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인자의 기억법 복복서가 x 김영하 소설
김영하 지음 / 복복서가 / 2020년 8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V: 어땠어?

 O: 뭐가?

 V: 김영하가 쓴 살인자의 기억법』. 한 시간 만에 읽었다며.

 O: 모르겠어. 정리가 안 돼. 나는 당연히 박주태가 위험한 인물이고, 은희가 연쇄살인마의 딸이라고 생각했어. 지금 생각해 보면 곳곳에 이상한 점들이 있었는데, 왜 그걸 우습게 여겼을까?

 V: 그럼 너는 박주태와 경찰들이 하는 말을 믿어?

 O: 적어도 알츠하이머에 걸린 노인이 하는 말보다는 믿을 만해. 게다가 이 사람은 자기가 쓴 것도 기억하지 못하잖아. 이 소설은 김병수가 쓴 기록을 추적하는 방식으로 이루어져 있어. 중간에 자기가 죽었을 때 은희가 보게 될 거라는 서술도 나오잖아. 독자를 가정하고 적은 거지.

 V: 아무 것도 모르는 노인한테 죄를 덮어 씌우는 거라면? 어쩌면 김병수는 시 강의 시간에 상상의 날개를 펼쳤는지도 몰라. 대나무숲에서 시체들이 발견되었지만, 살인의 명확한 증거도 없고 말이야.

 O: 그럼 우리가 믿을 수 있는 게 뭔데? 작가가 말하고 싶은 건 뭐야?

 V: 적어도 무서운 건 악이 아니라 시간이다라거나 죄책감은 본질적으로 약한 감정이다따위의 따분한 말을 전달하려는 건 아닐 테지. 애초에 첫 문장에 사람을 죽였다는 문장도 독자들의 시선을 끄는 동시에 감정이입을 막으려는 장치였으니까.

 O: 변함없이 경찰은 무능하다고 비웃었지만, 그들은 언제나 그를 주시하고 있었구나. 그럼 최근에 일어난 연쇄살인과 박주태의 차에 묻은 피, 그리고 은희의 아빠라는 호칭은 어떻게 설명하지? 은희는 어쩌다 살해당한 거야?

 V: 우습지. 가장 핵심적인 기록은 누락되었다는 게. 결국 김병수는 자신이 기억하고 싶은 것만 기억해. 아니, 이 사람한테는 기록이 곧 기억이니까, 자신한테 필요한 과거만 적어놓는 셈이지. 나머지는 모두 혼돈, 또는 공으로 흘러갈 뿐이고.

 O: 뭐야, 그럼 우리한테는 알 권리가 없는 거야?

 V: 김영하가 후기에 그렇게 썼잖아. 자기는 어떤 세계를 방문한 여행자에 불과하다고. 작가한테 허용된 기록의 영역에는 한계가 있어. 어차피 그 세계에도 우리 세계와 비슷한 원칙이 적용되니까 나머지는 독자의 몫이야.

 O: 어떤 원칙?

 V: 사람은 자기가 믿고 싶은 대로 믿는다. 특히, 미지의 영역에 대해.

 O: 동의하기 어려운데. 사람은 모르는 것에 당혹감을 표현하거나 도망치잖아.

 V: 너는 논란이 되는 주제를 좋아하니?

 O: , 열린 결말이나 음모론 같은 것들?

 V: 그렇지. 의견이 갈려서 타협되지 않는 주제들.

 O: 딱히. 너는?

 V: 나는 기꺼이 한쪽 입장을 택해. 동시에 다른 입장도 존중하지. 사람은 미지의 영역에 공포를 느끼는 동시에 맹목적인 확신을 품거든. 그곳에서는 인간의 믿음이 곧 근거가 돼. 사람이 가진 가장 약한 믿음은, 자신의 믿음이 확실하지 않다는 거야. 진실을 말해줘도 좀처럼 흔들리지 않아. 김병수가 마침내 혼돈에게 주시당하는 순간이 이 소설의 결말을 장식하는 것처럼.

 O: 나는 연쇄살인마의 생각과 대부분 달랐어. 특히 시간에 대한 인식은 정반대였지. “현재는 과거와 미래를 연결하는 가상의 접점일 뿐, 그 자체로는 아무 것도 아니기 때문이다라고 했잖아. 나는 오히려 인간은 현재에 얽매일 수밖에 없는 존재라고 생각해. 과거와 미래는 현재에 잠시 개입하지만, 결국 인간은 현재로 돌아오지.

 V: 어쩌면 치매 환자뿐만 아니라 사람은 언제나 적절하지 못한 곳을 떠다니는 존재라는 생각도 들어. 그래도 김병수의 통찰이 어느 정도 설득력을 가지는 순간도 있어. 내가 가장 좋아하는 구절이 이거거든. “인간을 틀 몇 개로 재단하면서 평생을 사는 바보들이 있다. 편리하기는 하겠지만 좀 위험하다.” 자기 눈 안에 있는 대들보를 못 보고 남들을 평가하는 행동 자체가 우스운 일이지. 어떤 면에서는 대부분의 사람들이 그렇게 살아가기도 하고.

 O: 어찌 됐든 김병수가 연쇄살인마라는 사실을 믿는다면, 『살인자의 기억법은 그럴 듯한 가르침을 전해줘. 세상을 바라보는 시각은 자주 했던 일, 또는 몰입했던 일로 형성된다는 걸. 처음에 아버지를 죽였을 때는 그럴 수밖에 없었다는 필요에 의해 정당화되지만, 그다음 살인부터는 순수한 몰입감이었잖아. 이제 김병수에게 삶의 고민이란 사람을 죽이거나 살리거나, 둘 중 하나뿐이었어.

 V: 초반부에 재미 있는 에피소드가 있었잖아. 「신부라는 시를 첫날밤에 신부를 살해하고 도주한 신랑 이야기로 읽었다면서 그걸 어떻게 달리 읽겠는가?”라고 따지듯이 쓴 장면. 누가 누구한테 이해를 바라는 거지? 연쇄살인마 주제에 독자한테 자신의 심정을 토로하고 있어.

 O: 이해도 안 되고, 용서도 안 돼.

 V: 김병수의 시각을 떼어놓고 이 소설을 보면 조금 다른 점도 발견돼. 연쇄살인마 자리에 주어가 없으면 우리는 미지의 존재에 공포를 느끼지. 하지만 그 존재가 주변의 도움 없이는 아무 것도 할 수 없는 치매 환자임을 아는 순간, 공포가 아닌 다른 감정이 그 자리를 채워. 사람에 대한 감정은 꽉 찬 그릇과도 같은 거야. 내용물이 대체될 수는 있어도, 비워질 수는 없어.

 O: 박주태의 시각으로는 치밀한 수사물이고, 은희 입장에서는 비극이겠지.

 V: 개의 입장에서는?

 O: 그것까지 알아야 하나?

 V: 중요한 단서를 제공하는데, 무시할 수는 없지.

 O: 혼란, 무수한 혼란.

 

 N: 그래서 김병수는 마음의 안식을 얻었나?

 V: 감옥에 갇혔다면, 그랬겠지.

 N: 내가 보기에 그한테는 공에 이르는 것이 진정한 휴식인 것 같은데.

 V: 죽음 말인가?

 N: 죽음이 또 다른 구속인지, 자유의 시작인지 어떻게 알고?

 V: 그한테는 남아 있는 삶이 죽음보다 가혹했으니.

 N: 연쇄살인마한테 삶을 선고하는 것이 더 잔인하다니, 이해가 안 가.

 V: “아버지가 대답했다. 우린 다른 사람들과 다르지 않니.” 다르기 때문에 이해할 수 없다면, 우리는 앎을 택할까, 무지를 택할까?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실종자 - 개정판 카프카 전집 4
프란츠 카프카 지음, 한석종 옮김 / 솔출판사 / 2017년 5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미국과 카프카는 묘하게 닮았다. 그 명성을 익히 들어왔고, 그들이 차지하고 있는 특수한 지위를 인지하고 있다. 그러나 막상 그들의 영역에 발을 들이는 순간, 입문자의 마음에는 당혹감과 두려움이 들어선다. 친절하면서 냉혹하고, 긴밀하면서도 툭툭 끊기는, 그들 특유의 양면성에 애증을 느낀다. 그래서 오랫동안 『아메리카』라는 제목으로 알려진 『실종자』는 어느 선택지든 독자들을 혼란에 빠뜨리기 마련이다. 


 카프카의 다른 소설들이 그렇듯이, 카알 로스만은 설명할 수 없는 현실적인 상황들에 휩쓸린다. 첫 번째 장부터 그 특징은 두드러진다. 모르는 남자에게 트렁크를 대뜸 맡기는 로스만, 그리고 그를 붙잡는 화부, 화부의 억울함을 해소하기 위해 선장에게 찾아가고, 그러다 만나게 되는 외숙부까지, 이 일련의 과정이 어딘가 부적절한 표현들과 부자연스러운 흐름으로 점철된다. 그리고 카알이 미국까지 떠밀려 오게 된 계기부터 그가 외숙부의 집에서 쫓겨나는 동기 역시 당혹스럽기 그지없다. 이렇게 카알은 끊임없이 보이지 않는 손에 휩쓸려 세상의 밑바닥으로 떨어진다. 


 이후 미국에서 독립하는 과정도 순탄하지 않다. 엘리베이터 보이로 취직하지만, 얼마 안 가 한 번의 실수로 바로 해고당하고, 비슷한 처지의 사람들끼리 모여사는 곳에서 하인으로 일한다. 이곳에서의 비참함과 부당함 역시 이루 말할 수 없다. 로스만은 오클라하마 극장의 공고를 보고 새로운 희망을 꿈꾼다. 그리고 클레이톤으로 기차를 타는 과정에서 이 미완성의 작품은 막을 내린다. 언뜻 보면 드디어 카알이 억압과 방랑에서 벗어나 정착할 수 있을 것 같지만, 불현듯 끊겨버린 그의 여정은 로스만이 결코 이 사회에서 이름을 가질 수 없게 됨을 의미한다. 


 아메리카, 라는 영문식 이름이 주는 무언의 압박과 공포는 '실종자'라는 신원 미상의 정보를 통해 완성된다. 분명 그는 실존하지만, 어디에서도 그는 환영받지 못한다. 아들로서의 역할을, 식객으로서의 역할을, 직원으로서의 역할을, 하인으로서의 역할을 수행하지 못한 로스만은 가치없는 존재일 뿐이다. 이는 하루 아침에 벌레로 변신하여 생산성을 잃게 된 그레고리의 우화와 다를 바 없다. 극장으로 향하는 로스만의 모습은 앞으로 전진하는 것이 아니라, 종착점이 없는 터널을 향해 돌진하는 기차 안에 탄 승객의 모습이다. 그리하여 완결되지 않은 이 소설은 오히려 더 진한 여운을 독자에게 남기게 된다. 굳이 카알 로스만을 자신에게 대입하지 않아도, 이 땅에 무수한 실종자들이 맴돌고 있으리라는 두려움이 우리를 사로잡지 않는가? 


 카프카의 소설에는 해답도, 질문도 없다. 그는 현실을 배경으로 하는 어떤 우화들을 제시할 뿐이다. 특이하게도, 그의 교훈은 '인간의 삶에는 어떠한 교훈도 없다'는 문장이지만. 알 수 없는 형벌에 의해 처벌을 받아도, 미지의 땅에 휩쓸려간다 해도, 개인에게는 저항할 힘이 없다. 그렇다고 사회나 체제가 변화되어야 하는가? 글쎄, 세상이 좋아진다고, 정책이 변한다고 인간의 삶이 행복해질까? 기술이 발전할수록 인간은 소외되기 마련이다. 기계가 추구하는 실용성과 효율성의 관점에서, 인간이라는 부품은 너무나 비효율적이니까. 카알이 가지고 있던 인간성과 저항하는 마음이 그를 추방했듯이, 아메리카에 영혼이 머물 자리는 없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5)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너무도 쓸쓸한 당신
박완서 지음 / 창비 / 1998년 12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은 최근에 읽은 이상문학상 단편집과 박완서의 단편집을 비교해서 읽으면, 어쩐지 낯설다. 전자가 차가운 웃음을 담고 있다면, 후자는 따뜻한 해학으로 인간을 비춘다. 두 책에 수록된 작품들 모두 현대사의 단면을 드러내지만, 박완서의 소설집은 조금 더 개인의 심리에 집중한다. 그래서 조금 더 친숙하고, 보편적인 이야기는 『너무도 쓸쓸한 당신』에 있다고 본다. 문학에서 우열을 가리는 것보다 중요한 것이 선호도라던가. 일단 나에게는 박완서 소설가의 토닥거림이 꽤 괜찮았다.


 등장인물과 다루는 내용이 다른 이 단편집에서 공통적으로 느껴지는 부분이 있다. 바로 관찰자의 밀도 있는 심리 묘사다. 때로는 1인칭으로, 때로는 전지적 작가 시점으로 읽혀지는 인물의 심경 변화는 실로 극적이다. 사건은 미약할지라도 그것이 인물의 세계에 미치는 영향은 지대하다. 그 안에는 일반적인 사랑과 욕망도 포함되어 있지만, 독자에게 전달되는 것은 다른 유형의 마음이다. 차마 남들에게는 고하지 못하는 악의요, 입밖으로 꺼내지도 못할 탐욕이요, 다소 부끄러운 과거들이다. 누구나 마음 한 켠에 품고 있는 이면들이 수면 위에 떠올라 독자의 마음을 찌른다. 작가의 솔직한 고백이 곧 읽는 이의 감정을 동요시킨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러한 낯부끄러운 존재들을 익살을 담아 표현하는 작가의 수완이 대단하다. 그래서 우리는 불편함을 느끼기보다는 쓴웃음을 짓는다. 그래, 우리에게도 저런 시절이 있었지. 혹은, 나도 저렇게 될지도 몰라. 조금은 초조하지만 그래도 일상을 살아가는 데에 지장을 주지 않는다. 어쩌면 소설가로서 누릴 수 있는 최고의 지위가 아닐까 싶다.

 

 인상적인 단편들을 몇 가지 꼽으라고 하면, 「참을 수 없는 비밀」,「그 여자네 집」,「J-1 비자」가 아닐까 싶다. 다른 단편들도 모두 빼어나지만, 박완서가 펼쳐놓은 언어의 망을 나의 방식으로 풀어놓기에는 역부족이다. 단순히 줄거리를 요약하거나 주제를 한 줄로 적어놓기에는 그녀의 단편에 서린 느낌을 살릴 수 없었다. 그래서 분명한 인상으로 남은 것만 나의 언어로 설명하고자 한다. 첫 번째 단편은 책 전체에서 보기 드문 스무 살의 기억을 다룬다. 마을 사람들 모두에게 각인된 불행과, 그 사건의 진실을 품고 있는 한 명의 여인에 대한 이야기이다. 생의 전반에 죽음이 도사리고 있는, 어찌 보면 비운의 인물이다. 관찰자는 그녀의 마음을 구석구석 후비며 내면의 욕망과 아쉬움 등을 낱낱이 내비친다. 그리하여 독자는 하영의 비밀에 참을 수 없는 지경에 이른다. 


 「그 여자네 집」은 위에 언급한 단편소설과 대척점에 있다고 본다. 하영의 이야기가 개인의 서사에 집중했다면, 이 작품의 서사는 현대사와 다양한 지점에서 접한다. 소설은 만득이와 곱단이의 교제를 가로지르는 일제강점기, 분단과 전쟁, 그리고 위안부까지 맞닿는다. 그동안 인물의 심리 묘사에 초점을 맞춘 작가는 이번에 자신의 능력을 한껏 제한하여, 철저히 관찰자의 시점에 놓인다. 그렇게 해야 역사를 조명할 수 있기 때문이요, 마지막 부분의 반전이 극대화되기 때문이다. 장만득의 호소는 어찌 보면 박완서가 추구하는 글쓰기와 어긋난다. 요지는, 나의 역사를 안다고 나에 대해 안다고 자부하지 말라는 것이다. 그제야 만득이와 기구한 현대사를 동시에 보고 난 후, 그를 이해했다고 생각한 독자들은 그 허무맹랑한 상상에서 벗어난다. 이것이 박완서 특유의 해학임을 느꼈다.


 「J-1 비자」는 이창구라는 소설가 겸 고등학교 국어 선생을 하고 있는 중년 남성을 주인공으로 내세운다. 소재는 J-1 비자를 얻기 위해 벌이는, 다소 우스꽝스러운 여정과 끝내 좌절되어 드러내는 속좁음이지만, 그 안에도 현대사의 단면이 스며들어 있다. 그리고 다른 작품에서도 몇 번 언급한, 한국인이 품고 있는 막연한 아메리카 드림을 풍자한다. 박완서는 소설가가 느끼는 미묘한 욕망을 한껏 드러내어 해학스러운 어조를 유지한다. 그것과는 별개로, 얼마 전까지 J-1 비자를 유지했고 실제로 미국에 갔던 경험이 떠올라 인상적으로 다가왔던 단편이기도 한다.


 서론의 첫 줄부터, 꽁뜨에 이르기까지 박완서는 그녀 특유의 해학을 놓치지 않았다. 더욱이 인간에 대한 따뜻한 시선을 놓치지 않았다. 이는 작가가 세상을 그저 아름답게 보기 때문이 아니다. 그녀야말로 현대사의 산 증인이었고, 그 사이에 있었던 물리적, 정신적 충격에 함께 했다. 폭풍이 모두 지나고 나서, 그녀는 초연하게 미소를 짓는다. 너무 무겁지도, 너무 가볍지도 않게, 거리를 적당히 조절하며. 때로는 기꺼이 소설 속의 세계로 참여하고, 때로는 등장인물의 이야기를 들어준다. 해학과 따뜻함 사이를 아슬아슬하게 유지하는 그 능숙함에 감탄이 나온다. 다 읽고 나면 알싸한 느낌이 조용히 머릿속에 남는다. 처음에는 웃음 지을지라도, 후에는 표정이 달라진다. 전혀 낡지 않은 박완서의 소설들을 조용히 품는다.

극진히 사랑하던 애인을 바다에서 잃은 청년이 있었다나. 그가 남은 생애 동안 돈을 버는 대로 오로지 뛰어난 아콰마린만 사모은 게 늙어 죽을 때는 드디어 커다란 마대자루 하나 가득하더라는 것이었다. 깊은 바다에 애인을 빼앗긴 청년이 따라 죽는 대신 바다 빛깔 결정체에다 자신의 혼을 수없이 던진 이야기를 친구는 왠지 심드렁하고 간략하게 말했다. 그런 무기교야말로 극상의 기교였을까. - P13

강도의 폭력을 피하기 위해 얼떨결에 십층에서 뛰어내려 죽었다고 강도는 죄가 없고 자살이 되나요? 삼천기 강산 방방곡곡에서 사랑의 기쁨, 그 향기로운 숨결을 모조리 질식시켜버리니 그 천인공노할 범죄를 잊어버린다면 우리는 사람도 아니죠. 당한 자의 한에다가 면한 자의 분노까지 보태고 싶은 내 마음 알겠어요? - P203

"난다 긴다 하는 급수 딴 타자수도 얼마나 많은데 할머니한테까지 돌아올 일거리가 있다는 게 신기하네요."
청년이 7000원짜리 수리비 청구서를 내밀며 정말로 안됐다는 듯이 나지막한 소리로 중얼거렸다. 나도 신기했다. - P303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우리들의 일그러진 영웅 - 1987년 제11회 이상문학상 수상작품집
이문열 외 지음 / 문학사상사 / 1999년 8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옛날, 그러니까 정확한 연도도 기억나지 않았던 초등학교 시절, 다림출판사에서 간행된 『우리들의 일그러진 영웅』 단행본을 읽었던 기억이 난다. 한병태의 시점에서 진행되었던 탓일까, 엄석대의 부정과 몰락이 통쾌하게 다가왔다. 그러다 불현듯 집에 꽂혀 있는 제11회 이상문학상 수상작의 이름으로 실린 이문열의 중편소설을 다시 읽게 되었다. 두 번째 독서에서는 조금 다르게 책이 읽혔다. 『우리들의 일그러진 영웅』은 한병태의 내면에 잠재한 엘리트주의, 남들과는 다르다고 여기는 자의식이 만들어 낸 변명처럼 느껴졌다. 공동체의 상태를 파악하지 않고 혼자 모든 것을 바꾸겠다는 무모한 시도들, 패배한 이후 무섭도록 체제에 순응하고 거기서 살아남는 모습, 그리고 엄석대의 몰락이 시작된 이후 그것을 내심 아쉬워하는 태도 등이 새로운 해석을 열어놓았다. 


 문학은 시대를 비추는 거울이라고 했던가, 수록된 작품들이 1980년대 내지는 한국 현대사의 일면을 담고 있음을 여실히 느꼈다. 시대간의 간격이 조금 크게 느껴졌다. 다만 대부분의 소설들이 낡은 느낌이 나지 않아 다행이었다. 그때나 지금이나 예리한 수상소감을 보는 것은 큰 즐거움이기도 하다. 개인적으로 이문열의 소설 외에 인상적으로 읽혔던 것은 <문신의 땅>이었다. 심사위원도 지적했듯이 이야기의 맺음보다 전달하는 메세지가 워낙 강렬한 탓이기도 하다. 그 마무리가 명확하지 않은 것이나, 잦은 시점의 변화가 혼란을 야기한다는 단점이 있었으나 노마리아의 문신이 한국 현대사의 상흔을 상징하는 느낌이라 각인된 듯 하다. 


 각 해의 이상문학상 수상작들은 일관된 흐름이 있다. 매년 요구하는 문학의 정신이 다른 것도 있고, 작가의 고투와 평단의 차이가 낳은 결과이기도 하다. 이것이 시대를 막론하고 이상문학상 수상작들을 찾아서 보는 매력인 것 같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감상 여행
다나베 세이코 지음, 신유희 옮김 / 북스토리 / 2009년 7월
평점 :
절판


 가끔 나는 어떠한 흥미 없이, 사전 정보 없이 작품 속에 들이닥치곤 한다. 영화든, 소설이든 그러한 경험은 예상 밖의 즐거움을 가져다 준다. 『감상 여행』의 두께는 얇았고, 나는 시도해 볼만한 도전이라고 생각했다. 작가가 꽤 오래 전부터 활동했던 작가였으며, 수록된 단편들(단편집인지도 몰랐다)이 그녀가 살았던 시대의 반영임을 뒤늦게 알았다. 일본 문학에 대한 나의 무관심 때문인지 몰라도, 세 편의 이야기는 꽤 현대적으로 다가왔다. 


 다나베 세이코가 펼치는 이야기들은 다분히 일상적이다. 특별한 사건이 벌어지지 않고, 주로 남녀의 대화로 이야기가 진행된다. 그 일상의 조각들 속에서 독자는 피식 웃음을 짓고, 가끔은 송곳처럼 돋아난 씁쓸한 현실을 직시한다. 요지는 이런 것이다. 「감상 여행」속 유이코와 히로시는 어디론가 떠날 준비를 하지만, 결국 방안을 벗어나지 못한다. 사무엘 베케트의 『고도를 기다리며』에서 발견한 부조리함을 느꼈다. 다만 그들의 정체는 가야 할 곳을 모르는 것이 아닌, 무기력에서 비롯된다는 점에서 차이가 있다. 활자 너머로 먼지가 잠겨 있었고, 끝에 가서야 그들은 겨우 먼지를 털어낼 뿐이다. 


 「당신이 대장」은 작가의 특성이 가장 잘 표현된 단편이 아닐까 싶었다. 다츠노의 시선으로 본 에이코의 다소 우스꽝스러운 변화와, 서서히 드러나는 다츠노의 무기력함이 조화롭게 어우러졌다. 작가는 어떤 한쪽의 잘못을 지적하는 것이 아닌, 가족이 미처 인지하지 못한 타성을 드러내고자 한다. 그 와중에도 그녀는 유쾌한 시선을 잃지 않는다. 평생 직장이라 믿었던 파트 타임에서 잘리고 난 후 울고 있는 아내를 향해 "이번엔 아내가 이성을 잃고 울고 있는 게 아닌가. 설마 아내가 야구 선수가 되고 싶은 건 아니겠지."라니. 제3자인 독자가 보기에는 한 편의 희극이다. 그리고 다음 장면에서, 그렇게 세상을 배웠겠거니 자부한 다츠노를 비웃듯 더 나은 직장에 채용된 에이코의 모습을 보여주며 두 현대인의 달콤씁쓸한 생활기를 마무리짓는다. 


 마지막 단편 「시클라멘이 놓인 창가」는 상당히 자조적으로 변한 작가의 시선을 엿볼 수 있다. 독신으로 늙어갈 각오를 하고, 실제로 그렇게 늙은 루리의 생활을 보여주고, 츠카다를 만나 마음을 여는 과정은 아름다우면서도 쓸쓸하다. 무기력함과 블랙 유머를 거쳐 건조한 겨울의 시선으로 작품집을 끝내는 구성은 독자들에게 감상 여행을 안겨주기에 충분하다. 남의 이야기처럼 보이면서도 곳곳에 보이는 달콤씁쓸한 일상의 파편들이 우리에게 쏟아진다. 일상의 기록은 대중문학과 순문학 중 어디에 있는가? 여전히 그 경계는 모호하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