왔다고? 그럼 얘기가 다르지." 이 말 한 마디로 가난한 청년 새뮤얼슨은 이전과 다른 삶을 살게 된다. 그의 진실한 마음이 담긴 조언은 작가가 낳은 또 다른 작가의 입을 통해 전달된다.

 "난 출판사들과 편집자들이 원하는 대로 쓰지 않는다네. 내가 원하는 대로 써야, 독자들에게 읽혀질 수 있지."

 그리고 이것은 내가 쓰는 글의 목표이기도 하다.

 

 

 

 

 

 

  난 『황태자비 납치사건』을 이미 읽었지만 이 책이 '스토리  DNA'  시리즈이기 때문에 골랐다. 한 마디로 난 이 시리즈를 읽고 싶다. 순수한 이야기만으로 우리를 움직이게 하는, 그런 책을 바랬다.

 

 『자본주의 동물 농장』은 조지 오웰의『동물농장』에 대한 오마주이자 현대판 재해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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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메이즈 러너 2편이 올해 후반기에 개봉한다. 부제는 '스코치 트라이얼', 혹독한 시련이라는 뜻이다. 그러나 과연 그게 '혹독'할까?

 플라톤의 『국가』을 보자. 감독이 이 책을 봤다면, 적어도 첫째 조건은 만족한 셈이다. '공포의 대상'을 제시했으니, 그 다음은 환락인가? 그건 올해 말에 확인해야겠지.

 

  그래서 내가 말했네. "그렇다면 우리는 셋째 유형의 호리는 시험도 해 보면서 지켜보아야만 하네. 마치 사람들이 망아지를 소음과 소란이 있는 곳으로 이끌고 가서 그것들이 겁을 먹는지를 살피듯, 마찬가지로 젊은 시절의 이들을 어떤 공포의 대상들 속으로 몰고 가는가 하면, 다음 번에는 환락 속으로 옮겨 놓고서는, 황금을 불 속에서 시험해 보는 것보다도 더 많이 시험해 보아야 하네. 만약에 어떤 사람이 어떤 경우에나 좀처럼 흘리지 않고 의젓하며, 자기 자신과 자기가 배운 시가의 훌륭한 수호자인 걸로 보인다면, 그래서 이 모든 경우에 있어서 자신을 단정하고 조화로운 사람으로 드러내 보인다면, 그런 사람이야말로 자기 자신을 위해서나 나라를 위해서 가장 유용한 사람일 걸세. 그리고 아이들 사이에서나 청년들 사이에서 그리고 어른들 사이에서 언제나 그런 시험을 거쳐 더렵혀지지 않은 것으로 판명된 사람을 우리는 나라의 통치자 및 수호자로 임명해야 하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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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메이즈 러너'를 처음 본 건 영화관에서였다. 친구들과 함께 시내 영화관으로 무슨 영화를 볼지 고르다가, 이 영화가 재미있어서 보여서 무턱대고 보게 되었다. 예고편도 보지 않고, '미로를 달리는 사람들'이라는 제목만으로 내용을 추론했다. 처음에는 이렇게 생각했다. "아, 아이들은 어떤 게임에 참여해서, 한 명씩 한 명씩 미로 속의 난관 속에 죽어가고, 주인공을 비롯한 일부 사람들만 살아남아 목표를 이루는 영화구나." 한 마디로, '메이즈 러너'는 단순한 할리우드 오락영화로 본 것이다.

 그런데 막상 뚜껑을 열어보니, 내 예상과 다르게 영화가 진행되었다. 할리우드 영화가 어쩔 수 없이 가지는 '진부한 요소(이른바 클리셰)'가 종종 보였지만, 결코 평범한 오락영화로 보이지 않았다. 미로는 게임이 아니라 시험이었다. 한 명씩 한 명씩 죽는 게 아니라 무리를 지어 움직인다. 남아 있으려 하는 무리, 떠나려는 무리. 글레이드, 미로, 그리버 등이 주는 함축적 의미는 조금만 더 생각해 보면 우리의 삶을 떠올리게 한다. 매력적인 배우들 때문에, 그들이 죽지 않기를 간절히 바랬고, 적어도 1편에서는 그랬다. 또 볼 수 있다는 것, 그들이 이 재앙을 끝낸다는 희망 때문에 2, 3편은 꼭 볼 것이다........

 

 그러고 나서, 최근에 『메이즈 러너』를 구매해서 읽어본 결과, 영화와 책 모두 대만족이었다. 각자 매력을 담고 있었다. 책에서만 담을 수 있는 내용을, 영화가 적절히 편집하고 창조해서 어느 매체로 읽든 이 매력적인 스토리를 제대로 느낄 수 있었다. 그리고 오랜만에 다음 페이지가 기대되는 소설을 만났다. 내용에 대해서는 언급하지 않겠지만, 영화와 책 모두 '토머스'를 중심으로 그를 따라가는 시점을 사용해서 스릴이 넘쳤다. 생각해 보라. 토머스 없이 진행되는 장면은 책에서 단 하나도 없었다(에필로그 제외). 영화도 거의 그랬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조연들은 하나같이 빛이 났다. 또, 죽는 이들도 똑같이 죽어서 다음 편에도 비슷한 현상을 겪을 것 같다.

 사실 『메이즈 러너』는 영상화하기 아주 좋은 소재를 지니고 있다. 괴수(그리버), 미로, 재앙, 글레이드(책에서는 공터라고 부른다)에 대한 자세한 묘사는 독자들의 상상력을 자극했고, 웨스 볼은 그것을 스크린에 멋지게 구현해내었다. 영화와 책의 가장 큰 차이점이라면 바로 '탈출구'인데, 개인적으로 책이 더 마음에 든다. 책에 묘사된 '절벽'은 내가 예전에 즐겨했던 게임, '마인크래프트'의 베드락 아래를 연상시키기 때문이다.

 (절벽의 묘사를 표현하면, 대략 이 정도?) 출처: 구글 이미지

 

 결론은, 책이든 영화든 어느 것을 보든 큰 즐거움을 맛볼 것이고, 나아가 이 이야기를 하나의 상징으로 본다면 많은 깨달음을 얻을 것이다. 다음 편을 정말 읽고 싶지만, 영화를 위해 나도 참는다.

 

 (메이즈 러너처럼 책이 기대되는 작품은 '에메랄드 아틀라스' 시리즈 정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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